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加波島)

 

여행일 : ‘22. 3. 28(월)

소재지 :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리

산행코스 : 상동선착장→상동마을→소망전망대→일주도로(고냉이돌)→가파포구(하동마을)→소망전망대→상동포구(거리 및 시간 : 자그만 섬이라서 의미 없음)

 

함께한 사람들 : 가족나들이

 

특징 : 모슬포항에서 5.5km쯤 떨어진 작은 섬(30만 평으로 제주도의 부속섬 중에서는 네 번째로 크다)으로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섬 속의 섬’이라는 얘기이다. 가파도의 가장 특징은 해발 2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은 섬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평상 같이 평평한 섬 안으로 조금만 들어서면 어디에서든 탁 트인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다 건너에는 가장 키가 큰 한라산(1,950m)이 우뚝 솟았고, 반대편에서는 최남단의 섬 마라도가 한걸음 달려오라며 손짓한다. 트레킹도 쉽다. 해안 일주도로를 위시해 길이 사통팔달로 나있지만 해안선 길이가 4.2㎞에 불과해 여유롭게 걸어도 2시간이면 족하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아보면 된다.

 

▼ 여행의 시작은 운진항(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가파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운진항(모슬포 남항)으로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가파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마지막 2항차(15:20, 16:00)를 이용했을 경우 섬을 둘러볼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가파도에서 나오는 배편이 16시 20분에 끊기기 때문이다. 참! ‘청보리축제(4월-5월)’ 기간에는 매 30분 간격으로 배편을 늘린다는 것도 참조한다.

▼ 우리를 태워다 준 ‘블루레이 3호’. 199톤 크기의 자그마한 배지만, 294명이나 태운다니 여객선용으로 특화되었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저 ‘Blue Ray’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설마 14.5knots의 속도를 빛살처럼 빠르다고 우기지는 않았을 테고, 또 다른 번역어인 ‘가오리’를 나타내는지도 모르겠다.

▼ 운진항에서 출발한 배는 넉넉잡아 10분이면 ‘가파도(상동 포구)’에 도착한다. 제주도 본섬의 서남쪽에 위치한 가파도는 섬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지명이다. 가오리를 닮은 섬의 생김새에다 먼 바다의 특징인 ‘파도’를 더했다. 참! 덮개 모양을 닮아 ‘개도(蓋島)’라 부르던 것이 가파도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으니 기억해 두자.

▼ 배에서 내리니 물질 삼매경인 해녀가 눈에 들어온다. 얕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걸로 보아 ‘하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가파도를 오가며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이주에 이어 어촌계장까지 겸하고 있다던 기사 속의 초보 해녀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해녀는 기량의 숙달 정도에 따라 상군(上軍)·중군(中軍)·하군(下軍)으로 나뉜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제주 해녀문화’로 등재되었다.

▼ 포구의 방파제는 광고판을 겸한다. 카페와 민박집도 있지만 대부분은 식당. 한정식에 중식, 심지어는 아이스크림 가게까지도 눈에 띈다.

▼ 배에서 내리면 상동마을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선지 마을은 이미 관광지로 변했다. 식당과 카페에 마트, 민박 등 육지의 여느 관광지에 못지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 길을 나서기 전에 기념촬영부터. 이번 여행은 칠순을 맞은 집사람에게 바치는 내 선물이다. 부부만의 한갓진 여행을 계획했다가, 집사람이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아 부랴부랴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막내 처제는 코로나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이번 여행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아래 사진처럼 가파도에는 제주올레길(10-1코스, 4.2km)이 나있다. 하지만 올레길 순례자가 아니라면 일부러 이를 따를 필요는 없겠다. 정중앙에 위치한 소망전망대에서 해안 일주도로를 향해 사통팔달로 길이 뚫려 있으니 섬에 머무는 시간을 감안해 둘러볼 코스를 정하면 된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2시간이면 족하다.

▼ 해안선을 버려두고 마을 안 고샅길로 들어섰다. 가파도의 삶을 먼저 느껴보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학교가고 주민들이 매일같이 마실 다니는 길이니 가파도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겠는가.

▼ 그런 내 선택을 옳았다. 그 길에서 나는 가파도의 풍광을 눈과 가슴에 오롯이 담을 수 있었다. 특히 벽화 거리는 가파도 관광의 ‘화룡점정’이다. 벽마다 가파도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으니 별도의 해설자도 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섬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 그냥 벽화가 아니라 가파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기서 우스갯소리 하나.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좋고’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는 두 섬이 빚을 돌려받기가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제주도 속담이란다. 하지만 두 섬은 요즘 전국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 중 하나로 변했다.

▼ 가오리에 파도를 더한 게 ‘가파도’인줄 알았는데, 주민들은 ‘가고픈 섬’이라서 가파도라며 우겨댄다.

▼ ‘가장 제주다운 섬’이란다. 맞다. 봄이면 섬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드는데다, 돌담이나 밭담도 잘 보존되고 있어 토속적인 제주의 멋을 가장 잘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행정안전부에서 선정한 ‘10대 명품섬’에 포함된 이유란다.

▼ 요건 아예 집을 통째로 화폭으로 삼아버렸다. 관광객의 눈높이에 맞췄다고나 할까? 예전의 가파도는 이웃 섬인 마라도를 가면서 그냥 지나가거나 잠깐 들르는 섬이었다. 별 볼일 없던 섬이었단 얘기다. 하지만 올레길이 생기고 청보리가 알려지면서 마라도와 우도처럼 사시사철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단다. 이젠 별 볼일 많은 섬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 가장 ‘가파도’다운 풍경이라 하겠다. 주변 바닷가에서 주워 온 듯한 조약돌과 특산물인 뿔소라와 전복, 고동으로 집과 담을 치장했다. 가파도의 예술가로 소문난 이춘자 할머니의 작품이라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기사는 그녀가 10년 넘게 정성으로 꾸몄다고 했다. 그게 이제 가파도 명소가 되었다.

▼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카페도 눈에 띈다. 개구리 모양의 화분을 벽에 매달은 건물의 외형이 지극히 이국적이고, 뜻은 모르겠지만 ‘꼬막꼬막 걸으멍’이란 이름까지도 예쁘다.

▼ 가파도의 돌담은 본섬(제주도)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제주의 담이 검은 현무암인 것과 달리 가파도 돌담은 색이 제각각이다. 바닷물에 깎이고 닳은 마석(磨石)을 써서 그렇단다. 하지만 기능은 똑 같다. 크기가 다른 돌을 성기게 쌓아 틈으로 바람이 잘 빠진다. 오랜 세월 섬에 적응하며 얻은 생활의 지혜라서 허술해 보이지만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단다.

▼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설치미술도 엿볼 수 있었다. 그물과 소라 등 섬마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선지 지극히 향토적 감성을 자극시켜준다.

▼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밋밋할 수밖에 없는 돌담에 소품 두어 개를 더하자 이렇게 변했으니 말이다.

▼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가파도를 두 번째 고향으로 삼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회지로 떠나는가 보다. 무너져가는 집 마당에는 사람 대신 선인장만 가득했다.

▼ 뒤돌아본 상동마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했던가? 마파도의 집들도 변화의 물결을 탔나보다. 거센 바람을 피해 담장 아래 웅크리고 있던 집들이 언제부턴가 고개를 내밀었다. 몸 하나 가릴 것 없음은 예나 다름없지만, 태풍도 무서워하지 않는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해 집을 지었음이리라.

▼ 마을을 지나 ‘소망전망대’로 향했다. 가파도의 길은 해안가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 것이냐, 아니면 나처럼 섬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것이냐에 따라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도 섬 경치를 즐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볼 일이다.

▼ ‘가파도’하면 사람들은 먼저 ‘청보리’를 떠올린다. 요즘은 ‘유채꽃’을 더했다. 하지만 ‘갯무꽃’도 이에 못지않았다. 지중해가 원산지라는데 일부러 파종해놓은 듯 작지 않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갯무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무(갯+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처럼 무우꽃과 비슷하게 생긴데다 뿌리와 잎 모두 식용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밭에서 재배하는 무우와는 달리 뿌리가 작고 잎이 질기다고 한다.

▼ 마을을 빠져나오자 드넓은 보리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손이 부족해 심기 시작했다는 가파도의 보리는, 이제 가파도를 넘어 제주도의 명물이 되었다. 섬 면적의 3분의 1에 이르는 땅이 보리밭이라니 보리밭을 빼놓고 어찌 가파도를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사방이 청보리의 푸른 물결로 장관을 이루는데, 여기에 돌담과 바다가 덧붙여지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매년 봄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이유일 것이다.

▼ 드넓은 보리밭 사이를 걷다보면 둥그렇게 쌓아올린 돌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 안에 무덤이 들어있으니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인 셈이다.

▼ 가파도의 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도의 재래종이란다. 바닷일로 바쁜 주민들이 생각해 낸 대체작물이다. 키가 1m를 훌쩍 넘기지만 씨만 뿌려 놓으면 잘 자라기 때문이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그게 지금은 관광 상품이 되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보리물결이 넘실대는 게 장관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 돌담까지 더해지니 이런 풍경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 마을 근처에는 ‘상동우물’이라는 샘도 있었다. 150년 전에 판 우물이라는데 식수 및 빨래터로 사용할 수 있어서 당시는 주민 대부분이 상동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동에 공동우물과 빨래터가 신설되자 대다수 상동주민들이 하동으로 옮겨가 지금은 하동이 섬의 중심이 되었다. 아무튼 가파도는 제주도 유인도 중 유일하게 물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 청보리밭을 지나자 이번에는 유채꽃이 길손을 맞는다. 청보리밭의 초록 파도를 기대한 상춘객에게는 뜻밖의 광경이겠지만 유채꽃 풍경은 이미 마파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리처럼 4월에 찾아올 경우 청보리의 초록 물결과 유채꽃의 노란 물결을 동시에 담아갈 수 있다.

▼ 제주도의 봄은 노란색이다. 가파도도 같은가 보다. 유채꽃이 가파도의 들녘을 온통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가파도의 유채꽃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올해는 더 늘어났단다. 그에 반해 청보리 재배면적이 부쩍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 유채꽃은 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얼굴마담이다. 2월 무렵 꽃망울을 열기 시작해 4월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노란빛꽃 구름에 안긴 인생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시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찌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청보리와 유채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걷다 보면, 가파도 최고 높이(해발 20.5m)의 ‘소망 전망대’가 나온다. 소망 전망대는 가파도서 제주 본섬은 물론 마라도, 푸른 바다와 청보리밭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명소다.

▼ 전망대에 오르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바다 건너의 제주 본섬. 샛노란 유채꽃밭 너머로 투구를 쏙 빼다 닮은 산방산이 그림처럼 솟아오른다. 참! 전망대 아래에는 ‘게르’를 닮은 초가움막도 지어져 있었다. 제주도가 몽고마의 방목지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전망대 부근에도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상동과 하동의 중간지점이니 ‘중동(농담이다)이라고나 할까? 정체불명의 조그만 동네지만 초등학교와 전화국, 발전소 같은 중요 시설들이 들어서 있으니 가파도의 중심지인 셈이다.

▼ 유채꽃 일색인 서쪽 방향도 막힘이 전혀 없다. 가파도는 이렇듯 시야를 가로막는 게 없다. 심지어는 그 흔한 전봇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푸른 바다건너 산방산과 한라산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먼 바다 쪽에서는 마라도가 한 발짝 더 다가오라며 유혹한다.

▼ 남쪽 바닷가로 향한다. 겨울에 저장해놓았던 얼음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는 춘분(春分)도 이미 지났다. 이를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은 포근하기만 하다. 그게 좋아 사람들을 피해 코로나19의 주홍글씨처럼 따라 붙는 마스크를 내리자 막힌 가슴이 뻥 뚫린다. 이런 게 가파도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2대나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 가파도에서도 ‘청정에너지 자립’을 꿈꾸고 있나보다. 아까 배에서 내리는 우리를 맞아주던 빗돌의 ‘친환경 명품 섬’은 그 홍보문구이고 말이다. 바람을 브랜드 상품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라고나 할까?

▼ 마라도 방향의 바닷가로 내려서니 일주도로가 나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무장애 길이다. 그러니 나처럼 쉬엄쉬엄 걸을 수도 있고, 포구 앞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아도 좋다. 어느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풍경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 먼 바다 이어선지 파도가 제법 높다. 이처럼 바람이 잔잔한데도 저렇다면 바람이라도 거셀라치면 어떨까 싶다. 하긴 오죽했으면 ‘헨드릭 하멜’이 타고 온 네덜란드 선박 스펠웰호가 이곳에서 난파당했겠는가.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되었지만 말이다.

▼ 바다 건너에는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가 있다. 먼 바다에서 몰아쳐온 거친 파도와 강한 해풍이 깎아 만든 기암절벽이 절경을 자랑하는데, 여기에 난대성 해양 동식물까지 더해지면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 잠시 후 ‘고냉이돌’이란 커다란 바위를 만났다. ‘고냉이’는 고양이의 제주도 방언. 폭풍에 생선이 떠밀려오기를 기다리던 고양이가 굶주림에 지쳐 바위가 되었다는 설화를 지녔다. 하지만 요리조리 살펴봐도 고양이가 그려지지 않으니 문제다. 무학대사는 부처와 돼지의 눈을 빌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긴지 스무 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내 수양은 멀었나보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하동마을이 나온다. 가파도에 들어선 두 개의 마을 가운데 하나로 아래쪽에 위치한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참고로 원래 무인도였던 가파도는 1842년 이후부터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200명 남짓의 섬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연안에서 해녀들이 김, 굴, 해삼, 전복, 소라 등을 채취한다.

▼ 입구의 안내판은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두 곳을 소개하고 있다. ‘상동 할망당’에서 갈라져나온 ‘하동 할망당’은 하동 주민(특히 해녀)들을 보호해주는 신당이고, 까마귀를 쏙 빼다 닮았다는 ‘까마귀돌(동산)’도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바위라고 한다. 이밖에도 가파도에는 제단(짓단), 어멍아방돌, 보름바위(큰왕돌), 고인돌 등의 바위들이 볼거리로 제공된다.

▼ 하동포구의 방파제는 튼튼하게도 만들어놓았다. 먼 바다에서 몰아쳐오는 높은 파도를 막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참고로 가파도 근해는 ‘벵에돔 자판기’라고 불릴 정도로 입질이 좋은 핫플레이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선지 ‘물반, 고기반’의 어장을 찾아온 낚시꾼들을 기다리는 낚싯배 십여 척이 포구 안에서 한낮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물양장에 앉아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물질해서 따온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파도 해역은 물살 흐름이 빨라 물질하기에 썩 편치는 않다. 하지만 전복, 소라 등 패류는 물론이고 고등어, 방어, 자리돔 등이 씨알이 굵어서 제주에서도 고품질 상품으로 각광받는다.

▼ 가파도의 중심은 하동마을인가 보다. 마을회관은 물론이고 치안센터와 보건진료소도 이곳에 들어서 있다.

▼ 포구에는 ‘가파도 개경(開耕) 1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빗돌을 세운 시기가 올해(壬寅年)란다. 아니 아직 돌아오지도 않은 12월(음력)에 세웠다고 적고 있으니, 한 갑자(甲子) 전 그러니까 180년 전에 마을이 세웠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무인도였던 이 섬은 소와 말을 방목하는 국유 목장지가 되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840년(헌종 6년) 영국 선박이 침입해 소를 잡아가는 사건이 발생(이로 인해 목장이 폐쇄됐다)했고, 1842년 폐목장지에 개경 허가를 해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게 벌써 180년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 하동마을에도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하긴 먹을거리(제주도 최고의 낚시터에 농사지을 땅까지 더했다)로 넘친다는 가파도,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에 어찌 음식점 한둘 없겠는가. 마라도가 해물자장면 하나로 맛 지도를 완성하고, 비양도는 보말죽이 대세를 이루지만, 물산이 풍부한 이곳 가파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맛난 음식이 많다고 한다.

▼ 짬뽕과 짜장이 전문인 저 식당은 원조라 우기는 걸로 보아 이곳 가파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모양이다. 맛은 SBS의 ‘불타는 청춘’과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증명해 준단다. 그밖에도 뿔소라구이와 문어숙회, 소라·홍해삼회들 서브메뉴로 내걸고 있으니 뱃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 하동마을의 담장도 역시 아름답게 치장됐다. 느림의 미학을 한껏 즐기며 읽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구간이다. ‘하멜’에 대한 이야기도 보인다. 가파도를 ‘게파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소개한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 하멜이 암초에 걸려 배가 파선되자 이곳 가파도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등대를 세웠다는데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일부 담벼락은 ‘가파도 새싹보리’의 광고판으로 변했다. ‘새싹보리’란 보리의 새순을 말한다. 씨앗이 2일의 발아과정과 10일의 성장과정을 거치면 잎이 10cm쯤 자라는데, 이때 잎을 수확하여 먹는다.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에 효과적이며 고혈압이나 빈혈, 당뇨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바닷가에서 오르다 보면 ‘불턱’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일종의 탈의실인데 해녀들이 물질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공간이다. ‘불’은 글자 그대로 불씨를 뜻하며 ‘덕’은 ‘불자리’를 뜻한다니 ‘화톳불’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 근처에는 ‘돈물깍’도 있었다. 바닷가의 샘 끄트머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돈물’은 담수를 일컫는 제주지역의 사투리. 바닷물 즉 짠물과 대비되는 말인데, 바닷가 마을에는 소금기 없는 담수가 드물지만 바닷가에 용출하는 샘이 몇 개는 있게 마련이어서 제주지역 바닷가 어디서나 사용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 마을을 빠져나와 ‘소망전망대’로 향했다. 마을 주민이 상동포구로 나가는 지름길이라고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뱃시간에 맞추느라 미리 포구로 나간 집사람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찌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구간은 느린 걸음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이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길을 자꾸만 붙잡았기 때문이다.

▼ 상동포구로 되돌아 나오는 길. 본섬인 제주도가 환상적인 풍광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 보는 가파도가 아닌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모습은 낯설다. 거기다 가장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가장 높은 한라산은 차라리 경이롭다. 그 앞의 산방산과 송악산도 덩달아 높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 ‘당신이 필요해요. 눈으로만 봐주는 당신’이라는 팻말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제발 밭으로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애절한 부탁인데, 아까 사진을 찍으면서 유채꽃밭 속으로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길이 나있기에 무심코 들어갔었는데, 이제 보니 외지인들의 무단침입으로 인해 생긴 상처였던 모양이다.

▼ 다른 곳보다 지대가 높은 덕분에 청보리밭과 유채꽃밭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그나저나 마파도의 자랑거리는 이제 유채꽃이라 할 수 있겠다. 청보리밭보다도 유채꽃밭의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어 보이니 말이다.

▼ ‘제주 올레길’의 길라잡이도 눈에 띈다. 파란색은 정방향 표시로 제주의 쪽빛 바다를 상징하며, 주황색은 역방향(거꾸로 걸을 때) 표시로 제주의 특산물인 밀감을 나타낸다. 그러니 나는 지금 올레길을 거꾸로 걷고 있는 셈이다.

▼ 앗! ‘친환경 명품 섬’이라던 빗돌에 어울리지 않게 내연발전소라니... 이유는 간단했다. 가파도의 이국적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객의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났고, 이로 인해 음식점이나 민박집 같은 편의시설들이 더불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전력수요의 폭증을 불러왔고, 그 부족분을 디젤발전기를 돌려 메꾸고 있다는 것이다.

▼ 아까 상동우물을 거론하면서 가파도는 물 걱정이 없는 섬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 또한 불가능해졌던 모양이다. 아래 사진처럼 바닷물을 민물(淡水)로 바꾸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들어서있는 걸 보면 말이다.

▼ 소망전망대 앞에서 상동마을로 내려간다. 아까 지나왔던 길이기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니 배의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변 풍광에 신경쓸 겨를도 없다. 제주 본섬이나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삼을 경우 인생샷 하나쯤 너끈히 건져 올릴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참고로 가파도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포토존이다. 벽화마을 벽에 기대어 한 컷, 제주본섬을 뒤로 하고 한 컷, 소망전망대에 올라 한 컷. 스마트폰과 여행객만 있으면 그 어디나 인생샷 스팟이 된다.

▼ 다시 돌아온 상동마을의 포구. 아까는 못 보았던 ‘상동 할망당(제주도에서는 여신을 ‘할망’이라 부른다)’이 눈에 띈다. 가파리 주민들을 수호해 주는 해신당(海神堂)으로, 1년에 한 번씩 집안과 객지로 나간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해오고 있단다. 참고로 가파도에는 동쪽 해안에 마을 제단이 있고, 북쪽과 남쪽 해안에 상동할망당인 ‘대부리당’과 하동할망당인 ‘뒷서낭당’이 있다. 마을 제단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남자 주민대표들이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반면 ‘당’은 여자들이 주도하여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