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9코스(만리포해변 - 개목항)

 

여 행 일 : ‘25. 5. 24()

소 재 지 :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일원

여행코스 : 만리포해변국사봉천리포해변수망산의항해변태배전망대개목항(거리/시간 : 13.4km, 실제는 14.41km 4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들머리는 만리포해변(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를 타고 만리포 방면으로 47km쯤 들어오면 만리포해수욕장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태안 69코스) 안내도는 워터스크린이 있는 중앙광장 근처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 만리포해변에서 개목항까지 의항반도(서해바다를 향해 툭 튀어간 반도전체가 의항리이다)를 한 바퀴 돌아오는 13.4km짜리 여정만리포에서 시작해 천리포백리포십리포 심지어는 일리포(구름포)까지 수많은 해변들을 거쳐 가는 눈이 즐거운 구간이다산을 2개나 넘는 탓인지 난이도는 별이 4(5개 가운데)로 분류된다.

 09 : 50. 해안도로(만리포2)을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해수욕장을 왼쪽에 끼고 가는 모양새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대천, 변산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는 곳이다. 그래선지 대규모 시설단지에 충분한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췄다. 하나 더. 서해랑길 69코스는 태안해변길 중 2코스인 소원길을 따라간다. 이곳의 지명이 소원면이기도 하고, 이 코스의 앞바다에서 2007년 기름사고가 발생해, 사고의 피해로부터 어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원의 길이기도 하다.

 이즈음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 뭍닭섬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만리포해수욕장의 숨은 힐링 명소, 섬 둘레에 조성해놓은 해상 인도교와 송림 산책로를 거닐며 아름다운 서해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10 : 02. ‘희망광장 주차장에는 ‘The Ring of Hope(희망의 고리)’라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2007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당시 태안 해안을 찾아 기름 범벅의 모래와 돌을 닦아내던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담은 상징탑이란다. 높이 10m(지름 16m), 사람·바다·자연을 모티브로 희망의 고리를 형상화했으며, 노즐을 갖춘 분수대와 3 LED 수중등이 설치되어 있다.

 시인 박동규의 누가 검은 바다를 손잡고 마주 서서 생명을 살렸는가가 새겨진 찬양시비도 눈에 띈다. 박미라 시인의 만리포 연가도 빗돌에 새겼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 1916-1977)의 송덕비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날의 '만리포'는 장기영의 작품이란다. 1955년 버려져 있다시피 하던 해변을 만리포로 명명하고 서해안 굴지의 해수욕장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장기영(한국일보 사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리포라는 지명은 70년에 불과하다 하겠다.

 10 : 05. ‘짚라인 타워를 지났다싶으면 사거리(이정표 : 만리포해변에서 1.0km). 서해랑길은 오른쪽(천리포1)으로 간다. 왼쪽(같은 천리포1)은 천리포수목원으로 연결된다.

 10 : 06. 20m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왼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란다. ‘노을에 기댄 언덕 펜션에서 세운 입간판의 방향표시를 참조하면 되겠다. ! 30m만 더 가면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나온다는 것도 알아두자. 사고로 고통 받던 지역주민들의 삶, 추위와 악취를 녹인 따뜻함을 보여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전하는데, 악몽에서 기적을 피워내기까지 과정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니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 탐방로는 노을에 기댄 언덕의 뜰을 통과한다주인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그래도 투숙객들의 정서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서 지나가는 게 좋겠다.

 10 : 08.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라간다. 길은 외길 수준이다. 두 번인가? 중간에 길이 나뉘기도 했지만 이정표가 세워져있어 헷갈릴 일은 없다.

 국사봉의 높이는 고작해야 166m(산길샘 앱)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로 레벨에서 산행을 시작하므로 160m 정도를 오롯이 올라서야만 한다. 그것도 1km 구간에서 말이다. 아래 사진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0 : 25.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헬기장(148m)’에 올라섰다. 이정표가 자신은 국사봉이란 이름표를 달았으면서도, 날개에는 아직도 0.2km를 더 가야 국사봉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준다.

 가장자리로 나가자 시야가 터지면서 시원한 서해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천리포해변은 그 바다와 맞물리는 곳에 시위를 당긴 활처럼 들어앉았다.

 길이 뚝 떨어진다. 침목 계단을 나선형으로 깔아 멋스러움을 한껏 자랑한다.

 등산을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이가 있었다.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나쁜 일만 생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도 올라갈 때가 있으면 다음에는 필히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저 가파른 오르막길이 그 증거라 하겠다.

 10 : 30. 또 한 번의 고행 끝에 국사봉(國師峰)’에 올라섰다. 웬만한 운동장만큼이나 널찍한 정상은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로 꾸며놓았다. 벤치는 물론이고 운동기구까지 배치했다. 이정표(만리포해변에서 2.1km)와 태안해변길(2코스, 소원길) 안내도도 눈에 띈다. 하지만 선답자들의 후기에서 봤던 정자는 철거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터지는 서쪽에는 전망대를 배치했다. 조망도까지 설치해 실물과 대조해가며 살펴보는 재미도 더했다.

 전망대에 서자 천리포 해변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하얀 모래밭과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이 장관이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만리포해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모항과 만리포항도 가늠되는데, 그 뒤로 희미하게 나타타는 것은 아마 가의도일 것이다.

 하산은 천리포 방면의 능선을 따른다. 초입부가 조금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 않아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니다. 길은 이내 고와졌다. 경사가 거의 없는데다 보드라운 흙길에는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 흡사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10 : 52. 북쪽으로 진행하다 천리포수목원의 철조망(이정표 : 국사봉에서 0.7km)을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을로 내려선다.

 10 : 54. 민박집과 펜션이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면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에 민병갈 식물도서관이 있다고 했으나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서적까지 뒤적일 정도로 식물에 대한 관심도 없을뿐더러 주어진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쳐야하는 걷기 여행자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학 넘치는 저 목장승은 충청도 토박이인가 보다. 사투리까지 써가며 한껏 너스레를 떨고 있다.

 10 : 56. 도로(천리포1)로 빠져나오면 새말(의항1)’. 간판형의 커다란 조형물이 천리포해수욕장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10 : 58. 탐방로는 바닷가로 나가지는 않는다. ‘섬노을 펜션 앞에서 골목길을 따라 집단시설지구를 통과한다. 그렇다고 천리포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되는데 말이다.

 천리포란 흰 모래가 깔려있는 해변의 길이가 천리(千里)에 이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실제 길이가 천리나 되겠는가마는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 그만큼이나 길게 늘어서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모래 포집용 망사가 둘러쳐진 해변 너머에는 닭섬이 있었다. 섬의 모양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산동반도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북쪽 끝에는 천리포항이 들어섰다. 수산물판매장에서 주민들이 직접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한다니 시간이 있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우럭과 꽃게, 멸치 등 태안지역에서 출어되는 수산물을 멀리 가지 않고도 맛볼 수 있단다.

 남쪽 끝은 뭍닭섬이 장식하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섬 닭섬에 대비되는 지명으로, 육지의 산처럼 붙어있다고 해서 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이 둘은 천리포해수욕장의 자연 방파제 노릇을 톡톡히 해준다.

 철이 일러선지 해수욕장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수많은 캠핑족들이 그 빈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11 : 07. 의항1리 다목적회관. ‘천리포의 원래 이름은 막동이었다고 한다. 고기를 잡던 어막이 많았다는데서 유래했다. 그러다 1955년 만리포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이곳까지 피서 인파가 몰려들었고, 지명도 자연스레 만리포보다는 조금 작다는 의미에서 천리포(千里浦)’가 되었다.

 마을(천리포)을 빠져나와서도 계속해서 천리포1을 따라간다.

 하늘을 가리는 짙은 숲속을 걷게 되는데, 중간에 천리포수목원갈림길(이정표 : 천리포수목원 1.0km)과 구들들갈림길(이정표 : 만리포해변에서 4.0km)을 만나기도 한다.

 왼쪽은 천리포수목원이라고 했다. 식물보호지역이라면서 담장으로 둘러놓았다. 참고로 천리포수목원은 천리포 해변의 산지에 조성되어 있는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이다. 한국이름 '민병갈'이라는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가 설립하고 가꾼 곳으로, 그는 한국에 해군장교로 복무하러 왔다 우연히 들른 태안의 천리포에 매료되어 땅을 매입하고 수목원을 만들었다. 민병갈씨는 한국인으로 귀화해 평생 수목원을 일구다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60ha(18만 평) 규모인 천리포수목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목련, 호랑가시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무궁화 등 15,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11 : 21. 울창한 숲길은 고갯마루까지 이어졌다. 허파가 뻥 뚫리는 듯한 산뜻한 길이지만 대신 조망이나 경관은 별로다. 그러다 고갯마루에서 멋진 전망대를 만났다. 백리포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 저곳 백리포도 천리포처럼 만리포에서 파생됐고 한다. 만리포를 찾아온 피서객들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던 모양이다.

 난간에 서자 조형물의 문구(너의 꿈을 푸른 바다가 응원해)에 걸맞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숲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린 탓에 모래의 질이 가장 으뜸이라는 백사장은 눈에 담을 수 없었다.

▼ 안내판은 백리포 해변을 설명하고 있었다병풍처럼 펼쳐진 송림 사이에 위치한 덕분에 아담한 비밀요새의 느낌을 받는 곳이란다하나 더어느 여행가는 절벽을 양쪽에 낀 백리포해변을 그 유명한 괌이나 사이판의 절벽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그러면서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과 깨끗한 바다그리고 고운 모래를 첫 손가락에 꼽고 있었다.

 11 : 23.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백리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뉜다. 하지만 이정표에 적힌 거리(해변까지 0.5km)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두루누비의 서해랑길 트랙도 백리포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후부터는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이 구간 역시 하늘을 가리는 짙은 숲속을 걷는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에 취해 모처럼의 여유를 부려보기 딱 좋은 구간이다.

 11 : 39. 2차선 도로인 송의로(송현리의항리)’로 내려선다. 천리포해변에서 2.1km쯤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은 백리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이정표를 겸한 조형물은 백리포를 방주골로 적고 있었다. 맞다. 백리포의 원래 이름은 방주골이라고 했다. 옛날 마을에서 빼 짜는 소리가 끝이지 않았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방적골로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방주골로 바뀌었다나?

 11 : 42. 조금 더 걸으면 망산고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사거리이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가면 되는데도, 탐방로는 도로를 벗어나 산속으로 파고든 다음 능선 하나를 오롯이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개목마을(의항2)’ 홍보판이 눈길을 끈다. 꽃게, 바지락, 굴을 특산물로 꼽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린 의항해수욕장의 또 다른 이름이 십리포임을 알게 됐다. ‘만리포·천리포·백리포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십리포 일리포(구름포해수욕장)’도 존재하는 것이다.

 탐방로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비켜난 지점에서 열리고 있었다. 하나 더. 반대방향은 백리포소초가 있는 작은댕골산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알아두자.

 임도처럼 널찍하게 난 길은 느긋한 오름짓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가파른 구간이 나오기도 하지만 수망산까지 별 어려움 없이 올라설 수 있다.

 11 : 55. 수망산(149.6m) 정상에 올라선다. 안내판은 이곳을 망산고개라면서 바라길의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로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도계가 146m를 찍고 있는 걸 보면 수망산 정상이 분명할 것이다. 이정표(의항해변 1.0km/ 천리포해변 2.7km) 수망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안내판의 설명처럼 시야가 탁 트이고 있었다. 69코스의 종점인 개목마을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바다 건너 신두리 사구(砂丘)와 황천리해변 일대의 풍경이 그럼처럼 펼쳐진다.

 하산을 시작한다. 완만하게 올라왔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파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기세를 확 누그러뜨린다. 그리고는 폭신폭신한 흙길이 계속된다.

 12 : 14. 아까 망산고개에서 헤어졌던 송의로로 내려섰다. 도로를 따라왔더라면 금방이었을 것을 능선 하나를 오롯이 넘느라 시간과 노력을 몇 배나 더 쏟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탐방로는 의항해수욕장으로 들어간다. ‘십리포라는 또 다른 이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작고 아담한 해변이다. 참고로 의항해변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의 직격탄를 맞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기름유출사고 당시 가장 먼저 기름이 유입된 곳은 구름포해변이었단다. 그 다음이 의항해변이었다는 것이다. 유출된 기름은 그렇게 일리포에서 만리포까지 차례로 거치면서 태안군 일대 해안가를 덮쳤다.

 해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오히려 환상적이라는 느낌까지 준다. 그 끝에서 화영섬이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나며 화룡점정을 찍는다. 황금빛 모래의 백사장과 쪽빛 바닷물은 123만 자원봉사자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렇게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반대편 해변은 산으로 막혀있다. 만리포를 제외한 나머지 해변들은 대부분 저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해변 양쪽으로 갯바위지대를 낀 산으로 막혀있고, 그 가운데에 활처럼 휘어진 해변이 들어서 있다.

 12 : 26. 해변의 북쪽 끝에서 임도(구름포길)로 올라선다. 하나 더. 의항해변에서 도로(송의로)를 이용해 곧바로 개목항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경우 구름포와 태배전망대, 신너루해변 등 의항반도의 명소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이즈음 탼 한옥비치리조트를 구경할 수 있다. 로컬 콘텐츠를 호텔에 입힌다며 지어놓은 한옥단지로, 2023 12월 로컬커뮤티니호텔 브랜드 어라이브가 전주에 이어 오픈했다. ‘이란 이름은 태안의 사투리라고 한다. 리조트 아래는 2023년 폐교된 소원초등학교 의항분교장이다.

 조금 더 걸으면 이번에는 화영섬이 맞는다. 조선시대 안흥항으로 들어가던 사신들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이 섬에 상륙했는데 그들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환영섬이라 부르다가 화영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12 : 32. 꼬맹이 바위섬은 다가가 볼 수도 있다. 화영섬은 두 개의 독살과 섬 밖으로 안강만 어장을 최초로 개설한 의항마을 10여 가구의 생업을 해결해 주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또랑섬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또랑이 도랑의 사투리이고, 갯도랑은 또 독살을 만들 때 고려할 수밖에 없는 물길이니 말이다.

 화영섬만큼이나 앙징맞은 해변이 섬에 잇대어 있었다. 작은 바위벼랑과 손바닥만 한 몽돌 밭으로 이루어진 해안은 귀엽기까지 했다.

 길은 이제 산속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의항반도를 한 바퀴 빙 돌아 개목항으로 간다. 지역 주민들은 이 구간을 태배길이라 부르고 있었다. 의항리 일대를 한 바퀴 둘러가는 태배길은 바다와 마을이 하모니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다. 중국 시인 이태백이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고 전해질 만큼 오래전 이미 인증 받은 풍경을 따라 아름다운 태안의 해안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12 : 40. ‘구름포 입구. 서해랑길은 해변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른쪽 태배전망대 쪽으로 간다. 참고로 구름포해변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리포에 이어 일리포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하긴 해변 길이가 만리포 해수욕장(3) 1/6 500m쯤 된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숙박시설은 물론이고 야영장과 매점, 식수대,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제격이란다.

 12 : 43. 지금 걷고 있는 이 길(태배길) 2007년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당시 123만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하러 오가던 길이다. 6.5km 6개 구간으로 나눠 순례·고난·복구·조화·상생·희망 등 유류피해 극복의지를 담은 이름을 붙였다.

 태배길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두었다.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태안 해변의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썼다는 오언시를 새긴 빗돌도 눈에 띈다. 先生何日去(선생하일거) 이태백 선생은 어느 날에 다녀갔는지/ 後輩探景還(후배탐경환) 문생이 절경을 찾아 돌아오니/ 三月鵑花笑(삼월견화소) 삼월의 진달래 꽃 활짝 웃고/ 春風滿雲山(춘풍만운산) 봄바람은 구름 산에 가득하구나.

 12 : 53. ‘고난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능선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게 놓여있었다. 그 끄트머리는 전망데크와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초입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팻말까지 세워놓았다. 그러니 어찌 올라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팻말의 자랑처럼 시야가 툭 터지고 있었다. ‘구리미산과 해안절벽, 거기에 구름포 해안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하지만 웃자란 잡목들이 아랫도리를 완전히 잘라먹어 버렸다. 전망대를 조성할 당시 터졌을 시원스런 조망이 어즈버 태평연월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망데크에서 내려오자 이번에는 구름포 해변(雲浦海邊)’ 안내판이 반긴다. 구름포는 모래해변과 좌우의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형이 반달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아랫부분을 구름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하여 구름 언덕 끝자락이라는 뜻의 '구름미(雲山尾)'라고 불린 지역이다. 이후 운산을 운포로, 다시 1996년에 구름포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름포 해변은 구름도 쉬어갈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의항반도의 길이 따라 열전은 이곳 구름포에서 완성된다. 만리포에서 시작해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를 거쳐 이곳 구름포에서 일리포라는 이름으로 대단원을 장식한다.

 계속해서 큰재산(117.3m)’ 서쪽의 임도를 따른다.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길은 이리저리 한없이 꿈틀대며 가고 있었다. 하지만 태안이 간직한 아름다운 풍경이 가는 길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도 없다.

 가끔은 솔숲 사이로 시야가 트인다. 그러자 옥빛 바다와 해송 숲, 해안 절벽의 조화로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해변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모양이다. 해안가 절벽에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13 : 15. 화장실까지 딸린 널따란 광장을 마주한다. 태안해변길 조형물이 2코스인 소원길을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태배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고 있었다. 그 초입에도 이태백의 시비를 세워놓았다. 이태백이 조선 땅에 왔다가 빼어난 절경에 빠져 오랫동안 머물다가 해안가 절벽에 시를 적었는데, 이후부터 주변 일대를 태배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이태백이 쓴 시가 아니라, 이태백이 이곳에서 놀다 갔다(先生何日去)는 얘기를 들은 어느 후인(後輩探景還)이 썼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오해일까?

 13 : 19. 잠시 후 69코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태배전망대에 도착했다. 2007년 태안군 소원면을 검은 슬픔으로 뒤덮은 원유 유출 사고를 기억하고자 만든 공간으로, 폐기된 군막사를 리모델링해 1층은 당시 봉사자들의 눈물겨운 방제활동을 기록한 사진들을 전시하고(지금은 문이 닫혔다), 2층에 옥빛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배치했다.

 전망대는 2010년 국토교통부에서 선정한 전국의 아름다운 해안경관 17곳 중 하나라고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말라는 듯 망원경까지 설치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광활한 서해바다와 칠뱅이섬(7개 섬) 등 아기자기한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뱅이(防夷)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대뱅이, 뚝뱅이, 거먹뱅이, 돌뱅이, 수리뱅이, 질마뱅이 그리고 새뱅이 등 일곱 개의 뱅이섬 전설은 모두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을 품고 있다. 동학혁명 때는 청()과 일본이 자신들이 진압군이라며 서로 충돌하자 칠뱅이섬이 궐기하여 청나라 군대를 바다로 밀어내어 청일 전쟁을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벌어지게 했다는 그럴듯한 전설도 만들어 냈다.

 시선을 조금 비틀자 태배해변이 자신도 보아달라며 고개를 내민다. 반대방향에서는 신두리 해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하나 더. 이곳은 해넘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때만 잘 맞추면 불같이 타오르는 황홀한 낙조의 아름다운 광경도 감상할 수 있단다.

 전망대 주변은 홍보의 장으로 꾸며놓았다. 면마다 판넬 하나씩을 배정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관광 명소들을 소개하도록 했다.

 13 : 24. 종점인 개목항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간다. 길은 더 이상 임도가 아니다.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걸어가야 한다.

 13 : 27. ‘안태배 해변으로 내려선다. 태배전망대가 있는 곳, 즉 반도의 끄트머리를 기점으로 바깥(서해바다) 쪽이 태배’, () 안쪽에 숨듯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안태배이다. 탐방로는 한껏 휘어진 모래사장을 따라간다. 덕분에 태안반도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과 해안의 깨끗함 그리고 하얀 모래사장을 신나게 걸어볼 수 있었다.

 집사람도 같은 느낌이었던가 보다. 조개껍질을 공중에 뿌려대는 그녀는 여전히 꽃띠 소녀였다. 하긴 굴곡진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태안의 절경을 가슴에 담아가는데 이 아니 즐거울 손가.

 뒤돌아본 풍경. 300m 남짓한 백사장과 조용한 바다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뒤쪽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곳에 태배전망대가 있다.

 13 : 33. ‘신너루해변으로 가려면 능선 하나를 오롯이 넘어야 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능선이 나지막한데다 데크길까지 조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넘을 수 있다.

 13 : 35. 안태배와 신너루 해변 중간쯤에 해변길 전망대가 있었다. 안내판은 태배지역과 신두리해변을 지나 멀리 신두리사구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만나게 될 해변길(바라길) 노선을 한눈에 담아 볼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웃자란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13 : 38. 이번에는 신너루 해변이다. 이곳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배후 숲 뒤쪽에 들어선 이태백야영장 때문일 것이다. 하나 더. 신너루해변은 조기와 민어가 많이 잡혔다는 풀아대가 있던 곳이다. 조수간만을 이용한 고기잡이도 성했던지 독살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내만으로 들어선 탓인지 바다는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바다 건너는 원북면, 천연기념물 431호인 신두리 해안사구가 있는 곳이다. 아무튼 바다는 작은 해변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이었다. 파도는 반달 모양으로 육지로 밀려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태안은 해안선을 따라 28개의 해수욕장이 있다고 했다. 꽃지나 만리포처럼 유명한 해수욕장들도 있지만, 그사이 아담하고 한적한 해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하나같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들이다. 오늘은 그런 해수욕장들을 신발에 모래가 들어간 줄도 모른 채 걷고, 그러지 못할 때는 곁눈질이라도 하면서 걸어온 여정이었다.

 야영장 덕분인지 신너루 해변부터는 도로(송의로)를 따라 나갈 수 있었다.

 13 : 45. ‘해상 낚시공원이란다. 바다 위로 다리를 놓고 그 상부에 4동의 돔형 구조물을 배치했다. 숙박이 가능한 펜션으로 문 앞 베란다에서도 낚시가 가능하며, 그게 싫다면 인근 갯바위로 옮겨 낚시를 즐길 수 있다나?

 해상낚시공원 앞에서 작은 고개를 넘는다. 해안선을 따라 길을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넘자 꽤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고기잡이가 개목마을 주민들이 주업이지만 농업도 겸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13 : 57. 펜션이 줄줄이 늘어서있는 마을안길(송의로)을 지나면 소원면과 원북면의 내륙을 향해 푹 파고들어온 만()의 안쪽이다. 개목마을은 그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 개목마을은 재너머 마을로도 불리는지 버스정류장에 재너머라고 적혀있었다. 어디서 재를 넘어온다는 얘기일까?

 탐방로는 이제 바닷가를 따라간다. 월파 방지용 벽에 타일벽화와 조형물을 배치해 볼거리가 풍부한 길로 꾸며놓았다.

 개목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개미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개미목으로 불리던 것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의항(蟻項)’이 되었다. 그후 주민들이 편한 어투로 개목으로 불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조형물은 개목(개미+)의 이미지를 살려 개미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개미도 낚시하는 개목마을’, ‘토끼야 나와라~ 용궁이 가까운 동네’, ‘싸랑합니다~ 연애밀당 1번지’, ‘꽃게야 게 섯거라~ 개목주민 일동 등 해학 넘치는 문장들이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14 : 05. ‘큰재산을 돌아온 길은 개목항으로 들어가면서 긴 여정을 끝낸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의항항으로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항(蟻項)이나 개목 모두 개미와 연관되어 있으니 개의치 않아도 된다. ‘개미 의()’ 목 항()’자이니 이게 곧 개목(개미+)이 아니겠는가. 하나 더. 개목항은 고깃배들이 풍랑을 피해 찾아오던 곳으로, 조기·민어가 많이 잡혔지만 판로가 없어 소금으로 염장해서 팔던 가난한 포구였다. 대처로 나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이용해 신두리까지 나가야만 하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게 간척사업과 도로 건설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서해랑길(태안 70코스) 안내판은 버스정류장(의항포구) 옆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14.41km 4시간 20분에 걸었다. 시간당 4km도 못 걸었으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 국사봉과 수망산을 넘는 산길이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