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피어난 꽃들이 밖으로 등을 떼미는 봄날...
담장너머 백목련은 목대를 꼿꼿이 세워 올린지 오래고,
부지런한 가지는 벌써 낙화를 시작했다.

도로변에 줄기를 늘어뜨린 개나리는 노랑물이 흠뻑 들었고,
양지편 화단에는 갈길 바쁜 진달래가 꽃술을 연다.

온갖 생명붙이들이 살거죽을 찢고 움을 틔우는 요즘 같은 봄날.
살랑바람이 귓볼만 스쳐도 가슴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욕망.
"그냥 떠나버릴까?"

세속이란 굴레에 억매인 나는 모든 욕망을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오늘도 여행백 한 귀퉁이에 내의를 접어 넣는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냉장고엔 인스탄트가 수북이 쌓여가나,
뒤돌아 보면 부족하기만 하여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성숙이라는 자랑이라도 하려는 양 주위의 보살핌을 거절하는 애들...
그동안 가르켜 온 철학의 확신을 위해서라도 믿어야하건만

불안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탓하기보다
그저 한사람의 평범한 아빠이고 싶을 따름인 것을...

이제 유럽 출장을 위한 출국이 사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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