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산문

연가

2004. 3. 31. 10:58

사랑하면 애기가 된다?
그래 팔위에 얹힌 그니는 분명 애기다.
여장부보단 공주병이 낫다는 고언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배란다 넘어
슬로프의 휘황한 조명에 넋을 잃고
열어제킨 창으로 스미는 쌀쌀하지만 결코 맵지 않은 바람에 취했던...
분위기 띄우려 나눠마신 와인 한잔에 취했나?
언제 가슴설래었냐며 내어준 팔 베개 삼아 새록새록 잠들어있다.

 

눈을 여니 어리는 속눈섶...
파르라니 떠는게 아마 꿈속을 헤엄치나 보다.
그 꿈 부디 악몽이 아니길 빌며 행여 깰세라 콧김까지 죽여본다.

 

"팔위에 얹힌 그니의 머리무게가 느껴져 올 때...
품에 안긴 그니의 몸에서 향기 아닌 다른 내음이 풍겨올 때..."
어쩌나~ 舊友가 말한 이런 느낌 영원히 없길 바랬는데....
머리 밑 팔목은 그런 내 마음 몰라라 서서히 감각을 잃어간다.

 

비...
때아닌 겨울비가 심난했는데...
어느덧 눈으로 변한 비발디 초입이 그리도 반가울 수 없다.
"그려~ 평소에 좋은 일 많이 하면 복 받는겨~"
덩달아 반달을 그리는 이쁘디 이쁜 그니 입술은 상현달? 아님 하현달?

 

따스한 탓에 슬로프 컨디션은 별로다.
스키에 흥미를 못느끼는 그니를 위해 오늘은 에스키모의 개가 되어보자.
재빨리 비닐봉투 한장 구해 그니를 앉혀본다.
스키어 천지에 엉덩이 썰매라... 이걸 보고 群鷄一鶴?
색바랜 사진속에서 빠져나온양 동심으로 돌아간 그녀는 활짝 웃고 있다.

 

새벽 세시...
행여나 깰새라 조심조심...
인파를 피하려니 새벽코스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인구밀도가 높은걸 자랑이라도 하려는걸까?
리프트 앞 늘어선 줄은 자정전보다 그리 짧아진 것 같지도 않다.

 

산행 때 다친 오른손목 인대...
통증에 힘들어도 고난도 코스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부대끼는 것 보다야 한두번 딩구는게 더 나으니까.

 

그리나 후회는 곧바로...
속도감에 가뜩이나 시야가 좁은데
짙은 안개 때문에 50미터 앞이 안보일 정도다.
거기다 무리한 스틱사용이 손목의 통증을 더해준다.
본전생각에 두 번을 허덕이다 더 이상의 모험은 삼가기로...

 

요기 하러 들른 지하광장
눈에 띄는 인도산 머리핀에서 눈길을 땔 수 없다.
금은세공의 정교함에 끌려 브로치까지 하나 더...
곤히 잠든 그니의 침대머리에 놓고 마음에 들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그니 옆에...

어느새 팔위엔 둥그스런 달덩이가 얹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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