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소나무 숲 트레킹
여행일 : ‘18. 6. 18(월)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일원
걷기코스 : 화진포 해나무교→삼각점봉→응봉→임도→전망대→화진포의 성→화진포 콘도→화진포 해양박물관(소요시간 : 2시간 40분) 이동 중 하늬라벤더팜 탐방
함께한 산악회 : 좋은 사람들
특징 : 산과 호수, 바다를 모두 걷기 때문에 고성 지역의 지리와 역사적 특성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우선 동해안에 기대어 선 산릉(山陵)은 짙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꼭대기(응봉)에서 만나게 되는 화진포 일대의 조망은 거의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석호(潟湖 : 바다 가운데로 길게 뻗어나간 모래톱이 발달됨으로써 해안의 만灣이 바다로부터 떨어져서 생긴 호수)이자 담염호(淡鹽湖 :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수)인 ‘화진포 호수’는 아름답기로 이미 정평이 나있고, 지나가는 길에 들르는 ‘화진포의 성(옛 김일성 별장)’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까지 되돌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에 만들어진 산림욕장에서의 힐링(healing)에다 눈이 호사를 누릴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 그리고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가족 여행지로 이만한 곳이 없을 듯 싶다.
▼ 트레킹의 들머리는 화진포 해나무다리(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480-3 )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성산교차로(인제군 북면 한계리)에서 오른쪽 속초·인제 방면으로 44번 국도를 탄다. 인제를 지나 한계교차로에서 ‘간성(고성)·속초’ 방면으로 좌회전해 46번 국도로 갈아타고 진부령을 넘어 간성읍까지 온다. 이어서 상리교차로(간성읍 신안리)에서 7번 국도로 옮겨 거진읍까지 올라가다 자산교차로(거진읍 자산리)에서 오른편 거탄지로로 옮기면 거진읍 해안길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들고, 잠시 후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해맞이교(橋)가 놓여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오늘 트레킹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이 다리는 고성 일원에서 경북 울진의 월송정까지 330여㎞의 도보길을 발굴·조성하는 정부의 광역권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과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을 잇는 보행자 전용의 다리쯤으로 보면 되겠다.
▼ ‘화진포 해맞이교’로 연결되는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초입에 ‘거진 해맞이봉·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 종합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고운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은 널찍할 뿐만 아니라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 하지만 공군부대의 담벼락을 지나고 나서는 가팔라진다. 그것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지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왔다갔다 ‘갈 지(之)’를 써가면서 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탐방객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배려일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10분쯤 지날 즈음 첫 번째 봉우리를 만난다. 탐방로는 이를 우회(迂廻)시키지만 난 고집스레 오르고 본다. 뭔가 볼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내 결정은 옳았다. 쉼터용으로 놓아둔 평상 앞에 삼각점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판독은 비록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만 계속된다. 걷는 게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주변은 온통 소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무한정으로 뿜어내는 게 소나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곳에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마침 주어진 시간까지도 여유롭다. 모처럼 ‘느림보 미학’을 시도해 볼 기회다. 사실 도회지의 시간에 익숙한 사람에게 ‘느린 시간여행’을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것도 평지가 아닌 좁고 굽어진 옛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느릿느릿 뒷짐 지고 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생명을 싹틔우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25분 만에 응봉 정상에 올라선다.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해서 ‘매 응(鷹)' 자를 써 '응봉'이라고 불렀단다. 기껏해야 해발이 122m에 불과한 산을 굳이 높은 산이라고 했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근에는 이만한 높이의 산도 없기 때문이란다.
▼ 도톰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관목원 400m, 화진포의 성 1.5㎞) 외에도 통나무의자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그 옆에 조망도(眺望圖)까지 세워둔걸 보면 조망을 즐기면서 푹 쉬었다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한쪽 귀퉁이에는 정성들여 쌓아올린 케언(cairn)도 보인다. 그렇게 쌓아올린 하나하나의 돌맹이들에는 그 누군가의 절실한 바램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화려하다. 물안개가 아른거리는 화진포해수욕장은 물론이고 ’화진포 호수‘가 그 화려한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화진포호는 송지호와 함께 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 형성된 석호(潟湖 : 바다 가운데로 길게 뻗어나간 모래톱이 발달됨으로써 해안의 만灣이 바다로부터 떨어져서 생긴 호소)이자 담염호(淡鹽湖 :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수)이다. 또한 둘레가 16㎞에 달하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국내에 있는 8개 석호 가운데 가장 많은 생물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산을 시작한다. 화진포 호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내려오면 된다. 임도에 가까울 정도로 널찍한 길을 따라 잠시 내려오면 이번에는 진짜 임도(이정표 : 화진포의 성↑ 1.2㎞/ 관목원← 100m/ 응봉↓ 200m)를 만난다. 왼편에 보이는 데크길은 관목원과 습지원을 거쳐 생태박물관으로 연결된다. 화진포의 성은 물론 직진, 그러니까 맞은편 능선을 타면 된다.
▼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봉우리의 위에 올라있다. 이곳에는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화진포 호수를 바라보라는 모양이지만 아까 정상에서의 조망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진다. 같은 풍경화이지만 이곳의 그림은 잡목들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 다시 트레킹을 이어간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더니 안부에 이르자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아까 만났던 임도를 따랐을 경우 이곳에서 다시 만났지 않았나 싶다. 참! 그러고 보니 이미 우린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에 들어서있다. 이 산림욕장은 산림 테라피원, 관목원, 습지원, 명상숲길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우린 응봉에서 시작해 ‘화진포의 성’까지 계속해서 소나무숲길을 따를 계획이다. 숲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완만하여 걷기에 무척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임도를 무시하고 또 다시 맞은편 능선을 따른다. 안개가 자욱한 것이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로인해 울창한 소나무 숲 외의 다른 경관은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을 음미하며 걸어볼 일이다.
▼ 길은 무척 곱다. 널찍하게 난 보드라운 흙길은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꼬불꼬불 시나브로 돌아가는 옛 고갯길의 전형적인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이런 곳에서는 서두를 이유가 조금도 없다. 아무리 속도전이 만연한 시대라지만 문명의 속도를 내려놓고 ‘느리게 가는 시간’과 ‘손대지 않은 풍광’에 빠져볼 일이다. 새로운 삶이 동행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속도를 뚝 떨어뜨린다. 그러자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생명감을 주는 아름다운 자연이 도시의 삶에 찌든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에 이런 길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성숙해져 있음을 느낀다.
▼ 길게 놓은 나무계단을 내려서자 진행방향의 솔숲사이로 이층짜리 석조건물 하나가 내다보인다.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리는 ‘화진포의 성’이다. 이 건물은 1937년 독일의 웨버 선교사가 건축하여 교회로 쓰다가 1945년부터는 김일성이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유이다. 한국전쟁 때 크게 훼손되었는데 1964년 육군이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여 군인휴양소로 이용해오다가 1995년부터 안보전시관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물론 유료(有料)이다.
▼ 먼저 옥상으로 올라가본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자못 빼어나기 때문이다. 톱니바퀴 같은 성벽사이로 화진포 일대의 해안선과 동해바다, 그리고 배후에 있는 맑은 호수가 그 아름다움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짙게 낀 해무(海霧)가 그 아름다움을 한층 더 배가(倍加)시키고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개가 바다 가운데에 있다는 금구도와 해금강을 가려버린 것은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하겠다. 그래도 방문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들은 한번쯤 이용해보자. 조망도(眺望圖)는 물론이고 망원경까지 꼭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운이라도 좋아 북한 땅에 있는 해금강을 눈에 담아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건물의 내부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만행 등을 알리는 안보교육에 관한 내용과 화진포 지명유래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북한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라는 코너(corner)가 아닐까 싶다. 남북 장관급회담과 남북 철도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 그리고 각종 남북협력 사례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는 남북화해 무드가 절정에 달하고 있는 요즘 분위기에 나 또한 한껏 들떠 있음이리라.
▼ ‘화진포의 성’을 빠져나오면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았다는 ‘화진포해수욕장’이다. 화진포와 바다 사이의 사주가 성장함에 따라 호수와 바다 사이에 형성된 길이 1.7㎞의 백사장으로, 호수의 출구에 의해 호안(湖岸)과 해안이 구분된다. 해안은 수심(水深)이 얕은데다 경사까지도 완만하단다. 거기다 송림(松林)까지 끼고 있으니 해수욕장의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이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주위경관까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모래는 눈과 같이 희다.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지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데,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이 모래를 택리지(擇里志)에다 ’울 명(鳴)'자와 ‘모래 사(沙)'자를 써서 '명사'라고 기록했다. 모래에서 쇳소리가 난다고 해서 명사라고도 불렸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저 모래에는 모나즈(monaz) 성분이 많다고 한다. 때문에 감촉이 부드러우며 개미와 곤충도 들끓지 않는단다.
▼ 해안가 언덕에는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사랑의 열쇠를 매달 수 있도록 하트 모양의 ‘걸개판’을 내걸었는가 하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Soohorang)과 반다비(Bandabi)의 조형물도 세워놓았다. 그 옆에 보이는 쇠기둥 위에는 명태(明太) 두 마리가 올라 앉아있다. 고성군의 군어(郡漁)임을 알리려는 목적일 것이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조형물이 길손을 맞는다. 화진포의 또 다른 볼거리인 바위섬, 금구도(金龜島)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화진포 쪽에서 바라볼 때 ’거북이‘의 형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경관이 뛰어나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별장이 많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금구도는 광개토왕의 릉(陵)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그래선지 조형물의 옆에다 이와 관련된 근거들을 적어 놓았다. ’고구려 연대기‘를 살펴보니 광개토대왕 때 이곳에 왕릉축조를 시작했으며 대왕이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들인 장수왕 때 시신을 안장했으며 이후 신라의 군사와 릉의 수비대가 잦은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는 ‘고성문화포럼’의 주장일 따름이므로 공인을 받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릉’을 뒤엎을만한 획기적인 발견이 필요할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 섬에는 축성연대와 사용목적을 알 수 없는 길이 60m, 높이 170∼230m의 돌로 쌓은 성벽이 남아 있는 것을 비롯해 건축물의 주초석, 기와조각과 토기파편들이 발견된 바 있다고 한다.
▼ 모래사장의 뒤편에는 ’화진포콘도‘가 들어서있다. 육군휴양소로 지어졌지만 군인전용은 아니란다. 콘도에는 군부대의 피엑스 기능을 하는 마트는 물론이고 식당과 노래방까지 들어서 있다고 한다.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날머리인 해양박물관에는 식당이 없으니 이곳에서 요기를 때우고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마침 자연산 회를 시중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데다 물회는 맛까지 뛰어나다니 안성맞춤이 아니겠는가. 근처에 ’화진포 생태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빼먹을 뻔했다. 화진포 생태박물관은 잠시 후에 들르게 될 ’해양박물관‘, ’송지호 철새관망타워‘ 등과 함께 고성군의 핵심 생태전시장으로 환경보전을 위한 교육박물관이다. 우리처럼 날머리를 해양박물관으로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자칫 날머리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거론해봤다.
▼ 콘도를 지나자 이번에는 더 고운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백사장 뒤편에는 군대의 막사처럼 생긴 건물들 몇 동이 늘어서 있다. 콘도의 별관이라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으로 보아 성수기 때만 문을 여나 보다. 이쯤해서 백사장을 빠져나와 소나무 숲길을 타본다. 그 유명한 ’화진포호수 금강소나무 숲‘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끊겨있었기 때문이다.
▼ 콘도까지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콘도의 정면으로 난 길을 따른다. 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꽉 들어찬 기분 좋은 숲길이다. 사람들은 이 일대 4ha의 송림(松林)을 '화진포호수 금강소나무 숲'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구불거림이 적고 대체로 하나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나무 자체만으로도 보기에 좋다. 나무의 키는 15m 내외이고 직경도 20~40㎝로 크진 않지만 울창하게 덮여있어 여간 상큼한 게 아니다. 하긴 ‘(사)생명의 숲 국민운동’과 산림청 그리고 유한킴벌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까지 수상했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아무튼 금강소나무(金剛松)는 강송(剛松), 미인송(美人松), 춘양목(春陽木), 황장목(黃腸木) 등으로도 불리는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 동해안에 분포되어 자란다. 또한 줄기가 곧고 붉은색을 나타내며 나무껍질이 얇고 재질이 우수하여 가구재, 문화재, 건축용재로 사용되는 소중한 나무라고 한다.
▼ 숲길을 지나면 자연풍광이 수려하기로 소문난 ‘화진포(花津浦) 호수’가 나온다. 원래는 동해 바다였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다와 격리되면서 형성된 석호(潟湖)로, 면적이 72만평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며 호수 주위로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이 호수는 얕고 폭이 좁은 수로(수심 80㎝, 폭 50㎝)로 연결된 2개의 호수(내호, 외호)로 이루어졌으며, 이 가운데 외호(外湖)는 평상시에는 닫혀있는 좁은 통로로 동해와 연결된다. 하지만 장마 또는 폭풍 때에는 바다와 연결되면서 해수유입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담염호(淡鹽湖 :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수)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한편 이 호수는 비무장지대와 인접한 탓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다. 이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전되었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과 갈대 숲속의 풍부한 먹이를 찾아온 철새들의 휴식처가 되어왔다.
▼ 호숫가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내호(內湖)와 외호 사이에 놓인 화진포교를 건너 이승만별장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가려는 해양박물관은 물론 오른편 방향이다. 이 길은 바람과 파도와 모래가 물을 가둬놓은 석호(潟湖)인 화진포 호수를 왼편에 끼고 이어진다. 갈대숲이 운치를 더하는 길이다. 참고로 전설에 의하면 화진포 호수의 옛 이름은 ‘열산호(烈山湖)’였다고 한다. 화진포 건너 마을에 ‘열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어느 해 큰 비가 내려서 마을이 송두리째 물에 떠내려갔다. 그리고 마을이 있던 곳이 차차 물에 잠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곳 사람들은 열산동 산쪽으로 마을을 옮겼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여 물결이 일지 아니할 때에는 그 옛날 촌락이 있던 터와 담장을 쌓았던 자취가 보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고운 빛깔의 해당화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해당화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연인의 숨결'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꽃이다. 옛날 연인이 바닷가를 노닐고 있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와 두 사람을 덮치자, 남자는 여인을 물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물에 휩싸여 죽고 만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여인의 눈물이 남자의 시신에 닿자, 그 자리에서 짙은 분홍빛 애잔한 꽃이 피어났단다. 그게 바로 해당화인데 화진포란 이름은 이 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한다고 해서 화진포(花津浦)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아름다운 해안길을 따라 얼마간 걷자 아치(arch)형으로 생긴 예쁜 다리가 나타난다. 화진포 호수와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놓인 금구교(金龜橋)인데, 근처에 있는 금구도(金龜島)에서 이름을 따온 모양이다. 입구의 난간에는 고니 조형물이 앉아있다. 화진포 호수에서 노니는 새하얀 고니떼가 '백조의 호수'를 연상케 한다더니 이를 형상화 시켜놓지 않았나 싶다.
▼ 트레킹 날머리는 화진포 해양박물관(고성군 현내면)
다리를 건너자마자 배 모양으로 생긴 건물 하나가 짙게 낀 해무(海霧)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관동별곡 八백리, 답사 一번지 高城‘이라고 쓰인 거대한 비석이 자리 잡고 있는 마당으로 들어서자 조개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거인조개(Giant Clam)‘라고 하는데 해양박물관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듯 싶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해양박물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화진포 관광지구 내에 위치한 화진포 해양박물관은 패류박물관과 어류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패류박물관에서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와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1,500여종 40,000여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어류전시관에서는 수중생물 125종 3,000여 마리를 각각의 서식 환경과 컨셉에 따라 보여준다. 그건 그렇고 이번 트레킹은 총 2시간 40분이 걸렸다. 화진포성 내부를 둘러본 것 말고는 한눈을 팔지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데만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 이동 중에 ‘하늬 라벤더 팜’에 들르기로 했다. 고성군 간성읍 어천3리 ‘꽃대마을’. 진부령 아래에 위치한 라벤더 농장이다. 이곳은 ‘라벤더 전도사’로 불리는 하덕호씨가 3만 3000여㎡에 라벤더를 심어 조성한 곳이다. 경기도 의왕시에서 허브 숍을 운영하던 그는 허브제품의 원료가 되는 라벤더를 직접 재배하려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이곳 고성의 기후조건이 라벤더 주산지인 유럽과 비슷했기 때문이란다. 라벤더는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서식하는 방향성 식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싹이 트는 이른 봄에 충분한 수분이 제공될 수 있도록 겨우내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점도 작용했다. 매년 이맘때면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라벤더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행사는 물론이고, 주말에는 라벤더정원에서 향기음악회도 연단다. 하지만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단다. 작년 겨울의 혹독한 추위로 인해 라벤더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농장은 상시로 개방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 아니겠는가. 조금은 어설프겠지만 아름다운 꽃밭을 구경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 안으로 들자 너른 언덕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있다. 라벤더가 만개하면서 누구나 동경했을 법한 보랏빛 언덕을 만들어 냈다. 보라색의 라벤더는 초여름 딱 보름 동안 만개해 비현실적인 색감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이다. 그 꽃들이 너른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름답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꽃만 보는 우(愚)는 범하지 말자. 이 꽃밭은 한 사내가 뿌린 13년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찾아온 이들에게는 그저 낭만적인 꽃밭일 따름이지만, 가꿔낸 이에게 꽃밭은 고된 노동과 거듭되는 실패, 포기에 대한 망설임의 긴 행로를 거쳐 비로소 이룬 성취인 것이다.
▼ 정원의 한켠에 ‘꽃양귀비’도 심어 놓았다. 꽃양귀비는 유럽원산의 귀화식물로서 전국의 공원이나 하천 변에서 자라는데 줄기 끝에 꽃이 1개씩 달리는 한해살이 풀로 전체에 털이 무성하다. 아무튼 꽃밭 전체가 화려한 꽃들로 가득하다. 온통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5~8월이 꽃들을 피워내는 시기이니 때를 제대로 맞춰온 셈이다.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는데 ‘양귀비꽃을 이렇게 키워도 되느냐?’는 소곤거림이 들려온다. 양귀비꽃에서 추출되는 아편(阿片)의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제배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음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꽃양귀비(Papaver rhoeas L.)에는 양귀비(Papaver Somniferum L.)와는 달리 진통작용, 진해작용, 탐닉작용, 중독작용을 일으키는 알칼로이드 성분인 모르핀이나 코데인이 없기 때문이다.
▼ 메밀꽃밭도 보인다. ‘이효석 선생’이 노래한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글의 배경인 봉평 만큼은 아니어도 흐드러지게 핀 꽃밭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하다 하겠다. 메밀꽃은 다른 꽃들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푸른 풀밭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풍경은 수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등 화려한 꽃들에 뒤질 게 없겠다는 얘기이다.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 게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그렇고 메밀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막국수'다. 화전민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심어 국수를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막국수의 시초는 화전민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마구' 뽑은 거친 국수였다. '금방 막 눌러 바로 먹는다'고 해 막국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과거 특별한 손님이 오면 맷돌에 메밀을 갈아 국수를 뽑아 대접했는데 한국전쟁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려고 국수를 만들어 팔던 게 대중화의 시초라고 한다.
▼ 누군가는 꽃밭을 가꾸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매한가지라고 했다. 붓으로 물감을 찍어 그리듯 색색의 꽃을 심어 꽃밭을 가꾼다는 것이다. 솜씨란 갈수록 좋아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꽃밭도 올해보다 내년이 한결 더 좋아질 것이다. 보라색 라벤더와 붉은 꽃양귀비, 흰 메밀꽃, 갈색 호밀 말고도 또 어떤 색깔의 꽃들이 이 언덕을 채우고 있을지가 미리부터 궁금해진다.
▼ 농장에서는 라벤더 제품과 기념품을 파는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메스퀘타이어 숲에서 시화전이 열고 있는가 하면, 체험학습장에서는 라벤더의 역사와 세계적인 재배지, 그리고 라벤더 향기의 추출방법과 오일의 효능 등을 판넬(panel)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닐까 싶다. 한입 배어먹을라치면 라벤더 향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거기다 시원함까지 더해지니 오늘 같이 무더운 날에는 제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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