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우이도 상산봉(358.6m)
산 행 일 : ‘14. 5. 5(월)
소 재 지 : 전남 신안군 도초면(우이도)과 비금면
산행코스 : 진리항→선창구미 갈림길→기암(奇巖)→비탈길→바위능선→상산봉→진리고개(몰랑)→대초리 폐허(廢墟)→대초리고개→돈목해수욕장(소요시간 : 2시간5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우이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리나라에 가장 빼어난 모래언덕이라는 ‘풍성사구(風成砂丘)’이다. 그러나 또 하나 빼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상산봉 산행이다. 우이도는 비록 자그마한 섬에 불과하지만 섬 전체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산세(山勢)는 자못 옹골차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르내릴 때 짜릿한 손맛을 즐길 수도 있고, 또한 암릉에서의 다도해(多島海) 조망(眺望)은 자못 빼어나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누구나 한번쯤은 꼭 올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코스는 오늘 우리가 걸었던 코스를 권한다. 스릴(thrill)과 조망이 가장 뛰어난 코스이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진리선착장(船着場)
선착장에서 진리마을을 향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진리 삼거리’(이정표 : 상산봉 2.6Km, 돈목2구 모래언덕 3.5Km, 손암 정약전 적거지 600m/ 우이도출장소 170m, 문순득 생가 155m/ 진리선착장 480m)에서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상산봉 방향이 아닌 마을방향, 그러니까 ‘도초면사무소 우이출장소’ 방향으로 들어선다. 이정표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이유는, 오늘 걷게 될 코스가 진리고개를 경유하여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보다 더 험하기는 하지만 암릉에서의 멋진 조망(眺望)과 짜릿한 스릴(thrill)을 훨씬 더 즐길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 옛날 정취를 물씬 풍기는 마을 안길을 통과한 후, 밭두렁을 밟으며 마을 뒤편 산자락에 붙는다. 개척 산행을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길은 또렷하다. 그게 마음이 놓였는지 방금 지나온 진리마을을 뒤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긴다. 의외로 큰 마을이다. 우이도로 들어오는 뱃속에서 만났던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진리마을에만 60호 정도가 모여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그녀의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폐교(廢校)가 되었지만 말이다.
▼ 선착장을 출발한지 22분쯤, 산자락으로 들어붙고 나서는 10분쯤 후에는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선창구미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는 지점이다. 일반적으로 안부에 오르기까지가 힘이 드는 것이 보통인데, 땀방울을 흘리기도 전에 안부에 올라섰으니 오늘 산행은 별로 힘들지 않은 산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이 짐작이 섣부른 오산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주능선까지 올라서려면 다시 한 번 산비탈과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 안부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흙길에다가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오르는데 조금도 힘들이 들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13분쯤 걸으면 난데없이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 위에는 흔들바위를 닮은 예쁜 바위 하나가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다. 성질 급한 집사람이 냉큼 바위로 달려가더니 일단 밀어붙이고 본다. 아마도 움직여질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금방 굴러갈 것 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서너 명이 한꺼번에 밀어도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위 위로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다도해(多島海)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보고 있는 지대가 낮아서인지 섬들은 그저 옆모습만 보일 따름이다.
▼ 흔들바위를 지나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산길이 임도(林道) 수준으로 넓어지면서 능선을 벗어나 산자락의 사면(山斜面)을 째며 왼편으로 휜다. 사진을 찍으며 가느라 일행에서 약간 뒤처져있는데, 앞에서 일행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부는 오른편 산비탈을 따라 오르고, 또 일부는 갑자기 좁아진 임도를 따라 곧장 나아가고 있다. 흔들바위에서 6분쯤 되는 지점으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곧장 임도를 따를 경우에는 지금은 인적이 끊겨버린 예리마을로 내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산봉으로 가려면 오른편 산비탈로 올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들머리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그 흔한 산악회의 시그널(signal) 하나 붙어있지 않다. 그저 눈치껏 찾아야 하는데, 넓던 임도가 갑자기 좁아지는 지점이라면 도움의 될지도 모르겠다.
▼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한마디로 ‘고난(苦難)의 행군(行軍)’이다.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는데, 거기다가 길의 흔적까지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開拓) 산행은 결코 아니다. 길이 너무 가파르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원래 길이 있었으나 하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다보니 길의 흔적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매년 2회 이상 이곳을 찾는다는 ‘정산악회’가 아니고는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코스이다. 사실 산행 후에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아까 들머리에서 길을 찾지 못에 예리마을로 잘못 가버린 산악회들이 대부분이었다.
▼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험한 오르막길이 오래지 않아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거친 오르막길을 13분 정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일단 순해진다. 바윗돌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능선은 일단 경사(傾斜)부터 누그러뜨린다. 언제 그런 험한 길이 있었냐는 듯 한없이 너그러워진 것이다. 거기다 주능선이 주는 선물은 하나 더 있다. 바로 탁 트인 조망(眺望)이다. 능선이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시피 해서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는 것이다. 오른쪽에는 아까 지나온 진리마을이 그림처럼 조용하고, 왼편에는 다도해(多島海)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다.
▼ 상산봉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멋진 길이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은 오르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고, 그것도 모자라 심심찮게 바윗길이 나타나면서 무료함까지 달래준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산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 중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사방으로 카메라의 포커스(focus)를 맞추느라 정신들이 없다. 하긴 이런 곳에서 갈 길을 서두르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 능선에 올라선지 15분쯤 되면 250봉에 올라서게 된다. 250봉에서의 풍경은 봉우리를 올라올 때와 별반 다른 게 없다. 초원(草原) 비슷한 분위기나 사방으로 열리는 조망 등 주능선을 올라오면서 즐겼던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구태여 꼭 하나를 꼽아보라면 정상인 상산봉이 더욱 선명하게 가까워졌다는 것이고, 다도해의 섬들이 마치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더욱 또렷해졌다는 점이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동소우이도와 서소우이도는 물론이고, 그 옆에 있는 화도와 송도 그리고 백도 등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는 도초도와 비금도, 대야도, 하이도, 신도 등 비교적 큰 섬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 250봉을 지나서도 주변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또한 흙길과 바윗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흙길은 순하기만 하고 바윗길 또한 험한 곳이 없으니 그저 눈요기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는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마치 돛단배인양 동동 떠다니고 있다. 언젠가 찾았던 인사동의 화랑에서 오랫동안 내 시선을 잡았던 산수화(山水畵) 한 폭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그만큼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는 얘기이다.
▼ 능선에 오르면 시원스레 트이는 조망(眺望) 외에도 또 하나 특이한 게 눈에 띈다. 마치 환약(丸藥) 같이 생긴 염소 똥이다. 일 년 내내 방목(放牧)을 하는 우이도의 염소는 약(藥)염소로 알려져 있다. 온통 산악(山嶽)으로 이루어진 우이도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온갖 약초(藥草)를 다 먹고 자란 탓이다.
▼ 250봉에서 한참을 떨어지던 산길은 안부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어 낸다. 그 가파름에 바윗길이 여러 번 끼어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윗길 구간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여져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능선은 바윗길의 비중을 높여간다. 그러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왼편은 바위벼랑이지만 오른편이 흙으로 되어 있고, 산길은 흙으로 된 부분으로 나있기 때문이다. ‘방목된 염소의 통행을 막으려고 친 모양이네요’ 산길 오른편에 쳐진 비닐(vinyl) 망(網)을 보고 내리는 누군가의 최종 결론이다. 아까 주능선으로 올라오면서부터 보이던 이 망을 보고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뱀을 잡기 위한 망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동물들의 통행 차단막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뱀을 잡으려는 망은 그물코가 이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며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 진리선착장을 출발한지 1시간50분쯤 되면 상산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암봉으로 부르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한쪽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좁은 정상에는 누군가가 서툴게 돌탑을 쌓아 놓았고, 그 돌탑 위에 이정표 모양으로 생긴 정상표지판이 꽂혀있다. 정상이 바위봉우리치고는 어설프지만,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양 바위봉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좁은 대신에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사방으로 누워있는 능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섬이라고만 생각했던 우이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비록 산악지대이지만 꽤나 큰 섬인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면 처음으로 돈목마을 방향이 눈에 잡힌다. 좌우로 도리산과 소래산을 거느린 해안선이 꼭 호리병을 닮았다. 그 뒤에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혹시 흑산도가 아닐까 싶다. 우이도에는 바둑에 얽힌 구전설화(口傳說話)가 있다. 1200년 전 신라(新羅)와 당(唐)을 오가며 활약한 고운 최치원(崔致遠.857~?) 선생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우이도의 최고봉인 상산봉 바위 위에 올라 신선(神仙)과 바둑을 두었다는 얘기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계적 바둑왕인 이세돌이 이 부근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고 있는 이세돌이 이웃에 있는 비금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산봉 정상부근에 있다는 ‘바둑바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정상에서 돈목마을 방향으로의 하산은 짙은 숲속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아까 정상으로 올 때의 어른 키를 넘지 못하던 나무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주변의 나무는 대부분 소사나무,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도 간간히 보인다.
▼ 숲속 터널을 뚫고 얼마간 내려왔을까 이번에는 바윗길이 나타난다. 이 바윗길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왼편만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일부러 벼랑 끝으로 나가지 않은 이상은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조금 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친절하게도 안전로프까지 매어 놓았다. 그냥 또 다시 열리는 조망(眺望)만 즐기면 된다.
▼ 바윗길이 끝나면 또다시 숲길이 이어지고, 후박나무가 울창한 숲속 길을 지나면 진리고개(몰랑)이다. 정상에서 25분 조금 못되는 지점이다. 진리고개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대초리우물 890m, 2구 돈목·성촌(모래언덕) 2Km/ 띠밭너머 해수욕장 1.3Km, 1구 진리삼거리 1.4Km/ 상산봉 1.3Km)로 나뉜다. 진리고개에 내려서면 제법 널따란 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이 진리마을과 돈목마을을 연결시켜주는 하나뿐인 육로(陸路)이며, 이 길에서 가장 높은 고갯마루가 진리고개이다. 우이도는 산악지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돈목이나 성촌마을에서 진리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고개를 넘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 삼거리에 이정표 외에 의자까지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상산봉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 진리고개에서 상산봉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 진리고개에서 돈목마을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만일 지금처럼 방치만 되지 않았더라면 오프로드(off-road) 차량들은 통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왼편에 바위로 이루어진 상산봉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억새지대와 산죽(山竹)이 우거진 길을 따라 13분 정도 걸으면 대초리마을이다. 상산봉이 만들어 놓은 계곡이 가장 넓어진 부분에 위치한 대초리는 우이도에서 가장 넓은 분지(盆地)이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논농사까지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 최초로 우이도로 찾아 든 사람들이 이곳에다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이야기로만 남았을 뿐이다. 마을은 사람들의 흔적과 지명(地名)만 남아 있을 뿐이고, 썩어 무너진 가옥(家屋)과 무너진 돌담만이 텅 빈 마을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 무너진 돌담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샘터가 하나 나온다. 대초리우물이다. 인적이 끊긴 오래된 마을의 샘 또한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난 채로 위가 나무뚜껑으로 굳게 닫혀있다. 그저 이정표(2구 돈목·성촌 1.2Km/ 상산봉 2.0Km, 1구 진리삼거리 2.4Km)와 안내판(案內板)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달래고 있다.
▼ 대초리우물에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7분 정도 치고 오르면 대초리 고개이다. ‘대초리고개’ 이정표(1구 돈목·성촌 1.0Km/ 대초리우물 200m, 상산봉 2.2Km, 1구 진리삼거리 2.6Km)에도 아까 진리고개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초리고개’ 옆에 ( )를 만들고 그 안에 ‘몰랑’이라는 낱말을 써 놓았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사투리라고 한다. 풀자면 기와집 형태의 산마루란 뜻이다. 능선에서 보면 그저 해안절벽(海岸絶壁)이지만, 바다에서는 장대한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그렇다면 진리고개나 대초리고개도 바다에서 볼 때에는 기와집 형태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 산행날머리는 돈목해수욕장
대초리고개에서 날머리인 돈목해수욕장까지는 그저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원시림(原始林)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숲길은 넓고 또한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해서 내려서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다.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돈목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고 잘 닦인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시누대 숲을 만나게 된다. 이어서 목제다리를 건너면 돈목해수욕장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진리선착장에서 쉬지 않고 걸어서 2시간 50분이 걸렸다. 참고로 산에서 내려서는 지점은 돈목해수욕장의 정중앙에서 성촌마을 방향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이다. 만일 우이도의 명물인 모래언덕 ‘풍성사구(風成砂丘)’를 둘러볼 요량이라면 날머리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돈목마을에 들렀다가 다시 사구를 다녀오려면 한참을 더 다리품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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