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
여행일 : ‘21. 11. 20(토)
소재지 : 경남 산청군 금서면과 산청읍 일원
여행코스 : 수철(0.8km)→지막(1.8km)→평촌(1.6km)→대장(3.4km)→내리교(1.1km)→지성(1.7km)→지곡사지(1km)→선녀탕(2.6km)→바람재(1.9km)→성심원(거리 및 시간 : 15.9km, 실제는 16.41km를 3시간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6구간인 수철-성심원 구간을 걷는다. 5개 코스(60.2km)로 이루어진 산청 권역의 두 번째 구간으로 지리산 동쪽기슭의 지막·평촌·대장 마을을 지나 산청읍을 휘돌아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쉼 없이 흐르는 강의 흐름을 느끼며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순한 길이기도 하다. 웅석봉 자락에 들어앉은 선녀탕까지 에둘러가는 순환코스도 개발됐으나 이 경우도 수월하기는 마찬가지다. 강변 대신에 완만한 경사의 임도를 따라 걷는다는 게 다를 뿐이다.
▼ 들머리는 수철마을(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406-2)
통영-대전고속도로 산청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 국도 59호선을 타고 시천 방면으로 내려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향양마을(금서면)’에 이르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길로 들어섰다가 곧이어 나타나는 마을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수철마을이 코앞이다. 마을회관 앞 주차장이 5·6구간의 경계이다.
▼ 수철마을(금서면)을 출발해 성심원(산청읍 내리)에서 끝을 맺는 12km 구간으로 오롯이 평지만을 걷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지리산 동쪽기슭의 지막·평촌·대장마을을 지나 산청읍을 휘돌아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걷게 되는데, 그게 밋밋하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우리처럼 웅석봉의 산자락에 있는 선녀탕까지 에둘러 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강변 대신에 임도를 걷게 되는데, 거리도 4km쯤 늘어난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걷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 6구간 및 5구간의 시·종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마을회관의 외벽에 기대듯 세워놓았다. 그 곁을 지리산둘레길의 엠블럼(emblem)인 ‘벅수’가 지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지나가는 얘기 하나. 우리네 어릴 때 ‘아이고, 이 벅시 같은 놈아’라는 소릴 지청구처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꾸중이 아니라 ‘너는 하늘 아래 제일 믿음직한 미래의 장군감’이라는 격려의 말이었단다. ‘벅수’가 단순한 장승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 회락정(會樂亭)을 스치듯 지나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함께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정자’라는 뜻을 품었는데,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둘레길 나그네들에게도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고마운 정자이다.
▼ 마을 뒤 언덕(벅수 : 성심 11.9㎞/ 수철 0,1㎞)으로 올라선 둘레길이 이번에는 논두렁을 따른다. 지리산둘레길은 이렇듯 산길과 들길, 강변길에 마을길까지 지리산 주변의 모든 길들을 두루두루 지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게 된다. 이틀만 지나면 소설(小雪). 겨울나기 준비에 바쁜 절기다. 들녘이 텅 비어있는 이유일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5분여. ‘지막마을’에 이른다. 닥종이를 생산하던 마을이라는데, 벅수(성심 11.4㎞/ 수철 0.6㎞)는 마을 앞 삼거리에서 개울(향양천)을 따라 내려가란다. 다리 난간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동마을’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 마을로 들어서는데 지막마을의 들녘이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 성큼 다가온다. 꼬불꼬불한 ‘S라인’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다랭이 논.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했던 지리산자락 사람들의 대역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마을회관 앞에서 개울을 건넌다. 이때 물가에 자리를 틀은 ‘옥계정(玉溪亭)’이 눈에 들어온다. 정자 옆에는 물레방아까지 만들어놓았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향양천이 그만큼 맑다는 얘기일 것이다.
▼ 길가 감나무들은 ‘까치밥’을 매달았다. 대지의 저자인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이 반한 풍경이다. 그녀는 감을 따면서도 날짐승의 먹이까지 챙겨주는 인심에 반해 자신의 고국보다도 우리나라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맞다. 우리네 선조들은 씨앗을 심어도 셋을 심었다. 하나는 하늘(새)이, 둘은 땅(벌레), 나머지 하나만 내가 먹겠다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 둘레길은 이제 마을과 마을을 잇는 들길을 따른다. 수철마을에서 대장마을에 이르는 구간은 이렇듯 마을 사이사이를 지난다. 그러다보니 평화로운 농촌마을 풍경을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왕산’과 ‘필봉’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반야봉이나 국사봉 등 지리산의 모든 봉우리들은 끝에 ‘봉(峰)’자를 붙인다. 지리산에 속한 봉우리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왕산은 ‘산(山)’이라는 지명을 쓴다.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나 할까?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는 신문에 대서특필 될 일이다.
▼ 길을 나선지 22분. 둘레길은 ‘신촌교’를 건너자마자 도로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둑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 물길을 따라 100m쯤 내려갔을까 ‘두물머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둘레길은 이제 금서천의 둑길을 따른다.
▼ 100m쯤 더 걷자 이번에는 ‘평촌교’를 건넌다. 다리는 썩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다리 건너에 들어서게 될 ‘한방항노화산업단지’를 대비해 새로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 평촌교를 건넌 둘레길은 잠시지만 59번 국도를 따른다. 도로 왼편에 보행자용 길이 따로 만들어져 있으나. 도로를 횡단할 때는 오가는 차량을 잘 살펴 볼 일이다.
▼ 평촌마을 앞 버스정류장은 ‘한방촌 쌀’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곳 산청은 허준과 그의 스승인 유의태가 활약하던 고을이다. 전광렬 주연의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하도 인기가 높았던 덕분에 이곳 산청 땅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고, 그게 인연이 되어 쌀의 브랜드까지 내걸리게 된 모양이다.
▼ 버스정류장에서 도로를 벗어나 평촌마을로 들어선다. 이때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해동선원’을 살짝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아니 한번쯤은 꼭 들어가 볼 일이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내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수많은 불교관련 석조물들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평촌마을은 ‘평평할 평(坪)’과 ‘마을 촌(村)’자를 쓴다. 평평하면서도 너른 들녘을 지닌 마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주변을 살펴보니 지리산 자락에 들어앉은 산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널따란 들녘이 마을 주변에 펼쳐지고 있었다. 참고로 평촌은 4개의 자연부락(들말·서재말·제자거리·건너말)을 품고 있단다. 이들을 합쳐 ‘들말’이라 불러오다가 한자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평촌이 되었다.
▼ 마을을 빠져나와 ‘평촌2교(벅수 : 성심 9.1㎞/ 수철 2.9㎞)’와 새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자 금서천 건너에 들어선 금서농공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산골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편인데, 특히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항공·우주라는 이미지만큼이나 거대하다. 거기다 흡사 ‘컨벤션센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게 잘 지어놓았다.
▼ ‘대장마을’에서는 길을 놓치는 우(愚)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벅수가 남의 집 앞마당을 가리키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널찍한 포장길을 따르게 되었고, 끝내는 벅수 대신 나타난 요런 이정표(대장교←/ 내리교→/ 평촌마을↓) 앞에서 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건너게 될 두 다리가 각기 다른 방향이니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 길이 꼬인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하긴 누군들 우리 같은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아무튼 우린 경호강을 방향 삼아 신라 때 어느 대장이 쉬고 갔다는 풍수 좋은 마을 안길을 사이좋게 걸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산길샘’이라는 앱의 도움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 마을을 빠져나와 ‘대장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기 전, 경호강으로 연결되는 둑길(공사로 인해 막혀있었다)이 나있으나 개의치 말 일이다. 곧장 다리를 건넌 다음,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통영·대전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된다.
▼ 잘 나가던 길은 ‘경호강’이 가로막아버린다. 때문에 ‘경호1교’까지 에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평할 일은 아니다. 거리가 조금 늘어난 대신 가을빛으로 한껏 치장한 아름다운 강변길을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트레킹을 시작하고 1시간 남짓. ‘경호1교’에 올라서니 ‘지리산둘레길 산청군센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다녀오는 것까지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자유로운 여행을 핑계로 ‘스탬프 북’까지 사양한 우리 부부에겐 의미가 없는 시설이었기 때문이다.(아래의 사진 둘은 몽중루님의 것을 빌려왔다)
▼ 다리 초입에서 의문의 ‘표지석’을 만났다. 마을 이름이 ‘산음’이라는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허준 선생이 ‘산음(山陰)’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당시의 산음은 이곳이 아니라 이웃 동네인 생초면이다. 그런데도 ‘산음마을’이라 적은 표지석을 큼지막하게 세워놓았으니 어찌 의외롭지 않겠는가.
▼ 다리 건너의 산청읍에서는 경호강변을 따라 걷는다. 경호2교 아래를 지나 경호1교를 건넌 다음 다시 경호2교, 그러니까 뒤집은 유(U)자 형태로 길을 잇는다. 강변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 절반은 우레탄까지 깔아놓았다. 잠시지만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걷느라 고생한 두 발에게 휴식을 주는 구간이다.
▼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항노화 산들길’ 중 ‘느림의 길’이다. 산청군청 뒤편에서 경호강변을 거쳐 청소년수련관으로 이어지는데, 이밖에도 꽃봉산 전망대로 오르는 트래킹 코스인 ‘청춘의 길’과 산청소방서에서 수계정이 있는 산청공원으로 이어지는 ‘명상의 길’이 더 있다.
▼ 경호강(鏡湖江)의 수면은 이름처럼 주름 하나 없이 잔잔한데, 그 위로 도시의 풍물을 담은 풍경화가 그려진다. 추색이 완연한 산자락으로도 모자라 백색의 빌딩까지 더해가며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조물주가 아니면 저런 예쁜 그림을 어찌 그려낼 수 있겠는가.
▼ 오른편 발아래로 ‘경호강’이 따라온다. 경호강이란 산청군의 생초면(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리(약 32km)의 물길을 말한다. 강폭이 넓지만 큰 바위가 없어 강물의 흐름이 조용한 봄·가을·겨울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주고, 물이 불어나는 여름철이면 레저스포츠의 대명사인 래프팅의 명소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을 두루 엮어 ‘경호강 비경‘이라는 이름으로 ‘산청 9경’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길가에 래프팅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 ‘래프팅타운’에서 보트를 타면 내리·용소·성심원·신기 등에서 급류를 거치게 되는데, 강폭이 넓은데다 유속까지 빨라 래프팅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단다.
▼ 길가 화단에는 남천(南天)을 심었다. 그런데 이게 여간 고운 게 아니다. 붉디붉은 게 단풍보다도 훨씬 더 곱다. 거기다 유익하기까지 하단다. 천식을 앓는 사람들에겐 약재로, 풀섶을 찾는 겨울철 작은 새들에게는 더 없는 먹이가 되어준단다.
▼ 정신 나간 철쭉 몇 송이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옛 사람들은 24절기 중 하나인 소설(小雪)을 소춘(小春)이라고도 했다.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쬔다고 해서다. 저 철없는 철쭉들은 그런 햇살에 봄날인줄 알았으리라. 아닐 수도 있겠다. 세상은 요즘 대통령선거의 열풍으로 들끓는 중이다. 시절이 하도 하수상하다보니 꽃들까지도 덩달아 미쳐가지 않았을까?
▼ 산 좋고 물 맑은 산청은 들어선 학교까지도 아름답게 채색됐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하서 김인후의 ‘자연가(自然歌)’인데 분위기에 맞나? 참! 학교 앞에는 면학정(勉學亭)이란 정자도 지어져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내리교’를 건넌다. 그리고 내리의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인 ‘마당머리 마을’로 들어선다. 참! 이곳에서 우린 ‘꽃봉산’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꼭대기에 올라앉은 정자는 조망의 명소라고 한다. 산청시가지는 물론이고, 웅석봉과 경호강 등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산청 제일의 전망대로 알려져 있다.
▼ 다리 건너에는 좀 특이한 벅수(성심← 4.5㎞/ 성심↑ 8.7㎞/ 수철↓ 7.5㎞)가 세워져 있다. 가야할 방향(붉은색)이 둘이나 되기 때문이다. 경호강변을 따르는 본래의 루트는 왼편, 하지만 웅석봉 자락에 있는 ‘선녀탕’을 둘러보고 싶다면 직진하는 순환코스를 따르면 된다. 이곳에서 나뉜 둘레길은 이따가 바람재에서 다시 하나가 된다.
▼ 우리 부부는 순환코스를 따라 선녀탕까지 에둘러가기로 한다. 그리고 100m쯤 걷다가 ‘마을경로당’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벅수 및 석불사 안내판의 방향표시를 참조하면 되겠다.
▼ 마을과 마을을 잇는 들길을 걷다가 의외의 장소에서 절간을 만났다. 들어앉은 곳이 산속이 아니어선지 이름까지도 ‘웅석 연화암(熊石 連花庵)’이다. 웅석봉에서 ‘봉우리 봉(峰)’자를 쏙 빼버렸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뒷뜰마을’이다. 둘레길은 이 마을의 한가운데를 관통해버린다. 그러니 너무 몰리는 것보다는 띄엄띄엄 떨어져 걷는 게 어떨까? 하나 더. 마을을 지날 때는 마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나가도록 하자.
▼ 뒤뜰마을부터는 2차선 도로인 ‘웅석봉로’를 따른다. 웅석봉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녹색농촌체험마을’이란 낯선 이름의 건물도 만날 수 있다. 농업소득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농촌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농림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쉽게 말해 래프팅 및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민박시설로 보면 되겠다.
▼ 통영·대전고속도로 아래로 난 굴다리(벅수 : 성심 7.6㎞/ 수철 8.6㎞)는 곰들로 치장을 했다. 조금 더 가면 웅석봉이 나온다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 지성마을은 여느 산촌마을과 다를 게 없다. 아니 도심의 아파트단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반듯한 체육공원과 어린이놀이터를 갖춘 점은 다른 마을들과 확실히 다르다 하겠다. 래프팅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보인다. 내리마을 권역의 물길이 이 마을 앞으로 흘러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 지성마을 다음은 지곡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매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캔 맥주로 목부터 축이고 보는데, 청량감이 목구멍에서 창자 끝까지 단번에 관통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주인 할아버지의 넋두리로 인해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도둑년 소릴 들었지만 그래도 박근혜 때는 제법 팔렸는데’. 코로나라는 놈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 지곡마을을 지나면서 웅석봉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들녘은 찾아볼 수 없고,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능선과 능선 사이를 파고드는 골짜기뿐이다. 둘레길은 그 골짜기 속으로 파고든다.
▼ 내리저수지에 이를 즈음 빗돌 하나를 만났다. ‘세진교(洗塵橋)’. 옛날 이 부근에 세진(洗塵)이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기록에 의하면 산청의 지곡사 입구에 세진교라는 홍예다리가 놓여있다고 했다.
▼ 가을의 전령 단풍은 아직도 임무를 마치지 못했나보다. 아직도 저렇게 핏빛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옛 사람들은 저런 모습에 도취되어 ‘단풍은 연홍(軟紅)이요 황국(黃菊)은 순금이라, 신도주(新稻酒) 맛이 들고 금은어회(金銀魚膾) 더 좋다. 아희야 거문고나 켜라 자작자가(自酌自歌)하리라.’라고 노래 불렀다. 나도 박주 한 잔에 풍월이나 읊어볼까?
▼ 길에서 내려다본 내리저수지는 환상적이다. 지리산 속 청정골 산청은 때 묻지 않은 한갓진 산골이다. 그런 해맑은 풍경들이 잔잔한 수면위에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20년 전 워드워즈의 생가를 들러볼 겸해서 찾았던 영국의 글라스미어. 그곳에서 만났던 원더미어 호수가 딱 저랬었다. 당시 난 그 호젓함에 가슴을 떨며 울먹이고 있었다.
▼ 저수지 둑(벅수 : 성심 6.5㎞/ 수철 9.7㎞)에는 우회노선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둑길로 인도되는 본래의 둘레길은 에움길(굽어있는 길)로 이어져 저수지를 반 바퀴 돈 다음 지곡사 아래 개어귀에 이른다. 하지만 범람할 수도 있으니 장마철에는 곧장 도로를 따르라는 것이다.
▼ 둘레길은 내리저수지를 경계삼아 웅석봉 자락으로 파고든다. 십자봉 능선과 왕재·기산 능선 사이의 골짜기로, 웅석봉이 빚어낸 깊은 계곡 중 하나라서 수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선녀탕’이다.
▼ 그래선지 저수지 위에다 ‘웅석봉군립공원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이곳 내리저수지를 들머리 삼아 웅석봉으로 방법은 두 가지. 선녀탕과 왕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방법 말고도 십자봉을 거치는 또 다른 루트까지 나있단다.
▼ 저수지 위 언덕에는 ‘지곡사(智谷寺)’가 걸터앉았다. 통일신라 때 응진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초기 이름을 국태사(國泰寺). 고려 광종 때는 대각국사 의천이 개창한 천태종의 5산문(원주 거돈사, 진주 지곡사, 해주 신광사, 여주 고달사, 가수현 영암사)에 들어갈 정도로 사세가 컸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되었다가, 1958년 강덕이(姜德伊) 스님이 옛 지곡사의 산신각 자리에 새롭게 절집을 지어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단다. 하지만 선객과 시인들이 즐겨 찾던 영남의 으뜸 사찰은 간 곳 없고, 대웅전과 산신각, 종각이 전부인 한적한 사찰로 남아있을 따름이다.
▼ 절간 앞 계곡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홍예다리가 빛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근처에 놓여있었다는 ‘세진교(洗塵橋)’의 모습이 마치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 했다니 말이다.
▼ 몇 걸음 더 오르니 ‘심적사’의 입간판이 얼굴을 내민다. 500m만 더 들어오면 신라시대(929년)에 창건했다는 또 다른 천년고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례길 나그네에게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500m나 올라갔다 되돌아 올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허준 약수터’에 대한 궁금증까지 사라지겠는가. 저 심적사가 드라마 ‘허준’에서 삼적대사(정욱 扮)가 나환자를 치료하던 바로 그곳?
▼ 심적사 갈림길을 지나면서 임도가 시작된다. 이어서 낙엽이 수북한 숲길을 따라 18분쯤 더 걷자 ‘선녀탕’이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8분 만인데, 길가 벅수(성심 5.0㎞/ 수철 11.2㎞)는 6구간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 ‘선녀탕’은 웅석계곡과 왕재계곡의 물줄기가 합쳐지면서 빚어놓은 폭포(네이버지도는 ‘강신등폭포’라 적고 있었다)와 소(沼)인데, 턱없이 높은 이름값에 비해 지닌 자태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그저 이름처럼 선녀가 몸을 씻을 수 있도록 탕이 은밀하게 숨어있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한국자연보존협회의 눈은 나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한국 명수 1백선’으로 꼽았다니 말이다.
▼ 둘레길나그네들에게는 이곳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완주를 인증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이젠 웅석봉임도를 걸을 차례이다. 선녀탕에서부터 시작되는 임도는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나있다. ‘십자봉 5거리’까지 1.6km가량 계속되는데, 거의 평지를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참! 가로수처럼 길가에 심어놓은 나무는 ‘고로쇠’라고 한다. 그래선지 엄지손가락 굵기의 호스로 나무들을 연결시키고, 훼손시 고발조치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었다. 봄철마다 수액 채취로 마을 주민들의 짭짤한 수입원이 되어준다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낙엽 쌓인 임도를 걷다보면 가마득히 솟아오른 웅석봉이 올려다 보이기도 한다. 가을빛으로 가득한 산세가 아름답기까지 한데, 아쉽게도 역광으로 이해 온전한 형체까지는 눈에 담을 수 없었다.
▼ 선녀탕에서 출발한지 15분. 내리저수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정표 : 내리저수지 0.46㎞/ 선녀탕 1.16㎞)를 만났다. 저수지에서 이곳까지는 500m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트레커들은 너나없이 선녀탕까지 돌아오느라 오롯이 2.3㎞를 걸었다. 내처 오르려고만 하지 않고 에둘러가는 여유를 되찾은 결과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재미가 바로 이것이다. 꼭 어디서 어디까지 종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 때론 숲길을 걷고 때론 강변이나 마을을 따라가며 산과 들, 냇물,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 10분쯤 더 걸어 길이 여럿으로 나뉘는 고갯마루(벅수 : 성심 3.4㎞/ 수철 12.8㎞)에 올라선다. 6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해발 227m)이지 싶은데, 이정표(십자봉 2.25㎞/ 내리저수지 0.76㎞, 선녀탕 1.45㎞)는 이곳이 십자봉을 거쳐 웅석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울창한 왕대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나있다.
▼ 내려가는 도중 아까 내리교에서 헤어졌던 경호강의 물길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데, 이때마다 황매산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다.
▼ 꽤 여러 곳에서 갈림길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벅수만 잘 살펴보며 걸으면 되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잃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그럴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놓친 이정표를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이정표가 촘촘히 세워져 있기 때문에 금방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십자봉들머리에서 내려선지 15분 만에 ‘바람재’에 도착했다. 성심원과 한밭마을로 가는 갈림길이자 경호강 강바람이 넘나드는 야트막한 고개이다. 누군가는 이 고개를 운치 있다 표현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고갯마루는 둘레길 나그네들이나 간간히 넘어 다니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고개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었다.
▼ 바람재의 벅수(성심 2.0㎞/ 수철 13.9㎞/ 수철 10.0㎞)도 역시 방향표시가 셋이다. 하지만 빨강색이 둘이던 내리교와 달리 이번에는 검은색이 둘이다. 벅수의 방향표시 색깔은 정방향과 역방향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니 아까 내리교에서 나뉘었던 길이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고 보면 된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특용작물을 심었다는 밤나무 단지를 지나자 귀여운 징검다리가 나오기도 한다.
▼ 8분쯤 더 걸었을까 메타세쿼이아로 치장된 산청군분뇨처리장(벅수 : 성심 0.8㎞/ 수철 11.2㎞)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길은 경호강변으로 내려선다. 강 건너에는 정수산과 둔철산이 그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 강가에는 쑥부쟁이가 꽃망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가을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몸짓이랄까? 이를 보며 김용택 시인의 ‘구절초 꽃에서’를 떠올리는 것은 두 꽃이 비슷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 아직도 푸릇푸릇한 잎새를 자랑하는 채마밭을 지나자 성심원(사진은 강 건너에서 찍었다)이 얼굴을 내민다. ‘성 프란치스꼬 형제회’가 운영하는 요양시설로 1959년에 문을 열었다. 그게 62년,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저 시설은 많은 갈등과 치유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나와 다르다’는 편견으로 사람이 사람을 냉대하던 시절이 우리 주변에 만연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리도 1972년이 되어서야 놓인다. 섬 아닌 섬에 갇혀서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던 것. 그게 지금은 동반자로 사는 게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곳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 성심원 담벼락은 꽃문양으로 메꿔졌다. 60~70년대의 교복을 입은 학생도 보이는데, 집사람은 그게 추억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냉큼 다가가더니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맞다. 당시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아프기까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에게 꿀밤을 맞는 건 기본,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거나 심지어는 엉덩이를 몽둥이로 찜질 당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던 선생님은 언제나 존경스러웠고, 우리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 날머리는 성심원 정문(산청군 산청읍 내리)
날머리인 성심원의 정문은 다리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나온다. 하지만 성심원의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은 물론이고, 화장실과 매점까지도 사용불가라니 ‘역사관’을 둘러보는 것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했던 소외된 이들의 역사를 한번쯤 둘러보고 싶었기에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16.41km를 3시간30분 만에 걸었다. 시간당 4.7km를 걸었으니 무척 빨리 걸은 셈이다. 그만큼 길이 편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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