불갑산 (516m)

 

불갑산은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불교적인 색채가 배어있는 산으로, 대체로 돌이 많은 전형적인 육산이나, 정상에서 장군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는 10여m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릉산행의 짜릿한 스릴까지도 느껴볼 수 있는 산이다. 물론 등산로 정비도 잘되어 있다


산행코스 : 주차장-불갑사-저수지-해불암-정상-장군-덕고개-불갑사-주차장(산행시간 : 2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청계산악회


특징 : 백제에 최초로 불법을 전한 마라난타에 의해 세워진 옛절인 불갑사를 품에 안은 산이나, 절보다는 꽃무릇 축제로 더 많이 알려진 산이다. 이곳 불갑사는 문화재(보물)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게 다른 절과 다르다   

 

 

잘 가꾸어진 산 초입의 집단시설지구에 들어서면

여기 저기 상사꽃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러나, ‘상사꽃 축제’보다는 ‘꽃무릇 축제’라 부르는게 맞지 않을까?

상사화와 꽃무릇은 모두 꽃과 잎이 함께 나지 않는 같은 수선화과이지만 색깔, 모양, 생장기 등 사뭇 차이점이 많으니 말이다.  따라서 제 이름을 찾아 ‘꽃무릇 잔치’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무리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 마찬가지라 할지라도...

 

 

‘여자의 속 눈썹 처럼 예쁘게 생긴 꽃..’

가늘고 긴 상사화의 꽃수술을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이파리 하나 없는 기다란 연녹색 꽃대 위에 가는 꽃잎과 속눈썹 같은 수술이 얹혀있다.

 

<花葉 不相見 相思草>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슬픔 ! 그 붉음은 강렬한 만큼 더 한층 애달프고,

향기를 알 수 없으니 더욱 애가 타는 꽃! 그 아름다운 자태에도 손길을 주지 못하는 그 무엇...  

 

 

우선 원산지가 상사화는 우리나라인데 반해,꽃무릇은 일본이며, 상사화는 7~8월에 피고, 꽃무릇은 상사화가 지는 9~10월에 핀다. 또한, 꽃은 상사화가 붉은 색이 감도는 연자주색인데 반해, 꽃무릇은 이보다 훨씬 붉은 색깔을 띠며, 꽃잎보다 꽃술이 훨씬 긴게 특징이다.

‘상사화’(相思花)는 꽃과 잎이 서로 보지 못하고 생각만 한다하여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며, 꽃무릇도 이와 비슷한 의미의 '슬픈추억'이란 꽃말을 갖고 있다.


특히, 상사화는 꽃무릇에 비해 번식이 약해 군락지가 드물고 찾기도 힘들어 쉽게 접할 수 없는 꽃이다


 

 

 

상사화는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꽃'이라 하여 '잎은 꽃을, 꽃은 잎을 서로 그리워한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견우ㆍ직녀보다 더 가련한 꽃으로, 꽃과 잎이 서로 달리 피고 지는 모습이 인간세계에서 서로 떨어져 사모하는 정인들 모습과 같다고 해 불리게 된 고유이름, 꽃말 또한'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이 꽃무릇은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왔다가 단풍이 들 무렵 조용히 꽃잎을 접는다.

 

전설에는 옛날 한 스님이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 스님은 날마다 여인을 그리워했지만 스님의 신분으로 여인을 만날 수 없어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었단다. 그 자리에 꽃이 피고 잎과 꽃이 서로 교차하면서 피고 졌는데 이 꽃을 상사화라고 불렀단다

 

 

 

가을을 부르는 찬란한 색중에 정염의 꽃무릇이 하나이다.

이파리 하나 없는 기다란 연녹색 꽃대 위에 가는 꽃잎과 실타래 같은 수술이 서로를 섞어 붉은 화관을 이루는 꽃무릇... 가녀린 꽃대 하나에 의지해 툭툭 터져 갈라진 꽃송이는 가볍게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이파리 하나 없는 기다란 연녹색 꽃대 위에 가는 꽃잎과 속눈썹 같은 수술이 얹혀있다.

꽃무릇은 상사화와는 다르지만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보통 상사화로 불리는 이유다. 슬픔을 머금은 듯 고요한데... 아무 말이 없는 꽃무릇 사이로 사람들과 잠자리들만이 분주하다.

 

 

불갑사에서 오른편 등산로(용천사 방향)를 택하면 아담한 저수지를 만난다

물론 이곳 저수지 주변에도 꽃무릇이 무성하지만, 이미 꽃이 져버린 녹색 대공만 허공에 걸려있다 

 

 

불갑사 저수지를 지나서 산으로 오르는 숲길

안내판에 이곳이 ‘참식나무 북방 한계지대’이며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112로 지정되어 있다기에 휘둘러보지만 잎이 두껍고 타원형으로 생겼으며 상록활엽수인 참식나무는 찾기 힘들고, 단풍나무와 신갈나무가 대부분인데, 간혹 비자나무도 눈에 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눈에 안 띈다’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는 걸까? 군락지를 찾아보는 걸 단념하고 산행을 재촉한다.

2시까지 내려오라는 산행 마감시간이 은근히 발걸음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풍천장어에 복분자를 먹기위한 고육지책인데 뭐~~~ 서두르자!!

 

 

이미 꽃은 지고 꽃대만 앙상한 등산로... 산책로를 연상시킴은 등산객들의 신발이 운동화, 심지어는 샌들까지 눈에 뜨이니 당연할 것이다. 30분쯤 서서히 오르다 보면 해불암에 다다른다. 

 

 

해불암(海拂庵)

중국에서 서해바다로 떠내려온 불상을 모셨기 때문에 '海佛'을 이름으로 삼은 암자로, 서해바다까지 펼쳐지는 풍광이 일품이다.


명찰이 곧 명산이라는 얘기가 있듯이 우리나라 명산에는 모두 명찰을 품에 안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가야산 해인사, 영축산 통도사... 아마 우리나라의 산은 유서 깊은 사찰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모양이고, 그래서인지 사찰에서는 나무 한그루에서 풀 한포기, 바위까지 가꾸면서 치산(治山)을 해 오고 있다.

불갑사도 그 동안 정성들여 꽃무릇을 가꾸어 왔으니, 부속암자인 해불암도 예외일 수 없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섶에는 꽃무릇이 마지막 생명을 불꽃처럼 사르고 있다


 

 

해불암에서 정상까지는 약 300m 거리에 불과하지만, 줄곧 가파른 오르막이다.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꽃무릇 군락을 지나면, 한 호흡 고르며 쉬어 오르라 지자체에서 만들어준 나무계단이 아직 때도 안탄 채로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정상은 관을 쓴 것 같다하여 관모봉(官帽峰) 또는 연꽃 열매 모양같다하여 연실봉(蓮實峰)이라 부르고 있으나, 자자체에서 설치한 표지석에 연실봉이라 적고 있으니 연실봉으로 부르는게 옳겠지? 

  

 

정상은 수십명이 둘러 앉아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암봉이다

일행분들이 챙겨온 포도알갱이의 새콤달콤함을 맛보고, 얼음 막걸리도 땡기지만 참기로 한다. 정상까지 가져오느라 고생했을텐데... 행여 부족하면 안되겠지? 암~ 안되고 말고... 

 

 

'어! 저기 산도 있네?'

언젠가 대구의 학교법인에서 정읍에 있는 금광을 인수한다고 하기에 현지 실사를 나간적이 있다

그때, 김제평야를 처음 밟아본 일행중 한명이 광활한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를 바라보며,  언저리에 외롭게 솟은 구릉을 바라보며 내 뱉은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한참을 껄껄거린 일이 있는데...

 

저 앞에 보이는 고창쪽 들녘도, 산은 산이로되 산 답지 않은...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다

 

 

불갑산의 3대 명승 중의 하나인 연실봉에서 내려다보는 서해바다의 풍광..

참고로 다른 명승은 운굴폭포, 용소의 기우제란다... 두곳다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었다 

 

 

정상에서 장군봉방향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벽이 제법 높아 조심스러우나 등산로 폭이 넓어 위험하지는 않다 

 

 

암릉에서 발견한 포토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바위 터널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또 하나의 다른세계~

 

 

암릉에서 바라본 정상인 연실봉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자극한다. 들판에는 지지배배 짓는 참새들이 익어가는 알곡을 쪼아대며 허기를 채우고 있고, 높고 높은 푸른 창공을 유영하는 고추잠자리와 나비들도 모두 우아한 날개짓을 하며 부산해졌다. 나 또한 어느새 서늘해진 바람 가슴에 안고 바쁘게 산길을 거닌다

 

 

 

장군봉에서부터 등산로는 또다시 육산으로 변한다

떡갈나무, 싸리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간간히 신우대도 보인다 

 

 

덕고개

대부분의 충청도 산을 오르다보면 능선 곳곳에서 정자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도 충청도 권인가?

일행중에 남겨온 얼음막걸리가 있다기에 한잔 청해 마셨는데,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 정도로 시원하다

 

 

불갑사

우리나라 최초의 백제 불교 해상유입설과 관련이 있는 절로서,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가 중국의 동진을 거쳐 법성포를 통하여 백제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한편은 도선이 도갑사·봉갑사·불갑사 등 호남 3갑(甲) 가운데 하나로 창건하고 그 중 불사의 으뜸이라 하여 佛甲寺라 했다고도 한다. 대웅전과 팔상전 등 몇 개 건물을 제외하고는 새로 지은 지 얼마 안되었는 지 단청도 아니 한 채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

 

빛 바랜 단청이 세월의 흐름을 대변하고, 연꽃과 국화 모양을 한 문짝이 화사하다.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법당과는 달리 부처님이 정면을 보지 않고 옆면을 보고 앉아 있다. 이 건물은 용마루 한가운데 귀면 형의 寶珠를 얹은 것이 특색이다.

  

 

 

하산길 절 입구 일주문에선 풍물놀이가 한창이다

아마 오늘이 축제의 마지막 날??? 풍물시장도 손님들로 넘치고... 

 

 

 

오랜 세월 이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이해인 수녀님의 '상사화'란 시의 한구절을

오늘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해준 집사람에게 바치며 오늘 산행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