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관악산('02.11.5)

2011. 11. 4. 11:03

어~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짝궁네 집에서 돌아와 설거지 마치고 나니 8시반이 다 되어간다.
아직 짐도 안 꾸렸는데....

시커먼 속내를 드러낸 밥솥을 들여다보며
게으른 애들을 원망하기보다는 도시락 챙겨준 짝궁에게 먼저 감사해본다.
하마터면 싫어하는 길거리 김밥 신세질번했음에 가슴 쓸어내리며....

불이나케 유자차 끓여 보온병에 옮겨 담고,
불그스레 색깔 고운 꽃사과주도 한병 챙기며
천리길 영광 법성포 뒤져 사온 45度짜리 백주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저 병속의 붉은 빛 같이 아름다운 분들과 산행하게 해 주소서!

지하철 역사를 뒤져 먼저 형희님 찾아내고,
온갖 시선을 지하철 출입구에 집중시키는데 웬 아리따운 처자가 올라온다.
곧바로 간절한 염원을 담아 "산과 사람들"이기를 외쳐본다.
영험한 기도가 건진 그녀의 이름은 가을의 전설...
그리고 그녀는 어디선가 십일월이라는 예쁜이 한분을 더 모셔왔다.

휴식님의 조금 늦는다는 전화에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니 걱정말그라~
아직 안온 달구지라는 이는 미리 신고까지 했으니 족히 30분은 더 늦을걸?
뒤이어 가을의 전설님曰 "다음부터는 아예 30분 늦게 도착해야지"
내 이럴줄 알았지 '산과 사람들' 님들 약속시간 잘 지킵시다레~~

달구지가족이 도착하자마자 산행 시작...
오늘은 향교 뒷편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올라보기로 한다.
관악산에서 아름다운 능선중 하나이니
잘하면 오늘 이 아름다움에 반한 산식구 몇명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달구지네 막내가 문제다.
그 든든한 아빠는 싫다며 굳이 연약한 카타리나님만 찾는게 아닌가.
뒤로 쳐지기 시작하더니만 얼마 안있어 계곡으로 오를테니 연주암에서 만나잔다.

갑자기 조금 불안해진다.
배테랑이 빠졌으니 이제부터는 혼자서 꽃님들을 모시고 올라야한다.
"리딩하는 사람이 그 산행을 책임져야한다"
언젠가 말하던 명님의 얼굴이 갑자기 클로즈업 되는건
아마 그만큼 안전산행에 대한 절실함이 가슴에 와 닿아서였을거다.

관악산은 위험한 바위산이니 일단은 서서히...
마침 가을의 전설님이 힘들어하니 배려해 주는척 보조를 맞춰본다.
그리고 山景은 능선에서 바라보는게 제일이라는 진리도 설파하면서...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그 능선에서 본 가을산의 단풍은 설악산이 부럽지 않았다.

396봉을 지나 559봉 못미쳐서 만난 구름나그네님
땀에 젖은 모습을 보니 꽤나 부지런히 따라오셨나보다.
서로를 소개시켜 주나 게시판에서 이미 낯익은 닉이라며 다들 반가워한다.

매달리고 또 돌아가며 오르는 바윗길 끝 연주대위에 암자가 걸려있다.
그러나 그 벼랑에 왠 인간들?
얼키고 설키게 매달린 모습을 감나무에 연 매달리듯하다고 표현하면 맞나?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갑자기 박목월의 시가 생각나는
외줄기 코스를 보며 이제나 저제나 우리 차례 기다리는데
절벽 중간에 매달려 대성통곡하는 웬 아가씨 갈길바쁜 나그네 발목을 잡는다.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에 뒤엉켜 짜증스런 와중에도
문득 넘 무서우면 싼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 글쓰다 게시판에 들러보니 피터팬님도 싸는 야그를 적었네 그랴~
역시 우리는 以心傳心 맘이 통하는 설흔아홉살 갑장! ㅋㅋㅋㅋㅋ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다른 루트를 찾아보기로
우선 수직벽에 매달린 로프를 잡으며 여자분들 눈치를 본다.
형희님이야 예상했지만 제일 힘들어하던 가을의 님까지 이까짓거 하는게 아닌가?
나머지 분들도 도와주려 밑에 서있는 날 할 일 없게 만들어버린다.

연주암엔 달구지가 어~없다.
구름나그네님의 오징어를 안주삼아 꽃사과주를 나누며
술도 고기도 못 먹는 스님들 집이라 미안해하면서도 맛이 워낙 일품이라...
그래도 넘치는 인정이라 달구지 마실건 남겨놓자나?

시간이 지체된 하산길은 구세군회관 뒷편 능선길로...
이 능선은 위험한 암벽능선이어선지 아름다움에 비해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한적한 등산로 옆에 자리잡은 점심식사...
오늘 11명이 산에 올랐는데 그중 여자분들이 8명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그 나머지 3명의 배낭에서만 도시락이 나오는게 아닌가.
역시 '산과 사람들'에 속한 남자들은 괘않은 남자들인가 보다.ㅎㅎㅎㅎㅎ

와!
평소에도 푸짐한 달구지의 도시락이지만 오늘은 완존히 진수성찬이다.
"헤피 버스데이 투 달구지!" 아니나 다를까 전날이 생일이랜다.
잡채에 보쌈 등등 둘러앉은 암반이 좁을 정도로 푸짐하다.

그리고 내려 오는 길...
푸짐하게 얻어 먹은 죄로 둘째딸 책임졌다.
바윗길에서 애를 안고 내려와본 사람만이 내 힘들었슴을 알걸?
산을 오를 때도 흘리지 않았던 땀을 한바가지나 쏟았다.
다행이 둘째가 예뻐서 망정이지 미웠드래면 절대 힘든짓 안했을겨~

다섯시간을 넘긴 산행이라 비록 힘들었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가을산을
이렇게 아름다운 이들과 같이한 시간이라 당연히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그 산행후 같이하는 뒷풀이
조금 더 같이하고 싶었지만 저녁근무에 쫒겨 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봐야 평소보다 한시간을 더 넘겨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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