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高下島) ‘용오름 길

 

여행일 : ‘21. 5. 2()

소재지 : 전남 목포시 달동

산행코스 : 고하도복지회관둘레숲길입구말바위전망대(판옥선)용오름길용머리해안데크전망대(판옥선)등산로입구이충무공유적지고하도복지회관(소요시간 : 7.04km/ 2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목포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고하란 지명은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삼국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유적지(지방기념물 제10)가 조성되어 있다. 고하도 트레킹의 자랑거리는 용머리길에서 바라보는 유달산과 목포시가지, 그리고 다도해에 대한 조망이다. 특히 밤바다와 어우러지는 오색등의 향연은 목포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참고로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이 섬을 보화도(寶花島)’로 적는다. 그밖에 고화도(高和島고하도(高霞島칼섬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목포사람들은 친근하게 용섬이라 부른단다.

 

 산행들머리는 고하도복지회관 주차장(목포시 달동 782-16)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에서 빠져나와 국도 1호선(2012년 목포대교가 개통되면서 고하도가 기점이 됐다)을 타고 고하도(목포신항)’로 들어온다. 신항교차로에서 좌회전 고하도길을 따라 1.5km쯤 들어오면 고하도 복지회관에 이른다. 복지회관 앞에 화장실은 물론 쉼터용 정자까지 갖춘 널찍한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고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둘레길로, 크게 둘레숲길 용오름길로 나뉜다. 거기에 해안테크까지 끼워 넣어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여정이라 여기면 되겠다. ·종점은 둘레숲길의 들머리에서 가까운 고하도 복지회관이 보통, 하지만 최근 해상케이블이 생기면서 케이블카스테이션을 기점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하도안길을 따라 복지회관 쪽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반대방향으로 가면 조선육지면 발상지비를 구경할 수도 있다. 참고로 이곳 고하도는 육지면(陸地棉)이 처음 재배된 곳이기도 하다. 1904년 목포 주재 일본영사에 의해서였다. 육지면은 고려 말 문익점이 가져온 재래면과 달리 남미가 원산지다. ‘미국면이라고도 불리는데, 면사의 품질이 재래면보다 훨씬 좋았다.

 150m쯤 걸으면 윗마을로 넘어가는 고하도길’. 탐방로는 도로(어느 기자는 이 부근을 뒷도랑 잔등이라 부르고 있었다)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초입에 등산로안내판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정표(용머리 2.8/ 이충무공유적지 0.3)는 터닝 포인트까지의 거리가 2.8km임을 알려준다. ! 첨부된 지도의 둘레숲길 입구에서 산자락으로 들어선다는 것도 알아두자.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고하도등산로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둘레숲길이다. 그래선지 이름에 딱 어울리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게 된다.

 등산로는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길이라도 나뉠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웠고, 가파른 구간이나 전망 좋은 지점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로 활용했다.

 마냥 흙길만 걷는 건 아니다. ‘큰덕골저수지(왼쪽 0.7km 지점)’ 갈림길을 지나면 아래 사진처럼 위태로운 바위구간을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내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 멸종위기 난초인 석곡이라도 눈에 띌까 해서다.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어사는 이 식물이 고하도 인근에서 드물게 발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석곡 꽃은 흰색 또는 연한 홍색인데 향이 좋아 관상용으로 부문별하게 채취되면서 멸종위기에 처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야가 트인다. 바다 건너편은 영암. 영암과 목포 사이 바다에 작은 섬, 등대도가 떠 있다. 발아래에 고하도선착장이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무명봉(아까 그 기자는 옛날 불당골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올라와 불을 지폈다는 큰산으로 적고 있었다)으로 올라섰던 탐방로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그것도 바윗길. 하지만 계단과 난간은 물론이고 밧줄까지 매어 위험요인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8. 안부로 내려서자 길 하나가 오른편으로 나뉜다. 초입의 등산로안내판에 고하도등산로로 표기된 지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따가 산행을 마치고 되돌아나갈 때 이용할 계획이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고하도진성 수군통제영터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탐방로는 이제 능선을 따른다. 능선을 따라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가장 낮은 곳은 해발고도가 3m,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79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길을 3.2km쯤 갔다고 되돌아오는 왕복 코스다.

 그렇게 잠시 걸어 삼각점이 설치된 봉우리(이정표 : 용머리 1.8/ 등산로입구 1.0)로 올라섰다. 안내판은 전망 좋은 곳이라며 잠시 쉬어갈 곳을 권한다. 벤치까지 준비되어 있다면서.

 안내판은 또 유달산 일대와 목포항이 바라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 풍경은 그보다도 훨씬 넓었다. 입암산과 삼학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고 있었다.

 탐방로는 이제 경사까지 사라져 버렸다. 평탄한 것이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다. 그러다보니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도 정겹다. 바닷바람도 살랑살랑 마음속까지 청량하게 해준다.

 잠시 후 또 다른 전망대에 이른다. 능선을 걷다보면 이렇듯 시야가 트이는 곳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데, 유달산과 목포항·삼학도에 앞으로 걸어야할 용처럼 길게 뻗은 고하도의 모습까지. 이곳 용오름길에서는 항구도시 목포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이곳의 안내판도 지명(현재 위치의)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쉬어갈 것만 권하고 있었다.

 바위지대라서인지 조금 전의 전망대보다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유달산 일대와 목포항은 기본. 거기다 목표대교를 더했는가 하면, 고하도의 용머리까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을 놓았다. 바위지대라서 길 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에는 밧줄에 매달려 씨름깨나 할 수밖에 없었겠다.

 계단은 전망대 역할까지 해준다. 길게 뻗은 고하도와 그 끝에 있는 용머리, 목포대교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저 풍경은 옛날 유생들 사이에서 용두귀범(龍頭歸帆)으로 불리기도 했다. 돛단배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고하도 용머리 앞을 돌아오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켰다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계속된다. ‘둘레숲길이라는 브랜드가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풍경이라 하겠다. 하나 더, 옛 선비들은 이곳 고하도를 고도설송(高島雪松)’이라 읊으며 목포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소나무가 저렇게 많았기에 가능했지 싶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5, ‘말바위에 이른다. 거대한 바위 하나가 그보다 조금 작은 바위에 걸쳐져 있는 형상인데, 올라타고 있는 바위의 모양이 말의 발굽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말바위에서 해안가로 내려가면 일제강점기에 만든 동굴진지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길을 안내하는 그 어떤 표식도 찾아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길을 나서니 8분쯤 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정표는 왼편이 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스테이션으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잠시 후, 목포해상케이블카의 철탑이 그 육중한 몸매를 드러낸다. 목포 앞바다를 가르며 아래로 쳐졌던 케이블이 저 철탑에서 다시 고도를 높였다가 고하도 스테이션으로 내려간다. 고하도와 북항스테이션을 잇는 3.23km 길이의 저 케이블카를 타면 목포9(木浦九景) 중 유달산(1)과 목포대교(2), 삼학도(7), 다도해(8)를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지자체는 황량할 수밖에 없는 철탑(이정표 : 고하도전망대 370m/ 용오름숲길) 주변을 포토죤으로 바꿔놓았다. ‘하트박스 조형물을 배치해, 찾아온 연인들이 이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했다. 하나 더, 사랑은 영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걸 바라는 연인들이 남긴 열쇄도 꽤 많이 매달려 있었다.

 이후 전망대까지 370m 구간은 전형적인 산책로이다. 아니 숫제 차량이 다녀도 될 성 싶은 널찍한 임도로 변해있다.

 이 구간에서 우린 하트의자 전망대도 만났다. 안내판은 의자의 중간이 ‘V’자 모양으로 꺾인 탓에 서로가 가깝게 앉을 수밖에 없다며, 앉기만 해도 사랑에 빠진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곳은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유달산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이를 하트의자와 함께 넣는다면 인생샷을 건질 수도 있겠다. 나처럼 혼자서 찾아온 이들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이겠지만.

 시선을 조금 옮기자, ‘목포대교가 나도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대교의 하얀 선이 하늘철도처럼 보인다. 그 왼편에서는 아름다운 해안선이 용의 옆구리를 호위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50. 고하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고하도 전망대에 이른다. 이충무공이 명량대첩 승리 후 107일 동안 전열을 가다듬었던 고하도. 충무공의 얼을 기리고자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올린 24m 높이의 독특한 건물이다. 전망대 말고도 충무공의 얼을 담은 교육 및 관람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는 휴게공간과 전시공간, 그리고 전망공간으로 꾸며졌다. 1층은 휴식공간인 카페, 2~5층은 목포관광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다. 옥상은 전망공간으로 꾸몄다.

 2~5층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충무공의 활약상과 판옥선 제작 과정. 임진왜란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판옥선과 거북선의 제조과정을 그림과 글로 벽에 새겨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목포의 역사·관광·문화예술 등 다양한 정보도 접수된다. 유달산의 사계절을 담은 풍경, ‘목포의 눈물을 노래한 이난영을 비롯 목포를 빛낸 예술인들, 목포 도심권 볼거리와 먹거리 등 목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국제 슬로시티임을 알리는 로고도 눈에 띈다. 맞다. 이곳 목포는 슬로시티이기도 하다. 역사적 가치가 높고(원도심 일대의 근대역사문화유산), 자연경관(유달산·외달도·달리도 등)이 훌륭하며, 슬로푸드와 주민공동체 문화가 잘 보존되는 등 색다른 매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activity를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화유리 위에 서면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때 아찔한 고도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맨 위층으로 올라가면 전망공간이 나오는데, 입구에서 전망대의 건축물을 보고 감탄했다면 이번에는 황홀한 풍경에 감탄하게 된다. 탐방객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실물과 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에 조망도를 세워두었다.

 목포시가지를 바라보며 목포의 역사를 떠올려본다. 100년 전 들어선 구도심과 아파트·고층건물이 들어선 신도시, 여기에 다도해로 나서는 여객선과 크고 작은 고깃배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삼학도와 삼호반도(영암)가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 영산강이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반대 방향으로는 달리도와 외달도, 율도, 장좌도, 안좌도 등 옹기종기 앉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수평선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란 물결, 그 위를 돛단배라도 되는 양 떠다니는 섬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기라도 하려는 듯 햇살이 쏟아진다. 천국이 있다면 저렇게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 세월호다.’ 누군가 신항 쪽을 바라보며 외친다. 바다 밑에서 3, 또 뭍에서 4년을 보낸 세월호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붉게 녹슬고 찢긴 채로 말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으니 문제다. 미뤄왔던 백내장 수술을 하시라도 빨리 받아야겠다.

 터닝 포인트인 용머리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가는 방법은 둘. 등산로(용머리길)나 해안 데크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아니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이니 어느 길을 선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 하겠다. 나는 용머리길을 먼저 타보기로 했다.

 눈요깃거리 풍년이다. 심심찮게 고개를 내미는 유달산만으로도 벅찬데, 거기다 목포 시() 문학회에서 게시해놓은 시를 읽으며 걷는 재미까지 더했다. 하긴 한국관광공사에서 ‘2020 가을 비대면관광지 100으로까지 선정했었다니 오죽할까.

 이 구간도 역시 곳곳에서 시야가 트인다. 내다보이는 풍광이 특히 빼어난 곳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로 조성했다.

 숲 밖으로 눈을 돌리자 목포항과 유달산이 펼쳐진다. 이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오간다. 점점이 떠있는 장자도·달리도 등 다도해 풍광도 매력적이다. 그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서 목포대교가 위용을 뽐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오르내림을 두어 차례 반복하다 12(전망대에서)만에 고하도의 끝인 용머리에 선다. 이곳이 터닝 포인트임을 알려주려는 듯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용머리의 전설(용이 날개를 펴고 승천했다는)이 아니라 숲길을 걸으면 용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다는 자랑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탐방로는 이제 바닷가로 내려간다. 까마득한 바위벼랑이지만 나무계단이 놓여있어 내려가는데 어려움은 없다. 그저 아름답기로 소문난 주변 풍광을 눈에 담기만 하면 될 일이다.

 탐방로가 바닥까지 떨어진 건 아니었다. 하긴 바닷물이 찰랑거리는데 길이라니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대신 해상 보행로를 따로 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두어 곳에는 널따란 광장까지 만들어두었다.

 광장은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사진의 배경으로 넣으라는 듯 조형물도 배치했다. 그중 하나가 용의 비상이란 작품이다. 고하도의 또 다른 이름은 용섬’, 목포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오른다는 뜻을 담았단다.

 바다에는 목포대교가 놓였다. 2012년에 완공된 목포대교는 총 연장 4.129로 목포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연륙교이다. () 두 마리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라는데,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 때 황홀한 낙조 위에서 두 마리 학이 펼치는 춤사위의 화려함은 목포 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이후부터는 길이 1,080m 해안 데크(deck)’를 따른다. 바닷가 바위벼랑에 기대 듯 길을 내놓았다. 덕분에 쪽빛 바다와 절벽을 때리는 파도 소리를 즐기며 걸을 수 있다. 하나 더, 왼쪽 멀리에서 유달산이 따라오는가 하면, 다가온 해풍이 살짝 볼을 때리고 지나가는 등 조금 전 걷던 숲길과는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해식애(海蝕崖)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이 스쳐간 흔적들이다. 다만 먼 바다에서 몰아쳐 온 파도가 비켜 지나간 지점이라서 다른 섬들처럼 우람스럽지는 않다.

 또 다른 광장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만났다. 제목은 개선장군 이순신’. 명량해협에서 대첩을 거둔 장군의 기상을 담았단다. 고하도가 그를 만난 것은 정유재란 때다. 명량대첩 후 고하도에서 함대 정비를 하면서다. 장군은 107일간을 머물며 전선 40여 척을 건조했고 8000여 명의 군사를 훈련시켰다. 군자금을 확보했는가 하면, 총통·화약 등을 만들어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게 수군재건의 토대가 되어 왜란을 끝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데크 로드를 12분쯤 걷자 길이 둘로 나뉜다. 오른편은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직진 (아래 사진)은 공사 중이라서 탐방객은 딱 여기까지만 걸을 수 있단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일제강점기 벙커용으로 뚫었다는 해안 동굴을 곁눈질도 못했으니 말이다.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한 시설로 고하도에는 그런 동굴이 14개나 있단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만만찮다. 가파른 벼랑 위로 오르려다보니 계단의 경사도 급할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마저도 힘든 곳에서는 왔다갔다 갈 지()’자를 쓰기도 한다. 노약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구간이라 하겠다. 그래선지 목포시에서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40(전망대부터는 20). 트레킹 초반에 거론했던 삼거리, 즉 이충무공 유적지(고하도진성)로 내려가는 길이 갈려나가는 삼거리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쪽, 그러니까 등산로 입구쪽으로 진행했다.

 그러자 고하도진성 안내판이 길손을 맞는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장군이 쌓았다는 성이다. 섬의 중앙 큰덕골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에 1.125m 길이로 축조했다. 장군은 이곳에서 병력보충·병선건조·군량미조달 등을 통해 수군을 재건, 전쟁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의문점 하나. 300m나 떨어져 있는 유적지의 안내판을 왜 이곳에 세워놓았을까?

 100m만 더 걸으면(삼거리에서) ‘등산로안내판에서 말하는 등산로 입구. 이곳에는 등산로안내판과 이정표(말바우 0.2) 말고도 화장실까지 갖춘 주차장이 들어서 있었다.

 탐방로는 이제 도로(고하도길)을 따라 이충무공유적지로 간다.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구간이다. 그러니 쉬엄쉬엄 걸으며 이순신장군과 얽힌 역사 등 유서 깊은 고하도의 뒤안길을 되새김질해보자. 거기다 푸른 바다, 다도해를 감상하는 힐링까지 만끽한다면 더 좋고.

 걷는 도중 수군통제영 터()’를 만날 수 있었다. 이순신장군이 명량대첩 후 전열을 가다듬었던 전진기지로, 이순신은 이곳에서 전투력을 강화시켜 7년 전란을 종식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요 어디쯤에 선소(船所)가 있지 않았을까? 고하도는 압해도와 율도·달리도·화원반도 등에 가려 숨어있는 모양새다. 거기다 영산강 하구라 배를 정박하기에도 용이하다니 이만하면 전열정비의 필요성을 느낀 이순신장군이 최적지로 꼽을만하지 않았겠는가. 장군은 이곳 고하도에서 40여 척의 배를 건조했다고 전해진다.

 바닷가에는 고하도 선착장이 있다. 나이든 세대들은 응박개선창이라 부른다는데, 그 아래에는 1980년대 건설된 또 하나의 선착장이 있다. 아무튼 2012년 목포대교가 완공되기 전까지 섬의 관문이었던 저곳은 사람을 실고 드나들던 선박이 하루 종일 분주했다고 한다.

 잠시 후 고하마을로 넘어가는 작은 고갯마루에 선다. 이충무공유적지(전남도 지방기념물 제10)는 이 고갯마루에서 왼쪽 능선을 타면 된다. 참고로 고갯마루로 올라서기 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가면 고하도선착장에 이어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를 만나볼 수 있다. 아까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거론했던 기념물이다.

 500년 이상 된 곰솔이 군락을 이루는 숲속으로 들어선다. 껍질이 검은빛을 띠는 늙수그레한 곰솔 무리가 바다와 어우러지며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런 좋은 조건을 지자체에서 그냥 놓아두었을 리가 없다. 숲속 곳곳에 벤치와 평상을 놓아 시민들이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를 맡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홍살문을 지나자 모충문(慕忠門)이 어서 오란다. 충무공을 숭모(崇慕)하는 마음으로 들어서라는 얘기일 게다. 아니 장군의 애국충정을 본받음으로써 자신처럼 외세(일제강점기)에 의해 야산에 버려지는 전철을 밟지 말라는 뜻을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광복 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웠지만 아픈 상처임은 분명하다.

 안으로 들면 모충각(慕忠閣)이 반긴다. 이충무공기념비(전남도 유형문화재 제39)를 모시는 비각으로 내부에는 4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기념비는 이순신이 고하도에 진성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했던 터에 세운 것으로, 훗날 삼도 수군통제사 오중주가 공사를 시작했고, 1722년 충무공의 5대손인 삼도 수군통제사 이봉상(李鳳祥)이 완성했다. 남구만(南九萬)이 비문을 지었고, 조태구(趙泰耉)가 글씨를 썼다.

 비문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군사 주둔지로 고하도를 선정하게 된 과정, 수군 진영이 1647년에 당곶진으로 옮겨가게 되어 이곳 고하도진영을 폐하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중주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전쟁 발발 시 군량미 비축 및 공급의 중요성, 후임 수군통제사들에게 이곳이 고하도 진영 터임을 알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게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날머리도 고하도복지회관 앞 주차장(원점회귀)

이충무공유적지를 마지막으로 고하도 용오름길 트레킹은 막을 내린다. 아니 산악회버스가 기다리는 고하도복지회관 앞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마감했다. 고하도 트레킹은 7.04km를 걸었다. 걷는데 2시간이 걸렸지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 눈요기를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소요시간이 달라질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