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산(梨摘山, 181m)-이화산(梨花山, 171.7m)-구정봉(九政峰, 110.4m)

 

여행일 : ‘16. 11. 10()

소재지 : 충남 태안군 이원면과 원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청산리나루터가마봉(55.1m)이적산이교산(梨郊山, 150m)시우치봉(148.2m)이화산뾰루봉(127m)구정봉청산2리회관(산행시간 : 4시간30)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금북정맥(錦北正脈) 줄기의 구정봉(104m, 태안군 소원면)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가 후망지맥(候望支脈)’이다. 주요 봉우리들로는 철마산(208m)과 승주산(160m), 망월산(148.6m), 가제산(173m), 국사봉(205.8m), 노인봉(165m), 후방산(144.2m) 등이 있는데, 태안의 명품 바다인 가로림만(加露林灣)을 싸안고 있는 봉우리들로 보면 된다. 그 후망지맥의 안쪽에 100m 내외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산줄기가 있다. 이적산과 이화산, 구정봉 등 오늘 오른 산들인데, 어느 것 하나 200m를 넘기지 못하는 자그마한 산봉우리들에 불과하지만 가끔은 조망까지 트이는 등. 산의 구색은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여섯 개의 봉우리 모두 이름이 붙어 있는 이화산은 일품이다. ‘태안의 정원이라 불린다는 소문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금방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선지 이화산을 제외한 나머지 봉우리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아니 일 년에 한두 명이나 찾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속칭 봉우리 따먹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찾는다는 얘기이다. 나 역시 이화산을 제외한 나머지 봉우리들은 권하고 싶지 않다. 고생만 죽어라고 하게 될 뿐, 가슴 속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청산리나루터(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32번 국도를 타고 태안읍까지 온다. 이어서 만리포 방면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두야교차로(태안읍 장산리)에서 우회전하여 603번 지방도를 탄다. 잠시 후 무내교차로(태안읍 삭선리)에서는 좌회전하여 계속해서 603번 지방도를 탄다. 직진하면 634번 지방도이니 참조한다. 아무튼 이 길을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마산 버스정류장(원북면 마산리)’에서 우회전한 후 군도(郡道 : 나루터길)을 따라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청산리나루터에 이르게 된다. 군내버스의 종점이자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청산리나루터이다. 인천행 정기여객선(定期旅客船)이 기항(寄港)하던 나루터로 1930년 대 까지만 해도 손님을 태운 배가 매일 한 번씩 드나들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나루터이다. 도로사정이 원활하지 못했던 당시만 해도 128Km에 불과한 뱃길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그만 어선들 몇 척이 매어져 있을 뿐 한적하기 짝이 없다. 도로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여객과 화물의 물동량이 급격히 떨어지자 1978년에 여객선의 운항이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농어촌 정주어항(漁村停住漁港,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나 벽지에 있는 어업 근거지)’으로 운영되고 있단다.



버스가 들어왔던 반대방향의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길가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꽃향기길 이정표(새섬리조트 3.5Km/ 시우치저수지 3.4Km)'가리키고 있는 새섬리조트 방향이다. 잠시 후 오른편에 풍경이라는 잘 지어진 펜션이 보인다면 제대로 들머리를 잡았다고 보면 된다.



펜션 앞을 지나면서 길은 임도로 변한다. 그리고 10분쯤 지나면 올라서게 되는 고갯마루에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새섬리조트 2.8Km/ 청산리나루터 1.1Km)로 나뉜다. 가마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 임도를 따라야 한다. 기존의 임도보다 약간 좁아진데다 이정표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참 이곳에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새섬리조트 방향으로 진행할 경우, 능선을 타지 않고도 다음에 오르게 될 이적산의 들머리에 이를 수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마봉에서 이적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탄다. 우리도 그 능선을 탔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론하는 이유는 능선을 탈 경우 엄청난 고생을 치러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중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만이라도 임도를 이용해서 편하게 산행을 해보라는 의미에서다.



아래로 뚝 떨어졌던 임도가 다시 위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서면 송전탑(送電塔) 하나가 보인다. 이어서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또 다른 송전탑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가마봉 정상이다. 정상은 송전탑 말고는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이정표나 삼각점 등 이곳이 가마봉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만산 회원(萬山 會員)’이라는 조삼국(趙三國)선생님의 반쯤 잘려나간 리본(ribbon) 하나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들머리에서 이곳 가마봉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조금 전에 이곳으로 오면서 만났던 송전탑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편의 능선을 따른다. 이적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은 코스이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임도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이다. 이런 정보를 몰랐던 우린 무지막지한 고생을 해야만 했다.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쯤은 차라리 애교(愛嬌)로 쳐도 좋다. 쓰러진 나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어 유격훈련을 해야 만이 진행이 가능할 정도이다.



거기다 능선은 길기까지 하다. 저만큼 앞에 보이는 것이 이적산이겠거니 하고 기대해보지만 봉우리에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가 저만큼에서 나타난다.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는 산행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무튼 이 구간에서 에이 十八이라는 육두문자(肉頭文字) 한번 내뱉지 않고 산행을 했다면 성인군자(聖人君子)’라는 것을 내가 보증해 주겠다. 그만큼 길이 험하다는 얘기이다. 가시넝쿨인 명감나무가 유난히 많은데다 산초나무와 엄나무 등 가시나무들 천지다. 찔리거나 할퀴는 건 보통이고, 아랫도리에 신경 쓰느라 자칫 위라도 방심할라치면 싸대기를 얻어맞기 일쑤이다. 그러니 어찌 육두문자가 튀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30분 정도 고생을 치르고 나면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아까 풍경펜션 뒤의 고갯마루에서 헤어졌던 임도일 것이다. 임도를 따랐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절약되었을 것을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2분 후에는 삼거리(이정표 : 새섬리조트2.1Km/ 마을0.7Km)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왼편의 마을방향으로 진행한다.



삼거리에서 20m쯤 내려가다 오른편에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들어선다. 잠시 후 진행방향 저만큼에 묘역(墓域)이 보인다면 제대로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묘역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거칠어진다. 그러고 보면 조금 전의 임도는 묘역을 관리하려고 낸 사도(私道)였던 모양이다. 산길이 거칠지만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까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고생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산길이 조금 나아졌다싶으니 마음까지도 여유로워 지는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긴 것을 보면 말이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입구가 좁고 만의 내부가 넓은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가로림만(加露林灣)이다.



그렇게 30분 남짓 진행하면 드디어 이적산 정상이다. 이곳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가마봉과 매한가지이다. 그저 아까보다는 훨씬 많은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만산 회원(萬山 會員)’이신 심용보(沈爖輔)선생님과 문정남(文政男)선생님 외에 오늘은 5.000산을 올랐다는 신상호선생님 것도 보인다. 잠시 후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올라오시더니 정상표시코팅(coating)를 매달으신다. 오늘부로 이적산은 이름표를 하나 새로 달게 되는 셈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로 이적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에 올랐다는 확실한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교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삼각점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그렇다면 이적산의 정상은 이곳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관리번호(서산 310) 아래에 적혀있는 높이(海拔高度)178m이다. 지도(地圖)에 나와 있는 이적산의 높이보다 3m가 낮은 것이다. 문정남(文政男)선생님과 신상호선생님의 리본이 매달려 있지만 난 개의치 않기로 한다. 조금 전에 박건석선생님이 코팅지를 매달아 놓은 곳을 정상으로 여기기로 한다. 그래도 이름표가 매달려 있는 곳이 조금이라도 더 의젓하지 않겠는가.



삼각점 앞에는 송전탑이 세워져 있다. 철탑 사이로 시야가 열리면서 이교산과 이화산 등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봉우리들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잠시 후 산길은 오른편에 보이는 송전탑으로 향한다. 능선을 벗어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오회장님의 방향표시지는 능선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길이 좀 묘하다. 능선이 온통 산초나무 밭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교산으로 가려면 별 수 없다. 무조건 들어서고 본다. ‘! 따가워그 대가는 혹독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등의 여러 곳에다 생채기를 내고 난 뒤에야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오르면 이교산의 정상이다. 이적산에서 11분이 걸렸다. 아무튼 이곳 이적산도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그 어느 것 하나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시설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저 심용보선생님 등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까 오는 길에 문정남선생님과 함께 중간에서 내리시더니 우리보다 조금 먼저 이곳을 통과하신 모양이다.




이교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더욱 희미해진다. 길을 찾아가며 진행하기 보다는 그저 능선을 따른다는 편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14분 후에는 시우치봉(時雨峙峰)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도 역시 아무런 특징이 없는 밋밋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물론 정상임을 알려주는 그 어떤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먼저 지나가신 만산회원님들의 리본을 보고 이곳이 시우치봉의 정상임을 알게 될 뿐이다.



이교산을 지나면서 개척 산행이 시작된다.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면서 진행한다는 얘기이다. 너덜지대가 나오는가 하면, 명감나무의 가시넝쿨들이 발길을 휘감는 지역도 심심찮게 만난다. 한마디로 고생이 막심한 구간이다.



그렇게 20분 정도 고생을 치르고 나면 드디어 민가(民家)가 나온다. 그런데 민가의 앞에서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 앞에서 커다란 개가 사납게 짖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둘이나 된다.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다행이도 줄에 묶여있다. 줄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여 조심조심 지나가는데, 개새끼 눈에도 여리게 보였던지 짖어대는 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동네를 지나면 건너편에 이화산이 나타난다. 200m에도 못 미치는 높이인데도 제법 높다랗게 보인다. 바닷가에 위치한 탓인가 보다. 아무튼 400m급의 높이는 된다 치고 산을 올라야겠다. 이곳의 해발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을 감안해야 하니까 말이다.



마을에서 시우치저수지까지는 도로를 따른다. 아까 청산리나루터로 들어올 때 지나왔단 군도(郡道)인 나루터길이다. 시우치저수지는 원래 바다에 방조제(防潮堤)를 쌓아 만든 인공 저수지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벼농사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강태공들에게는 낚시터로 더 유명하단다. 저수지가 만들어내는 경치 또한 빼어나다. 건너편에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네잎 클로버 수양관(펜션)’이 저수지와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잘 그린 산수화이다. 아무튼 저수지를 만났다싶으면 도로를 벗어나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정표(갈두천·풍천5.1Km/ 청산리나루터3.2Km)가 가리키는 갈두천(풍천) 방향이다.



이어지는 길은 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반 바퀴를 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수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전신주에 갈두천이 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매달려있다. 이곳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물론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갈두천 방향이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으면 등산로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이화산의 들머리가 나온다. 도로에 내려선지 18분 만이다. 중간에 잘 지어진 네잎 클로버 수양관을 지났음은 물론이다.



이화산에서 처음으로 등산로다운 등산로를 만난다. 통나무로 만든 나선형(螺旋形)의 계단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막무가내로 오르기가 아까울 정도로 멋진 길이다.



그렇게 13분 정도를 오르면 6봉인 갓봉(171m)이다. 특이할 게 없는 정상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그 옆에 운동기구까지 설치해 놓았다. 오르는 구간이 짧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아니 그저 스트레칭(stretching) 정도라고 보는 게 더 옳겠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산행이 이어진다. 150m 내외의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이 계속되니 힘이 들 리가 없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콧노래라도 불러가며 걸어도 무방할 것이다.



잠시 아래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5봉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이화산(171,7m)의 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나무로 만든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참고로 옛날 이곳 이화산에는 돌배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그 배나무들이 봄철이면 하얀 꽃들을 피워내었던 모양이다. 그런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 배꽃뫼라 했는데, 한자 표기에 의해 이화산(梨花山)’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조선조 초기인 1416년 태종(이방원)이 후일 세종대왕이 되는 충령대군과 함께 태안의 이화산에서 수렵을 했다는 기록이 신동국여지승람조선왕조실록에 올랐을 정도이니, 이화산은 옛날부터 특별한 산이었던 셈이다.



다음 봉우리는 4봉인 탑봉(塔峰, 162m)이다. 이곳도 역시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만든 의자만 놓여 있을 뿐, 별다른 특징은 보여주지 못한다.



아니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정상 어림에서 비록 좁지만 시야(視野)가 열린다. 그리고 가로림만(加露林灣)이 눈앞에 펼쳐진다. 발아래에 있는 태안군은 물론이려니와 건너편 서산시의 해안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자못 빼어난 풍광이다.



탑봉에서 내려서는데 수많은 돌탑(石塔)들이 나타난다. 아까 첫 번째 봉우리인 갓봉에 오를 때도 돌탑들을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쌓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돌탑들은 누군가가 정성들여 쌓아올린 흔적이 역력하다. 거의 전문가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 4봉을 탑봉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5분 후에는 3봉인 바지그루산(145m)에 올라선다. 봉우리의 한가운데에 어른의 허리쯤에 이를 높이의 바위가 자리 잡고 있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은 다른 봉우리들과 마찬가지이다.



3봉에서는 제법 깊게 떨어진다. 경사 또한 제법 가파른 편이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에는 크지는 않지만 바위지대까지 나타난다.



12분 후 2봉인 중미산(中美山, 166m)에 올라선다. 반반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두 개의 벤치를 놓아두었다.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도 보인다.



그리고 6분 후에는 이화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상산(上山, 156m)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한가운데에는 정상석도 보인다. ‘원북면체육회에서 세운 것인데 왜 이곳에다 세웠는지 모르겠다. 오회장님의 지적하던 대로 높이까지도 182m라고 틀리게 적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가로림만(加露林灣)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호리병 모양으로 생겼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호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가로림만은 호리병같이 생긴 모양새 때문에 민()-() 간의 갈등이 많은 곳이다. 가로림만의 초입인 태안군 이원면 내리와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사이의 바다를 막아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갈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긴 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하는 주민들과 지역발전을 기대하는 주민들 간의 다툼이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그저 서로 -(win-win)’이 될 수 있는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지길 빌어볼 따름이다.



데크에는 양쪽으로 계단이 나있다. 내려가는 길이 두 개로 나뉜다는 얘기이다. 우린 올라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 하산을 시작한다. 통나무계단을 밟고 잠시 내려가면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숲 사이를 걷게 된다. 폭신폭신한 흙길에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런 길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진다. 특히 이렇게 경사가 완만한 솔숲 길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코끝을 스치는 소나무향 속에는 피톤치드까지 넘치도록 가득 차 있다. 도심(都心)의 오염에 찌들었던 이내 가슴은 어느새 밑바닥까지 깔끔하게 정화되어 있다.



폭신폭신하기 짝이 없는 오솔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어느새 임도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6봉에서 5분 정도의 거리이다. 이곳에서는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비포장임도를 따른다.



2분 정도 걸었을까 왼편 산자락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임도로 여겨질 정도로 넓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산길은 오솔길로 변한다. 그리고 제법 가팔라진다.



6분 후 뾰루봉 정상에 올라선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것은 아까 이화산에서 만난 산봉리들과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는 삼각점(서산 434)이 설치되어 있다. 아까 이화산에서 만난 봉우리들보다는 의미가 있는 봉우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임도로 되돌아 내려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임도를 따른다. 7분 후 도로에 내려서면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오른편은 원북면소재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로를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걷다가 새마을운통탑()’을 만났다 싶으면 오른편 임도로 들어서야 한다. 쇠줄로 막아놓았지만 개의치 않아도 좋다.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면 환상적인 가을 단풍을 만나게 된다. 조림(造林)된 단풍나무들이 산자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지도에 신일조경이라는 지명이 나오더니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가 끝나는 지점은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오른편에 보이는 절개지(切開地)를 치고 올라야만 한다.



절개지를 올라섰다하면 몇 걸음 걷지 않아 구정봉 정상이다. 이곳도 역시 특징이 없기는 다른 봉우리들과 매한가지이다. 누군가의 안내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이곳이 구정봉의 정상이란 걸 눈치 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은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함께 오른 박건석선생이 정상표시코팅지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젠 하산만 남았다. 올라왔던 임도를 따라 도로까지 되돌아간 다음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우린 단축코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게 불행의 서막이 될 줄은 까마득히 모른 채로 말이다. 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길이란 게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저 방향만 보고 길을 만들어가며 내려갈 따름이다. 군대 생활을 할 때에도 받지 않았던 유격훈련을 늘그막에 제대로 체험해볼 수밖에 없었다.



20분 후 저수지가 나타난다. 드디어 인간이 만들어놓은 흔적을 만난 것이다. 이어서 산죽(山竹) 숲을 헤치고 나가면 포도과수원이다.


산행날머리는 청산2리 마을회관

포도밭을 빠져나오면 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저만큼에 마을회관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4시간 30분이 걸렸다. 중간에 멈춰보지 않았으니 온전히 걷는데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