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44코스(사포마을 버스정류장-곰소항 회타운)

 

여 행 일 : ‘24. 1. 13()

소 재 지 : 전북 고창군 흥덕면 및 부안군 줄포면·보안면·진서면 일원

여행코스 : 사포버스정류장후포마을시아농장줄포만 갯벌생태공원구진마을곰소항 회센터(거리/시간 : 14km, 실제는 15.76km 3시간 35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44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고창·부안 구간의 네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줄포만의 갯벌을 옆구리에 끼고 해제반도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곰소염전 등을 꼽을 수 있다.

 

 들머리는 사포마을 버스정류장(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TG를 빠져나와 23번 국도를 타고 줄포·부안 방면으로 5km쯤 달리다가 신기삼거리(흥덕면 사포리)에서 좌회전, ‘후포로 2km 남짓 들어오면 사포마을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부안44코스) 안내도는 버스정류장 옆에 세워져 있다.

 6개 코스로 이루어진 부안(44~50코스) 구간의 첫 번째 여정. 드넓은 줄포만의 남·동쪽 해안선을 따라 고창에서 부안 땅으로 넘어간다. 길이는 14km, 거리가 짧은데다 평지로 이루어져 난이도는 별이 2(5개 중)로 분류된다.

 10 : 22. 2차선의 찻길인 후포로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 길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진격로이기도 하다. 1894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군수 조병갑을 축출하고 백산 등지에서 머물렀으나 후임 군수의 설득으로 3월 초에 해산했다. 하지만 안핵사 이용태의 횡포가 극심해지자 3 20일경 무장포고문을 발표하고 재봉기를 선언한다. 이게 동학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니 당시 목숨을 걸고 내달렸을 선현들의 뜻을 떠올리며 걸어보면 어떨까?

 10 : 26. 잠시 후 후포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후포리(後浦里) 4개 자연부락(대촌·용머리·후서·후포) 중 하나로 마을 앞에 개가 있다고 해서 뒷개 또는 후포(後浦)라 하였다. 그래선지 북쪽 갯가에는 예전 소금을 굽던 염판도 있다고 했다. 아무튼 이정표(종점 13.7km/ 시점 0.3km)는 버스정류장(후포) 조금 못미처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란다.

 마을 앞. 파도가 넘실거렸을 바다는 이제 들녘으로 변했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드나들었을 돛단배도 지금은 없다. 대신 맹추위에 할 일을 잃어버린 트랙터가 낮잠을 잔다. 기지개를 펼 봄날을 기다리며.

 그 갯벌이 그리운 이도 있었나 보다. 마을 앞에 대하양식장을 지어 옛 향수를 소환시켰다. 이왕이면 당 할머니에게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지냈다는 해신제까지 복원시켰더라면 하는 바람은 나 혼자만의 푸념일까?

 10 : 28. 옛날, 돛단배가 드나들었을 갯고랑은 배수갑문이 떡하니 가로막았다. 참고로 줄포만 깊숙이 들어앉은 후포마을은 예로부터 조운활동이 활발한 포구였다. 내륙에서 산출되는 물산을 집결시킨 후, 선박을 이용해 개성이나 한양으로 운송하던 물류의 전진기지(海倉)였다. 운송되어 온 물자도 후포를 통해 내륙으로 옮겨질 정도로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수로를 건너 후포리에서 신덕리(新德里)’로 들어간다. 이어서 방조제를 쌓아 만든 자그만 들녘을 가로지른다.

 10 : 40. 대단위 목장지대를 지난다. 수북이 쌓여있는 곤포 사일리지로 보아 소를 기르는 게 분명하다. kakaomap 시아농장이라고 적고 있으나 이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떼가 머물렀을 축사는 텅 비어있었다. 소가 없으니 이를 관리할 사람들도 필요 없었나보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적이 가져갈 물건 하나 없겠는가. 사람이 오갈 때마나 사납게 짖어대는 저 개가 증거다.

 길은 이제 나지막한 산릉으로 올라간다. 산이라 해봐야 해발이 50m도 못되고, 대개는 밭으로 개간한 낮은 구릉지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다. 구름처럼 뭉실뭉실한 지형이다.

 이후부터는 구릉지 위를 걷는다. 그리고는 한동안 낮고 완만한 언덕을 쉼 없이 타고 넘는다.

 눈을 들면 사방이 온통 황토색이다. 대량의 양분을 함유한 황토는 농사에 유리하다고 알려진다. 황토로 재배한 작물은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아 맛이 더 좋다는 것이다. 고구마나 양파·감자 등의 뿌리작물이 특히 잘 자란다는데, 그래선지 양파 밭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땅 반에 하늘이 반인 구릉지는 지금 보리가 주인이다. 소한·대한의 맹추위가 아직 물러가지도 않았는데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그리고 4-월에는 푸릇한 청보리가 6월이면 황금빛으로 익어갈 것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일 년 농사 준비로 분주하다. 옛말에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지런한 저 농부의 올 농사는 틀림없이 풍년일 것이다.

 흔히 보아오던 세장산(世葬山)’이 아니라 세천(世阡)’이란다. ‘뫼 산()’ 대신 두렁 천()’자를 썼으니 선산을 산이 아닌 밭의 가장자리에 썼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네 선조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에 터를 잡고 세거(世居)하면서 앞들에서 농사짓고 뒷산에 장사(葬事)하며 살아왔다.

 길은 경사가 20도를 넘는 구릉지를 넘기도 한다. 붉은 빛으로 뒤덮인 저 황토지대는 고창 사람들의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는 원천이다. 지금은 양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제 구릉지를 내려서서 목우(牧牛)’마을로 간다. 법정동리인 신덕리(新德里)를 구성하는 7개 자연부락(목우·상연·하연·언안·연장·용소·원덕) 중 하나인데, 탐방로는 마을을 먼발치에 두고 들녘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 줄포만과 바다 건너 변산반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우뚝 선 산릉이 길게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이렇듯 고창의 북쪽해안은 갯벌과 더불어 변산반도의 웅장한 산세를 볼 수 있어 좋다. 첩첩이 쌓인 산들이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거리가 멀수록 더 옅은 빛깔을 띠고 있어 입체감이 살아난다.

 목우마을 앞 들녘. 탐방로는 농경지 사이로 난 농로를 따른다. 그리고 농로의 끝자락에서 고창을 벗어나 부안 땅으로 들어간다.

 11 : 00. 작은 개울을 건너면 부안(줄포면 우포리) 땅이다. 탐방로는 둑길을 따라 바닷가로 간다. 울창한 갈대숲을 옆구리에 낀 멋진 구간이다.

 갈대가 키 높이로 자라 은근한 낭만 풍경이 연출된다. 하지만 갈대숲의 백미는 낮이 긴 여름철이다.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과 실바람에 흔들리는 잎새가 매혹하기 때문이다.

 그 안쪽 들녘에서는 철새가 난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긴 습지와 갈대숲, 농경지가 더해지면서 철새들의 쉼터가 되었나보다.

 농경지를 지나 구릉지로 올라간다. 붉은 색에 가깝던 고창과는 달리 누런 황갈색으로 변했다.

 11 : 09. 구릉지에는 선양저수지가 있었다. 방조제를 쌓으면서 생긴 간척지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소중한 수원이다.

 11 : 15. 농로를 겸한 임도를 벗어나 2차선 도로인 생태공원로(이정표 : 종점까지 9.3km)’로 올라선다.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쯤으로 보면 되겠다.

 이때 줄포지역의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발아래에는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이 들어앉았다.

 11 : 21. 잠시 후 만난 삼거리.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서해랑길은 직진, 하지만 부안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을 둘러보려면 오른편으로 가야한다. 하나 더. 서해랑길을 따르더라도 생태공원에 이르기는 매한가지다. 정문 대신 후문으로 들어간다는 게 다를 뿐이다.

 이정표(종점 8.8km/ 줄포만 생태공원 0.4km/ 시점 5.2km)는 줄포만 생태공원에 잠시 들렀다가란다.

 11 : 25. 하지만 난 서해랑길을 따르기로 했다. 이어서 조금 더 걸어 바닷가에 이른다. 곧게 뻗은 방조제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줄포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고, 오른쪽의 습지에는 갯벌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줄포만 위에 다리 형태로 놓인 생태관찰로는 갯벌 생물을 관찰하기 딱 좋은 곳이다. 계단이 놓여있어 갯벌로 내려가 직접 관찰해 볼 수도 있다.

 부안도 역시 갯벌의 고장이다.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휘어진 활처럼 거대한 해안선(대략 178)을 그리는데, 그 대부분에 넓고 진득한 갯벌이 발달했다. 특히 변산반도 남단의 줄포만은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받았다. 2010년에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기도 했다. 칠면초와 나문재·갈대 같은 염생식물을 비롯해 100종이 넘는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물 빠진 바다에는 갯고랑이 나타난다. 바다와 마을을 이어주는 실핏줄로 바닷물이 밀려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썰물 때 끊어질 듯 가느다란 생명줄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다. 한때 저 길은 돛단배의 나들이 길이도 했다. 토사가 쌓이면서 이제는 뱃길이 끊겨버렸지만...

 11 : 30. 이제 갯벌생태공원을 둘러볼 차례이다. 한동안 쓸모없는 땅처럼 여겨졌던 갯벌 저류지를 친환경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공원이다. 갯벌의 퇴적작용으로 줄포는 상습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이에 제방을 쌓은 것이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제방을 쌓은 이후 안쪽의 20만평 저류지는 갈대와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면서 자연스레 생태늪지로 발전했다. 이걸 친자연환경적인 생태공원으로 가꿔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다양한 체험거리와 체육시설, 캠핑장, 산책로는 물론이고,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 연인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준다.

 안으로 들어가면 10만평에 달하는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지그재그 나무데크, ‘S’자 나무데크 등 다양한 길을 따라 갈대 사이를 거닐 수 있다. 하지만 이 부근에 있었다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촬영 세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국적인 풍치를 물씬 풍긴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줄포에 왔으니 사진 한 장쯤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내 마을을 알아차렸는지 갈대밭에 글자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공원 안 수로에서는 물놀이 체험도 가능하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진 물길인데, 이 수로를 보트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바둑 테마공원이란다. 부안이 고향인 한국 현대바둑의 아버지 조남철 국수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문득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바닷가, ‘불바르 공원(Bulvar Park)’에서 만났던 체스 판이 생각난다. 저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직접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입체화시킨 게 눈길을 끌었었다. 우리도 한번쯤은 시도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공원은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했다. 의자 하나까지도 돌을 쪼아가며 예술성을 가미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코끼리 조형물이 혼란을 주기도 한다. 공원의 2개 연못과 3개의 동산에는 20여종의 자생화초류 염생식물과 6종의 민물고기, 야생화 등이 터를 잡고 산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오소리나 재두루미, 백로, 바다오리 등의 야생동물도 볼 수 있단다. 그렇다면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는 그 야생동물을 조형물로 만들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11 : 50. 다시 바닷가로 돌아와 이번에는 둑길을 따른다. 줄포의 침수를 대비하기 위해 1996년에서 1999년까지 연장 975m의 방조제를 쌓았다.

 왼쪽은 줄포만. 추위 탓인지 갯벌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 시심(詩心) 하나 불러올만한 풍경도 잡히지 않는다. 밀물에 쫒긴 아낙들이 바지락이 가득 든 플라스틱 통을 들거나 머리에 이고 갯고랑을 따라 한 줄로 걷는 모습이 한 편의 서사시이자 한 폭의 풍경화라는데도 말이다.

 11 : 52. 방조제는 전망대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했다. 도로변에 흙을 도톰하니 쌓아올려 대를 만들었다. 갯벌생태공원의 전모를 한꺼번에 살펴보라는 모양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부안이라는 문자 조형물을 세워 사진 찍기 딱 좋도록 했다.

 언덕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발아래 놓인 습지는 물론이고 저 멀리 줄포시가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곰소만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줄포는 한때 서해안 어업의 중심지였다. 조기의 3대 어장 중 하나인 위도가 가까이 있어 만선이라도 되면 줄포 또한 성황을 이루었단다. 그러나 갯벌의 퇴적으로 수심이 얕아지는 바람에 1938년 항구의 기능을 가까운 곰소항에 넘겨줬고, 90년대의 폐항을 거쳐 지금은 완전히 내륙의 땅이 되어버렸다.

 이즈음 마실길 팻말이 눈에 띈다. 명품 산책로로 꼽히는 부안 마실길은 새만금전시관에서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에 이르는 부안 땅을 둘로 가른다. 8개 코스(66km) 변산 마실길 6개 코스(97km) 내륙 마실길로 나뉘는데, 코스마다 붙여진 이름만으로도 탐방을 대신한다. 이중 8코스인 청자골 자연생태길은 이곳 갯벌생태공원에서 곰소염전에 이르는 11km 구간이다. 참고로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방언이지만 마실간다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이때 마실은 이웃집으로 놀러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바람 쐬러 간다는 뜻으로 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다니듯이 걸어보자.

 11 : 58. 방조제 끝, 공터는 작은 공원으로 꾸몄다. 쉼터용 정자를 지어놓았는가 하면, 눈요깃거리 삼아 등대도 세워두었다.

 이후부터는 최근(2023 10) 개설된 신작로가 길을 안내한다. ‘분탕골로라는데 부안군환경센터의 오른쪽으로 지나간다.

 12 : 09. 잠시 후 방조제로 올라선다. 이어서 둑길을 따라 보안면(유천리)으로 들어간다. 둑 아래로는 2차선 도로인 분탕골로가 함께 간다.

 드넓은 신창들녘을 적시며 흘러온 신창천(버드내·줄내·남포천)은 하천이라기보다는 저수지에 가깝다. 방조제에 가로막힌 물을 두 개의 배수갑문을 통해 줄포만으로 흘려보내는데, 일정량을 항시 가두어두고 있는 모양이다.

 바닷가 간척지나 담수호는 빼놓을 수 없는 겨울철새 도래지다. 신창천 저류지에서도 철새가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다. 참고로 국립생물자원관의 2021~22년 겨울철 조류 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부안군은 계화조류지, 동진강, 고부천 일원을 중심으로 황새, 흰꼬리수리 등 53 155,264여 마리의 철새가 겨울을 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매년 시행해오고 있다는 겨울철새 먹이주기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철새 무리는 하늘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철새 도래지의 장관은 해가 뜨고 질 무렵 노을진 오렌지빛 하늘을 무대 삼아 펼치는 철새 떼의 현란한 군무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옛 사람들은 저 바다를 웅연조대(雄淵釣臺)’라며 변산팔경(邊山八景)’의 첫 번째로 꼽았다. 줄포만에 떠있는 어선에서 밝히는 불빛이 물에 어리는 풍경과 어부들이 낚싯대를 둘러메고 뱃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안의 바닷가를 걸으며 느낀 첫인상은 돈을 쏟아 붓듯이 치장했다는 점이다. 그런 예산을 조금 할애해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안내판 두어 개쯤 만들어두었으면 어땠을까? 보는 재미에 읽는 재미까지 더해진다면 찾는 이들도 그만큼 더 늘어날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갯벌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둑을 쌓아 양식장을 만들었다. 대하양식장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바닷물고기를 기르는 듯한 양식장도 눈에 띈다.

 신창들녘 너머는 유천마을일 것이다. 마을 뒤 구릉지에 세계적인 고려 상감청자를 구워 낸 사적 제69 유천리 도요지(扶安柳川里陶窯址)’가 있다.

 12 : 21  12 : 40. ‘분탕골로는 방조제 끝에서 유천·호암로로 바뀐다. 이어서 호암마을(유천리)을 스치듯 지나간다. 도로 전체를 공원으로 꾸며놓은 멋진 구간이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나눠먹으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도 많은 배수갑문을 만난다. 부안의 들녘 대부분이 간척사업에 의해 생겨났다는 얘기일 것이다. 간척(干拓)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던 당시는 작은 갯고랑이나 해변을 막는 정도였다. 대단위의 역사는 민간자본이 형성된 일제강점기부터라고 보면 되겠다.

 13 : 02. 배수갑문이 가둬놓은 물길(다리가 놓였다)을 건너면 신복리(新福里) 땅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사장교 형식의 신활교로 만화천(萬花川)을 건넌다.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듯한 버팀기둥의 생김새가 눈길을 끄는데, 그게 한쪽뿐이라서 공사를 하다 만 느낌을 준다. ‘미완성 아닌 미완성이 주는 헷갈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탐방로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갯고랑을 따라 바다로 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방조제로 둘러싸인 들녘을 가로지른다. kakaomap은 이 구간을 구진길로 적고 있었다.

 이 구간에서도 갈대밭을 만날 수 있었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줄포만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갈대꽃은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이 뭣꼬!’ 스님들의 화두만큼이나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보리밭으로 보이는 들녘에서 수백 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철새들로부터 보리밭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몸부림이라고 했다. 철새들이 보리의 잎은 물론이고 뿌리까지 다 먹어치우고 있지만, 철새보호구역에다 멸종위기의 철새들이라 포획할 수도 없어 깃발로 쫓아볼 따름이란다. 효과는 없었지만...

 13 : 20. 시쳇말로 호적초본에 잉크도 안 마른 신작로를 건너 구진마을로 들어간다. 법정 동리인 진서리(鎭西里)’를 구성하는 6개 행정부락(구진·연동·진동·진서·백포·작도) 중 하나로, 천마산을 머리로 하고 남향으로 자리한 바닷가 마을이다. 구진(舊鎭)이란 이름 그대로 옛날 이곳에는 수군(水軍) 진이 있었다고 한다. 거무진이나 검모포(黔毛浦), 또는 검모포진(黔毛浦鎭)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마을의 오랜 역사는 마을 뒷산의 느티나무가 전해준다. 수령이 800년에 가깝다니 그동안 민초들의 겪었던 고난을 지켜봤을 터다. 거기다 나무는 영험하기까지 하단다. 나뭇가지라도 함부로 꺾으면 마을에 동토가 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마을 당산제의 대상이 될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안내판은 마을의 역사를 전하고 있었다. 고려 말 여원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역할을 했던 곳이 구진 마을이란다. 원나라는 일본 원정을 결정하고 고려로 하여금 전함과 수송선, 식량 등 모든 군사물자를 준비케 했다. 그 결과 이곳 검모포와 천관산(전남 장흥)에서 전국의 3 5백여 명의 장인들이 동원되어 크고 작은 전함 900척을 불과 넉 달 만에 건조했단다. 하나 더. 옆의 빗돌이 전하는 줄포만 탐방로는 대체 뭘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 비슷한 시설도 보지 못했는데...

 13 : 32. 탐방로는 30번 국도인 청자로로 올라선다. ‘청자라는 도로명은 진서리에 있는 도요지(陶窯址, 사적 제70)로부터 얻어온 지명일 것이다. 11세기 후반에서 13세기까지 고려청자를 구워내던 다수의 가마가 이 부근 구릉지에 있었다니 말이다. 변산 재목창의 땔감과 질 좋은 자토(瓷土), 거기에 줄포항이란 조운로까지 갖췄으니 도자기 생산지로 이만한 곳도 없었겠다.

 도로 건너 곰소염전 7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부안의 유일한 염전이다. 곰소만의 주력 항구이던 줄포항이 토사로 메워져 입출항이 어려워지자, 1936-1938년 진서리(연동마을) 앞에 있던 범섬과 웅연도을 구진마을과 작도리로 연결하여 곰소항을 조성하면서, 그 내부 연동리 쪽으로 곰소염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946년의 일인데 당시만 해도 소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전매품이었다.

 겨울철 염전은 길고 깊은 잠을 잔다. 때문에 염전 본연의 풍경, 즉 뜨거운 태양 아래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소금가루가 입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염부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는 해의 노을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그네들의 구릿빛 피부는 언감생심이라 하겠다.

 안내판은 단짠단짠 곰소염전 방문기라며 곰소염전의 단맛이 나는 소금을 소개하고 있었다. 허영만의 만화를 영화화한 식객의 무대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인다. 한편 tvN 예능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에서도 소개됐다. 2019년 유재석과 임원희, 지창욱이 함께 곰소염전에서 일을 했다. 소금 모으기·나르기·포장하기 등 힘든 노동을 치르면서 단짠 케미를 보여주는데, 유재석은 당시 단짠단짠의 조화로 식혜와 낙지젓갈을 함께 먹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해안생태·문화탐방로는 귀여운 장승을 마스코트로 삼았다. 변산반도는 산세가 빼어나고 해안 경치도 아름다운 곳.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그래선지 서해랑길 등 다양한 걷기 코스가 마련돼 도보여행에 맛들인 이들이 몰려든다. 해안생태·문화탐방로도 그중 하나이다.

 맞은편에 있는 슬지제빵소는 이색 찐빵을 판매하는 핫플레이스다. 지역에서 나는 팥으로 만든 찐빵과 소금커피가 입소문을 탔다. 이쯤해서 의문점 하나. ‘찐빵과 커피의 조화가 상상되시나요?’ 우선 찐빵은 팥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많이 달지 않고 건강한 맛이란다. 또한 시그니처 커피인 곰소 소금커피는 아이스라테 커피에 흑당과 발효소금 시럽을 섞어 단짠단짠한 맛이 일품이란다. 그게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나?

 곰소로 가는 해안도로 주변은 양식장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대부분은 대하 양식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근에는 왕새우 직판장도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부안에서 가장 친근한 해산물은 바지락이다. 새만금방조제 사업 이후 종적을 감춘 백합과 달리, 바지락은 지금도 부안 갯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인삼을 곁들인 바지락죽, 갖은 야채와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린 회무침 등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13 : 45. ‘곰소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진서리 앞바다의 곰섬을 중심으로 동쪽의 범섬과 연동, 서쪽의 까치섬과 작도리를 잇는 제방을 쌓아 육지로 만들면서 곰소항 일대가 축조되었다. ‘곰소(熊淵)’란 지명은 곰처럼 생긴 두 개의 섬 앞에 깊은 소()가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과거 소금을 곰소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웅연(熊淵), 웅소(熊沼), 웅연도(熊淵嶋) 등으로도 불렸다. 2009 1 1일 진서면 진서리에서 면소재지가 있는 곰소리가 독립된 법정리로 분리·설치되었다.

 이정표(종점까지 1.4km)는 번거로운 시가지를 피해 바닷가로 우회시킨다. ‘서해랑길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거대한 팽나무 고목이 바닷가 공터에서 자라고 있었다. 44코스를 걸어오는 동안 꽤 많은 당산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저 나무도 어딘가에서 자라던 당산나무를 범섬공원 근처로 옮겨왔을지도 모르겠다.

 곰소만(곰소에 왔으니 이제 줄포만에서 벗어나야겠지?)에 어깨를 맞댄 부지는 널따란 광장을 중심으로 공연장과 회센터, 젓갈센터 등 여러 시설들을 들어앉혔다. 전라북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큰 어항의 위세를 이어가기 위한 야심찬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젓갈 발효축제 알주꾸미 축제 등의 축제도 이곳에서 열린다.

 바닷가로 나가면 곰소만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한국의 갯벌은 모두 일곱 군데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있다. 서해 북쪽부터 송도, 대부도, 서천, 고창·부안, 무안, 증도, 순천만·보성 갯벌 등이다. 이중 고창·부안 갯벌의 면적이 45.5로 가장 넓다.

 축제가 잦으니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은 당연. 이들을 위한 포토죤을 만들어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중 하나가 곰소역이다. 열차가 다닌 일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다닐 일이 없는 곳에 철로를 깔고 역사를 지었다. 뜬금없는 발상이지만 사진 찍기에는 딱 좋았다.

 철로의 매력 포인트는 선로 위로 올라가 중심을 잡아보는 맛이 아니겠는가.

 탐방로는 바닷가를 따라 곰소항으로 간다. 이때 다양한 조형물들을 만난다. 바닷가답게 돌고래나 소라 같은 바다 생물들을 조형물로 제작해 전시했다.

 잘못된 표기라고 지적했던 글자 조형물이다. ‘C’가 아니라 ‘G’가 되어야 한다며 혀를 차는데,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 선생이 낚시꾼을 포함시키면 ‘G’자가 된다고 알려주신다. 작가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왕새우는 곰소항의 또 다른 특산물이다. 오늘도 수많은 대하양식장을 만났었다.

 곰소항은 하루 130여척의 어선이 드나들 정도로 활기를 띤단다. 최근에는 젓갈로도 유명해졌다. 곰소항의 풍부한 수산물에 미네랄 풍부한 곰소염전의 소금이 더해져 맛좋은 젓갈이 생산된단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오징어젓갈에 가리비젓갈까지 각단지게 챙겨본다.

 곰소항에 가까워지자 죽도(竹島)’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곰소는 예전에 섬이었다고 한다. 1938년 작도와 웅도를 잇는 제방을 쌓으면서 육지가 됐다. 덕분에 과거 선인들이 묘사하던 웅연도(態淵島 : 곰섬) 앞바다 풍경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곰소항은 빼어난 일출과 일몰의 풍경을 자랑하며 장관을 이룬다.

 14 : 10. 곰소항 조금 못미처에 있는 회센터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부안 45코스) 안내도는 회센터 뒤 바닷가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3시간 35분을 걸었다. 앱이 15.76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