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한라산 ('03.1.27)

2011. 11. 4. 11:11

"겨울산행은 장비와의 싸움이다"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러려니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구구절절 옳았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무심코 떠난 제주도여행...
겨울산의 눈만 예상했지 겨울비까지 대비하는건 내 머리 용량으로는 과분했다.
명님이 주신 배낭에 스팻츠와 아이젠, 그리고 장갑...
다만 동장군을 대비 동진에 들러 파워스트레치 상의와 조끼를 챙기곤 완벽을 노래했다.
행여 눈올 때를 생각해 방수방풍의까지 꾸렸으니 더 이상 무엇이 두려우랴!

토욜 오전에 도착한 제주는 화창 그 자체였다.
성산포 근처 유명하다는 흑돼지집에 들러 배 두드리는데 조껍대기 막걸리를 뺄 수야 없겠지?
몽골인 조랑말 공연과 민속촌... 대충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음식으로...
내 개인적으로는 별로로 생각하는 회...
날것이 좋다고 희희낙낙 즐기는 야만인들 같으니라고...
자연산이라 자랑하는 주최측이 아니드래도 이미 그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끝들이 날렵하다.
안주 삼아 한두점 입에 넣으며 내일 아침 속쓰림을 떠올리니 이래 난 섬이 싫다.

관음사 매표소... 사위는 어스름에 쌓여있다.
추적거리는 겨울비에 산행여부를 놓고 고민...그러나 제주는 자주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방수방풍의를 믿어보나 잘못되었음을 확인하는데는 채 한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그리고 교훈 하나 "장비는 좋은 걸루 사는게 좋다. 특히 겨울장비는..."

용진각대피소 앞...비바람에 추위가 심상치않다.
팬티까지 젖은 옷은 무게가 심상찮고, 신발속은 질퍽...쥐어짜는 장갑에선 물이 한바가지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언젠가 명님이 한 말을 떠올리며 퇴각...
서귀포에 있는 경치 좋은 파라다이스호텔이 구경하자고 꼬드기고
허니문하우스의 유명한 커피로 나머지 사람들까지 꼬드기는건 완주하는 넘 생기면 억울하니까...

서귀포의 유혹에 끌려 달리다시피 재촉하는 하산 길...
탐라계곡은 철 아닌 겨울비로 등산화 목이 넘치게 물이 찰랑거린다.

차가 도착할 때까지 들른 관리사무소...
부족한 것 없느냐며 난로 옆으로 자릴 만들어 주시는 소장님의 얼굴은 우리 옆집 아저씨 같고
여직원은 커피에 귤에... 대접이 부족함을 미안해 할 정도로 인정이 넘친다.

정보 한마당...
"제주도에 가거들랑 해수목욕탕에 가지 맙시다"
한사람 나오면 다른 한사람 입장... 옷장 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히 인산인해다.
옷장 없이 샤워만 하겠다며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하는 기지를 발휘... 그래도 옷 지킬 보초는 필수다.

또 다시 별로인 황돔회로 저녁...
다행이 일식집이라 넉넉한 밑반찬 덕분에 술마시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제주도에서 드릴 건 이것뿐이라며 들려주는 한라봉 한박스 받아들고 트랩에 올라선다.

잘 놀고 잘 쉬었지만 정상정복의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어둠에 쌓인 한라산 향하여
기다려라! 내 다시 널 찾으마!
그리고 "다음에는 꼭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찾아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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