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도(文甲島)

 

여행일 : ‘23. 10. 6()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문갑도리

트레킹 코스 : 문갑도선착장당너머갈림길처녀바위깃대봉중이절골 갈림길농막문갑마을문갑도선착장(소요시간 : 4.89km/1시간 55)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덕적군도(德積群島)의 중심 섬인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8km 지점에 있는 면적 3.49에 해안선 길이가 11km쯤 되는 작은 섬이다.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섬의 생김새가 선비의 문갑과 같다 하여 문갑도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평평한 문갑(文匣)과는 달리 섬 전체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구릉의 기복이 심하고 경지 면적이 귀하다. 이로보아 투구를 쓴 장수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독갑도(禿甲島)’가 오히려 설득을 얻을 듯. 때문에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 꽃게를 비롯한 조기·새우·민어·갈치 등이 많이 잡히며, ··조개류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찾아오는 방법

덕적도를 가는 뱃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고속훼리(코리아나호 또는 스마트호)를 타거나 대부도(화성시)에 있는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차도선(車渡船)을 이용하면 된다. 산악회에서는 운임이 싼 방아머리선착장을 출발지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개별 도착일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않을 듯. 주차시설이 협소해서 차량 댈 곳을 찾다가 타고가야 할 배편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싣고 갈 대부 고속페리 3’. 400명의 승객(구명복 숫자. 차량은 별도)을 태울 수 있는 차도선으로 덕적도까지 하루 2(8:00, 12:30) 운항하며 요금은 성인 기준 11,700원이다. 하나 더, 선내에 매점이 있어 라면이나 간식, 주류, 음료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참고로 문갑도는 덕적도(진리항)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덕적도(진리항)까지는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예정보다 20분이나 늦은 셈이다. 먼 바다로 나오면서 배의 피칭(pitching)이 심해지더니 파도가 높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데려다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풍랑이나 해무(海霧) 등 수시로 변하는 바닷길 사정은 종잡을 수 없는 게 보통인데도 무사히 도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에는 안개가 짙다는 이유로 배가 뜨지 않아 덕적도에서 빈둥대다가 돌아간 일도 있었다.

 오늘은 문갑도를 찾아볼 계획이다. 8개의 유인도와 3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덕적군도(德積群島)’에 속한 자그만 섬이기 때문에 본섬인 덕적도(진리항)에서 출발하는 다른 배로 갈아타고 들어가게 된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도착이 늦어진 대신, 타고 온 배와 타고 갈 배가 바톤 터치를 하는 이점도 있었다. 덕분에 우린 부두를 방황해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덕적도 선착장에서 다시 한 번 승선권을 사야만 했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나래호(대부고속훼리와 같은 차도선이다). 이곳 진리항을 출발, 홀수일 기준 문갑도·굴업도·백야도·율도·지도·문갑도 순으로 덕적군도를 한 바퀴 돌아온다. 짝수일은 반대방향으로 도니 참조한다. 하나 더, 문갑도는 갈 때는 물론이고 돌아올 때도 들른다. 둘의 간격은 2시간 30. 하루 일정으로 왔다면 이 시간 안에 문갑도 트레킹을 끝마쳐야 한다.

 나래호는 여러 명품 섬을 들른다. 특히 용아장성이 부럽지 않다는 바위섬 백아도(白牙島)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개머리언덕으로 유명한 굴업도(掘業島)’는 덕적도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그러니 트레커나 백패커들로 붐빌 것은 당연. 연휴인 7~9일은 표가 이미 매진되었다는 저 안내판이 증거이다.

 11 : 40. 문갑도에 도착했다. 문갑도(文甲島)는 선비의 책상인 문갑(文匣)을 닮았다는 섬이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문갑(文甲)으로 변했다나? 섬은 물갑도란 별명도 갖고 있단다. 비탈진 산이 대부분이나 계곡에 물이 많기 때문이란다. 예전에는 논농사까지 지었다고 하나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하긴 인력이 부족해 계절노동자까지 들여오는 요즘 누가 논농사를 짓겠는가.

 문갑도를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등산이고, 다른 하나는 산자락을 헤집으며 내놓은 둘레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서 해안의 명소들을 눈에 담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 보기 위해서는 2일 정도의 시간이 요구된다.

 배에서 내리자 화유산 능선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300m에도 못 미치는 섬 산인데도 우람하면서도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 처녀바위(231m)를 왼쪽에 두고 가운데가 깃대봉(277.6m), 그 오른쪽에 왕재봉(248m)인데, 오늘은 처녀바위를 거쳐 깃대봉 정상에 오른 다음 마을로 내려올 것이다. 시간이 충분할 경우 왕재봉까지 다녀올 것이고.

 마을표지석이 반기는 선착장. 그 옆에는 어루정이라는 정자도 있었다. 덕분에 우린 스틱을 펴는 등 편하게 산행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정자 뒤, 사람 얼굴을 쏙 빼닮은 갯바위가 눈길을 끈다.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헐크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11 : 45. 문갑마을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선착장 초입에는 나그네 쉼터인 여행자센터가 들어섰다. 문갑도의 특산물인 무화과쥬스와 한월리 모래로 끓인 샌드커피 등을 판매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이왕에 국민의 혈세를 들여 지어놓았으면, 취지에 맞게 잘 운영해 주었으면 좋겠다.

 선착장에서 100m쯤 떨어진 데크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문갑도에서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두 시간. 섬 전체를 둘러보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니 둘레길을 따라 해안 경관을 보던가. 아니면 화유산 등산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내 결정은 화유산 깃대봉(277.6m)이었고,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참고로 화유산은 문갑도 유일의 산이고, 깃대봉은 화유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했다.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도, 내 곁을 지켜주겠다며 부득부득 따라나섰다. 하지만 집사람의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고, 겨우겨우 깃대봉 정상에 올라설 수는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초죽음 상태가 되어있었다.

 데크계단이 끝나자 이번에는 침목계단이 상당히 가파르게 이어진다. 3분이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길은 곱다. 부드러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갈림길이 나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12 :00, 좌우로 길이 나뉘는 첫 번째 포인트를 지난다. ‘어루재라는 고갯마루로 오른쪽은 문갑마을, 왼쪽은 어루너머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참고로 어루너머(넘어)해수욕장은 아주 작은 모래해변이라고 한다. 나만을 위한 비밀의 해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은밀하고 예쁘단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났다. 방향표시는 기본, 하단에 문갑도 해안누리길 지도를 그려 넣은 다음 현재 위치를 표시했다.

 잠시 후 만난 또 다른 이정표는 아예 소화기함까지 매달았다. ‘라이터 등 화기휴대·취사·흡연 금지라는 경고판도 눈에 띈다. 주요 기점의 이정표마다 소화기함을 매달아놓았는데, 산불예방 차원이겠지만 다른 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라 하겠다.

 모노레일도 설치되어 있었다. 마을과 화유산의 산자락에 들어앉은 엄나무 농장(마을기업에서 공동으로 운영한단다)을 잇는데, 인력이 귀한 섬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이란다. 아무튼 500Kg의 적재량은 물론이고 사람도 3명이나 탈 수 있다니 섬 주민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다.

 능선이 상당히 가팔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거운 짐을 이고 진 농부들이 이 능선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 모노레일이 그들을 대신한다.

 능선 곳곳에는 모노레일의 수혜 대상인 엄나무 농장이 들어서 있었다. 매년 봄 우리네 식탁에서 마주하는 벙구나물(또는 개두릅)’은 저 엄나무에서 채취된다.

 염소 서너 마리가 초지에서 노닌다. 그런데 하나같이 목줄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불법 방목된 염소들이 식생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농작물까지 해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곳 문갑도는 그런 걱정이 필요 없겠다.

 농장 덕분에 시야가 뻥 뚫렸다. 바다에는 마치 조물주가 공기놀이하다 던져 놓은 것처럼 올망졸망한 섬들이 사방으로 분산하고 있다. 그 빼어난 풍경에 나도 몰래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농장지대를 지난 탐방로는 또 다시 짙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농장을 지났는데도 길은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지난주가 추석, 조상님 묘역 벌초하듯이 정성들여 탐방로를 정비했던 모양이다. 주민들에게 글로서나마 감사를 드려본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깃대봉 300m에도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이다. 하지만 해수면에서 산행이 시작되므로 그 높이만큼 오롯이 올라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12 : 10. 두 번째 포인트인 당너머해변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은 마을, 그리고 왼쪽은 당너머 해변으로 연결된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갈림길. 이정표는 문덕뿌리 낚시터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하나 더, 이곳이 해누리길 1코스와 2코스, 5코스가 나뉘는 당너머 분기점이 아닐까 싶다. 첨부된 지도는 이 부근에 당너머분기점을 표시하고 있지만, 조금 전의 당너머해변 갈림길과 이곳을 빼고는 다른 갈림길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문갑도 해누리길 1코스 및 5코스를 걷게 된다. 문갑도의 둘레길이라 할 수 있는 해누리길은 총 15.14km로 조성됐다. 여객선을 타고 온 탐방객들을 위한 당일치기 코스(4.25km, 선착장을 기점으로 깃대봉과 마을을 거치는 1시간 30분짜리 노선으로 첨부된 지도의 자색과 진녹색 선으로 칠해진 부분)과 문갑도를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는 5시간짜리 노선(12.55km)으로 구분해 조성했다. ! 사자바위 같은 명품 경관들을 잇는 4개의 연계코스가 나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서서히 가겠다며 자신을 떨쳐놓고 가라 했을 정도로 버거워했던 구간이다. 오르는 도중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정표 ; 깃대봉 0.9km/ 마을/ 선착장 1.6km)을 만나기도 한다.

 12 : 18. 멋진 바위전망대를 만났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처녀바위로 오인 했을 정도로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바위에 오르면 굴업도, 가도, 각흘도, 선갑도, 백아도, 부도, 지도 등 덕적군도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박씩을 투자해가며 굴업도와 백아도는 다녀왔다. 다음 차례로 꼽는 건 선갑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배경이 되었다는 무인도이다.

 길은 가파름의 연속이다. 감기로 인한 체력저하로 힘들어하는 집사람으로서는 죽을 맛이고...

 12 : 25. 이정표(깃대봉 0.5km/ 마을/ 등산로) 문갑풍월이란 팻말을 달았다. 섬의 외형이 글을 읽는 선비의 책상을 닮았다는 문갑도(文匣島). 당연히 글 읽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을 게고, 이는 문갑풍월(文匣風月)’이란 사자성어를 만들었다.

 방향표시야 없지만 왼쪽으로 샛길이 하나 나있다. 초입에는 처녀바위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나들이 갈만한 곳이 없던 섬 처녀들이 이곳으로 소풍을 와서 색동치마를 입고 춤추며 놀았다나? 다른 얘기도 전해진다. 처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총각들이 거센 풍랑을 이겨내며 잘 돌아오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저 바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깃대봉 제일의 핫 플레이스인 처녀바위 20m쯤 위에 있었다. 바위는 소문난 조망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름다운 덕적군도의 바다를 배경삼아 인생샷이라도 한 장 건지고 싶은 모양이다.

 집사람이라고 해서 그 대열에서 빠지겠는가. 모두 빠져나간 뒤에 한 컷...

 총각을 기다리는 처녀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북쪽 깃대봉 방향을 제외한 동서남쪽 바다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올라오는 도중 만났던 두 곳의 조망처에서 바라보던 풍경을 합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아래 사진은 올망졸망한 섬들이 몰려있는 덕적군도의 풍경이다.

 반대편은 덕적도와 소야도로는 모자란다는 듯. 자월면의 수많은 섬들이 빈 여백을 가득 메운다. ·소이작도, ·하승경도, 승봉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탐방을 마친 섬들이다. 특히 대이작도는 처가댁 형제들의 가족모임을 겸해서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북쪽은 바다 대신 깃대봉이 조망된다.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나 혼자서 오르기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집사람이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며 혼자서 정상을 다녀오라 했기 때문이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따라 하산하겠다는 것이다.

 12 : 32. 문갑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사거리 안부에 이른다. 이정표(깃대봉/ 중이절골/ 마을/ 처녀바위)는 왼쪽으로 내려가면 중이절골에 닿음을 알려준다. ! 홀기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막히다시피 한 탓에 이곳으로 되돌아와 문갑마을로 내려갔다는 점도 기억해두자.

 중이절골이 어디를 이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해누리길 순환코스와 연결된다는 것쯤을 알겠다. 그렇다고 내려가 볼 생각은 없다. 시간도 없지만 월간 산의 기사를 이미 섭렵했으니 말이다. 대신 해당 글을 옮겨본다. <이중삼중으로 덤불이 앞을 막다가도 다시 걸을 만한 길이 되길 반복했다. 엄나무가 특산인 섬답게 도깨비 방망이의 무자비한 가시가 난무했다. 땅바닥엔 간간이 뱀이 있어 긴장감은 갈수록 절정으로 치달았다. ‘100m 걷기가 이토록 힘들 줄이야 싶었으나, 되돌아가기엔 늦었다. 둘레길치곤 오르내림이 커서 최대 100m 이상 고도를 올렸다 내리기도 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정상에서의 환희를 맛보려면 턱 밑의 오르막길에서 땀 좀 흘려야 한다. 하나 더, 이 구간의 또 다른 특징은 나무가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채 가지만 앙상하다는 점이다. 2021 8월 일어난 산불 탓이란다. 산행대장 말로는 어느 등산객이 버린 담뱃불 탓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12 : 38-43. 드디어 깃대봉 정상에 올라섰다. 깃대봉은 문갑에서 가장 높다. 때문에 섬을 세부측량하면서 이곳에 깃발을 꽂았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깃대봉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상은 현재 전망대로 꾸며졌다. 시야를 넓히려는 듯 일단은 대를 올렸다. 그런 다음 바위에 걸터앉은 정상석을 가운데 두고 데크로 빙 둘러 난간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난 블랙야크 섬& 100 인증 챌린지가 싫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로 인해 부지하세월로 순서를 기다려야만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들 덕분에 집사람이 정상까지 올라올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문갑 제일봉답게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다. ‘황해 제일경으로 꼽힌다는 소문처럼 덕적군도의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년여 전에 들른 조도(鳥島). 하도 섬이 많아 새 때가 몰려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었다. 이곳 깃대봉도 그에 못지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선갑도, 울도, 지도, 백야도, 각흘도, 굴업도 등등...

 반대편 바다도 온통 섬. 섬의 천국인 덕적군도로도 모자라다는 듯, 이번에는 자월면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를 수놓는다. 덕적도, 소야도, 흑도, 자월도, ·소이작도 등등...

 지자체의 배려도 돋보인다. 양 방향에 조망도를 세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그림과 대비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산을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정표(누적바위/ 홀기재)가 가리키는 홀기재 방향에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웃자란 잡초가 길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진행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자칫 길이라도 잘못 들 경우 돌아가는 배를 타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2 : 47. ‘중이절골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문갑마을 쪽으로 내려간다. 산길은 가파르게 떨어진다. 하지만 흙길에다 폭까지 넓어 부담 없이 내려설 수 있다.

 12 : 50.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났다. 이정표는 세워놓지 않았지만 홀기재에서 내려오는 길이지 싶다. 그런데 길이 의외로 또렷한 게 아닌가. 아까 깃대봉 정상에서 약간의 모험을 감행했더라면 별 어려움 없이 내려왔겠기에 하는 말이다.

 12 : 55. 가파른 내리막길은 농막을 만나면서 끝난다. 이후부터는 산자락을 옆으로 째며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가세요’. 초청이 내심 반가웠지만 배를 타야 한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친다. 충분히 배를 탈 수 있다며 다시 권했지만 소심한 우리 부부는 고맙다는 인사만 드리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산행대장의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배가 10~20분 정도 빨리 들어올 수도 있고, 그렇다고 고지된 출항시간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니 어쩌겠는가.

 이후부터는 경사가 거의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중간에 갈림길(이정표 : 문갑마을/ 처녀바위/ 홀기재)을 만나기도 한다.

 이 구간의 볼거리는 돌탑이다. 누군가가 작은 돌탑 수십 기를 길가 곳곳에 쌓아 놓았다.

 13 : 05. 그렇게 10분쯤 걸어 임도로 내려선다. 이후부터는 포장길을 따라 마을로 간다. 이 구간에서도 갈림길(이정표 : 선착장/ 2코스 분기점/ 깃대봉)을 만난다.

 13 : 10. 5분쯤 더 걸으면 문갑마을에 이른다.

 마을 뒤 삼거리에서는 오른쪽으로 갔다. ‘윗말이 아닐까 싶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뜬금없는 풍경을 만났다는 듯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던 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디다 버려야 할지로 고민해도 모자랄 소라껍질이 멋진 조형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누가 저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궁금증에 이끌려 소라껍질을 따라가 봤다. 그리고 갯일을 하는 아낙네들로 벽면을 가득 채운 민가를 만났다.

 문간에 서니 문갑도 아! 옛날이여라는 현판이 반긴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들어갈 수야 없는 노릇. 마실 나온 이웃 주민에게 내부 구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동네 박물관쯤으로 생각했기 때문). 친절하게도 주인장을 불러 내 의중을 전해주신다. 주인장도 맘껏 둘러보라고 했음은 물론이다.

 집안은 옛 물건들로 가득했다. 농기구나 가구는 물론이고 학용품까지 우리네가 써오던 추억의 물건들이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사진도 몇 점 걸었다. ‘문갑도 역사박물관이라고나 할까?

 문갑도 아 옛날이여’, ‘문갑도의 추억’, ‘가난한 어부의 아들 등 주인장의 솜씨로 여겨지는 작품도 몇 점 걸려있다. 귀경해 검색해보니 옹진군 갈매기소식지 옹진 그리고 사람 코너에 실렸던 글이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김용준씨가 아니었을 까 싶다. 아무튼 멋진 주인장 덕분에 소중한 옛 추억을 불러올 수 있었다.

 13 :15. 미몽에서 깨어나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양짓말에 이른다. 아래 사진은 문갑마을 전경이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자그만 섬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행정지원센터, 경찰파출소, 물류보관소(우체국 대신) 등등...

 마을 앞 방파제는 문갑도의 역사를 담았단다. 하지만 그림이 적어 그 내용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민박 및 식당(운영은 않는 듯)을 겸한 매점은 전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모양이다. 캔 맥주로 목이라도 축일까 해서 들어갔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내 낌새를 보고 뒤쫓아 온 산행대장이 주인장은 조개 잡으러 갯벌에 나갔단다. 산행대장에게 돈을 치루고 맥주를 건네받았지만, 자칫 전화로 주인장을 부를 뻔했다.

 마을 앞 문갑해수욕장은 길이 700m에 너비가 50m나 되는 고운 모래사장을 갖고 있었다. 끝자락의 언덕을 넘으면 한층 더 뛰어난 한월리해수욕장이 나온단다. 단단한 모래질 해변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 해수욕장들의 인기가 높아 덕적군도의 5개 나래호 항로 중에서 굴업도 다음으로 많은 여행객이 문갑도를 방문한단다.

 인천시 토탈디자인 빌리지 조성사업(마을 단위의 종합적인 경관 조성)’의 지원을 받아 동네를 단장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는 예쁘장한 연못(유수지공원이라나?)’도 눈에 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천주교 문덕공소이다. ! 섬에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감리교회도 있다고 했다.

 13 : 20. 주변 풍광에 빠져 있다가 선착장으로 간다. 마을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 풍광을 눈에 담으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저 수조의 물은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을 위한 담수일까, 아니면 갯벌에 일 나갔다가 돌아오는 주민들을 위한 바닷물일까?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곡선미가 무척 고왔다.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는 바다는 물론이고,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바위벽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도로 개설 때 생긴 생채기 곳곳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화분이 만들어졌다.

 조잡하지만 의젓한 삭도(索道). 절벽을 처마삼아 제비집처럼 둥지를 튼 절간이나, 강원도의 석탄광(지금은 사라졌지만)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초라한 모습으로 변신해 여행객들의 눈요깃거리가 되어준다.

 제법 큰 해식동굴도 눈에 띈다. 저 안에 호랑이라도 한 마리 앉히고, 스토리텔링으로 포장하면 멋진 관광 상품이 될 텐데...

 13 : 35. 선착장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1시간 55분을 걸었다. 앱은 4.89km를 찍고 있다. 산행인데다 집사람의 컨디션이 엉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문갑도의 볼거리는 문갑8으로 집약된다. 한얼리해변·처녀바위전망대·문턱뿌리사자바위·병풍바위자연조각공원·진모래·할미염전망대·당공바위·벼락바위 등 수억 년의 세월이 빚고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의 걸작들이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고작 처녀바위전망대가 전부다. 다시 한 번 문갑도를 찾아와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epilogue) : 주민들은 문갑도의 옛날을 풍요와 인심으로 꼽았다. 어족자원이 풍족하고 마을에 장사꾼이 찾아오면 먹던 밥그릇을 내줄 정도로 인심 넘쳤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풍부하던 어족자원은 사라졌고, 대신 펜션에 민박, 행정기관까지 들어섰다. 하지만 넘치는 인심은 조금도 변치 않았나 보다.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커피 한잔 권하는 게 스스럼없었고, 뜨내기 불청객인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집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시 한 번 찾아와야 할 또 다른 이유다. 하룻밤 머물며 문갑팔경을 꼼꼼히 둘러보고, 주민들이 개발했다는 열흘밥상까지 받아본다면 이 아니 좋을손가. 섬의 특산물인 벙구나물, 빨간감자, 고사리, (고동) 등으로 만들었다니 얼마나 맛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