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산(高茸山, 295.8m)

 

산행일 : ‘21. 6. 26(토)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산행코스 : 용수사 입구→용수사→쇠재 갈림길→암릉→정상→고용사→고용사 입구(소요시간 : 2.87km/ 1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아산시 북부에서 영인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평야 지대에 높이 솟아 있다고 해서 ‘솟을 용(聳)’자를 써 고용산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산은 전체적으로 흙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위로 오를수록 바위가 많아지다가 정상 어림에서는 완연한 돌산(嶽山)으로 변해버린다. 덕분에 눈요깃거리가 풍부해졌다.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바윗돌들은 물론이고,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큰 자랑거리다. 주변의 아산호는 물론 인근 충청남도 천안, 경기도 평택 시가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작지만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으로 꼽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용수사’ 앞 버스정류장(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산 3-7)

평택·파주고속도로(평택-화성) 오성 IC에서 내려와 국도 43호선을 이용해 아산방면으로 내려오다 신남교차로(아산시 둔포면 신남리)에서 당진방면의 국도(34호선)로 바꿔 탄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철봉교차로(아산시 영인면 신봉리)에서 빠져나온 다음 군도인 ‘토정로’. 이어서 ‘미니스톱 아산영인점(영인면 신화리)’ 앞에서 좌회전하여 ‘고룡산로’를 타고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용수사’ 앞의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 높은 산이 아니어서 접근로가 다양하고 대부분의 코스가 왕복 2km 남짓하다. 대개는 고용사, 용수사, 용화사, 백련사, 쇠재마을, 작은철봉마을(아산정 활터 앞) 입구를 들머리로 이용한다.

▼ 동쪽, 그러니까 용수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민가 두어 채가 들어서있을 뿐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평범한 농로이다. 뒤돌아볼 때마다 얼굴을 내미는 ‘성내저수지’가 볼거리라면 볼거리랄까.

▼ 4분쯤 걸었을까 항아리의 주둥이처럼 움푹 파인 산골짜기에 들어앉은 ‘용수사’가 얼굴을 내민다. 이 절은 ‘솟을 용(聳)’자에 ‘물 수(水)’자를 써서 ‘聳水寺’다. ‘용’자가 들어가는 대부분의 사찰들이 ‘용 용(龍)’자를 쓰는 것에 비해 특이하다 하겠다. 하지만 인기척을 느낄 수 없어 사연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 흔한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으니 누가 언제 어떤 사연을 갖고 지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 전각이라곤 달랑 대웅전 하나뿐이다. 게다가 기와까지 시멘트 제품을 올린 탓에 공들여 치장한 단청까지 색을 잃어버렸다. 부속건물인 요사채는 그보다 더 현대식 건물이었다.

▼ 사찰 입구에 샘이 예쁘장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자연석을 세우고 누여가며 조형미를 살렸는데, 물은 용(龍)의 입에서 흘러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물이 솟아오른다는 절의 이름이 무색하게 샘은 완전히 말라버렸다.

▼ 용수사의 왼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980m. 산길은 울창한 참나무 숲을 헤집으며 나있다. 참나무 사이사이에서 물오리나무와 쥐똥나무 개암나무, 생강나무 진달래 등이 들어앉아 빽빽한 숲을 이룬다.

▼ 산길은 일단 곱다. 보드라운 흙길이 널찍한데다 경사까지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길이 양쪽(이정표 : 정상↗ 840m/ 정상↖ 850m/ 용수사↓ 140m)으로 나뉜다. 양 방향 모두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지만 우린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 탐방로는 이따가 고용사로 내려올 때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조금씩 가팔라져 간다.

▼ 고용산은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바위산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초반에 조그만 바위까지도 만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래 사진처럼 기묘하게 생긴 바위가 눈에 띄기도 한다.

▼ 오르막길의 경사가 조금씩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드디어는 허리를 곧추세워버렸다. 짧지만 통나무계단까지 설치했다는 것은 그냥은 길을 내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파르다는 증거일 것이다.

▼ 계단은 그 끄트머리에서 능선으로 연결된다. 그리고는 비록 잠시지만 완만하게 이어진다. 울창한 참나무 숲이 그늘까지 만들어주니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라 하겠다.

▼ 잠시 후 능선이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이에 발이라도 맞출세라 마주치는 기암괴석의 숫자 또한 점점 불어난다. 잠깐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한 볼거리들이다.

▼ 요런 바윗길도 가끔 얼굴을 내민다. 오르기가 조금 사나울 뿐 위험하지는 않다.

▼ 반면에 시야가 툭 터지니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을 즐겨볼 일이다. 발아래에서는 성내저수지의 상류가 살짝 얼굴을 내밀고, 그 너머에서는 금산이 고개를 치켜든다. 그런 풍경을 보노라면 마음의 편안함이 덤으로 얻어진다.

▼ 바윗길의 빈도가 점점 높아간다. 하지만 밧줄 같은 안전시설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조금 험할 뿐 안전까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 바위가 잦다보니 시야 또한 자주 열린다. 이게 바로 고용산 산행의 재미이다. 푸름이 뒤섞인 암릉이 백치미를 자랑하고, 암릉이 이어지는 곳곳은 모두가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하지만 열리는 방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펼쳐지는 풍광 또한 조금 전과 대동소이하다. 그 넓이가 조금 넓어졌을 따름이다. 금산의 왼편으로 국사봉이 하나 더 늘어난 정도랄까?

▼ 정상 방향의 능선을 당겨봤다. 푸름으로 도배된 숲 곳곳에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모양새인데 그 바위구간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다.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야하는 구간이 꽤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잠시 후 얼굴을 내미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0.34㎞/ 성내1리(쇠재)→ 0.59㎞/ 용수사↓ 0.64㎞). 오른편은 성내1리(쇠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 삼거리를 지난 산길은 점차 급경사로 변해간다. 거기다 온전한 바윗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 구간마다 밧줄을 매어놓았으니 이에 의지해 오르면 된다. 다만 평소에 운동을 별로 하지 않는 여성들이라면 며칠 동안 팔이 아플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 처마처럼 생긴 바위가 이채로워 카메라에 담아봤다. 둥글납작한 바위들을 포개놓은 모양새인데 구들장으로 사용해도 괜찮겠다. 그렇다고 이 바위를 무턱대고 오르는 것은 금물. 비가 온 뒤끝이어선지 엄청나게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 이후부터는 비탈진 바윗길의 연속이다. 물론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큰 위험은 없다. 그저 짜릿한 손맛이나 즐기고 볼 일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어김없이 성내저수지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왼쪽은 성내리 ‘쇠재마을’이다. 이렇듯 고용산은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해발이라고 해봐야 고작 256m에 불과하지만 평야지대에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육산과 암릉 산행을 겸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코스가 짧아 남녀노소가 산책삼아 오를 수도 있다. 이런 장점들을 지자체가 놓칠 리가 없다. 최근 아산시에서 치유의 숲과 야영장 등을 갖춘 산림관광지로 개발을 발표한바 있다.

▼ 밧줄 난간도 맬 수 없는 곳에서는 우회하며 오르기도 한다. 바위들을 요리조리 돌아서거나 빠져나가고 혹은 올라설 때마다 변화하는 풍광에 또다시 눈이 휘둥그레진다. 군데군데 널린 널따란 바위도 장점이다. 전망도 좋고 쉬어가기도 좋다.

▼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 기막힌 풍경을 만났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바위틈 사이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락없는 반송(盤松)이다. 줄기 밑동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와 우산과 같은 모양으로 자란다는 소나무 말이다. 수형(樹形)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게 반송인데, 이게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바윗길을 다시 한 번 치고 올라야 한다. 첨부된 지도는 이 부근을 진달래군락이라고 적고 있었다. 혹자는 또 고용산의 가장 뛰어난 자랑거리로 진달래로 뒤덮인 바윗길을 들었다. 그런데도 진달래가 눈에 띄지 않으니 문제다. 어린 참나무와 간간히 서있는 소나무가 전부인 것이다. 아무래도 진달래 군락은 이곳을 말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45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헬기장이 들어선 정상은 온통 돌멩이투성이다. 문득 어느 지인이 전해주던 이곳 고름산쇠성(고용산의 다른 이름)에 얽힌 옛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아산 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 1517-1578)’이 꾀를 부려 통인(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으로 하여금 자진해서 돌을 깨게 했다는 전설 말이다. 금을 찾지 못한 통인이야 헛고생만 잔뜩 했겠지만, 그가 깨놓은 돌멩이는 50여년 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이 적을 물리치는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건 그렇고 널따란 정상에는 먼저 온 이들이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가는 언어가 하나같이 영어이다. 인근 지역(평택)에 미군기지가 들어선 다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풍경이란다. 주말이면 산책삼아 고용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 헬기장을 겸할 정도로 널따란 정상에는 말뚝 모양의 정상표시석이 세워져 있었다. 표기된 높이는 고작 ‘295.8m’. 하지만 너른 들녘 가운데서 우뚝 솟아오른 탓에 눈대중으로는 엄청나게 높아 보인단다. 오죽했으면 지명에 ‘솟을 聳(용)’자를 넣었을까.

▼ 반대편에는 남한에 189개 밖에 없다는 ‘1등 삼각점(아산11)’이 설치되어 있었다. 헬기의 이착륙을 돕는 풍향계와 국기봉도 보인다. 하지만 풍향계는 바람자루가 없고, 국기봉 또한 태극기가 사라진지 오래다.

▼ 또 다른 정상표시석도 보인다. 이번엔 원형의 석판에 고용산(高聳山)이란 지명을 새겼다. 하지만 옛 이름은 ‘고룡산’, ‘고름산’, ‘고령산’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고용산’으로 바뀌었단다. 각종 고지도(古地圖)들도 하나같이 고용산으로 표기하는데, 다만 ‘용’자를 조선지형도(朝鮮地形圖)‘에서는 ‘솟을 聳(용)’자를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날쌜 용(勇)’자를 쓰고 있다. 이밖에도 ‘샘솟을 湧(용)’자나 ‘용 용(龍)’자를 쓰기도 한다.

▼ 이정표가 참 특이하게도 생겼다. 동판에 선(線)만으로 지도를 그린 다음, 그 끄트머리에다 지명을 적어 넣었다. 허나 거리 표시가 빠져있는 것은 천려일실이랄까?

▼ 낯선 풍경도 보인다. 정상에 무덤을 써놓은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가뭄이 든다고 믿어왔다. 대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해 큰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낯선 풍경이 아니겠는가. 가뭄이 극에 달할 경우 정상의 묘를 파헤치고 기우제를 지낸다고 했으니, 이 묘지는 행사용으로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화려하다. 일일이 나열하는 게 번거로워 다른 이의 글로 대신해본다. <북쪽으로는 가까이 아산만과 아산호, 평택시 안중 땅이 인접해있고 멀리는 평택시가지도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안성시가 보이고, 천안의 성거산, 태조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광덕산·봉수산·설화산·배방산·태학산 등 아산의 온 산이 거의 다 보인다. 서쪽으로는 도고산과 예산·당진까지 보이는 듯하다.>

▼ 산 아래 성내저수지의 푸른 물이 시원하고, 서남쪽 넓은 들 저편에선 영인산이 마주보고 있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조금 돌리자 이번에는 인주면 너머의 아산호가 아래 사진처럼 널따랗게 펼쳐진다.

▼ 자 이젠 하산이다. 동판 이정표가 가리키는 ‘고용사’ 방향이다. 이 구간 역시 시작부터 가파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이 흙길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경사진 곳에는 어김없이 통나무계단을 놓았다.

▼ 하지만 곳곳에서 바윗길을 만나기도 한다.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설 수밖에 없는 구간도 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나같이 짧고 경사 또한 버거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 하산을 시작한지 6분. 삼거리(이정표 : 고용사 820m↑/ 신봉1리(철봉)→ 1,140m/ 정상↓ 180m)를 만났다. 신봉1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인데 벤치와 평상을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길은 계속해서 가파르다. 밧줄난간을 설치했을 정도라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떴다. 능선의 오른편에다 목책을 둘러쳐놓은 것이다. ‘접근 금지. 추락위험’이라는 경고판까지 매달아놓았다.

▼ 목책을 넘어갈 수야 없는 노릇. 고개를 디밀어보니 거대한 바위절벽이 서슬이 시퍼렇게 서있다. 옛날 채석장이 있던 곳이란다. 과거 이곳에서 캐낸 돌들은 전국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질이 좋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6분쯤 더 내려가자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고용사↑ 540m/ 용수사← 510m/ 정상↓ 480m). 왼편은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용수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 하산 길에는 꽤 많은 무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 고용산이 풍수에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이곳 고용산은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등산객뿐만 아니라 산책삼아 오르는 사람들까지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돌탑하나 없겠는가. 그 하나하나의 소망들이 돌멩이가 되어 저리도 곱게 쌓였나보다.

▼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버스승강장 550m/ 정상 950m)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표는 왼편 고용사 방향을 텅 비워놓았다. 스님들의 정진수행을 해치지 말라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우리 부부는 왼편으로 향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이 그쪽으로 인도하고 있는데다 대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난 길이 무척 또렷했기 때문이다.

▼ 대숲을 빠져나오자 앞이 툭 트이는 대신 길이 희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걱정할 게 뭐겠는가. 오른편에서 ‘고용사’의 전각들이 얼굴을 내미니 말이다. 고용사(절에서 세운 팻말에는 ‘고룡사’로 적고 있었다)도 아까 들머리에서 만났던 ‘용수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누가 언제 무슨 연유로 지었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저 산신각과 범종각 등 서너 채의 전각과 지장보살상, 석탑이 더 들어서 있다는 게 다르다고나 할까?

▼ 대웅전의 규모는 용수사보다도 훨씬 작았다. 그마저도 명부전과 함께 쓴다. 하지만 사세는 제법 넉넉한 듯 싶다. 독경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지고 있는가 하면, 불공을 드리고 있는 신도들도 꽤 여럿 보이니 말이다.

▼ 절이라는 게 본디 풍수가 좋은 곳에 들어선다고 했다. 이곳 고용사 역시 툭 터진 조망을 자랑하는 게 영락없는 명당이다. 발아래로 연인면의 너른 들녘이 드넓게 펼쳐지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성민산업(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6) 앞 도로변

절을 빠져나와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큼지막한 공장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 고용산으로 들어올 때 이용했던 ‘고룡산로’의 도로변에 위치한 ㈜성민산업의 자동차부품 공장이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이다. 산행이 끝났다는 얘기이다. 고용산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신길샘)은 2.87km를 찍도 있다. 산행의 대부분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은 바윗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