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41코스(구시포해변-심원면사무소)
여 행 일 : ‘23. 11. 11(토)
소 재 지 : 전남 영광군 법성면·홍농읍 및 전북 고창군 상하면 일원
여행코스 : 구시포해변→명사십리해변→동호해변→서해안바람공원→람사르고창갯벌센터→심원면사무소(거리/시간 : 19.7km, 실제는 명사십리해변에서 갯벌센터까지 14.77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41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고창·부안 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고창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걷는 여정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명사십리해변과 장호해변, 바람공원, 갯벌식물원 등을 꼽을 수 있다.
▼ 들머리는 구시포해수욕장(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IC에서 내려와 15번 지방도(아산방면), 대동교차로에서 733번 지방도(해리방면), 지로삼거리에서 22번 국도(법성포방면), 상하교차로에서 다시 733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시포해수욕장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고창41코스) 안내도는 군청 이동봉사실 앞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 고창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구간 거리가 19.7km로 다소 긴 편이나, 전체가 평지길이라서 걷는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난 5km쯤 단축해 법장천 배수갑문(지도에서 두 번째 파인 지점)부터 걸었다. 12km를 한도로 걷고 있는 집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이런 엄동설한에 혼자 걷는 시간이라도 줄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 구시포 해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해넘이’라고 했다. 저물어가는 해가 ‘가막섬’에 걸치면서 만들어내는 노을은 우리나라 최고의 일몰 명소로 손색이 없단다. 그런데 그 가막섬이 방파제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산악회 버스를 타고 들어온 ‘가막섬’에는 항구가 들어서 있었다. 조수간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바다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고나 할까? 하지만 난 와인 잔을 형상화 한 등대가 더 흥미롭다. 이곳 고창은 ‘복분자’의 고장. 등대는 복분자로 만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으로 가득 채워놓은 모양새이다.
▼ 그런데 저 호랑나비 조형물은 무엇을 의미는 걸까? 어쩌면 이곳 고창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임을 알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올해 봄 ‘호랑나비가 보여주는 자연의 신비, 호랑나비야 돌아와’라는 주제로 호랑나비에 관한 전시회까지 열리지 않았던가.
▼ ‘해상펜션’이란다. 다른 지역은 낚시꾼들이 이용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주로 갯벌체험을 온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머문다고 한다. 아늑하게 생긴 돔 안에 취침·취사 시설은 물론이고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갑판에서 바비큐 파티까지 가능하다나?
▼ 또 하나의 포인트인 ‘장호 갯벌체험장’은 출발지로 가는 도중 차를 잠시 멈추고 둘러봤다. 위도를 마주보고 있는 장호마을 앞바다 갯벌은 마을 어촌계 소유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활동은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는다. 소정의 금액을 낸 이들만 너른 갯벌에서 큼지막한 동죽조개를 캐고, 단단한 모래사장에서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
▼ 해변으로 내려서자 ‘명사십리’로 불리는 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직선의 길이가 무려 8.5km에 달한다니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 특징인 서·남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라 하겠다. 덕분에 ‘해변승마’를 즐기려는 승마동호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바닥이 단단한데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해변이 길기까지 해 말을 타고 달리기에 딱 좋다는 것이다. 장호마을에는 외승 체험이 가능한 ‘해변승마클럽’도 있다.
▼ 해변은 각종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고 했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어선지 모래사장은 텅 비어있었다. 하나 더, 백제시대 ‘상로현’이었던 이 지역은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년) ‘장사현’으로 이름을 바꾼다. 연안에 길고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 ‘길 장(長)’에 ‘모래 사(沙)’를 썼다. 그게 인근 무송현과 합쳐지면서 ‘무장현’이 됐고,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지고 ‘상하면’과 ‘해리면’이 됐지만...
▼ 장호어촌 체험마을은 이곳(주민들은 ‘해변쉼터’라 부른다) 말고도 갯벌체험장(마을에 있다)과 명사십리 해양파크를 포함한다. 체험활동도 조개채취나 승마체험 말고도 어망체험이나 후릿그물체험, 고개껍질꾸미기, 새우잡이 등이 진행된다.
▼ 12 : 18-20. 실제 출발지는 ‘법장천 배수갑문’. 41코스 시작점(구시포)에서 5.5km쯤 떨어진 지점으로, 12km를 한도로 트레킹을 이어가고 있는 집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참고로 집사람은 시작점에서 9.3km쯤 떨어진 전북수산기술연구소에서 출발했다.
▼ 길가 이정표는 서해랑길이 ‘국가생태문화탐방로’와 함께 쓰고 있음을 알려준다.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고창군을 구석구석 돌아 볼 수 있는 탐방로로 내륙습지인 운곡습지와 연안습지인 고창 갯벌습지, 고창읍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 고인돌유적지 등을 걸으며, 고창의 역사와 문화, 생태계가 공존하고 있는 자연환경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 오른편은 법장천(고창군 해리면 사반리 기슭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의 유수지. 방조제에 갇힌 물길은 꽤 넓은 호수를 만들었다. 그 뒤로는 방조제를 쌓아 만든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 12 : 20. 북쪽으로 난 ‘명사십리로’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참고로 법장천 배수갑문은 상하면과 해리면의 경계이다. 상하면의 장호리에서 해리면의 사반리로 넘어간다. 그러니 41코스의 상하면 구간은 버스로 이동했다고 보면 되겠다.
▼ 이 구간은 걷는 내내 소나무 숲과 함께한다. 명사십리 해변은 개방형 조간대(朝間帶)라고 한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모래 공급이 쉬워 바닷가에 풍성사구가 형성됐다. 이 해안사구에 방풍림 역할을 하는 해송 숲이 들어섰는데, 도로가 이 숲을 헤집으며 나있는 것이다.
▼ 12 : 31. 명사십리를 포함하는 이 구간은 조망 좋기로 입소문을 탔다. 저녁이면 바다는 노을로 덧씌워지기까지 한단다. 그런 명소를 지자체가 그냥 놓아두었을 리가 없다. 곳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여행객들을 끌어 모은다.
▼ 난간에 서면 확 트인 바다와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때만 잘 맞추면 저 멀리 ‘위도’ 너머로 떨어져가는 해를 볼 수도 있단다. 온 세상을 물들여버리는 저녁노을은 덤이다.
▼ 시선을 조금 옮기면 저 멀리 변산반도가 놓여있다. 하나 더. 이곳도 역시 해변이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뻗어나간다. 모래의 질도 특이하다고 했다. 다른 곳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게 아니라, 판판하게 다져진 게 걷기에 딱 좋단다.
▼ 도로 주변 곳곳에 들어선 아기자기한 펜션들도 명사십리 해안도로를 꾸며주는 멋진 풍경이 된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을 베개 삼아 하룻밤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겠다.
▼ 12 : 41. 서해랑길을 걷다보면 각 지역에서 대표 음식을 만난다. 그동안 목포의 홍어를 비롯 증도 짱뚱어, 무안 낙지, 영광 굴비 등을 만났었다. 일부는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 맛까지 보면서 지나왔음은 물론이다. 이곳 고창은 ‘장어’라고 했다. 그래선지 길가 곳곳에 장어집이 들어서 있었다.
▼ 저건 상부마을(광승리) 포구쯤 되겠다. 물양장은 물론이고 선착장까지도 갖지 못했지만, 꼬맹이 어선 몇 척이 출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다. 이 일대는 칠산어장의 배후지역으로 예로부터 조기, 꽃게 등 어족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 12 : 46. ‘명사십리 해양파크’라고 한다. 인근 동호·구시포해수욕장 등 관광지와 연계한 어민 소득 창출을 위해 세운 시설로, 갯벌체험 후 씻는 샤워장이나 공연장 말고도 냉동창고 등 수산물 처리가공시설과 수산물 판매장, 횟집, 토산품 판매점 등을 갖추었다. 일종의 어촌 종합유통센터라고나 할까?
▼ 2009년 문을 열었다는 해양파크는 수산물처리가공시설과 수산물판매장, 횟집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근처에 포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늦어도 많이 늦었지만, 공사가 한창인 저 방파제가 그 대안이 아닐까 싶다. 어선의 접안이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 12 : 50. 조금 더 걷자 길이 바닷가를 떠난다. 그리고는 내륙의 작은 고갯마루를 넘는다. 좋은 바닷가를 놓아두고 에둘러 돌아가는 이유가 뭘까?
▼ 12 : 54. 이유는 간단했다. 바닷가에 들어앉은 저 ‘전북 수산기술연구소’. 저렇게 큰 시설이 바닷가를 독차지하고 있으니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13 : 05. ‘동호해변’에 이른다. 줄포만(곰소만)과 맞닿아 있는 해안으로 백사장을 따라 늘어선 수백 년 된 해송 숲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 탐방로는 ‘명사십리로’를 따른다. 하지만 난 조망도 즐길 겸해서 해변을 걸어볼 것을 권해본다. 백사장과 해송 숲 사이에 야자매트를 깔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바다에는 계속해서 ‘위도’가 따라온다. 거기에 ‘쌍여도(미여도)’가 빈 여백을 채운다. 명사십리에서 첫 선을 보일 때만 해도 점으로 나타나더니 어느새 몸집을 부풀렸다.
▼ 해수욕장에 가까워지자 조금은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백사장, 관광객 시설, 상가 등의 순서로 돼 있는 여느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이곳은 상가는 저 안쪽에 있고 상가와 백사장 사이를 소나무 숲이 메우고 있었다. ‘숨겨진 해수욕장’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 참! 입구의 안내판을 한번쯤 살펴보고 해수욕장으로 들어가자는 것을 깜빡 빼먹을 뻔 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이 지역 유일의 해신당인 ‘영신당’을 살펴볼 수 있다.
▼ ‘국민여가캠핑장’이란다. 해변 레저는 자동차 캠핑이 대세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갈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에도 숲속 곳곳에 캠핑족들이 들어가 있었다. 텐트는 웬만한 방갈로 저리 가라는 크기. 저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 그릴, 휴대용 냉장고, 조명까지 없는 게 없다고 했다.
▼ 동호해수욕장은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 백사장 남쪽 끝에 있는 수산기술연구소까지의 거리는 약 1.5km.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백사장 뒤쪽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지런히 서 있는데다 수심이 0.5~1.5m로 어린이들도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세면대와 화장실, 민박, 식당 등의 편의시설도 여느 유명 해수욕장에 못지않게 잘 갖추어져 있다.
▼ 동호해변의 갯벌은 동죽과 바지락이 지천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해수욕장의 조형물도 동죽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바닷가로 나가본다. 맞은편에는 위도와 쌍여도(미여도), 북쪽으로 뻗어나간 해수욕장의 끝에는 ‘외죽도’가 놓여있다. 부안면 앞바다에 떠있는 ‘내죽도’에 대비되는 이름으로 ‘대죽도’와 ‘소죽도’로 구성된다. 간조 때 갯벌이 드러나면 걸어서도 섬에 들어갈 수 있단다.
▼ 동호해변은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모래찜질하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 피부병과 신경통 환자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그래서일까? 해수욕장 주변의 시설지구는 성업 중이었다. 민박과 펜션 등 숙박업소는 물론이고, 음식점에 카페까지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들어섰다. 모두 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 ‘체험센터’를 지나자 굴을 뚫고 있었다. 탐방로는 터널 앞에서 오른편으로 간다. 하지만 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영신당’이 있을 밥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길을 찾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길이 웃자란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여 통행이 불가능하니 문제다.
▼ 그나마 친절한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랄까? 지자체의 게으른 행정에 툴툴거리는데 마실 나온 주민이 동호마을 쪽으로 100m쯤 더 가면 길이 잘 나있다고 알려준다.
▼ 13 : 27.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100m쯤 더 가니 ‘구동호마을’. 초입에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려나가고 있었다. 이어서 200m쯤 올라가니 조성공사가 한창인 ‘전망공원’이 나온다.
▼ 13 : 30. 전망공원의 중심은 ‘원형전망대’이다. 돌출된 암벽지대에 2층의 메인 건물을 짓고, 바다를 향해 길게 대를 쌓았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동호해안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탐방로 조성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100m쯤 더 걷자 숲속에 숨어있던 ‘영신당’이 얼굴을 내민다. 이 고장 유일의 해신당으로, 해마다 풍어와 어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단다.
▼ 사랑꾼인 집사람은 오늘도 바쁘다. 4km쯤 앞에서 출발한 집사람은 양지바른 곳에서 냉이를 캐고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나와 잠깐 캤다는데 벌써 한 움큼이다. 서방님 밥상에 올릴 생각에 추위까지도 잊었나보다.
▼ 13 : 42. 10분 남짓의 시간을 투자해 전망공원과 해신당을 둘러본 다음 ‘구동호마을’로 내려선다. 법정 동리인 ‘동호리(冬湖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지만, ‘옛 구(舊)’자가 좁은 의미의 ‘동호리’였음을 알려준다. 참고로 동호리는 가재지(歌子洞)·구동호(舊冬湖)·남부(南部)·삼양동(三養洞)·신동호(新冬湖) 등 5개의 행정리와 가재지·신흥·구동호·남부·삼양동·신동호·소리개 등 7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 마을에는 ‘동백정(冬柏亭)’이란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동호마을의 옛 이름인데 마을에 동백나무가 무성한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이후 변산반도 방향의 바다가 호수처럼 보인다하여 ‘호수 호(湖‘)’자를 덧대 동호(冬湖)’가 되었단다. 이곳 동호가 우리가 흔히 만나게 되는 동서남북의 동호(東湖)가 아닌 ‘동백 꽃 바다’가 된 이유이다.
▼ 동호항은 먼발치서 바라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응룡(상하면 ‘계산서원’ 배향)의 발자취가 서린 포구다. 고창지역에서 모은 군량미를 이곳 동호항을 통해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산성으로 보냈다고 전해진다.
▼ 13 : 46. 동호마을 앞에서 방조제 둑길을 탄다. 흐드러지게 핀 갈대꽃이 길손을 반기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 오른편은 온통 대하양식장이다. 반면에 왼쪽은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변산반도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 13 : 55. 77번 국도(동호로)로 올라선다.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L"자형으로 이어지다보니 이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나 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국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 그런데 줄포만에 떠있는 저 섬의 정체는 뭘까? 파도에 깎여나간 듯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가 만조의 바다를 뚫고 솟아올랐다.
▼ 14: 00. 삼양동(三養洞) 마을에 이르자 ‘동호 배수갑문’이 얼굴을 내민다. 선착장은 없지만 이 부근은 삼양동 어민들의 포구로 이용된다.
▼ 14 : 03. 몇 걸음 더 걸어 도착한 ‘동호교차로’에는 유리창까지 두른 정자 외에도 ‘간척지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해리천 하구에 방조제를 쌓아 간척지를 만든 걸 기념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참고로 해리천(海里川)은 무장면 월림리 산기슭에서 발원해 해리면을 관류, 심원면 궁산리까지 14.1km를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 서해랑길 이정표가 변신을 했다. 시점과 종점을 먼저 적고, 그 하단에 다음 행선지를 적던 기존과는 달리, 이번 코스의 것들은 다음에 만나게 될 주요 포인트만 적고 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시도가 개선이 아니라 개악으로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오해일까?
▼ 동호교차로에서 국도를 벗어난 탐방로는 이제 ‘애향갯벌로’를 탄다. 초입의 700m구간은 방조제. 배수갑문이 두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 더. 해리면을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 방조제를 건너 심원면(고전리)으로 간다.
▼ 아니나 다를까 간척사업은 엄청나게 너른 들녘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게 유수지와 습지로 방치되고 있었다. 고창군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이란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 덕분에 습지는 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텃새와 철새가 함께 관찰되는데, 우리가 간 날에는 왜가리와 오리가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내민다는 ‘황새’는 눈에 띄지 않았다.
▼ 왼쪽으로는 줄포만이 펼쳐진다. 아니 줄포만의 입구쯤으로 보는 게 옳겠다.
▼ 14 : 12. 방조제 끝에는 ‘고창컨트리클럽’이 있다. ‘+3홀’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골프장으로, 정규 18홀 외에 ‘파12’의 3홀을 더 두어 성수기 등 경기 지연 시 고객 불만을 해소시켜준다고 했다. 18홀 플레이만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골퍼에게는 멋진 보너스가 될 것이고.
▼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이정표는 오른쪽에 ‘삼양염전’이 있음을 알려준다. 삼양사의 창업주인 故 김연수(金秊洙)씨가 창업한 천일염전인데, 이 일대의 염전이 하도 넓다보니 마을의 이름까지도 ‘염전마을(심원면 고전리)’이 되었단다. 주민들은 빛나는 순백의 소금밭 풍경을 일러 고창 속 ‘은자(隱者)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었다.
▼ 14 : 15. 몇 걸음 더 걷다가 소나무 숲(이정표 : 바람공원 2km/ 동호해수욕장 2.5km)으로 들어간다. 방풍림으로 조성해놓은 것 같은데, 어른의 허리통보다도 더 굵은 소나무들이 해안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길은 숲속을 요리조리 다니다가 바다 쪽으로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 ‘검은머리 물떼새’ 형상을 한 방향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참조롱이·큰고니·노랑부리저어새 등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답게 고창 갯벌을 찾아오는 철새들을 모티브로 삼아 이정표를 만들고 있었다.
▼ 탐방로는 한마디로 멋졌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테크 로드를 내놓았는가 하면 곳곳에 벤치를 놓아 쉬엄쉬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거기다 숲속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에 대한 안내판까지 세워놓아 읽을거리까지 제공한다.
▼ ‘이 멋고?’ 낯선 풍경 하나가 길 걷던 중생에게 화두로 다가온다. 바닷가에 길게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중간의 한 지점을 터 바닷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어 봐도 그 용도가 감도 잡히지 않는다.
▼ 14 : 25. ‘서해안 바람공원’에 닿았다. 이름대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서해안의 일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으로, (바람 및 해넘이)광장, 산책로, 전망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 전망대에 오르자 ‘외죽도(外竹島)’의 두 섬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줄포만의 안쪽, 깊숙이 들어앉은 ‘내죽도(內竹島)’에 대비되는 지명으로 대(大)죽도와 소(小)죽도를 포함한다. 또 하나. 소죽도는 무인도인 반면 대죽도는 1가구 1명이 거주하고 있단다.
▼ 바람을 상징하는 풍차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거센 바람에도 날개가 미동조차 않는 ‘돌지 않는 풍차’다. 그래서일까? 문득 ‘사랑도 했다. 미워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로 시작되는 문주란의 노래가 떠오른다.
▼ 바람개비도 여러 개 장착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 지역은 바람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니 소형 ‘풍력발전기’를 배치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친환경 분산형 전원 확대와 지자체 에너지전환 주도에 발맞추는 한편, 주변 공공시설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난간에 매달린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 부근 해안에 길이 1.3km(폭 40~70m)의 ‘쉐니어(chenier)’ 지형이 발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쉐니어란 태풍이나 조류에 의해 갯벌위에 모래와 자갈이 육지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퇴적지형을 말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움직이는 섬’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 하지만 직접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바다는 만조에 가깝게 물이 차있다. 그러니 바다와 바다 사이에 모래톱이 남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는 하얀 모래사장만 펼쳐질 따름이다. 더 놓은 곳에 올라야만 쉐니어를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탐방로는 또 다시 숲속을 걷는다. 제방의 둑처럼 도톰하니 솟아오른 부분을 따라 1.4km 정도의 산책로가 나있다. 둑의 양옆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가히 최고의 산책로라 하겠다.
▼ 하지만 그런 호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야간 산책을 위한 조명공사를 하느라 길을 온통 헤집어놓았다.
▼ 덕분에 도로(애향갯벌로)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2차선이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보도를 따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 ‘새옹지마’라고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대신 눈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오른쪽에 갈대로 가득한 습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14 : 45. 이번에는 세계자연유산인 ‘고창갯벌’을 홍보하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2층의 대를 세우고 그 위해 하얀 그늘막이 있는 전망대를 얹었다.
▼ 전망대에 오르면 건장한 수탉과 암탉 그 뒤를 졸졸 따르고 있는 병아리 조형물이 길손을 맞는다. 근처에 ‘계명산(雞鳴山)’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계명산에서 닭이 울면 중국 땅에서도 들린다고 했으니 말이다.
▼ ‘만돌마을’과 그 주변에 있는 명소들은 만화로 전하고 있었다. 그 구심점인 ‘고창갯벌’을 빼먹었을 리가 있겠는가. ‘람사르 습지’이면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 핵심지역’이고, ‘세계자연유산 등재예정구역’이기도 하단다.
▼ 난간에 서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대·소 죽도는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위도와 쌍여도 등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만조 때라서 전망대의 주제인 ‘고창 갯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전망대가 전하고자 했던 ‘계명산’은 7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앞에 대를 쌓고 또 하나의 전망대를 얹었다. 이곳과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14 : 51. 잠시 후 도착한 계명산 전망대. 관찰데크 아래 공간은 솟대와 농게 등의 조형물 차지다. 계단 등의 이동 공간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망둥어, 게, 저어새 등 고창 갯벌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을 이야기판으로 만들어 붙여놓았다.
▼ 이곳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담은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외죽도, 염전과 김양식장, 계명산, 만돌마을, 고창갯벌에 관한 얘기들을 가슴속에 담아갈 수 있다.
▼ 앙증맞은 벤치가 눈길을 끈다. 어미고래와 아기고래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인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듯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어미고래의 얼굴표정이 자상하기 그지없다.
▼ 난간에 서자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만조인데도 이작도의 ‘풀등’처럼 모래톱이 물에 잠기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아까 확인해보지 못했던 ‘움직이는 섬 쉐니어(chenier)’가 아닐까 싶다. 1800년 전부터 형성된 모래 퇴적층이라는데, 양쪽 끝부분이 해안선 방향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고 1967년 처음 관측한 이래 육지 방향으로 조금씩 모래층이 이동하고 있으며 그 모습도 수시로 변한단다.
▼ 이곳도 풍차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지는 않기는 마찬가지다.
▼ 14 : 56. ‘계명산’은 28.9m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로 레벨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10층짜리 건물의 옥상에 올라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게 올라선 정상에는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벤치는 물론이고 운동기구까지 배치한 걸 보면 주민들의 쉼터를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 ‘계명산(雞鳴山)’은 ‘닭이 우는 산’이란 뜻을 지녔다. 옛날에는 ‘달구지’로 불리기도 했단다. 아무튼 이곳에서 닭이 울면 그 소리가 중국에 까지 갔다고 한다. 만돌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산동성 옌타이(煙臺)까지는 대략 390km. 닭 울음소리가 그 멀리까지 갔다는 것은 만돌마을 사람들의 기개와 마을 번영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봐야 한단다.
▼ 반대편으로 난 침목계단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만돌마을’이다. 만돌(萬突)은 풍수지리설에 따른 지명이다.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예언에서 유래했단다. 마을은 앞으로 드넓은 줄포만(곰소만)이 펼쳐져 있고 대죽도와 함께 멀리 부안군까지 바라볼 수 있어 섬과 갯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해질 무렵 펼쳐지는 낙조가 일품으로 알려진다. 천일염 체험, 조개잡이 체험, 고기잡이 체험, 갯벌 버스타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단다.
▼ 15 : 00. 마을 앞, 탐방로는 동화속의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둑길을 따른다. 줄포만과 마을 사이에 둑을 쌓고 그 위에 길을 냈다. 그런데 마을과 갯벌의 높이가 비슷한 것이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바다건너 저 멀리 변산반도의 높은 산들이 반긴다. 변산반도는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지금은 까마득히 보이지만 걷다 보면 어느새 도달해 있을 것이다.
▼ 15 : 12. 마을을 벗어나 드넓은 들녘으로 간다. 아니 방조제 안쪽이긴 하지만 크고 작은 저수지가 길 양옆으로 줄을 잇는 구간이다.
▼ 왼쪽, 호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저 저수지의 용도는 대체 뭘까?
▼ 바람 많은 들녘. 그 한가운데를 지나다 만난 염전은 우릴 색다른 풍경 속으로 인도한다. 소금은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란다. 좋은 햇빛과 좋은 바람이 보석처럼 빛나는 하얀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소금밭은 지금 긴 낮잠을 잔다. 뜨겁게 내리 쬘 내년의 뙤약볕을 기다리며...
▼ 15 : 26. 전망타워 비슷한 시설이 보이는가 싶더니 ‘고창 갯벌식물원’의 입구에 이른다. 청정지역 고창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갯벌의 고장이다. 2007년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받은 이래, 2011년 람사르 갯벌습지, 2013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21년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에까지 등록됐다. 그러니 어찌 습지식물원 하나쯤 만들어두지 않았겠는가.
▼ 갯벌 습지에는 아까 보았던 전망타워 외에도 생태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함초와 칠면초, 나문재 등 70여 종의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룬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 과거 고창의 해안은 천연의 해안선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갯벌이었다고 한다. 그게 갯벌에 대한 이용이 많아지면서 축제식 양식장으로 변했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갯벌이 훼손되면서 갯벌 환경 또한 변해갔다. 이곳 갯벌식물원도 축제식 양식장으로 이용되다가 버려진 것을 지자체에서 둑을 터주면서 생태계를 되살렸다고 한다. 바닷물이 다시 흐르면서 칠면초, 해홍나물, 퉁퉁마디 같은 염생식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더란다.
▼ 옛 방파제의 벽화는 어촌의 풍경을 담았다. 동네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느라 여념이 없다.
▼ 간척지에 들어선 태양광발전소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태양광 모듈의 생김새로 보아 태양의 이동에 맞추어 회전할 수 있지 않나 싶다.
▼ 15 : 40. ‘람사르 고창 갯벌센터’에 이른다. 고창 갯벌은 주민들에게는 매번 밟는 땅이자 매일 아침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고창을 방문한 이방인들에게는 밟아보고 싶은 땅이자 경험해보고 싶은 곳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갯벌에 들어가는 우는 범하지 말자. 갯벌을 훼손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이방인들을 위해 저런 센터를 세웠지 않나 싶다. 갯벌의 생태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갯벌식물원을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갯벌생태 해설 프로그램도 신청할 수 있다니 말이다.
▼ 15 : 42. 갯벌센터의 뒤쪽. 너른 주차장 한켠에 ‘서해랑길 쉼터’가 들어서 있었다. 문제는 서해랑길 안내도가 그 옆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원래의 안내도(고창 42코스)는 1km쯤 더 걸어야 하는 ‘심원면사무소’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데도 말이다.
▼ 면사무소 앞에 있던 것을 뽑아왔다는 산악회장의 너스레가 아니더라도 이쯤에서 트레킹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구간을 이곳에서 시작하겠다는데 일부러 면사무소까지 찾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에 14.77km를 걸었다고 찍혀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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