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관악산('02.12.21)

2011. 11. 4. 11:08

"¢¥♀A☆∂♠¤∮∑"
TV켜지는 소리에 눈을 뜨나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군복차림의 친구가 뭐라고 떠들고 있으나 가뜩이나 서투른 영어라
무슨말 하는지는 도통 모르겠고...
에라 모르겠다 시트 끝자락에 머리카락까지 감춰버린다.

어!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오늘 산행이 있음을 끄집어내고 자리를 턴다.
여섯시... 사위는 아직 캄캄하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발 맞춰 빈속이 메슥거리다니 남자도 애 서나?
종로번개에서 벼락 맞은 숙취에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기 싫지만
오늘 '산과 사람들'의 관악산행을 리딩하기로 했으니 별 수 없다.

우선 쌀부터 씻어 밥솥에 안치고...
잠깐의 고민 끝에 국거린 미역으로... 며칠전 산 조갯살이 싱싱하다.
유자차 끓여 보온통에 넣고 난 후
어젯밤 술 뒤끝에 질린지라 들었던 술한병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배낭을 짊어진 채로 투표를 마치고 지하철로 향하는 길
'내가 던진 이 한표 올바른 선택이 되게 해 주소서!'

약속시간 10분전쯤 도착한 낙성대역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새내기 분들의 손목까지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는 건
너나할것없이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열명... 스무명... 서른명...
돌산네 동료들의 도착을 마지막으로 서른다섯명...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그랴~
걱정 끝에 명님의 도움을 기대해 보나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제의 번개가 원망스러워지는건 아마 어깨를 누르는 부담감 때문일거다.

입만 벌리면 술냄새 난다고 인상들을 찌뿌리니 조금 떨어져서 출발신호...
술이 아직 덜깻지만 그래도 그냥갈 수 있나? 막걸리 몇병 챙겨본다.
무게 때문에 세병 이상은 무리인데 메니아들 때문에 부족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점심 때 꺼내 놓은 막걸리는 괜히 산적님 입맛만 버렸다.

헉~헉~
산의 초입을 들어서기 무섭게 단내를 내품는다.
주독으로 찌든 몸에 포근한 날씨까지 도와주니 시작부터 땀으로 목욕이다.
풍류님 왈 "화창의 근원은 써니이니라"

뒷쳐지는 님들 기다린다는 핑계로 두어번 쉬고 나니 어느덧 연주대 밑...
눈앞의 절벽을 안전하게 오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쉬는시간에 도시락 먹다 들킨듯 계면쩍게 웃는 두분은 분명 우리님들이다.
언젠가 하이에나에게서 배운 무릎 빌려주기 두어번에 모두 연주대에 도착.
정상에서 조우하기로한 과천의 상춘님이 먼저 도착하시어 반갑게 맞아준다.

역시 여자는 이쁘고 봐야혀~
인파를 피해 점심자리 찾아나서다 발을 접지른 룰루랄라님...
발목에 압박붕대를 감아주는 별나라님까지 안에 넣고 둘러싼 남정네들
그 진지함이 나 같은 사람은 발붙일 틈도 안준다.
전에 백두대간 때 내발 접질렀을 때는 그 흔한 스프레이도 안뿌려주더니만
씨~ 나두 다음에는 여자로 태어난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점심자리...
출발때부터 자랑하던 꿀술 때문에 설화님 곁을 떠날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꿀술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거기다 손수 기르신다는 오리알까지 안주로 내 놓는데야 가긴 어딜가?
설화님 이왕이면 이천에서 번개한번 때리소!

"놨두슈~ 다섯 왕자님께 둘러 쌓인 공주님이우~"
달구지의 제안으로 자운암쪽으로 변경한 하산길이 제법 험하다.
필요 없이 걱정 마라는 달구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룰루님을 업은
겨울사랑이 너무나 듬직하다.
평소에 여자를 좋아하는 내가 가만있을 수 있나?
부리나케 등판을 내밀어 보지만 그녀는 영계 찾아 하이에나에게로...
나두 한때는 젊었었는데... 흑~흑~

하산지점에서 그토록 두리번거렸던 명륜당님이 이제서야 얼굴을 내민다.
아마 어젯밤 술자리가 새벽에나 끝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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