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태도(禾太島) 갯가길

 

여행일 : ‘21. 11. 21(일)

소재지 :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리

산행코스 : 뻘금 버스정류장→치끝→마족항→월전항→독정항→묘두→묘두항→꽃머리산→뻘금 버스정류장→화태교차로(소요시간 : 약 12.17km/ 3시간 4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여수 돌산도에서 남서쪽으로 2㎞ 지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작은 섬으로 월호도·두리도·송도·자봉도 등이 섬을 둘러싸고 있다. 옛 이름은 ‘휫대(나팔)섬’.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돌산도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섬이 저절로 울어 왜적의 침공을 알려주었다는데서 유래됐다. 또 마을 뒷산이 군량미를 쌓아 놓은 노적가리를 닮아 ‘벼이삭 수(穗)’자를 써서 수태도(穗太島)라 부르기도 했다. 현재는 벼이삭과 같은 의미의 ‘벼 화(禾)’자를 써서 화태도가 되었다. 화태도는 2015년 연도교가 놓이면서 섬 아닌 섬이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해안선을 따라 ‘화태갯가길’이란 둘레길을 조성하고, 이를 ‘여수갯가길’의 다섯 번째 코스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해식애나 바위봉우리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은 실컷 눈에 담아갈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뻘금 버스정류장’(여수시 남면 화태리 371-1)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도롱 IC에서 내려와 1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면 여수시 외곽과 돌산도를 거쳐 화태대교에 이른다. 다리를 건너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버스정류장에서 ‘화태도갯가길’이 시작된다. 참고로 ‘갯가’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물가라는 뜻이다. 일부 구간이 바닷물이 물러날 때만 건널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 ‘화태도 갯가길’은 13.7km 길이의 둘레길을 1구간(치끝-월전, 3.2km)과 2구간(월전-독정항 1.7km), 3구간(독정항-묘두, 3.8km), 4구간(묘두-뻘금, 2.8km), 5구간(뻘금-화태대교, 2.2km) 등 다섯 개 구간으로 나누어 놓았다. 하지만 트레커들은 화태대교를 건너는 5구간을 생략하는 게 보통이다.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가 하도 많다보니 이젠 식상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이곳 버스정류장은 분명 갯가길이 지나간다. 하지만 1구간의 출발점은 이곳이 아니다. 그래선지 출발점인 ‘치끝’으로 내려가는 들머리에 안내판을 세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곁에는 4구간과 5구간이 나뉘는 지점임을 알리는 이정표(화태대교 2.2㎞/ 묘두 2.8㎞)도 보인다.

▼ ‘치끝’으로 내려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화태도는 현재 진행형인 모양이다. 새로 생긴 간척지에 뭔가를 새로 조성하고 있는 듯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현장 뒤쪽 언덕에 화려한 자태로 올라앉은 건물은 ‘화태초등학교’이다.

▼ ‘치끝항’에는 나룻배 수준의 어선 몇 척이 전부다. 하지만 바깥에 구축된 개머리방파제에는 나름대로 격식을 갖춘 배들이 주인노릇을 한다. 아무리 작아도 명색이 항구이다 보니 내·외항을 따로 두었다고나 할까? 참고로 방파제 뒤로 보이는 다리는 ‘화태대교’이다.

▼ 포구를 감싸고 있는 방파제의 초입(간이화장실 옆)에서 마족항으로 연결되는 탐방로가 열린다. 바닷가를 따라 곧장 마족항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단 바닷물이 빠져나갔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들머리의 안내판은 ‘화태갯가길’을 소개하고 있었다. 비렁길과 소나무 숲길을 걷는가 하면, 호젓한 어촌 마을을 통과하는 걷기 길이란다. 특히 꽃머리산에 오르면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단다. 참고로 화태갯가길은 화태대교 개통(2015년)을 계기로 ‘여수 갯가길’의 다섯 번째 코스에 포함시켜 개장(2017년)한 도보여행 길이다. 사단법인 ‘여수갯가’가 주도해 여수반도와 주변 섬의 해안선을 둘레길로 연결시켰는데, 2013년 1코스(우두리항-무술목)가 개통된 이래 4코스(임포~신기)까지 돌산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5코스는 처음으로 돌산도 외의 섬에 만들어진 길이다.

▼ 탐방로는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나있다. 하지만 정비가 잘 되어 있으니 그저 울울창창한 상록수림이나 감상하며 걸으면 되겠다. 이곳 화태도는 따뜻한 남쪽나라. 남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상록수가 탐방로 주변에 가득하니 말이다.

▼ 산길로 들어선지 15분. 모퉁이를 돌아 ’마족항‘으로 내려선다. 꼬맹이 어선 몇 척이 전부인 자그만 포구다. 몇 되지 않은 주택들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한적하기 짝이 없다. 참고로 마족(馬足)이란 지명은 말을 운반하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조선 중기 이곳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마목장으로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 대신 방파제는 외지에서 온 낚시꾼들로 붐비고 있었다. 맞다. 여수바다는 생활낚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이곳 화태도가 첫손에 꼽힌단다. 2015년 화태대교가 놓이면서 접근성이 좋아진데다 겨울 시즌에도 입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낚시꾼이 몰리다보니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CCTV까지 설치해 놓았으니 양심을 버리지 말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갯가길 주변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가장 큰 문제는 인분. 공중화장실이 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잘 먹었다는 표시를 꼭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가에다 퍼질러 놓아야 되겠는가. 구덩이를 파서 일을 보고, 흙으로 덮어두는 에티켓(etiquette)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포구의 끄트머리쯤에서 다시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그런데 아까에 비해 길이 많이 넓어졌다. 거기다 왼편으로는 시야까지 열린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모섬이랄 수 있는 돌산도가 코앞이다. 금호도로 들어가는 배가 출발하는 ‘신기항’도 큼지막하게 다가온다. 그 왼편에서는 ‘화태대교’가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

▼ 탐방로는 심심찮게 길이 나뉜다. 하지만 이정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서 GPX 파일을 받아놓지 않았을 경우 헷갈리기 딱 좋다. 그렇다고 무작정 헤맬 수는 없는 노릇. 이럴 때는 일단 바닷가 방향으로 진행하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그 아픔의 현장을 화태도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군인들이 바다를 향해 눈을 부릅떴을 초소는 현재 텅 비어있다. 아니 빈 시멘트구조물로 남아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문화공간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추세에 발맞추어 이곳도 탈바꿈해보면 어떨까?

▼ 군인들이 쓰던 화장실만은 재활용에 성공했다. 갯가길 나그네들을 위한 간이화장실로 탈바꿈한 것이다. 커튼으로 문짝을 대신하고 있지만 이 얼마나 훌륭한 변신인가.

▼ 안내판은 ‘비렁길’을 갯가길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었다. 그래선지 탐방로는 산비탈을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제법 큰 섬인 대횡간도(우리말로 ’빗깐이‘인데, 벌거벗은 모습의 경사진 섬이라는 뜻이란다)’가 살짝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 입질이 좋다는데 갯바위라고 해서 비워둘 리가 있겠는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라도 날라치면 어김없이 강태공들 차지다. 특히 주말에는 날이 새기도 전에 저런 자리는 동이 나버린단다. 양식장에서 탈출한 우럭과 참돔이 자연산 감성돔과 함께 심심찮게 입질을 해오기 때문이란다.

▼ 낚시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장고처럼 생긴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소횡간도’가 아닐까 싶다.

▼ 잠시 후 희미하게나마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기에 따라봤다. 아니 파도에 휩쓸리며 재잘거리는 몽돌해안이 그리워 내려섰다고 하는 게 옳겠다.

▼ 그리고 그곳에서 화태도 제일의 비경을 만났다. 이곳 화태도 해역은 바다 속의 호수로 대변된다. 화태도를 둘러싼 수많은 섬들이 먼 바다로부터 들이치는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해식애(海蝕崖)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그 귀한 해안절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행운이라 하겠다.

▼ 오른편. 그러니까 월전마을 방향도 역시 서슬 시퍼런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 탐방로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송악으로 한껏 치장을 한 소나무 몇 그루가 길손을 반긴다. 송악은 눈보라 치는 매서운 추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늘푸른 덩굴나무다. 그러니 남녘땅 여수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마족항을 출발한지 35분, 산자락을 빠져나오니 ‘월전항’이다. 월전(月田)은 달밭이란 뜻이다. 그래서 월전의 옛 이름은 ‘달밭기미’다. 기미는 작은 만을 뜻한다. 참고로 화태도에는 이곳 월전 말고도 묘두와 대동, 독정이, 마족, 건너몰, 치끝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 ‘나발도(섬의 생김새가 나팔을 닮았단다)’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는 월전항의 ‘문여 방파제’도 역시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하긴 화태도에서 가장 조건이 좋고 조황까지 안정적인 곳이라는데 이를 말이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몰고 온 차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숫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연도교가 몰고 온 변화겠지만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동영상까지 촬영해가며 낚시를 하는 강태공도 보였다. 큼지막한 참돔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올리는 장면을 포착하려는 유튜버(youtuber)일지도 모르겠다. 이곳 화태도 인근이 감성돔은 물론 참돔, 볼락, 쥐노래미, 우럭, 학공치, 망상어, 도다리, 주꾸미, 문어, 갑오징어 등 다양한 어종이 회유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 포구에는 주막도 들어서 있었다. 식사(해물탕) 말고도 안주인 회무침과 해물전을 메뉴로 내걸었는데, 가격도 꽤 저렴한 편이었다.

▼ 화태도의 편의시설은 대개 월전마을에 들어서 있다. 파출소와 우체국도 이 마을에 있다. 정자 앞에 터를 잡은 남면사무소의 중계민원처리소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 마당에다 차사장 일행이 술상을 차린다. 갑장을 핑계 삼은 나 역시 그들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동향인 또 다른 갑장이 챙겨온 전라도 김치와 수육을 안주삼아 오랜만에 얼큰하게 취해 볼 수 있었다.

▼ 월전선착장은 화태도에 있는 네 개의 선착장 가운데 가장 크다. 그래선지 이곳에는 대합실까지 들어서 있었다. 그것도 문이 열린 채로 말이다. 맞다. 독정이와 함께 돌산을 오가는 여객선이 아직도 기항한단다. 다리가 놓인 후로는 여객선이 다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다.

▼ 포구를 빙 돌아 선착장을 지나면 도로 끝에서 다시 산길로 오른다. 그리고 화태도의 남쪽 끄트머리를 에도는 비렁길을 걷는다. 이때 바다에 떠있는 가두리양식장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여수 전체 양식 어류의 40% 가량이 화태도에서 생산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 ‘기둥도 아닌 것이. 뿌리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소나무의 밑동이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 잠시 후, 철제계단이 놓여있기에 바닷가로 내려서고 본다. 아까처럼 별천지가 나타날지 또 누가 알겠는가.

▼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의 경관은 아니었다. 그저 비스듬히 누운 바위벼랑이 양 옆으로 길게 펼쳐질 따름이다.

▼ 그 부족함은 ‘대두라도(콩을 닮았단다)’가 메꿔주고 있었다. 선창마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 탐방로는 바닷가로 내려서기도 한다. ‘갯가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다. 이후부터는 왼쪽 옆구리에 ‘월호도’를 끼고 걷게 된다. ‘달빛 호수의 섬’이라니 어쩌면 저리도 고운 이름이 생겨났을까?

▼ 독정마을에 가까워질 무렵 지극히 시골스런 풍광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네만 둥그러니 매달려 있으니 스냅사진으로서는 가치가 없었다. 그러다 인물이 들어간 총무님의 사진을 발견하고 얻어다 올려본다.

▼ 월전항에서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25분. 부드러운 해안길을 지나 ‘독정항’에 닿는다. 화태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저 마을의 방파제 역시 낚시의 명소로 꼽힌다. 참돔과 감성돔이 잘 잡히며 우럭이나 볼락도 보너스로 낚인단다.

▼ 월호도를 마주보고 있는 ‘독정항’은 미로처럼 얽힌 특이한 방파제를 갖고 있었다. 맨 안쪽에는 나룻배 수준의 작은 배, 밖으로 나갈수록 배는 덩치를 부풀려간다. 파도로부터 배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이는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월호도와 개도, 아도, 자봉도 등에 둘러싸인 독정마을의 앞바다는 그렇지 않아도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 가장 큰 마을답게 꽃밭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 포구를 지나 도로 끝에서 다시 산길로 오른다. 이어서 새하얀 억새꽃이 가을의 풍치를 물신 풍기는 산길을 걷는다.

▼ 바다는 한없이 고요하다. 크고 작은 섬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바다에는 꽤 많은 가두리양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화태도에서는 감성돔과 참돔, 농어, 우럭 등 여러 종류의 수산물을 양식한단다. 아니 곁에 다시마양식장으로 여겨지는 부표가 떠있는 걸로 보아 전복을 기르는지도 모르겠다.

▼ 35분 남짓 진행했을까 안내판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물이 빠졌을 때는 왼쪽, 물이 들었을 때는 오른편으로 가란다. 바다가 왼쪽에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 마침 물이 빠져나갔기에 서슴없이 내려서고 본다. 파도소리를 친구삼아 걸을 수 있는데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이어서 그다지 길지는 않지만 자갈밭 해안을 따라 묘두(섬의 서쪽 끄트머리)로 향한다.

▼ 부지런한 아낙네는 쉴 틈도 없나보다. 12km가 넘는 갯가길을 걷는 것만도 부담스러우련만 갯바위를 오가는 발길이 바쁘다. 하긴 물 빠진 갯바위마다 바다고동이 한 가득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부서진 무동력선도 보인다. 한때 양식업자들이 머물던 공간이었으련만 지금은 망가진 채로 바닷가에 버려져 있다. 태풍 ‘타파’가 이 해역을 강타했던 게 2년 전이었던가?

▼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암초에는 등대가 올라앉았다. 저 등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돌아올 누군가는 알까? 동구 밖 당산나무처럼 긴 세월을 뿌리박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마음을...

▼ 바닷가에서 올라서면 ‘묘두(猫頭)’. 서쪽 끄트머리인데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섬의 지형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게 개의 머리로 보인 사람들도 있었나 보다. 옛날에는 ‘개머리’라고도 했다는데,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쪽에 의견이 기울어지면서 묘두로 굳어졌다고 한다.

▼ 산길은 포구의 방파제 뒤에서 열린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까치밥처럼 남겨진 저 열매는 엄연한 ‘유자’란다. 하지만 작아도 너무 작다. 대신 상큼한 맛과 향은 과수원에서 자라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단다. 내일이 소설(小雪)이니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셈이다. 갑자기 유자차가 마시고 싶어지는 이유다.

▼ 표지를 따라 산으로 접어들면 별안간 대숲이 나타난다. 서걱서걱 댓잎을 밟고 가는 길이 운치가 있다. 대숲을 벗어나면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난 해송의 푸른빛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 잠시 후 올라선 유체꽃밭은 유채꽃 대신 말라비틀어진 잡초로 덮여있었다. 이곳은 화태도 주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칡넝쿨 투성이던 땅에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유채씨앗을 심었고, 고라니가 뜯어먹지 못하도록 그 위에다 모기장까지 덮어가며 가꾸었다고 한다. 이게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여수갯가길의 명소가 되었다.

▼ 화태도의 갯가길은 예전에 군인들이 경계 근무하느라 다니던 길을 되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네 자식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딛는 걸음마다 그네들의 고생을 떠올리며 걸어보자.

▼ ‘이 뭐꼬?’ 선방 수좌들에게 가장 근원이 되는 화두(話頭)다. 하지만 참선과 먼 나에게는 저 정도의 돌담도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무릎 높이도 안 되던 돌담이 어느새 어른의 키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다른 섬에서는 염소의 방목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높아도 너무 높다. 그래선지 경작용이란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20년 전만해도 저 안에서 고구마, 보리, 콩 등의 농작물을 길렀단다.

▼ 화태도의 서쪽 끝 모퉁이를 돌아서자 화태대교가 얼굴을 내민다. 총길이 1,345m에 주탑의 사이가 500m인 다리로, 사장교(斜張橋)로는 인천대교(800m)와 부산항대교(540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길단다.

▼ 버려진지 오래인 듯한 선착장은 배 대신 낚시꾼이 차지하고 있었다. 심심찮게 입질이 온다는 문어라도 잡고 있을지 모르겠다. 화태도의 문어 잡이는 조금 특이하단다. 다른 지역에서는 통발이나 문어 단지를 이용해 잡는 게 보통인데, 이곳에서는 ‘문어 건지’라는 외줄낚시로 잡는다는 것이다. 갈코리 모양의 낚시인데 이 갈코리에 고등어 토막 등을 끼워 문어를 낚는단다.

▼ 묘두항에 가까워질 무렵 안내판 하나를 만났다. 이 부근이 상괭이 출몰지역이란다. 친절하게도 ‘웃는 미소천사, 토종고래’라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맞다.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는 둥글둥글한 머리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 ‘미소 천사’란 별명으로 불린다. 무차별적인 혼획과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오염 등으로 해마다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지난 2012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그런 귀하신 몸이 이 근처에서 서식한다는 것이다.

▼ ‘묘두’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묘두항’은 좀 어수선한 풍경이다. 항구 안이 배 대신 양식시설로 가득한 것이다. 2년 전, 태풍 ‘타파’는 이곳 화태도의 어장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었다. 이에 놀란 가두리 양식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해역을 찾아 저렇게 몰려들었나 보다.

▼ 포구 위 양지바른 언덕에 들어앉은 묘두마을은 부티가 쭉쭉 흐르고 있었다. 수년 전, 남해안의 섬에 들렀다가 현지인들과 술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양식업이 발달하면서 도회지 월급쟁이들이 부럽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맞다. 앞바다에 저리도 많은 양식장이 들어서있으니 어찌 풍요롭지 않겠는가.

▼ 묘두마을부터는 이차선의 포장도로를 따른다. 그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었을까 고갯마루에서 꽃머리산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능선삼거리 0.6㎞, 꽃머리산 0.9㎞)를 만났다.

▼ ‘뻘금능선‘을 따르는 등산로는 고운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이라서 폭신폭신한데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 그렇게 10분쯤 진행하자 ‘뻘금능선 삼거리(이정표 : 꽃머리산↑ 0.3㎞/ 뻘금→ 0.4㎞/ 묘두입구↓ 0.6㎞)’이다. 날머리인 화태대교는 이곳에서 오른편이다. 하지만 꽃머리산은 능선을 따라 직진해야 한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이번에는 나무계단이다. 그런데 이게 만만찮게 길다. 중간에 쉼터까지 만들어두었을 정도. ‘꽃머리산’의 높이가 133m라는 게 맞긴 맞는 겨?

▼ 명색이 화태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어찌 돌탑 하나 없겠는가. 그것도 화태도갯가길이 들러 가는 산일지니 오죽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겠는가. 한 사람이 하나씩만 소원을 빌었었어도 돌멩이는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이다.

▼ 산길로 들어선지 20분.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꽃머리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절반을 밧줄난간으로 경계를 삼고 있다. 바위절벽이니 더 이상 나아가지 말라는 경계용일 것이다. 벤치를 놓아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에 있다던 정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태풍 ‘타파’가 무너뜨려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정상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이정표(능선삼거리 0.3㎞, 묘두입구 0.9㎞)에 문패용 문구(꽃머리산 정상)를 적어 넣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준다. 참고로 이곳 화태도에는 이곳 꽃머리산 외에도 운마산과 요악산, 삼각산 등 자잘한 산 3개가 더 있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동·남쪽으로만 열린다. 발아래는 ‘찌끝’. 포구 뒤로 두 번째 산이 ‘운마산’이다. 가장 뒤에서 흡사 평풍이라도 되는 양 화태도를 감싸고 있는 산은 금오도의 ‘대부산’일 것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뻘금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때 화태도의 전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을 수 있다.

▼ 트레킹 날머리는 ‘뻘금 버스정류장’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길을 7분쯤 내려섰을까 아까 트레킹을 시작했던 ‘뻘금 버스정류장’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핸드폰 앱이 12.17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니 대부분이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제법 빨리 걸은 셈이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그만큼 적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화태교차로’에는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코끼리 형태의 섬 화태도’를 표현하고 있다는데, 아쉽게 철이 지난 지금은 말라비틀어진 줄기만 가득했다. 아니다. 오색의 바람개비가 꽃들을 대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