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露積峯 또는 구나무산, 859m) – 옥녀봉(玉女峰, 507m)
산행일 : ‘17. 6. 10(토)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과 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조옥동 구종점→옥녀봉→헬기장→구나무산(노적봉)→대원사 갈림길→사거리 안부→임도→계곡→75번 국도 ’이곡리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4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바위다운 바위 하나 볼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때문에 눈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산세(山勢)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옥녀봉의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 또한 트이지 않는다. 흙산이 갖고 있는 일번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우선 흙산의 특징대로 산행이 편하다.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데다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세상에 덜 알려진 탓에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보통의 등산객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눈요깃거리는 차지하고라도 가슴에 담아둘만한 역사나 문화가 일절 없는 밋밋한 산이기 때문이다.
▼ 산행 들머리인 조옥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가평읍까지 와야만 한다. 광역버스(1330-2)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경춘선 전철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驛舍)를 빠져나와 길 건너 버스승강장에서 33-35번 군내버스로 갈아탄다. 이때 출발시간을 미리 알아두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차 간격이 2시간 가까이나 될 정도로 늘어지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조옥동 구종점(경기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412-3 )
용추폭포 방향으로 20분쯤 달리다가 조옥동(가평읍 승안리)에서 내리면 된다. 이어서 용추폭포 방향으로 10분쯤 더 걸어 들어가면 화장실을 갖춘 널따란 공터가 나온다. 산행들머리인 조옥동 옛(舊) 버스종점이다. 하지만 이곳 구종점에서 내릴 수도 있었지 않나 싶다. 손님이 원하는 곳에 내려주는 게 군내버스의 장점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참고로 ‘조옥동’은 냇물이 너무 맑아서 돌들이 마치 옥처럼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용추구곡은 조선조 때인 1876년 성재 유중교 선생이 이곳의 풍광에 반해 이름을 지었다는 경승지이다. 상류인 칼봉산쉼터 위 구라우골 입구에서 내곡분교터 방면 50m 거리인 농원계를 제9곡으로해서 하류로 내려오며 구라우골 입구 아래 제8곡 귀유연, 칼봉산쉼터 위 인골 초입인 제7곡 청풍협, 칼봉산쉼터 아래인 제6곡 추월담, 물안골 입구 아래 잣창고 주변인 제5곡 일사대, 잣창고와 중산리 사이인 제4곡 고슬탄, 중산리매점 앞 제3곡 탁영뢰, 미륵바위 앞 계류인 제2곡 무송암, 그리고 지금의 용추폭포를 일컫는 제1곡 와룡추 등을 말한다.
▼ 화장실 건물 뒤편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옥녀봉→ 1.6Km, 노적봉 4.4Km/ 연인산↑ 12Km/ 탐방안내소↓ 0.7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정표 외에도 ‘입산시 주의사항’을 적어놓은 안내판과 옥녀봉 입양사업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잣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울창창한 것이 잣의 본고장에 들어섰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잣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온몸으로 퍼지는 송진 내음에 황홀함마저 느끼게 된다. 천국이 따로 없다. 세상 시름 다 잊고 잣 향기에 취해 그저 천천히 걷고 또 걷고 싶다. 하지만 여건을 그렇지 못하다. 산길의 경사가 만만찮게 가파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 잣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효과 덕분일 것이다. 피톤치드는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휘발성 물질이다. 잣나무의 피톤치드는 다른 나무에 비해 월등한 효과가 있어 각종 감염 질환이나 아토피 질환 등은 물론 면역력을 좋게 해줄 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잣나무가 자연의 명의인 셈이다. 참고로 잣나무는 2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 기다림의 나무다. 사람이건 다람쥐건 급하게 서두른다고 잣을 얻을 수는 없다. 귀한 잣을 얻기 위해서는 꽃이 피고도 꼬박 1년을 넘겨 다음 해 가을이 되어야만 잣을 수확할 수 있다.
▼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걸음을 재촉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힘만 더 들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운 채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느긋하게 내딛어본다. 숲에 몸을 맡기다보니 머리로 알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맑은 공기 덕분에 깨어난 온몸의 감각들이 이제 옥녀봉의 숲을 자세히 더듬어 느끼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숲은 참나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 하늘을 가릴 듯 쭉쭉 뻗어난 숲길을 따른다. 그러다가 의외의 풍경을 만난다. 끝까지 육산(肉山)일 것만 같았는데 뜬금없이 뾰족뾰족한 바윗길이 나타난 것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라 할 수는 없어도 생김새 또한 괜찮은 편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지만 잠깐의 눈요기로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 산길은 계속해서 가파르지만은 않다. 가끔은 완만한 구간도 나타난다는 얘기이다. 그게 비록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다. 문득 반반한 곳에다 벤치라도 놓아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진다.’라는 속담이 딱 맞는 가 보다.
▼ 봉우리를 넘기도 한다. 가파르면서도 긴 오르막에 짧은 내리막 구간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 당연히 봉우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육산의 특징대로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갈림길 등의 주요 지점마다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주요 지점들의 사이가 멀 경우에는 중간 중간에까지 세워 두는 배려까지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옥녀봉까지 1.6Km쯤 되는 구간에 4개나 설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촘촘히 세워져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양쪽 기점의 이정표는 뺀 숫자이다. 들머리의 안내판에서 ‘연인산도립공원’이라는 문구를 보았는데, 과연 그에 걸맞은 관리가 아닐까 싶다.
▼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시야(視野)가 열린다. 전형적인 흙산인지라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바닥을 살펴보니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고 보니 올 4월 중순엔가 옥녀봉의 산불소식이 언론 매체를 탄 적이 있었다. 가평읍 경반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4ha의 산림을 불태웠는데, 이 산불을 끄기 위한 이틀간의 진화작업에 소방서와 군청, 군부대 등 752명의 인원과 헬기 7대를 포함한 진화장비 30대가 동원되었다고 했다. 아무튼 인근 군부대의 박격포 사격훈련 중 발화된 화재라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숲을 다 태워버린 것은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덕분에 시야가 활짝 열리면서 멋진 조망을 선사하는 것이다. 가평시가지가 거칠 것 없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물안산과 마루산도 보인다. 시가지의 뒤에서는 삼각산과 강선봉, 그리고 검봉산이 파도치듯 넘실거리고 있다.
▼ 불타버린 능선의 경사가 가팔라진다 싶더니 산길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계속해서 능선을 타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희미하지만 능선으로도 길은 나있다. 갈 길 바쁜 산꾼들이 치고 올랐던 흔적일 것이다. 우린 또렷하게 나있는 왼편 길로 향한다. 오뉴월 뙤약볕에 시달리는 고생을 일부러 사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2~3분쯤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난 길의 흔적이 보인다. 이 역시 갈 길 바쁜 산꾼들이 내놓은 흔적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5분쯤 진행하면 능선 안부(이정표 : 옥녀봉→ 0.1Km/ 노적봉← 3.0Km/ 탐방안내소↓ 2.2Km)에 올라선다. 구나무산은 왼쪽 방향의 능선을 타야 한다. 오른편에 있는 옥녀봉에 오른 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가파른 능선을 5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옥녀봉 정상(이정표 : 노적봉 3.1Km, 탐방안내소 2.3Km/ 탐방로 아님)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7분만이다. 옥녀봉이란 이 산을 멀리서 바라볼 경우 마치 선녀가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는 형국처럼 그 모습이 완연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6·25 사변 전까지만 해도 안개 끼고 날씨 그윽한 날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시야에 잡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명품 종주코스로 알려진 ‘몽․가․북․계’이다. 몽덕산과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이 마치 파도라도 치는 양 넘실대고 있다. 불기봉과 청우산도 보인다.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은 아마 호명산과 주발봉일 것이다. 가평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옴은 물론이다. 그쪽 방향의 보납산 뒤에 납작 엎드려 있는 덩어리들은 아마 남이섬과 자라섬일 것이다. 용추계곡의 뒤에서 하늘금을 이루는 칼봉산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뒤에는 깃대봉과 대금산이 버티고 있다.
▼ 정상은 텅 비어있다. 그렇다고 정상표지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곳에다 세워놓았으니 잘 찾아보라는 얘기이다. 일단은 이정표가 ‘탐방로 아님’이라고 표기해 놓은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찜찜하기는 해도 어쩌겠는가. 그래야만 정상석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헬기장을 내려서서 너덧 걸음만 더 걸으면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석을 만나게 된다.
▼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산행을 이어간다. 이번에는 노적봉 방향이다. 구나무 산으로 가야하는데 웬 노적봉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구나무산과 노적봉은 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구나무산이었는데 지난 99년에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산 이름을 노적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노적봉의 높이가 859m이니 옥녀봉 보다는 350m 정도가 더 높다. 하지만 두 봉우리 사이의 거리가 3Km나 되다보니 서둘러가며 고도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중간에 두 개의 이정표(노적봉까지의 남은 거리가 2.4Km와 1.7Km를 각각 남겨 놓은 지점)를 만나기도 한다. 걷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걸을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렇게 45분쯤 진행하면 750m봉 헬기장에 닿는다. 일부 등산객들이 종종 노적봉 정상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봉우리이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희미하게나마 왼편으로 길이 나있는 게 보인다. 이정표(노적봉↗ 1.1Km/ 탐방로↖ 아님/ 옥녀봉↓ 1.9Km)에는 ‘탐방로 아님’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용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노적봉의 정상에 다 왔다고 보면 된다. 헬기장의 높이가 750m이니 고도(高度)도 100m만 더 높이면 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산길은 완만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 바닥은 보드라운 흙길이다. 느긋하게 걷기에 딱 좋다고 보면 되겠다. 중간에 갈림길(이정표 : 노적봉↑ 0.4Km/ 탐방로 아님↙/ 노적봉↓ 2.6Km) 하나가 보이나 개의치 않기로 한다.
▼ 가끔은 이런 괴목(怪木)도 보인다. 그만큼 산이 깊다는 증거일 것이다.
▼ 지금 걷고 있는 이 산줄기는 ‘한북연인구나무(노적)단맥’의 일부 구간이다. ‘일대간 일정간 십삼정맥(一大幹一正幹十三正脈)’ 중의 하나인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작은귀목봉에서 동쪽으로 분기(分岐)하여 귀목봉과 연인산(우목봉), 매봉, 대금산, 불기산, 호명산을 일구고 난 후 북한강에서 그 숨을 다하는 산줄기를 ‘한북연인지맥(漢北戀人支脈)’이라고 한다. 이 한북연인지맥의 대표격인 연인산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장수봉과 송학봉, 바른골봉, 구나무산(노적봉). 옥녀봉 등으로 이어지다가 가평천으로 잦아드는 약 15km 정도의 산줄기가 ‘한북연인구나무(노적)단맥’이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진행하면 노적봉(구나무산) 정상에 올라선다. 옥녀봉을 출발한지 75분 만이다. 밋밋한 구릉(丘陵)처럼 생긴 정상은 아무런 특징도 없다. 눈에 담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이다.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까지도 터지지 않는다.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한두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장수고개↗ 3.0Km/ 탐방로 아님↖/ 옥녀봉↓ 3.0Km), 그리고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노적봉의 원래 이름은 구나무산이다. 구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구나무는 참나무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껍질이 두꺼워 병마개 재료로 쓰인다. 그러다가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노적봉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평 읍내나 북쪽 목동으로 빠지는 길목인 마장리 일원에서 올려다볼 때 노적가리를 쌓아올린 듯 뾰족하게 생겼다는 게 이유란다.
▼ 하산을 시작한다. 장수고개 방향이다. 반대편에서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석인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장수고개나 대원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인 모양인데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삼거리를 노적봉의 정상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정상석이 세워진 위치를 알려주고 몇 걸음 더 걸으니 삼거리(이정표 : 대원사↗ 3.2Km/ 장수고개↖ 3.5Km/ 옥녀봉↓ 3.2Km)가 나온다.
▼ 대원사로 방향을 잡는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경사가 거의 없어 내려서는 게 조금도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대원사까지의 거리가 3.2Km나 남아있다 보니 서둘러서 고도를 떨어뜨릴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 삼거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단풍나무가 그 개체수를 많이 늘렸다. 주종인 참나무보다도 오히려 더 밀도(密度)가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단풍철에 다시 한 번 찾아와야 하지 않나 싶다. 불타오르는 산하를 즐겨보기 위해서 말이다.
▼ 어른 둘이 손을 맞잡아야만 끝이 맞닿을 수 있을 정도로 허리통이 굵은 참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오래 묵은 탓에 그 생김새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고목(古木)들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진달래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아니 수달래(물철쭉)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 노적봉은 가을철뿐만 아니라 봄나들이에도 어울리는 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저 편안하게 걸으며 숲과 하나가 되는 여정을 만들어나간다. 푸른 숲에만 시선을 고정하다 잠시 잠깐 하늘 한번 올려다보니 강렬한 햇살이 눈부시다. 고개를 돌려 또다시 숲의 너그러운 품으로 돌아오니 이제야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숲의 넉넉하고 푸근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다 보면 이제까지의 힘들었던 산행의 기억쯤은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 비록 잠깐이지만 바위지대도 나타난다. 그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생김새마저도 보잘 것이 없었지만 하도 바위가 귀한 산이라서 카메라에 담아 봤다.
▼ 그렇게 30분쯤 걸으면 이정표(대원사 2.0Km/ 노적봉 1.2Km) 하나가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정표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길이 둘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더 희미할 뿐만 아니라 능선을 벗어나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까닥 잘못하다간 오른편 능선, 즉 가평읍과 북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능선을 계속해서 타버리기 십상이라는 얘기이다. 우리 역시 그런 우(愚)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 잠시 후 이름 없는 어느 봉우리에 올라선다. 길은 아직도 또렷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붕을 씌워놓은 군(軍)의 벙커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후관리를 해오고 있는 듯 아직까지도 외관(外觀)이 멀쩡하다.
▼ 얼마쯤 내려섰을까 잣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그 숲길 군데군데 잣송이 들이 떨어져 있다. 마치 숲의 전령들이 길을 찾느라 떨어뜨려 놓은 조약돌 같다. 그 잣송이들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사람들은 잣나무를 늘 푸른 나무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사계절의 변화가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푸르름이 절정에 달하는 초여름, 즉 지금이 아닐까 싶다.
▼ 가끔은 작은 봉우리들을 넘기도 한다. 그중 어떤 봉우리는 잠깐의 눈요기로는 충분하다 싶을 정도의 경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나무와 바위들이 잘 어우러지며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 조금씩 가팔라지던 내리막길이 언제부턴가 엄청나게 심해져 버렸다. 주변 나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쉽게 내려설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내리막길이다. 길의 흔적 또한 희미해져 버렸다.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이 와버렸기 때문이다.
▼ 길을 잘못 들어선지 50분쯤 되었을까 십자안부가 나타난다. 좌우로 난 임도가 제법 또렷하다. 계속해서 능선을 타느냐 아니면 이쯤에서 산을 내려갈지를 놓고 고민이 시작된다. 결국에는 후자를 택하기로 한다. 길도 또렷하지 않은 능선을 계속해서 탄다는 게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 왼편(북면 방향)으로 내려선다. 제법 너른 임도이지만 수월하지는 않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탓에 넝쿨식물들이 길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반바지를 입은 최군의 수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길을 잘못 들어서버린 것을. 그게 비록 혹독하겠지만 말이다.
▼ 10분 남짓 내려섰을까 암벽이 잘 발달된 계곡이 나타난다. 협곡(峽谷)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규모까지도 제법 크다. 충분하게 물이 흐를 경우 쉽게 만날 수 없는 비경(祕境)으로 변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간의 가뭄이 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 길은 계곡을 끼고 나있다. 물길을 옆에 끼고 가다가 어떤 때는 물길을 건너기도 한다. 또 바위벼랑이 크고 험한 곳에서는 산자락을 치고 오르기도 한다. 그 암벽들에 물이라도 흐른다면 멋진 폭포를 만들어낼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 그렇게 20분쯤 진행하면 집단으로 조성된 듯한 집들이 나타난다. 철조망 안에 갇혀있는 집들이 하나같이 멋지다. 하지만 인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돈 깨나 있는 사람들이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 산행날머리는 75번 국도 ’이곡리 버스정류장’(가평군 북면 이곡리)
민가의 아래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이곡교회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마을이 나오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75번 국도를 만나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이 걸렸다. 준비해간 음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50분을 쉬었으니 실제 걸은 시간은 4시간 10분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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