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산(靈仁山, 363.6m)-상투봉(299m)-닷자봉(275m)

 

산행일 : ‘16. 6. 19()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염치읍과 영인면, 인주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2매표소수목원상투봉닫자봉영인산깃대봉연화봉산림박물관자연휴양림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누군가 그랬다. ‘충청도 산들을 우습게보지 말라고오늘 오른 산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높이가 고작 400m에도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인데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봉우리 사이의 골이 너무 깊었던 것이 그 이유이다. 오늘 산행은 영인산 자연휴양림을 빙 둘러싸고 있는 5개의 봉우리들을 종주하는 코스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독립적인 산이라기보다는 영인산에 포함된 다섯 개의 봉우리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 개의 독립적인 산으로 봐야할 것 같다. 신선봉과 깃대봉, 연화봉으로 이루어진 영인산을 하나로 보고, 상투봉과 닫자봉은 별개의 산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이다. 같은 산으로 보기에는 골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봉우리들 사이로 물길이 지나가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산은 곱다. 바위산으로 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곳곳에 암릉이 발달되어 있고, 그 덕분에 조망까지 툭 트인다. 거기다 자연휴양림을 끼고 있어 볼거리도 많다. 가족들끼리 즐길 수 있는 편의시설도 충분하다. 산행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산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거고 말이다.


 

산행들머리는 영인산자연휴양림 주차장(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산 56-1)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 I.C에서 내려와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서평택 IC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77번 국도를 탄다. 잠시 후 내기삼거리(평택시 포승읍 방림리)에서는 우회전하여 38(얼마 후 39번과 합쳐진다) 국도를 탄다. 아산만방조제를 지나 영인면소재지인 아산리에서 국도를 빠져나오면 아산온천교차로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아산온천로를 따르다가 잠시 후 돌이가든(영인면 아산리 129) 앞에서 오른편으로 길을 바꾸면 곧이어 영인산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도로(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건너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휴양림에서 내건 2매표소를 설치운영 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으니 참조한다.



잠시(5) 후 임도를 만난다. 개의치 말고 가로지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9분 후 오른편으로 길(이정표 : 정상4.9Km/ 주차장0.7Km)이 하나 나뉜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산의 높이가 낮다보니 서둘러서 고도(高度)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4분쯤 더 걸으면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 상투봉1.9Km, 정상 4.6Km/ 어금니바위0.7Km)을 만난다. 원골로 연결되는 왼편 방향에 어금니바위라는 지명(地名)이 보인다. ‘아산(牙山)’이라는 이 지방의 이름이 어금니바위(부처바위)’라는 바위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 바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산(牙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어금니()’를 닮은 바위가 영인산의 기슭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바위가 소개되었을 정도이니 어금니바위는 아산의 자존심 같은 존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책에는 괴석이 신기한 부처를 이루어 3년 동안 다섯 명의 원(사또)을 갈려 보냈다라고 적혀있다.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산길은 여전히 완만하게 이어진다. 다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던 소나무들이 그 개체수를 점점 늘려간다는 것이 달라졌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낯익은 팻말도 보인다. 국제신문의 산행대장을 지냈던 최남준씨가 .라는 아명(雅名)으로 매달아 놓은 팻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이 영인지맥(靈仁支脈)’이었던가 보다. 금북정맥 상에 있는 성거산(579m)과 걸마고개 사이의 무명봉에서 서북쪽으로 분기하여 용와산(238m)과 연암산(293m), 금산(286m), 영인산, 입암산207m) 등을 일구고 아산만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약 45km의 산줄기 말이다. 아래 사진은 여영이라는 또 다른 산악인이 매달아 놓은 팻말을 찍은 것이다.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리며 고도(高度)를 높여가던 능선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91.3m봉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상투봉이 조망되는 곳이다. 이후 산길은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로 바뀐다.



산행을 시작하고 40분쯤 지났을까 난데없이 매표소(이정표 : 상투봉0.7Km, 정상 3.4Km/ 휴양림9.6Km/ 주차장2.2Km)가 나타난다. 능선에 매표소라니 흔하지 않은 발상이다. 하지만 잠시 후 무릎을 탁 치고 만다. 아까 산행들머리에서 보았던 현수막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2매표소를 설치 운영하겠다는 그 현수막말이다. 당시만 해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버렸는데 이곳을 의미했던가 보다. 그리고 그만큼 이 코스(신설주차장에서 수목원)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푸른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영인산 휴양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수목원(樹木園)이다. 2000년 대형 산불로 황폐화된 삼림을 복구하고 시민의 자연학습장을 마련하기 위해 2011년 개장했다고 한다. 이 수목원은 중심지구·계곡학습지구·습지학습지구·산림복원지구 등으로 나눠지는데 교목(喬木) 3507천 그루와 관목(灌木) 26514만 그루, 초화류(草花類) 54448만 그루. 그리고 기타 팥배나무 등 1158627천 그루가 식재(植栽)되어 있다고 한다.





망초도 무리를 지어 피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보다. 망초를 천덕꾸러기 풀로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망초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망할 놈의 풀이라고 풀이를 해 주었었다. 아무리 뽑아내도 계속해서 자라나는 잡초에 질려버린 농부가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설()도 덧붙였었다. 이 식물이 나타나면서 나라가 망()했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망초가 귀화해 온 시기가 조선이란 국가가 망해가는 구한말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거질 ()’를 써서 망초(莽草)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은 상황, 즉 묵정밭에 우거진 잡풀로 봤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맨 마지막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다. 그래야만 저렇게 아름다운 꽃밭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상투봉은 전체가 암봉(巖峰)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호흡을 하며 긴 계단을 오르자 어느새 상투봉 정상이다. 매표소를 지난 지 15분 만이다. 상투봉이라는 이름은 봉우리의 생김새로부터 왔다고 한다. 멀리서 볼 때 산봉우리의 생김새가 상투를 틀어 올린 것 같이 뽈록하게 솟아있다는 것이다. 동림산(桐林山)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니 참조한다.



정상은 나무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예쁘장하게 생긴 정상표지석은 데크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물론 이정표(닫자봉 1.1Km, 정상 2.7Km/ 흔들바위 0.1Km/ 주차장 1.2Km, 휴양림 1.4Km)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조망도(眺望圖)를 양쪽 방향에다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등산객들의 조망을 돕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난간에 선다. 그리고 조망도와 비교해가며 아산만 일대를 조망해본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서해바다 근처의 들녘에 솟아있어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이곳 영인산 일원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던 이유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부근은 아픈 우리 역사의 현장이었다. 청일전쟁 때는 일본군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청나라 군사들이 아산만 갯벌로 상륙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으며, 6·25 전쟁 때에는 남북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미군이 37년 동안 주둔하면서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었다.



흔들바위로 향한다. 강청리 방향이다. 중간에 자그만 암봉을 지난다. 범상치 않은 생김새의 기암(奇巖)이 주변 들녘과 잘 어우러지며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잠시 후 흔들바위에 이른다. 이름표까지 달고 있는 것에 비해 생김새는 보잘 것 없는 바위이다. 한 사람이 밀거나 또는 열 사람이 밀어도 흔들리는 정도가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따름이란다. 안내 동판(銅版)에는 정호재(鄭好宰)라는 사람이 썼다는 문장도 적혀 있다. 바위 위에 적혀 있는 판독이 불가능한 글씨의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장이란다.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상투봉, 바위로 이루어진 생김새가 얼핏 상투를 틀어 올린 것 같기도 하다.



정상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닫자봉으로 향한다. 하산은 가파른 경사의 나무계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은 침목(枕木)계단이다. 이는 내리막길의 경사가 만만찮게 가파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18분 정도를 내려서면 계곡을 가로막아 만든 사방용 저수지가 나온다. 하지만 저수지는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지역 역시 가뭄이 극심했던 모양이다.



저수지의 둑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갈림길(이정표 : 닫자봉0.4Km, 정상 2.0Km/ 관리사무소0.7Km/ 상투봉0.7Km)을 만난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닫자봉으로 향한다.



계곡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바위들까지 제법 많아 얼핏 보면 암릉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르는 것까지 도와주지 못한다. 날씨까지 덥다보니 많이 힘들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18분 정도를 오르면 닷자봉 정상이다. 솔숲으로 뒤덮인 정상은 보잘 것이 없다. 직육면체(直六面體)의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영인산성 1.2Km, 정상 1.6Km/ 수목원지구/ 상투봉 1.1Km)가 세워져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일절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조망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상을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마저도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차지해버렸지만 말이다.



더 머무를 이유가 없어 곧바로 길을 나선다. 영인산 방향이다. 이 구간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아니 상투봉 때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곳 또한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내려오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영인산이나 눈에 담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16분쯤 내려오면 물기 한 점 없는 계곡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얼마 후에는 갈림길(이정표 : 정상0.9Km/ 영인산성0.6Km, 산림박물관 1.1Km/ 닫자봉0.7Km, 상투봉 1.8Km)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어느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영인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취향에 맞춰 방향을 결정하면 될 일이다. 다만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왼편을 권하고 싶다. 오른편, 그러니까 영인산성을 경유할 경우에는 1천개 이상이나 되는 계단을 올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름 뙤약볕에 계단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사방용 저수지를 만난다. 이번에는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가득 차있다. 산길은 이곳(이정표 : 정상9.8Km/ 영인산성0.7Km, 상투봉 1.9Km)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서두르지 않는다.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이고 있다. 그러다가 정상을 500m 남겨둔 지점에 이르자 변화가 온다. 가팔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지더니 끝내는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급경사로 변해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길가에 로프가 늘어져 있다는 것이다. 힘든 사람들은 붙잡고 오르라는 모양이다.



얼마쯤 올랐을까 멋진 바위전망대를 만난다. 늙을 대로 늙은 소나무가 곁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있어 풍치까지 더하는 아름다운 전망대이다. 이곳 영인산은 정상과 시루봉, 그리고 연화봉 등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럴 때에는 정상을 신선봉(神仙峰)’이라 부르며 다른 봉우리들과 구분한다. 그 신선봉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근원지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만일 신선들이 놀았다면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아서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또 있었나보다. ‘오션블루라는 단체에서 표지석을 만들면서 신선봉 소나무라고 표기해 신선봉이라는 지명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전망대를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정상에 올라선다. ‘영인산성 갈림길에서 30분 남짓, 닷자봉에서는 1시간이 걸렸다.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영인산 정상은 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다.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아산 22), 이정표(시련과 영광의 탑0.6Km, 산림박물관 1.1Km, 휴양림지구 2.6Km/ 영인산성0.4Km/ 닫자봉1.6Km, 상투봉 2.7Km) 말고도, 무인산불감시탑에다 돌탑 등 꽤나 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일 것이다. 정상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서이다. 글은 가뭄이 들 때마다 우물 앞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고 했다. 그때마다 큰 영험이 있었기 때문에 산의 이름까지도 영인(靈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물은 끝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괴이하게 생긴 전망대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제데크로 만들었는데 배(船舶)를 닮았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노아의 방주라고도 했다. 성경에 푹 빠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배는 삼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전망대는 맨 위층이다. 그렇다면 2층은 선실(船室)이 되는 셈이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이는 걸로 보아 내 예측이 맞았나 보다.



전망대로 오른다. 빙 둘러가며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서해 바다와 삽교천은 물론이고 아산만 방조제와 아산 시가지까지 한눈에 잘 조망된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다. 짙게 낀 연무(煙霧)로 인해 온 천지가 흐릿할 뿐이다. 아무튼 아산시에서는 전망대로도 부족하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양쪽에 조망도(眺望圖)까지 설치해 놓은 걸 보면 말이다. 각 지점에 대한 해설까지도 꼼꼼하게 적어놓는 친절까지 베풀고 있다.



깃대봉으로 향한다. 옛날 이곳에 주둔하던 군부대가 깔아 놓은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선다. 길가에 군부대 막사로 보이는 건물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미군들의 차지였다. 당시만 해도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었는데 군부대가 이전한 후 자연휴양림으로 개발된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닐 수 없다. 잠시 후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면 잘 다듬어 놓은 철쭉 군락지가 나타난다. 철쭉군락지의 위가 깃대봉이다. 영인산 정상에서 8분 정도 되는 거리이다.



깃대봉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군시설(軍施設)이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대공포를 보관했던 건물의 잔해란다. 정상 직전에 보았던 철조망이 둘러쳐진 작은 건물은 옛 탄약고였고 말이다. 깃대봉은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은 이 봉우리에다 일장기를 꽂았다. 그래서 이름 또한 깃대봉이 되었단다. 주면에 나뒹구는 시멘트 덩어리 중에는 일장기를 받치던 기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억하기 싫은 아픔의 현장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영인산보다도 한 수 위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시야가 흐린 탓에 구분이 잘 안되지만, 북쪽 아산호 건너로 평택시가 조망되고, 북서쪽으로는 삽교방조제가 서해대교와 함께 보인다고 했다.



연화봉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오면서 정상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길, 역시 자연휴양림답다. 자투리땅이라도 보이면 어김없이 편의시설들을 들어 앉혔다. 벤치는 기본, 중간에 탁자까지도 배치했다. 거기다 가끔은 시비(詩碑)까지도 세워 두었다. 이건 숫제 공원이다. 통째로 산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깃대봉을 지나면서 산은 다시 육산(陸産)으로 변한다. 그리고 보드랍기 짝이 없는 흙길이 이어진다. 뺨을 간질이는 바람결에 짙은 솔향이 묻어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나무들이 언제부턴가 소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7분쯤 걸었을까 느닷없이 거대한 쌍둥이 탑이 나타난다. 1998년에 세웠다는 24m 높이의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다. 위의 사진들을 설명하면서 이곳 영인산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 적었었다. 그 아팠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영광의 길로 나가자는 상징적인 조형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크다. 산세를 해칠 정도 저렇게 큰 조형물이 꼭 필요했을까 싶다.



연화봉에서부터는 임도(이정표 : 휴양림지구 1.8Km/ 용샘 62m/ 깃대봉 0.22Km, 정상 0.47Km)를 따른다. 하지만 난 쌍둥이 탑을 가로지른다. 그 뒤편에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정상은 보잘 것이 없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을뿐더러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그저 쌍둥이 탑을 뒤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영인산을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이 또한 군부대가 남기고간 흔적일 것이다. 계단은 아까 연화봉에서 헤어졌던 임도와 다시 합쳐지면서 끝난다. 그리고 잠시 후 영인산성 갈림길’(이정표 : 산림박물관/ 영인산성/ 시련과 영광의 탑)을 만난다. 산성까지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만다. 또 다른 이정표(수목원 지구0.9Km, 휴양림지구 1.9Km/ 산성입구0.4Km/ 정상0.9Km)에 표기된 거리가 만만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산림박물관이 나온다. 연화봉에서 내려선지 13분 만이다. 산림박물관은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신개념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전시관은 5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영인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인산의 역사를 시작으로 나무와 관련된 고전동화, 역사 속의 아산나무, 나무 및 식물 화석, 한대림에서 난대림까지 서식하는 나무들을 알기 쉽게 전시해 놓았단다.



박물관 못미처에서 왼편에 보이는 오솔길로 내려선다. 이후부터는 영인산 자연휴양림의 시설지구를 걷는다. 중심활동지구와 자연휴양림지구를 통과하면 25분 후에는 자연휴양림림의 입구, 즉 매표소에 이른다. 참고로 영인산자연휴양림은 39만평이나 되는 넓고 푸른 산림에 통나무로 만든 가족단위 숲속의 집과 썰매장, 물놀이터, 어린이 놀이터, 등 놀이 시설과 수목원, 등산로, 평상 등 편의시설들을 고루 갖추어 놓아 가족단위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라고 알려져 있다.



산행은 매표소를 벗어나서도 한참을 더 계속된다. 자연휴양림에서 대형버스의 진입을 금지시키면서 주차장을 산자락 아래에다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제법 먼데다 도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구간이다. 아니 실제로도 지루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벚꽃나무들도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다. 무성하게 자라 짙은 나무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루하지만 참을 만한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산행날머리는 휴양림주차장(원점회귀)

도로를 따라 내려서길 18, 길이 왼편으로 꺾이면서 도로(이정표 : 주차장0.5Km/ 상투봉2.5Km, 정상 5.1Km)와 헤어진다. 이어서 8분 후에는 저만큼에 널따란 주차장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4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