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씨버선길(7), 치유의 길

 

여행일 : ‘21. 5. 1(토)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 일원

여행코스 : 우련전→영양·봉화 경계→칡밭목 삼거리→아름다운숲길 입구→일월산 자생화공원(소요시간 : 8.3km/ 실제는 9.77㎞를 2시간 35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외씨버선의 갸름한 모양새를 닮았다는 ’외씨버선길‘은 청송에서 시작해 영양과 봉화를 거쳐 강원도 영월에서 끝난다. ‘육지 속의 섬’들을 잇는 이 트레일의 길이는 총 240㎞. 13개 테마구간과 2개의 연결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오늘은 이 가운데 일곱 번째 길인 ‘치유의 길’을 걷는다. 4개로 나누어진 영양 권역의 마지막 구간으로, 우리의 역사적 아픔이 묻어있는 일제강점기의 광산을 둘러보고, 반변천 계곡 및 옛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걷게 된다. 이 구간의 가장 큰 특징은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오르막길이어서 느긋하게 산보하듯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요즘의 트렌드인 힐링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 들머리는 우련전(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중앙고속도로(춘천-금호) 풍기 IC에서 내려와 국도 5호선과 36호선을 이용해 봉화·울진 방면으로 달리다가 법전1교(봉화군 법전면 어지리)에서 국도 31호선으로 갈아타고 영양방면으로 내려오면 봉화와 영양의 경계인 ‘우련전’에 이르게 된다. 7길의 출발지는 원래 ‘일월산 자생화공원(영양군 일월면 용화리)’이나 우리 일행은 이곳 ‘우련전’에서 시작해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이곳 우련전에는 대형버스를 주차해 둘만한 공간이 없다니 어쩌겠는가.

▼ 외씨버선길의 일곱 번째 구간인 ‘치유의 길’은 일월산자생화공원에서 출발해 영양과 봉화의 경계인 우련전에 이르는 둘레길이다. 이 구간은 일제강점기의 시설들을 둘러보며 역사적 아픔을 느껴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허물어져가는 시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선광장을 구경한 다음, 광물을 나르던 구절양장의 옛 도로를 따라 걷게 된다. 새로운 도로가 뚫리면서 버려져 있던 이 길은 웰빙과 힐링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아름다운 숲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구간이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이곳은 7코스인 ‘치유의 길’의 종점이지만 ‘봉화연결길(7-1코스)’의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영양터널’의 왼편. 즉 ‘봉화연결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다 구간 안내도를 세워두었다. 또한 봉화군의 특징 및 특산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워 봉화권역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 이곳 ‘우련전’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도 보인다.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의 명당이라며,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묘를 써오던 지역이라고 적었다. 또한 1801년 신유박해 때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안드레아)의 종조부 김종한(안드레아)이 30명의 신도와 함께 숨어살던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하단다.

▼ 영양터널을 가운데에 두고 오른편으로 난 시멘트포장길(일월산길)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낙엽송과 소나무가 길게 도열해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 제대로 된 구간안내도는 이곳에 세워져 있었다. 7코스(치유의 길)와 7-1코스(봉화연결길)의 지도와 함께 구간의 특징을 적었다. ‘낙동정맥트레일’ 안내판도 보인다. ‘낙동정맥’이란 백두대간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와 백병산·주왕산·단석산·취서산·금정산 등 수많은 명산들을 일군 후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그 숨을 다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산림청에서 낙동정맥 일원의 풍부하고 수려한 산림자원과 역사·문화자원 등이 분포된 거점마을들을 연결하는 도보 중심의 숲길을 만들고 ‘낙동정맥트레일’이란 이름을 붙였다.

▼ 세상은 요즘 초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길가 벚나무들은 이제야 꽃망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곳 우련전의 해발고도는 무려 700m. 지대가 하도 높다보니 계절까지도 늦게 찾아오는가 보다.

▼ ‘일월산길’은 엄연한 차도이다. 하지만 차선은 하나뿐이다. 길가 곳곳에 ‘차량 교행지역’을 별도로 만들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 20분쯤 걸었을까 첫 번째 삼거리를 만났다. 이정표(대티골 입구 5.8㎞/ 영양터널 1.6㎞)는 갈림길에 개의치 말고 곧장 직진하란다. 하긴 군 직영의 산나물 채취 체험장이라서 입산을 금지한다는 경고용 현수막까지 걸려있으니 누가 그쪽으로 가겠는가. 그나저나 이곳에는 ‘일월산 등산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부근 어디쯤에 등산로 입구라도 있는 모양이다.

▼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이 길은 엄연한 차도이다. 심심찮게 오가는 차량들이 그 증거라 하겠다.

▼ 심심산골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지 말란 법은 없나보다. 해발고도가 800m에 가까운데도 민가가 들어섰고, 주위에는 널따란 경작지까지 딸려있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고랭지 채소를 기르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 8분쯤 더 걸었을까 탐방로가 차도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숲속으로 파고든다. 우리 부부도 이정표(일월산 자생화공원 6.1㎞/ 우련전 2.2㎞)가 지시하는 대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 들머리에서부터 보아오던 ‘황씨 부인당’은 이곳에서 이별을 고한다. 월자봉 정상 근처에 ‘황씨부인당’이 있으니 일월산으로 올라가는 도로와 헤어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왕에 나왔으니 이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황씨 부인’에 대한 설화도 한번 살펴보자.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이 처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신혼 첫날 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 문에 어린 칼날의 그림자를 보고, 연적이 숨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게 된다. 마당의 대나무 잎 그림자를 칼날로 잘 못 본 것이다. 새신랑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을 쳤고,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도 벗지 않은 채 신랑을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오해를 푼 신랑은 신부의 주검을 수습하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한다는 내용이다. 황씨 부인의 당시 심정은 조지훈(趙芝薰)의 시 ‘석문(石門)’에 잘 나타나 있으니 한번쯤 읽어볼 일이다.

▼ 잠시 후 물기 하나 없는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낡은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이 개울이 영양군과 봉화군의 경계라도 되는 모양이다.

▼ 탐방로는 한마디로 곱다. 자갈 하나 박히지 않은 순수한 흙길이 그지없이 폭신폭신한데다 경사까지도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연록으로 물들어가는 초목들이라니. ‘연록은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 어느 현자는 길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항상 편한 길만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생을 험한 길만 걷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탐방로는 이내 인간의 손때가 잔뜩 묻은 포장길로 올라선다. 이어서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칡밭목 삼거리’에 이른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0분 만이다. 이곳은 ‘대티골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한데, 이를 알리려는 듯 외씨버선길의 이정표(일월산 자생화공원 5.7㎞/ 우련전 2.6㎞) 외에도 대티골 숲길의 이정표(숲길 입구←/ 칡밭목↑/ 일월재↓)를 세워놓았다. 칡밭목 방향으로 직진할 경우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로 이어지고, 외씨버선길은 물론 왼편 옛 국도를 따른다. 참고로 ‘칡밭목’이란 지명은 칡이 산을 덮고 있어 칡을 일부러 심어 놓은 밭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음으로는 ‘갈전(葛田)’이 된다.

▼ 이곳은 갈림길이라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지점이다. ‘치유의 길(외씨버선 7길)을 완주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어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이후부터는 옛 국도를 따른다. 이 길은 지금의 국도(31호선)가 생기기 전,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옛 국도로 일제 강점기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군 장군광업으로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제가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시켜 닦은 길이기 때문에 ‘수탈의 길’로 불리기도 했다.

▼ 그런 아픔의 역사는 모퉁이에 세워놓은 빛바랜 이정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양 28㎞’. 옛날 국도로 명맥을 이어가던 시절의 이정표라는데 판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낡아있다. 그래선지 곁에 안내판 하나를 세워 이해를 돕는다. 일제 때의 광물수송과 해방기의 목재수송으로 활기를 띠던 이 길은 새로운 국도가 놓이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웰빙과 힐링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단장되어 명품 둘레길로 다시 태어났고, 현재는 외씨버선길을 오가는 이들의 도우미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군데군데 돌로 쌓고 무너져 내린 흙을 치우며 다듬은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대티골 사람들이 숲길을 되살리기 위해 손을 댄 흔적들이란다. 옛 국도는 1990년대 초 새로운 길이 놓이면서 잊혀 갔다. 아니 잊혔다기보다는 자연 스스로가 인간들에게 짓밟혀온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다가 대티골 사람들이 무너진 흙을 치우고 허물어진 곳은 돌을 쌓아 북돋웠다. 그들은 옛 국도에 그치지 않고 댓골길·옛마을길·칠(칡)밭길 같은 옛길도 ‘아름다운 숲길’로 되살렸다. 길 중간중간에 벤치를 놓아 쉼터를 만들고 이정표를 세웠다. 그렇게 정성들여 가꾸면서 방치되었던 옛길이 그 어느 길보다 아름다운 숲길로 다시 태어났고, 이 같은 노력으로 대티골 숲길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아름다운 어울림 상’을 받았다.

▼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은 찾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았을 비포장 옛 국도, 그것도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난 옛 도로를 걷는 것은 흔치 않은 매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 길은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오르막 구간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이 정도라면 원래의 순서대로 자생화공원에서부터 시작했어도 느긋하게 산보하듯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으로 내려가고 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을 수 있는 이유이다.

▼ 콧노래 흥얼거리며 6분쯤 걸었을까 벤치에 정자까지 갖춘 의젓한 쉼터가 나타난다. 옛 길의 아픈 흔적들을 눈에 그치지 말고 느긋이 쉬면서 가슴에까지 담아가라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정자 옆에 세워놓은 이정표(숲길 입구↑/ 진등→/ 칡밭목↓)가 이채롭다. 솟대를 머리에 이었는가 하면 아름다운 숲길의 지도를 두 개나 달고 있다. 참! 이곳에서 ‘진등’ 방향으로 내려가면 반변천의 발원지인 ‘뿌리샘’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산자락에는 금강소나무와 활엽 교목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다.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탐방로는 그 사이를 헤집는다. 네댓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다. 이런 곳에서는 혼자 생각에 잠겨 걸어도 좋고 여럿이 수다를 떨며 걸어도 좋다. 숲의 청량한 숨소리만이 가득한 옛길을 서두르지 않고 걸어본다.

▼ 아름다운 숲길로 들어선지 30분 만에 만난 두 번째 쉼터에서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합류했음은 물론이다. 우리 부부의 간식은 막걸리와 과일. 요기만 때우면 되기에 일행들과 나눠 마시면서 주변 풍광에 대한 담소로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 또 다시 길을 나서는데 이때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대티(大峙)’. 아니 정확히는 ‘윗대티’ 마을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하루해가 반나절도 못되어 떨어질 정도로 좁디좁은 계곡에 들어앉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참고로 대티골은 일월산의 북동사면 해발 450~600m에 자리한다. 낙동강 상류 지류인 반변천의 발원지이며 영양군의 젖줄을 간직한 청정자연지역으로 각종 산나물과 약초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티라는 지명은 한자어 ‘큰 대(大)’와 ‘언덕 치(峙)’에서 유래한 것으로 '치'가 구개음화에 따라 '티'로 소리가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 비록 잠시지만 황금빛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걷기도 한다. 크게 자란 소나무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풍경이 여간 멋진 게 아니다.

▼ 15분쯤 더 걸었을까 ‘웃대티’ 마을로 연결되는 도로에 내려섰다. 이정표는 이곳을 ‘아름다운 숲길 입구’로 적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외씨버선 조형물’과 쉼터용 정자 외에도 아름다운 숲길과 관련된 입간판들이 여럿 세워져 있었다. 참! 이곳의 이정표(일월산 자생화공원 2㎞/ 우련전 6.3㎞)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이다. 완주를 인증해줄 사진을 찍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 산림청과 유한킴벌리 등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의 주최기관에서 세워놓은 안내판부터 살펴보자. 대티골 숲길이 제10회 대회 때 ‘어울림상’을 수상했다면서 일월산의 넉넉함을 품은 대티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자 옆에 세워놓은 ‘아름다운 숲길’의 안내도는 ‘하늘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영양에 허락해 주셨다’는 자랑과 함께 시작된다. 옛 국도를 살리고, 옛 사람들이 지게지고 걷던 옛길을 보수해서 만든 이 길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서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힐링까지 해보란다. 천천히 영양이 빨리빨리 지구촌을 힐링해 준다면서 말이다.

▼ 탐방로는 이제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시야가 툭 터지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는 삭막한 풍경이 잠시 동안 펼쳐진다. 도로의 오른편은 일월산. 그러나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작은 봉우리들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꼭대기는 보이지도 않는다. 참! 반대방향으로 가면 윗대티를 거쳐 반변천 발원지인 ‘뿌리샘’에 이른다고 했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은 낙동강 본류와 합류해 멀리 부산 다대포까지 흘러갔다가 바다가 된다.

▼ 볼거리가 없다고 읽을거리까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곳곳에 세워놓은 시판(詩板)을 살펴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석판에 새겨 넣은 게 돋보이는데, 영양이 낳은 걸출한 시인인 조지훈과 오일도의 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작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 그렇게 잠시 걷자 ‘천문사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수식어로 달아놓은 ‘일월산 황씨부인당’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다른 표지판은 아예 토속신앙의 본거지이며 무속인 전문기도도량이라고 적었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황씨부인 설화는 신랑의 어리석은 오해로 인해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버림받은 여인이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다가 한을 품고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절은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 그러나 곁눈질로 본 전각에는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의 표시라는 ‘卍’자가 또렷했다. 맞다. 저곳은 ‘대한불교 천불종(개그맨이던 황승환이 새로운 행보를 보이는 곳이다)’의 총본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법당이랄 수 있는 ‘천하대불전’에 부처님 대신 천지신명을 모셨고, 후불탱화도 옥황상제와 칠성, 팔선녀 등을 세운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온전한 사찰은 아닌 게 확실하다.

▼ 천문사 앞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이제 낙동강 상류 쪽 지류인 반변천 계곡 옆길로 이어진다. 소박한 돌길이다. 거기다 한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오히려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진다.

▼ 반변천을 만들어가는 저 물길은 꼬맹이 폭포와 소(沼)를 만들어가며 흘러간다. 그러다보니 짙푸른 물빛을 보일 정도로 깊은 곳도 더러 있다. 그런데도 속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물이 맑다. 그러기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동물인 수달과 담비가 살아가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 부근에 ‘선녀탕’이란 명소가 있다고 했는데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 탐방로는 단풍 군락지 사이를 누비기도 한다. 일부러 식재한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여간 신선한 게 아니다. 전국이 온통 벚꽃으로 치장된 탓에 봄만 되면 이곳이 혹시 일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나만의 기우일까?

▼ 이렇게 예쁜 길. 그것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외씨버선길에 포토죤 하나 없을까. 요즘 부쩍 인생샷에 목말라하는 집사람이 냉큼 포즈부터 잡고 본다.

▼ 단풍 터널을 벗어나자 예쁘장하게 생긴 다리가 길손을 맞는다. 단풍터널과 닿아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빨강색을 입혔는가 하면, 반대편에는 이름표 대신 단풍잎 조형물을 매달아놓았다.

▼ 다리를 건너면 대티골 마을의 ‘어울림터’이다.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자연생태 우수마을(환경부)’. ‘식생활 우수체험공간(농림축산식품부)’, ‘농촌체험 휴양마을, 으뜸촌’. ‘팜스테이 인증마을’ 등 외벽에 걸려있는 갖가지 인증 표식들이 이 마을의 화려한 이력을 알려준다. 맞다. 해발 450~600m에 위치한 오지마을인 대티골은 현재 자연치유와 생태를 결합한 자연치유생태마을로 새롭게 태어났다. 방문객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어울림 터를 지나면서부터는 개울의 오른편 경사지를 따른다. 추락주의 안내판까지 세우는 친절을 베풀고 있으나 둘이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폭이 넓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 몇 걸음 더 걷자 잘 지어진 초가가 몇 채 나타난다. ‘일월산 한우네’라는 소고기 전문식당인데 저 건물들은 취사가 가능한 민박용으로 사용된단다. 황토벽에 초가라니 힐링을 찾아 대티골에 오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라 하겠다.

▼ 식당을 비켜 지나자 탐방로는 처마에 매달린 제비집을 연상시키는 잔도(棧道)를 따른다. 선반을 달아내듯 개울가 석축에다 데크로 길을 내놓은 것이다.

▼ 이어서 ‘대티골’의 마을안길로 들어섰다. 아니 아까 눈여겨 살펴봤던 마을이 ‘웃대티’였으니 이곳은 ‘아랫대티’라고 하는 게 옳겠다. 마을에 들어서자 황토벽에 구들을 놓았다는 민가가 눈길을 끈다. 2008년엔가 대티마을이 경상북도가 지원하는 ‘부자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황토펜션이 들어서게 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런 가옥들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기사는 발효식품가공공장, 생활하수 정화시설, 농산물판매장 등의 신설과 함께 등산로 및 산악자건거도로 정비도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 대티골의 마을 안길을 빠져나와 국도로 올라선다. 그러자 트레킹이 종료되는 ‘일월산 자생화공원’이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면 트레킹이 종료된다는 얘기이다. 참! 길가 버스정류장은 ‘용화2리’라는 지명을 쓰고 있었다. 용화(龍化)란 지명은 옛날 이곳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모두 승천하자 그곳에 용화사라는 절을 지은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절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명만 남아있는 셈이다.

▼ 도로변에는 이곳 대티골이 ‘자연치유 생태마을’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지던 자연환경을 최근의 트렌드인 건강과 웰빙에 맞게 꾸밈으로써 도시민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들은 일월산 등산로를 자연치유 생태길로 조성하는 한편, 지역 특성에 맞는 웰빙자연식품인 산마늘과 두메부추, 산나물 등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여 체험환경을 조성했단다.

▼ 자생화공원에 이르기 직전. ‘용화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서려는데 밭일을 하던 주민이 길이 없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10여m쯤 되돌아가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라며, 이정표를 엉뚱한 곳에다 세워놓은 탓에 나처럼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넋두리까지 대신 해준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삼층석탑은 마을 중간에 덩그러니 홀로 서있었다. 절은 사라지고 탑만 혼자 남아 있는 것이다. 통일신라 때 건립되었다니 천년도 넘는 문화재이련만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 삼층석탑과 붙어있다시피 한 ‘일월산 자생화공원’은 일월산과 그 주변 자락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봄·여름·가을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오랫동안 불모지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일제 점령기인 1930년대에 문을 열어 채산성 악화로 폐광된 1976년까지 금·은·동·아연 등을 이곳에서 제련한 후유증 탓이다. 제련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를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토양이 심하게 오염되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고 인근 계곡은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채로 30년간이나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1년도에 오염원을 완전 밀봉하여 매립한 후 객토를 실시하여 공원 부지를 조성하고 각종편의 시설과 야생화를 식재함으로써 전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 그런 아픈 추억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는 듯 공원의 뒷면에 있던 옛 시설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산을 파고 들어간 가로 30m, 세로 80m 크기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일제가 광물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옛 선광장(選鑛場)이다. 일월산에는 금·은·동·아연이 많이 났는데 1939년부터 일제는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물을 이곳으로 운반해 선별하고 제련했다고 한다. 당시 제련소 종업원은 500여명에 달했고, 인근에는 주민이 1천200여 명이나 거주했단다.

▼ 안내판은 이 시설을 선광장(選鑛場)으로 적고 있었다. 선광장은 채굴된 광물이 분쇄·분리·선별·탈수 과정을 거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시키는 공간이다. 하지만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배치된 시설들 중에는 제련시설로 여겨지는 것들도 보였다. 아무튼 근대기의 이 산업시설은 당시의 선광 공정을 알 수 있으며, 근대 광업 발달사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등록문화제 제255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 선광장의 꼭대기에는 용화광산(龍化鑛山)의 흔적인 듯 갱구와 광차가 복원되어 있었다.

▼ 선광장의 꼭대기에 올라서자 야생화공원의 전모가 낱낱이 드러난다. 5,475평의 널따란 부지에 일월산과 주변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향토 수종이 심어져 있는가 하면, 주차장·화장실·정자 같은 편의설도 들어서 있다. 꽃밭의 상황은 전문가의 시선을 빌어보자. <분홍 철쭉꽃, 노란 기린초 꽃, 보라색 패랭이꽃, 하얀 조팝나무 꽃, 작고 흰 개망초 꽃, 하얀 보리수 꽃, 노랗고 자그마한 화살나무 꽃 등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봄의 축복이자 향연이다. 6월에는 더 많은 종류의 꽃들이 핀다고 한다.>

▼ 액자 모양으로 생긴 포토죤도 만들어놓았다. 철쭉무리가 그 붉은 꽃망울을 활짝 열어젖힌 공원은 물론이고 뒤의 선광장까지 틀의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명당자리이다. 이를 놓칠 집사람이 아니다.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풍경과 함께 하겠다며 액자 속으로 냉큼 들어가고 본다.

▼ 트레킹 날머리는 자생화공원 전망대

선광장의 꼭대기 말고도 공원의 전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다. 공원 앞 도로변에 만들어놓은 전망대인데 이번에는 선광장 시설까지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다. 그나저나 오늘 트레킹은 2시간 35분(공원 둘러보는 시간 포함)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9.77㎞. 안내지도가 제시하는 소요시간보다 훨씬 덜 걸렸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우련전 698m)에서 시작해 낮은 곳(자생화공원 469m)으로 내려가는 역방향으로 걷다보니 속도를 낼 수 있었나 보다.

▼ 외씨버선길의 구간 안내도는 낙동정맥트레일 안내판과 함께 주차장 옆에 세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