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방산(排芳山, 301m)-태학산(泰鶴山, 455.3m)

 

여행일 : ‘15. 12. 29()

소재지 : 충남 아산시 배방읍과 천안시 풍세면·광덕면의 경계

산행코스 : 동천교회배방산성배방산솔치(지미카터로)태화산태학산삼태마애불태학사법왕사태산휴양림주차장(산행시간 : 450)

 

함께한 사람들 : 가보기산악회

 

 

특징 : 배방산과 태학산은 작은 산들이다. 그리고 육산(肉山)으로 분류해야 할 정도로 대부분이 흙으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특출한 산세(山勢)는 보여주지는 못한다. 당연히 암릉이 발달되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암릉까지는 아니어도 가끔은 바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도 제법 큰 바위들이다. 그래서 마애불이라는 국보급 문화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산이 갖고 있는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조망(眺望)이 아닐까 싶다. 육산임을 감안한다면 의외라고 할 수 있다. 하여간 배방산 정상과 태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거기다 내려가는 길에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이라는 국보급 문화재까지 구경할 수 있으니 이만한 산행지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마침 잘 정비된 등산로까지 걷기에 좋을 만큼 순하니 가족산행지로 적극 추천할 만 하다.

 

산행들머리는 동천교회(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당진-영덕고속도로 예산·수덕사 I.C에서 내려와 21번 국도를 타고 아산 방면으로 달리면 읍내교차로(아산시 신창면 읍내리)가 나온다. 21번 국도는 이곳에서 45번 국도와 헤어진 후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계속해서 21번 국도를 탄다. 얼마 후 배방읍(아산시)에 이르면 국도를 내려와 오른쪽 도로(왼편은 45번 국도로 연결된다)를 따른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자마자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온천대로를 따른다. 곧이어 나타나는 남동교차로(삼거리:배방읍 구령리)에서 또 다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동천교회가 보인다. 동천교회로 가는 길에 신도라면 아산공장이 보이니 방향을 잡는데 참조한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천안 I.C에서 내려와 1번 국도를 타고 대전방면으로 달리다가 청삼교차로(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서 21번 국도로 옮겨 아산방면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아산시가지에 이르기 전 남동교차로(아산시 배방읍 구령리)에서 내려와 위의 순서를 따르면 된다. 오늘 따라나선 가보기산악회에서는 후자의 코스를 따랐다.

 

 

 

동천교회의 왼편에 보이는 통나무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아산시에서 세운 이정표(배방산성 0.8km, 배방산정상 2.5km, 설화산정상 18.1km, 배태망설 19.9km) 외에도 배방산 정상까지의 거리 및 방향을 표기한 입간판 등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정표에 적혀있는 배태망설이라는 낯선 지명(地名)을 보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배방산과 태학산, 망경산, 설화산을 줄인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 산꾼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으로 자리 잡힌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 산들을 묶어 아산지맥이라 명명하고 종주코스로 즐겨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정표에 까지 표기를 해 놓았나 보다.

 

 

산길은 초반부터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르게 시작된다. 하지만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거기다 깔끔하게 손질된 등산로는 이곳 지자체에서 얼마나 공들여 가꾸었는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지난번에 연이어 다녀왔던 통내산(청도군) 및 구현산(창녕군)과 자연스레 대비가 된다. 산세(山勢)가 괜찮은 산들인데도 불구하고 버려지다시피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안타까워했었기 때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10분 후 쉼터갈림길(이정표 : 배방산정상2.2km/ 크라운제과0.3km/ 동천교회주차장0.2km)을 만나게 된다. 크라운제과 아산공장에서도 올라오는 길도 있는 모양이다.

 

 

쉼터갈림길 근처에서 잠시 완만해졌던 산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가팔라져버린다. 이 오름길도 역시 통나무계단을 놓아 오르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심지어는 로프로 난간까지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오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산성둘레길 1.2Km, 배방산정상 1.7Km/ 크라운제과 0.9Km)를 보니 이곳이 배방산성(排芳山城)의 입구인 모양이다. 안내판에는 산성의 내력을 한글과 영어로 각각 적어 놓았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67호인 배방산성은 250m 높이의 성재산 정상어림에 쌓아올린 옛 산성이다. 성의 길이는 약 1500m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돌무지로 보이나 성의 남쪽에는 15m 정도의 성벽이 다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성벽은 두께 10~20, 길이 40~50정도의 납작한 돌로 쌓았고, 안쪽에 석재·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4m를 길이모쌓기(돌의 길이가 표면에 나타나게 가로 쌓는 일)로 하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았는데, 복원한다면 높이는 56m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의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 등에서 백제의 토기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백제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공수라는 칠순노인이 성배(成排)와 성방(成芳)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있었는데, 성배가 성방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고 한다. 또 형태가 솥을 엎어놓은 모양이어서 복부성(伏釜城)이라고도 한다. 한편으론 고려 초에 태조왕건이 후백제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았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참고로 ‘1872년 지방지도’(온양)조선지형도의 배방면에 산성(山城)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남동쪽에는 배방산이 나타난다. ‘배방산 서쪽에 흙으로 쌓은 성 모양이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복부성이라 하며, 배방산성(排芳山城) 또는 산이 매처럼 생겼다 하여 응양산성(鷹陽山城)이라고도 한다.’

 

 

안내판을 지나자마자 저만큼에 또 다른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이것 역시 배방산성의 현황의 유래를 적고 있는데, 그 오른편에는 온양 방씨(方氏)와 배방산성의 유래를 따로 적어 놓았다. 뜬금없는 성씨(姓氏)가 나오기에 궁금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 금방 이해가 간다. 이 일대가 그들의 사유지(私有地)였던 것이다. 안내판은 물론 그들 문중(門中)에서 세운 것이고 말이다.

 

 

산성입구를 지난 산길은 성재산(Daum지도에는 성터산으로 나와 있다)의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산허리를 빙 둘러 나있다. 아까 만났던 이정표에 산성둘레길이란 지명이 나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성벽을 따라 산길을 만든 모양이다.

 

 

산허리를 따라 반 바퀴를 돌면 송전탑(이정표 : 배방산정상 1.2Km/ 동천교회주차장 1.2Km)이 나온다. 산성입구에서 10분 만이다. 산길은 이곳에서 배방산성과 이별을 고한다.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든 둘레길이 아닐까 싶다.

 

 

산성을 빠져 나오면 산길은 운치 있게 변한다. 잡목(雜木)이 대세를 이루던 산길이 갑자기 소나무들의 세상으로 변한 때문이다. 그것도 나이 지긋한 노송(老松)들이다. 잠시 후 이해를 할 수 없는 이정표(공술 0.8km/ 623도로 1.3km/ 정상1.2km)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심하지 않아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그런데다 곳곳에는 벤치와 평상을 놓아두어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다. 산성을 벗어난 지 20분 가까이 되면 산길은 꽤나 가팔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윤정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0.1Km/ 윤정사1.42Km/ 배방산성1.4Km)을 지나면 곧이어 배방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1시간 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태화산 정상5.0Km, 카터로 1.0Km/ 윤정사1.43Km, 정자 0.17Km/ 크라운제과2.5Km, 배방산성 1.5Km). 삼각점(전의21) 등 여느 정상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시설물들 외에도 돌탑과 무인산불감시탑, 그리고 신협에서 쳐 놓은 그늘막까지 들어서 있다. 심지어는 운동기구까지 만들어 놓아 차라리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배려도 지나치면 오히려 흠이 될 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배방산이란 이름은 백제 개로왕 때 지략을 겸비한 성배(成排)와 성방(成芳) 남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조선조 창업 당시 고려조에 충성을 다하던 온양 방씨들을 이곳에서 내쫓았다 하여 배방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과안산' 또는 '길재'라는 다른 이름도 전해진다. 산 모양이 기러기가 지나가는 형국이므로 '과안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길재는 기러기재의 축약인 것으로 보인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올라왔던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의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태학산 방향이 낭떠러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진행방향으로는 조금 후에 오르게 될 태화산이 또렷하고, 그 왼편에는 천안의 들녘이 펼쳐진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면 신흥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은 설화산과 망경산일 것이다.

 

 

 

고개를 왼편으로 크게 돌리면 능선에 앉아있는 정자(亭子) 하나가 보인다. 그 뒤에 천안시가지가 펼쳐짐은 물론이다. 만일 조금 더 또렷하게 천안시가지를 보고 싶다면 저곳까지 다녀오면 된다. 기껏해야 10분 정도만 투자하면 되니 거리까지 가까운 편이다.

 

 

정자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정자까지 꼭 다녀와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천안시가지의 풍경은 물론이고, 건너편에 있는 태학산도 조금 전에 배방산 정상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나타난다. 거기다 배방산의 바위벼랑까지 눈에 쏙 들어오니 어찌 뛰어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방산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태학산으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10분쯤 후 바위벼랑 위에 걸터앉아 있는 바위 하나를 만난다. 누군가의 글에서 내려가는 길에 흔들바위를 만나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확인을 위해 집사람에게 밀어보라고 하지만 꿈쩍도 않는다. 아무래도 생김새만 흔들바위를 닮았나 보다.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또 다시 태학산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바위를 지나면서 산길의 가파름은 대부분 해소된다. 이어서 호젓하면서도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10분 남짓 더 내려가면 솔치고개(이정표 : 설화산정상 14.7km, 태화산 4.0km, 망경산정상 7.8km, 광덕산정상 12km/ 크라운제과 3.5km, 배방산정상 1.0km)이다. 배방산이나 태학산에 설치된 이정표에는 카터로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이 길이 지미 카터로(jimmy carter road)'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카터대통령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의집건축을 위해 아산시를 방문했을 때 이 도로를 이용했었단다. 그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도로의 이름을 지미카터로로 명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건너편 능선으로 오르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면 산길은 한없이 고와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다보니 걷는 게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걸어도 좋을 듯 싶은 구간이다.

 

 

 

가는 길에 기괴한 삶 하나을 만난다. 영양가 많은 땅속을 마다하고 척박하기 짝이 없는 바위틈으로 찾아든 삶이다.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찌 저런 삶이 없다고 하겠는가. 그게 어리석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갈고 닦는 방법의 하나로 일부러 선택한 이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저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면 과연 난 어떤 결과의 산물이었을까? 후자이었기를 바라보지만 글쎄다.

 

 

솔치고개에서 15분쯤 걸으면 235m(이정표 : 태화산정상 3.1Km/ 카터로 0.9Km)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비슷한 느낌, 아니 아까보다는 조금 더 경사가 가팔라진 오름길을 15분쯤 더 오르면 벤치가 놓여있는 봉우리이다. 이정표(태화산정상 2.3km, 광덕산정상 10.3km, 설화산정상 12.9km/ 카터로1.7km)에 현위치로 적혀 있는 삼각봉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삼각점(전의 406)을 줄여서 쓴 표현일 것이다.

 

 

 

삼각봉을 지나면서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 시작한다.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곳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설화산에서 망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또렷하고 그 아래에는 수철리 마을의 올망졸망한 가옥(家屋)들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마을 앞의 빈 들녘에 점점이 보이는 하얀 물체들은 사료용 볏짚들일 것이다.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커다란 바위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다. 어떤 곳에서는 제법 암릉에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긴 저 정도의 바위들이 있었기에 마애불(磨崖佛)과 같은 국보급 문화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벤치를 놓아두었다. 천천히 쉬면서 조망을 즐겨보라는 것일 게다. 꼭 조망 좋은 곳에만 벤치를 놓은 것은 아니었다. 쉬어가기 좋은 곳에도 어김없이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심(都心)에서 가까운 공원(公園)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이유이다.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을 즐기면서 10분쯤 걸으면 쌍용정사 갈림길‘(이정표 : 태화산정상1.9km/ 쌍용정사0.8km/ 카터로2.1km, 배방산 3.1km)이 나오고, 계속해서 10분쯤 더 걸으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세워진 깃대가 나타난다. 그 끝에는 뭔가가 매달려있다. 패러글라이딩(para gliding) 활공장에서 접하게 되는 풍향기(風向旗)로 알고 다가가보니 의외로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도 풍향기가 필요한가 보다.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쉼터가 있는 376m(이정표 : 설화산정상 1.9Km/ 카터로 2.8Km)을 지나면 10분 후에는 또 다른 헬기장이 나온다. 이번에도 역시 풍향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길이 하나 나뉜다(이정표 : 태화산정상 0.5Km/ 호서대 1.5Km/ 카터로 3.5Km). 호서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10분쯤 더 걸으면 세 번째 헬기장을 만난다. ‘웬 헬기장이 이렇게 많아요?’ 앞서가건 집사람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서 세 개나 되는 이정표를 만났으니 이상할 만도 하겠다. 그것도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는 헬기장들을 말이다. 세 번째 헬기장을 지났다싶으면 잠시 후 태화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배방산을 내려선지 1시간 30분 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호서대1.9km/ 넋티고개2.3km, 망경산정상 3.8km, 광덕산정상 8.0km, 설화산정상 10.6km/ 동천교회7.5km, 카터로 4.0km)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2010년 무렵까지만 하다라도 이곳은 망경산과 태학산의 갈림길 정도로만 알려졌던 곳이다. 그런데 아산시에서 이곳에다 태화산정상표지석을 세웠다. 덕분에 하나의 산이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천안시와 아산시의 관할권 다툼이 만들어낸 서글픈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전형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일 것이고 말이다. 하여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25,000지형도(2008년 인쇄)에 태학산 정상은 461m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원래의 태학산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이왕에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어떨까 싶다. 아산시가 부르는 태화산이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명칭이다. , 태화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천안 고을 남쪽 18리에 위치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특히 ‘1872년 지방지도(1872年地方地圖)’에 분명하게 태화산(泰華山)’으로 표기돼 있고, ‘조선지형도(朝鮮地形圖)’한국 지명 총람에는 현재와 같은 한자표기로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그런 태화산이 태학산이 된 것은 이 산 아래에 위치한 사찰 태학사(泰鶴寺)’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 이름을 딴 것과 달리 이곳에서만은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태화산에서 잠시 아래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오르면 태학산 정상이다. 태화산 정상에서 10분 정도의 거리다.

 

 

대여섯 평이나 됨직한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휴양림관리사무소1.63Km/ 주차장(광풍중학교)2.45Km/ 태화산0.35Km) 그리고 삼각점(전의 304) 외에도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마음 놓고 쉬면서 조망을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태학산의 정상표지석을 보면 그 높이를 455m로 적고 있다. 아까 태화산의 정상석이 461m로 적고 있었으니 태화산보다 6m가 낮은 셈이다. 이는 태학산 정상의 옳은 위치가 이곳이 아니라 아산시에서 정상석을 세워둔 곳이 옳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태학산 정상이 자기의 관할구역임을 내세우려는 천안시와 아산시의 지역 간 소소한 알력다툼이겠지만 하루빨리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의 이름을 같이 사용하면서 두 봉우리에 ‘00이라는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거기다 덧붙여 이 산의 옛 이름인 태화산을 되찾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고 말이다.

 

 

정자에 오르면 오른편으로는 천안시 풍세면이, 왼편은 천안과 아산 신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시원스럽기 그지없는 풍광이 사뭇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으로 다가온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휴양림관리사무소 방향이다.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하지만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어 편안하게 내려설 수 있도록 해놓았다. 나선형(螺旋形)의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는 계단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느긋하게 즐기면서 내려서볼 일이다.

 

 

20~30년쯤 나이가 먹었음직한 소나무 숲을 15분 정도 내려오면 시판(詩板)까지 갖춘 안부사거리를 만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무심코 이정표(호서대0.97Km/ 체육시설물0.24Km, 휴양림 1.13Km/ 태학산 정상0.5Km)를 따르다가는 휴양림이 있는 오른편으로 내려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태학사의 뒤편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마애불을 만나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 안부에서는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호서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비록 마애불이 보고 싶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호서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능선을 오른다. 잠시 후 작달막한 소나무가 귀여운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의자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이어서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산길은 오른편(이정표 : 주차장(마애불)1.17Km/ 정상(팔각정)0.80Km)으로 방향을 튼다. 안부에서 5분 거리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곧장 능선을 따르는 길도 또렷하게 보이니 주의할 일이다. 아마 호서대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

 

 

잘 다듬어진 침목계단을 내려서면 또 다시 삼거리(이정표 : 휴양림관리사무소0.55Km/ 주차장0.81Km/ 정상1.06Km)를 만난다. 마애불로 가려면 휴양림관리사무소가 있는 오른편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곧바로 직진할 경우 주차장으로 내려서게 되니 주의할 일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방향 저만큼에 상하좌우(上下左右)가 모두 10m가까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난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양각(陽刻) 기법으로 새겨진 거대한 불상(佛像)이 나타난다. 보물 제407호인 삼태리 마애여래입상(三台里 磨崖如來立像)’이다. 요 아래에 있었다는 산중 암자 해선암(海仙庵)을 창건한 진산조사(珍祖師山)가 절 뒤편의 바위에다 돋을 기법으로 새긴 것이란다. 하지만 불상의 형식은 고려시대의 것이라니 참조할 일이다. 불상은 천연바위의 면을 그대로 살려 7.1m에 이르는 입상(立像)으로 조각하였는데 얼굴 쪽은 조각이 두드러지는 반면에 아래쪽은 부조가 얕은 편이다. 눈 코 입이 뚜렷하고 뺨도 도톰해 보인다. 목에는 삼도(三途)가 뚜렷이 새겨졌으며 옷은 양쪽 어깨가 다 가려진 통견(通肩:通兩肩法의 약칭)이다. 두 손은 가슴께에 올려 서로 감싸 쥐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아래쪽으로 늘어진 옷자락은 층층이 U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도식적이나, 단순하고 분명한 선 처리가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참고로 우리나라 마애불의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반면 삼태리마애불은 서해가 아닌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는 인근 광덕산을 중심으로 주변 산들이 빚어내는 운해(雲海)가 태학산 아래에서 시작되는데, 이를 향해 세우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긴 바다나 구름바다나 바다이기는 매한가지이니 바다를 향하기는 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애불들이 담고 있다는 바다 건너 외침을 막아달라는 간절한 기원은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겠다.

 

 

마애불에서 200m쯤 내려가면 태학사와 법왕사라는 두 절이 마중 나온다. 하지만 무턱대고 절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보였기 때문이다. 수목원야생화단지가 이 근처에 있다고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아무튼 휴양림에서 신경을 써가며 관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거기다 약수터로 보이는 건물까지 보이니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약수터는 물기 한 점 없이 메말라 있었다. 서해안 지역에 가뭄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약수터가 하나 같이 메말라 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잔디밭 바로 아래에는 태학사(泰鶴寺)가 자리 잡고 있다. 태학사는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에 소속된 사찰로 그 근원을 태학산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다는 해선암(海仙庵)에서 찾고 있다. 해선암은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 진산조사(珍祖師山)가 창건했다는 산중 암자(庵子)이다. 창건 이후 연혁이 전해지지 않다가 언제부턴가(연도미상) 폐사(弊社)되어 그 흔적만 남아있었는데, 1930년대에 이병희(李炳熙, 1903~1994)가 중건(重建)하였다는 것이다. 기도를 위해 이곳에 들렀던 그가 마애불을 친견하고 불심(弗心)이 발하여 출가를 하게 됐고, 공주 마곡사에서 득도하여 수계한 후 광덕사(廣德寺)에서 토불(土佛)을 옮겨와 옛 해선암(海仙庵) 터 아래에 절을 세워 해선암이라 칭하였으며, 이후 재건축하고 1959년 개명하여 현재의 사찰인 태학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 미륵전, 산신각과 요사체가 있으며, 유물로는 해선암터에서 발견된 석탑과 보물 407호인 마애불이 있다.

 

 

태학사의 옆에는 법왕사(法王寺)가 있다. 언뜻 보면 하나의 사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이좋게 옆구리를 맞대고 있다. 비좁은 협곡에 두 개의 사찰이 들어서다보니 법왕사 역시 갑갑해 보인다. 대웅전과 미륵전, 산신각, 요사채 등 꽤나 많은 전각(殿閣)들이 비좁은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법왕사는 옆에 있는 태학사와는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소속의 사찰이다. 위에서 태학사를 설명할 때 해선암을 잇는다는 표현을 썼었다. 이곳 법왕사도 역시 그 법통(法統)을 해선암에서 찾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옛 사찰이라곤 해선암 뿐인데다, 폐사(弊社)된 해선암의 법통을 이었다고 공증 받은 사찰 또한 없는 것으로 아니까 말이다.

 

 

암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나한전에 올라가봐야만 법왕사의 전모(全貌)가 제대로 드러난다.

 

 

법왕사에 들른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천연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굴법당이다. 이를 놓칠 수 없어 대웅전 아래에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본다. 누구의 염원을 담고 있는지는 몰라도 수많을 촛불들이 그 간절함이라도 나타내려는 양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자 암반을 양각(陽刻)하여 새겨놓은 약사여래 마애석불이 나온다. 굴의 벽면을 자세히 살피면 이 뭣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의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이 뭣고?’를 넣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본래의 면목, 즉 참 나를 깨달아 생사를 해탈(解脫)해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중생(衆生)인 내가 어찌 그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또 하나의 교훈(敎訓)을 마음에 세기며 발길을 돌린다.

 

 

산행날머리는 태학산자연휴양림(泰鶴山自然休養林) 주차장

절을 빠져나오면 도로로 연결된다. 잠시 후 휴양림관리사무소 앞을 지난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길 양쪽 소나무숲 속에 들어선 잔디구장과 놀이동산, 데크와 들마루 등 휴식공간들이 보인다.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게 여간 보기가 좋다. 2001년에 개장한 자연휴양림은 102ha의 면적에 하루 수용 가능인원은 1,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휴양림에는 각종 편의시설 외에도 많은 종류의 자생화와 수목(樹木)이 분포되어 있고, 특히 소나무가 집단생육하고 있어 가족단위 휴양에 적당하다고 한다. 절을 빠져나온 지 10분 조금 못되면 휴양림을 벗어난다. 하지만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까지는 이곳에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이 걸렸다. 간식도 먹지 않고 걸었으니 순수하게 걸은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사찰이나 전망대를 둘러보는데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음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