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4코스

 

여행일 : ‘21. 5. 23(일)

소재지 :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묵호진동·어달동·대진동·망상동과 강릉시 옥계면 일원

여행코스 : 묵호역입구(1.6km)→묵호등대공원(5.8km)→망상해변(6.4km)→한국여성수련원입구(소요시간 : 13.8km/ 실제는 14.03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파랑길’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조성된 초‘광역 걷기길’이다. 770㎞에 이르는 동해안을 총 10개(부산·울산·경주·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양양속초·고성)구간 50개 코스로 나누었는데, 오늘은 2개 코스 나누어진 동해시 구간(27.1km)의 두 번째 코스를 걷게 된다. 옥계역을 출발해 대진항과 망상해변을 거쳐 옥계해변에 이르는데 길이는 대략 14km쯤 된다. 이 구간은 걷는 내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바라보게 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초반에 들르게 되는 ‘논골담길’은 국내 최고의 여행지로 꼽힌다.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등대마을에서 우리는 고단하면서도 정감 넘치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 34코스의 시작점은 묵호 수변공원(동해시 묵호진동 13-64 )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망상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삼척 방면으로 내려오다 사문재삼거리(동해시 발한동)에서 왼편 ‘발한로’로 갈아탄다. 이어서 사문삼거리와 발한삼거리에서 연이어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잠시 후 널찍한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 바로 옆에 ‘묵호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로 해파랑길 34코스의 원래 시점은 묵호역의 앞이다. 지난 번 33코스를 마무리했던 곳에서 출발하기 위해 이곳을 임시 들머리로 삼았을 따름이다.

▼ 2020년 노선의 일부가 변경되었다. 원래는 묵호역에서 출발해 망상해변과 웇재를 거쳐 옥계시장에 이르도록 되어있었으나 일부(‘망상-웇재-옥계시장’을 ‘망상-옥계해변’으로) 구간을 변경한 것이다. 2019년 고성에서 발생 속초까지 번진 산불로 인해 황폐화된 일부 지역을 걷는 대신,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감상하며 지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덕분에 거리도 22.5km(묵호역에서 옥계시장까지 19.2km+옥계시장에서 옥계해변까지 3.3km)에서 13.8km로 많이 단축됐다.

▼ 수변공원 앞 도로를 건넌 다음, ‘등대길 슈퍼&펜션’ 오른편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논골담길’의 4개 탐방로 가운데 하나인 ‘등대오름길’이다. ‘등대오름길’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두어 개의 안내판들이 초입에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논골담길은 4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졌다. 서쪽(그림에서는 아래쪽)의 논골 1길과 논골 2길, 논골 3길 그리고 동쪽(그림에서는 오른쪽)의 '등대오름길'이다. 우리 부부처럼 해파랑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 대부분은 논골 1길로 올라 바람의 언덕과 등대 주변을 관광한 후 논골 2길로 내려오는 코스가 선호된다고 한다. 참! ‘논골’이란 지명은 질퍽거리는 골목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묵호항이 무연탄과 시멘트 운송으로 호황이었던 시절, 항구 뒤편 안묵호의 비탈진 언덕에 지어진 판잣집 사이의 골목길이 질퍽한 흙길이었다는 것이다. 언덕 꼭대기의 덕장으로 져 나르던 오징어와 명태지게에서 떨어지는 바닷물로 늘 질었던 골목은 ‘남편과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단다. 하지만 땀과 바닷물에 젖었던 장화도 이젠 벽화에만 더러 등장하는 아련한 추억의 풍경이 되었다.

▼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묵호동의 이야기’와 함께 ‘논골담길의 담화’의 유래가 적혀있으니 한번쯤 읽어보고 길을 나서는 게 좋겠다. 이곳 묵호는 조선 후기 구제를 위해 이곳에 온 강릉부사 이유응(李儒膺)이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다고 해서 ‘먹 묵(墨)’자를 써 ‘묵호’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게 다수설이다. 하지만 안내판은 그가 검은 새와 바위가 많은 오이진(烏耳津)에서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한데서 유래됐다고 적고 있었다.

▼ 언덕 위 등대까지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등대마을은 하늘이 가까운 전형적인 달동네. 마을의 담벼락은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연탄집, 이발관, 논골주막 등 전성기의 달동네 모습이다. 하지만 풍요와는 거리가 먼,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마을의 옛 풍경들이다. 맞다. 2010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이 그림에는 하나같이 묵호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묵호 어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길은 그 자체가 역사의 한 자락이자 과거와 현재가 시간을 공유하는 공간이 된다.

▼ 아름다운 시(詩)는 아름다운 경관에 아름다운 마음이 더해져서 태어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곳 논골마을도 시가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선지 곳곳에 시판을 걸어두었는데, 주문진 출신 김영현 시인의 ‘아버지 혼불의 바다’도 그중 하나이다.

▼ 투박한 계단까지도 볼거리로 변신했다. 웃기, 앉아있기, 수다떨기, 쇼핑하기, 노래하기, 잠자기 등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당 칼로리를 적었다. 그렇다면 맨 아래 적혀있는 ‘hurry up!!’은 이래저래 칼로리는 소모되는 법이니 닥치고 빨리 올라가라는 의미일까? 아무튼 이런 재치가 있어 한번 골목에 들어서면 십중팔구 모든 길을 다 걷게 된다는 얘기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처마와 처마 사이로 이어지는 굽은 골목이 보여주는 매력과 굽은 골목을 돌 때마다 나타나는 따뜻한 벽화가 저절로 발길을 이끌기 때문이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널디 너른 동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 바다의 초입에는 해상 인도교인 ‘오션프론트’가 들어섰다. 묵호바다는 해안선을 향해 하루 종일 강한 파도가 철썩이는 곳이다. 이 같은 특성을 살리기 위해 만든 길이 85m(높이 7m·폭 3m)의 다리인데, 눈으로는 넓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만들어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몸으로는 동해 바람을 느끼며 거닐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지는 못했다. 공사가 덜 끝났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 옛날 저 산비탈에는 어부와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산비탈 전체가 블록으로 벽을 올려 만든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어획량까지 급감하면서 마을 역시 급격히 쇠퇴해졌다. 그러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논골담길’ 벽화마을이 조성됐다. 오래된 마을에 다양한 테마와 묵호만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마을길을 만든 것이다. 사진의 오렌지색 지붕은 2013년 방영된 SBS 수목 드라마 ‘상속자들’의 여주인공 ‘차은상'이 어머니와 함께 도망쳐 나와 살던 집이다.

▼ 골목을 장식하는 건 벽화만이 아니다. 묵호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있는 조형물들을 곳곳에 설치했다. 이렇듯 논골담길은 다양한 그림과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 하나하나는 논골 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걷다보면 과거의 영광과 삶의 애환이 어떠했는지를 공감하게 만든다.

▼ 오만가지 잡동사니로 치장된 ‘등대 그집’이라는 기념품 가게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에 쫓겨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커피를 파는 카페도 겸하는 모양이다.

▼ ‘논골1길’을 살짝 맛보며 ‘바람의 언덕’으로 간다. 조망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벽화로 채워진 마을길을 잠시 걷자 ‘나폴리 찻집’. 이어서 묵호항의 옛날 사진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일주문 형식의 전시지역을 지나자 ‘바람의 언덕’이다.  묵호등대나 논골담길에서도 바다가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곳 ‘바람의 언덕’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선지 언덕의 맨 꼭대기에다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를 여러 개의 단으로 나누어 깔아둠으로써 마음 내키는 곳에 주저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전망대에 서면 묵호항(墨湖港) 일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 묵호는 동해안 제일의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화주와 선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명태와 오징어의 어획량까지 풍부해 주민들이 생활도 넉넉했다. 외지인들과 내지인들이 한데 엉켜 요정과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유행의 첨단도시’. ‘술과 바람의 도시’로 표현되던 때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웃 동해항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지금은 동해항의 보조항만 기능을 수행하는 정도라고 한다.

▼ 이곳에서 천방뒤축 뛰어놀던 아이들을 형상화한 작품도 보인다. 그 옆에는 마을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논골담길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커피 한잔 앞에 놓고 내려다보는 묵호항의 풍경이 일품이라니 한번쯤 이용해 볼 일이다. 거기다 수익금의 절반을 마을의 보수 등에 사용한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 전망대 한쪽에는 고기잡이 나간 가장을 기다리는 ‘만복이네 식구들’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고깃배가 들어올 시간이면 아기 업은 마을 아낙들이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몰려들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 바람의 언덕을 둘러본 다음 묵호등대로 왔다. 등대는 항만의 시작점이자 종착지라 할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등대는 묵호동의 맨 꼭대기(해발고도 67m)에 걸터앉아 있다. 그리고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동해바다를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하지만 등대의 내부는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등탑에서의 조망이 일품일 뿐만 아니라, 등대 홍보관에도 볼거리가 널려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하찮은 코로나-19가 고귀한 인간의 행복을 망쳐버린 셈이다.

▼ 등대 주변은 소공원으로 꾸며놓았다. 횃불을 형상화 한 조형물을 가운데에 두고 정자와 파고라, 벤치 등의 시설들을 꼼꼼히 배치했다. 우체통을 전화박스 안에 숨기고는 ‘행복한 우체통’이라 너스레를 떠는가 하면 ‘착시 거울’이나 ‘health gate’ 같은 놀이기구들을 설치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데 어찌 포토죤 하나 없겠는가. 인생샷 건져보려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조형물들을 여럿 만들어 놓았다. 참! 이곳은 야경을 배경으로 삼으면 더 멋진 사진이 나온다고 했다. 특히 한여름 밤에는 묵호항 일대를 오가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환하게 켜진 선박 불빛들이 흔들리면서 어촌마을 모습 그대로를 연출해준단다.

▼ 건너편 허공에는 높이가 59m나 된다는 다리 하나가 놓였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란다. 동해안을 바라보며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스카이워크’를 중심으로 양쪽 구조물을 잇는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하늘 위를 달리는 자전거인 스카이사이클과 원통 슬라이드를 미끄러져 약 30m 아래로 내려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로 구성됐다. 하지만 ‘오션프론트’와 마찬가지로 문이 굳게 닫혀있어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 40분 정도 논골담길을 둘러본 뒤 수변공원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바다문화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고라와 벤치 등 각종 편의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거친 파도가 해안선 옆으로 솟은 바위를, 새하얀 방파제를 때리는 소리가 더 인상적인 길이다.

▼ 이 구간은 해안선을 따라 솟아오른 기암괴석들과 파도, 짙푸른 바다가 한데 어우러지며 장관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까막바위’가 있다.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正東方)’에 있다는 바위로, 전망대의 입구에 커다란 빗돌을 세워 이를 알리고 있다. 참고로 까막바위라는 이름은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 바다를 향해 나아간 전망대에는 청동 ‘문어상’을 모셨다. 이곳 주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느 호장(戶長:향리직의 우두머리)의 전설에 나오는 그 문어이다. 조선시대 이곳 망상현에 인품이 온후하고 덕망 있는 호장(戶長:향리직의 우두머리)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왜구가 침입하자 호장은 왜적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맨손으로 당해 내기는 속수무책, 결국에는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약탈을 끝낸 왜적이 호장과 빼앗은 재물을 싣고 돌아가려하자 주민들이 막아섰으나 도리어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이를 본 호장이 크게 분노했고 ‘비록 내가 너희들에게 육신은 죽어도 너희들을 다시는 이곳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꾸짖자, 맑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천둥번개가 치고 파도가 몰아치면서 호장이 탄 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말았다. 남은 한 척의 배도 달아나지 못하고 느닷없이 나타난 거대한 문어가 내리치는 발길질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주민들은 당시 나타난 문어가 호장이 죽어 변신한 혼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한다.

▼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곰치국’의 간판을 단 상호가 유난히도 자주 눈에 띈다. 맞다. 이곳 동해는 곰치국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물곰탕’으로도 불리는 이 음식은 하도 못 생겨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꼼치’라는 어종으로 끓여낸다. 묵은 김치와 무를 썰어넣고 끓여내는데,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하게 입에서 녹는 반전 식감은 잊을 수 없는 매력이다. 조선시대부터 해장으로 명함을 내밀었을 정도로 쓰린 속을 편안히 잠재우는 마력을 지녔다.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해점어’라 부르며 살이 아주 연하고 뼈도 연한데 맛은 싱겁지만 술병을 잘 고친다고 기록했다.

▼ 하양과 빨강 등대가 손짓하는 어달항으로 향하는 길. 발아래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몰려드는 파도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다 물결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물이 맑을수록 그림자의 무늬도 맑아진다.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일렁이며 생동하고 있다.

▼ 도로로 다시 내려선지 12분. ‘낚시의 명소’라는 입간판까지 내건 ‘어달항(於達港)’을 지난다. 50척 남짓 되는 어선들이 입출항하는 작은 항구지만, 인근 연안어장과 정치망 어업 등을 통해 싱싱한 수산물이 매일 들어온다는 항구이다. 덕분에 주변 횟집에서 여러 가지 해산물을 쉽게 맛볼 수 있으며, 조용하고 아늑한 항구 분위기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 도로변을 따라 내놓은 해파랑길은 도로 만큼이나 폭이 넓다. 하지만 그게 더 거추장스러워졌다.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을 피하다보면 차도로 내려서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바다에는 부표처럼 생긴 등대가 떠 있었다. 저 등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돌아올 누군가는 알까? 동구 밖 당산나무처럼 긴 세월을 뿌리박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마음을... 등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바다에서는 만선의 꿈을 키우는 어선들만 오락가락 분주하다.

▼ 잠시 후 새하얀 모래밭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백사장 길이가 300m(폭 20~30m)라는 ‘어달 해수욕장’이다. 이곳은 2~4도의 경사에 평균 물 깊이도 1m 밖에 되지 않아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하긴 여름철 성수기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데다, 싱싱한 먹을거리로 넘치는 횟집타운까지 끼고 있으니 가족단위 피서지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 백사장에는 아이들이 물놀이에 한창이다. 그 뒤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그들을 덮칠 기세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 어달해변에서는 감성적인 카페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어떤 곳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니 바다를 배경삼은 인생샷 하나 건져보라는 포토죤일지도 모르겠다.

▼ 대진항을 향해 내닫는 길. 중세 성곽의 망루를 쏙 빼다 닮은 군의 해안초소가 인상적인 구간이다. 아니 항구가 아닌, 그렇다고 언덕도 아닌 곳에 세워진 등대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건 그렇고 바닷가에 널린 크고 작은 갯바위가 매력이기도 한 이곳에서 절대 놓쳐서 안 될 게 있다면 그건 파도와 몽돌이 빚어내는 이중주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히다.

▼ 어달항을 지난 지 30분 만에 ‘대진항(大津港)’에 도착했다. 작은 어선 몇 척이 한가한 포구보다는 선박 모양으로 꾸며놓은 ‘LALA 카페&서프’ 건물이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항구이다. 하지만 한적한 외형과는 다르게 문어와 방어, 청어, 곰치, 개복치, 학꽁치 명주조개 등 다양한 어종의 활어항으로 유명하단다.

▼ 해파랑길 이정표(망상해변 2.4㎞/ 묵호역 5.6㎞)가 매달려있는 널따란 광장에는 ‘서울 경복궁의 정동방은 이곳 대진마을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럼 ‘경복궁의 정 동쪽에 위치한 바닷가’라는 지명 유래까지 보유한 정동진(正東津)은 어쩌란 말인가. 아무튼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라도 이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대문의 정동방을 표방한 까막바위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경복궁이라니.

▼ 대진항을 지나면 탁 트인 ‘대진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 와본 가족은 있어도, 한 번 와본 가족은 없다’. 이런 수식어로 대진해수욕장을 표현하는 이가 있었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은데다 사람까지 적어 가족단위 피서지로 최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젊은 연인들이 더 많이 찾는 곳으로 보였다. 서핑보드로 뒤덮이다시피 한 모래사장이 그 증거라 하겠다. 참! ‘대진(大津)’이라는 지명과는 달리 이곳의 행정계는 망상동(望祥洞)이라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 ‘대진 해수욕장’에서 좌측으로 빠져나와 ‘일출로’를 탄다. 붉은 색으로 칠해진 군부대의 담장 옆을 지나자 서울대 동해해양연구센터. 이 구간에서 우린 바다와 헤어진다. 시야가 막히기 때문에 조금은 답답한 구간이라 하겠다. 하지만 꽃망울을 활짝 연 넝쿨장미 울타리가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 잠시 후 마상천 위를 가로지르는 ‘해물금교’가 길손을 맞는다. 이때 바닷가에 놓인 또 다른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민간인에게는 금단(禁斷)의 영역이니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경관이나 가슴에 담아두자.

▼ 다리를 건너면 ‘노봉해수욕장(魯峰海水浴場)’이 시작된다. 350m(폭 50m) 길이의 작은 백사장을 품은 아담한 해변으로 모래가 곱고 수온이 적당하며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 휴양지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해파랑길은 노봉해변 대신에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 영동선의 망상역 근처에서 길은 아까보다 더 고와졌다. 넝쿨장미 울타리가 도로의 양옆으로 길게 쳐져 있기 때문이다.

▼ 노봉해변을 스치듯 지나친지 12분 만에 망상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왼편으로는 망상해수욕장의 얼굴마담이랄 수 있는 ‘카라반’.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해수욕장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바닷가 리조트나 펜션이 인기 있는 이유는 한여름 밤의 낭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싼 게 흠이다. 텐트 치고 숙박하는 것까지도 싫은 사람들이 찾는 게 카라반이다. 그저 싸들고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해 먹은 후 바로 들어가 잠을 청하면 되니 이 얼마나 편한 시설인가. 거기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를 느끼며 티타임을 즐기거나 고소한 바비큐파티와 맥주파티를 즐기는 이국적 분위기라니.

▼ 망상해수욕장(望祥海水浴場,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2호)은 백사장의 길이가 무려 2㎞에 이른다. 수심도 0.5∼1m에 불과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정평이 나있다.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과 푸른 물, 은빛 파도, 울창한 삼림과 맑은 공기는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거봉인 정철(鄭澈)이 이곳에서 강도(講道)를 열었을 만큼 경승을 자랑한다. ‘바랄 망(望)’에 ‘상서로워질 상(祥)’을 쓰는 이름에 걸맞다고나 할까?

▼ 길고 긴 모래사장이 끝나갈 즈음이면 ‘사구(砂丘)’가 나온다. 사구는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모래들이 쌓인 곳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식물이 살기에는 적합지가 않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바닷바람과 너울성 파도, 강한 햇빛 등 극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갯방풍, 갯완두, 갯메꽃 등 약 30여종의 해안식물이 자생하고 있단다. 동해시에서 이런 자생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 및 관찰데크를 설치하는 한편, 외래식물 제거나 종자파동 등을 통해 해안식물을 보호·증식하고 있었다.

▼ 해파랑길은 ‘망상컨벤션센터’ 직전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바닷가를 걸었다. 컨벤션센터와 사구식물보호지역 사이로 탐방로가 잘 나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서는 ‘파크골프장’으로 여겨지는 시설도 눈에 띄었다. 파크골프(park golf)란 나무로 된 채를 이용해 역시 나무로 만든 공을 쳐 잔디 위 홀에 넣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치는 골프놀이이다. 장비나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세게 휘둘러도 멀리 안 나가는 까닭에 최근에 부쩍 인기가 높아진 레포츠이다.

▼ 시설공사가 한창인 ‘망상오토캠핑리조트’ 앞에서 모래사장을 빠져나오니 영동선 아래로 난 굴다리. 다리 아래를 지나자 탐방로는 국도(7호선)로 올라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원래의 34코스는 국도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하도록 나있었기 때문이다. 굴다리 입구의 벽면에 이정표(여성수련원 5.41㎞/ 묵호역 7.14㎞)가 붙여져 있으니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이후부터는 국도를 따른다. 차도와 인도를 난간으로 구분한 다음 푸른색 선으로 해파랑길임을 표시했다. 그나저나 이 구간은 여름철이면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 오뉴월 뙤약볕을 막아줄만한 시설이나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를 걸 그랬나보다. 그랬다면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실컷 맞아보지 않았겠는가.

▼ 오른편으로는 ‘망상오토캠핑리조트’의 여러 시설(아래 사진은 한옥타운이다)들이 따라온다. 2002년 제64회 세계캠핑캐라바닝 동해대회를 계기로 조성된 가족단위의 사계절 캠핑관광 휴양시설로 훼밀리롯지, 캐빈하우스, 아메리칸 코테지 등의 이국적인 숙박시설과 캐라반, 오토캠핑사이트 및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품격 휴양 관광지다. 하지만 지난 2019년 발생한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복구공사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 왼쪽에서 따라오는 산봉우리는 온통 민둥산이다. 2019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했던 산불의 영향일 것이다. 당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망상해변까지 번졌고, 그로 인해 저 산은 물론이고 아름답던 망상오토캠핑리조트까지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 바다가 내다보이는 언덕에는 ‘옥계휴게소’가 걸터앉았다. 동해고속도로(삼척-속초)의 속초방향 휴게소로 동해의 뷰(view)가 하도 고와 ‘고속도로 휴게소 10대 사진명소’로 까지 선정된 곳이다. 저곳에서는 SBS-TV의 예능 ‘만남의 광장’이 맨 처음 열리기도 했다. 산불피해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던 당시 백종원과 멤버들은 로컬 푸드로 ‘홍게라면’을 개발했고, 이게 전파를 타면서 휴게소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 북쪽으로 향하는 해파랑길은 여전히 바다를 벗 삼는다. 기찻길 역시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그 길을 건너는 고가도로는 나름대로 전망대의 역할까지 해준다. 한마디로 뷰가 끝내주는 곳이다. 지대가 놓은 곳에 길을 내놓은 덕분에 시야를 툭 트이면서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고가도로를 내려서면 ‘한라시멘트’이다. 환경문제로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역경제에는 큰 몫을 담당한단다. 갈등도 상생협력을 통해 해결해나가고 있다니 다행이라 하겠다.

▼ 오른편으로 도직항(道直港)이 내려다보인다. 꼬맹이 포구에는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낚시꾼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만 가득했다.

▼ 시멘트공장 옆에는 ‘샛터 성황당대명비’가 세워져 있었다. 길 건너 ‘주수2리(珠樹2里)’ 마을에는 ‘새터’라는 표지석도 보인다. 이 부근이 ‘새터 마을’이고, 시멘트공장이 들어서면서 성황당(城隍堂)이 사라지자 이곳에 대명비(大命碑)를 세웠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옥계역교차로’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옥천대교’를 건넌다. 망상해수욕장을 벗어난 지 50분 만인데, 직진해 나가면 원래의 해파랑길이 끝나는 ‘현내교’ 방향이다. 참고로 다리 아래로 흐르는 주수천(珠樹川)은 옥계면에서 가장 큰 하천이다. 낙풍천과 만나는 하류에서 넓은 평지가 만들어져 산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다.

▼ 탐방로는 잠시 후 또 다른 다리를 건넌다. 이번에는 낙풍천(樂豐川)을 가로지르는 ‘광포교’이다. 이어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조금만 더 걸으면 이내 옥계해수욕장(玉溪海水浴場)에 이른다.

▼ 옥계해수욕장은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서 주수리까지 약 2.5㎞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사빈(沙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철 이른 백사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긴 성수기에도 이곳은 비교적 조용하단다. 그래서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트레킹 날머리는 한국여성수련원 앞(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해파랑길은 해수욕장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옥계해변 안내도’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내놓은 탐방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수령 40~50년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탐방객들과 함께하는 길이다. 이어서 솔향기 킁킁거리며 걷다보면 여성수련원이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해파랑길 34-35코스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수련원 앞에 만들어져 있다. 아무튼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14.03km. 논골담길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로 걸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