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봉(高山峰. 359.1m)-석산봉(石山峰, 242m)

 

산 행 일 : ‘21. 10. 23(토)

소 재 지 : 전남 함평군 대동면

산행코스 : 향교저수지 입구→정자쉼터→고산사지 삼거리→고산사지(왕복)→강운촌닭 삼거리→고산봉 정상→정창마을(황금박쥐) 갈림길→석산봉 삼거리→석산봉 정상(왕복)→정자쉼터→향교 뒤 삼거리→대동면사무소(소요시간 : 8.8km/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높이가 300m를 겨우 넘겼으니 산이랄 것도 없다. 거기다 전형적인 육산이라서 기암괴석 같은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크기에 비해 가슴이나 눈에 담아갈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조망은 가장 큰 자랑거리다. 바닷가 평야지대에서 솟아오른 덕분에 함평 들녘은 물론이고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석산봉의 암릉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진안의 마이산을 닮은 바위봉우리가 뜬금없이 솟아올라 눈에 호사를 누리게 만든다. 8.8㎞가 짧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도보로 연결되는 함평천 건너 기산봉까지 둘러보면 되니 산행거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산행들머리는 ‘천지단향양봉’ 옆 삼거리(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718-1)

서해안고속도로 함평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타고 함평·나주 방면으로 달리다가 기각사거리(평읍 기각리)에서 왼편 ‘영수길(함평실고삼거리↔향교사거리)’로 옮기면, 잠시 후 대동면사무소와 함평향교를 지나 천지단향양봉(영농조합법인)에 이른다. 조합건물 옆 삼거리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카카오맵(kakaomap)은 ‘천지단향양봉 영농조합법인’을 치면 된다.

▼ 고산봉의 들머리는 꽤 여러 곳에서 열린다. 지도에 표시된 4곳 외에도 상강마을과 고산마을 등 두어 곳에서 더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동면사무소(4코스)를 들·날머리로 삼는 게 보통이라서, 다른 들머리는 길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 참조해 둘 일이다.

▼ 향교저수지 둑(隄防)을 향해 걸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둑 아래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걸로 보아, 대동면사무소를 들머리로 삼았을 경우 저 길로 걸어오게 되지 않나 싶다.

▼ 제방 위로 올라서자 만수위까지 차오른 ‘향교저수지’가 그 푸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1968년에 축조된 저수량 41천㎥의 저수지로, 농업용수의 생명이 수질인 점을 감안하면 최고 품질의 물을 담고 있다 하겠다.

▼ 산행을 시작한지 5분. 저수지를 왼편 옆구리에 끼고 잠시 걷자 임도 하나가 오른편으로 나뉜다.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이 길이 고산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이다. 들머리에 이정표(고산봉 정상 2,530m/ 고산골)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정표는 고산골 방향에다 ‘정유재란 대승지’라 적고 있었다. 이 지역(향교리) 출신의 의병장 칠실(漆室) 이덕일(李德一, 1561-1622) 장군이 정유재란(1597년) 때 왜군에게 대승을 거둔 곳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곳(고산골)과 동막골(금성산성 5㎞ 지점)에서 왜군 7,000명을 격파(다소 과장된 듯하다)한 그는 이후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복무하였고, 종3품인 병마우후(兵馬虞候)를 지낸 다음 증직으로 병조판서를 제수 받았다.

▼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길이 넓은데다 정비까지 잘 되어 있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오르는 게 쉽지는 않다.

▼ 산길로 들어선지 5분 만에 능선으로 여겨지는 곳에 올라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Daum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팽나무·느티나무·개서어나무·의줄나무’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천연기념물(제108호)로까지 지정되어있기에 꼭 찾아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지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함평(대동면) 향교리의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은 아까 차로 지나왔던 대동면소재지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팽나무 10그루, 개서어나무 52그루, 느티나무 15그루와 푸조나무·곰솔·회화나무 각 1그루가 향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옛 도로변에 아래 사진(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처럼 줄줄이 심어져 있단다. 나이는 대략 350살.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부터 벌판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기능을 하는데, 풍수지리상 수산봉(함평읍 소재)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능선에 올라섰는데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릴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더 가팔라졌다. 지자체도 그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바닥에 침목계단을 깔아 오르내리는데 부담을 덜도록 했다.

▼ 그렇게 10분쯤 올라섰을까 뜬금없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생김새도 아닌데다 규모까지 작으나 전형적인 육산에서 만나는 생소한 풍경인지라 카메라에 담아봤다.

▼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만큼은 어느 암릉에 뒤지지 않았다. 대동면 들녘과 동함평산업단지가 널따랗게 펼쳐지는가 하면, 백룡산과 금성산 등 나주의 산들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다.

▼ 또 한 번의 가파른 몸짓을 하고나서 올라서게 된 무명봉.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의자가 놓여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이런 쉼터는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만난다.

▼ 무명봉에서 산길은 아래로 향한다. 그것도 침목계단을 깔았을 정도로 가파르다. 문득 오르던 산을 인생에 비유하던 지기가 떠오른다. 그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산을 굴곡진 인생에 비유하면서, 조금 편한 산은 있을지라도 쉬운 산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렇다면 이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할 것이다.

▼ 바위 위에다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이 주인노릇을 하는 두 번째 봉우리를 넘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커다랗고 붉은 소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모진 세파에 시달린 탓인지 잘 생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 있는 그 자태만으로도 너무나 싱싱하고 곱게 내게 다가온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라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상강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류되는 안부(이정표 : 고산봉 정상↑ 1,327m/ 상강마을→ 776m/ 대동면사무소↓ 2,400m)에 내려선다. 펑퍼짐한 것이 옛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처럼 보이지만 길은 오른편 상강마을로만 열린다.

▼ 안내판은 이곳을 ‘한국전쟁이 부른 아픔의 길’로 적고 있었다. 불갑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빨치산이 학교면·함평읍의 주요 시설과 인근마을을 습격하고 방화·약탈·납치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 군경에 쫓겨 본부인 불갑산으로 달아날 때 이 고개를 넘었다는 것이다. 이때 양민들은 빨치산이 약탈한 식량과 생필품을 운반하는 부역자가 될 수밖에 없었단다. 전쟁이 낳은 아픔이라 하겠다.

▼ 이정표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지명만 적는 여느 이정표들과는 달리 이곳은 지명 외에도 식당과 펜션 등의 상호를 적어 넣었기 때문이다. 지역 상권을 살려보려는 고심의 흔적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등산로 정비에 협찬을 받았을 것이고 말이다.

▼ 안부를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역시 힘겨룸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 그 힘겨룸이 금방 끝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5분이면 정자가 있는 쉼터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등산객을 위한 시설은 아닐 테니, 주민들이 산책 삼아 이곳까지 올라온다는 얘기일까?

▼ 길가 바위들은 두터운 이끼로 옷을 해 입었다. 서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못내 버거웠던 모양이다.

▼ 작은 내림에 이어 나타나는 길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쯤 치고 오르자 이번엔 ‘고산사지 삼거리(이정표 : 고산봉 정상↑ 427m/ 고산사지← 166m/ 대동면사무소↓ 3,300m)’이다. 고산사지까지는 고작 166m. 터무니없이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번쯤 다녀오기를 권한다. 심심산골에서 천년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 절터로 가는 길은 신우대가 잠시 훼방을 놓는 것 말고는 길이 또렷하다.

▼ 2~3분쯤 후 도착한 곳에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 외롭다. 비탈진 산자락 바위에다 부처를 새겨놓았는데, 매우 우람하다는 안내판의 설명과는 달리 규모나 조형미 모두 보잘 것이 없었다. 그저 미소 띤 얼굴에서 온화함을 느낀 게 전부랄까? 오래전(고려 초기)에 조성된 데다 석질까지 나빠 마모가 심한 탓일 게다.

▼ 마애불 아래에 있다는 절터까지는 둘러보지 않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5분쯤 치고 오르자 ‘강운촌닭 삼거리(이정표 : 고산봉 정상↑ 390m/ 강운촌닭→ 1,441m/ 대동면사무소↓ 3,418m)’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강운촌닭 방향의 능선에 있다는 ‘공구바위’를 보고 싶은데, 그러다간 주어진 시간까지 산행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서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힘센 장사가 공기놀이를 하던 바위라는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 또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 산행 준비를 하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낮다고 만만하게 봤다가 큰 코를 다쳤다’는 어느 분의 후기를 봤었는데 이제 실감이 난다.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어느 곳 하나 버겁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 그 오르막은 다행히도 금방 끝났다. 그리고 돌탑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멋진 바위전망대에 올라선다. 강운리(대동면)는 물론이고 나주(나산면) 지역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조망처이다.

▼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자 고산봉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5분만이다. 두루뭉술하게 생긴 정상은 잡다한 시설물들로 가득하다. 필수 시설이랄 수 있는 정상석과 이정표(대동면사무소↑ 4,100m/ 대동면사무소↓ 3,727m), 삼각점 말고도 정자에 평상까지 설치해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나 역시 평상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선두대장 덕분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낭만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 고산봉은 400m에도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이다. 하지만 서해바다를 낀 함평의 평야지대에서 솟아오른지라 오히려 우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고산(高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일 것이다. 거기다 봉우리가 붓끝처럼 솟아올랐으니 주위의 시선을 끄는 군계일학이 되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필봉(筆峰)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 성능 좋은 망원경도 2대나 설치해 놓았다.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망원경에 의지할 것까지도 없다. ‘위험’ 표지판이 세워진 바위지대로 나아가면 함평과 나주의 산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단 위험천만한 천애절벽의 위이니 안전에 주의가 요구된다.

▼ 발아래에는 강운저수지가 놓여있다. 논농사가 많은 함평에는 저수지가 유독 많은데, 풍경만으로도 눈길을 붙잡는 곳이 적지 않다. 그 너머로는 산들이 첩첩이다.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은 물론이고 더 멀리로는 태청산과 불갑산, 무등산, 월출산까지 자세하게 보인다.

▼ 석산봉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너무 가파르다 싶은 곳에는 철제계단을 놓았다.

▼ 계단에 올라서자 시야가 툭 트인다. 그리고 덕산리 방향의 들녘과 서해바다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 계단의 바로 아래에서 삼거리(이정표 : 대동면사무소← 3,943m/ 정창마을↑ 2,669m/ 고산봉 정상↓ 169m)’를 만났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꺾는다.

▼ 삼거리에는 ‘붉은박쥐 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붉은박쥐(천연기념물 제452호)는 황금박쥐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외모가 매우 화려하다. 하지만 암컷과 수컷의 비율이 1:40으로 극히 불균형적인데다 환경오염 등으로 개체수가 줄어 멸종위기에 처한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중국 남부와 일본 대마도 등지에서 10마리 미만의 채집기록이 남아있을 뿐이었는데, 지난 99년 함평군 고산봉 일대의 동굴에서 집단으로 동면하던 황금박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 길은 계속해서 가파르다. 지자체에서도 그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침목계단을 놓았는가 하면, 밧줄 난간을 설치해 이에 의지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려서자 펑퍼짐한 안부가 나온다. 삼거리(이정표 : 면사무소↑/ 고산마을→/ 등산로 없음←/ 정상↓)인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붉은박쥐로 유명한 고산마을(덕산2리)로 연결된다. 마을 뒤 고산봉의 산자락에 일제 때 금을 캐기 위해 파놓은 30여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중 10여 곳에서 100여 마리의 붉은박쥐가 서식하고 있단다.

▼ 기이한 샘 ‘구수천(廐首泉)’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고산동 마을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조그만 웅덩이가 나오는데, 이게 8km나 떨어져 있는 서해바다와 연결이라도 되어있는 듯 밀물이 들면 샘물이 차서 넘치고, 썰물일 때는 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구간 구(廐)’에 ‘머리 수(首)’자를 쓰는 이유는 뭘까?

▼ 안부를 지난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고산마을 삼거리(이정표 : 대동면사무소↑ 3,127m/ 고산마을 800m→/ 고산봉 정상↓ 973m)’를 만난다. 하지만 잡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것이 일 년에 한두 명이나 이용하는 듯 싶다.

▼ 산길은 또 다시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다시 올라가야할 일이 걱정될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 우려와는 달리 뒤이어 나타나는 길은 작은 오르내림만 반복한다. 다음에 오르게 될 석산봉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 정상에서 내려선지 30분. ‘석산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이정표 : 석산봉← 658m/ 대동면사무소↑ 2,507m/ 고산봉↓ 1,593m)에 올라섰다. 그런데 함께 걷던 일행들이 곧장 직진해버리는 게 아닌가. 석산봉까지의 거리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인데, 덕분에 우리 부부의 발걸음만 바빠지게 생겼다.

▼ 이정표는 석산봉까지의 거리를 658m로 적고 있었다. 산길인 점을 감안하면 다녀오는데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하지만 바닥에 돌이 많아 걷는 게 편하지만은 않다. 이 구간의 또 다른 특징은 막바지에 이르면서 심심찮게 시야가 열린다는 것이다. 아차마을이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그 뒤로는 서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 15분을 걸어 올라선 ‘석산봉’을 누군가는 맘모스의 등처럼 생긴 거대한 암반이라고 했다. 사방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라고도 했다. 하지만 막상 올라본 정상은 여느 흙산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그렇고 두세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벤치가 전부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안타까웠는지 누군가가 자연석을 세우고 그 표면에다 석산봉이라 적었다. 높이(268m)도 덧붙였음은 물론이다.

▼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상황은 급변한다. 그가 말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진안의 마이산처럼 생긴 거대한 암봉이 함평읍 방향으로 길게 뻗어나가는데 양 옆이 천애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석산봉의 암릉은 물론이고, 함평의 너른 들녘과 나지막한 산들, 그리고 드넓은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대동면사무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경사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유연한 산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벤치를 놓아둔 쉼터에 올라선다.

▼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아까 석산봉에서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지는데, 이번에는 그 석산봉까지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 산길은 이후로도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그래선지 산길을 벗어나 숲속을 기웃거리는 여유까지 부려봤다. 6~7년 전쯤 등산로 주변에 여러 종류의 버섯종균을 접종했다는 기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는 그 이유를 등산객들에게 색다른 체험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외부 산행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 몇 송이 채취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버섯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 ‘석산봉 삼거리’를 출발한지 15분 만에 헬기장보다도 더 넓어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정자까지 지어 쉼터를 겸하도록 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 오는 도중 ‘빨치산 활동 이동경로’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과 불순분자들이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이 능선을 따라 이동했다는 것이다.

▼ 앞서 내려가고 있는 집사람의 몸짓이 무척 부자연스럽다. 전문가들은 산을 내려갈 때 자기 체중의 3배가 되는 하중이 무릎에 걸린다고 말한다. 그러니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집사람의 무릎은 지금쯤 과부하가 걸려있을 것이다. 스틱이 그걸 조금은 감소시켜주겠지만 말이다.

▼ 하산길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 사진처럼 계단을 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 구간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 송악처럼 생겨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송악은 눈보라 치는 매서운 추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늘푸른 덩굴나무다. 그러니 남녘땅 함평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정자봉을 출발한지 20분. 삼각점과 돌탑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안부에 내려섰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꺾는다. 능선을 벗어나는 걸로 보아 날머리가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조금 더 내려서자 ‘향교(鄕校) 뒤 삼거리(이정표 : 대동면사무소↑ 297m/ 향교저수지← 629m/ 고산봉 정상↓ 3,803m)’에 이른다. 대동면사무소를 들·날머리로 삼을 경우 어느 쪽 능선을 타고 고산봉으로 오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순환코스이니 어디로 가더라도 한번 씩은 지나가야만 한다.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참! 이곳에는 향교 뒷산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황새골과 처녀바위에 얽힌 이야기인데 내용을 생략하겠다.

▼ 조금 더 걸어 산자락을 빠져나오자 정자쉼터가 나온다. 고산봉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들·날머리로 삼는 곳인데, 이들을 위해 등산안내도는 물론이고 먼지떨이기까지 설치해 놓았다. 몇 점의 운동기구도 보인다. 정자가 주민들의 쉼터로도 이용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 면사무소 뒤뜰로 나오자 이번에는 황금박쥐 조형물이 길손을 맞는다. 함평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황금빛 박쥐를 탑 모양의 기둥 꼭대기에 앉히고, 그 아래에는 나비 조형물을 배치했다. 뒷산인 고산봉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인 붉은박쥐의 주요 서식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명품 축제로 이미 자리매김 된 함평의 ‘나비축제’의 홍보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 산행날머리는 대동면사무소

황금박쥐 조형물을 지나자 대동면사무소가 나오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3시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이 8.8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엑스포공원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금빛 찬란한 황금박쥐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24k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박쥐의 무게는 무려 126kg. 1999년 고산봉에서 처음 발견된 황금박쥐 126마리를 상징한 무게라고 한다.

♧ 에필로그(epilogue), 이곳 함평은 비빔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함평 5일장에 있는 식당가. 독특한 조리법과 맛으로 전주비빔밥에 비견된다는 함평비빔밥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육회비빔밥’이 가장 인기가 좋다지만 날것을 먹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돌솥비빔밥과 낙지비빔밥은 주문했다. 각각 1만5천원과 2만원이니 가격은 만만찮다. 하지만 그 맛과 서비스는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곁들여 나온 선지국은 일미였다. 그것도 내 술병이 비워져가는 속도에 맞춰 덥혀다 주는 게 아닌가. 처음 찾아간 ‘함평천지한우프라자 명품관’이 브레이크타임에 걸려 육질 좋다는 한우를 맛볼 기회는 놓쳤지만 이를 대신하기에 충분한 메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