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 - 10.12()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셋째 날 : 말라카(Melaka) ’리버 크루즈(River Cruise)‘

 

특징 : ’말라카 강(Melaka River)‘은 시내 한가운데를 흐른다. 그런데 이 강의 분위기가 조금 묘하다. 강안(江岸)의 풍경이 아까 보았던 시내의 골목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운하(運河)로 이용되어 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운하가 곧 길이 아니겠는가. 리버크루즈는 유람선처럼 생긴 보트를 타고 이 길(運河)을 따라 말라카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되돌아오는 투어이다. 이때 옛 건물들이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흡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라카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라 하겠다.

 

리버보트 선착장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걷는 게 거추장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걸어봤자 눈여겨 볼 것도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고 말이다. 리버크루즈의 탑승 지점은 2군데다. 우리처럼 까사델리오 인근에 있는 범선(帆船) ‘플로르 드 라 마르((Flor de la Mar, 지금은 해양박물관) 근처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거나, 아니면 강 상류의 스파이스 가든에서 탈 수도 있다. 어느 지점에서 탑승하든 탄 곳에서 내리게 되니 따로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면 20명쯤은 너끈히 태울 수 있는 보트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다. 가격은 15링키트(MYR), 한화로 5,000원 정도 되며 주말에는 조금 더 받는다고 한다. ! 이때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진행방향의 맨 앞자리에 앉으면 전망을 즐기기에는 좋으나 대신 배가 속도를 낼 때 튕겨대는 물세례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별로 깨끗해 보이지도 않는 물을 일부러 맞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두 번째 줄에 앉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10명 남짓 되는 우리 일행이 오르자마자 배가 출발한다. 왕복 40분이 걸리는 코스이다. 그나저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말라카는 아름다운 옛 건축물들이 유난히도 많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차례로 이곳을 지배하던 유럽 열강들이 그들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것들이다. 이런 건축물들을 눈에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리버크루즈를 이용하면 말라카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트라이쇼(Trishaw)‘을 타고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선착장 뒤로 보이는 범선(帆船)해양 박물관(Melaka Maritime Museum)‘이다. 이 배는 플로라 드 라 마르(Flora de la Mar)’라는 포르투갈 범선으로 말라카 왕국에서 보물을 약탈해 도주하다가 바다에 침몰한 것을 복원해 놓았단다. 내부에는 당시의 약탈 과정, 범선 모형, 대포, 중국과 포르투갈의 화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각국의 범선과 바닷속 생태계 등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Muzium Samudera)’에는 우리나라의 거북선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다. 기분 좋은 일이라 하겠다. ! 범선의 건너편, ‘로열 말레이시아 해군 박물관(Royal Malaysian Navy Museum)’에서는 해군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니, 군 관련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 있었다. ‘수차(Water Wheel)’가 있던 자리(거치대)란다. 말라카가 번성하던 15~16세기, 무역상들에게 물을 공급해주던 시설인데 한때는 관광객을 위해 수차를 복원해놓기도 했었단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

 

 

 

식민지 시절, 통행세를 걷는 관리들이 머물렀을 법한 요새도 보인다. 저곳에 거치된 대포는 세금을 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협박용이었을 게 분명하다.

 

 

 

여기는 아까 수박 쥬스를 마시던 네덜란드 광장근처의 쉼터일 것이다.

 

 

 

강변을 따라 놓아둔 화분은 형형색색의 꽃들이 곱고, 찻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는 여행객들은 한껏 여유로운 모습이다. 크루즈를 탄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도 보인다.

 

 

 

배는 9km 정도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과 노천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 그림은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완성시킨다. 유럽풍의 벽화가 그려진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다. 가히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하겠다.

 

 

 

 

배를 댈 수 있는 시설도 여럿 보인다. 옛날에는 배가 이곳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다들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내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시시각각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풍광들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커다란 관람차도 눈에 띄었다. ‘스파이스 가든이라는 테마파크일 것이다.

 

 

울창한 맹그로브(mangrove) 숲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는 강변 가까이로 배가 지나가기도 한다. 물론 속도를 뚝 떨어뜨린 채로이다. 이때는 어김없이 덩치 큰 도마뱀이 나타난다. 일광욕이라도 하러 나온 모양인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려는 듯 보트가 다가가도 도망칠 줄 모른다.

 

 

뱃길은 여러 풍경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뚝 솟은 현대 건축물이 보이는가하면 말레이시아의 전통가옥들도 만나게 해준다. 중국풍의 건물들도 눈에 띈다. 또 어떤 곳에는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되었을 것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강변에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말라카 강변을 따라 1.6Km를 도는 관광용 시설로 2008년에 건설했단다. 하지만 기술적인 결함이 발생한 탓에 운행이 중단된 상태란다. 공중에 걸려있는 선로가 텅 비어있는 이유일 것이다.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나타나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 가옥촌인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단다.

 

 

 

강변에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등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의외로 많았다.

 

 

 

 

산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St, Francis Xavier’ Church)‘도 보인다.

 

 

강변의 풍경을 생각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삶의 현장이다. 누군가는 말라카를 보지 않고는 말레이시아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말레이시아의 500년 도읍으로 그들의 전통 문화는 물론이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들여놓은 유럽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역사적 장소라면서 말이다. 리버크루즈는 주마간산(走馬看山)로나마 그들의 문화를 엿보는 기회였지 않나 싶다.

 

 

 

리버크루즈는 저녁이 제격이라고 했다. 야간 조명으로 불 밝힌 경관이 가히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낮에라도 즐겨봤다는데서 위로를 받아야겠다.

 

 

가이드의 배려로 일정에 없던 해상 모스크(Masjid Selat Melaka)’를 찾았다. 밀물 때면 사원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해상이란 이름을 얻은 곳이다. 하지만 ‘Selat’의 원 뜻이 해협일지니 옳은 정보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은 인공으로 터를 닦고 그 위에다 세운 모스크이다. 그래서 밀물이 몰려올 때는 마치 바다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모스크는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었다. 경전 읽는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어느 이슬람 궁전으로 오해하기 딱 좋겠다. 그나저나 해상모스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몰이라고 한다. 시야를 가린 것이 없으니 떨어지는 해를 가릴 장애물도 없을 게 당연하다. 온전한 해를 볼 수 있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거기다 떨어지는 해를 저 아름다운 모스크의 지붕 위에라도 올려놓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지만 이는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린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원 옆에는 30m 높이의 첨탑(minare)’이 등대처럼 우뚝 서 있다. 신도에게 예배 시간을 알려주는 '아잔(adhan)'이 울려 퍼지는 곳이다. 이곳의 첨탑도 특이하기는 매한가지다. 아니 아까 말라카 시내투어 때 만났던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의 첨탑보다도 훨씬 더하다. 아까 것은 불교 사원의 탑을 연상시키기라도 했는데 이번에는 비슷하게 생긴 조형물을 아예 떠올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이스탄불 출장 때 현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첨탑의 개수에 대한 얘기가 떠오른다. 그는 첨탑이 하나면 나라에서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동네에 하나씩 있다고 보면 된다. 보통은 두 개인데 귀족들이 세우는 편이고, 술탄이 설립한 모스크에는 네 개를 세웠단다. 그렇다고 무작정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메카에 있는 마스지드 알하람(성 모스크)’7개보다 적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이곳은 나라에서 세웠다는 얘기일 것이다.

 

 

옆으로 이동하면 왜 해상 모스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바다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다 건물을 올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치 물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2006년에 지어진 저 사원은 중동과 말레이시아의 건축술을 융합시킨 것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국왕이 말라카에 선물의 의미로 지어주었단다.

 

 

 

바다에 지은 사원이다 보니 아래와 같은 다리 모양의 통로를 지나야 예배당에 이를 수 있다.

 

 

여자들은 히잡(hijab)이나 부르카(burqa)를 착용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게 귀찮았던지 집사람은 버스에서 에어컨이나 쐬고 있겠단다.

 

 

내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신자들이 몇 보일뿐 전체적으로도 한적하다는 느낌이다. 이슬람 사원의 특징이라 하겠다.

 

 

 

 

 

사원의 후면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말라카해협을 조망해보라는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가장 가깝게 잇는 해로(海路)이자 아시아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 비운의 해로다. 누군가는 저곳을 지구의 지름길이라 부른다.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1,600km를 더 우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또 해양 실크로드라 부르기도 한다. 비단에서 원유로, 오가는 물품은 달라졌지만 동서양 교역로서의 의미는 아직도 여전하단다.

 

 

말라카 해협은 말라카에서 수마트라섬 사이의 바다이자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경계이다. 세계 경제의 생명선이라고도 한다. 여기를 지나지 않고 우회하면 3일이나 더 걸리기 때문이다. 전 세계 선박이 실어 나르는 화물의 1/4 정도가 이 항로를 지난단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원유의 90%도 이곳을 지난다.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상품 대부분도 이곳을 지난다. 말라카 해협이 현대의 실크로드로 불리는 이유다. 동서양을 잇는 길이 쉬울 리 없다. 놀랍게도 최근 전 세계 해적 출몰지는 소말리아가 아니라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특히 말라카 해협이란다. 아직까지는 총기로 무장하진 않았다지만 느리게 항해하는 상선을 노린 해적선이 출몰한다는 곳이다. 말라카 해협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은 65km, 이 중 배가 다닐 수 있는 구간은 2.5km에 불과한데다 수심마저 20~30m 정도로 낮아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One God, One humanity, One religion, Many prophets’라고 적힌 문구가 눈길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되는 무슬림의 계보를 도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해 놓았다. 다른 종교를 인정할 틈을 주지 않는 문구가 싫어 빼버릴까 하다가 이 또한 여행의 추억이겠기에 올려봤다.

 

 

모금함처럼 보이는 통도 보였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화장실이었다. 분명히 화장실 표시가 붙어있는데 맨발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는 곳이 함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여행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 - 10.12()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셋째 날 : 말라카(Melaka) 시가지 투어

 

특징 : ’말레이시아의 경주라 할 수 있는 고도(古都)로 유럽풍의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시의 역사는 1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96수마트라 섬을 지배하던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왕자가 이곳으로 도망을 와서 세운 말라카 왕국이 시초이다. 말레이 반도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이후 왕국은 지리적 조건 덕분에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했고, 이를 기반 삼아 말레이 반도 전역으로 세력을 넓힌다. 말라카에 비운이 드리운 것은 1511년 포르투갈이 침입하면서다. 이후 향료 무역 독점을 노리며 동양진출의 거점 확보에 나선 서양세력의 각축장으로 변한다.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1824년에는 페낭·싱가포르와 더불어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중국인과 인도인도 대거 유입되었다. 이후의 상황은 쿠알라룸푸르와 같으니 생략하겠다. 이러한 각국의 쟁탈사는 결과적으로 말라카에 많은 사적을 남겼다. 세인트폴언덕의 유적을 비롯하여 세인트존 언덕의 성채. 이밖에 박물관도 여럿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2008)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관광객들이 몰려들지 않을 리가 없다. 매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의 수와 거의 맞먹는단다.

 

버스는 우릴 메르데카 공원앞의 광장에다 내려놓는다. 지도에는 ‘Taman Bunga Merdeka’로 표기된 도심공원인데다 인근에 유적이나 박물관 등의 볼거리들이 몰려있어 말라카 투어의 출발점으로 이용하고 있나보다.

 

 

 

공원 앞에 조성된 너른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타밍 사리 전망대(Menara Taming Sari)’가 있었다. 높이는 110m의 수직 전망대로 360도 회전 전망이 가능한 시설이다. 66명이 정원인 원형 곤돌라가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는데 이때 말라카 시내와 세인트 폴 언덕은 물론이고, 멀리 말라카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단다. 하지만 우린 타워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보수공사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다는데 어쩌겠는가.

 

 

공원에는 말레이시아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현관에 부착되어 있는 전광판은 ‘Selamat Datang / Welcome’. 우릴 환영한단다. 같은 뜻의 두 언어를 합쳐놓았을 정도로 격렬히 말이다. 하지만 건물의 용도는 알 수가 없었다. 레스토랑처럼 보이는데 건물 앞에 공공건물임을 나타내는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건너편에는 유럽에서나 볼 법한 예쁘장한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암스테르담(Amsterdam)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그러고 보니 이곳 말라카도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200년에 가깝게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었다.

 

 

공원의 숲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지구본을 올려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Resilient cities Asia-Pacific 2016’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관련 국제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던 모양이다.

 

 

‘10th Anniversary of Melaka UNESKCO World Heritage city cerebration’라고 적힌 동판도 만날 수 있었다. 이곳 말라카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바 있다. 그러니 지정 1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 때 세운 기념물일 것이다. 그나저나 동판에 새겨놓은 손바닥은 누구의 것일까?

 

 

숲속에는 우물처럼 생긴 시설도 있었다. ‘St Francis xavier commemorative stone’. 안내판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1506-1552)’ 성인을 기념하는 돌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이곳 말레이시아와 인도,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사람이다. 1622년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모셔졌고, 1927년에는 모든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우물 안에 모셔져 있는 돌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성인이 멜라카에서 처음 발을 디딘 돌이라고 한다. 원래 바다에 있었으나 1937-1739년 영국이 매립작업을 하면서 내륙으로 옮겨 놓았단다. 그 외에도 1954년의 재건과정 등의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그나저나 안내판에 적힌 ‘the city cross’는 무슨 뜻일까?

 

 

숲을 빠져나오니 ‘Dataran pahlawan Melaka Megamall’이란 대형 쇼핑물이 나온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파는지를 알 필요가 없기에 그냥 통과해버린다. 까짓 선물용 소품이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의무 쇼핑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산티아고 요새로 가는 길에는 유적지 발굴 현장도 지나게 된다. 남부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풍경이기에 다가가 봤더니 산티아고 요새(Santiago Bastion)’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다보면 천 년도 훨씬 넘는 유적들도 방치되고 있는 곳이 많은데 500년을 겨우 넘긴, 그것도 축대에 불과한 유적을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다.

 

 

유적지 근처의 벽면에 부착된 동판(銅版)이 특이하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말레이시아 귀족의 뒤로 각기 다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외국 사신들을 줄줄이 거느릴 정도로 중요한 행사가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잠시 후 산티아고 요새앞에 있는 널따란 광장에 이른다. 바로 곁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는 물론이고 독립선언기념관과 이슬람 박물(The Malay & Islamic World Museum)’, ‘우표박물관(Melaka Stamp Museum)’, ‘말라카 술탄 궁전(Melaka Sultanate Palace Museum)’ 등의 볼거리들이 몰려있어 네덜란드 광장(Dutch Square)’과 더불어 말라카관광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이다.

 

 

광장의 왼편에서 우린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요새는 말라카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세인트 폴스 언덕(St. Paul's Hill)’의 동쪽 기슭에 남아 있는 군사용 시설이다. 1511년 이곳 말라카를 점령하고 있던 포르투갈의 군대가 네덜란드 군대의 침략을 대비하여 건설했다. 당시에는 산을 에워 쌀 만큼 거대한 성채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군과의 전투에서 패했고 요새는 허물어져 지금은 성채의 흔적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이 요새는 현지인들 사이에는 에이 파모사(A’ Famosa)‘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산티아고(Santiago)라는 이름은 파모사라고 불리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들의 수호성인이던 성 야곱(St. Jacob)‘을 가리키는 산티아고(Santiago)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단다.

 

 

요새의 문() 위에 뭔가가 새겨져 있다. 어느 글에선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사용하던 문장(紋章)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요새는 뼈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길재(吉再)의 시에 딱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다.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포르투갈이 지은 요새였지만 끝내는 네덜란드라는 신흥강국에 빼앗겼고, 지금과 같은 폐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밖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대포가 놓여 있었다.

 

 

건너편에는 돌출된 중앙 현관과 좌우의 돔(dome) 등 유럽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독립선언 기념관(Melaka Proclamation of Independence Memorial)’이다. 1912년 영국인들의 사교장인 말레카 클럽으로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말레이시아 독립과 관련된 사진이나 자료 등을 전시한 기념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1956년 말레이시아의 독립 협상단이 영국에서 말레이시아의 독립 약속을 얻어 낸 뒤, 귀국하여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민에게 보고한 곳이어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독립관련 기념관으로 꾸민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독립선언기념관 뒤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중후한 멋을 자랑하는 목조주택, ‘말라카 술탄 궁전(Melaka Sultanate Palace Museum)’이 나온다. 이슬람의 지도자를 뜻하는 술탄의 거주지로, 현재 건물은 1985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궁전은 진갈색의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는데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으며 지붕의 경사가 급한 것이 특징이다. 정면 중앙에 삼각형 지붕이 있는 현관이 있고 좌우에 3개씩 비슷한 모양의 발코니가 있다. 내부는 현재 문화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말라카 왕국시절 술탄과 신하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사신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가 하면 당시의 전통 의상과 장식품을 전시하고 있어 말라카 왕궁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산티아고 요새의 뒤쪽에 놓인 데크 계단을 따라 세인트폴스 언덕(St. Paul's Hill)’으로 오른다. 저 언덕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세운 또 하나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언덕(St. Paul's Hil)에 이르면 또 다른 폐허를 만나볼 수 있다. ‘세인트 폴 교회(St. Paul's Church)’1521두아츠떼 코엘료(Duarte Coelho)’라는 포르투갈의 장군이 시내에서 제일가는 가톨릭교회를 만들겠다며 지은 성당이다. 이후 이 도시는 네덜란드인에게 점령되었고 성당도 세인트 폴 교회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1753년 막상 크리스트교회로 재건되었을 때는 교회가 아닌 귀족을 위한 묘지로 사용했단다. 이곳은 스페인 귀족 출신의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에르(St. Francis Xavier)’가 묻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죽은 그가 인도로 이장하기 전까지 잠시 이곳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교회 앞에는 아직도 사비에르의 동상이 말라카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교회도 역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게 안타까웠던지 이곳에서 발굴된 것으로 여겨지는 석판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이 한때 네덜란드 귀족들의 무덤으로 쓰였다고 했으니 그들의 묘비(墓碑)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항해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온전하다 싶은 공간도 있었다. 중앙의 일정 공간을 철제구조물로 가려놓기도 했다. 함께 기웃거리던 외국인이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의 관이 모셔져 있던 자리라고 귀띔해준다. 철제 구조물에 예수회의 ‘ISH’ 표식까지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옳은 정보일 것이다. 아니 옳고 그름은 차후의 문제이고 그의 호의가 고마울 따름이다.

 

 

 

언덕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카 해협이다. 맑은 날에는 바다 건너 인도네시아 땅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소문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해협보다는 말라카 시가지의 풍경이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르투갈 양식의 집들이라도 눈에 담아보고자 했다. 어느 글에선가 포르투갈 통치시대에 이주한 사람들의 마을이 요 아래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얀 벽과 붉은색 지붕이 특징이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붉은색이어서 구별하는 데는 실패했다.

 

 

반대편에는 산티아고 요새가 내려다보인다. 이쪽 방향에도 시가지가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것이 신시가지인 모양이다.

 

 

올라왔던 반대편으로 언덕을 내려가는데 진행방향 저만큼에 말라카 정부 박물관(Melaka The Government Museum)’이 모습을 드러낸다. 네덜란드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총독의 거주지 겸 사무실로 1996년까지 주지사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2002년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식민지시대의 총독 거주지 및 사무실에 관한 자료와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여러 주지사의 거실 및 식당 등에서 쓰던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우리 같은 패키지 여행자들에게 저런 정도의 박물관까지 들여다본다는 것은 사치일 것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스타더이스(Stadthuys)’가 나온다.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는 네덜란드 양식의 건물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건물로 1650년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으로 세워졌다. 말라카의 지배권이 영국으로 넘어간 뒤 1826년에는 영국인들이 다니는 말라카 자유학교(나중에는 고등학교)’가 개교했다. 1931년 이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네덜란드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은 현재 역사·민족박물관(History & Ethnography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말라카왕국에서 시작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통치까지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지만 이곳도 역시 패스하기로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금요일)이 휴관이라지 않는가. 참고로 스타더이스(Stadthuys)’는 네덜란드 말로 시청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말라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말라카의 중심광장인 네덜란드광장에서 시계탑, 그리스도교회와 더불어 말라카의 상징(land mark)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타더이스의 앞은 네덜란드 광장(Dutch Square)’이다. ‘말라카는 더치 광장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17~18세기 네덜란드인에 의해 조성된 이 광장은 말라카의 랜드 마크이자 말라카 관광의 중심이다. 총독 공관인 스타더이스, 그리스도 교회, 시계탑, 분수 등 식민지시대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대부분 이곳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광장은 온통 붉은색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스타더이스는 물론이고 교회, 시계탑 등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이 하나같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는 것이다. 말라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붉은 벽돌담이 워낙 강렬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광장의 얼굴마담은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 교회(Melaka Christ Church)’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유명하다면 한번쯤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이 건물은 네덜란드 통치시절인 1753년에 개신교의 예배당으로 문을 열었다. 건물은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벽돌을 사용해 지었단다. 건물의 정면에는 3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지붕은 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붕 중앙에 작은 종탑을 두었다. 하지만 교회 내부는 보잘 것이 없었다. 제단 뒤쪽에 최후의 만찬벽화가 있을 뿐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 교회 전면의 ‘Christ Church Melaka 1753’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쓰인 것이라고 한다.

 

 

빅토리아여왕 분수(Queen Victoria Fountain)’도 광장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1901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라 불리는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분수인데, 사방에서 기둥 쪽으로 물을 쏘는 독특한 구조이다. 분수의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수조(水槽)와 빅토리아여왕·영국 왕실문장 등이 새겨진 부조(浮彫)도 볼거리니 놓치지 말 일이다. 분수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고풍스러운 시계탑(Red Clock Tower)’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1886년 중국계 거상 탄벵스위(Tan Beng Swee)’가 세웠다고 해서 탄벵스위 시계탑이라고도 부르는데, 3층의 4면에 배치한 시계가 탑의 규모에 비해 너무 작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곳에도 역시 ‘Love’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팝아트 조형물은 아니더라도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I love Melaka’라는 문구가 좋아 인증샷이라도 찍을까 했지만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스도교회 바로 옆에는 유스 박물관(Malaysia Youth Museum)이 자리하고 있었다. 1931년에 지어졌다는 아치형 회랑이 있는 2층 건물인데 1층에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발전상을 보여 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광장의 건너편에는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건물이 외형이 아름다워 사진의 배경으로 딱 좋다. 말레이시아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광장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운하가 나온다. 도시를 관통하는 뱃놀이 코스로 이용되는 탓에 지나다니는 유람선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톡톡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낮보다 밤에 들러야 제 맛이라고 한다. 운하 주변의 불빛 흘러내리는 야경이 환상적이기 때문이란다.

 

 

운하에 기대어 놓은 쉼터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는데 갑자기 목이 말라온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경관에 취해 목이 마른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골라든 게 수박 쥬스. 수박의 내용물을 꺼내어 얼음과 함께 갈은 다음 다시 집어넣었는데 여간 시원한 게 아니었다.

 

 

이젠 말라카의 내면을 기웃거려 볼 차례이다. 이때 우리처럼 시간에 쫒기는 패키지 여행자들은 대개 트라이쇼(Trishaw)’라는 삼륜 자전거를 이용한다. 온갖 캐릭터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빽빽거리는 경적과 대형 파라솔을 장착한 관광용 자전거로 보면 되겠다. 얼핏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낯선 나라에서의 즐거운 일탈쯤으로 여기면 될 일이다. 아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말라카 경치를 만끽하는 재미는 일탈 그 이상이다

 

 

첫 번째로 들어선 곳은 잘란 투캉 에마스(Jalan Tukang Emas)’로도 불리는 하모니 스트리트(Harmony street)’이다. 다양성이 특징인 말라카인 만큼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 등의 오래된 사원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이 단연 인기가 높다. 하모니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했지 싶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녹색 삼각형 지붕이 유난히 눈에 띠는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 하모니 스트리트의 3대 사원 가운데 하나로 1748년 인도계 무슬림 상인이 처음 세웠고 1872년 수마트라 건축 양식으로 개축했다. 모스크는 녹색의 2단 사각 지붕이 있는 예배당과 예배당 옆 사각의 첨탑, 그리고 손 씻는 연못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첨탑이 아닐까 싶다. 터키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두바이 등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이고,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여느 국가에서도 저렇게 생긴 첨탑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보았던 쿠알라룸푸르의 국립모스크와도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예배당은 기도하는 넓은 공간이 있을 뿐 특별한 장식은 없었다. 이슬람사원의 특징일 것이다. 참고로 이 모스크는 인도계 이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모스크의 이름도 캄풍(Kampung)’마을클링(Kling)’인도계 무슬림을 뜻한단다.

 

 

모스크 근처에는 1781년에 지어졌다는 스리 포야타 비나야가 무르티 사원(Sri Poyyatha Vinayaga Moorthy Temple)’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이며 복과 재물을 부른다는 코끼리 모양의 신인 가네샤(Ganesha)’를 모신단다. 가네샤는 그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인 줄 모르고 목을 베어버린 다음 후회를 하면서 코끼리의 머리를 대신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가네샤의 형상을 보면, 머리는 코끼리 형상이며 몸은 사람의 몸과 같은 모습을 지녔단다.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지만 이곳도 역시 패스한다. 트라이쇼가 세워주는 곳에서만 자유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는 쳉훈텡 사원(Cheng Hoon Teng Temp)’에 이른다. 청운정(青云亭)이라고도 불리는데 15세기 초. 말라카에 머문 명나라 장군 정화를 기리기 위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라는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1645, ‘카피탄 차이나(Kapitan Cina, 중국인 지도자)’‘Lee Wei King’이 중국에서 모든 자재를 들여와 지었다고 한다. 지붕과 기둥도 중국 양식의 도자기와 유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1406년에 이 땅을 찾은 정화 장군을 기념하는 비석도 있다. 그런 점을 인정받아 2003년에는 유네스코의 보호건물(UNESCO award for outstanding architectural restoration)’로 지정되기도 했단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산문(山門)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붕 위로 올라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쌍사자 석등이 산문 좌우를 지키는가 하면 벽엔 용틀임 장식을 하는 등 매우 화려하면서도 특이한 형태를 보여 준다.

 

 

본전(本殿)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사원의 지붕은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값비싼 도자기를 깨서 장식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말레이시아는 도자기 제작기술이 뒤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중국 사원은 도자기를 깨서 모자이크처럼 장식했다고 한다. 보존 상태도 훌륭했다. 지은 지 4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전체적으로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불당의 안은 참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합장을 하며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있는데 그 신심이 전해지는 듯했다.

 

 

또 다른 특징은 도교와 유교, 불교를 하나의 사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의 신은 물론 관음상이다. 여기에 문과 무를 겸비한 관우를 함께 모신다. 옆 건물에서는 조상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었다. 자신의 직계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이룬 조상을 중심으로 모신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말라카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인 거리 투어는 꽤 오래 지속됐다. 방금 지나온 하모니 스트리트(Harmony street)’나 앞으로 가게 될 탄 쳉 로크 거리(Jl. Tan Cheng Lock)’,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 등 골목길을 누비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승용차 두 대가 가까스로 비켜 갈 정도의 좁은 길 양 옆으로 중국풍의 오래된 2층 시멘트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쯤 전에 지어졌을 건물들 가운데는 식당이나 여행자 숙소, 갤러리, 가게로 쓰이는 곳도 많이 보였다. 아무튼 말레이시아의 경주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풍경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었다.

 

 

 

네덜란드광장 근처에는 산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St, Francis Xavier’ Church)‘도 있었다. 말라카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가톨릭을 전파한 예수교 선교사 자비에르를 기리기 위한 곳이다. 교회는 고딕 양식으로 양쪽에 종탑이 있고 중앙에 커다란 별 모양의 창과 아치형 문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성당 마당에는 자비에르의 동상과 더불어 안지로의 동상이 서 있다. 안지로(세례명인 안젤로의 일본식 발음)는 살인을 저지르고 포르투갈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말라카로 도망쳐 이곳에서 죄를 뉘우치고 세례를 받은 일본인이다. 포교에 심혈을 기울이다 중국에서 죽었다고 한다.

 

여행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 - 10.12()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둘째 날 : ’바투동굴(Batu Caves)‘겐팅 하일렌드(Genting Highlands)‘

 

특징 : 바투 동굴(Batu Caves) : 쿠알라룸푸르 북쪽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과 힌두교 사원이다. 1878년 미국인 탐험가 윌리엄 호너비가 이곳을 탐사한 뒤 세상에 알려졌으며, 1891년 동굴 안에 힌두교 사원이 세워지면서 명소로 발전했다. 힌두교 인도 타밀족이 숭배하는 무르간 신(Murugan)‘의 전설이 깃든 이 동굴은 인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힌두교 성지로 알려진다. 그래서 1365일 힌두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특히 매년 1~2월에 열리는 힌두교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 때는 전국 각지에서 은마차에 무루간의 초상 또는 신상(神像)을 싣고 바투 동굴로 모여든다고 한다. 수만의 인파가 몰려드는 이 기간에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힌두교 순례자들의 고행순례도 이어진다. 맨발로 속죄의 계단을 오르거나 바늘로 몸을 찌르는 등의 고행의식도 이때 볼 수 있다고 한다.

 

겐팅 하이랜드(Genting Highlands) : 쿠알라룸푸르에서 북동쪽으로 51km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복합 레저타운으로 겐팅(Genting, 구름 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발 1,950 m의 산 정상에 자리한다. 말레이시아 유일의 카지노가 있다고 해서 구름 위의 라스베이거스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1971년에 유럽풍의 하이랜드 호텔이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카지노와 놀이동산, 리조트, 골프장 등을 갖춘 복합 레저타운으로 성장했다. 스카이다이빙 체험과 암벽등반, 스노월드 등 독특한 즐길거리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스노월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유일하게 눈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란다. 거기다 고원지대의 특성상 날씨까지 싸늘하다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단다.

 

바투동굴은 유명 관광지답게 너른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거대한 바위절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투동굴은 그 절벽의 중간쯤에 뚫려있고, 거기까지는 긴 계단으로 연결된다.

 

 

 

계단의 왼편에도 아름답게 채색된 건물이 있었다. 실내 공간이 엄청나게 너른 걸로 보아 신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힌두교사원의 행정건물일 것이고 말이다. 그들의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 때면 수만 명이 찾아온다는데 이 정도 넓이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래 사진은 타이푸삼(Thaipusam)’ 축제에 대한 자료사진이다. ‘타이푸삼이란 신성한 달을 뜻하는 타이(Thai)보름을 뜻하는 푸삼(Pusam)의 합성어로 인도계 타밀족이 말레이시아로 이주하던 19세기 말엽 시작된 축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보름축제라고 할 수 있다. 축제는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이곳 바투동굴(Batu Caves)이 가장 볼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카바디(kavadi)’라 불리는 장식을 어깨에 두르고, 머리에는 커다란 팔 코둠(pal codum)’을 얹고 밤새 걷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팔 코둠이란 우유병으로, 큰 것은 어른 키를 넘어선다. 그들은 또 타이푸삼이전부터 금식과 금욕으로 스스로를 정화하는데 순례 때는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얼굴과 혓바닥을 찌르는가 하면 피부를 관통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고통을 못 느낀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동굴로 오르는 계단의 초입에는 힌두교에서 모시는 전쟁과 승리의 신()무루간(Murugan)’의 거대한 황금색 입상이 서있다. 42.7m나 되는 키를 자랑하는 무루간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Vel)’이라고 하는 창이란다. 그런데 신상의 소재가 철근콘크리트란다. 거칠기 짝이 없는 소재로 어떻게 저런 유려한 조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깊고 깊은 그들의 신앙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나 싶다.

 

 

계단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一柱門, 사실은 12기둥 이었다)은 이곳이 힌두교 사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문의 지붕위에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상(神像)들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신의 숫자가 가장 많은 종교가 바로 힌두교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힌두교의 신은 브라흐마와 비슈누, 시바 등 트리무르티(Trimurti : 삼주신)’와 그들의 배우자인 사라스바티·락슈미·파르바티의 트리데비(Tridevi)’, 그리고 수많은 남신과 여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도 악신(惡神)아수라(악신의 총칭)’가 있다.

 

 

 

동굴을 보기 위해서는 무루간 옆으로 나있는 45도 경사의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계단의 수는 272. 인간이 평생 짓게 되는 ()’와 같은 숫자라고 한다. 힌두교의 믿음에 따라 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하나씩 속죄해 나가라는 의미로 같은 수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계단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다. 하긴 속죄하는 게 쉽다면 누가 죄 짓는 걸 두려워하겠는가.

 

 

계단을 오르다보면 꽤 많은 원숭이를 만나게 된다. 점잖게 앉아있는 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다가갈 일은 아니다.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음료수나 과자, 과일 등 먹을 것을 손에 들어서는 안 되고, 꽃이나 화환을 들 때도 조심해야 한다. 손에 들거나 목에 두를 경우 원숭이들이 노리는 목표물이 되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나 스카프도 요주의 품목이다. 손에 든 비닐봉지는 아예 먹을 것이 들었다는 징표란다. 빼앗기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처까지 입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72계단 가운데 204계단에서 옆으로 길이 하나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크 동굴(dark cave)’로 가는 길이다. 저곳은 유로(有料)이다. ‘35링릿(1만원 남짓)’이니 가격도 꽤 된다. 현지 영어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2km 정도의 캄캄한 동굴을 탐험하는 체험코스이기 때문이다. ‘5링릿만 더 내면 입구에서 사롱(sarong)을 빌릴 수 있으니 옷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루 동안에 쿠알라룸푸르 시가지도 모자라 이곳 바투동굴에다 겐팅 하일랜즈(Genting Highlands)’까지 끼워 넣었으니 어떻게 1시간이나 짬을 낼 수 있겠는가.

 

 

계단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동굴 입구에 또 하나의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절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가운데 두 번째인 천왕문(天王門)쯤 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절이 아니어선지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서 사방을 살핀다는 사천왕(四天王)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붕위에다 스토리가 있을 법한 신상(神象)들을 배치했다. 어쩌면 바투동굴에 얽힌 전설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동굴에 얽힌 전설을 그냥 흘려버릴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인도에 스리 마하 마리암만(Sri Maha Mariamman)’이란 신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카나바다무르간;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단다. 어느 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주변을 세 바퀴 돌고 오는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둘째 아들인 무르간이 지구를 세 바퀴 돌고 온 반면, 큰아들인 카나바다는 그녀를 세 바퀴 돈 다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라고 대답했단다. 첫째 아들이 승자의 자리를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화가 난 둘째 아들 무르간이 동굴로 들어가 버렸는데, 그 동굴이 이곳 바투동굴이라는 것이다. ’타이푸삼(Thaipusam)‘ 축제는 이 전설에서 유래됐단다. 여신 스리 마하 마리암만(Sri Maha Mariamman)’이 자신의 처분을 후회하며 그녀의 둘째 아들 우르간에게 만나달라고 통사정을 했으나 거절을 당했고, 대신 1년에 한 번 동굴에서 나와 어머니를 만나주었는데 그 날이 바로 타이푸삼축제라는 것이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 고개를 돌려보면 쿠알라룸푸르 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희미하게나마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KL 타워도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린데도 이 정도라면 화창한 날에라도 찾아왔다면 눈터지는 조망을 즐길 수 있었겠다. 이곳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는 13, 그다지 멀지 않은데다 지대까지 높다보니 가능했을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다. 올라오느라 고생한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동굴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린 종유석들이 하나같이 빼어난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중세에 지어진 가톨릭성당의 파사드(facade)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파사드와는 달리 이곳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단다. 명장의 솜씨처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신전을 세우고 조명을 달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많이 훼손되었다는데도 이 정도라면 처음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궁금하다.

 

 

 

종유석(鐘乳石, stalactite)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한 저 돌기둥은 석순(石筍, stalagmite)이 분명해 보인다. 종유석과 석순이 연결된 석주(石柱)도 있다고 했는데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직 동굴에 들어서지 않았는데도 여러 개의 힌두교 신전(神殿)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고무농장 이주 인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니 어련하겠는가. 타밀지방의 하위 카스트 출신 힌두교도가 주류인 말레이시아의 인도인들은 지금도 매년 초 타이푸삼 축제에 맞춰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토픽으로 자주 소개되는 온 몸에 바늘이나 철사를 꽂는 독특한 고행의식을 벌이기도 한단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실내체육관보다도 훨씬 더 넓고 높은 동굴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굴의 내부에는 힌두교 사원이 여럿 자리 잡았다. 굴처럼 움푹 파인 곳만 있으면 어김없이 사원이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모셔놓은 신상들이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가히 힌두교 세상이라 하겠다. 하긴 CNN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세계 자연경관 1001’에 뽑힌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노란 옷을 입는 힌두교 사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신자의 이마에 액운을 몰아내고 복을 가져다주는 붉은 점인 신두르(Sindoor)’를 찍어주는 광경이 제법 볼만하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천정에는 작은 구멍 두어 개가 뚫려 있었다. 조금 부족하지만 채광창으로 이용해도 되겠다.

 

 

100m 정도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산 분화구처럼 거대한 구멍이 뚫린 별천지가 나온다. 천장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흐린 날에도 저렇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라면 햇볕이라도 내리쬐는 날에는 가히 환상이겠다. 그 별천지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인간이 지은 죄는 272개로도 부족했던가 보다.

 

 

아래 사진은 조금 전에 지나온 동굴을 위에서 내려다 본 것이다.

 

 

끄트머리 공간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농구장 하나쯤은 족히 들어가겠다. ! 이곳도 역시 힌두교 제단이 여럿 보였다. 이중 으뜸으로 모셔지는 신은 파괴의 신인 시바신((Shiva)’의 아들 무루간(Murugan)’이다. 무루간은 특히 타밀족(Tamil) 힌두인들 사이에서 널리 대중적으로 신앙되는 신이다. 말레이시아 힌두교도들의 주류가 타밀지방 출신들이다보니 자연스레 바투동굴의 주신(主神)이 되지 않았나 싶다.

 

 

 

종유석의 형태가 더욱 정교해졌다. 그리고 그 숫자도 많이 늘어났다.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gallery)라 하겠다. 신의 영역 앞에 선 나는 문득 작고 하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도 작은 욕심 하나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말이다. 그래! 오늘만이라도 마음을 비워보자. 비운 것만큼 채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연두부에 난 수저 자국처럼 보이는 바위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이뿐 아니라 동굴에는 인간의 솜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많이 보였다. 가끔은 구멍뚫인 천장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만들어놓은 자국도 볼 수 있었다. 이 동굴이 4억 년 전에 생성되었다니 얼마나 많은 빗물이 흘러내렸을까?

 

 

고개를 들면 뻥 뚫린 구멍이 보인다.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사위가 밝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간다. 하늘창이 저렇게 크니 별도의 불빛을 들이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절벽의 바위틈에서 노닐고 있는 원숭이들이 꽤 많아 보였다. 하지만 바닥으로 내려온 원숭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선지 원숭이에게 줄 땅콩을 파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출근 전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온 계단 아래의 광장, 왼편으로 조금만 더 가면 15m 높이의 거대한 녹색 하누만(Hanuman)’이 입구를 지키는 라마야나 동굴(Ramayana Cave)’이 있다고 했다. 방금 다녀온 사원 동굴(Temple Cave)’, 체험코스인 다크동굴(Dark Cave)’과 함께 세 개로 이루어진 바쿠 동굴(그래서 cave에 복수형인 ‘s’가 붙어있을 것이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단다. 이 동굴은 또 내부에 다양한 힌두신상과 힌두 신화를 그린 벽화가 있다고 해서 갤러리동굴(Gallery Cave)’로도 불린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들러보지 못했다. 아니 가이드에게 부탁조차 못해봤다. 하루 동안에 쿠알라룸푸르 시내 투어로도 모자라 바투동굴에 겐팅 하일렌드까지 돌아보는 일정이라니 곁눈질조차 언감생심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누만은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는 힌두교의 하위 신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편이란다.

 

 

겐팅 하일랜드투어는 산 아래에 있는 겐팅 스카이웨이(Genting skyway)’하부 정거장(lower station)’에서 시작된다.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고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텅 비어있다. 하루 6만 명 이상이 겐팅 하일랜드를 방문하고 연간으로 치면 3000만 명이나 된다는데 의외라 하겠다. 어쩌면 붐비지 않는 시간대를 이용하겠다는 가이드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 켄팅 하일랜드는 자동차로도 오를 수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스카이웨이(skyway)’를 이용한다.

 

 

정거장에는 우리가 타고 갈 케이블카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정도로 튼튼하니 안심하고 이용하라는 모양이다.

 

 

포토죤(photo zone)’도 만들어 놓았다. 탑승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모양인데, 고맙긴 하지만 배경으로 세운 조형물이 이집트의 것이라는 게 눈에 거슬린다. 이곳 말레이시아를 상징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케이블카의 정원은 8,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2, 또는 4명씩 가족단위로도 탈 수 있었다. 길이 3.4km겐팅 스카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21.6 /h) 케이블카로 알려져 있다. 최고 속도로 움직일 때는 초당 6m를 달리기도 한단다.

 

 

스카이웨이(skyway) 주변은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했다. 선로(線路) 아래에 꽃과 나비 등의 조형물들을 설치해 이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정글 속에는 동물과 원주민(오랑 아슬리)의 조형물을 넣어두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재미까지 보탰다고 한다.

 

 

케이블카는 꽤 놓은 허공을 난다. 그렇다고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가계와 태항산 등 중국의 여러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며 쌓아온 내공 덕분일 것이다 거기다 케이블카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발아래로 열대림이 기세를 보이기도 한다. 도시의 빌딩보다도 높아 보이는 열대의 나무들이 하늘에 길이라도 만들 듯이 높다.

 

 

그렇게 오르기를 20분 여, 드디어 켄팅 하일랜드에 도착한다. ‘겐팅(Genting)’은 이곳 말로 구름의 위운정’(雲頂)을 뜻한다. 이름처럼 겐팅 하일랜드는 산의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구름의 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현대적 여유를 상징하는 이곳은 정착한 화교사업가 림고통이 1970년 개장했다. 용인의 에버랜드격인데 여기에 카지노와 휴양기능이 접목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강원랜드가 그 규모를 부풀렸다고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겐팅 하일랜드이다. 최고의 호텔과 카지노, 아웃도어와 인도어 테마파크, 산 중턱의 친쉬 동굴 사원, 산 아래의 딸기 농장, 아와나 겐팅 호텔, 골프장 등이 있어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린 곧장 인도어 테마파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2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입맛만 다시고 가라는 모양이다. 아무튼 테마파크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때문에 가는 도중 여러 종류의 편의시설을 지나게 되는데, 아래 사진의 어린이 놀이시설도 그중 하나이다.

 

 

창밖으로 커다란 놀이시설이 내다보인다.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20세기폭스(21st Century Fox)’에서 월드 테마파크(World Theme Park)’를 이곳에 세운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저걸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일까?

 

 

드디어 도착한 인도어 테마파크,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겐팅 하일랜드를 검색해 볼 때만해도 그게 그거려니 했는데 막상 와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복합시설이었다. 놀이시설과 도박장은 지하 4, 2-4층은 명품 숍과 식당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직접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들어선 식당은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다양하단다. 그저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기만 하면 될 일이다. 다만 가격이 조금 센 것은 감안해야 한단다. 여행사의 점심 스케줄이 리조트 밖에 있는 한식당으로 정해진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춘 실내 테마파크는 많은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그룹들도 꽤 많이 보였다. 겐팅 하일랜드가 기획한 아이템이 먹혀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겐팅 하일랜드의 성공 요인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목적 리조트 시설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강원랜드를 떠올려보면 대충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림우통이라는 강력한 사업주체가 있었다는 점은 주식의 절반을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강원랜드와 확실히 구분된다. 고객의 기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레저산업의 특성상 강력한 사업주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봐야 한다. 강원랜드에서 눈여겨 봐둬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자료 사진을 이용했지만 카지노(casino)에도 들어가 봤다. 겐팅 하일랜드의 대표적인 위락시설이라면 단연 카지노가 꼽힌다. 말레이시아 유일의 카지노이기도 하지만 축구장 크기의 두 배도 넘는다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넓은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가득 차있었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옛 추억을 살려 불랙잭(Blackjack)’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소란스러움에 질려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집사람까지 패싱시킨 건 아니다. 이왕에 왔으니 슬롯머신(slot machine)’이라도 체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잃은 돈은 공짜 음료로 대신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여행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 - 10.12()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첫째 날 :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Marina bay)‘리버 크루즈(River Cruise)‘

 

특징 : 마리나 베이( Marina Bay)는 전망 좋은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쇼핑몰이 즐비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싱가포르의 남쪽 끝, 넓은 바다와 높은 빌딩들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마리나베이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싱가포르의 핵심 볼거리를 모두 눈에 담을 수 있다. 플러턴 호텔 앞은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 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바다 건너편에는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웅장하게 서 있다.

 

네 번째 방문지는 마리나 베이. 그중에서도 싱가포르 제일의 핫 플레이스(hot place), 그러니까 이곳 마리나베이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마리나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호텔을 찾았다. 독특한 모양새로 지어진 57층 규모의 이 호텔 옥상에 스카이 파크라는 싱가포르 제일의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데 어찌 거를 수 있겠는가.

 

 

 

스카이파크로 올라가려면 일단은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때 스카이 파크의 전경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항공(航空)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니 무심코 흘려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길게 늘어선 줄이 또 다른 볼거리라던 매표소는 의외로 한산했다. 덕분에 우린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도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입장료는 23싱가포르달러로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개방된다. 또 다른 절약 방법도 있다. 57층 전망대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바를 이용하면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입장료의 비용이나 바에서 음료를 마시는 비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니 한번쯤 고려해 볼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스카이 파크(sky park)’. 200m 높이의 허공에 있다고 해서 도심 속의 하늘 정원으로 불리며, 낮에는 하늘과 가장 가깝고, 밤에는 싱가포르 최고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3,9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는 널찍한 전망대(아래 사진) 외에도 인피니티 풀을 갖춘 완벽한 공간으로 평가 받는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인피니티 풀에는 200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져 있어 마치 열대 오사시스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단다. 이름에 ‘park’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일 것이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 때는 김정은이 이곳을 찾아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같은 해 7월엔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전망대에 올랐다고 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국가원수들이 이곳을 다녀갔단다. 그만큼 뛰어난 뷰를 보여준다는 증거길 것이다.

 

 

전망대에는 레스토랑과 바를 겸하는 셀라비(Celavi)’가 들어서 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즐길 수 있으며 스카이 바와 클럽 라운지에서는 칵테일 등의 음료를 맛볼 수도 있다. !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는 전망대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입장료와 바의 음료 값이 별 차이가 없으니 이왕이면 셀라비를 이용해보라는 귀띔도 있었다. 하나 더, 아래층에는 스낵코너가 있었다. 커피와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는 생맥주도 내놓는다. 생김새는 조금 묘하지만 꼬치도 준비되어 있으니 요기를 때울 수도 있겠다.

 

 

반대편에는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이 있다. 인피니스풀이란 시각적으로 경계가 없는 수영장을 말한다. 물과 하늘이 이어지는 풍경으로 설계되는 게 보통인데, 그런 풍경은 호화 리조트나 고급호텔의 품격을 나타내는 광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다. 호텔 투숙객들에게만 개방되기 때문이다. 구경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치러야할 절차가 번거로워 그만두기로 했다.

 

 

 

난간으로 다가가자 싱가포르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Republic Plaza, OUB Centre, UOB Plaza 등이 몰려있는 비즈니스구역을 왼편에 두고 중앙에는 Fullerton Hotel과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 상이 있다. 눈을 조금 크게 뜨면 대법원 청사와 Esplanade다리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맨 오른쪽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둥그런 지붕은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이다. 세계 6대 콘서트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공연장으로 뾰족뾰족한 지붕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일인 두리안을 닮았다고 해서 두리안이란 별명을 얻었다.

 

 

연꽃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이 호텔을 설계한 모셰 샤프디가 디자인한 싱가포르 예술·과학박물관 (Singapore Art Science Museum)’으로 미술과 과학이 결합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곳이다. 각 갤러리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전시기법으로 살바도르 달리, 반 고흐 등 세계 최고급 예술과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단다. 여행자들이 꼭 가봐야 할 박물관 중 하나다. 그 뒤에 보이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장이라는 더 플루트 마리나베이(The Float @ Marina bay)’이다. 경기장이 온통 물 위에 떠있는 것만 해도 경이로운데, 경기를 관람하면서 마리나 베이의 아름다운 풍광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축구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경기장의 한가운데에는 다른 시설이 차지하고 있었다. 축구경기보다는 콘서트가 더 자주 열린다던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실제로 저곳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관람차라는 싱가포르 플라이어(Singapore Flyer)’도 눈에 들어온다. 20083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관람차는 높이가 165m(42층 높이)로 영국의 유명한 대관람차인 런던 아이(London Eye)’보다 30m나 더 높다고 한다. 규모가 크다 보니 맑은 날에는 싱가포르 전역을 넘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까지 보인단다.

 

 

바다 쪽에는 인공 정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가 주를 이룬다. 지난 2012년에 문을 연 싱가포르의 새로운 식물원이자 약 100규모의 초대형 정원이다. 초현실적인 느낌의 수직 정원인 슈퍼트리와 초대형 온실이 갖춰져 있는 이곳은 베이 사우스(Bay South)’베이 이스트(Bay East)’, 그리고 둘 사이를 잇는 베이 센트럴(Bay Central)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베이 센트럴에 있는 플라워 돔(Flower Dome)’클라우드 포레스트(Cloud Forest)’가 가장 눈길을 끈다. 둘 모두 온실형의 식물원인데,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특히 35m 높이의 구조물로 유명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올라갔다가 스카이워크를 따라 걸어서 내려오도록 설계돼 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열두 개의 슈퍼트리(Supertrees)’도 눈에 들어온다. 난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는데, 나무 형태의 수직정원으로도 불리며 건물 9층에서 16층 높이로 아찔한 높이를 자랑한다. 내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탁 트인 또 다른 정원을 만날 수 있으며 사이사이에 구름다리들이 놓여 있어 공중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산책할 수도 있단다.

 

 

관광책자를 펼쳐놓고 눈앞에 펼쳐지는 실물과 대비해볼 필요도 없다. 각 방향에 조망도(眺望圖)를 세운 다음 주요 건물들에 대해 부연설명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글이다.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에 지친 사람들도 꽤 많아 보인다. 일본에서 단체로 왔다는 여학생들도 그중 하나다. 한 바퀴(수영장을 뺄 경우 실제로는 반 바퀴다)를 돌고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며 아예 바닥에 터를 잡아버렸다.

 

 

인피니스 풀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버스 탑승장으로 이동할 때는 화교거리를 이용했다. 가장 싱가포르다운것이라는 페라나칸(Peranakan)’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겠다. 페라나칸은 말레이 현지 여성과 결혼한 외국 상인들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싱가포르의 페라나칸은 19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 온 복건성 출신의 중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 독특함이 싱가포르를 다른 동남아 국가와 차별화하는데 크게 한 몫을 했단다.

 

 

페라나칸은 공예(工藝) 제작으로도 유명하다. 화려한 자수와 함께 작은 구슬을 엮어 만든 신발이 특히 유명하단다. 여자보다 남자 신발이 더 크고 예쁜데 그 때문에 남자는 결혼할 때만 신발을 얻어 신을 수 있었단다. 그들의 문화변천사와 생활상을 전시해 놓은 페리나칸 박물관도 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시간에 쫓겨 다니는 패키지 여행자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이동 중에는 중국 전통의 건축물도 만날 수 있었지만 가이드의 뒤를 쫓기에 바빠 내력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이 근처는 기념품 구입과 함께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버스는 우릴 풀러턴 호텔(Singapore The Fullerton Hotel)’ 근처에다 내려놓는다. 마리나베이와 싱가포르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리버 뷰, 시티 뷰, 마리나 베이 뷰 등 다양한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중세풍으로 지어진 건물의 외관도 자못 빼어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곳이 정차지가 되었을 리는 없다. 그런 조망(眺望)보다는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동상이 이 근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안(湖岸)으로 나가자 마리나 베이를 장식하고 있는 주요 건축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즈니스구역의 고층빌딩들과 ‘Singapore Flyer’, ‘Singapore Art Science Museum’ 등 아까 마리나베이 센즈호텔전망대에서 바라보던 풍경들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 것이다. 다만 위에서 바라보던 것을 옆으로 펼쳐놓았다는 게 다를 뿐이다.

 

 

바다(Bay) 건너에 있는 마리나베이 센즈 호텔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저 호텔은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57층 규모의 건물 3개가 범선 모양의 스카이 파크(Sky Park)’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차라리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져 있다. 2,500여 개의 객실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모두 호화롭기 짝이 없단다. 아무튼 특이하게 생긴 생김새로 인해 싱가포르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저 건물을 배경으로 인생샷의 찍는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제일의 핫 플레이스는 이곳 머라이언 공원 일대라고 보는 게 옳겠다. ! 아름다운 외관에 감탄했으면 이젠 가슴에 자부심을 키워보자. 저 놀라운 건축물이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쌍용건설이 단독으로 수주해 2년여 만에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누군가는 저 호텔을 건축물이 아니라 예술품이라고 극찬했다. 또 다른 이들은 21세기 건축의 기적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세계 건축가들의 경외와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건축물임에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디자이너 모셰 샤프디(Moshe Safdie)’가 카지노 카드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는 건물의 외관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55층 높이의 호텔 3개 동 상층부에 크루즈선박을 올려놓은 것부터가 특이하다. 크루즈 한 척이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모양새인 것이다. 아이들 눈에는 동화나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저 건물은 또 52도에 이르는 최대 경사도를 갖고 있단다. 피사의 사탑보다도 10배나 더 기울어졌다고 해서 현대판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린다는데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까?

 

 

풀러턴 호텔에서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머라이언 공원(Merlion Park)’이 나온다. 싱가포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곳은 해양설화와 도시공간을 결합시킨 매력적인 장소이다. 도심 속의 작은 공간에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 상을 세워놓은 것이다. 낮에는 분수를 내뿜고, 밤이면 조명을 받으며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머라이언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선지 조형물 주위에는 기념촬영을 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머라이언이 힘차게 내뿜는 물을 받아먹는 포즈를 취하는 등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참고로 오리지널 머라이언의 뒤편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작은 머라이언 상이 하나 더 있다.

 

 

기괴한 형상이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머라이언은 상상 속의 동물이다. 머라이언이란 인어를 뜻하는 ‘Mermaid’와 사자를 뜻하는 ‘Lion’의 합성어로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 몸통을 하고 있다. 길이 8.6m, 무게 70t에 달하는 하얀 거구의 머라이언 상은 1972년 처음으로 싱가포르 강 입구인 에스플러네이드에 등장했다. 싱가포르인 조각가인 림낭생(Lim Nang Seng)의 작품이다. 그러다가 1997년 에스플러네이드 다리의 완공으로 인해 주변 상황이 변하자 200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공원의 넓이도 처음보다 4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저 오리지널 머라이언엄마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자그마하게 있는 녀석이 아기 머라이언’. 아까 둘러봤던 센토사 섬의 머라이언이 아빠인데 여기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타관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품삯 대신 자신의 속내를 들추어가면서 말이다.

 

 

머라이언 공원 쪽으로 나오자 마리나베이 센즈호텔이 더 또렷해진다. 보면 볼수록 특이한 외모를 가졌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전 세계 사람들이 시드니하면 오페라 하우스가 떠오르는 것처럼, ‘싱가포르하면 마리나베이 샌드 호텔을 생각한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이런 명소를 그냥 지나칠 집사람이 아니다. 인생샷으로 삼겠다며 냉큼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마리나베이 센즈로 다시 돌아왔다. 싱가포르의 야경을 둘러보게 될 리버크루즈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아니 아까 들렀던 멀라이언 파크에도 리버크루즈의 승선장이 보였으니 식당과의 동선(動線) 편의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우리에겐 도심에 조명이 들어올 때까지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호안을 따라 내놓은 산책로에는 조깅(jogging)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이 꽤 많았다. 이곳 마리나베이가 도심공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유람선이 출발할 때를 기다리다 화장실도 이용할 겸해서 마리나베이 센즈호텔건물에 들어가 봤다. 내부에는 쇼핑 플레이스인 더 숍스(The Shoppes : 아래 사진)’ 외에도 세계적인 공연을 선보이는 대형 극장과 유명 셰프들이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 아이스링크, 아트 사이언스 박물관, 초대형 카지노, 컨벤션 센터, 스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락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물론 안내판에서 찾아낸 정보들이다. 하나 더, 귀국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복합 리조트로 지어진 이 호텔의 규모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3.5배나 된단다. 지하 1층 등 총 5개 층에선 250개의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를 동시에 열 수 있단다. 직원만 해도 1만 명에 이른다면 그 규모가 상상이 갈는지 모르겠다.

 

 

싱가포르 여행에 있어서 '야경(夜景)'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시간에 쫒기는 여행자. 특히 패키지여행자들에게는 크루즈가 제격이다. 싱가포르 강을 따라 마리나베이와 머리아언파크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건축물들은 물론이고 리버사이드의 포인트들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원한 강바람과 야경을 즐기면서 여독을 풀기에 그만이다.

 

 

 

 

도심에 불이 들어오면 배(리버크루즈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작은 유람선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이 출발한다. 마리나베이에서 싱가포르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인데, 이때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새로운 풍경화를 감상하게 된다. 아까 훤할 때 보았던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물론이고, 강변에 줄지어 늘어선 붉은 지붕의 2층 건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본래는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의 무역 물자를 취급하던 선착장이었지만, 현재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단다.

 

 

 

 

 

 

 

 

 

 

 

 

여행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 - 10.12()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첫째 날 : 싱가포르 주롱 새 공원(jurong-bird-park)‘

 

특징 : 싱가포르(Singapore) : 말레이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상 교역로인 말라카 해협에 위치한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제 교역이 활발한 무역항으로 성장하였고, 동서양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다. 싱가포르의 역사는 피지배의 연속이었다. 13세기 자바의 마자파히트 제국의 지배를 시작으로 시암의 아유타야 제국, 말라카 제국(15세기), 포르투갈(16세기), 네덜란드(17세기)를 거쳐 1819년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정부와의 다툼 끝에 결국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주롱 새공원(jurong bird park) : 싱가포르의 주롱 지역을 중심지로 하는 세계 최대의 새 전문 공원이다. 공원에는 1만여 마리의 새가 살고 있어 그림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세계의 희귀 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플라밍고가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고 잉꼬 새장으로 가면 천여 마리의 잉꼬 새를 볼 수 있는 등 새 전문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버스는 우릴 공원의 바로 앞에다 내려준다. 이곳의 주소는 ‘2 Jurong Hill Singapre’, ‘주롱이라는 언덕에다 만들어놓은 새 공원(bird park)’이라고 보면 되겠다. 맞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이 새 전문 공원주롱지역에 위치한다. 이름(bird park)에 걸맞게 조류들만을 위한 테마파크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년(2020)에는 만다이지역으로 가야만 새들을 볼 수 있단다. 개장(1971)한지 50년이나 되어 시설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이란다. 새로 옮겨갈 만다이 지역에는 국립동물원과 나이트 사파리가 이미 들어서 있으며, 새로 옮겨갈 주롱 새 공원을 포함해 열대우림 공원(Rainforest Park)’을 건설할 계획이란다.

 

 

 

 

 

 

공원에 들어섰지만 매표소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한다. 한글로 표기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글 외에 영어와 중국어, 일어도 병기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그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공원은 오전 830분에 문을 연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30 싱가포르 달러(S$)’, 어린이는 20S$이다. 주롱 새공원의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경우에는 3S$를 깎아준다니 참고해 두자. 1S$860(KRW)인 환율도 미리 알아간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입장할 때 게이트 요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한국어로 된 지도와 프로그램 북을 가져다주니 꼭 챙겨보자. 하나 더, 주롱 새공원과 싱가폴 동물원’, ‘나이트 사파리를 모두 둘러볼 요량이면 ‘Park Hopper’ 티켓을 구입해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 티켓은 주롱 새 공원이 이전하는 내년부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

 

 

공원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패키지 여행사들이 빼먹지 않고 들르는 단골코스 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덜 붐비는 시간대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오전, 그것도 조금 이른 시간에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관광객들이 이렇게 많으니 기념품 판매점이라고 없겠는가. 하지만 커다란 규모에 비해 이용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Photoshop도 있었으나 이용은 사양키로 했다. 일행이 10명도 넘는데 구태여 돈을 내고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장도 만들어 놓았다. ‘Birds of play’란 문패가 다소 헷갈리지만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어린이 물놀이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물에 빠질 위험도 당연히 없다. 같이 온 어린이가 새 구경에 싫증을 낼 경우 이곳에서 놀게끔 해놓고 투어를 이어갈 수도 있겠다.

 

 

매표소 옆에는 펭귄 코스트(Penguin Coast)’가 있다. 펭귄이 모여 사는 곳인데 열대지방에서는 살 수 없는 새이다 보니 추운 지방의 온도에 맞춰진 수족관의 유리너머로만 구경할 수 있다. 아쉽게도 펭귄의 트레드마크인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은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펭귄 몇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으로 팬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공원은 다른 사파리(Safari)들에 비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걸어서 둘러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패키지 여행객들에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꼬맹이 열차를 닮은 트램(tram)을 탑승시켜가며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공원을 순회하는 이 트램은 원하는 2개의 정류장에서 하차해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티켓(ticket)은 탑승할 때마다 검사를 하니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트램을 타면서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공원에는 방금 전에 본 펭귄을 위시해서 잉꼬와 플라밍고, 펠리컨, 백조 등 약 6백종, 8천 마리 이상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새 전문공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단다. 1968년 싱가포르의 재무장관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거대한 동물원과 방사 새장을 보고 감명을 받아 공업지대였던 주롱 지역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새 공원이 탄생했단다. 그러다보니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새를 사육하고 있으며 적도지방에 서식하는 새들을 위해서는 스콜(소나기)과 같은 환경까지 재현되도록 배려했단다.

 

 

핫 플레이스 가운데 하나라는 폭포 사육장(African waterfall aviary)’은 가보지 못했다. 아니 트램의 이동로가 ‘Waterfall Aviary’ 안내판 앞으로만 지나갈 따름이어서 폭포는 곁눈질도 못해봤다. 높이 30m의 인공폭포가 장관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거기다 1,500여 마리의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풍경까지 볼 수 있다는데 말이다.

 

 

‘Royal ramble’라는 곳도 있었다. 그 아래에는 관 비들기(crowned pigeons)’라는 부제를 달았다. ‘왕관비둘기를 기르는 커다란 새장인데 관람객들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 걸어볼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트램 스테이션 2’ 근처에는 ‘Lory loft’가 들어서 있다. 공중에 매달아 놓은 출렁다리를 일컫는 것 같은데 한글로는 잉꼬 세상으로 표기해 놓았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다양한 잉꼬들의 노닐고 있는 이곳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9층 높이의 초대형 방사장 안은 호주 북부의 열대 우림을 재현해 놓았는데 우림 숲을 거닐며 잉꼬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서 직접 먹일 수도 있고 어깨에 앉힐 수도 있단다. 잉꼬들도 호주와 인도네시아, 파푸아 뉴기니 등지에서 왔기 때문에 생김새가 다양하단다. 공중에 매달려있는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빛깔이 선명한 앵무새도 구경할 수 있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새 공원투어의 필수코스라는데도 말이다.

 

 

 

 

그 옆에는 ‘Bird discovery center’가 마련되어 있다. 새들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제공하는 곳이니 지친 다리도 쉴 겸해서 한번쯤 들어가 볼 일이다. 냉방시설을 갖춘 실내 공간이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맞은편은 'Jungle Jewels'이다. 크고 작은 새장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새장 안에 들어있는 새들의 생태를 눈여겨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트램 스테이션 3’ 근처에는 백조의 호수가 있었다. 호수에서 생활하는 새들을 모아놓은 곳이니 그 옆에는 펠리컨 코브도 있다. 시간을 잘 맞추면 먹이를 받아먹는 풍경을 볼 수도 있단다.

 

 

 

 

 

쇼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플라밍고 호수(Flamingo Pool)’를 둘러봤다. 이 또한 트램 승차장 근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밍고는 가장 아름다운 새 중의 하나이다. 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리지어 있는 새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일품이다.

 

 

 

 

 

 

 

 

공원은 이 지역 특유의 나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기다란 수염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가 가장 눈길을 끈다. 동남아를 여행하다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나무인데 가지에서 기근(氣根)이 내려 지주근(支柱根)이 되는 식으로 뻗어나가는 독특한 나무이다. 열매는 무화과를 닮았다고 한다. 중국의 계림에서는 천년을 훌쩍 넘게 자라나 하나의 작은 산처럼 보인다고 해서 대용수(大榕樹)’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달고 있었다.

 

 

 

기생식물과 공존하고 있는 나무들도 많이 보였다. 기생식물의 생김새도 다양했다. 나무의 일부처럼 위로 자라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모든 줄기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기도 한다.

 

 

 

 

맨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pools amphitheatre(연못 원형극장)’으로 새 공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새와 친구들 쇼(Birds n Buddies Show)’가 펼쳐지는 곳이다. 참고로 이곳 주롱 새 공원에서는 두 가지의 쇼를 무료로 보여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 들어가고 있는 연못원형극장에서 펼쳐지는 올스타 버드쇼(All Star Bird Show)‘이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열리며 새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이다. 안내판에는 ‘High flyers show’라고 적혀 있었는데 자전거타기와 생일 축하곡 부르기 등 새들이 펼치는 다양한 묘기가 펼쳐졌다.

 

 

공연장은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만석이다. 아니 공연 때마다 이런 풍경이란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패키지여행의 필수 코스이니 오죽하겠는가.

 

 

 

 

앵무새를 비롯해 특수 훈련을 받은 새들의 재롱을 부린다.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갖가지 묘기를 보여주는데 여간 영리한 게 아니다. 덕분에 난 새대가리라는 비속어를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리기로 했다. 쇼가 무르익으면 관람객들을 직접 참여시키기도 한다. 관객 중 한 명이 원 모양의 후프를 들고 있으면 새가 슝~ 지나간다.

 

 

 

 

 

 

 

 

 

 

 

 

쇼가 끝나고 나면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수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피날레(finale)를 장식한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한글 문구도 볼 수 있다. 이국땅에 세워진 한글 안내판은 만나면 만날수록 기분이 좋다.

 

 

 

 

공연장에는 사람이 사는 집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반듯하게 지어진 새집도 보였다. 쇼에 참여하는 새들이 들락거렸으나 평소에는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이밖에도 하늘의 제왕(King of the skies)’이라는 맹금류의 공연이 있었으나 우리 일행은 구경하지 못했다.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열리다보니 시간에 쫓겨 다녀야만 하는 패키지여행에서는 짬을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점심은 ‘Songbird terrace’라는 뷔페식당에서 했다. terrace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어컨 시설이 없는 식당이니 약간의 무더위는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음식은 괜찮은 편이었다. 프라이드치킨, 새우튀김, 롱빈볶음, 누들 등 메뉴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을 위해 김치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13:00~13:30)만 잘 맞춘다면 식사를 하면서 앵무새들이 펼치는 쇼까지 구경할 수 있단다.

 

 

 

여행지 : 태국 여행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알카자쇼)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셋째 날 : 진리의 성전(Sanctuary of Truth)

 

특징 : 1981년에 짓기 시작했다는 파타야 북쪽에 위치한 목조건축물로 나무궁전(태국어로는 쁘라삿마이’)‘이라고도 불린다.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만 170개 이상이고, 건물의 총무게도 1만 톤에 이르는데, 이게 모두 나무로만 만들어졌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이 건축물은 위리아그룹 회장 개인의 종교관을 반영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막대한 사재(私財)를 들여 아파트 40층 높이의 성전을 38년째 지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물의 높이는 105m, 목조건축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특히 못을 하나도 쓰지 않는 공법으로 인해 세계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단다. 성전 내부는 모두 4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관은 인도의 힌두교, 크메르의 브라만교, 중국의 대승불교, 태국의 소승불교의 가르침과 신화의 상징물로 장식되어 있다. 창조·파괴·사랑·윤리·우주··죽음 등 인생의 근본적 물음에 대한 상징물들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니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코스가 아닐까 싶다.

 

 

 

진리의 성전은 파타야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정확히는 나클루아(Naklua) 쏘이씹썽(12번골목)의 끝자리.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태국어로 프라삿마이라고 하면 쌩태우 운전자들도 잘 알아듣는단다.

 

 

 

 

경내로 들어서자 아치형으로 생긴 대문이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상인방(上引枋)에 붙어있는 사진이 좀 묘하다. 사유지로 들어가는 문인데도 푸미폰 국왕으로 여겨지는 사진이 붙어있는 것이다. 태국에서 국왕의 위치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푸미폰 국왕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참고로 차크리 왕조의 라마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 1927-2016)’ 국왕은 194669일 부터 왕이 되어 20161013일까지 70126일 동안 태국을 통치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통치기간이란다.

 

 

 

 

대문 옆에는 홍보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도 좀 묘하다. ‘진리의 성전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전시물들이 모두 푸미폰 아둔야뎃국왕이 생전에 보여줬던 행적들로 도배되어 있는 것이다. 안내를 하고 있는 가이드도 역시 그에 대한 칭송 일색이었다.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태국 국민들이 국민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푸미폰 국왕은 산간의 국민들을 만나며 그들이 처한 상황과 삶을 이해하고, 더 고치기 위해 노력했으며 19번의 쿠데타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는 태국 국민의 구심점이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미니 동물원(MIni zoo)도 만들어져 있다. 여러 종류의 가축들을 기르고 있는 농장 수준으로, 크기나 질 모두가 허접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들은 동물원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아니 새와 사슴 등도 있다니 동물원으로 분류한데서 나무랄 일은 아니겠다.

 

 

 

300m쯤 들어갔을까 언덕에 올라앉은 전망대가 나온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진리의 성전이 발아래에 펼쳐지는 멋진 조망처이다. 완전체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성전을 배경으로 삼아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는 멋진 포토죤이기도 하다.

 

 

 

 

전망대 근처에는 레스토랑도 들어서 있었다. ! 이 근처에는 태국의 민속무용도 공연된다고 한다. 11:30분과 15:30분 등 하루에 2번 공연된다니 시간에 맞추어 찾아온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곳곳에 작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닭과 염소 등의 동물들이 함께 공유하는 쉼터이다. 승마체험으로 이용되는 말도 보인다. ! 들머리에서는 치마도 대여해 주고 있었다. 이곳도 사원으로 분류되는지라 노출이 심한 옷을 통제하는 모양이다. 소정의 돈을 예치하고 치마를 빌리는데, 사용한 뒤에 반납을 하면 돈은 돌려준다고 한다.

 

 

숲을 벗어나자 3,200나 된다는 널따란 터에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높이 105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란다. 태국어로 '쁘라삿마이', 즉 나무궁전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티크원목 등을 정교하게 조각한 건축물이다. 바닷바람과 햇빛을 견딜 수 있는 100년 이상 된 티크, 마호가니, 나왕 등의 원목을 조각한 후 이어 붙였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기법을 이용하여 목재를 끼워 맞추는 공법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태국에서 만나본 다른 불교 사원들과는 다른 외모를 지녔다. 건축물이 품고 있는 종교관 또한 확실히 다르다. 위리야 그룹의 선대회장인 렉 위리야판(Lek Viriyahbhun)‘의 종교관이 담겨 있는데, 70년대 동·서간 이념분쟁 및 종교분쟁의 종언을 고하고 종교간 화합을 통한 인류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는 것이다. 또한 물과 바람, 태양, 흙이 이루는 세계로도 표현되어 있어 인류의 화합 및 유토피아에 대한 생명의 공통목표를 기원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단다.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시라도 빨리 그늘 속으로 피하고 싶은 삼복더위인데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코끼리의 등 위에서 온몸으로 뙤약볕을 받아내고 있는 저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 같으면 오히려 돈을 준다고 해도 사양할 것이다.

 

 

관람객들에겐 안전모 하나씩이 주어진다. 아직 공사 중이라서 안전상 필요하단다. 건물 안에서만 쓰면 된다는데, 이게 제법 부담스럽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무더운데 하나를 더 챙겨들고 다녀야 하니 말이다. 거기다 우린 건물 밖에서도 이걸 쓰고 다녔다. 안에서만 쓰면 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사원은 부위마다 색깔이 제각각이다. 보수공사가 서로가 다른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습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속도가 붙은 부식작용을 해결하는 방법은 보수공사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진리의 성전은 바닷가에 지어졌다. 그러니 태양이 매우 강렬한 열대지방이라는 불리한 여건에다, 파도와 바람이라는 또 다른 변수까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건축물의 소재가 목재(木材), 그것도 높이가 100m도 넘는다면 태양과 바람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기술이 건축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이 세계 건축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단다.

 

 

 

 

 

 

 

자 이젠 안으로 들어가 볼 차례이다. 건물은 개별 출입문을 가진 4개의 날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날개관은 태국의 소승불교(동관)와 인도의 힌두교(서관), 크메르의 브라만교(남관), 중국의 대승불교(북관)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들은 중앙 돔에서 하나로 만나도록 꾸며져 있는데 동양적 가치관과 종교 간의 화합,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의미한단다.

 

 

건물의 내부는 부처님의 얼굴이 있고 동물과 식물도 조각되어 있다.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조각상 모습도 보인다. 태국의 소승불교, 중국의 대승불교, 인도의 힌두교, 크메르의 브라만교의 가르침과 신화의 상징물들로 창조, 파괴, 사랑, 윤리, 우주, 삶과 죽음 등 인생의 근본적 내용을 담고 있단다.

 

 

 

 

 

 

바닷가 방향으로 난 창가에 자리 잡은 모녀가 움직일 줄을 모른다. 에어컨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바람결을 느낄 수조차 없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창가로 다가가자 에메랄드빛 예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진리의 성전이 바닷가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건축물은 쉼 없이 보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바닷바람으로 인해 부식(腐蝕)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란다.

 

 

성전의 안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바닷바람에 부식된 곳을 보수중인데 이런 공사는 일 년 내내 이루어진단다. 1981년 공사를 시작한 이 사원은 현재 90% 정도의 공정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공사는 완공에 의미가 없단다. 강렬한 태양과 파도, 바람이 심한 파타야 북쪽 바닷가라는 환경적 특성상 보수 공사와 건축 공사를 병행 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식(腐蝕)과의 전쟁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나무가 썩은 곳은 보수하고 완성되지 못한 곳은 새로운 조각을 붙여나간다. 그러니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공사는 진행 중일 것 같다. 문득 재작년에 들렀던 스페인의 성가족성당이 생각난다. 가우디가 짓다 완성을 못보고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물인데 그들도 한마음으로 가우디의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성당을 둘러보면서 많이 놀랐었는데 이곳 진리의 성전은 그보다 한수 위라고 하겠다. 나무만으로 짓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 모든 경비를 개인이 부담한다니 말이다.

 

 

건물의 각 부분들은 어느 하나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다. 나무로 지은 것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 나무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조각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역동적이다. 건물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얘기이다 

 

 

 

 

 

 

 

그 아름다움은 천정에서 정점을 찍는다. 어떻게 저런 문양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에도 푸미폰 국왕으로 보이는 사진이 모셔져 있었다. 아리따운 두 여자가 양 옆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신()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가이드도 태국 국민들 가슴속에는 이미 신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왕실의 것으로 여겨지는 제단(祭壇)도 보인다.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사진들이 하나같이 왕족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건물은 온통 조각품들로 아기자기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겉은 겉대로 안은 안대로 한 곳도 비어 있지 않게끔 조각을 한 건축물을 지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투입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종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더라도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나무에서 느껴지는 냄새와 은은한 색감, 바닷바람과 만나 오묘한 분위기를 내는 시원한 공간은 서양의 거대한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양의 신비를 느끼게 만든다.

 

 

 

 

호수를 낀 작은 유원지도 조성되어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나 음료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진리의 성전은 저녁 6시가 넘으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한다. 대신 불을 켜서 밖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놓았단다. 그런 풍경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저 레스토랑이란다. 음료수로 목이라도 축여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한시라도 빨리 버스로 되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다는 얘기이다.

 

 

경내에는 조형물들이 여럿 세워져 있다. 불교의 색체가 강했으나 뭘 형상화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여신상도 보인다. 누구인지라도 알면 좋은 얘깃거리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하겠다.

 

 

요렇게 생긴 문도 보였다. 옆에는 우리나라의 장승과 같은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뭘 의미하는지는 눈치조차 챌 수가 없었다. 온통 라면가닥처럼 생긴 태국문자로 적혀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에필로그(epilogue), 이번 여행은 무더위와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건기(乾期)가 태국여행의 적기(適期)일 것이라는 섣부른 내 판단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덕분에 물놀이 코스인 산호섬(꼬란)과 실내 관람인 알카자쇼를 제외하고는 처삼촌 벌초 하듯이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팬티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는데 어쩌겠는가. 관광일정을 가능한 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들은 전통 태국마사지숍에서 보냈다. 매일 오후를 마사지숍에서 보낸 셈이다. 그 덕분에 우린 오래 간직될만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전문 마사지사들의 마사지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2시간에 걸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밟고 주무르는데 온몸이 마치 녹아내리는 듯했다. ‘우두득온몸에서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던 친구는 병까지 나았다고 싱글벙글할 정도였다. 무더위라는 악조건을 힐링 타임(healing time)‘으로 바꾸었으니 이런 걸 두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지 : 태국 여행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알카자쇼)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둘째 날 : 농눅 빌리지(Nong Nooch Tropical Garden)

 

특징 : 파타야 동쪽의 쑤쿰빗(Sukhumvit) 고속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약15떨어진 좀티엔 해변(Jomtien Beach)에 있는 농눅 빌리지는 200만평이 넘는 개인농장으로 1954년 농눅 탄차나 할머니가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약18만평의 정원에 150종의 소철, 수백 종의 선인장, 500여 종류의 난초, 2백여 종의 고사리 등을 심어 열대식물원을 만든 것에서 시작된다. 1980년 농눅 할머니가 죽은 뒤 그의 아들 깜퐁 탄사차(Kampon Tansacha)가 태국인들이 좋아하는 닭싸움(鬪鷄)과 투검, 태국 복싱인 무에타이, 전통 민속공연과 코끼리 쇼 등 다양한 오락과 휴식시설을 만들어서 아시아 최대의 식물원이자 태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아시아 최고의 테마파크가 되었다. 자칫 단조로운 식물원이기 쉬운 농장에 다양한 동물 쇼, 전통 민속 쇼 등을 유치해서 자연과 관광의 조화를 이룬 개발은 매우 좋은 착상 같다. 국내에 있는 용인민속촌이나 자연농원 등과 비교해가며 둘러본다면 뭔가 가슴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농눅 빌리지는 거대한 열대 농원이다. 테마파크로 이루어진 농원은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들어가는데 만도 5분이나 걸렸다. 6600(200만 평)에 이른다는 그 광대한 규모를 실감케 하는 첫 번째 만남이다. 두 번째 놀라움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관람객들이었다. 1980년 개장한 이래 하루 5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단다.

 

 

 

 

 

 

첫 번째 만남은 자동차 전시장이다. 도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다. 다들 실제 차량번호판은 매달고 있는 걸 보면 언제라도 내달릴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가운데 하나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욕심일까?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자동차에 흠뻑 빠져있는데 이곳은 맛보기이니 빨리 따라오기나 하란다. 한층 더 고급스런 차들을 진열해 놓은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은 코끼리다. 한껏 치장을 한 코끼리의 등에는 조련사가 올라앉았다. 공연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인 모양인데, 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을 위해 코로 악수를 해주는 등 포즈도 취해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부처님도 여럿 모셔져 있다. 부처에 물을 부어주고 있는 걸 보면 송크란 축제(Songkran Festival)’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아니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신자인 태국이니 그들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농눅빌리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단연 볼거리이다. 그 가운데서도 백미(白眉)는 태국 전통무용 공연이라 하겠다. 가이드의 발걸음이 또 다른 볼거리인 정원 구경을 뒤로 미룬 채로 공연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조립식의 느낌이 강한 공연장은 난방시설이 필요하지 않은 열대지방의 특성 때문인지 지붕만 있고 벽은 그저 바람을 가리는 정도의 빈약한 시설이다. 하지만 냉방은 빵빵하게 틀어주고 있었다.

 

 

안으로 들자 코끼리의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공연의 또 다른 축이 코끼리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불탑으로 여겨지는 작은 탑들이 모여 작은 공원을 이루었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다양한 모양의 탑들을 조각했는데 하나하나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수많은 가면과 모자도 진열해 놓았다. 민속무용 공연에 사용되는 소품들이 아닐까 싶다.

 

 

 

 

공연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2천여 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10:30, 11:30, 13.30, 15.30, 16.30, 17.30 등 매일 6회씩 공연하는데, 농눅 빌리지에 입장한 관광객이라면 전통 민속공연 관람은 무료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서예가로 보이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 지필묵을 이용해 글씨를 쓰는데, 이 과정을 영상으로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이 의외다. 라면가락을 닮은 태국어가 아니라 눈에 익은 한자였던 것이다.

 

 

이어서 태국 전통무용이 공연된다. 태국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하지만 공연내용을 알 수가 없어 깊이 빠져들 수는 없었다. 양쪽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라도 공연내용을 적어 넣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안내책자라도 나누어주던지 말이다. 낯설고 이질적인 무용을 그저 눈치로만 감상하는 것은 고역이라 할 수 있다. 난 화려한 의상과 춤, 그리고 감미로운 노래를 흘려듣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전통무용 공연이 끝나면 이번에는 코끼리 쇼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관람객들은 코끼리들이 나왔다가 들어가는 한쪽 면을 제외한 3면에 시멘트 계단으로 만든 관람석에 앉아서 코끼리 묘기를 구경하는데, 크고 작은 코끼리들이 편을 나눠서 축구와 농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또 타로 화살로 풍선 터뜨리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묘기를 보여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원하는 관객들을 불러 코끼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코끼리가 코로 악수를 해주는 건 기본, 사람들을 코로 휘어감아 올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걸 서비스로 봐서는 안 된다. 얼마간의 돈을 팁으로 주어야하니 말이다. 팬서비스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보면 되겠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그걸 다 볼 인내는 나에게 없었다. VIP석에 앉았는데도 어찌나 더운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관객 중 몇 사람을 불러내어 코끼리의 큼직한 앞발로 누워있는 사람의 전신을 안마를 하는 묘기를 펼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공연장 출구는 쇼핑센터이다. 온갖 생필품과 기념품, 심지어는 간식까지 팔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상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참을 둘러보다가 나왔다.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결 장소인 중앙 만남의 광장에는 여러 가지 캐릭터 조형물이 많다. 꼭 어린이 놀이공원에 온 듯한 기분이다.

 

 

 

 

 

 

동선(動線)에는 스카이워크(sky walk)도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즐길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무더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매 30분마다 농장 안을 순회한다는 셔틀버스를 이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전거를 대여해서 돌아보는 방법도 있었을 게고 말이다.

 

 

식물원은 프랑스식, 영국식, 이탈리아식 등 세계의 유명한 정원을 모방하여 수많은 식물과 함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주마간산으로 둘러봤다. 아니 대부분은 아예 가보지도 못했다. 무더위에 특히 약한 내 체력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신 냉방시설이 잘 되어있는 자동차 전시장을 찾았다. 아까 가이드가 얘기하던 한층 더 격이 높다는 전시장이다. 농눅 여사의 아들이자 현 농눅빌리지의 주인인 쿤깜폰딴삿짜씨 소유의 차를 전시해놓은 곳인데, 진귀한 클래식 카부터 럭셔리한 스포츠카까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40여 종의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차의 번호판이 2222, 3333처럼 단순하다. 일반인들은 넘볼 수조차 없는 골드넘버라고 한다.

 

 

 

 

이밖에도 농원에는 포토죤이 여러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코끼리 트레킹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선택 관광의 하나인데 말 그대로 코끼리를 타고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이다. 우리 부부만 빠질 수 없어 참여는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일정은 아니었다. 코끼리의 등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썩 뛰어나지도 않았고, 흔들리면서 느끼게 된다는 스릴도 나에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정글 트래킹을 기대했던 나였으니 어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트레킹이 끝난 후에는 시음용 코코넛이 하나씩 주어졌다. 옵션에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농눅빌리지 인근은 이제껏 보아왔던 풍경들과는 그 느낌부터 다르다. 산이나 고지대가 눈에 띄지 않는 태국 남부지역의 특징과는 달리 산이 보이는가 하면 능선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황금 절벽 사원(Wat Khao Chee Chan)‘도 딱 그런 곳에 들어앉았다. 농눅빌리지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사원인데, 80m 높이의 바위산에 금색의 타일로 부처 좌상을 형상화했다. 부처 좌상의 높이는 약 67m로 멀리서도 황금색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 이 부처 좌상은 태국의 한 사업가가 국왕 즉위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며 부처의 산, 부다 마운틴(Buddha Mountain)이라고도 부른단다.

 

 

 

여행지 : 태국 여행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알카자쇼)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둘째 날 : 알카자 쇼(Alcaza Show)와 야시장 투어

 

특징 : 파타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을 꼽으라면 단연 알카자쇼(Alcaza Show). ’세계 3대 쇼중 하나로 꼽힐 만큼 유명한 게이 쇼(Gay Show)로 미스 알카자 선발대회에서 선발된 트랜스젠더(transgender)들이 다양한 노래와 춤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알카자 쇼는 태국 정부가 지원하는 관광 상품 중의 하나라고 한다. 게이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무대에 나설 수 있게 지원하는 문화가 세계 3대 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알카자는 유럽의 궁전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페인의 세르에 있는 알카사르 궁전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국의 디즈니 '백설공주'의 모델로 '절대로 함락당하지 않는 요새'로 알려지는 요새이다.

 

 

 

유럽풍으로 지어진 극장의 앞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좌석이 1200석도 넘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최신식 음향 장비와 조명 장치 등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1회 공연의 출연진만도 400명이 넘을 정도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랑스의 리도쇼와 미국 라스베이거스쇼와 함께 세계 3대 쇼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한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웰커밍(welcoming)이 준비되어 있다. 무료(無料)이다. 아니 입장료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음료이니 부담 갖지 말고 하나씩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면 된다.

 

 

 

 

누군가는 ’Travel Tip‘이라면서 작은 망원경을 챙겨가라고 했다. 극장 뒤쪽에 앉을 경우 공연하는 배우들의 표정을 볼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그는 또 문구점에서 파는 3배율 정도의 작은 망원경만 준비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불필요한 조언이었다. 여행사의 배려로 ’VIP에서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이 오르자, 무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키 크고 날씬한 아름다운 미녀들이 펼치는 버라이어티 쇼가 펼쳐진다. 미녀들이 추는 춤의 손놀림은 캄보디아 압살라 춤을 연상케 했고, 미녀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은 다소 중국풍의 노래 같기도 했다.

 

 

 

 

 

 

여느 미녀들보다도 더 크고, 더 날씬하고, 더 예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남자였던 사람들이 더 여자처럼 분장하고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자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극장 앞으로 나온 공연자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때 소정의 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태국의 왕궁과 왕실사원의 화려한 무대도 등장한다. 공연은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다. 7~8개의 프로그램 안에 20개 정도의 짤막한 쇼가 포함돼있다. 마치 한편의 뮤지컬을 감상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무희들의 공연은 환상적이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숨고르기라도 하듯 한국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한국 전통무용인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는가하면 한국음악도 들려준다. 관중의 70% 이상이 한국과 중국인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알카자쇼 관람이 끝난 후에 데파싯로드 야시장 (Thepprasit Road Night Market)‘을 찾았다.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야시장(Night Market)으로 금요일~일요일 저녁에만 운영된단다. 시장은 의류 및 잡화먹거리등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 이웃하고 있어 먹는 즐거움과 쇼핑하는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 참고로 태국사람들에게는 야시장 방문이 즐거움의 하나라고 한다.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쇼핑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건 만국(萬國) 공통이지 싶다.

 

 

 

 

시장으로 들어서면 우산으로 치장된 천정이 눈길을 끈다.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줄지어있는데 형광 불빛과 어우러지면서 흡사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 포토죤으로도 제격이라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먼저 들른 곳은 간이식당가(food court). 현지인들이 먹는 길거리 간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빼꼭히 들어서 있다.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인 꼬치는 물론이고 오리구이와 생선 통구이, 곤충구이, 해산물 요리, 심지어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연어회도 보였다.

 

 

 

 

길거리 음식의 대표선수는 역시 꼬치가 분명하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종류까지 다양해서 웬만큼 양이 큰 사람이 아니라면 구미가 동하는 것들만 골라 맛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특히 한국의 삼겹살도 팔고 있었는데 맛있다는 평까지 듣고 있었다.

 

 

 

 

 

 

꼬치의 대미(大尾)는 통째로 구운 생선이 차지하고 있었다. 통닭처럼 통째로 구웠는데 막대기에 꽂힌 게 특이하다. 하도 커서 어떻게 먹을지가 궁금했지만 길거리에서 먹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집으로 가져가는지도 모르겠다.

 

 

반찬가게 비슷한 코너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오이지, 젓갈 같은 음식도 많이 보였다.

 

 

과일가게가 없을 리가 없다. 다양한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데, 건과일도 진열되어 있다. 건과일은 시식도 가능하단다. 근처에는 과일음료를 파는 곳도 들어서있다. 무더위에 지친 여행자라면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음료 한 잔으로 달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도로 건너편은 쇼핑거리이다. , 화장품, 시계부터 액세서리와 수공예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간이상점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다시 말해 없는 게 없다는 얘기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아이쇼핑을 하면서 흥정까지 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만 모조품이 꽤 많으니 구입할 경우에는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 방콕보다 이곳 파타야의 물가가 훨씬 저렴하다는 가이드의 주의사항을 깜빡 잊을 뻔했다. 그는 그렇다고 싼 게 비지떡인 상품까지 사지는 말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었다. 하지만 뿌리기 선물로 제격인 망고비누는 이곳에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공항의 면세점보가 서너 배는 저렴하니까 말이다.

 

 

목이 마르다면 의류 및 잡화거리의 들머리에 있는 몽키 쉐이크(Monkey shake‘로 가면 된다. 쉐이크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판매한다.

 

 

밤거리는 오토바이들 차지다. 누군가 베트남을 일러 오토바이 천국이라고 했는데 이곳 태국도 그에 못지않은 풍경이다. 하긴 작년에는 오토바이 축제(Motorcycle Festival)‘까지 치앙마이에서 열렸다던데 이를 말이겠는가.

 

 

꼬마자동차도 보인다. 그런데 외모가 어마어마하게 나이 들어 보인다. 과연 굴러다닐까가 의심스러운데 번호판까지 의젓하게 달고 있다. 태국 정부가 공인해준 자동차라는 얘기일 것이다.

 

 

 

방콕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는 과일농장도 들렀다. 아니 무더위에 쫓겨 농장 탐방은 생략하고 판매장에서 과일을 맛보는 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비용은 여행사에서 부담했는데 이 농장의 주력상품인 파인애플을 위시해서 망고와 망고스틴, 용과 등을 실컷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두리안은 포기하기로 했다. 먹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리는데 비위 약하기로 소문난 내가 어찌 시도해볼 수 있겠는가.

 

 

 

 

 

 

 

 

여행지 : 태국 여행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알카자쇼)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둘째 날 : 산호섬, 꼬란(Koh Larn)

 

특징 : 파타야(Pattaya) : 동남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파타야는 다양한 해양 스포츠와 화끈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방콕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패키지 여행사들은 하나같이 방콕과 연계한 상품을 판다. 이때 꼭 끼워 넣는 곳이 산호섬인 꼬란이다. 해양스포츠는 물론 여유로운 선탠과 바다낚시까지 즐길 수 있어 태국 남부의 여느 휴양지가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파타야는 원래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1년 베트남전쟁의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발전했다. 지금은 국제적인 휴양도시로 변해있다. 그래선지 파타야 해변에는 고급호텔과 방갈로, 레스토랑 등이 널려있다시피 했다. 밤에는 화려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꼬란(Kho Larn) : ’산호섬으로 더 익숙한 꼬란(Kho Larn)은 파타야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양 스포츠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바나나 보트제트 스키‘, ’패러세일링(오는 도중)‘, ’시 워킹등을 체험해볼 수 있는데, 해변에 사물함과 샤워 시설, 비치 의자,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개별적으로 이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우리 부부처럼 체험 참가가 번거롭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물놀이로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이다. 바닷물이 하도 깨끗해 물을 조금 마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하나여행사를 따라간 우리는 여행사의 전용공간을 이용했다. 여행사에서 열대 과일과 치맥(치킨&맥주)까지 제공해주어 편하고 즐겁게 놀다 올 수 있었다. 이런 호사로움이 있어 패키지여행을 따라나서는가 보다.

 

 

 

꼬란(Kho Larn)의 투어는 파타야 비치(Pattaya Beach)’에서 시작된다. 섬으로 들어가는 보트들이 이곳 모래사장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타야 비치는 해양 관광도시 파타야의 대표적인 해변으로 해안선을 따라 3km가량 백사장이 이어져 있다. 해변 주변으로 고급 호텔들과 쇼핑몰 등이 위치해있고 워킹 스트리트 등 도심 번화가가 가까워 파타야를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필수로 들르는 곳이다. ! 개별적으로 온 여행객들은 워킹스트리트를 지나 발하이 선착장(Bali Hai Pier)’까지 가야 한단다.

 

 

 

 

파타야는 반세기 전에 조성된 계획도시. 덕분에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파타야 비치로드파타야 2로드라는 큰 도로 2개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작은 골목(Soi)들이 바둑판처럼 설계되어 있다. 두 도로 사이에는 호텔과 나이트클럽들이 북적거린다. 특히 남 파타야 로드 주변은 유흥거리로 밤이 되면 환락가로 변해서 세계 각국의 유흥장을 모방한 술집은 물론 자질구레한 옷가지나 물건들을 파는 야시장이 성황을 이룬단다.

 

 

해변에는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뭘 상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양새는 하트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조형물을 감싸고 있는 널찍한 광장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면 제격이겠다.

 

 

파타야 해변은 동양의 하와이태국의 리비에라라 불리기도 한다. 하늘을 누비는 파라슈트나 바다 위를 날듯이 달려가는 윈드서핑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언젠가 이곳 파타야의 물이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나 보다. 오래전부터 관광지였던 탓에 수질(水質)이 많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는 또 해양 정화사업으로 수질이 점점 회복되어 가는 중이라고도 했다. 참고로 이곳 파타야 비치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질녘이라고 한다. 이때 해변 근처 카페나 호텔 레스토랑의 테라스와 창가 테이블 좌석은 금방 만석이 된단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와 백사장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모터보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은 편도 30바트(Baht: 한화 약35)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인천공항에서 인연을 맺은 패키지 여행객들을 한꺼번에 태운 보트는 바다를 가르며 달려 나간다. 이따금 바다 위에서 높이뛰기도 하고, 춤을 추듯 좌우로 흔들거리기도 한다. 스릴을 느낄 수 있도록 일부러 그랬지 않나 싶다.

 

 

 

 

꼬란(Kho Larn)으로 가는데 하늘이 온통 낙하산(parachute) 천지다. 이곳 파타야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패러세일링(parasailing)이란다. 특별히 만들어진 낙하산(parasail)을 이용한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인데, 낙하산에 사람을 묶어서 긴 밧줄로 연결한 뒤 모터보트에 매달아 빠르게 달려 나가는 힘으로 낙하산을 하늘 높이 띄게 하는 원리다. 원래는 프랑스 공수부대의 훈련용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1950년의 일이다. 이게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레포츠로 발전되었단다. 이후 세계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레포츠로 성장했으며, 우리나라에는 1985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처음 선을 보인바 있다.

 

 

 

 

 

 

 

 

20분쯤 달린 보트는 꼬란(Kho Larn)의 바닷가에 여행객들을 내려놓는다. 일명 산호섬이라고 불리는 꼬란은 파타야보다 바닷물이 깨끗해 물놀이를 즐기기에 편하고 각종 해양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 이를 권하는 호객꾼들이 선착장에서부터 덤벼드나 서둘지 말고 가격 비교 후 이용하면 된다. 해안에는 유료 샤워장과 탈의실, 기념품 상점,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비취빛 바다는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맑다. 물을 좀 마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겠다는 얘기다. 제트스키와 바나나보트 등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짓는 이유일 것이다.

 

 

 

 

바다는 두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드럼통 같은 커다란 비닐 통을 연결한 부표 안쪽에서는 해수욕객들이 수영을 하고, 바나나 보트제트 스키등의 해양스포츠는 부표 밖에서만 하도록 했다.

 

 

바닷가 풍경은 우리나라의 해수욕장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시스템까지 같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안전요원이 전망대에서 눈에 불을 켜고 물놀이객들을 살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괜한 욕심을 부려 깊은 바다로 나가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음주 수영은 금물이라 하겠다.

 

 

 

 

 

 

 

 

과도한 스릴을 피하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간단한 물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한데다 수심까지 낮은 게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겠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는 이유일 것이다.

 

 

휴식은 하나투어에서 제공하는 장소를 이용했다. 여행사에서는 열대 과일에다 치맥(치킨&맥주)까지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몸뿐만이 아니라 입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해변은 여름사냥에 나선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그런데 낯선 이국땅인데도 불구하고 오고가는 언어가 온통 한국말이다.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한다는 태국, 그 주역은 한국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비치파라솔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보는 즐김으로, 바다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탈거리'를 통해 느끼는 스릴로 시간을 보낸다.

 

 

선착장 부근에는 해양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만큼이나 제트스키들도 많다. 그보다 숫자는 적지만 바나나보트도 보인다. 호객꾼들에게 가격을 흥정해보고 그중 하나를 이용하면 될 일이다. 우리처럼 패키지여행을 온 사람들도 같다. 이용요금은 각자 부담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산호섬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탈거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사실. 바다에 온몸을 던져버리는 체험을 통해 가슴까지 차올랐던 스트레스를 훌훌 던져버리는 쾌감이 산호섬에 넘실댄다.

 

 

 

 

파타야 시내 풍경,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는 전선(電線)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곳 파타야 뿐만이 아니라 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새로운 선로(線路)를 깔 때 기존의 것을 제거하지 않는 탓이란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에 묻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뱀들 때문에 그것마저도 어렵단다.

 

 

 

 

거리는 송크란 축제(Songkran Festival)’의 분위기로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설날인 413일을 전후(前後)해 열리는 전통 축제이다. 태국에선 태양이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중 처음인 양자리에 들어가는 413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긴다. 물 뿌리기는 본래 상대방의 어깨나 손에 뿌리는 전통이 있었다. 자신의 죄와 불운을 씻고 새해 복을 빌어주는 풍습이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인 만큼 더위를 식히기 위한 목적도 있다. 송크란 축제를 물 축제라 부르는 이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 뿌리기 행사는 점차 활동적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거리에서 물총이나 호스 등을 사용해 사람들이 모두 서로를 향해 물을 뿌린다. 축복의 의미로 뿌리는 것이므로 맞는 사람이 화를 내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물 뿌리기의 규모가 커지면서 종종 과격해진 물싸움으로 인해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단다. 참고로 송크란(Songkran)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삼크란티(Saṃkrānti)’에서 유래한 말이다. 삼크란티가 태양이나 행성의 이동이나 이동경로를 의미하므로 송크란은 태양이 양자리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새해 첫 날을 일컫는다.

 

 

이틀 밤을 머문 티식스5 페노미널호텔(Tsix5 Phenomenal Hotel)’

도심에서 4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파타야의 명소인 나끌루아 베이진리의 성전등도 15분 정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4성급 호텔에 걸맞게 객실이 넓고 깨끗했고 욕실에는 무료 세면용품은 물론이고 목욕가운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호텔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객실마다 발코니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파타야 시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가 된다. 특히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물든 야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호텔에도 송크란 축제의 흔적이 보인다. 태국 국왕으로 보이는 사진과 함께 부처님과 물 항아리를 진열해 놓았다. 송크란 축제는 무더위를 식히고 곧 시작될 우기에 많은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의식이다. 1년 중 가장 더운 계절에 사람들은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긴다. 태국은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다. 물 항아리 옆에 부처님이 모셔진 이유일 것이다. 이 기간 중에 불상을 물로 씻는 행사도 열린다니 말이다.

 

 

여행지 : 태국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첫째 날 : 방콕의 하루, 왕궁과 에메랄드사원 그리고 보트투어

 

특징 : 태국(泰國, Thailand) : 인도차이나 반도 서부 지역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방콕이다. 옛 이름은 시암(Siam,18561939). 국민의 75%가 타이인이며 14%는 중국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3세기에 발달한 수코타이 왕조 때 영토를 넓히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4세기 아유타야 왕국의 전성기를 거쳐 16세기 후반에는 일시 미얀마군에게 지배당하였으나 곧 물리치고 독립하였다. 19세기에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되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타이가 당시 유능한 통치자를 만났고,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그들의 경쟁의식과 자존심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이다. 1932년 무혈 군사혁명이 일어나 지금의 입헌군주제가 되었으며, 타이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군사혁명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타이의 정치적 특징은 군부와 민간정치세력 간의 균형 위에서 정치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국왕은 국민적 단결과 화합의 구심점으로, 국가적 위기 때에는 조정자 구실을 수행한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한 데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왕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방콕(Bangkok) : 타이 만에서 약 40떨어진 지점,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에 위치한 세계적 거대도시로 문화·상업·금융의 중심지이다. 1971년 원래의 시가 차오프라야 강 서쪽 연안에 있는 옛 자치시 톤부리와 통합되었고, 1972년 다른 외곽지대들과 통합되면서 방콕 대도시권을 형성했다. 때문에 3륜 택시, 자가용, 버스로 이루어지는 도심 교통은 매우 혼잡한 편이다.

 

왕궁(The Grand Palace) : 방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둘레 1.9의 왕궁 안에 왕족들의 주거 공간과 국왕의 접견과 집무를 위한 건물, 왕실 사원인 왓 프라 깨우(Wat Phra Kaew) 등이 위치해 있다. 18세기 후반 라마 1세가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건설했다. 라마 8세까지 차크리 왕조의 왕들은 모두 이곳에서 생활했지만 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 9)이 두싯 지역에 있는 칫라다 궁전(Chitralada Palace)‘으로 거주를 옮긴 다음에는 왕실이나 국가 행사 때만 이용된단다. 왕이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태국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복장에 유의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왕궁으로 향한다. 4차선을 내도 충분할 정도로 널찍하지만 보행자 전용이어선지 차량은 지나다니지 않는다. 아니 임시로 쳐놓은 듯한 차단 펜스 너머에 별도의 보도(步道)가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그렇게 200m 남짓 걸었을까 하얀색 담벼락에 둘러싸인 왕궁이 나타난다. 왕궁의 높다란 담벼락을 끼고 왕복 4차선의 도로가 널찍한데도 관광버스들은 지나다니지 않는다. 안전을 대비해선지는 몰라도 대형버스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멋지게 차려입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조그만 미동도 없이 그림처럼 서있는 풍경은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 보아오던 것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너른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만 왕궁에 들어갈 수 있다. 아니 정확히는 왓 프라깨우(에메랄드사원)‘로 들어가게 된다. 하긴 에메랄드사원이 왕실의 부속사원이니 왕궁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다.

 

 

왕궁은 복장의 제한을 두고 있으므로 민소매와 반바지, 짧은 치마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만일 민소매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엔 왕실 입구에 옷을 대여해주는 곳에 들러 반드시 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왓 프라깨우(에메랄드사원)‘가 자리한다. 사원의 본당은 벽화(The Murals)가 그려진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이가 1,900m에 달한다는 이 벽화는 라마야나(Ramayana, 태국에서는 라마키안)’이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대서사시를 그림으로 구성해 제작한 것으로 총1708칸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벽화는 장인들의 손길에 의해 수시로 복구된단다. 참고로 라마야나는 총 116권의 방대한 서사시로 8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구성되어 있다.

 

 

 

 

에메랄드사원(왓 프라깨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본당 건물인 봇(대법전, Bot)이다. 왓 프라깨우 입구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불전으로, 불전 앞에는 관음보살, 불전 처마에는 가루다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불전 내부에는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가 안치되어 있다. ‘에메랄드 불상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옥()으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태국으로 전해진 것이란다. 1434년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석고 반죽으로 감싼 불상이 실수로 파손되면서 옥 불상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크기는 비록 66cm밖에 되지 않지만, 왕조의 번영과 왕실의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단다.

 

 

 

 

본당인 봇(Bot)의 옆에는 황금색 불탑(佛塔)프라 씨 라따나 쩨디(Phra Si Ratana Chedi)’가 있다.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어진 불탑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단다.

 

 

에메랄드사원의 대표적인 불탑은 물론 프라 씨 라따나 쩨디(Phra Si Ratana Chedi)’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쩨디(Chedi)들이 평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양이 각기 다른 불탑들도 사진의 배경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에메랄드사원의 문들은 어김없이 보초를 세워놓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거인 아니면 무섭게 생긴 동물들 일색이다. 깔끔한 군복을 차려입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왕궁지역과는 또 다른 풍경이라 하겠다. 해당 지역에 머물고 있는 인간과 신()의 차이라고나 할까?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은 하단을 사원처럼 보이게 하고 상단은 봉 선인장을 닮은 크메르 불탑인 쁘랑으로 장식했다. 안에 라마 1세 이후 역대 왕들의 동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의 앞에 있는 금색의 불탑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인비인(人非人) ‘끼나라(Kimnara)’들이 둘러싸고 있다. ‘끼나라는 그 형태가 사람과 닮았다. 하지만 신인간짐승의 어느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천룡팔부 중의 하나로 불법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희귀성 때문인지 탑 주변은 끼나라와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의 옆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히고 있는 사각 건물 프라 몬돕(Phra Mondop)’이 있다. 왕실 도서관으로 쓰였으며 안에는 불교 서적이 보관되어 있단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뜬금없는 풍경과 맞닥뜨린다. 캄보디아에 있어야 할 앙코르 왓(Angkor Wat)’을 축소시킨 모형(Model)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는 15세기 아유타야 왕조와 19세기 짜끄리 왕조의 라마 4세 때 앙코르 왓을 점령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태국인들로 봐서는 영광이겠지만 캄보디아인들에게는 기분 나쁜 현장이라 하겠다.

 

 

흰두교는 물론이고 불교에서도 신성시 여기는 코끼리가 에워싸고 있는 불탑도 보인다.

 

 

사원의 안은 시골 장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곳 왕궁이 방콕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들어서 있는 건물들이 모두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띄고 있어 종교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태국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니 어찌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당의 내부도 인산인해(人山人海)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태국인이다. 태국인에게 불공을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신성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왕궁의 한켠 문에서는 연꽃·국화, 금박, , 양초 등의 불공세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금박은 불상에 붙이기 위한 것으로 그 위치에 따라 본인의 몸이 치유된다고 전해진다.

 

 

 

 

왓 프라깨우를 보고 남서쪽 통로로 나오면 왕궁(Bangkok Grand Palace)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전각은 보름피만 궁전(Borom Phiman Mansion)’으로 1903년 라마 5세 때 유럽 양식으로 건축했으며 라마 6세부터 라마 8세까지 왕궁으로 사용했었단다.

 

 

다음은 짜끄리 마하 쁘라쌋(Chakri Maha Prasat)’이다. 왕궁에서 가장 웅장한 유럽풍의 건물로, 라마 5세가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와 짓기 시작해 1882년 완공했으며 라마 5세부터 라마 6세까지 외빈을 위한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단다.

 

 

보름피만 궁전 옆에는 1785년 라마 1세 때 지어진 사원 모양의 프라 마하 몬티안(Phra Maha Montien)’이 있다. 이 건물에는 국왕이 주요 인사를 알현하던 프라티낭 아마린 위니차이(Phra ThiNang Amarin Winitchai)’, 대관식이 열리던 프라티낭 파이싼 딱씬(Phra ThiNang Paisan Taksin)’, 라마 1세부터 라마 3세까지 궁전으로 사용한 프라 티낭 짜끄라팟 피만(Phra ThiNang Chakraphat Phima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짜끄리 마하 쁘라쌋의 옆 태국 사원풍으로 지어진 건물은 두씻 마하 쁘라쌋(Dusit Maha Prasat)’이다. 1790년 라마 1세 때 건축되었으며 십자가 모양의 구조와 네 겹의 겹지붕, 7층 첨탑 등이 인상적이다. 화장하기 전의 왕과 왕족의 시신을 안치하고 조문을 받는 곳으로 이용된단다.

 

 

궁전의 안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원래부터 출입을 막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의 제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이드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리야 하는 패키지 여행자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동(微動)도 없이 서있는 근위병과 사진이라도 찍어두었으면 좋은 추억거리라도 되었을 것을 그마저도 못할 정도로 소심한 여행자였으니 가이드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중문을 빠져나오면 왓 프라깨우 박물관(The Temple of The Emerald Budda Museum)’이다. 유럽풍 건물로 궁전을 장식할 때 쓰였던 각종 부재, 궁전에서 쓰던 그릇, 장식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입장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가이드가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왕궁을 빠져나오면 아까 궁으로 들어갈 때 건넜던 4차선 도로이다. 다음 일정은 유람선 투어, 유람선 선착장은 입구의 반대편 진행하면 된다.

 

 

가는 길에 만나는 노천시장을 잠시 기웃거려 보지만 입맛에 맞는 상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돌아서기도 멋쩍어 태국산 캔 맥주 하나 주워든다. 국내에서도 음료수처럼 마셔댈 정도로 좋아하는지라 시원하면서도 맛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에 있는 창 선착장(Tha Chang)’에 이른다. 매표소가 들어있는 건물에도 기념품과 과일, 잡화 등을 파는 가게가 빼꼭히 들어차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살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참고로 짜오프라야강에는 이곳 창 선착장(Tha Chang)’말고도 파아팃 선착장(Tha Phra Arthit)’랏차윙 선착장(Tha Ratsha Wong), ’오리엔탈 선착장(Tha Oriental)‘ 등 여러 곳의 선착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유람선은 강가를 둘러보는 보트와 디너 크루즈로 나눌 수 있단다.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선착장에는 여러 종류의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인원에 맞는 유람선을 골라잡으면 되겠다. 정원이 40명쯤 되는 배에 올라타자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된다. 태국인 가이드인데도 한국어가 유창하다. 하지만 태국의 지명이 낯설어 내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을 따름이다. 참고로 방콕의 상징은 역시 왕궁과 많은 사원이다. 그렇다고 짜오프라야강을 빼놓을 수는 없다. 방콕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봐서는 한강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우리나라의 마한과 백제, 조선이 한강을 근거로 했듯이 이곳 태국의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톤부리, 짜끄리 왕조가 모두 짜오프라야강유역에서 기반을 다지거나 유지했다.

 

 

 

 

유람선 투어는 방콕의 매력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각기 다른 모습과 빛깔을 내는 방콕의 여러 왕궁과 사원들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사원과 불탑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하긴 태국은 불교국가가 아니겠는가. 불교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27000여 개의 사찰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개개의 사찰들마다 건축·회화·조각품·고전문학 등의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 있음은 물론이다.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물빛은 우리의 한강에 비해 썩 맑지는 못했다. 맑디맑은 강물에 익숙한 우리네에겐 낯선 색깔이라 하겠다. 이유는 동남아 대륙부의 내륙 각지를 어루만지며 흘러오면서 풍부한 무기질을 품었기 때문이란다. 무기질이 저런 색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잘 달리던 배가 뱃머리를 강가에 댄다. 왕족으로 보이는 세 명의 초상화가 세워진 강변이다. 배에 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빵조각을 강물에 던져준다. 그러자 물속에서 노닐던 수많은 물고기가 퉁퉁한 모습을 드러낸다.

 

 

 

 

유람선은 우릴 리버 시티(River City)’로 안내한다. 보석과 골동품 가게로 유명한 상가이다. 이곳에서는 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골동품도 판매하고 있단다. 하지만 안내서에는 눈팅만 하고 구매는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었다. 골동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진품을 가리기 어려운데다 한 번 사면 반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 저변에는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배에서 내리는 곳으로 이용했을 뿐인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리버시티 근처에 있는 훨람퐁 역(Hua Lamphong Station)’의 건물이 독특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저곳에서는 북부 치앙 마이(Chiang Mai)’ 방향과 남부 버터위스(Butterworth)’ 방향, 북동부 농카이(Nong Khai)’ 방향까지 운행하는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한다. 방콕의 중앙역쯤으로 보면 되기 않을까 싶다.

 

 

 

하룻밤을 머물렀던 이스틴 타나시티 골프리조트(Eastin Thana City Golf Resort Bangkok)’는 오랜만에 만나본 괜찮은 호텔이었다. 객실과 화장실은 널찍하면서도 깨끗했고 면도기와 칫솔·치약만 빼고는 일회용 세면도구를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 미니바와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드라이기 등의 용품들도 준비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종합 스포츠 콤플렉스라 할 정도로 골프 코스 외에도 피트니스센터와 야외 수영장, 탁구장, 당구장, 테니스코트 등 각종 스포츠 시설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아침 식사도 골프장의 부속시설이라는 특성답게 뛰어난 편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퍼들의 입맛에 맞추다보니 뛰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