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란도(佳蘭島) 모실길

 

여행일 : ‘21. 5. 2(일)

소재지 : 전남 신안군 압해읍 가란리

산행코스 : 숭의선착장→가란선착장→짝짓기나무→주상절리→용굴→용머리→돌캐노두길→한삼길→시몬→솔등해수욕장→숭의선착장(소요시간 : 약 9.5km/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신안군청에서 북동쪽으로 4㎞, 목포시청에서 북서쪽으로 7km쯤 떨어진 가란도는 압해도의 부속 섬이다. 그러니 ‘섬 속의 섬’인 셈이다. 때문에 압해도로 건너왔다고 해도 숭의선착장까지 이동해서 배를 한 번 더 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를 타지 않고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2008년 압해대교가 놓인데 이어 2012년에는 가란대교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압해도는 40년간 목포시에서 더부살이를 해오던 ‘신안군청’을 새로 들여왔고, 이곳 가란도 역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다리가 몰고 온 풍요라 하겠다. 주요 볼거리로는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갯벌과 그 위에 놓여있는 까치섬과 솔섬, 그리고 금굴, 짝찟기나무, 돌캐노두길, 주상절리, 솔등해수욕장 등이 있다.

 

▼ 산행들머리는 숭의선착장(신안군 압해읍 분매리 678-11)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TG를 빠져나와 죽림 JC에서 내려와 국도 2호선을 타고 천사대교(신안군 압해읍) 방면으로 가다가 신기사거리(압해읍 분매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오면 잠시 후 숭의선착장에 이르게 된다. ‘가란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숭의선착장은 가란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건너편 가란선착장으로 도선이 왕래하면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 지도에는 모실길(둘레길)과 등산로, 그리고 마을길로 나누어 표시하고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봤다. 썰물 때여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볼거리는 곱절로 늘어났다고 보면 되겠다. 반면에 용머리산(74.9m)은 들머리를 찾지 못해 올라보지 못했다.

▼ 도선이 대기하던 선착장은 이제 어선들 차지가 되었다. 그것도 꼬맹이 배들 일색이다. 하긴 근해 어업에서는 커다란 배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겠다.

▼ ‘가란대교’라는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다리의 수문장은 ‘준공 표지석’과 ‘가란대교 안내판’이 대신하고 있었다. 2012년에 개통된 이 다리는 섬과 섬을 잇는 보행자 전용의 다리다. 거기다 주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공급하기 위한 상수관까지 얹었다니 그야말로 다목적 다리인 셈이다. 안내판은 또 다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도 적고 있었다.

▼ 다리는 바다에 높다란 철제 교각을 심고 그 위에 나무로 상판을 깔았다. 길이 275m에 너비가 2.5m나 되니 편도 1차선의 도로 수준이다. 그런데도 사람만 건널 수 있단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가란도 모실길’로 통하는 이 목교를 사람 이전에 자연을 생각하는 에코로드(EcoLoad)라고도 했다. 아무튼 보행자 전용이라니 주인답게 느긋이 걸어보자. 그리고 아스라이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가슴에 넉넉히 담아보자.

▼ 파고라를 가운데에 둔 광장이 네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이곳은 낚시를 금지한단다. 오로지 주변 경관을 살펴보는 전망대로만 이용하라는 것이다. 추락이 이유라는데 과잉방어가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무시하고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 두엇이 눈에 띄기도 했다. 조수간만 차가 커서 이곳을 지나가는 물고기들이 많다는데 이를 놓칠 강태공들이 어디 있겠는가.

▼ 다리는 보행자 전용이다. 그러니 차량이나 경운기 등은 다닐 수가 없다. 하지만 농어촌 고령자들이 이용하는 4륜 오토바이는 통행이 가능하단다. 전동차도 허용이 되는지 다리 위를 오가며 작은 짐 보따리들을 옮기고 있었다.

▼ 다리를 건너다보면 ‘가란선착장’이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숭의선착장과의 거리는 겨우 180m. 때문에 숭의선착장을 바라보면 바다라기보다 강 건너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두 선착장은 배로만 왕래가 가능했고, 가란대교가 놓인 후로는 두 선착장 모두 뒷방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부교(浮橋) 형태의 선착장에 매어진 꼬맹이 어선 몇 척만이 외로운 이유이다.

▼ 나무다리를 지나 섬에 이르면 좌우로 길이 나뉜다. 오른편은 가란마을로 연결되는 마을길. 반대편인 왼쪽은 너른 갯벌과 자갈밭을 지나 ‘솔등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어디로 가더라도 해안길만 잘 따르면 결국 섬을 한 바퀴 도는 셈이라서 차이는 없다. 다만 왼쪽은 썰물 때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마을길로 들어서자마자 만난 선착장에는 ‘어업인 안전쉼터’가 들어서 있었다. 섬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험한 날씨에는 대피소가 되고, 평상시에는 작업을 위한 탈의·세면 및 어업기자재 보관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가란도는 한술 더 떴다고 한다. 가란도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위생적인 화장실을 보탰다. 그 옆에는 지역 특산물을 파는 판매점도 보인다.

▼ 선착장에서도 길이 나뉜다. 어업인 쉼터와 특산품판매점 사이에 놓인 데크계단은 솔등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고,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은 가란마을로 연결된다. 참! 길이 나뉘는 지점에 ‘가란도 종합안내도’와 함께 ‘가란도 모실길’의 지도를 그려 넣은 화강암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는 게 어떨까?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해안도로를 따르기로 한다. 마침맞게 물까지 빠져있으니 바닷가부터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길은 의외로 넓다.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다. 맞다. 2018년엔가 이곳 가란도에 ‘공영버스(말만 버스지 실제는 12인승 승용차다)’가 운행된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당시 기사는 마을이 섬의 한 가운데 자리한 탓에 압해도로 나가는 가란대교까지의 거리가 1.6㎞나 된다고 했다.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60~90대 어르신들이 보따리를 이고지고 걸어다는 게 무리라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군에서 전기차를 제공해줬다는 것이다. 운전자격증이 있는 주민이 숭의선착장에 군내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가란선착장까지 차를 몰고 나간단다.

▼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한가득 피어났다. 그 가운데 오늘의 꽃으로 자란(紫蘭)을 꼽아봤다. 꽃이 아름다워 채취가 심한 탓에 최근 자생지 및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데 길가에서 마주쳤으니 행운이라 하겠다. 거기다 이곳 가란도가 난(蘭)이 많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니 이보다 더 적당한 꽃이 어디 있겠는가.

▼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민가는 ‘펜션’이다. 다리가 놓였으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 이들을 맞아들일 시설 또한 필요하지 않겠는가. 섬사람들의 생업도 저렇게 세월에 발맞춰 하나둘 관광업으로 바뀌어 간다.

▼ 부속섬인 ‘까치섬’과 ‘솔섬’은 갯벌로 연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닷길은 아니다. 물 빠진 갯벌에 섬이 놓였으니 사방이 온통 길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편에는 200m쯤 되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압해도’가 있다. 마치 어미 닭이라도 되는 양 새끼섬인 가란도를 지긋이 지켜본다.

▼ 해안은 북동쪽이 길게 돌출되어 있을 뿐 드나듦이 거의 없이 매우 단조롭다. 굴곡진 간석지(干潟地)라도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아올린 방조제와의 첫 만남은 가란마을 앞(이정목 : 짝짓기나무 410m/ 가란마을 740m/ 가란선착장 840m)이다. 200~300m쯤 되는 둑을 쌓아 그 안에 널디너른 농경지를 조성했다.

▼ 하지만 방조제를 쌓은 게 오래지 않은 듯 농작물은 심어져 있지 않았다. 간척지가 농경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10년 정도의 염분 제거기간이 필요하다니 말이다. 간척지 너머에는 ‘가란마을’이 들어앉았다. 가란도의 유일한 마을로 주민(65가구 72명) 대부분이 저곳에 모여 산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경로당과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지소 등 복지시설도 저곳에 모여 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길을 재촉해 가란도의 명물 ‘짝짓기나무’에 섰다. 애달픈 사랑얘기를 품은 전설 속의 나무로 한 뿌리에서 자란 줄기들이 서로 엉기고 엮여 기묘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가란도 남자와 까치섬(짝짓기나무와 마주하는 섬)의 여자가 서로 사랑을 했더란다. 그런데 양가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남몰래 이곳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는데, 끝내 허락을 얻지 못하자 이들은 영원한 사랑을 위해 서로 나무가 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 특별한 얘기만큼 생김새도 독특하다. 꼭 껴안은 모습. 아니 이건 숫제 합궁의 모양새이다. 이야기 속 남녀의 애틋한 정을 그대로 내보여주고 있으나 얘기는 얘기일 따름. 아이들과 함께라면 눈을 살짝 가려주는 센스를 발휘해보는 게 어떨까?

▼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따른다. 섬을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돌다보니 오른쪽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걷는 형국이 됐다. 때문에 눈만 들면 드넓은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이곳 가란도는 갯벌이 섬의 땅보다 5배나 더 된다고 한다. 덕분에 주민들은 낙지잡이와 갯지렁이 잡이 등으로 소득을 올리기도 한단다. 요즘은 노령화로 인해 손으로 낙지를 잡는 이를 보기가 힘들어졌다지만 말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5분. 길이 둘로 나뉜다.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길이 도로에 가까울 정도로 널찍하다. 바닥까지 반질반질한 것이 가란마을로 연결되지 않나 싶다. 갯일을 다니는 주민들의 통행로 말이다. 아무튼 도로는 또 이곳에서 끊겨 버린다. 이후는 썰물 때에 한해 길이 열리는 바닷가이다.

▼ 때를 잘 맞춰 찾은 덕분에 우린 바닷가를 따라 탐방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오른 바닷물을 피해 먼발치에서나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주상절리를 우리는 코앞에다 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가란도 해안선에서 만나게 되는 독특한 지질로 오랫동안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면서 생성된 독특한 암석 형태가 신비롭다.

▼ ‘주상절리’란 긴 세월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 낸 자연의 신비다.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다각형인 기둥 모양의 절리로, 사람들은 보통 제주도의 해안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가란도의 주상절리는 외모부터가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주상절리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다. 각이 져 있지 않고 마치 퇴적암의 단면처럼 생긴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문가들이 주상절리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 이후부터는 물 빠진 바닷가를 따라 걷는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하루 두 번씩 물이 들고 나는 서해안의 특성이 만들어내는 길이다. 이 길은 볼거리가 많은 길이기도 하다. 민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곡선을 그리며 물길을 만드는 풍경, 갯가에서 굴이나 바지락을 채취하며 생업을 일구는 섬사람의 모습, 먹이를 찾아 갯벌을 기어가는 게 무리들은 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 바닷가 너른 밭은 대부분 내버려져 있었다. 텃밭으로 일구어도 되련만 마을이 멀어선지 갈대만이 가득하다.

▼ 경작을 시작한 간척지도 눈에 띈다. 유채가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어린잎과 줄기를 먹기 위해 명나라에서 들여왔지만 먹을 게 넉넉해진 요즘은 관광자원으로 더 각광 받고 있다. 마늘밭도 보인다. 하지만 이곳 가란도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물은 쌀이라고 한다. 밭작물은 보리와 고구마, 마늘 등이 약간 생산될 뿐이란다.

▼ 바닷가로 내려선지 5분. 또 다른 볼거리인 ‘용굴’은 풀숲에 가려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입구까지 작아서 선두대장의 표식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놓칠 뻔했다. 그나저나 용굴의 또 다른 이름은 ‘금굴(金窟)’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금을 채취하기 위해 뚫은 데서 기인한 이름이다. 해방 후 폐광되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어 굴 내부 깊숙한 곳에는 물이 차 있단다.

▼ 자그마한 입구와는 달리 안은 꽤나 크고 넓다. 어두컴컴한 것이 길이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긴 일본인들이 채굴할 당시 많은 양의 금이 생산되었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물이 차있다는 곳까지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관리되지도 않는 동굴에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 드넓은 갯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대가 꽂혀있다. 김 양식을 위한 ‘지주’이다. 해안가에 나무를 박아놓고 김발을 매다는데, 밀물 때는 김발이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수면 밖으로 드러나 햇볕을 쬐면서 병충해에 강하고 영양소도 풍부한 건강한 김으로 자란다고 한다. 서남해안의 청정해역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라 하겠다. 하긴 이곳 신안의 갯벌은 보성·순천·서천(충남)·고창(전북)과 함께 ‘한국의 갯벌’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아니겠는가.

▼ 다음은 고구마의 꼭지. 그러니까 고구마처럼 생긴 섬의 동북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용머리 해안’이다. 섬 여행을 하다보면 ‘용머리 해안’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제주도와 연화도가 대표적인데, 얼마 전에 다녀온 두미도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곶(串)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곳 가란도도 같은 모양새라고 보면 되겠다.

▼ 그렇다면 이 바위는 용(龍)의 머리쯤으로 보면 되겠다. 참고로 압해도 인근에는 유난히도 용과 관련된 지명이나 설화가 많다고 한다. 혹자는 그 이유를 압해도가 배출한 강한 인물에서 찾고, 그 대표로 ‘수달장군’이란 별칭으로 불리던 ‘능창(能昌)’을 꼽는다. 능창은 나주 호족인 다련군(多憐君) 오희(吳禧, 왕건의 둘째 부인인 장화왕후의 아버지) 등 서남해 해상세력 대부분이 왕건에게 투항할 때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인물이다. ‘고려사’에도 왕건이 능창과의 정면 대결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그런 능창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이곳 압해도 일대라는 것이다. 참! 능창은 정면 승부 대신 간계를 쓴 왕건에게 잡혔고, 궁예에게 보내져 죽임을 당했다는 것도 알아두자.

▼ 바닷가 갯바위에는 자연산 굴이 지천이다. 오돌토돌한 표면에 꼬맹이 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곳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 부른다고 한다. 달콤한 꿀처럼 맛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긴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에 잠기고 햇볕에 노출되면서 치밀해진 육질이니 맛 또한 깊어졌을 것이다.

▼ 용머리에 이어 ‘돌캐 노두길’이 얼굴을 내민다. 돌캐노두길은 가란도 주민의 땀과 눈물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노두길’이란 사람들이 섬과 섬 사이 갯벌에 돌을 던져 만든 길이다. 이곳 가란도 주민들도 ‘버섬’이라는 작은 무인도까지 크고 작은 돌을 날라 생업의 연장선을 늘렸다. 하지만 버섬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도 빠듯했지만 그보다는 엉망으로 변해버릴 신발이 더 걱정되어서이다.

▼ 노두길의 특징은 하루에 두 번씩 사라졌다 생겼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 노둣길이 전통 어법인 ‘독살’의 기능을 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살은 간조와 만조의 물때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법이다. 갯가에 안팎을 경계 짓는 담장 형태로 길게 돌을 쌓는데 어부는 밀물에 멋모르고 독살 안으로 들어왔다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생선을 잡는다. '돌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남도 사투리로 독은 돌과 혼용되곤 한다.

▼ 선답자의 글에서는 이 부근에서 함초(鹹草)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복이 없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행여 앞사람을 놓치기라도 할세라 부지런지 쫓다보니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마디가 튀어 나왔다고 해서 ‘퉁퉁마디’라고도 불리는데, 최근 미네랄아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기에 집사람에게 칭찬도 받을 겸해서 조금 뜯어갈까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 ‘주산지’를 닮은 풍경도 만났다. 지금은 비록 맨몸을 드러내고 있지만 물이라도 차면 저 나무들은 아랫도리를 물에 적시게 될 것이다. 물안개가 떠오르는 새벽도 떠올려보자.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겠는가.

▼ 바닷가로 내려선지 25분 만에 두 번째 방조제에 올라섰다. 가란도에는 이런 방조제가 여럿이다. 들고남이 빈번한 해안선에 둑을 쌓아 농경지를 만들었다. 그만큼 먹고삶이 절실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배 수리에 삼매경인 어부들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하루에 두 번 물이 쓰고 드는 조수간만의 차는 어민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밀물엔 저 어부들처럼 어구를 챙기거나 어장을 살피고, 썰물엔 훤히 드러난 갯벌을 걸으며 고둥이나 굴, 감태 등 다양한 갯것을 얻는다.

▼ 돌캐노두길이나 방조제 등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만들어보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하지만 어렵게 장만한 땅의 대부분은 내버린 듯 방치되고 있었다. 지금은 농사보다 바다에서 얻는 수익이 더 크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알몸을 드러낸 갯벌은 푸른 초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조류인 감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개펄 위에는 짱뚱어가 뛰어다니고, 수많은 농게와 칠게가 먹이를 찾아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 ‘갯벌체험’. 일행들과 함께 갯벌이 선사하는 특별한 재미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 뭍에 자동차가 있다면 물 빠진 바다는 경운기가 주인인 모양이다. 하긴 바닥이 거친 갯벌에서 저만한 기동력도 없겠다. 가란도는 갯벌의 섬이다.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 갯벌. 썰물의 시간이면 드넓은 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광활한 갯벌이 나타난다. 가란도 갯벌에서는 잠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따위는 기적 축에도 끼지 못한다.

▼ 또 다른 방조제다. 섬에서는 반듯반듯하게 잘라 켜켜이 쌓아놓은 방조제도 잠깐의 눈요깃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 여운은 바람에 밀려오는 바닷물을 수줍게 밀어내는 풍경까지 그려내게 만든다.

▼ 드넓은 갯밭 위로 펼쳐진다는 굴 양식장은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썰물이 극에 이를 때, 그것도 잠시만 얼굴을 내민다더니 사실이었던가 보다. 밀물의 속도감으로 인해 조금만 늦어도 굴밭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줄을 맞춘 말뚝 위로 동아줄이 씨줄날줄 엮여 있고, 거기에 굴이 주렁주렁 매달린 게 가란도의 또 다른 볼거리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가란도의 굴 양식법은 ‘수평끈식’이라고 한다. 수하식(줄에 굴 포자가 붙은 껍데기를 매달아 바다 속에 늘어뜨려 키우는 방식)인 통영이나 여수와는 달리 갯벌에 말뚝을 박아놓고 줄을 연결해 키우는 방식이다.

▼ 이후부터는 해안도로를 따른다. 잠시 후 마주친 삼거리에서 이정표(한산길↑ 165m/ 가란마을← 400m/ 돌캐노두길↓ 330m)를 만났고, 우린 이곳에서 가란도의 제일봉인 ‘용두산’을 지나쳐버렸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길이 하도 험해 고생만 죽도록 했다는 일행의 넋두리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정상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에 담을만한 풍경도 일절 없었다는 것이다.

▼ 조금 더 걷자 모실길의 지도가 그려진 빗돌이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현위치가 ‘한산길’을 지난 지점에 표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름만 매겨져있을 뿐 내세울만한 특징이 없다보니 그냥 지나쳐버렸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우리가 걸어왔던 해안도로를 ‘한산길’이라 부르는지 않나 싶다.

▼ 아름다운 곳에서는 자그만 소품까지도 정겹다. 잠시 쉬어가라며 놓아둔 의자도 그 하나이다. 섬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풍경이라 하겠다.

▼ ‘시몬’은 어디를 이르는 지명일까? 조금 전의 한산길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설명도 없으니 어찌 알겠는가. 그저 해안에 곡선을 그리는 독특한 형태의 ‘모랫등’을 이른다는 선답자의 글을 떠올려볼 따름이다. 참고로 ‘모랫등’은 조류가 약한 구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래가 자연스럽게 퇴적되면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 드넓은 갯벌을 바라보며 애틋한 섬의 유래를 되짚어본다. 가란도(佳蘭島)는 자연산 난이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하지만 원래의 이름은 ‘가난도’였다고 전해진다. 곤궁했기 짝이 없던 주민들의 살림살이에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그러다가 가난이 한스러웠던 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길 소망하며 가란도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말이 씨 된다고, 스토리텔링은 가난했던 가란도를 한때 부자섬으로 바꿔주기도 했단다. 1971년부터 시작된 지주식 김양식 덕분인데, 김양식이 사양화로 접어든 요즘은 낙지잡이와 감태, 굴 등이 주 수입원이 됐단다.

▼ 공사가 한창인 구간도 있었다. 섬 가꾸기 사업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가란도는 지난 2019년부터 국토교통부가 지원하는 ‘새뜰마을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취약지역 주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생활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니 저 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 맨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볼거리는 ‘솔등해수욕장’이다. 규모가 작은데다 편의시설도 갖추지 못했지만, 고운 모래가 나지 않는 압해도 권역에서는 보기 드문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200m 조금 못되어 보이는 해안선에 희고 고운 모래가 상당히 넓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 해수욕장은 텅 비어있다. 탈의실이나 샤워장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없다. 그 빈자리를 낚싯배가 노렸을까? 물 빠져나간 모래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 썰물 때를 잘 맞춘 덕분에 모래사장 끄트머리에서 자갈밭 모퉁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바다 건너에 위치한 ‘압해도’가 눈에 들어온다. 목포 북항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으로 지세가 삼면으로 퍼져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태여서 압해도(押海島)라 불렀다고 한다. 섬 모양이 낙지가 발을 펴고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털 미용을 한 귀여운 ‘푸들’이나 예로부터 전해오는 상상속의 ‘기린’을 닮았다는 얘기들이 떠도는 걸 보면 말이다. 압해도는 신안군청이 들어선 곳이기 하다. 꽤나 큰 섬(48.95㎢)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가란대교가 나타나면서 가란도의 트레킹은 마무리된다. 가란도를 둘러보는 데는 1시간 40분이 걸렸다. 해안선의 길이가 6.5km라고 하니 꽤 빨리 걸은 셈이다. 탐방로 대부분이 도로인데다. 썰물 덕분에 열린 바닷길도 걷기가 무척 편했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