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남산(南山, 393.6m) - 가래산(177.2m) - 대묘산(大墓山, 216.1m) - 금산(錦山, 260.9m)
산 행 일 : ‘26. 7. 4(토)
소 재 지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일원
산행코스 : 동부주공아파트→남산→가래산(생략)→대묘산→괴산운동장→금산→동인초교→괴산문화예술회관(소요시간 : 9.82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괴산‘ 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남산·가래산·대묘산·금산을 오래내리는 여정이다. 괴산군은 이 산들과 주변 명소를 엮어 ’주민행복 공원‘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처럼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산책코스라는 부연 설명까지 달았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열거한 산들의 정상까지 답사하려면 산책이 아니라 등산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09 : 20. 들머리는 ‘동부주공아파트’(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15km쯤 들어오면 ‘괴산읍’이다. ‘동진교차로’에서 빠져나와 ‘괴강로(1.5km)’와 ‘읍내로(1km)’를 연이어 타고 내려오다 ‘남산대교’를 건너면 ‘동부주공아파트’에 이른다.

▼ ‘대구 산이조치요’ 번개팀의 궤적을 조금 변경해서 걸었다. 볼거리가 없는 ‘가래산’을 빼는 대신 남산의 정상을 다녀왔다. 함께 간 회원들 일부는 ‘황정산(333.5m)’을 추가하겠다며 ‘광덕2구 마을회관’ 앞에서 내리기도 했다.

▼ ‘남산1길’을 따라 남진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동부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신성미소지움, 지안스로가 등 아파트촌 앞을 지나간다. 오른쪽에는 ‘성황천’이 흘러간다. 성황천(城隍川)은 괴산군 사리면의 수암리에서 발원하여 이곡저수지를 지나 동쪽방향으로 흐르다 괴산읍 동부리에서 동진천으로 합류하는 14km 길이의 지방하천이다.

▼ 09 : 25. ‘지안스로가아파트’ 단지가 끝나면서 산길이 열린다. 괴산의 명산이니 이정표(남산등산로 1.5km)와 두세 개의 안내판은 기본, ‘주민행복공원’이란 브랜드에 걸맞게 흙먼지털이기까지 설치해 놓았다. 참고로 소백산맥이 지나가는 괴산은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지는 산의 고장이다. 산악인들은 이중 35개를 뽑아 ‘괴산 명산’이라 불러왔다. 최근에는 연어봉(연풍), 사랑산(청천), 남산(괴산읍), 칠보산(청안), 배미산(문광) 같은 숨은 명산 11곳을 추가해 ‘괴산 46 명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 주민행복공원은 이름 그대로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산책코스다. 괴산읍 도심을 한 바퀴 도는 모양새인데, 총 8.5km를 숲내음길, 하늘바람길, 솔향기길, 여울소리길 등 4개 코스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 가운데 ‘숲내음길’은 ‘남산’의 산림자원을 활용한 코스로 생태학습장과 힐링산림욕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선지 남산의 정상으로 올라가지는 않고 임도를 따라 산허리를 헤집고 있었다.

▼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남산 정상으로 곧장 치고 오르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초입의 얼마간만 가파를 뿐 임도는 걷기 딱 좋게 이어진다.

▼ 09 : 32. 잠시 후, 이정표가 ‘성황천변(문무APT)’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 ‘주민행복’이란 이름에 걸맞게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작은 공터라도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도심공원처럼 꾸며놓았다. 벤치나 정자는 물론이고 주민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운동기구까지 배치했다.

▼ 09 : 36. 남산(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앱(App)이 숲내음길 안내도가 있던 들머리에서 이곳까지를 0.7km라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함께 살펴봤던 이정표의 거리표시는 어찌 된 일일까? 당시 이정표는 ‘남산등산로’까지의 거리를 1.5km로 적고 있었다.

▼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파르다. 아마 경사(傾斜)가 50~60도는 넉넉할 것 같다. 혹자는 이런 지독한 가파름을 일러 ‘산이 허리를 곧추세웠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내겐 ‘코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얼마나 경사가 심했으면 흙냄새가 코로 스며들 정도로 코가 땅에 닿게 허리를 굽혔겠는가?

▼ 09 : 40.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가파른 침목계단의 끄트머리서 만나는 쉼터가 반갑기 그지없다.

▼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아까보다 더 가파르지 않나 싶다.

▼ 09 : 47. 그런 오르막의 끝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쉼터를 겸할 수 있는 고마운 시설이다. 하지만 앉을 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흠이라 하겠다.

▼ 난간에 서자 괴산 시가지가 발아래로 깔린다. 괴산 군청이 자리하고 동진천 주변에는 국민체육센터와 종합운동장이 있다. 연무 탓에 희미해졌지만 괴산읍을 감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 출신 선답자의 눈을 빌어본다.<동부교차로 뒤편으로 중원대학교 골프장이 보인다. 좌에서 우로 한 바퀴 당겨서 살펴본다. 송인산, 쪽지봉, 보광산, 수양산. 괴산군청 뒤 왼쪽으로 설우산, 오대산, 보현산, 가막산. 오른쪽은 갑산. 맨오른쪽은 중원대. 그 오른쪽은 상봉. 고양봉이 있다.>

▼ 전망대를 지나서도 산길은 여전히 가팔랐다.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행복은 그 다음 산 너머에 있다더라’고 했던가? 정상이려니 하고 올라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 10 : 02.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에야 능선(삼거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남룡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으로, 정상은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 10 : 05. 기세를 확 떨어뜨린 산길을 잠시 걷자 드디어 남산(南山, 393.6m) 정상이다. 그런데 누각형의 정자가 낯선 편액을 달았다. ‘○○亭’이 우리네 귀에 익숙한데도 굳이 ‘남산전망대’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뭘까?

▼ ‘정상석’은 삼각점(충주 2)과 함께 정자 앞에 세워놓았다. ‘남산’은 흔하디흔한 지명이다. 서울 남산, 경주 남산을 비롯해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충주만 해도 남산이 있다. 대부분 도성이나 도심의 남쪽에 자리해 그렇게 불리는데, 괴산의 남산도 시가지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 이층으로 오르자 일망무제의 조망의 펼쳐진다. 괴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 가운데 하나이니 괴산시가지는 기본. 시선을 조금 비틀면 중원대학교와 산업단지가 놓여있다. 연무 때문에 흐릿하지만 주변 산군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이번에도 현지인들의 시선을 빌어본다. <좌측으로 보광산, 설우산. 멀리 가섭산, 국망산, 보련산, 북동쪽으로 성불산, 박달산이 멋진 산너울을 그리며 유장하게 자리한다. 동쪽 방향으로는 철탑이 있어 조망이 조금 간섭을 받는데 조령산을 그려보고 남쪽으로 군자산, 남군자산이 이 부근의 대장 역할을 하듯 우뚝 솟아 있다. 산불 감시탑 뒤 남서쪽에는 사랑산, 가령산이 아련히 펼쳐진다.>

▼ 정상의 산불감시탑 아래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곧장 남진하면 황정산(333.5m)을 거쳐 문광교회(문광면 광덕2구)에 이르고, 동진하면 오봉산(412.4m)과 매내미재, 등잔봉, 천장봉을 지나 괴산호변의 ‘산막이옛길’을 만날 수 있다.

▼ 10 : 16. ‘능선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남룡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까 지안스로가아파트에서 올라오던 때만큼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어찌나 가파른지 곧장 내려가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고도를 낮추어간다.

▼ 10 : 29. 그런 내리막이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안전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아담하지만 돌탑까지 쌓아올렸다.

▼ 10 : 34.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자 울창한 잣나무 숲이 맞는다. 숲에는 수령이 20-3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가득했다. 군락도 꽤 너른 편이다. 그 숲길을 걷자니 온몸으로 퍼지는 송진 내음에 황홀함마저 느끼게 된다. 남산을 오르면서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잣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효과 덕분일 것이다.

▼ 그런 좋은 여건을 지자체가 놓칠 리가 없다. 잣나무 그늘 아래에 방갈로와 평상, 벤치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잣나무쉼터’를 만들어놓았다. <나의 가장 좋은 방, 언제든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응접실은 바로 집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그곳에는 햇빛도 거의 닿지 않아 아주 보드라운 이끼 카펫이 깔려 있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산문집 ‘월든’에서 묘사한 숲이 연상되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 10 : 36. 잣나무쉼터 아래 사거리. 이정표(남룡사↑/ 자연학습장→/ 쉼터←/ 정상↓)가 가리키는 자연학습장 방향으로 간다.

▼ 10 : 39. 100m쯤 더 걷자 ‘녹차 밭’을 뜨락삼아 지어놓은 전망대가 얼굴을 내민다.

▼ 이곳에서의 전망도 괜찮은 편이다. 아까 정상에서 바라보던 북쪽 풍경이 여과 없이 펼쳐진다. 그저 낮아진 고도에 맞추어 시야가 조금 좁아졌을 따름이다.

▼ 하산길은 녹차 밭을 오른쪽에 끼고 내려간다. 초입에 숲내음길 이정표(하산로 500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 10 : 45. 잠시 후 남산촌의 ‘남산길’로 내려섰다. 이어서 150m쯤 걷다 ‘성황교’를 건넌다. 하나 더. 주민행복공원의 ‘여울소리길’을 걷고 싶다면 다리를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나있는 ‘오천자전거길’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징검다리를 이용해 ‘동진천’을 건너야만 한다. 필자는 그냥 ‘성황교’를 건너기로 했다. 장마철이라서 징검다리가 물에 잠겼을지도 몰라서이다. 참고로 ‘여울소리길’은 동진천과 성황천이 만나는 괴산시내 끝자락에서 시작된다. 낮은 야산과 농작물이 자라는 밭 사이로 난 1차선 임도의 산책로이다.

▼ ‘성황교’는 페튜니아(Petunia)로 곱게 단장되어 있었다. 개화기간이 길어 공원이나 화단조성에 빠지지 않고 이용되는 일년초이다.

▼ 성황천이 동진천으로 합류되는 두물머리에는 ‘오작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견우와 직녀를 잇던 설화 속 오작교처럼 단절된 공간을 유기적으로 묶어내는 ‘소통의 플랫폼’이라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지역 고유의 문화가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복합 감성공간이라고도 했다.

▼ 3개의 제방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세 갈래 다리를 놓고 각각 문화의 길, 사람의 길, 자연의 길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을 붙였다. 세 다리가 함께 만나는 곳에는 ‘동진여울정’이란 팔각정을 배치했다. 동진천과 성황천의 시원한 물소리(여울)를 수직적으로 들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단다.

▼ 10 : 52. 200m쯤 더 걷다가 이번에는 ‘제2괴산교’를 건넌다. ‘동진천’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도 역시 페튜니아(Petunia)로 곱게 단장되어 있었다. 참고로 ‘동진천(東津川)’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에서 발원하여 괴산읍 동부리에서 성황천를 보탠 다음 대덕리(괴산읍)에서 ‘달천’으로 흡수된다. 괴산 유기농엑스포광장과 지척으로 괴산의 대표축제가 펼쳐질 때면 축제장이 되기도 한다.

▼ 10 : 55. 다리 건너. 회전교차로 북쪽 입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이어서 ‘괴강로’를 따라 북진한다.

▼ 이즈음 만나게 되는 괴산군의 문자 조형물. 산 좋고 물 맑은 산하, 그리고 지역 특산물인 대학찰옥수수와 청결고추를 배경으로 삼았다. 그런데 매년 축제까지 열고 있는 ‘감자’는 왜 빠졌지?

▼ 11 : 00. 동부교차로 앞 사거리.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중부로(34번 국도)’의 ‘동부육교’ 조금 못미처에 있다.

▼ 사거리 조금 못미처. 오른쪽으로 갈려나가는 ‘임도’ 초입에 진행방향표시지가 놓여있다. 괴산 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산군(山群) 중 하나인 ‘가래산(177.2m)’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0.6km만 더 걸으면 다녀올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산길이 무척 거칠다는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특별한 볼거리나 얘깃거리도 없다는데 굳이 올라가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사거리 맞은편에 있는 ‘카페 몽도래’로 간다. ‘옥수수 소금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이어서 ‘서진연립’ 앞마당을 스치듯 지나 ‘문무로’로 내려선다. 참! 여기서 ‘몽도래’는 프랑스어가 아니다. 한자로 ‘夢圖來’라고 쓰며 ‘꿈을 그리러 온다’는 뜻을 품었단다. 하나 더. 괴산군에서는 폐시설과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몽도래 언덕’이라 이름붙인 다음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벤치마킹했다고나 할까? 궁전모텔은 창업보육센터와 공연연습장,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스타트업파크’로 바뀌었고, 농협 양곡창고는 ‘카페 몽도래’와 공연장·전시장으로 꾸몄다.

▼ 11 : 04. ‘서진연립’의 축대를 오른쪽에 끼고 ‘대묘산’ 임도로 올라간다. 초입에 ‘몽도래 언덕배기’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 몽도래 언덕배기. 카페인 듯 한데 문이 닫혀있어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참! 위에서 얘기한바 있는 ‘몽도래 언덕’에 포함된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초입의 입간판도 ‘몽도래 사랑방, 아카데미’라고 적고 있었으니 말이다.

▼ 몽도래에서 장식용으로 놓아둔 화분. 어떻게 하면 이렇게 키울 수 있을까?

▼ 11 : 07. 괴산군 산불대응센터. 산불 발생 시 상황 전파, 진화 인력·장비 운용, 현장 통합지휘와 유관기관 공조를 맡는 산불 초동대응 거점이다. 현재 산림청 42개소, 지자체 137개소 등 모두 179개소가 전국에 구축돼 있다.

▼ 산불대응센터 옆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에 ‘♡’ 모양의 예쁜 터널을 만들어놓았다. 능소화 넝쿨이 터널을 둘러싸게 해 한층 더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 산길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길 주변은 조림의 흔적이 역력했다. 맞다. 초입에 ‘2020년 생활환경숲 조성사업’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 ‘이웃 사랑, 행복 나눔’이라고 했던가? 괴산 군민들은 사랑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포토죤까지도 사랑을 듬뿍 품었다.

▼ 11 : 16. ‘대묘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능선에 올라섰다. 삼거리인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정상’에 이를 수 있다. 반면에 ‘개심사’는 왼쪽이다. 정상을 살펴본 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다.

▼ 능선을 따라 ‘대묘산’ 정상으로 간다. 역시 느긋한 오르막길이다.

▼ 11 : 18. 채 100m도 못 걸었는데 ‘대묘산(大墓山, 216.1m)’ 정상이다. 참나무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뿐 정상은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지명에 대한 유래나 설화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름처럼 커다란 무덤이 이 부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유래조차 전해지지 않는 자그만 산이어서인지 ’정상석’은 세워놓지 않았다.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임을 눈치 채게 해주는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먼저 다녀간 산악인들이 매달아놓은 리본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11 : 22.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개심사 쪽으로 간다. 이정표는 없지만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이라고 보면 되겠다.

▼ 이 구간에도 포토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액자 안에 남산과 함께 인물을 넣으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도 있겠다.

▼ 개심사로 내려가는 길. 길 양쪽으로 단풍나무가 나열해 있어 붉게 타오르는 가을에 오면 눈이 호사를 누릴 수도 있겠다. 개망초 꽃으로 한가득인 묵밭들 덕분에 지금도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 11 : 32. ‘개심사’에 이른다. 개심사(開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자그마한 전통사찰이다. 극락보전을 주 법당으로 하며 명부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1935년 쓰인 ‘개심사기’에 의하면 괴산읍 칠성면 두천리에 있던 도덕암이 폐사되자 현재의 개심사 터에 전각을 짓고 도덕암에 있던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2구를 옮겨왔다고 한다. 하나 더. 개심사를 들르지 않고 ‘홍범식 고가’로 내려갈 수도 있다. 사찰 입구의 화장실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도중에 ‘문화쉼터’에서 한반도 모양의 ‘평화통일기원탑’을 만나게 된다.

▼ 경내로 들어서자 ‘극락보전’이 널디너른 품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지어진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 전통사찰 건축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았다. 안에는 충북 유형문화재인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 마당에 서면 괴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높고 낮은 건물들을 품은 시가지와 이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초록빛 능선들이 펼쳐진다. 세속과 사찰의 경계가 나누어지지 않는 풍경이라 하겠다. 그래서 절의 이름을 ‘마음을 여는 절’이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 11 : 39. 개심사를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홍범식 고가’가 얼굴을 내민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에 항거하여 자결한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 1871-1910) 선생의 생가이자 임꺽정의 저자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1888-1968) 선생이 자란 곳이다. 2002년 괴산군에서 매입 2008년까지 안채·사랑채·광채 등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없어진 건물(4동)과 화장실을 다시 세웠다.

▼ 일제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국권을 빼앗는다.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대사헌 송병선, 시종무관 민영환 등 여러 대신과 선비들이 죽음으로 항거했다. 금산군수 홍범식도 그중 하나다. 홍범식은 아들 홍명희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유훈을 받은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해 끝내 변절하지 않았다. 훗날 홍명희는 자식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홍범식의 아들’이다.>

▼ 왼쪽 두 번째 건물인 ‘사랑채’를 만난다. 홍명희가 가장 왼쪽 방에서 3·1운동을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3·1운동이 일어나 1,500여 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 일로 홍명희는 투옥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 중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는 정면 5칸에 측면 6칸의 ‘ㄷ’자형으로, 일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해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다.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이라고 한다.

▼ 11 : 46. 이젠 ‘괴산보훈공원’을 둘러볼 차례이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차도(역말길)를 따라가면 된다. 주민행복공원의 ‘솔향기길’을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솔향기길(1.5km)은 홍범식 고택, 개심사, 보훈공원과 소나무 숲길을 활용한 문화학습 코스이다.

▼ 11 : 49. 개심사 갈림길. ‘솔향기길’도 이곳에서 둘로 나뉘고 있었다. 도로 왼쪽 산비탈에 ‘보훈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있다. 앞에 보이는 터널을 통과해서 가는 방법도 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 필자는 돌계단을 이용해 능선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잘 꾸며놓은 광장이 내려다보인다. ‘건곤감리마당’이 아닐까 싶다.

▼ 궁금증을 배기지 못하고 내려가 봤다. 좌우로 6.25 참전용사 동상과 전차를 배치했다. 또한 산비탈을 깎아 벽을 만들고 순국선열이란 어떤 분들인가요? 나라꽃 무궁화 이야기, 태극기의 유래 등 다양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1882년 5월 22일 조선이 미국과 조·미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역관 이응준이 만들어 계양한 것이 최초의 태극기였다나?

▼ 추모탑이 몰려있는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팔랐다. 길지는 않지만 등산에 가까운 고단함이 요구된다.

▼ 11 : 54. 보훈공원은 군민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괴산에 흩어져 있던 ‘무공수훈자공적비’, ‘베트남참전탑’, ‘6.25참전공적비’ 등을 이전하고 호국영령의 상징인 ‘충혼탑’과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열탑’을 새롭게 건립하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 ‘충열탑’은 괴산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65위의 넋을 담았다. 1919년 3월 1일. 일본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만세운동을 펼친 지 107년이 되었다. 이곳 괴산에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3.1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권동진, 1910년 한일강제병합소식에 자결한 홍범식 등 손가락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가 많다.

▼ 11 : 59. 탐방로는 이제 보훈공원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간다. ‘솔향기길’이란 이름에 걸맞게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걷게 된다.

▼ 12 : 04.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덧 절개지(切開地) 상부에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이른다. 난간에 서자 동진천과 종합운동장, 괴산군탄생 600주년 기념공원 등으로 수놓인 괴산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뒤돌아본 절개지(切開地). 보훈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주민행복공원 안내도와 솔향기길 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 12 : 07. 솔향기길은 하천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다 ‘세월교’로 동진천을 건넌다. 하지만 필자는 절개지 맞은편에 있는 ‘수진교’를 건넌 다음 ‘종합운동장’으로 갔다. 어느 코스를 이용하더라도 동진천 둑길을 걷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 언론은 동진천변을 ‘2026 괴산빨간맛페스티벌’의 주 무대로 소개하고 있었다. 사호정교부터 미디어파사드, 음악분수, 오작교까지 이어지는 왕복 3.3km 구간에 꽃양귀비와 작약, 금계국, 마리골드, 꽃잔디 등을 식재해 알록달록 꽃물결을 이룬다고도 했다. 6월 초까지 꽃이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했는데 벌써 다 져버린 모양이다.

▼ 수진교 건너에서 ‘괴산산막이시장’ 거리가 시작된다. 3·1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곳이다. 충북에서 처음 일어났고, 이후 충북 전역으로 퍼졌다. 이를 알리려는 듯 초입에 ‘만세운동유적비’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거리를 둘러보지 않은 채 ‘하늘바람길’이 시작되는 ‘종합운동장’으로 갔다. 이때만 해도 산행을 마치고 점심도 먹을 겸해서 찾아볼 요량이었다. 결국에는 시간이 부족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 동진천 둑길(동진천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형미 넘치는 멋진 다리가 보인다. ‘솔향기길’이 동진천에 놓인 ‘세월교’를 지난다고 했는데, 저 다리를 이르는지도 모르겠다.

▼ 12 : 10. ‘Cafe J&S’ 앞. 왼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간다. ‘솔향기길’의 종점이자 ‘하늘바람길’의 시점인데, 초입에 하늘바람길 이정표(터널상부 쉼터 400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12 : 13. 이후부터는 ‘하늘바람길’을 따라간다. 종합운동장 철망 울타리를 끼고 잠시 걷다보면 어느덧 산길이 열린다.

▼ 12 : 15.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능선 삼거리. ‘하늘바람길’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간다. 반대편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는 ‘괴산군탄생 600주년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로 ‘괴산’의 역사는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잉근내군(仍斤內郡)이었다. 신라의 괴양군(槐壤郡), 고려의 괴주(槐州)를 거쳐 조선 태종 13년(1413)부터 괴산(槐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의 ‘괴산군’은 조선시대의 괴산군에 연풍현, 청안현, 청주의 일부, 충주의 일부를 합쳐 만들었다.

▼ 괴산군 탄생 600주년 상징탑. ‘괴산, 미래, 세계의 중심’을 주제로 높이 13m의 탑을 쌓고, 타임캡슐을 만들어 각 분야의 희망 손편지 등을 안치했다. 탑은 대체로 부드러운 곡선형 외관을 보인다. 정면 중앙부 6개 링과 하단부 4단 돌탑은 괴산군 600년 역사에 다가올 400년을 더한 괴산 1000년의 과거와 미래를 표현했다.

▼ 이색적인 조형물이 집사람의 동심을 자극했나보다. 냉큼 앉더니 포즈부터 잡고 본다.

▼ 12 : 24. 서부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새동네길)’.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맞은편 능선길을 따라 진산 정상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새동네길’을 만난다.

▼ 12 : 26. 잠시 후, 포장 임도가 끝나면서 소공원 형태의 쉼터가 나타났다. 도중에 만난 이정표는 이곳을 ‘터널상부 쉼터’로 표기하고 있었다.

▼ 안내판이 지금 우리가 ‘하늘바람길’을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길이는 3km, ‘진산’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동네 뒷동산을 걷는 느낌과 싱그런 풀잎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준다.

▼ 발아래로 ‘서부길’이 지나간다. 그곳에 ‘동산터널’이 뚫려있고, 자연스레 사람들은 이곳을 ‘터널상부’라고 부른다.

▼ 쉼터 끄트머리서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산길샘나들이(앱)가 가리키는 왼쪽으로 진행했다. 길도 통나무계단이 깔려있는 왼쪽이 더 또렷했다.

▼ 쉼터를 지나면서 길이 가팔라진다. 3일 후면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소서(小暑)’이다. 하지만 기상청은 ‘폭염 주의보’를 내린지 이미 오래다. 오늘도 30도를 넘긴다고 했다. 거기다 장마철까지 겹쳐 습도까지 덜컥 올려놓았다. 조금만 가팔라도 땀이 폭포수를 이루듯 쏟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 바람하늘길은 ‘금산(錦山)’을 오르내리는 여정이다. 이 금산을 동국여지승람은 괴산의 진산(鎭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진산은 ‘산이 사람을 키워준다(山主人)’는 풍수사상을 품었다.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영험한 땅기운은 그 땅의 사람들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산자락에는 유난히도 많은 무덤이 들어서 있었다.

▼ 능선은 곳곳에서 시야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괴산 읍내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동진천을 중심으로 관공서와 상가,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 12 : 49.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길고도 가파르게 올라가기도 한다. 침목계단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놓여있다.

▼ 12 : 54.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에야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에 올라설 수 있었다. 선답자들 중 일부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민행복공원 둘레길’ 안내도에 ‘진산’으로 표기해 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도계가 241m를 찍고 있으니 진산 정상은 분명 아니다.

▼ 12 : 56. 체육쉼터를 지난 길은 고도를 213m까지 낮추기도 한다. 이정표(진산등산로 1km/ 터널상부쉼터 1km)가 아직도 한참을 더 걸어야 산행을 끝마칠 수 있다고 알려준다.

▼ 숲속 저만치 하늘나리가 피어있었다. 하늘을 향해 피는 꽃, 참 멋진 자태이다. 새색시 볼처럼 불그레한 색상도 아름다움을 넘어 신기로울 정도다.

▼ 안부를 지난 산길이 엄청나게 가팔라진다. 거기다 길기까지 하다.

▼ 13 : 03. 숨 고름을 두어 번이나 한 뒤에야 ‘금산(錦山, 260.9m)’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이 ‘진산(鎭山)’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선지 괴산군청에서도 금산이 아닌 진산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아무튼 20평 남짓한 공터에는 이동통신 기지국이 들어서 있었다.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선답자들이 남겨놓은 표식조차 없었더라면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 13 : 06. 능선 탈출지점. 올라왔던 반대(동쪽)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100m 조금 못되게 내려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능선을 벗어난다. 이정표는 없지만 길이 또렷해서 헷갈릴 일은 없겠다. 하나 더. 정상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하늘바람길은 우리와는 달리 북진하고 있었다.

▼ 산자락을 빠져나오자 사창골 임도가 맞는다. 폐 농장이 농촌지역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한적한 길이다.

▼ 13 : 17. ‘동인초등학교’을 만난 다음에는 ‘서부길’을 따라 동진한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남산’이 놓여있다.

▼ 13 : 20. 잠시 후, 이번에는 ‘읍내로’를 따라 북진한다. 왕복 6차선의 간선도로이지만 보도가 널찍하니 나있어 안심하고 걸어도 된다.

▼ 70m쯤 더 걸으면 ‘금산삼거리’. ‘천년송(千年松)’과 ‘도로원표’가 있어 잠시 구경하고 간다. 하나 더. 이곳은 ‘하늘바람길’의 종점이자 ‘숲내음길’의 시점이기도 하다.

▼ 13 : 26. 괴산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오늘은 9.82km를 4시간에 걸었다. 대부분이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제법 빨리 걸은 셈이다. 특히 오늘 같은 무더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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