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3코스(볼음도 길)

 

여행일 : ‘22. 9. 25(일)

소재지 :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여행코스 : 선착장→조개골해변→영뜰해변→볼음도은행나무→봉화산→당아래마을→선착장(거리/시간 : 12.8km/ 실제는 12.31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도에는 우리 민족의 수많은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다. ‘강화 나들길’은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와 산과 벌판, 산골마을과 갯마을, 그리고 갯벌과 철새 서식지를 잇는 310.5Km(20개 코스) 길이의 역사·문화·자연 트레일이다. 그러니 ‘나들(이)’란 이름처럼 서해 바닷물이 ‘나고 들’듯이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을 담아가면 되겠다. 오늘은 열세 번째 코스인 ‘볼음도 길’을 걷는다. 이름처럼 해안선을 따라 볼음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 코스로 짜였는데, 여기에 천연기념물(제304호)인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볼음도 제3봉인 ‘봉화산(82.8m)’을 넘는다고 보면 되겠다.

 

▼ 찾아가는 길 : 일단은 선수선착장(강화군 화도면 내리)까지 와야만 한다. 볼음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88올림픽도로·국도(48호선)·지방도(356번·84번) 등을 타고 강화도로 들어온 다음, 온수교차로(길상면 온수리)에서 ‘마니산로’로 옮기면 상방리(화도면소재지)와 후포항을 거쳐 ‘선수선착장’에 이르게 된다.

▼ 강화도 서북단 청정해역에 위치한 천혜의 섬 볼음도는 서도면(주문도·볼음도·아차도·말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13코스(볼음도길)는 이 섬의 해안선을 시계방향으로 돌다가 막바지에 봉화산을 넘는다. 그래선지 금빛 모래사장과 황금빛 들녘, 울창한 송림 등 다양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인 ‘볼음도 은행나무’는 그중에서도 백미. 저어새의 집단서식지라는 갯벌(천연기념물 제409호)도 눈여겨 볼만한 풍경이다.

▼ 우리를 태워다 줄 ‘삼보12호’이다. 승객 385명과 십여 대의 차량을 동시에 운송할 수 있는 카페리여객선으로 선수선착장에서 하루 3차례(8시50분, 12시50분, 16시20분) 출발하는데, 볼음도와 아차도를 거쳐 주문도까지 간다. 돌아올 때(주문도의 느리항에서 7시10분, 11시00분, 14시30분 출발)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니 출발시간에 20분쯤(느리항에서 볼음도까지 25분쯤 소요) 더해서 기다리면 될 것이다.

▼ 볼음도에 가까워지자 주변 섬들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마을까지 들어선 아차도(阿此島)와 주문도(注文島)에 무인도인 수리봉이 더해지는데, 사진은 수리봉에 붙어있는 여(썰물 때면 수리봉과 이어진단다)를 게시했다. 저어새와 왜가리, 노랑발도요 등의 놀이터로 알려지는 작은 바위섬이다. 참! 그 오른쪽 저 멀리에 있는 섬은 분지도(分芝島)일 것이다.

▼ 7,800원(기본요금에 유류할증료 1천원을 보탰다)짜리 승선권을 내고 배에 오르니, 정확히 55분 만에 볼음도에 데려다준다. 선실에 누워 쪽잠 자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볼음도 유일의 선착장은 대합실(편의점을 겸한다)은 물론이고 널찍한 물양장에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 우리 같은 둘레길 나그네들의 관심사는 ‘인증’이 먼저다. 그리고 대합실 옆에서 스탬프보관함을 찾아내고 그 앞에 일 열로 줄을 만든다.

▼ 길을 나서기 전. 지켜야 할 일부터 알아보자. 먼저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이니 자연생태계를 훼손하는 행위를 말아야 한다. 저어새를 포획하는 일은 더더욱 안 된다. 또한 해안을 걷다가 만날지 모르는 대인지뢰를 만져서도 안 된다. 남·북 양측에서 매설해놓은 대인지뢰가 장마철 호우로 유실되어 해안가로 떠내려 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볼음도의 이야기’는 저어새가 알려주고 있었다. 볼음도의 역사는 물론이고 자연생태계에 체험학습까지 꼼꼼하게도 알려준다. 참고로 볼음도는 본래 ‘만월도(滿月島)’였다고 한다.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林慶業)이 풍랑을 만나 이 섬에 체류하다 둥근달을 보았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그러다가 둥근 달인 보름달의 발음대로 볼음도로 고쳐졌고, 또 한자화 되면서 볼음도(乶音島)가 됐다.

▼ 시계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맞은편에 보이는 곶은 볼음도 남동단의 ‘물엄곶’이다. 직접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첨부된 지도는 곶의 끄트머리까지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 갈 길 바쁜 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차도’로 향한다. 그 분위기에 취해버린 나그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난 사진발 잘 받는 여성 모델을 앞에 세우고 스냅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거기다 인생사 얘기까지 주고받으며 걸었으니 이보다 더한 호사여행이 어디 있을까.

▼ 잠시 후, 바닷가(이정표 : 시점 0.4㎞)로 내려선다. 황금빛 모래사장에 해송 숲까지 더했지만 주어진 이름은 없었다. 편의시설도 눈에 띄지 않음은 물론이다. 볼음도에는 이보다 더 나은 해변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 모처럼의 섬 여행이니 어찌 모래사장 걷기를 마다하겠는가. 아니 해송 숲길이 끝나서 바닷가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 바다로 눈을 돌리자 아차도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은 주문도이고, 왼편의 작은 섬은 수리봉이다. 그 사이에는 널디너른 갯벌이 들어앉았다. 볼음도는 드넓은 갯벌이 자랑거리다. 저 거대한 갯벌은 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규모가 가장 큰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희귀종 저어새의 최대 서식지가 강화갯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음도 갯벌에선 전 세계에 2400여 마리밖에 없다는 저어새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단다.

▼ 해안으로 내려선지 10분. 모래사장이 끝나갈 즈음, 탐방로는 산속(이정표 : 종점 11.8㎞)으로 파고든다. 아니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물엄곶’의 허리를 횡단한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참고로 물엄곶은 바위절벽으로 된 모퉁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몰려있고, 암벽에는 얼굴바위 모양의 기암도 걸려 있단다.

▼ 웃자란 잡초와 잡목으로 인해 길 찾기가 썩 편치는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길이 헷갈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이정목을 세웠고, 나들길 특유의 리본도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촘촘히 매달아놓았다.

▼ 나들길 곳곳에는 작은 쉼터도 만들어두었다. 식탁용 벤치까지 놓아두는 멋을 부렸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문 듯, 탁자 위에는 솔가리만 수북하게 쌓였다.

▼ 5분쯤 걸어 반대편 해안으로 내려섰다. 해변이 작아선지 이곳도 별도의 이름은 붙어있지 않았다.

▼ 이곳에도 대인지뢰 주의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이후로도 심심찮게 만난다). 수난사고 및 갯바위 추락 사고를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보인다.

▼ 아쉽게도 바닷가는 파도에 실려 온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여기저기 그물, 스티로폼 등의 폐어구와 생활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주민들의 잘못은 아니란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일부러 쓰레기를 해안에 갖다 버릴 일도 없고 어구를 사용할 일도 없단다. 어느 전문가는 그 범인을 중국으로 적고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모래사장으로 내려서서 ‘조개골해변’으로 향한다. 모래가 고와선지 발바닥에 전해오는 느낌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발이 빠지지 않아 걷기에도 편했다. 조개골해변의 초입은 커다란 바위 무더기가 지키고 있었다. 물놀이 나온 피서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의젓하기 짝이 없다.

▼ 바다 쪽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신장(神將)처럼 서있다. 그런데 이게 만만찮은 눈요깃감이다. 흔치 않은 생김새에 줄무늬 옷까지 입은 것이다. 그게 감흥을 불러일으켰던지 ‘형제바위’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이도 있었다.

▼ 오른쪽 문설주는 인간의 손길을 덧댔다. 이정표를 걸터앉도록 해 신선함에 더해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선사해준다.

▼ 돌문 너머로 나타나는 ‘조개골해변’은 의외였다. 조그만 섬이라서 해변도 자그마하려니 생각했는데, 갯벌은 드넓었고 모래밭도 놀라울 정도로 끝없이 뻗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래밭을 느긋하게 걸어본다. 그리고 가을바다의 낭만과 즐거움을 한껏 만끽해본다. 집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지만, 세상이 두 쪽 나도 일요일에는 교회를 찾는 집사람이니 어쩌겠는가.

▼ 시선을 옮기자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그 중앙에는 분지도(分芝島)가 놓여있다. 주문도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는 섬으로, 떼를 나누었다는 의미를 품었단다. 그게 조금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면 주문도와 뭍으로 연결된단다.

▼ 이곳은 체험학습장이라도 되는 듯, 조개를 캐고 있는 가족들이 두엇 보였다. 맞다. ‘조개골’이란 지명이 어디 그냥 생겨났겠는가. 껍질마다 백가지 무늬가 들어있다는 백합이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것이다. 볼음도에선 백합을 ‘조개의 왕’이란 뜻의 ‘상합(上蛤)’이라 부른다. 여느 갯벌에선 바지락·꼬막 따위를 캐는데, 볼음도에선 어른 손바닥만 한 백합을 캔다.

▼ 해수욕장으로 개발된 조개골해변은 길이가 1.5km 정도로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하기에 좋다고 한다. 길고긴 모래사장을 따라 둑이 쌓여있고 그 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소나무 숲이 까마득히 펼쳐져있다. 모래도 매우 부드럽고 곱다.

▼ 만개한 수크렁 너머로 갯벌이 펼쳐진다. 저 갯벌은 상합 조개가 지천이라고 한다. 상합 조개가 갯벌 속 깊이 몸을 숨기는 추운 계절이 아니면 주민들은 어김없이 그레를 메고 갯벌로 나간단다. 그리고 갯벌을 뒤져 상합조개를 잡는단다. 돈이 귀한 섬 주민들의 화수분 창고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 ‘조개골해변’과 ‘영뜰해변’의 사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반도, 즉 ‘소곶’도 중간 지점에서 횡단해버리기로 했다. 이어서 4분쯤 지나 반대편 해안(이정표 : 종점 10.5㎞)으로 내려선다.

▼ 눈앞에 나타난 ‘영뜰해변’은 무척 광활했다. 방금 지나온 ‘조개골해변’보다도 훨씬 더 넓은 해변은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었다. 하지만 간조 때는 물이 빠져 앞바다가 대부분 갯벌로 변하기 때문에 해수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니 요즘은 해안까지 거칠어진 탓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대신 갯벌체험 출발지로 정착되어가는 중이라나?

▼ 영뜰해수욕장에는 전망대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다. 조금 전 지나온 ‘조개골해변’은 조개를 캐는 체험가족들이라도 있었는데 말이다.

▼ 영뜰해수욕장에서 바라본 갯벌. 물이 빠지면 최대 6㎞까지 갯벌이 펼쳐진단다. 이런 볼음도 갯벌이 그 유명한 강화갯벌이다. 강화도 서남부 해안과 볼음도를 포함한 강화도 서남쪽 일부 섬의 갯벌을 강화갯벌이라 하는데,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53배(약 435㎢)나 된단다.

▼ 전망대부터는 소나무 숲속을 걸어보기로 했다. 산림청에서 조성한 ‘해안방재림’으로 10ha의 면적에 해송 1,600주와 해당화, 맥문동 등을 식재했다. 로프 휀스로 구분해놓은 탐방로를 별도로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갖가지 편의시설도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캠핑사이트에는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벤치에는 물기 젖은 나뭇잎만 어지럽게 쌓여있다.

▼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에 취해 숲속을 걷는다. 주어진 시간까지 넉넉하니 서두를 이유도 없다. 걷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떨어뜨리는 이유다. 그리곤 ‘느림의 미학’에 곁들여 살아온 생을 반추해본다. 나는 자신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을까?

▼ 바다 쪽에는 벤치를 놓아두었다.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한껏 휴식을 취해보라는 모양이다. 벤치에 앉아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을 망연히 바라본다. 멍 때린다는 것이 실감난다. 좋다.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 바닷가에는 ‘파도막이’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풍랑, 해일 및 쓰나미 등에 의해 침식되는 해안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란다. 퇴사울타리(모래포집기)에 대한 안내판도 보인다. 영뜰해변 보호를 위해 두 시설을 설치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영뜰해변의 끄트머리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길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웃자란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고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처럼 길이 훤해지니 말이다.

▼ 산속으로 들어선지 10분쯤. 이름표(광산전망대)까지 단 이정표(은행나무전망대 0.9㎞/ 영뜰전망대 1.2㎞)가 얼굴을 내미나, 전망대를 연상시킬만한 시설물이나 조망처는 눈에 띄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 더 오르니 2층짜리 팔각정이 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곳도 조망이 트이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 나들길은 이제 산허리를 헤집으며 나간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원시의 숲속으로 오솔길이 나있다.

▼ 그렇게 20분 정도를 진행하자 시야가 툭 트이면서 바다가 나타난다. 볼음도의 서쪽 모퉁이로 저 어디쯤에 말도(唜島)가 있을 것이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왼편 바다에는 지도상으론 NLL 남쪽에 있는데도 북한이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함박도(咸朴島)’도 있을 것이다. 1965년, 말도 주민 120여 명이 조개를 캐러갔다가 납북되었던 섬 말이다.

▼ 이후부터는 임도를 탄다. 그리고 ‘요옥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고갯마루를 넘어 북쪽 해안으로 나아간다. 참! 고갯마루를 넘다보면 요옥산 방향으로 나있는 희미한 오솔길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군부대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요옥산의 정상을 찾아갈 필요는 없겠다. 어차피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

▼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널따란 들녘이 눈앞에 펼쳐진다. 섬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너른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볼음도는 북쪽에 봉화산(83m), 서쪽에 요옥산(103m)이 있으며, 그 사이의 지역이 낮고 평평하여 취락이 형성되었다.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어업은 백합 양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볼음도 제일봉인 ‘요옥산(103m)’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들어선 군부대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산이 됐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 모퉁이를 돌아서자 ‘볼음2리’의 비옥한 들녘이 끝없이 펼쳐진다. 황금빛으로 물든 저 너른 들녘을 보고, 섬이라고 우길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섬에서 만난 어촌은 농촌다웠고, 거기다 풍요롭기까지 했다.

▼ 나들길은 ‘볼음2리’를 마주보는 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 삼거리가 13코스(볼음도길)의 딱 중간이다. 기념 삼아 이정표(시·종점까지 모두 6.4㎞)를 게시해보는 이유다.

▼ 들길은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바닷가까지 나간 나들길은 이제 방조제를 따라 은행나무로 간다. 왼편은 북녘 땅으로 연결되는 너른 바다. 오른편에는 볼음2리의 황금빛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 갯벌로 내려가는 일가족을 시선으로 쫒아간다. 그러자 뒤쪽 저 멀리로 방파제 하나가 드러난다. ‘말도(唜島)’로 가는 선착장일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저 선착장과 말도 사이를 운항하는 배(평화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군청에서 운영하는 행정선이 주 2~3회 오가는데, 사전 심사를 받아야만 말도의 출입이 허락된단다. 하나 더, 말도에는 비무장지대 푯말 제1호가 있다. 휴전선 155마일이 말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볼음도의 얼굴마담이랄 수 있는 ‘볼음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가 얼굴을 내민다. 높이가 24.5m나 된다는 이 나무에는 기구한 사연이 전해온다. 800여 년 전 황해도에 물난리가 나 부부 은행나무 중 수나무가 바다로 떠내려 왔다는 것이다. 볼음도 주민이 그 나무를 주워 심은 게 지금의 은행나무라고 한다. 흥미로운 건, 북한에 아내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황해도 연안군 호남중학교 뒷마당에 있다는 아내 은행나무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라고 한다.

▼ 밑동 둘레가 9.4m나 되는 저 은행나무는 볼음도를 지키는 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 가지를 다치게 하거나 부러진 가지를 태우면 목신(木神)의 진노를 사서 재앙을 받게 되고 끝내는 죽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매년 1월 30일 주민들이 모여 안녕과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내왔으나, 6.25 이후 출어가 금지되자 풍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 은행나무 뒤편의 작은 팽나무(옛날 풍어제를 올릴 때 은행나무와 함께 신목으로 모시던 나무)를 살펴보는데 계단이 눈에 띈다. 길이 보이는데 어찌 올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덕 위는 쉼터용 정자가 주인이었다. 망원경까지 갖췄으니 전망대를 겸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 언덕에 오르자 북녘으로 뻗어나간 바다와 함께 ‘볼음저수지’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었다는 저수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그 위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누군가는 ‘볼음도’의 특징을 아름다운 경관으로 꼽고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특히 볼음도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이제 봉화산으로 갈 차례이다. 동쪽으로 뻗어나간 긴 제방을 따르면 된다. 제방의 오른편은 ‘볼음저수지’다. 6·25 전까지 볼음도 사람들은 앞바다에 나가 새우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이후 접경지역으로 변하면서 어업이 어려워졌고, 대안으로 넓이가 10만평이나 되는 저 저수지를 쌓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단다.

▼ 저수지에는 탐조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맞다. 저곳은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의 번식지이자, 20여 종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드는 새들의 낙원이라고 한다. 해질 무렵 물위를 적시는 붉은 노을과 새들의 고요한 움직임을 보는 게 볼음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로 알려진다.

▼ 왼편으로는 널디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 건너는 북녘 땅, 볼음도에서 직선거리로 5.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날이 좋아 시야가 확보되면 연백군(황해도)의 마을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 저수지의 끄트머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농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삼거리에서는 왼쪽 방향이다. ‘T’자 코너의 이정표가 거리(종점까지 4.6km)와 방향을 알려주고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누구의 손길인지는 몰라도 길가가 코스모스 꽃밭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게 가을의 전령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맞다 가을걷이가 시작된다는‘추분(秋分)’이 그제가 아니었던가.

▼ 길은 ‘평양금이산(74m)’과 ‘봉화산’을 잇는 능선을 향해 올라간다. 이 구간도 역시 꽃길로 꾸며졌다. 이어서 잘 지어진 주택(주인장이 꽃길을 만든 듯)을 지나 고갯마루로 올라선다.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능선의 초입에 이정표(종점까지 4.1km)가 세워져있다.

▼ 산길은 오르기 딱 좋을 만큼 완만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 흔적이 희미했다. 그렇다고 길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거기다 리본까지 촘촘히 매달려있는 데야...

▼ 산으로 들어선지 10분(트레킹을 시작한지는 2시간40분)만에 봉화산(82.8m, ‘봉이산’으로 불린다) 정상에 올라섰다. 요옥산과 앞남산(86m)에 이은 ‘볼음도 제3봉’으로 옛날 이곳에 봉화대가 있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하지만 삼각점(볼음 402) 하나만이 외로울 뿐 정상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 대신 ‘문정남’선생님의 띠지(리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숫자가 ‘15,000’인걸 보면 일만 봉을 넘어 이만 봉으로 가는 길목에 이 봉우리를 올랐다는 얘기일 것이다. 지난 5월(12일) ‘23,456산 등정 기념’ 산행(달성 용문산)을 함께 다녀왔으니, 오래 전 이곳을 다녀가신 모양이다.

▼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은 울창한 솔숲을 헤집으며 나있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에 취해볼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 내려오는 도중 ‘천궁(川芎)’을 만났다. 수많은 가을꽃들 중 저게 유독 눈에 띄는 건 집사람에 대한 내 일편단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성에 좋은 약재라니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부인병(생리장애)은 물론이고 순환계와 치과 질환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한다.

▼ 산을 내려오면 널찍한 들녘이 또 다시 나타난다. 이어서 농로를 따라 볼음리로 간다. 참고로 볼음도는 물이 많은 섬이다. 곳곳에 논이 펼쳐져 있고 수로도 제대로 갖춰져 있다. 덕분에 마을을 둘러싼 벼들을 보며 걷다보면 마음도 몸도 풍요로워진다.

▼ 이때 바다 건너 ‘석모도’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서검도’와 ‘미법도’도 함께. 그 뒤는 교동도가 분명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20분. 농로의 끝에서 ‘볼음도리(당아래마을)’로 들어선다. 볼음도의 중심 마을로 면사무소(출장소)는 물론이고 치안센터에 농협(분점)까지 들어선 행정타운이다. 민박도 대부분 이곳에 몰려 있으며, 마켓에서는 잠깐의 여유까지 부려볼 수도 있다. 참! 볼음교회도 잠깐의 볼거리로는 충분했다. 1903년에 세워졌으니 볼음도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하겠다.

▼ 눈길을 끈 시설은 ‘보건지소’다. 섬 주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병원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 보건지소가 세워지고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었다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난감하긴 매일반이란다. 민통선 지역이라서 헬기를 띄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선 등을 이용 주문도로 이동해서 헬기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킨단다.

▼ 이젠 선착장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 고개 하나를 넘지만 나지막한데다 보도까지 따로 내놓아 부담 없이 넘을 수 있다.

▼ 고개 너머에서 다시 만난 바닷가. 물 빠져나간 갯벌은 아까보다 훨씬 더 넓게 잿빛 속살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풍경만으로도 족한데 구멍까지 송송 뚫려있는 것이다. 선착장의 저어새는 ‘칠게’나 ‘흰발농게’, ‘세스랑게’ 등이 저 안에서 산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던 괴생명체가 ‘게’로 변신했다고나 할까?

▼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니 무심코 지나쳤던 ‘횟집’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문을 닫은 지 오래인 듯 먼지만 수북하다. 그렇다고 술꾼이 술을 포기할 수야 없는 노릇. 대합실 매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며 배를 기다리는 데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12.31km를 3시간30분에 걸었다. 대부분이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디게 걸은 셈이다.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