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

여행일 : ‘14. 2. 28()

 

특징 : 대마도를 둘로 나누는 아소만은 대마도의 하롱베이라 불린다. 이곳을 360도 조망(眺望)할 수 있는 곳이 에보시다케 전망대다. 전망대에 오르면 리아스(rias)식 해안으로 겹겹이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아소만의 작은 섬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2년쯤 전인가 찾았던 전남 진도군에 있는 조도의 전망대에는 약간 미치지 못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주차장에서 조금 위까지 올라간 버스는 들머리인 돌계단 앞에다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 계단을 올라서기 전에 잠깐 왼편으로 시선을 주어보자. 아소만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水彩畵) 같다.

 

 

 

 

 

 

 

 

 

 

 

긴 계단을 밟고 정상으로 올라서면 전망대가 길손을 맞는다. 3층으로 된 전망대는 사각형의 구조, 360도로 아소만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가운데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곁에 조망도(眺望圖)로 보이는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그러나 전망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었다. 그림을 들어다보는데 문득 의문표 하나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곳 대마도가 일본 본토(本土)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더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곳이 일본 땅이 되었을까? 이 의문은 대마도 여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따라다니고 있었다.

 

 

 

 

 

 

 

하롱베이는 그 규모가 큰 탓에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전체를 다 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구태여 하늘에 올라가지 않고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섬들의 향연을 눈에 담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도만큼은 결코 아니다. 조도(鳥島)는 새들의 섬, 그렇다고 새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본섬 주변에 널려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새때처럼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올망졸망한 섬들이 파란 파도 위에 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찰 것이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꼭 가볼 것을 이 자리를 빌어 권하고 싶다.

 

 

 

 

 

 

 

전망대에서 아까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선다. 계단을 따라 길게 내려서면 주차장이다. 주어진 시간에 여유가 있어 산책(散策)에 나선다. 주차장 주변이 공원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공원의 한 중앙에는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도 망원경(望遠鏡)이 설치되어 있다. 아소만을 다시 한 번 구경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렌즈를 통해본 풍경은 보잘 것이 없었다. 아까 에보시다케전망대에서 보았던 풍경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곱디고운 잔디가 깔린 공원은 한마디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작은 봉우리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산책로 주변에는 하얀 동백꽃들이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는 길에 바라본 에보시다케전망대

까마귀가 모자를 쓴 형상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에보시타케는 아소만을 사방으로 조망(眺望)할 수 있는 대마도 유일의 전망 포인트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아소만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이 마치 오밀조밀하게 가꿔놓은 정원(庭園)을 보는 듯하다.

 

 

 

 

 

여행지 : 미우다(三宇田 : 삼우전)해수욕장

여행일 : ‘14. 2. 28()

 

특징 : 대마도에는 5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이 중 맨 위쪽에 위치한 미우다 해수욕장이 피서지로 가장 이름난 곳이다. 고운 모랫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고, 에메랄드 빛 섞인 푸른 바다위에 작은 섬이 떠있어 멋진 풍경을 그려낸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크지는 않지만 바닷물이 깊지 않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해변마다 작은 해수욕장들이 즐비한 대마도는 바다 밑이 그대로 비칠 만큼 물이 깨끗한 것으로 유명하다. 히타카츠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미우다 해수욕장도 그중의 하나이다. ‘일본 해수욕장 100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이 해수욕장은 입자가 매우 고운 천연 모래 해변에 에메랄드그린 색 바다가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곳도 역시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모양, 20분 남짓 머물렀을 따름인데도 어느새 알고 커피차량이 찾아올 정도이니 말이다.

 

 

 

해변의 중앙에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그 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작은 소나무, 이렇게 맑고 고운 해수욕장을 오염(汚染)으로부터 지켜내기라도 하려는 듯, 흡사 독야청청(獨也靑靑)의 표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해수욕장의 편의시설 뒤로 오르면 이곳도 역시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고운 잔디를 깔아 놓은 광장 주변에는 동백나무 들이 시뻘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이 잔디광장에서 캠핑을 할 수 있으니 꼭 해수욕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러볼만한 곳이다.

 

 

 

 

 

 

 

 

 

 

 

만재끼다리(方關橋)는 아소만과 미우라만 사이에 만들어진 운하인 만제키세토(萬關瀨戶 : 瀨戶水路)에 놓여있는 철제다리이다. 다리가 만들어진 배경 등 특별한 뒷얘기는 없고, 외형 또한 그저 평범한 다리일 따름이다. 운하를 개보수 하면서 만든 이 다리는 그 동안 세 번이 바뀌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1996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관광객들이 요란법석을 떨 정도의 광경은 아니다.

 

 

 

이 운하는 1900년 당시 아소만에 있던 군함(軍艦)들을 쓰시마동쪽 해안(海岸)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일본해군이 넓고 깊게 판 것이라고 한다. 쓰시마는 이 운하로 인해 가미시마와 시모시마로 나뉘게 된다. 운하를 파면서 생긴 토사를 매워 만든 육지가 메고시마(女護島)이다.

 

 

 

 

 

 

 

 

 

본섬과 98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대마도는 본래 커다란 하나의 섬이었다. 1900년 일본 해군이 대륙침략을 위해 군사용으로 아소만 근처에 인공운하(人工運河)를 판다. 이때 만들어진 운하는 러일전쟁(戰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05년 세계최강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항에 가기위해 대마도 앞 해협을 지나는 틈을 노려 일본 함대가 기습하여 발틱함대를 궤멸시킨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장악하게 된다.

 

 

 

 

 

 

 

 

 

만재끼다리를 건너면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띈다. 일본 대마도의 시이네(椎根)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독특한 형태의 돌지붕 이시야네(石屋根)이다. 건물 위에 평평한 돌판이 올려져있는데, 이는 바람에 건물이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건축 방법이란다. 바람이 많은 고장에서 나무로 지어진 가옥(家屋)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근원이었을 것이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잠깐 들른 오후나에유적지

일본기사의 말을 알아듣는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항구라고 한다. 냇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 그러니까 조수(潮水)의 간만(干滿)에 따라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交叉)하는 지점쯤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보면 중간쯤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보인다. 이 계단을 내려서서 냇가를 따라 2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오른편에 돌로 반듯하게 쌓아올린 시설물이 나타난다. 옛날 대마도 번주(蕃主)가 선착장(船着場)으로 이용하던 시설로서, 항해에서 돌아온 배를 보관하거나 수리하던 곳이란다. 지금의 도크(dock)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에도(江后)시대의 각 번()들은 모두 이러한 선박(船舶) 격납(格納)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곳 같이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참고로 이곳은 번의 전용선박을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일정금액을 받고 일반선박들도 보관해 주었다고 한다.

 

 

 

 

 

 

 

 

 

 

 

여행지 : 한국전망대(韓國展望臺)

여행일 : ‘14. 2. 28()

 

특징 : 대마도의 최북단 와니우라(鰐浦)에 위치한 전망대로서 일본에서 한국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전망대 건물을 아예 한국의 이미지를 본떠 팔각정(八角亭)으로 세워놓았다. 건물은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정자(亭子)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며, 전문가 자문 및 자재 구입 등 철저하게 한국풍(韓國風)으로 지어졌다. 건물 안에는 부산, 김해, 진해를 가리키는 지도판(地圖板)이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부산시의 거리가 보인다고 한다. 그야말로 '국경의 섬'임을 실감케 하는 곳이다.

 

 

 

첫 번째 관광지는 한국전망대, 섬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객선이 입항(入港)한 하타카츠항()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전망대에서 부산까지는 불과 49.5Km,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부산항이 또렷이 보인다고 한다. 만일 부산에서 불꽃놀이라도 할라치면 그 휘황찬란한 빛줄기가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망대인 팔각정 옆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가 있다. 부산을 떠나 대마도로 오던 역관(譯官) 사절단을 태운 배가 풍랑에 뒤집혀 전원이 숨진 것을 추모하는 빗돌이란다. 참고로 1703년 대마도 제3대 번주(蕃主)의 죽음을 위로하고 제4대 번주의 습봉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108명의 조선역관들이 탄 배가 대마도 항구를 목전에 두고 거센 폭풍우에 휘말려 전원 몰살당했다. 이 비석(碑石)은 한천석 등 108명의 조선 역관과 안내를 맡은 4명의 쓰시마인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112명의 영혼(靈魂)을 상징하는 112개의 초석으로 비를 세웠다고 한다. 참고로 역관사(譯官使)란 당시 일본 선비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던 일종의 교수였다.

 

 

 

 

 

 

 

이층으로 된 전망대의 위층은 조선통신사 행렬 등의 그림과 여러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내부(內部)와 전망을 할 수 있는 베란다(veranda)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베란다에는 망원경(望遠鏡)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다. 망원경(望遠鏡)을 통해 내다보아도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남아서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본다. 동백나무가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는 산등성이를 넘으니 신사(神社) 하나가 나타난다. ‘금비라신사(金比羅神社)’ 다섯 개의 토리이(神社)을 지나니 아담하게 지어진 신전(神殿)건물이 나온다. 금비라는 바다의 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바닷가 사람들이 바다의 신에게 안전한 항해(航海)를 비는 곳인 모양이다.

 

 

 

 

 

 

 

 

여행지 : 카미자카(上見坂)전망대

여행일 : ‘14. 3. 2()

 

특징 : 정식명칭은 이키-쓰시마국정공원 카미자카원지(壱岐対馬國定公園 上見坂園地)로 해발 385m의 구릉(丘陵)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이쵸오토시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자이쵸오토시라는 지명은 카마쿠라막부(鎌倉幕府) 시대에 대마도를 차지하기 위한 두 가문의 격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전망대(展望臺) 외에도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지어진 군사시설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망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의 앞은 잔디광장, 그 너머로 아소만의 정경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전형적인 리아스식해안과 그 사이사이에 들어앉은 작은 섬들이 마치 잘 꾸민 정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거기다 재수라도 좋은 날이면 대한해협 건너의 한국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 거기다 안개까지 자욱한 탓에 섬이 만들어낸다는 정원(庭園)은커녕 섬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행여나 안개가 물러날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본다. 그런 내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언뜻 안개가 물러나는 것이 보인다. 흐린 날씨 탓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섬들이 실루엣으로 처리되며 슬그머니 나타난다. 그리고 잘 그린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그려낸다. 한마디로 장관(壯觀)이다. 비록 금방 사라져버리기는 했지만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안개가 걷힐 것 같지 않아 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전망대 뒤쪽으로 난 산책로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길 뒤로 일본군들이 쓰던 옛 진지가 숨겨져 있다. 1902년 긴박하던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포루(砲樓)라고 한다.

 

 

 

 

 

포대와 탄약고, 병사들의 숙소(兵舍), 군수창고 등 시설들은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지어지고 나서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를 떠올려본다면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보니 포대 옆에 작은 빗돌()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평화내비(平和乃碑)’ 쉽게 말해 평화의 비이다. 일본은 남의 나라를 빼앗는 것을 즐겼던 호전적(好戰的)인 민족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평화라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요즘 파업이나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그와 뭐가 다르겠는가

 

 

내가 좋아하지 않은 상황을 연출했던 사람이기에 사진촬영을 안했지만 이곳 카미자카공원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비석(碑石)이 하나 더 있다.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소우 다케유키(宗武志)의 시비(詩碑)가 바로 그것이다. (), (), ()에 능했다는 그는 야망(野望)도 컸던 모양이다. 그 야망을 이루지 못한 답답함을 시 한수로 표현해 놓았는데, 그 시를 비석에 새겨 놓은 모양이다. 오가는 관광객들이 시비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데도, 거기에 선뜻 동참을 못하는 난 어쩔 수 없는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인 모양이다.

 

 

여행지 : 일본 대마도(對馬島 : 쓰시마)

 

여행일 : ‘14.2.28() - 3.2()

 

2. 28() : 하타카츠(比田勝), 한국전망대, 미우다(三宇田)해수욕장, 에보시타케(烏帽子岳)전망대, 와타츠미(和多都美) 신사(神社), 만재끼다리(方關橋), 아유모도시(德點)자연공원, 오후나에(船江)유적지

3. 1() : 시라다케(白岳)산 등반, 금석성(金石城 : 가네이시조)과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대마민속자료관, 유타리(湯多里) 해수온천

3. 2() : 가미자카공원

 

대마도의 특징 : 대마도는 비록 일본 영토(領土)이지만 부산으로부터 49.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일본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후쿠오카와는 138, 우리나라에 훨씬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랫동안 한반도와 일본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해왔고, 그 흔적은 섬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마도는 거제도의 2배 크기로 88%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산지다. 그리고 섬의 주변은 리아스식(rias) 해안(海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낚시와 삼림욕(森林浴)을 즐기려는 우리나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섬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은 일본사람들보다 차라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긴 면세점(免稅點)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까지 몰려든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로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한 섬이다. 크게 위·아래 가미지마와 시모지마의 2개 섬으로 이뤄져 있고 가운데 아소만이 자리한다. 가장 큰 도시인 이즈하라는 아래 섬에 위치하고 있다. 

 

 

 

대마도에 가려면 먼저 부산항으로 와야 한다. 대마도로 가는 쾌속선(快速船)이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구태여 비싼 항공요금을 물어가면서까지 시간을 절약해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인지라 남아도는 것이 시간뿐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마도 여행법은 부산에서 쾌속선인 비틀호(jrbeetle.co.kr)나 코비호를 타고 가는 것. 하루 한두 편씩 정기 운항하고 있으며 대마도 북단인 히타카쓰항으로 들어가는 것과 이즈하라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뉜다. 히타카쓰까지는 1시간10, 이즈하라까지는 1시간55분 걸린다. 대아고속해운(intlkr.daea.com)도 매일 오전 930분 부산항을 떠나 대마도의 히타카쓰를 거쳐 이즈하라까지 운항한다.

 

 

 

오전 8시 정각에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여객선은 1시간10분쯤 후에 대마도 북동부의 작은 항구도시인 히타카츠에 닿았다. 뱃멀미에 약한 사람들이 멀미기를 느끼기도 전이다. 그만큼 대마도는 한국땅에 가까운 것이다. 배를 타고 내릴 때 낚시도구를 챙겨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낚시가 잘된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다.

 

 

 

배에서 내리면 먼저 짐 검사와 입국수속을 해야 한다. 검사와 입국수속은 비교적 간단하다. 먼저 X-RAY 검사를 마친 다음 이동해 입국수속을 한다. 입국수속은 여권과 입국카드를 제시하고, 양쪽 검지를 기계에 대면, 입국심사관이 얼굴 촬영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입국수속 건물을 나오면 바로 고즈넉한 분위기 속의 조그만 선착장이다. 해양순시선과 작은 배들을 구경하며 걸어 나오면 그리 크지 않는 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인다. 한국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이다. 대마도를 둘러보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韓國人)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생업에 바쁜 대마도 주민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마도 인구는 35000명에 못 미치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연간 1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마도에는 고속도로가 없다.

산지(山地)에 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마주 오는 차량(車輛) 2대가 한 번에 통과할 수 없을 정도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우선이라는 정책 때문이란다. 때문에 차를 타고가다 보면 길가에 바짝 붙어서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서로 비켜가기 위해서 도로 폭이 조금 넓은 지점을 골라 상대편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두 차량 중 하나가 소형차량일 때에만 해당된다. 양쪽 모두 대형버스라도 될 경우에는 어느 한 대는 별수 없이 후진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로 비켜 지나가면서 울려대는 경적(klaxon) 소리는 양보해 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이러한 번거로움도 도로 주변에 우거진 숲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을만했다.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성했다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에서 듬뿍 내품어 오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도로를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걱정거리 하나, 이렇게 좁은 도로에서 차라도 서로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내 눈에 비치는 그들의 후진(後進)은 전진만큼이나 잘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곳에서 살아가려면 그 정도 기능은 필수가 아니겠는가.

 

 

 

대마도는 나무 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삼림(森林)뿐이다. 그 삼림은 대부분 편백나무와 삼나무들,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내뿜는다는 나무들이다. 때문에 섬 전체가 힐링 캠프(healing camp)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오랜 동안 일본정부가 추진해온 정책, 개발보다는 보존이 우선이라는 정책이 승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나무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일본 인구의 4년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다는 풍문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내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대마도는 그 반대급부로 원시(原始)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을 갖게 됐다. 거기에다, 일본이 인공적으로 조림해 놓은 히노끼(편백나무)는 대마도 곳곳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히노끼는 침엽수(針葉樹) 중 피톤치드를 가장 많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보다 무려 5배 이상이니 많은 양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으로 대마도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상큼하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마저 가벼워진다. 이런 히노끼가 산마다 가득 차있어 공기는 물론, 자연그대로의 원시림이 주는 풍광(風光)을 만날 수 있다.

 

 

 

 

 

하타카츠 항에 있는 히토츠바타코 식당, 상호(商號)는 이팝나무라는 의미라고 한다. 첫날 점심과 마지막 날 점심을 이곳에서 했는데, 첫날은 우동과 간단한 초밥, 그리고 생선회가 나왔고, 마지막 날은 회덮밥과 따뜻한 메밀국수가 나왔다. 그런데 이 식당은 페키지여행사들의 필수코스인 모양이다. 우리가 나올 때쯤 들어오는 팀들이 내뱉는 언어들이 한국어인 것을 보면 말이다.

 

 

 

 

 

대마도의 도심(都心) 풍경

대마도에서 가장 크다는 이즈하라가 우리나라의 읍() 정도 크기이니 나머지는 시골 마을, 조금 크다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면소재지(面所在地) 정도로 보면 된다. 섬의 곳곳에 있는 상점들은 대부분 한국어 간판과 메뉴판이 구비되어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주요 고객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심지어 어느 주점에는 손님이 조리해 먹는 안주의 경우에는 만드는 법을 밑줄까지 쳐 놓은 한글판을 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점이나 음식점 등 우리가 들렀던 영업장 대부분에서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이틀 밤을 묵은 니지민숙(民宿)

이즈하라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저녁에 잠깐 잔술이라도 하려면 택시를 이용해야만 하는 불편이 있으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展望) 하나는 끝내준다. 거기에다 마침 주인여자가 한국인이라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제공되는 식사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대마도에서의 23, 낮의 관광시간을 빼면 온통 니지민숙에서 보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행 중간에 지급받은 점심 도시락과, 도착과 출발시간에 맞추느라 들렀던 히토츠바타코식당을 제외하고는 아침과 저녁을 모두 이곳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저녁메뉴는 돼지고기와 해산물(海産物)을 혼합한 바비큐(barbecue)가 나왔다. 돼지고기와 온갖 해산물을 숯불에 구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상추 등 야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해산물보다 야채가 더 귀하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푸짐한 바비큐와 한국서 가지고 온 소주는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여행의 피로와 낯선 이국(異國)에서의 여수(旅愁)를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둘째 날 저녁 메뉴에는 해삼(海蔘)이 추가되었다. 대마도에는 삼()이 많다고 한다.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하늘에는 비삼이 산다. 비삼(飛蔘)이란 갈까마귀를 일컬음이다. 그래서 저녁메뉴에 추가시킨 모양이다.

 

 

 

 

 

 

 

 

 

여행 마지막 날, 하타카츠항을 떠나면서 대마도에 대해 다시 알아본다.

일본에선 대마’(對馬)라고 적고 쓰시마로 읽는다. 대마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래설이 있지만, 세 가지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왜인전에 나오는 진도(津島 일본어로 쓰시마)라는 설과 옛 한민족 이였던 삼한인(三韓人)들이 두 개의 섬이라고 해서 두 시마라 불렀다는데서 유래됐다는 설, 그리고 마치 두 마리 말이 마주보고 있는 형상으로 대마(對馬) 즉 쓰시마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 중 일본인들은 세 번째 설이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고, 가장 유력한 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지가 88%인 대마도는 주식(主食)인 쌀이 턱없이 부족해 조선에 의지했으며, 심지어 식생활 해결을 위해 조선의 고을로 인정해 달라며 상소를 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 결과로 고려 중엽에는 대마도 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과 만호(萬戶)라는 관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고, 대마도 도주인 소우 사다모리로부터 대마도를 아예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은 조선의 세종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를 태수로 봉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엔 조선과 일본 양쪽에 예속된 양속(兩屬)관계에 있었으나, 이토 히로부미가 집권하면서 대마도는 토쿠가와 막부 쪽으로 기울어 졌고, 메이지유신 이후 대마도는 일본의 현으로 편입됐다.

 

대마도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척박(瘠薄)하다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산()뿐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거제도의 1.7배 정도인 대마도는 섬의 9할이 산지이다. 그중에서도 농경지(農耕地)는 겨우 4% 남짓. 예전 대마도가 왜구(倭寇)의 본산지가 됐던 것도 먹고 사는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할 길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와 대마도의 관계는 침략(侵略)과 정벌(征伐)’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늘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교류(交流)와 친선(親善)을 다졌던 시기가 더 많았다.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일본에 한자가 들어간 것도 대마도를 통해서였고, 한양에서 출발한 통신사 일행이 일본 본토의 에도와 닛코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곳이 대마도의 이즈하라였다. 그 역사의 흔적들은 대마도의 곳곳에 남아있다. 이러한 흔적들을 둘러보기 위해 매년 15만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비록 사진은 없지만 산행 후의 피로를 푼 유타리(湯多里) 해수온천(海水溫泉)의 풍경, 대마도는 화산지대가 아닌 탓에 천연온천수(天然溫泉水)를 채취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천연온천수 대신 바닷물을 끌어들여 온천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온천은 보통 커다란 건물들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유타리온천은 가정집이 연상되는 소박한 형태의 온천이다. 온천 내부(內部)도 역시 우리나라의 80년대 모습이 연상되는 풍경이었다. 좁은 욕조(浴槽)와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샤워칸막이, 그리고 온도에 차이를 두어 만든 두 칸의 사우나는 몇 사람이 들어앉지 않았는데도 더 이상의 입장(入場)을 사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한국어는 낯선 이방인(異邦人)의 언어가 아니었다. 주변에 널린 언어들에 오염이라도 되었을까?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들까지도 능수능란하게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산행에서 찌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