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백산(民白山, 1,212m)-삼동산(三洞山, 1,178.2m)
산행일 : ‘17. 8. 5(토)
소재지 :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하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상금정 마을→합수곡→폐갱도→주능선 삼거리→민백산→1119m봉→삼동산→1119m봉→폐갱도→상금정(산행시간 : 4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두 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 제대로 된 바위 하나 만나보지 못했다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산들은 ’지맥종주‘나 ’오지산행‘을 하는 산꾼들 외에는 낯선 이름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덕분에 산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하도 적다보니 길이 없어져버렸다고 보면 된다. 특히 상금정에서 민백산으로 오르는 길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20년 가까이 산행대장을 해온 산꾼이 핸드폰에다 앱(Application)까지 깔아놓고도 지도에 나오는 길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핸드폰이 일러주는 지점으로 가려고 해도 잡목(雜木)과 넝쿨식물들이 뒤엉켜있어 진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다고 해도 특별이 눈에 담을만한 산세(山勢)는 없다. 흙산의 일반적인 특징대로 조망까지도 일절 트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 산행들머리는 상금정마을(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서영월교차로(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서 빠져나와 88번 지방도로 옮겨 고씨동굴랜드와 옥동, 내리를 연거푸 지나면 도리기재에 올라서게 된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마루이다. 이 도래기재에 이르기 조금 전 하금정삼거리(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산 1-42)에서 왼편으로 군도(郡道, 상금정길)가 나뉘는데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상금정마을이 나온다. 하금정 삼거리에 ’우구치리‘라고 적힌 큼직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상금정 마을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오지(奧地) 마을이다. 사방이 산들로 막혀 있는 계곡을 끼고 열 채도 안 되어 보이는 민가가 흩어져 있다. 그나마 반은 빈집으로 보인다. 그래도 봉화에서 아침과 저녁, 1일 2회씩 버스는 들어온다고 한다. 종점에는 반듯한 화장실까지 만들어져 있다.
▼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마을을 지나서도 넓고 곧다. 차 한대가 충분히 지나갈 정도인데 가끔가다 두 대가 비켜지나갈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두었다. 하긴 십여 년 전까지 노선버스가 다녔다고 하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금정광산이 한창일 때만 해도 이곳 우두치에는 수천 세대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단다. 그러다가 끝내는 버스도 다닐 필요가 없는 오지(奧地)로 변해버린 것이다.
▼ 5분쯤 걸었을까 진행방향 저만큼에 시멘트로 지어진 2층 건물이 보인다. 그 맞은편에는 단층 건물도 두 동이나 지어져 있다. 1995년에 폐교(廢校)된 ‘서벽초등학교 금정분교’라고 한다, 지금은 비록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지만 당시에는 제법 큰 학교였던 것 같다. 하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금정광산이 이곳에 있었다니 학생 수도 그에 걸맞게 많았을 게 분명하다.
▼ 길가에 빈집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곳도 역시 ‘이농(離農, rural exodus)현상’이라는 보편적인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이곳엔 ‘금정광산’이라는 커다란 금광(金鑛)이 있었다고 하니 광산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맥을 같이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수도 있겠다.
▼ 폐가(廢家) 근처에 도라지꽃이 만발한 텃밭이 일구어져 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민가는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경작을 할 만한 땅이 적다는 증거일 것이다.
▼ 잠시 후에는 또 다른 폐가를 만난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엔 깔끔한 외관(外觀)을 하고 있다. 관리를 해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마 밑에 빈 벌통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게 보인다. 꿀의 채취시기에만 사용하는 가옥인 모양이다.
▼ 곧이어 합수곡(合水谷)에 이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16분만인데 사람들이 신촌이라고 부르는 지점일 아닐까 싶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부근에는 차량 몇 대가 세워져 있다. 냇가에 천막까지 쳐진 걸로 보아 물놀이를 나온 가족들일 것이다. 하긴 봉화군에서 우구치계곡 일원을 비지정관광지로 지정(1997년)까지 했다는데 저 정도의 차량 정도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우구치리계곡이 물이 맑은데다 수림(樹林)까지 우거져 있어 여름철 행락객들이 놀다가기에 딱 좋은 장소라는 얘기일 것이고 말이다.
▼ 길의 왼편에 높게 쌓아올린 돌 축대(築臺)가 보인다. 오른편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그쪽도 역시 석축을 반듯하게 쌓아올렸다. 금정광산이 폐광(廢鑛)된 후 광해방지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 아닐까 싶다.
▼ 그렇게 10분 남짓 더 걸으면 또 다른 합수곡이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임도는 오른편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민백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계곡으로 들어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른편 계곡이다. 이따가 산행을 마치고 삼동산에서 내려올 때에는 왼편 계곡을 따르게 되니 참조한다.
▼ 함수지점 오른편에 몇 개의 시설이 지어져 있다. 금정광산(金井鑛山)의 폐갱도(廢坑道)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설이다. 즉 갱내에서 흘러나오는 갱내수를 정화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금정광산(金井鑛山)은 한반도의 대표적인 금광으로 '짚신 신고 그 앞을 지나도 신발에 금조각이 박혀 나왔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만큼 금(金)이 많이 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인데 당시 일본인들은 이곳의 금을 캐가기 위해 봉화군 최초의 변전소를 세웠고, 소학교는 물론이고 순사가 10명도 넘는 주재소까지 만들었단다. 도로와 터널이 뚫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 시설물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경고판에 눈에 익은 이름이 적혀있다. 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광해관리공단(韓國鑛害管理公團, Mine Reclamation Corporation)’이다. 효율적인 광해방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06년에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데, 이 기관이 만들어질 때 직간접으로 간여를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광산 피해의 방지 및 복구에 관한 법률’이 제정(2005년 5월 31일)됨에 따라 ‘석탄합리화사업단’이 해체되고 ‘광해방지사업단’으로 새롭게 설립될 당시의 고생했던 일화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비록 고생은 했지만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지 않나 싶다.
▼ 금정광산(金井鑛山)은 1923년에 개발된 이래 1945년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2의 금산지였다고 한다. 추정매장량이 17만3천6백여 톤이나 되었고, 이곳에서 생산된 금이 2만6천4백 톤에 이르렀다니 얼마나 큰 광산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1993년에 문을 닫았으니 70년의 가행기간 동안 지역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했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금광은 금(金) 외에도 은(銀)과 동(銅), 연(鉛), 아연(亞鉛), 텅스텐(tungsten) 등이 함께 나오는 게 보통인데, 금정광산은 이 광물들을 모두 합쳐 67만여 톤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 광산은 비록 문을 닫았지만 광물을 가득 실은 광차가 지나다니던 선로(線路)는 그대로 깔려있다. 노다지로 넘쳐나던 옛날이 그립기라도 했나보다. 차마 옛 시설들을 철거하지도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참고로 ‘금정(金井)’이라는 지명은 일본인들이 금광을 개발하면서 하도 금이 많이 나와서 금을 캐는 것이 마치 우물 속에서 금을 건져 올리는 것 같이 수월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갱(坑)에서는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나온다. 그래선지 에어컨보다도 시원한 바람이 갱도 안으로부터 불어온다. 천정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고 하면 얼마만큼 시원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광해 방지시설의 왼편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양쪽의 계곡 중 오른편 계곡이다. 사방댐(砂防堰堤, erosion control dam)이 만들어져 있는 계곡이라고 보면 되겠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늘 산행은 만만치 않겠구나.’하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시작부터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Application)이 지시하는 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거친 잡목과 가시넝쿨들을 헤치고나가느라 찔리고 할퀴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10분쯤 지났을까 자갈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곳이 나온다. 옛날 금정광산이 가행될 당시에 나온 폐석(廢石) 더미가 아닐까 싶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 수풀 속으로 나있다. 하지만 폐석을 밟고 오르도록 난 길의 흔적도 보이니 주의한다. 아니 폐석 쪽으로 난 길의 흔적이 오히려 더 또렷하다.
▼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핸드폰 앱(App)의 지시를 따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가시넝쿨들이 뒤엉켜 지시대로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방해물을 피해 에돌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당연히 진행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10분 남짓 지나면 앱이 두 개의 길을 그리는 지점이 나온다. 왼편은 민백산과 삼동산의 중간 지점에 있는 안부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편은 민백산의 오른편에 있는 안부사거리로 오르는 길이다. 당연히 오른편 길을 따른다. 그래야만 정상적으로 민백산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 갈림길에서 5분 정도를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폐건물이 나타난다. 지붕까지 없어져 버린 탓에 흉물에 가깝지만, 반듯하게 각을 이루고 있는 벽면 등의 골격으로 보아 금정광산이 가행하고 있었을 당시만 해도 큰 역할을 수행하던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 또 다시 방향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만큼 길이 더 사나와진 것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잔뜩 짜증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에 지친 여성분들이 그만 되돌아 내려가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산행대장의 결정은 달래어 함께 가는 것이지만 지칠 만도 했을 것이다. 핸드폰에 나오는 지도대로 진행하려고 해도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뒤엉켜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도(高度)를 높이지도 못한 채로 이리저리 오가고만 있는 것이다.
▼ 길을 찾다보니 계곡으로 내려와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계곡을 따라 위로 오른다. 아니 계속해서 오를 수도 없다. 넝쿨식물 등의 방해물들로 인해 곧장 치고 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계곡 위 사면(斜面)으로 난 길을 따르기도 한다.
▼ 그렇게 25분을 헤매다가 끝내는 다른 방법을 택해보기로 한다. 대충 방향만 잡고 능선을 치고 오르는 것으로 말이다. 이제부터는 완전한 개척 산행이 된다. 잡목이나 넝쿨식물들과의 한판 싸움으로 봐도 되겠다. 할퀴거나 찔리는 것은 보통이고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간 싸대기를 얻어맞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길이 없는 길에서 길을 찾다.’라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함께 걷던 여성분이 ‘길에서 길을 묻다’라고 지적해준다. 조금 더 유머러스(humorous)하게 표현해보려던 내 표현이 귀에 거슬렸나보다. 갑자기 그녀가 얘기하고자 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이들에게 ‘과연 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전하고저 했다는 ‘문무일 작가’일까? 아니면 부산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770Km를 직접 걸으면서 보고 느낀 점을 적었던 ‘김영현 작가’의 의도일까. 아니 구도(求道)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법수 스님’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그녀의 감성이 나의 지성을 뛰어넘고 있음을...
▼ 그렇게 치고 오르길 30분 이름 모를 지능선에 올라선다. 앞서가던 이대장이 막무가내로 주저앉더니 ‘캔 맥주’부터 들이 키고 본다. 무척 힘이 들었었나 보다. 하긴 이런 코스에서 힘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뒤에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우리들보다는 길을 찾으려고 좌우를 오갔던 그가 훨씬 더 힘이 들었을 것이다.
▼ 지능선에 올라서고 난 후에는 길이 제법 또렷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 보이는 가파른 봉우리를 일부러 넘을 필요는 없다. 왼편으로 우회(迂迴)를 하는 이유이다. 거의 바닥 난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나머지 구간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 이름 모를 봉우리를 오른편에 끼고 에돌면 15분 후에는 구룡산에서 삼동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능선안부에 있는 사거리에 이른다. 남들은 이곳까지 오는데 75분이 걸렸다는데 우린 120분을 훌쩍 넘겨버렸으니 우리가 얼마나 헤맸는지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 오른편에 팻말이 세워져 있기에 다가가 보니 ‘군사보호지역(사격장)’임을 알리는 경고판이다. 길이 나있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 민백산은 직진방향이다. 이 길은 통신(通信) 케이블(cable)이 깔려있는 게 특징이다. 아니 주능선에 올라섰을 때부터 케이블이 보였었다. 아무튼 용도는 모르겠으나 방향이 헷갈릴 경우에는 이 통신선만 따라가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 그렇게 4분쯤 걸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민백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다음에 올라야할 삼동산은 왼편 방향이다. 민백산을 둘러본 다음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4분 후 민백산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하고도 15분이 지나버렸으니 도래기재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하긴 오는 길에 보니 그쪽에서 출발했던 선두대장의 방향지시지가 이미 깔려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갔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튼 서너 평도 안 되어 보이는 비좁은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구지역의 산악인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상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眺望) 또한 꽉 막혀있다. 참고로 민백산은 산의 지형이 둥글고 흰색의 바위가 많아 민백이(대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 길을 따른다. 무릎에도 못 미치는 산죽(山竹)과 잡목들로 가득 차있는 것만 제외하면 산길은 대체로 고운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는 얘기이다. 민백산과 삼동산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보니 급하게 오르내릴 이유가 없었나 보다.
▼ 능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황갈색이 아름다운 춘양목(春陽木)과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은 잣나무들이다. 특히 집단을 이루며 빼곡히 들어찬 잣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아니 잣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열매가 더 눈길을 끈다고 봐야겠다. 열매를 줍고 있는 집사람을 기다리다 잠시 주저앉는다. 보드라운 바닥이 주는 촉감이 아주 곱다. 코로는 스멀스멀 흙냄새가 스며든다. 은은한 향기가 참 좋다. 수북하게 쌓인 솔가리가 흙과 뒤섞이며 만들어낸 독특한 향기이다.
▼ 그렇게 20분 남짓 진행하면 능선상의 안부에 이른다. 누군가의 글에서 이곳의 높이를 1090m라고 적은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까 산을 오르면서 거론했던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이곳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해줄 표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곳 역시 이정표가 없다는 얘기이다.
▼ 이후부터는 오름길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내리막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오르막길로 이루어졌다는 얘기였을 따름이다. 그 오르막 또한 버거울 정도로 힘들지는 않는다. 쉬엄쉬엄 오르기에 적당하다면 옳은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10분 남짓 진행하면 첫 번째 봉우리(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1116m봉으로 부르기도 한다)에 올라선다. 사람들이 삼동산이겠거니 오해를 하는 봉우리 중 하나이다.
▼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은 백두삼동분맥(白頭三洞分脈)이다. 백두삼동분맥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구룡산에서 북서쪽으로 분기(分岐)하여 경북(봉화군,낙동강)과 강원도(영월군,한 강)를 가르면서 민백산과 삼동산을 일구고 난 후, 영월군의 상동읍과 김삿갓면의 경계를 이루는 쇠이봉(1119.2m)과 목우산(牧牛山=상여봉, 1066m)을 지나 영월군 중동면에 위치한 옥동천변의 녹전대교에서 그 숨을 다하는 23.1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그중 일부(민백산 못미처의 주능선삼거리에서 삼동산까지)를 오늘 걷게 되는 것이다.
▼ 무명봉에서 짧게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채면 이번에는 1119m봉이다. 무명봉(1116m봉)에서 20분 조금 못되는 거리라고 보면 되겠다. 이곳 역시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상금정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이곳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산길이 이곳에만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삼동치까지 가서 상금정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그뿐 아니라 상금정으로 가는 중간에 왼편으로 내려서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비해 엄청나게 길이 나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삼동산으로 향한다.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위로 향하는 산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뒤엉켜 진행하기가 힘들다는 얘기이다. 고개를 숙인채로 넝쿨을 해쳐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아예 엎드려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곳도 있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싸우다보면 드디어 삼동산 정상이다.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헬기장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널따랗다. 참고로 삼동산이란 지명의 근원을 조선시대 한성과 각 도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통계기록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동면 삼동리(三洞里)라는 지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현재의 지명에서 찾고 싶다. 삼동산의 산줄기가 영월군의 상동(上東邑)과 중동(中東面) 그리고 하동(下東面, 현재는 김삿갓면)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 셋을 합할 경우 세 개의 동리(洞)라는 뜻의 삼동(三洞)이라는 지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삼동산(三洞山)이란 지명은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 정상표지석은 공터의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춘양면 이장협의회’에서 세웠는데, ‘천하명당 조선십승지’라고 적어 이 지역의 풍수(風水)가 뛰어남을 잔뜩 자랑하고 있다. 그 앞의 소나무에는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상표지판도 매달려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글에서 거론했던 ‘삼각점(태백315/2004재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웃자란 잡초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정상을 둘러본 후에는 1119m봉으로 되돌아 나온다.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경우에는 삼동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삼동치는 40ha가 넘는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삼동치를 들렀다가 상금정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길이 훤하게 뚫려있는 하산 길을 놔두고 일부러 1.2Km 정도를 돌아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산길은 또렷하게 나있다. 오늘 산행 중에 가장 또렷한 산길을 만났다고 보면 되겠다.
▼ 능선에는 짙은 황갈색의 소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니 무리를 지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곳도 많다. 그런 이유로 옛날에는 이 일대를 ’황장산‘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궁궐에서 필요한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1872년 지방지도‘에도 '황장산'으로 표기되어 있다니 참조한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내려오면 임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수월하지 않은 산행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탓에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길에는 산딸기나무들이 지천이다. 철만 잘 맞춘다면 뛰어난 간식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갈 길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일 따름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하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딸기를 따먹는 재미에 방해물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훼방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얼마쯤 걸었을까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산길은 이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향한다. 바닥이 바위로 되어 있어 다소 위험할 수도 있으나 조금만 조심한다면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상금정마을(원점회귀)
임도를 따라 18분 정도를 진행하면 산행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산자락으로 접어들었던 금정광산의 폐갱구 앞 합수지점에 내려선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산행을 시작할 때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내려가면 된다. 물론 ’상금정마을‘까지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2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멈추었던 시간이 채 10분도 못되었으니 오롯이 걷는데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참고로 오늘 산행의 기점이자 종점이 되는 상금정 마을은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宇龜峙里)에 속한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우구치리에는 이 마을 말고도 새터마을과 상시장, 사호, 하금정, 샘골, 와흥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마을들 대부분은 옛날 이곳에 있었던 금광(金鑛)과 관계가 깊다. ’금정광산‘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고 있는 상금정과 하금정은 물론이고, 새터는 인근에 금, 은, 동 광산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곳에 종사하는 광부들이 새로운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호는 금광을 뚫는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사호와 칠호에서 많은 금이 나왔다 하여 생긴 지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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