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산(河之山, 207m)-귀비산(貴妃山, 496m)-명산봉(名山峰, 240m)

 

여행일 : ‘17. 1. 19()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해읍과 서면, 남면의 경계

산행코스 : 고실치하지산대부산수리봉(돌탑봉)귀비산명산봉잔땡이고개임진성기왕산(起王山, 105m)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한반도 바래길의 일부구간이다. ‘한반도 바래길이란 이곳 남면(南面)의 상덕권역(상가리 남구 북구, 덕월리 덕월 구미 4개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둘레길인데, 상덕권역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만들어내는 지형이 한반도의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면 바래길에는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 바래길은 남해의 아낙들이 갯벌에 일하러 가던 길이고, 주린 배 움켜쥐고 물질 나간 어미 기다리던 자식의 길이다. 옛날 남해의 어미는 갯벌에서 갯것을 캐는 일을 바래한다고 했다. ‘바래길은 여기서 나왔다. 아무튼 한반도 바래길은 귀비산과 천황산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귀비산(貴妃山)만 올랐다. 시간이 부족한데다가 산의 높이로 보아 아무래도 귀비산의 산세가 더 뛰어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귀비산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 자태가 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정상 어림의 암릉구간은 일품이었다. 바위로부터 전해오는 손맛에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껴지고 올라서는 바위마다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졌다. 그렇다고 해서 귀비산을 골산(骨山)으로 볼 수는 없다. 나머지 구간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한번쯤은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은 산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은 채로 버려둔 탓에 짜증나는 산행을 할 수밖에 없음은 꼭 지적하고 싶다. 국비(國費)까지 들여가며 조성해 놓은 등산로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것은 혈세를 낸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참고로 귀비산은 좌측 지능선에 명산봉과 기왕산을 끼고 있고, 우측의 능선은 하지산과 천황산(天皇山`395.1m), 조산(214.5m)을 일으키고서 남해바다로 가라앉는다


   

산행들머리는 고실치(남해군 서면 대정리 산 160-6)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읍까지 들어온다. 남변삼거리(남해읍 남변리)에서 우회전하여 군도(郡道)인 스포츠로를 타고 잠시 들어가다 서면 대정리에서 좌회전하여 고실로()‘로 옮겨 힐튼 남해C.C’가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실치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실치는 서면(대정리)과 남면(상가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산행은 고갯마루에서 남면 쪽으로 50m쯤 내려가는 곳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상가대정, 96년도 개설)인데다. ‘평장묘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못 찾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참 잊을 뻔 했다. 고갯마루에서 반대 방향으로 올라갈 경우에는 봉황산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임도를 조금 넓혀놓은 곳이 보인다. 간이 주차장용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옆에 이정표(귀비산 정상 2.52Km/ 천황산 정상 1.88Km, 활성화센터 3.90Km)까지 세워놓았지만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하지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는데도 이정표에는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왼편 능선으로 오른다. 웃자란 잡목들이 등산로까지 비집고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길은 제법 또렷한 편이다. 이정표에도 나타나있지 않은 봉우리로 연결되는 길임을 감안한다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2분쯤 걸었을까 하지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물론 없다. 그저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임도로 되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방역복(防疫服)을 입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방금 전까지 작업을 했는지 농약 특유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병충해의 피해를 입은 나무들에 약이라도 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12분쯤 더 걸으면 능선의 안부로 여겨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임도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귀비산은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타야 한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왼편 능선 상에 있는 대부산에 다녀오는 일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서툴게 쌓아올린 작은 케언(cairn, 돌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로 삼으면 딱 좋겠다. 이곳이 대부산의 들머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도 없으니 말이다2분쯤 걸었을까 대부산 정상에 올라선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밋밋하게 생긴 것이 마치 능선상의 어느 한 지점에 불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도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죽은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을 따름이다. 앞서 지나간 일행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종이쪽지마저 없었더라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다.



임도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오른편 능선을 탄다. 이곳 역시 이정표는 없다. 그저 대부산의 반대편 능선을 탄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곳에서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웃자란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등산로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산길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8분쯤 걸었을까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귀비산 정상 1.19Km/ 천황상 정상 3.21Km, 활성화센터 5.23Km)의 기둥에 한반도 바래길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이름인 모양이다. ‘바래란 옛날 남해의 어머니들이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남해 사람들의 토속어이다. 그러니 바래길은 남해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갯벌을 오가던 길로 보면 되겠다. 참고로 남해에는 바래길이라 불리는 둘레길이 있다. 8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1코스부터 4코스까지는 남해 남해안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고, 5코스는 내륙을 관통하며, 6코스부터 8코스까지는 남해의 동북해안을 따라 창선·삼천포대교까지 나아간다. 지금 걷고 있는 한반도 바래길은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졌지 않나 싶다.



귀비산 정상으로 가려면 왼쪽 능선을 따라야 한다. 이정표가 천황산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는 오른편 능선으로도 길은 나있다. 아까 임도의 어디쯤에선가 이곳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의 들머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잡목(雜木)만 해도 버거운데 이번에는 가시넝쿨까지 발목을 휘어 감는다. 찔리고 할퀴는 것은 다반사,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가는 싸대기라도 얻어맞기 일쑤이다. 이런 곳에서 육두문자(肉頭文字)’ 한 번 내뱉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라서고도 남았을 것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산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헤치다보면 산길은 또 다시 위로 향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산길을 가꾼 흔적을 만난다. 오르막 구간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네 가닥의 밧줄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그 용도를 모르겠다. 만일 붙잡고 오르라는 배려용으로 만든 난간이었다면 줄은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길로 가지 말라는 경계표시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오른편에 바위 협곡(峽谷)이 나타난다. 협곡 방향은 밧줄 난간으로 막아 놓았다. 설치 목적이 의아스러웠던 조금 전의 그 밧줄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이번에는 작은 바위봉우리가 나온다. 일단은 올라가고 본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이 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대는 옳았다. 짙게 낀 연무(煙霧)로 인해 또렷하진 않지만 널따란 바다가 나타난 것이다. 광양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여수반도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막혀버린 조망에 아쉬워하다가 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널따란 암반지역(이정표 : 귀비산 정상 0.87Km/ 천황산 정상 3.53Km, 활성화센터 5.55Km)에 이른다. 단체로 점심을 먹기에 딱 좋은 곳이다. 터가 넓을 뿐만 아니라 조망까지도 트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귀비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한반도 바래길이라고 표기된 또 다른 유형의 안내판이 보인다. 왼편에는 귀비산코스의 지도를 그려놓았고, 오른편에다 귀비산과 시루봉의 높이, 그리고 코스의 길이와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적었다. 언젠가 이곳 남면 상덕권역(상가리 남구 북구, 덕월리 덕월 구미 4개 마을)’이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선정되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만들어진 시설물인 모양이다. 상덕권역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만들어낸 지형이 한반도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권역사업의 이름을 한반도마을로 정한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소득사업 발굴을 주요목적으로 하는 권역단위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농촌관광의 활성화를 위한 체험코스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 코스는 덕월마을의 힐튼골프장 입구에서 시작해 임진산성잔땡이고개귀비산대부산(수리봉)고실고개천황산(시루등)쇠마당덕월마을을 거치는 5시간짜리 원점회귀 코스이다. 하지만 난 고실고개에서 역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전체를 다 돌아보는 게 옳겠지만 겨울산행인 점을 감안해서 코스를 줄였기 때문이다.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여전히 거칠다. 위에서도 얘기 했듯이 지금 걷고 있는 한반도 바래길은 국비(國費)를 들여 개설한 둘레길이다. 국민들이 낸 혈세(血稅)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설치만 하면 그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후관리를 해가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이다. 지자체(地方自治團體)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점검을 하지 않은 농림수산식품부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13~4분쯤 지나자 바위 몇 개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는 본격적인 바윗길로 연결된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른 바위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가 아닐까 싶다.




바윗길에서의 조망(眺望)은 화려하다. 오르내리는 바위들이 하나 같이 빼어난 조망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짙게 낀 연무(煙霧)가 시계(視界)를 가로막아 가까이에 있는 산들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가까이에 있는 천황산과 고동산, 망기산은 물론이고, 남해읍 시가지를 비롯하여 멀리 하동의 금오산까지 조망될 텐데 말이다. 더 멀리로는 바다 건너 여수시의 산군(山群)들까지도 눈에 담을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다.




통과하는데 16분쯤 걸리는 이 바윗길은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험상궂지도 않다. 생명을 위협 받을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을 오르내리는 수고까지 피할 수는 없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맛이 행복하기만 하고, 바위에 매달릴 때의 짜릿한 스릴은 차라리 쾌감에 가까울 정도이다.





바윗길이 끝나고 케언(cairn, 돌탑)이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GPS상의 귀비산(돌탑봉)’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난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수리봉이라는 것이다. ‘수리란 수릿과에 속하는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해 독수리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수리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독수리의 머리 모습이 날카롭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곳이 수리봉으로 불린다는 이유이다. 또한 그는 지역 언론에서도 이곳을 수리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대부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의 말은 옳았다. 각종 자료들을 검색해본 결과 이곳을 수리봉 또는 대부산으로 부르고 있었다.



조망을 즐기다가 귀비산으로 향한다. 억새가 우거진 능선을 3~4분쯤 걸으면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우회(迂迴)를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하게나마 능선으로도 길이 하나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첨부된 지도에 귀비산으로 표기된 지점으로 오르는 길이니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 들머리의 기점으로 삼을 만한 게 하나 있기는 하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임진성 3.79Km/ 귀비산 정상 0.24Km, 천황산 정상 4.64Km)이다. 그러나 이정표에는 이 봉우리에 대한 표시는 아예 빠져있다. 신중한 검증이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놓은 결과일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정표를 들머리의 기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만일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귀비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찾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귀비산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귀비산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 하지만 난 이 봉우리가 시루봉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살펴봤던 지역 언론의 기사들에서 시루봉이라는 지명을 발견했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만났던 한반도 바래길 안내판에도 시루봉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귀비산의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정표가 귀비산으로 지명하고 있는 돌탑봉에도 그 둘은 보이지 않았었다. ‘한반도 바래길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등산로를 개설했으면서도 막상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어 버린 셈이다. 참고로 고실치의 건너편에는 395.2m 높이의 천황산이 있다. 그런데 그 천황산은 시루등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정상 부근의 큰 바위가 떡시루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아까 안내판에서 보았던 시루봉은 천황산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방금 올랐던 귀비산의 정상에서 되돌아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경우에는 송등산을 거쳐 호구산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은 명산봉을 거쳐 기왕산으로 연결된다. 능선을 따라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는 산길은 일단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쌓아올린 돌담이 보인다. 이런 풍경은 산행을 하는 내내 거의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돌담뿐만이 아니다. ()의 둘레도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올렸다. 그만큼 돌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다 돌담을 쌓았을까?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을 대비해서 쌓아올렸던 산성(山城)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내 예측은 틀려도 한참이나 틀려 있었다. ‘산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표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돌이 많아도 그렇지 우리네의 일상이나 다름없는 경제원칙(經濟原則)’에 어긋나도 너무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다. ‘경계 구분이라는 효용가치에 비해 담장을 쌓는데 들어간 비용이 훨씬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이다.



하산을 시작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앞서가던 일행이 멈춰서는 게 보인다. 괜찮은 전망대를 만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귀비산 정상과 골짜기의 너덜이 보인다. 누군가는 후기에서 북쪽으로는 남해 최고봉인 망운산(785.9m), 그리고 좌측으로 용두봉과 물야산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능선이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연무로 인해 사방이 흐릿하게 영상처리 되고 있을 따름이다.




10분 후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난다. 저 멀리 덕월리 방향이 내려다보인다. ‘힐튼남해컨트리클럽이 있는 곳이다. 해안선 근처에 꼬맹이 섬 두 개가 있다. 대마도와 소마도란다. 저 섬들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등시(간만의 차이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얘기했던 권역사업에는 저곳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 운송수단이 꼭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왼편에도 바다가 나타난다. 앵강만(鸚江灣)일 것이다. ‘앵무새가 우는 강, 다시 말해 앵무새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바다가 잔잔하고 평화롭다는 얘기일 것이다. 앵강만은 어귀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노도라는 섬으로 인해 더 유명세를 탄다. 이 섬에서 앵강 바다처럼 숨죽이고 살다 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구운몽을 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다. 서포는 숙종 연간인 1689년 남해로 유배됐다가 3년 뒤 남해에서 죽었다.



10분쯤 더 걸었을까 나지막한 산봉우리 하나를 앞에 두고 산길이 오른편으로 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봉우리로도 길이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희미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명산봉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솔길로 들어서서 2분쯤 더 오르면 명산봉 정상이다. 정상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이라는 시설물은 아예 없다. 그저 서래야 박건석선생이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이곳이 명산봉 정상인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는 반대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이곳을 지나가면서 붙여 놓았던 모양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20여분을 진행하면 여러 문중(門中)들의 묘역(墓域)을 만나고, 이어서 잔댕(盞堂)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잔땡이고개라고도 불리는데 먼 곳을 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술 한 잔을 마시면서 쉬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한 임금과 궁녀들이 이 고개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도로에 이르면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30m쯤 떨어진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야 임진왜란 때 쌓았다는 임진성(壬辰城)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성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에 가지런히 정비된 묘역(墓域)이 보인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오는 길에도 저런 묘역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까 산행을 시작할 때 들머리에서 보았던 이정표의 평장 묘원이라는 문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평장(平葬), 즉 평토(平土)에 쓴 묘지를 이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평장의 시범지역이고 말이다.



잠시 후 임진성(壬辰城 : 경상남도 기념물 제20)에 이른다. 임진년인 1592년에 축성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막기 위해 군··민이 힘을 합쳐 쌓았기에 민보산성(民堡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선 단결의 정신이 면면히 살아 있는 산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본군과의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옛날 이곳 덕월리 앞에 옥포라는 작은 포구(浦口)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던 거제도의 옥포와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패배한 일본군이 옥포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졌던 모양이다. 그러자 이곳으로 쳐들어오는 줄로만 알고 서둘러 축성(築城)을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임진성은 자연석과 마석을 이용하여 타원형으로 축성되었다. 높이 26m에 둘레가 280m쯤 되는 작은 산성(山城)이다. 석축을 쌓고 둘레에 토루(土壘)로 통로를 만들었으며, 산성 축성법(築城法)을 이용하여 사람 머리보다 약간 큰 돌로 타원형으로 쌓았다. 또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축조하였는데 내성은 주위 300m의 석축성(石築城)이고, 외성은 토성(土城)으로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성의 안으로 들어선다. 온전치 못한 깃발 몇 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뿐이다. 텅 비어있다는 얘기이다. 옛날에는 성루(城樓)와 훈병사(訓兵舍), 감시사(監示舍), 망대(望臺), 탑대(塔臺), 서당(書堂) 등이 있었다는 데도 말이다. 지금은 그저 동서 두 곳으로 나 있는 성문지(城門址) 가운데 동문지(東門址)만이 남아 있고 우물터도 한 군데만 남아 있을 뿐이란다.



임진성(壬辰城)에 오르면 또 다시 앵강만(鸚江灣)이 내다보인다. 김만중(金萬重)선생이 유배 왔다가 홀로 죽어간 그 바다 말이다. 서포(西浦)가 남해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있어도 노도(櫓島)가 유배지였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노도 주민 사이에 노자묵고할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노도에 들어오더니 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 노도 주민이 놀고먹는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노자묵고할배라 부르곤 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위리안치(圍籬安置) ()을 받아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서포라는 주장이다. 지금 노도에는 서포의 허묘(虛墓)와 서포가 마셨다는 샘터가 남아 있다. 서포는 남해에 내려와 수십 수의 시편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사친시는 지금 읽어도 목이 멘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워 글을 쓰자 하나/글을 쓰기도 전에 눈물이 가득하구나/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다시 던졌던가/문집 중에서 남쪽 바다에서 쓴 시는 응당 빼버려야 하겠구나조선 3대 문장가로까지 추앙받던 서포가 남해에서 쓴 시를 버리려 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건너편에는 천황산(天皇山)이 선명하다. 천황산은 덕월마을의 주산이다. 그래선지 오늘 오른 귀비산(貴妃山)이나 고실곡, 잔댕(盞堂)고개, 공신(功臣), 군창(軍倉) 등 주변의 모든 지명들이 모두 천황산을 중심으로 붙여져 있다. 옥녀탄금(玉女彈琴)의 지형을 풀이하면 천황(天皇)의 무릎 앞에 신녀(神女)가 엎드려 있고, 왼쪽에는 귀비(貴妃)가 앉아 있으며, 곁에는 옥녀(玉女)가 앉아서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 한다. 또 황제의 왼쪽 앞에는 술잔을 놓은 잔당(盞堂)이 있으며, 오른쪽 앞에는 공신(功臣)들이 부복(俯伏)하고 있고, 그 가까운 곳에는 군대의 창고인 군창(軍倉)이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덕월마을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옛날 옥포(玉浦)가 있었던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섬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목도라 불리는 섬일 것이다.



뒷문으로 빠져 나와 잠시 걸으면 기왕산의 정상이다. 넓게 터를 잡은 묘()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이곳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일절 없다는 얘기이다. 하긴 높이가 105m에 불과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 반대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한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를 매달아 놓으셨다. 함께 걷고 있던 일행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박선생님의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이곳 기왕산은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예전의 문헌에는 성당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에 완성된 5만 분의 1 지도에는 기옥산이라 적혀 있다. ‘한반도 바래길의 안내판에도 기옥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하산 길은 기분이 썩 좋아지는 코스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는가 하면, 남해안의 특징이랄 수 있는 동백나무 숲도 지난다. 힐링(healing)과 눈요기로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셈이다.



산행날머리는 덕월마을(남면 덕월리)

잠시 후 저만큼 아래에 덕월마을이 나타나고 곧이어 힐튼남해 C.C’의 소유로 보이는 주차장(이정표 : 임진성 0.8Km)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누군가는 남해 하면 먼저 봄부터 떠올린다고 했다. 언제 가더라도 어김없이 시퍼런 기운이 감돈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마을 앞 마늘밭은 벌써부터 푸른빛이 감돈다. 그 푸른 빛 너머에 남쪽바다 남해(南海)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쪽빛 바다 남해(藍海)가 되어 일렁인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롯이 걷는데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갈전산(葛田山, 764.3m)-철마산(鐵馬山, 774m)-바랑산(796.4m)


산행일 : ‘16. 11. 3()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오부면·생초면과 거창군 신원면·남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수영덩이갈전산갈밭재철마산흰머릿재바랑산소봉갈림길독촉주차장오휴마을회관(산행시간 : 4시간 40)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은 갈전산과 철마산, 그리고 바랑산 등 세 개의 산을 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다 소룡산을 끼워 넣는 게 보통이다. 산행거리가 다소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따로 떼어서 진행하기에는 거리나 시간이 좀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철마산의 정상 어림에서 약간의 바위지대를 만날 수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바위다운 바위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때문에 눈에 담아둘만한 산세는 갖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철마산과 바랑산의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 또한 보잘 것이 없다. 육산들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우선 산행들머리인 수영덩이의 해발이 560m나 되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산의 정상까지 오를 수가 있다. 오늘 오른 산들 중에서 가장 높다는 바랑산의 높이가 기껏해야 796,4m에 불과하니 230m만 더 오르면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산과 산 사이의 골도 깊지가 않다. 간벌(間伐)로 인해 생긴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고, 웃자란 잡목(雜木)들이 산길까지 비집고 들어온 게 흠이긴 하지만 산행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예동마을 근처에서 능선을 타지 않고 임도를 따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네 개의 산들을 한꺼번에 하려면 힘이 부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바랑산과 소룡산만 타볼 것을 권한다. 길도 훤하게 잘 나있을뿐더러 새이덤을 위시해서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까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수영덩이(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대전-통영고속도로 지곡 I.C에서 내려온다.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여 24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지곡면소재지(창평리)에서 남강 건너에 있는 3번 국도로 옮긴다. 접점인 구라사거리(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서 우회전하여 산청방면으로 내려오다 대동교차로(수동면 화산리)에서 빠져나와 1084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오면 남상면 진목리(거창군)에서 도로가 둘로 나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1034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덩이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들머리는 원산종돈입간판에서 버스가 달려왔던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초입에 이정표(갈전산 2.1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들머리인 수영덩이는 ‘6.25 한국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12, 지리산에 웅거하면서 인근지역에 출몰하던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된 국군들이 공비들에게 협조했다며 양민 600여명을 학살했던 곳이 신원면이다. 이런 사실을 밝히려고 국회 합동조사단이 찾아오자 길 안내를 맡았던 군() 당국은 군인을 공비로 위장 매복시켜 조사단을 향해 사격을 가하게 함으로써 조사도 못해보고 돌아가게 만들어버렸다. 당시에 사격을 가했던 곳이 바로 이곳 수영덩이인 것이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산뜻하게 만들어진 다리가 나온다. 이정표에다 산뜻하게 다리까지 놓은 걸로 보아 등산로 정비도 잘되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도 공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곳 수영덩이의 고도(高度)560m나 되다보니 200m 남짓만 더 오르면 정상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호사스런 생각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 길까지 비집고 들어온 잡목(雜木)들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아니 길고 가파른 오르막에 짧고 완만한 내리막이 옳은 표현이겠다. 아무튼 가끔은 버겁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구간도 나오니 방심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오르면 매봉산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봉(이정표 : 갈전산1.0Km/ 매봉산0.4Km/ 수영덩이1.4Km)에 올라선다. 매봉산(810m)을 다녀올까를 갖고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거리가 400m 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곳의 해발(海拔)770m나 되다보니 고도(高度) 또한 40m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매봉산에 들르지 않았다. 내가 파악해본 결과로는 볼거리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앎은 짧았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크고 멋진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갈전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비교적 또렷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걷기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간벌(間伐)의 잔해(殘骸)로 보이는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은 통째로 쓰려져 있는 나무들이다. 기둥이 꺾여 있거나 심지어 어떤 것은 뿌리가 뽑힌 채로 넘어져 있다. 이런 곳에서는 길을 새로 내어야만 진행할 수가 있다. 지자체에서 이정표 등 시설물만 새로 세울 게 아니라 등산로까지 손을 좀 봤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잡목들의 방해만 제외한다면 산길은 괜찮은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완만해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진행할 수가 있다. 거기다 절반쯤 섞여 있는 소나무들은 쉴 새 없이 솔향을 내뿜는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심신은 새로운 활력으로 충만해져 간다. 아무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진양기맥(晉陽岐脈)의 일부구간이다. 진양기맥이란 백두대간 상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황매산, 자굴산 등을 끼고 거창, 함양, 합천, 산청, 의령, 진주 등 서부경남 6개 시·군을 아우르다가 진양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59의 긴 산줄기 이름이다. 마룻금에는 월봉산과 금원산, 기백산, 바랑산, 소룡산, 황매산, 철마산, 산성산, 한우산, 자굴산, 천황산, 집현산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유명산들이 많다.



가끔은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도 한다. 높고 낮은 산들이 두세 겹으로 첩첩이 쌓여있다. 그 뒤에는 지리산이 버티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짙게 낀 미세먼지 때문에 그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갈전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분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이정표(철마산 3.1Km/ 수영덩이 2.3Km)와 삼각점(거창 314)만 세워져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산친구라는 아호를 쓰는 분이 이정표에다 매달이 놓은 정상표지판 하나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빠뜨릴 뻔했다.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도 정상표시 코팅지를 매달아 놓았다. 이미 이곳을 다녀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근처의 다른 산들을 열심히 오르내리고 계실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갈전산은 이 산에 칡이 하도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마산으로 향한다. 이 구간은 소나무들의 천국이다. 수북이 쌓인 솔가리들 덕분에 산길은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 또한 진하기만 하다. 피로가 싹 가시면서 심신까지 맑아진다. 소나무에서 많이 배출된다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영향일 것이다. 한마디로 콧노래가 절로 나올만한 구간이다.



문득 송이버섯이 나올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경고판(警告板)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송이 관리지역이라면서 입산을 금지한단다. 철망(鐵網)으로 울타리까지 쳐놓을 걸로 보아 매우 많은 양의 송이가 채취되나 보다.



송이채취 금지지역을 지나면 산길은 급하게 아래로 향한다. 그렇게 20분 남짓 진행하면 희미하게나마 양쪽으로 난 길의 흔적이 보이는 안부를 만난다.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와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를 잇던 고갯마루인 갈밭재(갈전재)인 모양이다. 사통팔달로 뚫린 신작로(新作路)에 밀려 저렇게 흔적만이 남아있구나 하고 지나치려는데,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의의의 장소에서 갈밭재임을 알리는 이정표(철마산1.7Km/ 갈전마을0.7Km/ 갈전산1.3Km)를 만난다. 하지만 펑퍼짐한 것이 고갯마루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길의 흔적 또한 찾을 수가 없다. 이정표가 위치를 잘못 잡지 않았나 싶다.



갈밭(葛田)재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거기다 능선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봉우리(어쩌면 728m봉일 게다) 하나 정도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해버린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진행하다보면 이정표(철마산1.4km/ 갈전산1.7km)를 만난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갈림길도 아닌 곳에다 이정표를 세워놓은 이유인 모양이다.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길고 가파른 오름에 비해 내림은 완만하면서도 짧다. 하긴 고도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0분 가까이 진행하면 또 다른 이정표(철마산0.4km/ 갈전산2.7km, )를 만난다. 뜬금없는 장소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몇 걸음 옮기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팻말 모양으로 생긴 작은 이정표(정상0.2Km/ 임도1.0Km)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 갈림길이 나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방향으로 보아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노은리(산청군 생초면)로 이어지는 임도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산길은 노은리 보다 훨씬 가까운 향양리로 연결될 게 분명하다.



갈림길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헬기장을 만난다. 웃자란 잡초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조망을 즐겨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이곳보다 더 뛰어난 조망대를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지대라는 표현을 했지만 그렇다고 바위들이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다 거대하다거나 빼어나게 잘 생기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무척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철마산 정상에 올라선다. 갈전산을 출발한지 정확히 1시간 만이다. 열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아담하게 생긴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예동마을 1.7Km/ 갈전산 3.1Km)가 세워져 있다. 참고로 철마산(鐵馬山)이란 이름은 오랜 옛날 고씨성을 쓰는 이가 전란(戰亂)을 피해 산으로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철마를 발견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이다. 짙게 낀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글로서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서쪽으로 향양리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예동마을, 그 뒤로 황매산이 그림과 같이 펼쳐있다. 남쪽으로는 멀리 웅석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그리고 북으로는 기백산과 황석산을 먼 배경으로 하여, 지나온 능선이 3겹으로 이어진다. 실로 장관이다.>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또 다른 조망처를 만난다. 비록 한쪽 방향뿐이지만 그쪽만 놓고 볼 때에는 정상보다 더 뛰어나지 않나 싶다. 발아래에는 향장리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마침맞게 바위의 위가 반반하기까지 하다. 조망을 즐기면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산허리를 따라 일정한 두께로 띠를 두르고 있는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아까 정상에 오르기 전에도 이런 풍경을 만났었다. 그런데 이게 보통의 돌무더기로 보이지 않으니 문제이다. 누군가가 일부러 쌓아올린 흔적으로 보인다는 얘기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옛 성터의 흔적을 빼다 닮았다. 하지만 이곳에 산성(山城)이 있었다는 사료(史料)는 찾을 수가 없었다. 문득 이곳으로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오회장님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6.25 한국전쟁때 이곳 철마산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는 얘기 말이다. 그렇다면 저 돌무더기들은 당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빨치산(partizan)이 참호(塹壕) 대용으로 쌓아올렸던 흔적일 것이다.



철마산을 출발한지 7~8분쯤 되었을까 산길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거의 직각(直角)에 가까울 정도이다. 거창군에서는 이곳에다 이정표(예동마을1.3Km/ 철마산0.4Km)를 세워 놓았다. 아마 헷갈리지 말라는 모양이다. 이 부근에서 삼각점이 있는 750.1m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뉜다고 했는데 발견할 수는 없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또 다른 이정표(노은/ 정상0.3Km)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은 삼거리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정표는 산청군 관내(管內)노은만 표시된 걸로 보아 산청군에서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철마산에 올라올 때도 이런 경우를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들이 낸 혈세(血稅)를 너무 낭비한 것 같아서이다. 산청군과 거창군에서 따로따로 이정표를 만들게 아니라 하나로 합쳤더라면 예산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간에 떠도는 화두(話頭)협치(協治, governance)’이다. 원래는 주민이 직접 행정에 참여한다.’는 뜻이지만, 요즘에는 ‘여(與黨)과 야당(野黨)’,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 특히 청와대와 국회간에 서로 타협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의미로 많이 쓴다. 산청군과 거창군에서 이런 화두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거론해 봤다.



철마산을 내려선지 20분이면 임도(이정표 : 예동마을0.8Km/ 철마산0.9Km)에 내려서게 된다. 해발 590m라는 흰머리재이지 않나 싶다. 내려오는 길에 노은 갈림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지점(이정표 : 예동마을0.9Km/ 철마산0.8Km)에서는 왼편으로 90도 정도 크게 방향을 틀었었다. 그러고 보면 거창군의 이정표는 일정한 틀에 맞춰 세워 놓은 것 같다. 갈림길이거나, 아니면 크게 방향을 트는 곳에다 말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걸었을까 산길이 오른편 능선으로 향한다. 하지만 진양기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를 따를 필요는 없다. 길이 무척 험하기 때문이다.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우거져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각오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올바른 선택은 예동마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동마을에서 다음에 오르게 될 바랑산의 들머리까지는 또 다른 임도로 연결하면 된다.



능선 초입의 풍경은 산뜻하다. 길도 잘 나있을뿐더러 길가에는 가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들꽃과 억새가 그 화려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풍경은 확 바뀌어 버린다. 위에서 얘기한데로 길의 흔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길을 못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선두대장을 맡고 계시는 오회장님이 나타난다. 중간에서 잠시 쉬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가 나타난 뒤로는 어렵게나마 길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름에 걸 맞는 산꾼의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도 헤매다보니 산길의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저 능선을 타고 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혹시라도 잡목(雜木) 때문에 길이 막혀있을 경우에는 그냥 헤치고 나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동안 진행하다 보면 전류(電流)가 흐를 것 같은 줄로 울타리를 쳐놓은 경작지(耕作地)를 만난다. 이곳에서 진양지맥은 우측 울타리를 따른다. 하지만 우린 왼편으로 향한다. 기맥 답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삼면봉까지 에둘러서 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부터 길을 만들어가는 산행이 잠시나마 이루어진다. 오회장님이 선두를 맡지 않았더라면 진행이 불가능했을 구간이다.



능선을 빠져나오면 과수원(果樹園)이다. 주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가운데를 통과하고 본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시 시멘트포장 임도로 올라선다. ‘예동마을 갈림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시간이 30분이나 걸렸다. 얼마나 힘든 구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가던 오회장님이 또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고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라도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고 볼 일이다. 두 길은 잠시 후에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다시 한 번 악전고투를 지르게 된다.



이 구간도 역시 처음에는 형편이 좋다. 비록 묘목(苗木)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심어진 지역이 끝날 때까지에 한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거론하기도 싫을 정도다. 특히 가시넝쿨이 아예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터널을 뚫고 나가듯이 가시넝쿨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할 정도라는 얘기이다. 아무튼 최악의 구간이었다.



또 다시 임도에 내려선다. 이번에는 15분이 걸렸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바랑산의 산행들머리로 연결된다.



왼편에 예동마을이 보인다. 애초부터 임도를 따라 저곳으로 돌아왔다면 15분 정도면 충분했을 거리를 45분이나 걸렸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한 구간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 예동마을은 해발이 600m가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철의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5이상 낮은 지역이다. 고랭지채소를 많이 재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잠시 후 ‘Y'자 삼거리로 이루어진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삼거리에는 진양기맥 종주 안내도와 이정표(바랑산1.4Km/ 예동마을0.6Km)가 세워져 있다. 계속해서 포장임도를 따를 경우 왕촌리(산청군 오부면)로 연결된다. 바랑산으로 오르려면 왼편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야 한다.



길가에는 억새군락이 제법 길게 펼쳐진다. 임도를 따라 6분쯤 걸었을까 오솔길 하나가 오른편으로 나뉜다. 바랑산으로 올라가려면 이 길로 들어서야 한다. 들머리에 선답자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 몇 개가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이 썩 좋지는 않다. 간벌(間伐)로 생긴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여름철 동안 자라난 잡목들이 산길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이것 숫제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 완만하니 거칠 것이 뭐 있겠는가.



그렇게 30분쯤 진행하면 바랑산 정상이다. 중촌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부터 잰 시간이다. 웬만한 헬기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널따란 정상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자연석에다 산의 이름을 새겨 놓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소룡산 3.3Km/ 신촌 2.6Km), 삼각점(산청 315)은 물론이고 널따란 공터를 아예 잔디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저앉은 곳이 곳 쉼터가 될 정도로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참고로 바랑은 '배낭'이 변한 말로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볼록한 주머니다. 산청 바랑산은 원래 마고할미의 주머니였다고 한다. 인근 소룡산의 새이덤은 마고할미가 바랑에 넣고 가다 흘린 돌무더기. 옆에 있는 월여산은 딸. 보록산은 아들이라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미세먼지에 가로막힌 산하는 흐릿하기만 하다. 다른 이의 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황매산과 작은황매산, 소룡산이 겹겹히 층을 이루면서 시원하게 펼쳐지고 철마산과 갈전산 뒤로는 괘관산이 길게 하늘금을 이룬다. 아울러 좌측으로는 월여산과 감악산이 여전히 조망의 주체를 이룬 가운데 그 뒤로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뚜렷하게 가늠할 수 있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소룡산 방향이다. 완만한 산길을 따라 10분쯤 내려갔을까 천지사로 연결되는 오솔길이 나뉜다. 이정표(천지사. 왕촌/ 바랑산 정상500m)까지 세워 놓았지만 제 몫은 못하고 있다. 소룡산 방향이 주능선임에도 불구하고 표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룡산은 계속해서 능선을 타야만 한다.



잠시 후 나지막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나뭇가지에 문정남(文政男)선생님의 리본이 매달려 있다. 14,205번째로 오른 산이란다. 우리 일행과는 다른 코스를 타신다고 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가신 모양이다. ‘조삼국(趙三國)선생님의 리본도 보인다. 1만 개의 산을 올랐다는 분이다. 문정남선생님과 12,500개의 산을 올랐다는 심용보(沈爖輔)선생님(아래 사진에서 리본을 매달고 계시는 분)’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산을 올랐다는 분이다. 잠시 기다렸다가 뒤따라오는 심용보선생님께 이곳의 위치를 알려드린다. 이곳이 소봉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이 봉우리는 일반의 지도(地圖)에는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산청군에서 만든 산행안내도에는 소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명색이 지자체에서 만들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봉우리의 이름을 적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천지사 갈림길(이정표 : 소룡산2.4Km/ 천지사0.5Km/ 바랑산0.9Km)'을 만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런 내리막이 10분 가까이나 계속되니 소룡산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내려온 것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쯤 내려오면 안부가 나타난다. 양쪽으로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보이는 걸로 보아 큰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정표가 없어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어서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독촉골로 내려가는 삼거리(이정표 : 폭포·독촉주차장0.6Km/ 바랑산1.60Km)를 만난다. 소룡산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주능선을 타야 하지만 이곳에서 그만 내려가기로 한다. 소룡산은 5년 전에 올랐었기 때문이다. 당시 바랑산도 함께 올랐었지만 오늘 산행이 너무 짧아 바랑산은 한 번 더 올랐을 뿐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산길은 무척 곱다. 보드라운 흙길로 이루어진데다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기 쌓여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에는 진한 솔향이 배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최대한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가능한 크고 깊게 숨을 들이킨다. 몇 번 반복하다보면 심신(心身)은 이미 맑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 이런 걸 보고 힐링(healing)산행이라고 할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아니 바위무더기 정도로 표현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무튼 이곳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푯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전망대라고 쓰여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혹시나하고 바위 위에까지 올라가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서길 15분 여. 작은 저수지의 둑 아래에 있는 독촉주차장에 내려선다. 널찍하게 공터를 만들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놓았다. 들머리에 바랑산·소룡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은 걸로 보아 산행들머리용으로 조성해 놓은 모양이다.



주차장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시멘트로 포장된 데다 경사까지 거의 없어 누군가와 얘기라도 나누며 걷기에 안성맞춤인 길이다. 마침 곁에는 심용보(沈爖輔)선생님이 함께 걷고 계신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어봤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도움이 되어 주실 것 같아서이다. 특히 30여년을 공직(公職)에서 머무르셨고, 퇴직 후에 더욱 더 산행에 심취하신 것 등은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니 그분에게 조그만 조언이라도 받는다면 나 역시 80이 넘을 때까지 산행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연세가 79세나 되신 요즘에도 매주 5번 이상이나 산행을 해 오신다니 말이다.



산행날머리는 오휴마을회관(산청군 오부면 중촌리)

급할 것 없는 속도로 걷는다. 중간에 진귀암 갈림길(이정표 : 진귀암600m)을 지나고, 느티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오휴 숲도 지난다. 이어서 오휴저수지를 지났다싶으면 저만큼에 오휴마을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휴마을은 까마귀와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도 까마귀 오()’자를 쓰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흰 까마귀가 막대기를 물고 가더란다. 그래서 뒤따라가 보니, 홍굴 앞 바위에 머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래에 터를 잡고 산 것이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 마을 이름을 오휴(烏休)라고 불렀단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40분이 걸렸다. 바랑산부터는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중간에 멈추지 않았으니 순수하게 걸은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구곡산(九曲山, 961m)

 

여행일 : ‘16. 10. 22()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삼장면의 경계

산행코스 : 덕천서원도솔암계곡삼거리와룡폭포도솔재구곡산헬기장삼거리동당마을덕치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지리산의 주능선은 아니지만 지리산의 한쪽 축을 구축하는 능선에 솟아오른 봉우리로 모산(母山)인 지리산을 닮아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형태를 하고 있다. 때문에 천 미터에 가까운 높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눈요깃거리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황금능선때문이다. 무성한 산죽(山竹)군락이 가을이면 누렇게 변한다고 해서 황금능선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 능선은 이름 그대로 온통 산죽들로 뒤덮여 있다. 때문에 이 길은 줄기는 게 아니라 고행을 해야 하는 길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 숲을 헤쳐 나가가다 보면 싸대기를 맞는 것쯤은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원시의 숲을 탐험을 하듯 헤쳐 나가는 재미를 느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번쯤은 찾아볼만한 산이지만 그런 고행(苦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시간을 내면서까지 찾아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덕천서원(산청군 시천면 사리)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방면으로 들어가다 사리교차로(산천군 시처면 사리)에서 내려오면 시천면의 면소재지인 사리이다. 고등학교까지 있을 정도이니 면소재지 치고는 규모가 제법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마을을 통과하다보면 그 끄트머리에서 덕천서원을 만나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입구에다 커다랗게 홍살문을 세워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원(書院) 앞에 내리면 수령(樹齡)400년도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당당하게 길손을 맞는다. 서원의 오래된 역사를 자랑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홍살문과 정면 3,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연이어 통과하면 '덕천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경의당(敬義堂)이 나타난다. 정면 5칸에 측면 2칸인 강당(講堂)인데 그 앞쪽으로 유생들이 거주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덕천서원(德川書院 : 경남유형문화재 제89) 안에 들어선 것이다. 덕천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건립 당시에는 덕산서원(德山書院)이었다. 1576(선조 9) 최영경, 하항 등 사림(士林)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했는데, 현재는 이 일대를 한데 묶어 조식유적지(사적 305)’로 조성해 놓았다. 이후 1609(광해군 1)에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덕천(德川)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면서, 남명학파(南冥學派) 강우유맥(江右儒脈)의 본산으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때는 불타기도 했으며,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철폐된 뒤 1930년대 다시 복원된바 있다. 참고로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세심정(洗心亭조식묘 등이 있다.



경의당 뒤로 돌아가면 조식(曺植)과 제자인 최영경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있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고 8월에는 남명 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남명(南冥)1501(연산군 7)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군)에서 출생하였는데 이황과 함께 당시 영남 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로 실천적인 성리학을 중시하였다.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던 그는 나이 60세에 이르러 지리산이 모든 학문의 바탕처럼 의로운 기운을 간직한 산이라 하여 삼가에서 덕산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지리산의 맥이 에워싼 곳에다 산천재(山天齋)라는 서당(書堂)을 짓고 본격적으로 후학을 가르치다가 1572(선조 5)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서원을 둘러본 뒤 산행을 시작한다. 중산리 방향으로 100m쯤 걷다가 세운빌라트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입구에 '도솔암(2Km)''불지사(500m)'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행방향에 보이던 성운사라는 사찰이 가까워졌다 싶으면 도솔암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만난다. 길을 걷다보면 눈에 띄는 것이라곤 오로지 감나무들뿐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그 무게를 못 이겨 가지들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이틀 전에 다녀온 상주의 들녘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다만 감의 크기가 조금 작아졌지 않나 싶다. 참고로 덕산으로도 불리는 이곳 시천면은 곶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낮에는 따사롭고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일교차 덕분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맛있는 곶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불지사(佛知寺]가 나타난다. 전면 3칸의 법당(法堂)과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두 채가 전부인 단출한 규모의 사찰이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세상에는 제법 알려진 편이다. 주지스님으로 있는 보현스님이 연다는 산사음악회때문이다. 보현스님은 1980년대 사모곡과 설마 등의 노래를 불렀다는 가수 이경미란다. 당시 CF모델과 탤런트로도 활동을 했다는데, 1986년 돌연 잠적한 뒤 보현이라는 법명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는 '비구니 엄마'가 됐고, 1999년에는 '부처님 마을'이라는 장애인시설을 설립했단다. 아무튼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스님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드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행복을 원하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적힌 입간판에 더 관심이 쏠린다. 성공을 원하지 말고 행복을 추구하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지만, 얻은 것에 만족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게 행복이다. 우리는 행복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지로 고민한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든 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을 얻는 게 행복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불행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 자체를 깨닫고, 그에 만족해야만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 피터 팬의 저자 제임스 베리(James Matthew Barrie)’가 문득 떠오른다.



불지사를 지나면서 숲길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이 터널을 만들고 있는 멋진 길이다. 거기다 사륜구동차가 아니어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유롭기 짝이 없다는 얘기이다.



길은 계곡을 끼고 나있다. 하지만 물가로 내려가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계곡 전체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내려갈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길가에는 가을의 전령이라는 들국화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그러고 보니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날씨가 서늘해졌다. 그래, 강원도 산간에는 서리까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던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만에 도솔암(兜率庵)에 이른다. 도솔암은 산청군의 4대 사찰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입구에서 바라본 암자(庵子)는 특이한 게 하나도 없다. 비탈진 산자락에 높다랗게 축대(築臺)를 쌓아 만든 비좁은 부지 탓인지 법당(法堂) 하나에 여염집처럼 지어진 요사채 두 동이 전부이다. 규모나 외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이다. 절에 대한 안내가 없어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지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산길은 절의 입구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구곡산 등반안내도와 이정표(구곡산 정상2.62Km/ 덕천서원2.45Km)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설 일이다. 산행의 코스를 미리 알고 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와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찬 걸로 보아 계곡이 제법 깊은 모양이다. 대략 4분쯤 올랐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등반안내도가 나타난다. 이어서 바위를 돌아가면 안내도에 나타나 있듯이 길이 둘로 나뉜다. 계곡을 따르는 오른편 길은 곧장 구곡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이고, 왼편은 일단 능선(도솔재)까지 오른 다음에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코스이다. 하지만 삼거리에 세워놓은 두 개의 이정표(#1:구곡산 정상2.37Km/ 도솔암0.2Km, #2: 도솔릉 1.5Km/ 도솔암) 모두 오른편 방향은 표기하고 있지 않다. 왼편으로 오르라는 무언의 안내가 아닐까 싶다.



왼편, 즉 이정표가 가리키는 도솔릉 방향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변한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황금능선을 미리 느껴보라는 듯이 좌우로 산죽무리가 줄을 잇는다. 경사 또한 많이 가팔라졌다.



그럴게 7분쯤 더 올라갔을까 갑자기 물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왼편의 산죽무리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나타난다. 망설일 필요 없이 일단은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잠시 후 와룡폭포(臥龍瀑布)’를 만난다. 20m에 높이가 10m 정도 되는 폭포는 늦가을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물이 떨어지고 있다.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하겠다.



길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폭포의 위로 오른다. 와룡바위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바위이다. 바위의 위에서 바라본 폭포는 별로이다. 폭포의 아래에 응당 있어야할 물웅덩이, 즉 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구경거리가 별로이니 머무는 사람 또한 없다. 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만들어 놓은 쉼터가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폭포를 지나면 울창한 대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인 소유이니 들어가지 말라며 금줄()줄까지 쳐놓았다. 혹여 죽순(竹筍)이라도 뜯어갈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모양이다.



대나무 숲을 지난 산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곧장 위로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좌우를 갈지()자를 그리고 나서여 겨우 위로 오를 지경이다. 그리고 그 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니 오를 수도 없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즐기라고 했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서서히 걸어볼 일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다. 아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더 맞겠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 그런 재미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산길은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주변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보이던 단풍이 언제부턴가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버렸다.




어린아이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벌린 듯 단풍은 파란 하늘을 가리고 섰다. 한 나무에서 돋아난 잎이지만 그 색깔도 제각각.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어우러져 자연이 만들어낸 색의 조합을 보여준다.



그렇게 35분 정도를 더 오르면 통나무계단을 만나고, 곧이어 도솔릉에 올라서게 된다. 더러는 도솔재라고도 하는데, 힘들여 올라온 사람들이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곳이다. 삼거리(이정표 : 구곡봉1.2Km/ 절골1Km/ 도솔암1.5Km)인 이곳에서 정상은 오른편 방향이다.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이제부터 황금능선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이다. 능선에 오르면 산길은 그 사나웠던 기세를 많이 누그러뜨린다. 그렇다고 평지 수준은 아니니 너무 좋아할 일은 아니다. 참고로 황금능선이란 동부지리산의 써리봉(1642m)에서 덕천강변의 외공마을까지 내리뻗은 길이 15.5km의 능선을 말한다. 해질녘이면 산죽(山竹)으로 뒤덮인 능선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해서 황금능선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구곡산까지 이어졌다고 해서 구곡능선으로도 불린다. 1979년에 정원강(세석산장 관리인)’선생이 이 구간을 낫으로 개척한 후, 가을 날 햇볕에 반짝이는 능선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반해 황금능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능선의 좌우는 급경사를 이루는 사면(斜面). 그 덕분에 가끔가다 만나는 봉우리 위에서는 조망(眺望)이 트이기도 한다. 10분 조금 못되어 오르게 되는 첫 번째 봉우리가 그 주인공이다. 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있는 바위에라도 오르면 서쪽 방향으로 트이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발아래에는 중산리로 연결되는 20번 도로가 나있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그 뒤에 보이는 곡점능선 말고도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곡점능선 뒤에 포개진 능선은 세석평전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일 것이다. 청학동의 뒷산인 삼신봉(1289m)과 관음봉, 형제봉 등이 들어 있는 산줄기 말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아니 버거울 정도로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 대부분이다. 하긴 그래야만 구곡산의 높이에 맞추어 고도(高度)를 높여갈 수 있었을 것이다. 굵직한 능선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다 마지막으로 통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널따란 헬기장(이정표 : 구곡산 정상 0.75Km/ 도솔암·덕천서원 4.75Km)이 있는 922m봉이다.




헬기장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시야가 열리는 것이다. 천왕봉과 중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과 촛대봉(1703.4m)이 가깝고, 삼신봉과 그 너머에 있는 백운산 등 높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석봉과 달뜨기능선도 시야에 잡히는 것은 물론이다. 그야말로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남한 땅에서 가장 높다는 지리산의 산줄기들답다. 웃자란 잡목들이 그들이 그려놓은 풍경화의 아랫도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헬기장을 뒤로 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4분 남짓 걸었을까 삼거리를 만난다. 덕산관광휴양지로 내려가는 길이 이곳에서 나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덕산관광휴양지의 방향만 나타나 있을 뿐, 거리가 적혀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있다. 구곡산 정상과 그 반대방향은 더한 편이다. 거리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왕에 만들어 놓은 시설이니 수시로 정비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무인산불감시탑(이정표 : 정상 400m/ 도솔능 800m)에 이른다. 지도에는 자연보호탑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점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자연보호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자연보호탑으로 이름을 바꾼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잠시 아래로 내려가던 산길이 다시 위로 향한다. 그리고 또 다시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면 작은 돌탑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구곡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서너 평도 못 될 정도로 비좁은 정상에는 달팽이(蝸牛, 와우) 산악회에서 세웠다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 팻말 형으로 된 작은 이정표(천잠능 3.1Km/ 도솔능 1.2Km)는 정상이지만 봉() 끝에 매달린 이정표는 도솔암(2.62km) 방향만 남아있다. 어찌 만나는 이정표마다 하나 같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보수가 시급해 보인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누군가 이곳을 가리켜 지리산의 주능을 바라볼 수 있는 뛰어난 전망대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천왕봉과 중봉이 나란히 있고, 촛대봉과 삼신봉 등 지리산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빠짐없이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전망대라 일컫는 산들이 더러 있지만 가깝고 뚜렷하기로는 구곡산이 가장 으뜸이 아닐까 싶다. 그밖에도 멀고 가까운 수많은 산들이 속속 들어온다. 금오산과 월아산, 여항산, 자굴산 등일 것이다. 천왕봉을 향해 굽이치고 있는 황금능선도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천잠능방향이다. 짧게 아래로 내려섰다가 반대편 봉우리로 올라선다. 이곳에도 역시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훼손을 할 경우 처벌을 하겠다는 경고판까지 세워 놓은 걸로 보아 아까 정상에서 보았던 삼각점보다도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관리번호는 글씨가 훼손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도솔암1.65km/ 구곡산 정상0.05km)로 나뉜다. 오른편은 도솔암으로 연결되는데, 아까 올라올 때 지났던 계곡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지름길을 택했을 경우 이곳으로 올라오게 된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천잠능은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니 그쪽 방향을 아예 비워 놓았다. 탐방을 금지하지 않는 코스를 표기를 하지 않는 것은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의 월권(越權)이 아닐까 싶다. 무릇 행정행위란 행위의 상대방 입장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일상용어가 되다시피 한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만족이란 화두(話頭)를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림길 근처에서 시야가 트이면서 아까 정상에서 바라보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천잠능, 즉 천왕봉을 정면에 두고 진행한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완만해진다. 조망이 막혀있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볼거리가 아주 없지만은 않다.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답게 오래 묵은 고목(古木)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거대하면서도 기괴(奇怪)한 생김새가 잠시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15분쯤 되었을까 널따란 공터에 이른다. 생김새로 보아 헬기장으로 조성되었던 모양이나. 하지만 지금은 웃자란 잡초와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이정표 : 동당1.62Km/ 정상0.76Km)로 나뉜다. 그러나 동당마을로 내려가는 길만 나타나 있을 뿐 국수봉 방향은 텅 비어있다. 국수봉이 비법정탐방로라는 것이 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천잠능까지는 탐방로가 열려있으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황금능선을 타는 고행을 해보느냐, 아니면 이쯤에서 하산을 하느냐로 말이다. 결론은 후자이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는 내 몸이 일부러 하는 고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왼편 지능선을 따라 5분쯤 내려갔을까 안부에 이른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휘면서 골짜기로 내려선다. 하지만 이정표(구곡산 정상 0.83Km)에는 오른편으로 틀라는 방향표시만 되어 있을 뿐 거리나 지명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마저도 없었다면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계곡은 한마디로 깊다. 이곳 황금능선이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partisan)들의 보급로(補給路)였다고 하더니 과연 그랬을 만도 하겠다. 그만큼 험한 것이다. 거기다 너덜 구간이 많기 때문에 자칫 넘어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불행히도 그런 우려는 실제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집사람이 넘어져서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결과는 5주 동안의 깁스(gips)란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나 혼자서 산행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무들도 링거(ringer)를 맞는다?’ 계곡의 나무들은 하나 같이 여러 가닥의 호스(hose)들을 꽂고 있다. 고로쇠를 채취하기 위해 꽂아놓은 호스인데, 그게 마치 병상에 누운 채로 링거를 꽂고 있는 환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25분쯤 내려서면 드디어 임도(이정표 : 구곡산 정상 1.48Km)를 만난다. 이후부터 길은 좋아진다. 널따란데다가 경사까지 완만해서 내려서는 게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다시 15분쯤 더 걸으면 울창한 일본이깔나무 숲을 만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나무들이 끼리끼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잠시 후 사방댐이 나타났다싶으면 저만큼에 민가(民家) 몇 채가 나타난다. 동네 앞에 세운 입간판에 곶감과 벌꿀을 적어 놓은 걸로 보아 이곳 시천면의 특산물이라는 곶감 외에도 벌꿀을 생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헬기장 삼거리에서 이곳까지는 50분이 걸렸다.



민가에서 20번 국도까지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된다. 산의 사면(斜面)을 깎아 만들다보니 구불구불하기 짝이 없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실제로는 꽤나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을 구경하거나, 길가의 늘어선 감나무들을 살펴보면 될 일이다. 혹시라도 잘 익은 홍시라도 하나 건질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길가 담벼락에 예쁜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하얗고 탐스런 것이 가을철 꽃 같지 않아 보여 카메라에 담아 봤다.



산행날머리는 덕치마을 물레방아탑

그렇게 30분 남짓 더 걸으면 20번 국도를 만난다. 부상을 입은 집사람이 절뚝거리며 걸은데 걸린 시간임을 참조한다. 중산리로 연결되는 도로의 주변에는 꽤나 많은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당리인데 이 마을도 역시 감나무 천지이다. 심지어는 정원수까지도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사방이 온통 감나무인 셈이다. 아무튼 도로에 이르면서 산행이 종료되었다고 보면 된다.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덕치마을까지는 현지 주민의 트럭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20분이 걸렸다. 간식시간과 부상치료를 위해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있다. 오늘 산행에서 우리 부부가 맞닥뜨린 상황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어른 허리쯤 되는 높이의 계곡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다행이도 팔목에 금이 가는 것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우린 산청군과 인연이 없나 보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곳 산청군 소재의 산에서만 두 번째로 사고를 당했다. 20년 가까이 산행을 해오면서 당한 3번의 사고 중 2번을 이곳 산청 땅에서 당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집사람이 간과(看過)한 것이 있다. 이곳 산청 사람들의 친절함을 말이다. 5년 전쯤, 이곳 산청군 소재의 석대산에서 말벌 때의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위험상태는 아니었지만 쏘인 부위가 곪는 등 부작용이 심해 부랴부랴 산청보건의료원으로 달려간 나에게 베푼 그들의 친절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고마운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야할 환자이니 먼저 진료를 해주면 어떻겠냐며 먼저 온 환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던 간호사나 망설임 없이 양보를 해주시던 주민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그런 친절을 보았다. 집사람이 동당마을에 이를 때쯤에는 걷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산악회 버스가 멈춰있는 덕치마을까지 태워다 준 트럭과,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집사람을 시천면 소재지에 있는 약국까지 태워다 준 승용차는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친절이었다. 특히 시천의 약국이 문을 닫았을 경우 원지까지 실어다 주겠다며 기다려준 부부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니 두 번이 아니라 더 많은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어찌 산청 땅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들이 있기에 아직도 세상은 살아갈 만 하다고들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5주 동안이나 깁스를 해야만 하는 집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나들이가 될 수 있었다.

함박산(函朴山, 485m)-석은덤(大屯山, 542m)-삼각산(三角山, 469m)

 

산행일 : ‘16. 9. 8()

소재지 :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과 정관읍의 경계

산행코스 : 내덕마을입구(주차장)삼각점봉(190m)신선산(196m)안장산(261m)함박산석은덤삼각산중봉하봉장안사주차장(산행시간 : 11km,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모양새이다. 석은덤과 삼각산의 정성어림에 바위지대가 나타나지만 그마저도 조망(眺望)을 터주는 역할이나 하고 있을 뿐 암릉이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 못한다.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 두 곳을 제외하고는 조망까지도 터지지 않는다. 대신에 산길은 고운편이다.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하기 때문이다. 육산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날머리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유서 깊은 장안사까지 자리 잡고 있어 가족 산행지로 괜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산이 버려져 있다시피 해서 자칫 잘못하다간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등산로 정비가 일절 안 되어 있을뿐더러 그나마 어쩌다 보이는 이정표까지도 길 찾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시라면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광역자치단체인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산행들머리는 내덕마을 입구 프리미엄 아울렛 주차장(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동해고속도로(울산-부산) 장안 I.C에서 내려와 14번 국도를 타고 부산방면으로 잠깐 내려가다 좌천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60번 지방도로 옮기면 잠시 후 ‘GS칼텍스 달음산주유소에 이르게 된다. 주유소 앞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와 육교(陸橋) 위에서 우회전하면 저만큼에 널따란 주차장 하나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데, 입구에 프리미엄 아울렛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아까 좌천사거리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부산 프리미엄 아웃렛(premium Outlet)’ 건물을 보았었는데, 손님이 많이 몰릴 경우를 대비해서 여분으로 만들어 놓은 주차장인 모양이다.




주차장 앞에 잘 지어진 제각(祭閣)이 보인다. 내력이나 알아볼까 다가가다가 봉변만 당할 뻔 했다. 묶지도 않은 채로 기르고 있는 커다란 개들이 막무가내로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까짓 남의 가문(家門) 내력을 알아서 뭘 하겠는가.



주차장 입구 바로 위에서 산길이 열린다. 하지만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으니 대충 눈짐작으로 들머리를 찾는 수밖에 없다. ‘대덕사입간판에서 5m정도 더 들어간 지점의 왼편 산자락이다. 들머리에 산악회 시그널(signal) 두어 개가 매달려 있으니 참조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산길은 형편없다. 흔적이 희미할뿐더러 그마저도 잡목(雜木)들이 점령해 버린 곳이 많다. 선두를 맡으신 산악회 오회장님께 이런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오르면 삼각점(양산 475)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국제신문 산행팀이 무명봉(190m)'이라고 표기했던 지점이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를 매달고 계신다. 그런데 도지봉이라는 이름이 왠지 낯설다. 그가 새로운 이름 하나를 또 지었나 보다. 나에겐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그날 오르게 될 산들에 대한 기록들을 뒤져보는 것이다. 그러한 내 안테나에도 잡히지 않았던 이름이니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다. 아무튼 난 도지봉이라는 새로운 이름 보다는 삼각점봉이 설치되어 있다는 특징만 표기하기 한다.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경사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만한 오르내림이다. 나무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묵밭도 지나고 목백일홍 꽃이 예쁘게 핀 묘역(墓域)도 지난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진행하면 또 하나의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먼저 도착한 박건석 선생께서 정상표시 코팅지를 매달고 계신다. ‘신선산(神仙山, 196m)’이라고 적혀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이름이다. 참고로 신선산이란 이름은 근처에 있는 신선바위라는 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분 정도를 걸어 안부에 내려선다. 그리고 임도를 따라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산길은 터널(tunnel) 위로 나있다. 내덕으로 넘어가는 도로 위에 동물이동통로 용으로 만들어 놓은 터널이 아닐까 싶다.




잠시 후 오른편에 방갈로(bungalow) 비슷한 건물들이 보인다. 첨부된 지도에 내덕산장이라고 표기된 지점인 모양이다.



산길은 여전히 완만한 경사를 유지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제법 또렷해졌다. 내덕산장 근처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한 소나무들이 개체수를 많이 늘려 놓았다. 그것도 제법 굵은 것들이다. 아까부턴 코끝을 간질이던 향기가 솔향이었나 보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또 다른 낮은 봉우리. 안장산(鞍裝山, 260m)이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은 없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다는 얘기이다. 그저 선답(先踏)한 산꾼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 이곳이 안장산의 정상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지 않을 경우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것이다. 하긴 아까 올랐던 신선산이나 삼각점봉도 그런 표시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난 박건석 선생을 존경한다. 그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만 있었더라도 그런 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일이 정상표지판을 달아 놓고 다니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6분 후 임도에 내려선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곳에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만일 뒷갓산(266m)에 올라보길 원한다면 조금 전 임도와 만났던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고 난 뒤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임도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그러다가 끝내는 버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해져 버린다. 그리고 그 가파름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오르면 바위 무더기를 만나게 된다. 오늘 오르는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들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양 그동안에는 바위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바위 치고는 제법 우람한 편이다. 첨부된 지도에 쉼터바위라고 표기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쉼터바위를 지나서도 여전히 가파르다. 아직은 수은주가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산길이 가파르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면서 오를 따름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오르면 드디어 함박산 정상이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함박산 정상도 정상표지석이 없기는 다른 봉우리들과 매한가지이다. 그 흔한 이정표도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과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머물 필요 없이 산행을 이어나가는 이유이다.



함박산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는 않으나 왼편은 정관으로 내려가는 길, 석은덤으로 가려면 북쪽 방향의 능선을 타야 한다. 내려서는 길은 유연하다. 가파르지 않다는 얘기이다. 이는 함박산과 석은덤의 높이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쉬엄쉬엄 10분쯤 내려오면 초원느낌이 드는 안부에 이른다.



예쁘게 생긴 버섯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본다. 생김새로 보아 흰알광대버섯이 아닐까 싶다. 물론 식용이 불가능한 독버섯이다.



이번 산행에서 우린 약용버섯도 꽤 많이 땄다.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해서 현대의 불로초(不老草)라고 불린다는 영지버섯이다. 다이어트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성인병 예방에도 효능이 뛰어나다니 복용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것은 모두 내 몫을 돌리는 내조(內助)가 집사람의 특기이니까 말이다.



안부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잘 가꾸어진 묘역(墓域)을 만난다. ‘은진 송씨(恩津 宋氏)’ 문중의 묘역인데 행적비(行蹟碑)까지 세워놓은 것으로 보아 자손들이 번창했나 보다. 참 이곳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할 지점이 몇 군데 있다고 지적한 국제신문의 취재기사는 무시해도 좋겠다는 얘기이다. 지금은 또렷하게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묘역을 지났다싶으면 왼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이정표(석은덤/ 병산마을/ 방곡마을)를 만난다. 이정표가 지녀야 할 필수사항 중 하나인 거리표시도 없는 허술한 이정표이지만 없는 것 보아야 훨씬 낫다. 최소한 진행해야할 방향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그렇게 10분 남짓 오르면 경사가 누그러지고, 조금은 평탄해진 길을 따라 잠시 더 걸으면 드디어 석은덤 정상이다. 석은덤은 돌산인지 아니면 흙산이지가 헷갈린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흙산이 분명한데, 정상 어림이 돌무더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암릉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저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듯한 모양새일 따름이다.



정상은 검은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외에도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양산 309)을 세워 놓았다. 참고로 석은덤바위의 경남지방 방언(方言)이다. 따라서 석은이란 이름의 바위봉우리란 뜻일 것이다. 하지만 석은의 어원(語源)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기장 군지(郡誌)에 예부터 정관면 병산리의 배산(背山)인 석은덤을 큰덤산 또는 대둔산(大屯山)이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을 따름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연무(煙霧)로 인해 주변의 모든 산하(山河)들이 흐릿하게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아쉽지만 다른 이의 글로 그 풍광을 대신해 본다. <정상에 서면 시원한 조망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서쪽으로 멀리 고당봉이 뾰족하고 그 앞으로 철마산과 백운산, 망월산, 문래산, 거문산 줄기가 선명하다. 북쪽으로는 해운대CC 골프장과 시명산 대운산이 멀리는 천성산 1,2봉과 그 넘어 신불산, 영축산이 가늠된다. 동쪽으로는 울산시가지와 온산공단, 그리고 동해바다가 푸르다. 그 바닷가에 자리 잡은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남쪽으로는 달음산이 역광에 검게 보이고 멀리 해운대 장산까지도 보인다.>



하산을 시작한다. 왔던 길로 20m정도 되돌아가 자그마한 사설(私設)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소나무에서 왼편으로 간다. 넓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5분 정도 내려가면 철제 펜스(fence)가 길을 가로막는다. ‘출입금지팻말까지 걸려있는 걸로 보아 예전에는 통행을 제한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개방이 되어 있다. 아니 낡은 철망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으로 보아. 차단막을 설치했던 목적이 이미 다했지 않나 싶다.



펜스를 통과하면서 길가에 억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범위는 점차 넓어져 간다. 비록 광활하지는 않지만 가을철에 찾는다면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억새가 우거진 때문일까? 가는 길에 만나게 된다는 웅덩이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억새군락지로 들어가는 샛길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에 난 웬만큼 소문난 억새 산에 버금갈 정도로 광활하다는 억새군락지를 구경하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오른편으로 가면 장안목장, 길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내려가서는 안 되는 길이란다. 삼각산은 이정표(불광산/ 장안목장/ 석은덤·철쭉산책로)가 가리키고 있는 왼편의 불광산 방향이다. 이정표를 보면 조금 전에 지나왔던 능선을 철쭉산책로라고 표기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억새들 차지이지만 봄철이면 그 주인은 철쭉들로 바뀌나 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15분쯤 지나면 또 다른 입산통제 안내판이 나타난다. 사전 신고 없이 입산을 한 경우에는 200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의 문구를 담고 있다. 글씨가 다 지워져버린 다른 안내판에는 누군가가 일광영농이라고 적어 놓았다. 일광영농에서 산양삼 등의 귀한 약재라도 심어 놓았나 보다. 아무튼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옛날에는 경고판 뒤로 길이 나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물론 이정표(불광산/ 석은덤·병산마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른다. 그리고 8분 후에는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삼각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웃자란 억새들로 인해 들머리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정표(장안사/ 불광산/ 석은덤)를 가운데에다 놓고 무조건 오른편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자칫 왼쪽에서라도 찾을 경우에는 길가를 따라 쳐진 철망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음을 유념한다.



혹시 계곡을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게 만들던 오솔길이 잠시 후에는 능선의 모양새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7분 후에는 질매재에 내려선다. 글씨가 다 지워진 이정표가 하나 나무에 걸쳐져 있는데, 누군가가 매직(magic)으로 방향표시를 해 놓았다. 삼각산은 직진이고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용소골이란다. 왼편은 장안사 방향이지만 아쉽게도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질매재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것도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길가에는 어른들의 키를 훌쩍 넘기는 진달래나무들이 즐비하다. 누군가 이곳을 진달래 명소로 꼽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철에라도 찾는다면 연분홍 꽃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마음껏 취해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더 넘으면 어느 이름 없는 봉우리 위에 선다. 질매재에서 17분 만이다. 삼각산은 이곳에서 오른편 방향이다. 하지만 왼편으로도 길의 흔적이 보인다. 혹시 장안사로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랐던 기세를 현저하게 누그러뜨린다. 급할 게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모양새이다. 그렇게 5분쯤 더 걸으면 바위와 흙이 절반쯤 섞여 있는 삼각산 정상이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자그만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일절 없다. 조망까지도 막혀 있으니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어설픈 바윗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면 나이 먹은 소나무 몇 그루가 지키고 있는 중봉(469m)이다. 그런데 이 정상석에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조금 전에 올랐던 삼각산의 정상석과 마찬가지로 삼각산이라는 같은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다. 삼각산이 두 개나 되는 셈이다. 아무리 지역 산악회에서 세운 것들이라고 하지만 시정되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중봉에서는 조망이 트인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하봉과 그 왼편으로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닷가에 뽈록하니 솟아오른 건물은 고리원자력발전소일 것이다.



또 다시 바윗길을 내려선다. 짧은 것은 같지만 그 모양새는 아까 상봉을 내려설 때 보다는 훨씬 더 바윗길답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하봉(359m)에 올라선다. 이곳에도 정상표지석이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좌대(座臺)만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누군가 일부러 없애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똑 같은 이름이 새겨진 정상석이 이곳에도 세워져 있었다는 것일 게고 말이다.



하봉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이 뻥 뚫려 있기 때문이다. 대운산과 좌측의 시명산은 물론이고 울산 온양공단과 동해바다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조망이 트일 때마다 보였던 고리원자력 건물이 훨씬 더 또렷해졌다.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곧장 내려서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쓰고 나서야 아래로 내려설 수 있으니 엄청나게 가파르다고 보면 될 것이다.



급하게 떨어져 내리던 산길이 언제부턴가 또 다시 유연해졌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그렇게 17분 정도를 진행하면 안부에 이른다.



4분 후 헬기장을 지난다. 웃자란 잡초들에 점령당하고 있는 걸로 보아 사용하지 않은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이후로도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낮추어간다. 이 구간에서 산길은 모든 봉우리를 다 오르는 것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봉우리를 피해 좌우로 우회(迂廻)를 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28분 정도를 진행하면 멋진 바위전망대를 만난다. 장안사와 그 주변 풍경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전망대를 지나자마자 직벽(直壁)에 가까운 바윗길이 나타난다. 절벽에 가깝지만 다행히도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다. 주의만 기울인다면 큰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는 얘기이다.




날머리는 장안사 주차장

바윗길만 내려서면 산행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0분이 채 안되어 도로에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장안사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끝난다. 주차장에 이르자마자 옆 계곡으로 내려가 물속에 들어앉고 본다. 물론 옷은 입은 채로이다. 인근이 관광지이다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계곡은 몸을 씻기에 충분할 정도로 물이 많았다. 산의 높이나 범위로 보아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4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채 10분이 되지 않으니 오롯이 걸은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시간이 나면 주차장 곁에 있는 장안사에라도 들러볼 일이다. 장안사(長安寺)673(신라 문무왕 13)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에는 쌍계사라 불렀는데, 애장왕이 다녀간(809) 후에 장안사로 개칭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탄 것을 중창과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절 마당에 있는 세 그루의 단풍나무가 눈길을 끈다. 높이가 2~3m 정도 되는데 가지가 뒤엉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그리고 뒤이어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대웅전이 나타난다. 참고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71), 명부전(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06). 웅진전, 산신각, 종각 그리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7과를 모시고 있다는 ‘3층석탑이 있다.



철마산(鐵馬山, 605m)-망월산(望月山, 521.7m)-백운산(白雲山, 520.2m)

 

산행일 : ‘16. 8. 6()

소재지 : 부산시 기장군 정관읍과 철마면의 경계

산행코스 : 정관(진태)고개백운산해밋고개망월산매암산(515.8m)소산봉(당나귀봉)육각정철마산서봉입석마을영천초교(산행시간 : 4시간1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부산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금정산부터 떠올린다. 또는 달음산이나 장산, 백양산 정도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오른 백운산과 망월산, 그리고 매암산과 철마산도 만만찮은 산임은 분명하다. 특히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망월산과 매암산은 앞에서 거론한 유명산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서슬 시퍼런 암릉이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眺望) 또한 빼어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직까지 세간에 덜 알려진 탓에 등산객들도 뜸한 편이다. 호젓한 산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다. 특히 부산 사람들에게는 접근성까지 뛰어나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정관(진태)고개(기장군 정관읍 모전리)

동해고속도로(부산-울산) 정안 I.C에서 내려와 14번 국도를 타고 기장방면으로 내려가다 좌천고가교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와 60번 지방도로 옮겨 양산방면으로 달린다. 잠시 후 두명마을(기장군 정관읍 두명리)에서 좌회전하여 군도(郡道)인 정관로로 옮겨 타면 잠시 후 정관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고갯마루에 부산추모공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걸려 있으니 참조한다.





고갯마루에서 정관읍 방향으로 100m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오른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시멘트포장 길이 나타난다. 길가에 세원고철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무엇을 만드는 공장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이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산행이 사직된다.



50m쯤 걸으면 길은 공장 바로 앞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휜다. 그렇다고 이 길을 따라가라는 말은 아니다. 등산로는 곧장 산자락으로 파고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이 등산로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편백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는 느낌으로 진행하고 볼 일이다.



산길은 또렷한 편이다. 들머리에 아무런 표식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외이다. 그만큼 이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산길은 또한 곱기까지 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완만하다. 거기다 울창한 숲이 햇빛까지 완벽하게 차단시켜 준다.



산행을 시작한지 18분쯤 되었을까 경사가 가팔라진다. 그것도 제법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팔라졌다. 큰 어려움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명색이 500m급의 산인데 이정도의 오르막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다행인 점은 그런 가파름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분을 채 넘기지 않고 다시 그 기세를 현저히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용천지맥을 종주하시는 님들 힘, , 힘내세요!’라고 쓰인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국제신문의 근교산 취재팀산행대장을 지냈던 최남준씨가 .라는 아명(雅名)으로 매달아 놓은 팻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이 용천지맥(湧天枝脈)인가 보다. 참고로 용천지맥이란 낙동정맥이 천성산을 지나 금정산으로 남하하면서 원효산 남쪽 1.8km지점에서 동쪽 원득봉(723m)으로 분기하여 청송산(584.1m), 용천산(545m), 백운산(520m), 망월산(549m), 문래봉(511m), 함박산(457m), 아홉산(361m), 산성산(368.9m), 장산(634m), 옥녀봉(370m) 등을 일군 뒤 해운대 동백섬 바다로 가라앉는 41.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남짓 되면 오른편으로 갈림길 하나가 보인다. 임곡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여전히 육산(肉山)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체가 다 흙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간혹 아래 사진과 같은 바위무더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갈림길을 지난 지 11, 산행을 시작한지는 42분 만에 백운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삼각점(양산 431)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저 최남준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 또한 터지지 않는다. 참고로 백운산은 기장의 옛 지명인 차성(車城) 지방의 조산(祖山)으로 알려진다. 기장읍지에 백운산은 산 위에 항시 흰 구름이 있기 때문이며, 창립한 절 이름을 이 때문에 선여사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흰 구름바다에 절()이 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망월산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면 임도(林道)를 만난다. 이곳에서는 이정표(이정표 : 임기마을4.5Km/ 창기마을3.0Km/ 송곡교2.3Km)가 지시하는 임기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임도를 따라 걷게 됨은 물론이다. 참고로 이정표에 적혀있는 송곡교는 아까 백운산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만났던 갈림길을 따를 경우 들머리가 되는 다리이다.



4분쯤 걸었을까 왼편으로 오솔길 하나가 보인다. 실연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니 일단 들어서고 볼 일이다. 1분 후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에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 한현우선생께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코팅지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산정(山頂)의 너럭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이 시원스럽다. 멀리 달음산으로 이어지는 산릉 왼편에 정관읍 일대가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형(盆地形)인 정관읍 중심지 일원은 신도시(新都市)답게 반듯하게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고 있지만 작은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그렇게 고도를 낮추어 가다가 18분 후에는 해밋고개에 내려선다. 고갯마루는 예쁘게 생긴 벤치 서너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이정표(망월산2.3Km/ 임기마을3.4Km/ 백운산1.2Km)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고갯마루라면 응당 양쪽으로 길이 나있어야 하건만 왼편 대정공원묘지 방향으로는 길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사유지라고 해서 길을 막아버린 모양이다.




해밋고개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오르는 게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는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렇게 20분쯤 걸으면 석탑사 갈림길(이정표 : 망월산0.3Km/ 석탑사1.5Km/ 백운산2.3Km)’을 만난다. 벤치와 평상에다 체육시설까지 갖추었으니 아예 체육공원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왼편으로 길이 열린다.





이번에는 아예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최악의 코스이다. 아침에 확인한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는 이곳을 폭염주의보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럼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길 거란 얘기이다. 그늘에 들어가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따가운 햇살에 노출까지 되다 보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것은 그 길이 오르막길이라는 것이다. 그저 흐느적거리며 걷는 수밖에 없다.



8~9분쯤 걸었을까 이정표(망월산50m)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망월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이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기장팔경6경인 소학대(巢鶴臺)’를 소개하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아마 망월산의 정상 어림에 소학대, 일명 매바위가 있나 보다.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망월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표지석은 초소의 옆에 있는 너럭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뒤에다 전망대크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매바위라고 불릴만한 바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정관읍에서 바라볼 때 나타나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매암산의 앞에 있어야 할 소학대의 안내판을 잘못된 지점에다 세워놓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아무튼 망월산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이 유난히도 맑고 밝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데크에는 망월산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 놓았다. 이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전원도시 정관읍 전체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양산군의 덕계가 살짝 비추어보이고 우측으로는 장안읍 월내와 고리, 그리고 동해바다가 조망된단다. 하지만 산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만일 이런 표현까지 적어놓았더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관읍 건너편 북쪽으로 석은덤, 삼각산, 멀리 대운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용천산이 우람하게 솟아 있고, 지나온 백운산 너머로는 천성산이 웅상읍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서쪽으로 금정산이 보이고, 몸을 돌리면 남쪽에는 철마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임도로 되돌아 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5분 조금 못되면 널따란 공터를 만나게 된다. 중간쯤에 매암바위로 들어가는 갈림길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망월산 0.5Km/ 매암바위 40m)가 세워져 있지만 구태여 거기까지 가서 방향을 틀어야 할 이유는 없다. 공터의 초입에서 곧바로 왼편으로 들어서도 되기 때문이다.



매암바위로 가는 길에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를 만난다. 세간에서 귀하게 대접을 받고 있는 반송(盤松)으로 치부해도 되겠다. 반송이란 한 줄기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갈려나온다고 해서 만지송(萬枝松)이라고도 불린다. 나지막한 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지들을 품고 있는 자태가 고고(孤高)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귀물로 평가받는 소나무이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서게 된다. 매암산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위는 반반하지만 그 끝은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층암을 깎아 세운 듯이 우뚝 한 이 암산(巖山)매바위라고 하는데, 옛날 매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다른 한편으론 산을 닮은 바위라고 해서 (山)바위라고도 불리니 참조한다. 하지만 지금은 매암바위또는 매암산으로 불린다. 그건 그렇고 매바위라는 단어가 어쩐지 귀에 익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아까 망월산의 들머리에 세워져 있던 소학대의 안내판에 적혀있던 지명이다. ‘기장 8중 제6경인 소학대(巢鶴臺)의 다른 이름이라던 그 매바위말이다. 아까 예상했던 대로 엉뚱한 곳에다 안내판을 세워 놓았던 것이다.




매바위 끝에 서면 기장군 정관읍 일대가 발아래에 펼쳐진다. 새로이 만들어진 신도시답게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고, 또 다른 구역에선 각양각색의 집과 공장들이 장난감처럼 들쭉날쭉하다.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건 고리원자력발전소와 동해바다일 것이다. 고개를 좀 더 들어보자. 달음산과 문래봉, 장산 등이 그려내는 풍광이 시원스럽게 드러난다.



정상에서 빠져나오는데 길가 숲속에서 앉아 있던 현지인들이 우리 부부를 부른다. 그쪽에 멋진 풍광이 있으니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일단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우린 또 하나의 멋진 경관(景觀)을 가슴에 담게 된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수십 길의 바위벼랑 오른편에 정관읍 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는 게 숫제 그림이다. 그것도 솜씨가 뛰어난 풍경화로 말이다. 바위의 이름은 자살바위란다. 옛날 저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애달픈 사랑이라도 있었나 보다.


다시 이정표가 있던 공터로 되돌아와 철마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정표에는 철마산이 나타나있지 않으니, 그저 백운산의 반대방향이라 생각하고 진행한다면 별 탈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못미덥다면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이정표(철마산1.2Km/ 정관면/ 망월산)에서 확인하면 될 일이고 말이다.



▼ 가는 길에 쉼터를 겸하고 있는 중리 갈림길(이정표 : 철마산1.7Km/ 중리2.4Km/ 망월산2.7Km)을 만난다. ‘소두방재로 알고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소두방은 솥뚜껑인 소댕의 이곳 방언(方言)으로 정관(鼎冠)이란 유래도 여기서 나온 것이란다. 이 옆에 있는 봉우리(위치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가 정관면소재지에서 올려다볼 때 흡사 솥뚜껑을 덮어 놓은 형상이라고 해서 소두방산이라고 부르는데, 고개의 이름 또한 거기서 연유된 것이란다. 아무튼 이 고개는 옛날 정관 사람들이 임기로 넘나들던 길로 직진하면 철마산과 연결된다.



잠시 후 무인산불감시탑이 보초를 서고 있는 소산봉(574m)이 나타난다. 매암산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널따란 분지(盆地)형태로 이루어진 정상은 온통 억새밭이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능선의 곳곳에서 억새의 무리를 만난다. 인근에 있는 화악산이나 영남알프스처럼 광활하지는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겠다.



이곳도 역시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상표지석은 전망대의 앞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소산봉이 아니라 당나귀봉으로 적혀있어 의아하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전망대에 오르면서 자동으로 풀리게 된다. 안내판에 이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의 봉우리의 줄임말이란다. 누가 작명을 했는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전망대에 서면 사통팔달로 시야가 열린다. 비록 독자적인 산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백운산(520m)이나 망월산(521.7m) 보다 더 높은데다 주변이 트여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안내판에 적혀있는 내용을 옮겨본다. ‘북쪽으로는 양산시 일부가 보이며, 동쪽과 서쪽으로는 정관신도시와 금정산 자락이 펼쳐진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황령산, 배산,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볼 수 있다. 특히 시야가 트일 때에는 부산시청 및 남쪽 멀리 영도와 부산 남항이 보이는 등 기장군에서 부산시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뛰어난 곳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6분 후 육각정(六角亭)이 반듯하게 지어진 임도에 내려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임기마을12.9Km/ 백운산1.7Km/ 소두방재0.6Km)를 보고는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소두방재와 백운산은 우리가 이미 지나왔던 코스이니 같은 방향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는 좌우의 임도를 따르도록 나누어 놓았다. 또 하나, 철마산 방향에는 임기마을을 표기했다. 철마산을 적어야 옳겠지만 굳이 임기마을로 적었다고 치자. 그 끄트머리에 임기마을이 있으니 틀린 애기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거리라도 제대로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12.9Km나 더 남았다는 것은 웬만하면 이곳에서 탈출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릇 이정표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건만 이곳의 이정표는 도리어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왕에 예산을 들였으면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임기마을 방향으로 들어선다. 8분 후 능선안부에서 임기마을 갈림길(이정표 : 철마산0.7Km/ 임기마을1.5Km/ 망월산1.2Km)을 만나나 개의치 않고 철마산으로 향한다.



안부를 지나면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기다 그 오르막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늘 같이 더운 날에는 그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발 한발 옮기는 수밖에 없다. 흐느적거리며 오르길 22, 또 다른 임기마을 갈림길(이정표 : 철마산0.2Km/ 임기마을1.5Km/ 망월산2.21Km)을 만난다. 고작 0.5Km를 오르는데 22분이나 걸렸으니 엄청나게 더딘 진행이다. 그만큼 힘든 구간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철마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돌무더기가 연상되는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2개가 자리하고 바닥에는 삼각점(양산 26)이 박혀 있다. 지나는 길에 철마(鐵馬)에 얽힌 옛이야기 하나를 옮겨본다. 옛날 동해 용왕(龍王)의 명을 받은 용마(龍馬)가 잦은 해일과 홍수로 피해가 큰 이 지역에 출현해 물을 다스리고 수해를 없앴다고 한다. 하지만 미처 환궁(還宮)하지 못하고 서서히 몸이 굳어 철마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철마산이란 이름은 이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은 아니다. 주변의 대부분이 참나무들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산 지역의 유명산들은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아랫도리는 잘려나갔지만 우측 가까이 거문산과 그 왼쪽의 아홉산, 그 뒤로 일광산이 확인된다.



서봉으로 향한다. 잠시 아래로 내려섰다가 안부에서 입석마을 갈림길(이정표 : 입석마을1.3Km/ 철마산0.3Km)을 만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서봉 정상에 올라선다. 철마산 정상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잡석(雜石)들이 널려있는 채석장(採石場)을 연상시키는 서봉(577m)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탑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서봉이란 철마산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봉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다. 잠시 후 한결 더 뛰어난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국제신문의 근교산취재기사를 옮겨본다. ‘다방봉에서 장군봉 계명봉 고당봉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상계봉까지 이어지는 금정산 주능선이 모두 드러난다. 또 회동수원지와 회동 아홉산 윤산은 물론이고 멀리 백양산과 장산 영도 봉래산 등 부산 시내 대부분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하산을 시작한다. 잠시 후 임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갈림길을 만난다. 물론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다. 오른편은 임기마을, 우린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더 짧은 거리인 입석마을로 내려가기 위해서이다. 방향을 틀자마자 산길이 사나와진다. 생각보다 많이 가파른데다가 심심찮게 바위구간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아 내려서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산을 시작한지 15분쯤 되는 곳에서 갈림길(이정표 : 입석마을0.9Km/ 대우정밀1.0Km/ 철마산0.8Km) 하나를 만난다. 망설이지 않고 곧장 입석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대우정밀 갈림길을 지나서도 산길의 가파름은 여전하다. 곧장 아래로 내려서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고 나서야 겨우겨우 고도(高度)를 낮추어가고 있을 정도이다. 갈수록 속도(速度)가 쳐진다. 땀에 젖은 발이 신발 앞쪽으로 쏠리면서 생기는 통증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땀을 하도 많이 흘리는 내 체질을 생각해서 바꿔 신고 온 트레킹화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걷기를 25분 만에 편백나무 숲에 이른다. 숲에는 통나무로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잠시 앉아본다. 피로에 지친 육신에 새로운 힘이 솟는 듯하다. 어쩌면 편백나무 숲이 배출하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능이 아닐까 싶다. 피톤치드에는 치료의 효능 외에도 심신안정과 피로회복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니 말이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이번에는 대나무 숲이 마중 나온다. 그리고 그 숲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진다. 푸른 대나무 숲길은 싱그럽기 짝이 없다. 숲이 만들어 주는 피톤치드 향이 바람이 불 때마다 청량감을 더해 준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높게 뻗은 대나무가 마치 터널같이 느껴진다. 사색(思索)하며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TV에서 방영했던 울산 태화강 둔치의 십리대숲이 생각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찾았다는 그 대숲 말이다. 울산과 기장군은 바로 이웃이니 그 느낌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대나무 숲이 끝나면서 계곡을 만나지만 물기는 없다. 골짜기가 짧은 탓일 게다. 이어서 산비탈을 따라 난 길을 잠시 걸으면 입석저수지가 나오고, 그 아래에 입석마을이 웅크리고 있다.



입석저수지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철마삼동로)까지는 5분 거리이다. 입석마을을 통과해야 함은 물론이다. 입석마을이란 마을 안에 입석(立石·menhir)’이 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유적인 이 입석(선돌)은 높이 396cm, 65cm의 비석처럼 생긴 자연석을 수직으로 세웠다고 한다. 땅바닥에는 직경 263cm의 넓적한 자연석 평석을 땅에 묻고, 이 평석 한가운데를 파낸 곳에 선돌을 박아 세웠단다. 참고로 선돌이란 신석기 또는 청동기시대에 길쭉한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별한 목적으로 세운 돌기둥 유적이다. 삿갓바위 또는 입암(立岩)이라고도 한다. 고인돌, 열석(列石) 등과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는 대표적인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산행날머리는 영천초등학교(양산시 동면 여락리) 앞 수영강() 둔치

도로를 만났다고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씻을 곳을 찾던 산악회 황회장이 영천초등학교 앞 둔치에다 버스를 주차를 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위치이다. 뙤약볕 아래에서 걷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땀에 절은 몸을 씻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거리라도 능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저 멀리 보이는 홍법사(弘法寺) 대불(大佛)의 반대방향이라고 보면 된다. 도로를 걷다보면 입석(선돌)마을표지석을 만나지만 개의치 않고 더 걷는다. 그리고 상동보건진료소 조금 못미처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 수영강 둔치가 나오면서 오늘 산행이 끝을 맺는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20분이 걸렸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이 걸린 셈이다.


봉화산(326.7m)-매봉산(309m)

 

산행일 : ‘16. 7. 30()

소재지 : 경남 통영시 도산면

산행코스 : 유촌마을전망데크봉화산봉수대터봉화산매봉산매봉산(정상석)산불감시초소범골고개(산행시간 : 2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중간에 몇 곳에서 바위를 만나게 되지만 그 정도의 바위는 어느 산이건 다 갖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바위들은 골산(骨山)들이나 보여줄 수 있는 뛰어난 조망을 선사한다. 봉화산에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좌우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풍경은 다른 어느 유명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등산로 또한 잘 정비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산길을 걸으며 빼어난 자연경관을 즐기기에 딱 좋은 산들이 아닐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유촌마을(통영시 도산면 저산리)

대전-통영고속도로 북통영 I.C에서 내려와 14번 국도를 타고 고성방면으로 달리면 도산면소재지인 법송리가 나온다. 도산삼거리(도산면 법송리)에서 77번 국도로 갈아타고 사량도를 드나드는 정기여객선의 터미널(가우치선착장)이 있는 오륜리(도산면)까지 일단 들어온다. ‘선착장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유촌마을이 나온다.




산행은 유촌마을에서 도산예술촌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열린다. 도로 옆 좌측, 그러니까 바다 반대방향의 산자락에 철제계단이 놓여있다. 계단의 바로 위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위로 향한다. 하지만 바닥에 통나무계단을 설치해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느긋하게 걸으며 보폭관리만 잘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올라설 수 있다는 얘기이다.



잠시 후 심신을 맑게 해주는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온몸이 청량한 기운으로 넘쳐나는 기분이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편백나무 숲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바로 편백나무이고, 나무가 그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 안에는 살균과 살충의 성분 외에도 피로회복과 심신안정의 효능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편백나무 숲은 금방 끝나버린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번에도 역시 통나무계단이 촘촘히 깔려있다.



15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바위지대가 나타나면서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가오치선착장 방향이다.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한 가오치항의 앞바다에는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한 부표들이 떠있다. 굴양식장이 아닐까 싶다. 시선을 조금 더 들면 이번에는 고성 앞바다이다. 푸른 바다에 비사도와 읍도, 연도가 그림처럼 수놓아지고 있다. 그 뒤에 보이는 작은 섬들은 새섬과 딴섬, 죽도 등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뾰쪽하게 솟아오른 산은 아마 벽방산일 것이다.



전망대를 지나면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오르면 이층으로 된 나무전망대가 나타난다. 남해 앞바다의 시원한 조망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 선다. 발아래로 동촌과 서촌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작은 무명 섬 뒤쪽으로 망망대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 조망의 한가운데 상도와 하도로 나누어진 절경 사량도가 꿈틀거린다. 연무(煙霧)로 인해 희미하긴 하지만 가장 돋보이는 능선은 아마 옥녀봉의 암릉일 것이다.





이번에는 전망대의 반대편 암릉으로 오른다. 이번에는 고성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까 능선을 오르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아까보다 조금 더 넓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덕분에 고성군의 풍경이 한결 더 또렷해졌다. 고성 시가지의 오른편에는 고성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거류산과 통영의 벽방산이 우뚝하면서도 뾰족하게 도드라져 돋보인다.




전망대를 지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파름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아니 반반한 구간이 더 많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268m봉과 247,9m봉을 오르는 구간만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평탄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산행 중에는 원추리 등 여러 가지의 야생화들을 만나게 된다. 언젠가 산자고나 개별꽃, 현호색 등 봄꽃들이 많은 산이라고 적어 놓은 글을 본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20분 조금 못되어 한 차례 안부로 내려선 산길은 다시 오름길로 변한다. 이번에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그렇게 10분 남짓을 오르면 드디어 봉화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예닐곱 평 남짓 되는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매봉산2.02Km, 범골고개 3.02Km/ 수월초소2.09Km/ 저산리(예술촌)2.14Km), 그리고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은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탓에 조망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볼거리 또한 없다.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것이다.





봉수대(烽燧臺)로 향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수월초소 방향이다. 잡목(雜木)이 들어찬 산길은 또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길을 찾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갈 길을 방해하는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가길 6분여, 왼편에 돌무더기가 보인다. 앞서가던 일행이 봉수대인 모양이라며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봉수대는 50m쯤 더 진행해야만 만날 수 있다. 생김새로 보아 이곳은 옛날 해경(海警)들의 경비초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예비군들이 놀던 곳이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대해 적어 놓았던 어느 글이 생각난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전망대가 이 근처에 있다던 글이다. 글에서는 벼랑 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장정 서너 명이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바위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서면 수월리 앞바다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발길을 돌리고 만다. 더위에 지친 육신이 조그만 움직임까지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수북하게 쌓인 돌무더기(이정표 : 수월치/ 봉화산)를 만난다. 호박만한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걸로 보아 봉수대(烽燧臺) 터임이 분명하다. 문화재청에서는 이곳을 경상남도기념물 제279호인 통영 우산봉수 (統營 牛山烽燧)’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봉화산을 우산(牛山)이라 불렀다는 기록까지 덧붙였다. 산의 생김새가 소()의 등처럼 생겼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봉수(烽燧)란 멀리까지 잘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 등에서 밤에는 횃불(), 그리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군사상의 통신방법으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인 1149(의종 3)에 확립된 제도이다. 1422(세종 4)부터 각 도에 있는 봉수대를 정비하기 시작하여 1438(세종 20)에 완비하였는데, 우산봉수도 이때를 전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봉수는 왜구(倭寇)의 침범을 경보하고, 주변 해역에서 일어나는 정세를 요망(瞭望)하고자 축조된 것으로 역사성이 깊은 국방유적이다.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조심스레 돌무더기 위로 올라가 본다. 그 옛날, 군사들이 망()을 보았을 바다는 시원스럽지가 못하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는 탓이다. 푸르게 빛나는 수월리 앞바다에는 마장도와 소사도, 사도와 장구도가 두둥실 떠있다. 그 너머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은 아마 통영의 미륵산일 것이다.



다음 행선지인 매봉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봉화산으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반대편은 수월고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봉수대를 다녀오는 데는 14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매봉산으로 방향을 잡고 3~4분쯤 더 걸으면 바위 절벽의 난간을 따라 세워놓은 목책(木柵)이 보이고, 그 끝에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 서면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발아래에는 천혜의 항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수월리 앞바다()가 펼쳐지고, 그 너머 바다에 떠있는 마장도와 소사도, 사도와 장구도 등이 선명하다. 매봉산과 장막산 등 잠시 후에 가게 될 산봉우리들도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길옆은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에 목책(木柵)으로 난간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진행하면 매봉산(309m) 정상이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정상표지석이나 정상표지판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봉화산의 정상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기 때문이다. 봉화산에서 매봉산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아니 갈수록 고도(高度)가 낮아지는 것을 보면 짧은 오름과 긴 내림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산길은 고운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만(緩慢)하다. 산악마라톤 코스로 삼아도 충분할 정도이다. 하지만 산행은 만만치가 않다. 30도를 훌쩍 넘겨버린 폭염 때문이다. 제자리에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무더운 날씨 속에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마는 오늘은 더욱 심한 편이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신발 속에 고이더니 언제부턴가 질퍽거리고 있다. 우중 산행 때나 신발에 물이 고이는 걸로 알았는데, 땀으로 고이는 수도 있는가 보다.



그렇게 11분 정도를 걸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이정표(매봉산 0.24Km, 범골고개 1.24Km/ 봉화산 1.28Km)를 만나게 되고, 또 다시 11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무인산불감시탑이 있는 산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산불감시탑의 옆에는 매봉산이라고 적힌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높이가 281m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도에 표기된 매봉산의 정상은 분명 아니다. 첨부된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매봉산의 높이는 309m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관할 지자체(地方自治團體)에서 매봉산의 정상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모양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다시 한 번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그 왼편에는 장막산과 큰산을 잇는 능선이 뚜렷하다. 한마디로 멋진 풍광이다. 그래서 원래의 매봉산을 놓아두고 이곳에다 정상표지석을 세운 모양이다.



잠시 후 수월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범골고개0.77km/ 수월고개0.4Km/ 매봉산0.25km, 봉화산 2.27km)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만난다. 이곳에서 또 다시 조망이 터진다. 비록 웃자란 나무들이 아랫도리를 잘라 먹어버렸지만 나머지만 갖고도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낸다. 아래로 수월리가 보이는데, 방풍림(防風林)이 바다로부터 마을을 감싸고 있다. 편안해 보인다.





초소를 지나면서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춘다. 범골고개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길가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저 무성하게 자란 칡넝쿨이 유난히도 많아졌다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범골고개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범골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대형버스의 통행이 가능한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다. 길가에는 사각(四角)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주저앉고 본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짠다. 분명히 땀이겠건만 여름철 장마 때 낙숫물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한 사발이 족하다. 이쯤에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행을 고집한다는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총 2시간 30분이 걸렸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폭염경보가 내렸을 정도로 무더웠던 날씨 탓일 것이다.



30분 동안을 푹 쉬다가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물론 준비해간 막걸리와 과일들은 남김없이 모두 비워버렸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수월리 앞바다가 막힘없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 산악회의 버스를 만난다. 중간에서 탈출한 우리를 실으려고 마중을 나와 준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도 역시 중간에서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오늘의 원인은 오롯이 내 탓이었다. 너무나 많은 땀을 흘리다보니 끝내는 탈진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게 그 원인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산악회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배려까지 없었다면 오늘은 최악의 산행이 되어버릴 뻔 했다. 첫 번째 배려는 탈출지점까지 산악회의 버스가 마중을 나와 준 것이다. 폭염(暴炎) 속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걷지 않아도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배려가 어디 있겠는가. 또 다른 하나는 산악회 터줏대감들의 배려이다. 하산 집결지에 도착해 산악회에서 마련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고사장님이 부른다. 터줏대감 몇이서 어울려 생선회를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들의 배려 속에서 난 그 좋아하는 술을 실컷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귀경할 수 있었다. 배려를 해주신 산악회의 운영진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려본다.



정병산(精兵山, 566.5m)-비음산(669m)

 

여행일 : ‘16. 3. 26()

소재지 :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성산구 토월동·불모산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

산행코스 : 창원국제사격장숲속나들이길소목고개정병산수리봉내정병봉용추고개비음산창원축구센터사파중학교(산행시간 : 4시간 2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문득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선생이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 지었다는 산중신곡(山中新曲)’에 들어 있는 시구(詩句)이다. 사람들은 수() ·() ·() ·() ·()을 다섯 벗으로 삼아 지었다고 해서 이를 오우가(五友歌)라 부르는데, 위의 내용은 대나무()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自然愛)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오른 정병산과 비음산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육산(肉山)도 아니고, 그렇다고 골산(骨山)도 아니었기에 하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육산이지만 곳곳에 거대한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골산의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산들은 양쪽의 장점들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육산의 특징인 폭신폭신한 산길은 걷기에 딱 좋았고, 탁 트인 조망은 골산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 또 하나, 등산로 정비를 어찌나 잘 해놨는지 도심(都心)의 공원에라도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던 산이라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는 창원국제사격장(창원시 의창구 퇴촌동)

남해(순천-부산)고속도로 동창원 T.G를 빠져나와 좌회전 의창대로를 따라 동읍삼거리(의창구 동읍 용잠리)까지 와서 우회전하면 곧이어 덕천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14번 국도를 타고 가다 남산 I.C(의창구 동읍 덕산리)에서 25번 국도로 옮겨 달리면 토월 I.C(성산구 토월동)가 나온다. I.C를 빠져나와 창원시립테니스장 앞에서 우회전하여 창이대로를 타고 달리다가 창원대삼거리(의창구 용호동)에서 우회전, 이어서 GS25 창원사림점(의창구 사림동) 앞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잠시 후 산행들머리인 창원국제사격장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19827월에 문을 연 창원국제사격장(昌原國際射擊場)은 공기총사격장과 화약총사격장, 클레이사격장, 러닝타깃사격장, 결선경기장 등 국제규격의 경기장과 각종 편의시설(잔디축구장, 선수합숙소, 식당)들을 갖추고 있다. 국가대표선수단의 훈련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나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클레이·화약총·공기총 경영사대)되어 있다니 사격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도 하겠다.




사격장 정문 앞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창원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인 숲속 나들이길로 연결되는 진입로이다. 들머리에 이를 알려주는 둘레길 현황도와 이정표(숲속 나들이길 1.2K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창원시를 일주하는 둘레길인 숲속 나들이길은 창원과 마산, 진해가 하나의 시()로 통합된 것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존에 있던 마산권의 무학산 둘레길(34.3)’과 창원권의 숲속 나들이길(30.5)’, 그리고 진해권의 진해드림로드(26)에다 천주산 누리길 18Km)불모산 둘레길(14Km), ’진해드림로드(10.2) 등을 새롭게 조성함으로써 옛 창원~마산~진해를 연결하는 총연장 133km의 둘레길이 새롭게 완성된 것이다. 길에는 전망대와 데크로드, 쉼터 등의 휴식공간은 물론 곳곳에다 시판(詩板) 등의 읽을거리까지 세워 놓았다.



길은 사격장의 담장을 끼고 나있다. 3~4분쯤 후 산자락으로 들어서는 지점에서 왼편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아마 사격장을 가로질러 오는 지름길인 모양이다.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를 만나게 되고, 다시 10분쯤 더 걸으면 쉼터를 겸한 약수터에 이르게 된다. 품질이 보증된 데다 물맛까지 괜찮은 편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모금 마셔볼 일이다. 이곳 약수터갈림길(이정표: 숲속나들이길 소목고개0.2Km, 정병산 정상 1.4Km/ 숲속나들이길 용추54.5Km/ 사격장1.2Km)에서부터 소목고개까지는 숲속 나들이길과 겹치는 구간이니 참조한다.




5~6분 후 능선안부인 소목고개(이정표 : 정병산 정상1.2Km/ 봉림사1.7Km/ 소목마을1.2Km/ 사격장1.3Km)에 올라선다. 쉼터까지 조성해 놓은 걸로 보아 잠시 쉬었다가 정상으로 향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사거리인 이곳에서 정상은 오른편 능선을 따라야 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황톳길은 한마디로 곱다. 거기다 진행방향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줄기가 꽤나 멋들어지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걷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딱 거기까지다. 2~3분 후에는 가파르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을 시작부터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산길은 많이 가파르다. 웬만하면 갈지()자로 오가며 그 경사(傾斜)를 조금이나마 줄여줌직도 하련만 오로지 일직선(一直線)을 고수하고 있다. 곧은 기개라도 자랑하려는 모양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나무나 돌로 만든 계단 등 등산로 정비라도 잘 되어 있었기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꽤나 애를 먹어야 오를 수 있을 뻔했다.



하지만 처음에서 끝까지 내내 힘들지만은 않다. 눈요깃거리가 심심찮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높아지는 고도(高度)와 비례해서 넓어져가는 창원시가지 풍경이 볼만하고, 거기다 주능선의 바위벼랑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다리가 아프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쉴만한 곳마다 놓여있는 벤치나 평상에서 잠깐 쉬었다 가면 될 일이다.




소목고개에서 20분쯤 올랐을까 능선마루에 세워진 정자(亭子) 하나가 보인다. ‘전단쉼터(이정표 : 정병산 정상30m/ 용추고개3.5Km, 비음산 정상 6.7Km, 대암산 정상 8.9Km/ 소목고개1.2Km)’란다. 정병산 정상은 왼편, 다음 행선지인 비음산은 오른편 방향이다. 정상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잠시 후 삐쭉하게 튀어나온 바위등성이로 이루어진 정병산 정상에 오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만이다. 4~5평쯤 되는 길쭉하게 생긴 공터 모양의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창원 24, 1992 재설)이 세워져 있다. 참고로 정병산(精兵山)은 일제 때 일본군이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日帝)의 잔재(殘在)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일환으로 거론 되는 것이 옛 이름인 전단산(旃檀山)으로 되돌려놓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재진행형이란다. 전단(旃檀)이란 산의 이름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마야부인이 자면서 석가모니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던 평상이 전단향(栴檀香 : 인도에서 자라는 향나무의 하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문(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文)‘에 의하면, 신라시대 진경대사가 강원도 명주에 있다가 김해의 서편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던 중 진례(정병산 근처)에 이르러 절을 세우고 봉림사(鳳林寺)라 하였다고 한다. 산의 이름 또한 봉림산으로 불리었는데, 고려시대 이후에 전단산으로 고쳐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천지가 개벽할 때 산 정상에 징 하나 얹을 정도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해서 징산 혹은 징빙산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정병(精兵)산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지나, 아무튼 현재의 공식 이름은 정병산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일품이다. 정상이 바위로 이루어진 탓에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 때문이다. 북쪽에는 구룡산과 백월산이 우뚝하고,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기자마자 이번에는 호수 같은 주남저수지와 기름진 평야가 나타난다. 거기다 그 오른편에서 실루엣(silhouette)으로 처리되고 있는 황새봉과 금음산 등 낙남정맥의 산봉우리들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짙게 낀 연무(煙霧)로 인해 시야가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불모산과 장복산 그리고 무학산, 천주산 등 마산·창원지역을 빙 둘러싸고 있는 이 지역 명산들은 그저 거기에 있으려니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에 만족하지 말고 올라왔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조금 더 나아가보라는 얘기이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정표 : 용정사1.8Km/ 동읍 자여마을1.9Km/ 비음산6.8Km)까지 가보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그 오른편에는 낙동강과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가 또렷하다.




바위봉우리인 촛대봉이 구미를 당기지만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주어진 시간까지 하산을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되돌아서자 정병봉의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까 전단쉼터에서 바라보던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다시 전단쉼터로 내려선 뒤 이번에는 남쪽 능선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산등성이만을 고집하지 않고 곳곳에서 우회로(迂廻路)를 만든다. 덕분에 능선이 험상궂은 바위들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7분 후 헬기장에 이른다. 어른 키만큼이나 웃자란 억새들로 우거져 있는 것이 가을철이면 또 다른 매력을 한껏 자랑할 것 같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암봉으로 연결되는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내려야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단이나 난간을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윗길에서의 방심은 금물이다. 사소한 실수에도 자칫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능선은 서는 곳마다 뛰어난 전망대로 변한다. 창원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은 물론 창원시가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새로 만들어진 계획도시답게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모든 구간이 다 바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절반 정도는 걷기에 딱 좋을 정도의 흙길로 이어진다.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편한 것이 아니다.



진행방향에 보이는 산들이 하나 같이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있다. 비음산, 대암산, 용지봉 등일 것이다. 물론 그 뒤로는 불모산, 장복산 등이 있을 것이고 말이다.



또 다른 철계단을 내려선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바위봉우리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독수리바위, 즉 수리봉이다. 소문과는 달리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헬기장에서 13~4분쯤 걸었을까 길상사로 내려가는 듯한 갈림길이 나뉘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이 독수리바위 근처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하나가 이정표(용추고개 2.4Km, 비음산 정상 5.7Km/ 정병산 정상 1.1Km)와 함께 세워져 있다. 철계단이 놓여있지만 위험하니 우회등산로를 이용하라는 경고의 내용을 담은 안내판이다.



수리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정병산 방향, 바위벼랑을 피해 철제계단을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삼거리에서 철제난간을 붙잡고 오르면 정병산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수리봉 정상이다. 수리봉은 바위로 이루어진 덕분에 조망이 좋은 편이다. 창원시가지와 공단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만 좋았다면 주변의 산군들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철계단을 이용해 아래로 내려간다. 계단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들 사이를 헤집으며 놓여있다. 날이 선 그 모양새가 어찌 보면 매의 주둥이를 닮은 것도 같다. 아니 선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리봉을 내려서면 산길은 고와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완만해서 걷기에 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바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듬성듬성 놓여있어서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산행 중에 만난 노송(老松)의 자태가 자못 빼어나다. 나무 옆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뭔가 사연이라도 있음직한데 글씨가 지워진 탓에 알 수는 없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글에서 발견한 글을 옮겨본다. 안내판에 적혀있었다는 '정병산 지킴솔'에 관한 내용이다. ‘정병산의 신성한 기운을 뿌리에서부터 6개의 줄기로 흡입해 정병산의 모든 물체를 보호하고 있다.’



수리봉을 내려선지 20분 남짓 지나면 길상사 갈림길(이정표 : 용추고개1.2Km, 비음산 정상 4.6Km/ 길상사1.4Km/ 정병산 정상2.3Km)’을 만나게 되고, 계속해서 10분 조금 못되게 더 걸으면 내정병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그다지 넓지 않은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 외에도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무더기와 잠시 쉬어갈 수 있게끔 평상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바위벼랑의 끄트머리에는 안전을 위해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 역시 창원시가지의 전모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분명하다. 이곳에도 글씨가 지워진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돌무더기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밑동에서 두 줄기가 자라난 소나무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는 안내판이다. 부부(夫婦)간의 금슬(琴瑟)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일심동체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내정병봉에서 내려서면 잠시 후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에서 길상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고(이정표 : 용추고개0.8Km, 비음산 정상 4.2Km/ 길상사1.5Km/ 정병산2.6Km), 이어서 잠시 후에는 우곡사 갈림길(이정표 : 용추고개0.5Km, 비음산 정상 3.9Km/ 길상사1.6Km/ 우곡사0.7Km/ 정병산2.9Km)을 만난다.




얼마쯤 걸었을까. 아마 내정병봉에서 20분 남짓 걸었을 게다. 또 다른 우곡사갈림길’(이정표 : 비음산 정상3.1Km/ 우곡사0.7Km/ 용추70.5Km/ 용추고개0.3Km, 정병산 정상 3.7Km)을 만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용추고개를 지나쳐버린 것이다. 어차피 비음산까지 진행할 요량이니 용추계곡으로 내려갈 일은 없다. 하지만 중요 포인트를 놓쳐버리는 우() 범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참고로 용추계곡은 전설의 현장이다. 지금의 창원 용동에 살던 어느 농부가 한여름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고 있을 때 천년 묵은 용()이 이 골짜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우곡사갈림길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8분 후에는 노티재 갈림길’(이정표 : 비음산 정상 2.8Km/ 노티재방면/ 정병산 정상 4.0Km)을 만난다. 산길은 오름짓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사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힘들이지 않고도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노티재갈림길을 지나서도 산길은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부담이 없을 정도의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비음산 정상을 1.9Km 남겨 놓은 지점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길가에 돌맹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진달래나무들의 개체수도 부척 늘어난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성터의 흔적이 확연해진다. 진례산성(進禮山城 : 경남기념물 제128)을 만난 것이다. 4km 길이의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石築山城)인 진례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2 ‘김해군도호부 고적조進禮城 佐府西 三十五里 有古址 新羅以金仁匡爲 進禮城諸軍事(진례성 좌부서 35리 유고지 신라이김인광위 진례성제군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성벽의 대부분은 붕괴되고 성문지(城門址)가 세 군데에서 확인되었으며,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는 동벽(東壁)의 일부 구간은 높이 157cm, 너비 77cm 정도이다.



산행 중에 만난 야생화, 난생 처음 보는 것이라서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기이하게 생긴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이후부터 산길은 산성의 성터를 따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산성의 동문(이정표 : 비음산 정상0.6Km/ 용추계곡 입구3.2Km/ 정병산 정상6.1Km)에 이르게 된다. 노티재갈림길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진례산성에서는 세 군데의 성문지(城門址)가 발견 되었다고 했다. 이곳이 그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동문지(東門址)를 지나자 능선이 온통 진달래군락지로 변한다. 매년 진달래꽃이 연분홍색으로 물들 때면 축제가 열리는데, 그 분홍빛 꽃잔치가 볼만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던가 보다. 잠시 후 대암산갈림길’(이정표 : 비음산 정상0.4Km/ 대암산 정상2.6Km/ 정병산 정상6.3Km)을 지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 둔덕 하나를 더 넘으면 드디어 비음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내정병봉에서 1시간30, 정병산에서는 2시간20분이 걸렸다.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대암산3.0km, 진례산성 남문0.5km) 외에도 사각의 정자(亭子)를 지어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 놓았다. 옛날 창원 사파동에서 소리를 지르면 비음령을 넘어 진례면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가 날아다닌다 하여 이곳 사람들은 비음령을 날음고개라고 하였고, 비음산(飛音山)의 유래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창원시가지는 물론 진해 장복산, 마산 무학산과 마산항, 그 오른쪽의 천주산, 용지봉, 작대산, 무룡산, 구룡산, 정병산, 백월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음산에서 대암산까지 가는 것을 그만두고 하산을 시작한다. 사파동(창원시 성산구) 방향이다. 대암산까지 종주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집사람의 체력을 생각해서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녀가 뜯어 올 봄나물을 기대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집사람이 출발시간까지의 남은 자투리 시간을 그냥 흘러버리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이제 막 올라온 쑥과 민들레 등 봄나물을 꽤나 많이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는 봄내음이 그득한 아침상을 일주일 내내 마주할 수 있었다.


산행날머리는 사파중학교(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사파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래도 아까 정병봉으로 오르던 때 보다는 낫지 않나?’ 되물어오는 진수선배의 말마따나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경사는 훨씬 더 가파르지만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면서 아래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래로 내려설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20분 남짓 내려서면 숲속 나들이길’(이정표 : 창원 FC입구 0.9Km/ 용추53.8Km/ 토곡쉼터 위 사거리 0.6Km/ 비음산 정상 0.6km)을 만나게 되고, 나들이길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15분 후 25번 국도, 그리고 잠시 후 창원축구센터 앞을 지나 사파동성아파트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20분이 걸린 셈이다.


영취산(靈鷲山, 681.5m)-병봉(꼬깔봉, 673m)

 

여행일 : ‘16. 2. 20()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영산면과 계성면, 그리고 밀양시 무안면의 경계

산행코스 : 보덕사입구보덕사신선봉(631m)영축산성영취산병봉(꼬깔봉)송이움막계곡내촌부락구계리마을회관(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창녕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가지를 떠올린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생태계의 보고라는 우포 늪부곡 하와이~라는 가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부곡온천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만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화왕산을 하나 더 덧붙일 것이고 말이다. 그만큼 이 세 가지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명소(名所)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산면의 진산(鎭山)인 영취산이 아닐까 싶다. 주변이 온통 둥근 육산(肉山) 일색인 지역에서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아름다운 바위산으로 그 어디에 내놔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난 산세를 지녔기 때문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들로 이루어진 근육질의 암릉을 오르내릴 때 느껴지는 짜릿한 손맛이 일품이고, 거기다 바위산의 특징대로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을 실컷 즐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내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지도 않으니 그저 스릴(thrill)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한마디로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은 산이다. 참고로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다는 인도의 영취산에서 따다 붙인 이름이다. 대개 영취산은 '천축(인도)의 산'이라는 뜻에서 불교식으로 '영축산'으로 혼용해 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산에 있는 산성(山城)의 이름은 영축산성으로 불린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 25천 분의 1 지도는 이 산을 한자 '영취산(靈鷲山)'으로 적었다. 이 글에서 영취산으로 쓰고 있는 이유이다.


 

산행들머리는 보덕사입구 삼거리(창녕군 영산면 성내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산 I.C에서 내려와 영산IC사거리에서 영산면사무소 쪽으로 좌회전한다. 5분쯤 달려 영산중학교(영산파출소) 앞에서 우회전하면 잠시 후 보덕사 입구 삼거리가 나온다. 입구에 보덕사 이정표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덕사 앞에 주차장이 있으나 승용차만 주차가 가능하니 참고한다. 그나저나 들머리인 성내마을은 영산현(靈山縣)의 관아(官衙)가 있던 성()의 안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객사터와 종리원터, 동헌터, 호방터, 향청터 등이 남아있다고 한다.




보덕사 방향의 도로(삼시랑길)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 후 달나라어린이집과 절간이라기보다는 여염집에 더 가까워 보이는 사찰(寺刹) ‘영축사를 지난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상부가 바위로 이루어진 산 하나가 나타난다. 산행안내도에는 영축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위치나 생김새로 보아 신선봉이 아닐까 싶다. 진짜 영축산(영취산)은 지도에 영축산 제1으로 표기된 지점일 테고 말이다.



곧이어 향교 가는 길을 오른편으로 갈려 보내고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저만큼에 보덕사가 나타난다. 산길은 보덕사 바로 앞에서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등산로 입구에 서있는 가로등의 하단에 지도를 겸한 이정표가 매달려 있다. 그런데 산의 이름을 영축산으로 표기해 놓았다. 인근 주민들은 이 산을 영축산이라고 불러왔다고 들었는데 지자체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이를 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영취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고할 일이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보덕사가 내다보인다. 대웅전과 산신각만이 전통양식으로 지어졌을 뿐, 요사채로 보이는 나머지 건물들은 허름한 여염집 그대로인 자그마한 절간이다. 절은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라는 것만 나타날 뿐 누가 언제 어떤 사연을 갖고 지었는지는 검색이 불가능했다. 절에 들어가 보는 것은 사양하고 그냥 산으로 들어선 이유이다. 그건 그렇고 보국사 뒤편에서 신선봉으로 곧장 오르는 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할 일이다.



잠시 후 산길은 절에서 빠져나오는 길과 만나(이정표 : 영축산 2.4Km)면서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꺾는다. 영취산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곧바로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고 나서야 위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가에 10여년쯤 자란 소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다는 점이다. 가프기 짝이 없는 숨결 속에 실려 오는 솔향이 심신을 맑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영축산이 몇 번의 산불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는데 그 후 조림한 것들인 모양이다.



산길을 정비하면서 나온 돌들을 쌓아 둔 무더기 외에는 아무런 볼 것도 없다, 그저 코가 땅에 닿도록 상체를 숙이고 오를 뿐이다. 30분 후 능선에 올라서게 되면서 산길은 가팔랐던 그 기세를 잠시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잠시 후 전망이 괜찮은 바위 하나를 만나게 해준다. 영산면 일원이 잘 조망되는 곳이지만 연무(煙霧)로 인해 어디가 어디인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서두르지 않는다. 길고 완만한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이다. 그렇게 두어 번을 더 오르내리면 10분 후에는 바위지대가 나타나면서 곳곳에서 시야(視野)가 활짝 열린다. 발아래에 영산면 일대가 펼쳐지지만 연무 때문에 또렷하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낙동강의 유장한 물줄기를 보는 것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전망대를 지나면 또 다시 경사가 완만한 솔숲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어쩌다 조망이 터지는 걸 보면 가끔은 바위지대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 놓칠 뻔 했다. 아까 지나왔던 전망대에서부터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는 왼편의 조망까지도 터진다는 것을 말이다. 화왕산과 관룡산을 위시해서 석대산, 구현산, 구룡산 등일 것이다. 조망을 즐기면서 10분 조금 못되게 걷다보면 신선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 만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신선봉엔 정상표지석 대신 신선봉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영취산 1.2Km/ 보덕사 1.2Km)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길손들은 누가 주인이건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저 시원스럽게 터지는 조망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만큼 시야(視野)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터진다는 얘기이다. 아까부터 나타나던 영산면 일대는 물론이고, 영취산과 병봉이 그 자태를 드러내면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들을 그 속살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그 뒤에는 구룡산에서 관룡산을 거쳐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화왕지맥과 열왕산에서 종암산을 거쳐 덕암산으로 이어지는 열왕지맥, 함박산, 쌍교산, 영산면 등이 조망되는데, 아쉽게도 또렷하지는 않다.




영취산으로 향한다. 잠시 급하게 내려섰던 산길은 얼마 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옹골찬 암릉으로 이루어진 영취산과 647m봉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한 구간이다.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의외로 밋밋한 흙길이다. 그러다보니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억새밭을 지나기도 한다. 바위산에서 만난 색다른 낭만이 아닐까 싶다.



영취산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신선봉, 바위지대가 보이기도 하지만 육산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내려오는 길 대부분이 흙길이었던가 보다. 참 잊을 뻔 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여러 곳에서 자갈길 위를 걷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냥 자갈길이 아니라 영축산성의 흔적이다. 이곳 영취산은 가뜩이나 양옆이 비탈진데다 곳곳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바위벽들로 가로막혀 있어서 산성(山城)이 들어앉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현명한 선조들이 이를 놓쳤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다 영산평야를 지키기 위한 산성을 쌓았고, 그 이름을 영축산성이라 하였다.



신선봉에서 내려선지 15분쯤 되면 갈림길(이정표 : 영취산 0.7Km/ 영산향교 1.5Km/ 신선봉 0.5Km)이 나타난다. 오른편은 영산향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삼거리를 지나면 잠시 후 왼편에 어른의 허리 높이로 반듯하게 쌓아올린 담벼락이 나타난다. 지도에 나와 있는 영축산성(靈鷲山城)일 것이다. 아까 신선봉을 지나면서부터 심심찮게 돌무더기 위를 걸었는데, 그 연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영축산성(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85)은 영축산 능선의 병풍처럼 생긴 자연 암반(巖盤)을 북벽(北壁)으로 하고, 서남쪽의 계곡을 성안으로 하는 포곡식(包谷式 : 성의 내부에 계곡을 포함) 산성이다. 남쪽의 좁은 계곡을 성문으로 삼고, 좌우의 낮은 지역에는 자연석으로 성벽을 쌓았으며, 높은 암벽을 최대한 활용했다. 성의 둘레는 1,500m이고, 높이는 3m, 폭은 4.5m 정도이다. 북쪽과 동쪽은 현재까지 비교적 완전한 편이나, 서쪽은 자연적인 풍화로 붕괴되어 있다. 신라 지마왕(祗摩王, 112-134) 때 신라와 가야의 국경에서 전쟁이 자주 일어나자 가야가 신라의 침범을 막으려고 축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전해진다. 영산군지에는 현감 김봉수(金鳳洙)1875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주변에 영산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던 성으로 추정된다.



산성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이 정도를 갖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까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손끝이 아닌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반쪽짜리 바윗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작은 봉우리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밧줄에 의지해야만 하는 구간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윗길 주변의 기암괴석들은 하나 같이 기이한 형상들을 하고 있다. 짜릿한 스릴과 함께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순간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근육질의 암릉은 가히 수석(壽石)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능선에 가득한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은 시종일관 장관을 이룬다. 창녕의 명산이라는 화왕산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산세다. 아니 오밀조밀한 맛은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숨겨져 왔던 보석 같은 산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647m봉은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한다. 647m봉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바위봉우리이다. 하지만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회를 하는 이유는 집사람 때문이다. 코스의 상태도 알지 못하는 초행의 위험코스를 집사람까지 끌고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바윗길의 가장 큰 특성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전문산악인들에게도 초행길은 언제나 주의가 요구된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금기사항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우회를 했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길이 슬랩(slab)의 가장자리 근처로 나있는가 하면 마지막 구간에서는 밧줄에 의지해야만 아래로 내려설 수가 있다. 하지만 영취산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위험한 줄도 모르고 산행을 이어간다.



647m봉을 우회하다가 바라본 영취산, 정상의 오른편에 보이는 바위가 독수리의 부리를 쏙 빼다 닮았다.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다는 인도의 영취산에서 따다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영취산의 가운데 글자를 수리 취()자로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신령스러운 수리를 닮은 산으로 볼 때에는 저 바위의 생김새와 연관을 시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위태롭게 내려서면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역시 바윗길이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바위틈마다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이게 바윗길인지 아니면 보통의 흙길인지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저 오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얘기이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또 다시 시원스런 조망이 터진다. 이따가 오르게 될 병봉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산들은 또 다른 영취산(738.8m)과 화왕산, 관룡산일 것이다.



영취산 정상에 가까워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꼬깔봉으로 가는 길, 영취산 정상은 곧장 능선을 치고 올라야 한다. 정상으로 방향을 잡으면 잠시 후 커다란 바위들이 숲을 이루는 곳에 이른다. 바위 아래에 향로가 놓여 있는 걸로 보아 뭔가 영험(靈驗)이 깃든 바위들인 모양이다.



막바지 바윗길은 두 손과 발을 사용해야만 위로 오를 수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서너 평쯤 되는 정상에는 말뚝모양으로 생긴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목을 잘라버렸는지 자잘한 돌무더기에 의지해서 비스듬히 서있다. 그 외에 삼각점(창원 302, 2002 재설) 하나뿐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신선봉에서 영취산 정상까지는 55분이 걸렸다. 참고로 창녕에는 영취산이라는 이름을 쓰는 산이 두 개나 있다. 신령 영() 자를 쓰는 이곳 외에도 고개 영() 자를 쓰는 영취산(嶺鷲山·739.7m)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후자는 큰고개를 넘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곳과는 달리 순수한 육산(肉山)이라는 게 특징이다.



영취의 산정은 좁다. 하지만 품은 경관만은 어느 유명산 못지않게 넉넉하고 수려하다. 북쪽에는 병봉은 물론이고 화왕산과 관룡산이 나타난다. 그 앞 능선으로 석대산과 구현산이 보인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함박산과 종암산, 덕암산이 줄을 지어 다가온다. 합천 황매산, 밀양 재약산, 천황산의 마루금도 아련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고깔봉으로 향한다. 조심스레 바윗길을 타고 내려서면 잠시 후 사거리(이정표 : 병봉(꼬깔봉 1.6Km/ 구봉사 0.4Km/ 신선봉/ 영취산 정상)를 만난다. 오른편은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났던 갈림길로 연결되고, 왼편으로 내려가면 구봉사가 나온다. 갈림길 근처에서 잠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솔밭과 암릉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구봉사가 발아래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마치 제비집이라도 되는 양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절집이 붙어 있는 모양새이다.




4분 후 이번에는 삼거리(이정표 : 병봉 1.5Km, 구계임도 2.4Km/ 구봉사, 충효사 0.6Km/ 영축산 0.2km, 보덕사 2.4Km)를 만난다. 구봉사로 연결되는 또 다른 갈림길로 보면 된다.



갈림길 근처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보인다. 함께 산행을 하던 일행이 알바위라고 알려준다. 그의 말대로 알을 빼다 닮았다. 그것도 가운데가 반듯하게 잘라진 알이다. 바위 위에 난간까지 설치되어 있기에 올라가 본다. 하지만 나타나는 풍경은 보잘 것이 없다.



3분 후 사리마을 갈림길’(이정표 : 고깔봉/ 사리마을 1.8Km)에 이어 5분 후에는 청련사 갈림길’(이정표 : 병봉(꼬깔봉)/ 청련사 1.6Km/ 정상 0.2Km)을 만난다. 그런데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좀 이상하다. ‘구봉사 갈림길에서 한참을 더 걸어왔는데도 영취산 정상까지의 거리표시는 여전이 0.2Km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정표가 고쳐져야 할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두서없이 사용하고 있는 산의 이름(영축산과 영취산) 또한 하나로 통일시켜야 할 것이다. 청련사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좌측 사면(斜面) 길과 오르막길이 연이어 나타난다. 영취산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여러 곳에서 갈림길을 만났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방향을 틀기도 했다. 길 찾기가 다소 헷갈릴 수도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삿갓을 닮은 꼬갈봉을 목표로 삼고 진행하기만 하면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을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느 지점, 길 없음팻말이 세워진 곳에 이르면 등산로는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간간히 바윗길도 나타나는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하지만 조망이 잘 트인다는 장점도 있다. 진행방향에 우뚝 솟아있는 고깔봉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알프스(Alps)의 마터호른(Matterhorn)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뾰쪽하게 솟아오른 게 이따가 올라갈 때 만만찮게 힘들 것 같다.




안부까지 떨어졌던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만만찮게 힘든 오르막길이다. 처음에는 흙길로 시작된 산길이 바위의 밀도(密度)를 점차 늘려가다가 끝내는 온전한 바윗길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밧줄을 붙잡지 않고는 위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경사까지 가파르다. 그나마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놓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덕분에 가파르고 험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바윗길을 오른다. 로프로 된 난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는지 또 다른 로프를 길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하면 로프를 붙잡지 않고도 바위를 오르내릴 수가 있을 정도로 바윗길은 안전하다. 거기다 바위들이 미끄럽지도 않다. 눈요기를 즐기면서 쉬엄쉬엄 올라도 된다는 얘기이다. 등산로 곳곳에서 치솟은 기암괴석들의 오묘한 자태와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을 눈에 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바위로 이루어진 병봉(고깔봉) 정상도 신선봉과 마찬가지로 정상표지석은 없다. 병봉(고깔봉)이란 이름표를 단 이정표(구계임도 0.9km/ 영취산 1.6km)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병봉은 고깔봉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멀리서 병봉을 바라볼 때 세모 난 모양이 고깔을 빼다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영취산 정상에서 병봉까지는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바위로 이루어진 고깔봉의 정상도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이제껏 보아오던 풍경들이 또 다시 펼쳐진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번에는 병봉 대신에 영취산 정상이 조망 된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굵직한 노송(老松)들이 꽉 들어찬 하산 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황톳길에 솔가리(소나무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보니 양탄자가 따로 없다. 거기다 경사까지도 없다보니 이건 숫제 산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짙은 솔향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그 내음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듬뿍 들어있을 것이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결국 웰빙(well-being)산행, 아니 힐링(Healing)산행으로 마무리를 짓는 셈이다. 걷는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 그리고 심호흡에 맞춰 발걸음을 내딛는다. 산행에서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하산을 시작한지 15분쯤 되면 쇠파이프를 규칙 있게 엮어놓은 시설물이 하나 나타난다. 원두막을 닮았는데 지붕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의 특산품 중 하나가 송이버섯이라고 들었는데 그 생산지가 이 부근인 모양이다. 그리고 저 시설물은 버섯 채취시기에 심마니들이 머무는 움막일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송이움막 근처의 나무들은 그다지 굵지 않은 소나무들뿐이다. 군청에서 세워놓은 말뚝에 수종을 잣나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조림지(造林地)가 아닐까 싶다. 구계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으로부터 몇 년 전에 산불이 났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로는 송이채취를 하는 사람들끼리 다투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질러버린 것 같다고 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아름다운 산하를 망가뜨려버린 꼴이다.



송이움막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게 되고, 능선은 오른편으로 반듯한 길 하나를 나뉘어 보낸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로 잡고 있는 구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난 길이 훨씬 더 또렷하니 주의한다. 이곳에서 탈출하는 사람들보다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른편으로 내려선다. 제법 경사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굵은 밧줄이 길바닥에 깔려있다. 하지만 위험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니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산행대장 말이 맞긴 맞네요.’ 집사람의 눈에도 그런 풍경이 생뚱맞게 보였던 모양이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하산길이 조금 위험할 것이라고 했던 산행대장의 말까지 떠올리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그 말에 겁을 먹은 낭군이 고깔봉에서 마신 정상주를 딱 두 잔으로 끝내버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산길은 계곡을 따라 나있다. 하지만 돌이나 자갈은 보이지 않는 계곡이다. 물도 흐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양쪽이 산자락으로 이루어져 있어 계곡으로 보일 따름이다. 그런 길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산길은 임도(林道)처럼 넓고 반반해진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외딴 민가와 마을에서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소류지가 보이더니 잠시 후에는 내촌마을에 내려선다. 갈림길로 내려선지 25분 만이다. 마을에 들어선 집들 중에 제각(祭閣)으로 보이는 건물이 가장 큰 것을 보면 내촌마을은 아마 하양 허씨(河陽 許氏)들의 세거지(世居址)인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구계리 마을회관

내촌마을은 대형버스의 진입이 어렵다. 때문에 산행이 종료되는 구계리마을회관까지 가려면 10분 가까이를 더 걸어야만 한다. 자칫 짜증날 수도 있는 거리이지만 심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진행방향에 우뚝 솟아있는 영취산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약간의 발품만 팔면 보림사지부도(寶林寺址浮屠 :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327)를 둘러볼 수도 있다. 운이라도 좋을 경우 보정사 스님들의 불무도(佛武道) 수련현장이라도 엿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보림사지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마을회관이 나오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15분이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15분을 쉬었으니 정확히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이곳 구계리는 구계, 보름, 보림 등 아홉 개의 하천과 골짜기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곡에는 보림사 등 아홉 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어 보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구계리로 변경하였으며, 삼재구난(三災九難)이 없는 곳이라 하여 6.25 때는 피난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천마산(天馬山, 372m)-마금산(馬金山, 279m)-옥녀봉(玉女峰, 315m)

 

여행일 : ‘16. 1. 16()

소재지 :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산행코스 : 바깥신천마을전망대천마산구름다리마금산물레재옥녀봉창북중학교온천지구주차장(산행시간 : 2시간 35)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세 산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육산(肉山)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옥녀봉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산들은 정상어림에 커다란 바위들을 품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덕분에 세 산의 정상, 특히 바위로 이루어진 마금산 정상 부근에서는 산을 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뿐더러 시야까지도 잘 트인다. 낙동강 주변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거기다 산행을 끝낸 뒤에는 보양온천으로 소문난 마금산온천에서 산행의 피로까지 싹 씻어버릴 수 있다. 느긋하게 3시간 정도를 걸은 후에 질 좋은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쯤은 꼭 찾아볼만한 산이라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는 바깥신천마을(의창구 북면 하천리)

남해고속도로 북창원 I.C에서 내려와 우회전, 곧이어 화천교차로(의창군 북면 화천리)에서 좌회전하여 79번 국도를 탄다. 5가량 이동 후 마산삼거리(북면 마산리)에서 좌회전하여 이번에는 60번 지방도를 탄다. 곧이어 나타나는 북면사무소 앞 사거리에서 이번에는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7분쯤 후 산행들머리인 바깥신천에 닿는다. 도로가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이니 참조한다.




차에서 내리면 낙동강변이다. 둑에 서면 강의 풍경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4대강 사업의 흔적이 역력한 강변은 공원(公園)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다. 시간까지 쪼개어가며 들어가 볼 정도는 아니지만 잠깐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왕에 걸음을 멈춘 김에 마금산과 천마산의 등산안내도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말이다. 특히 이 지방 특산물이라고 소개한 단감을 눈여겨 봐두자. 그리고 염두(念頭)에 새겨두었다가 산행을 마칠 무렵에 만나게 되는 단감단지에서 다시 떠올려 보자.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왼편 민가(民家)의 담벼락을 따라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낙동강 둑에 세워진 이정표(천마산 1.2Km)가 방향을 가리켜주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이정표(천마산 1.2Km, 사거정고개 구름다리 2.8Km)를 만난다. 이어서 산죽(山竹)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이 나타난다. 의외로 또렷하게 나있으니 헷갈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산행은 시작부터 가파른 편이다. 천마산의 높이가 채 400m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의외이다. 하지만 산행들머리의 해발고도(海拔高度)가 거의 제로(zero)에 가깝고, 거기다 들머리에서 천마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겨우 1.2Km에 불과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짧은 거리에서 고도를 400m까지 높이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등산로의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파른 곳에는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놓아 오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5분쯤 되었을까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낙동강이 나타나지만 희미한 윤곽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미세먼지를 주의하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는 모양이다. 입으로 호흡을 하며 산을 오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폐()가 공기청정기 노릇까지 해주어야만 하니까 말이다.



다시 5분쯤 더 오르면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록 거대하지는 않지만 산길이 곧장 질러가지를 못하고 우회(迂廻)를 해야만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바위들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쯤 되었을까 아래로 비스듬하게 뚫린 바위굴이 하나 나타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것으로 보아, 옛 이야기 하나쯤 갖고 있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겠다. 아니면 이 산에 살았다는 천마와 관련된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라도 하나 만들어볼 일이고 말이다.



바위굴에서 5분쯤 더 오르면 멋진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멋스럽게 휘어진 굵은 솔가지들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어 그 풍경만으로도 훌륭한 눈요깃감이 되는 전망대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신천리 들녘이 발아래에 펼쳐지고 그 너머에는 창원의 또 다른 명산인 백월산이 또렷하다. 시선을 왼편으로 돌리면 1300리를 흘러온 낙동강의 유장한 물줄기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건너편에서 겹쳐가며 나타나야 할 창녕 부곡면과 밀양 수산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세먼지 탓이다. 그러다보니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화악산과 남산의 산군(山群)들을 보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아무래도 오늘 오르는 산들이 지닌 장점 중의 하나인 조망(眺望)에 대한 기대는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잠깐이면 된다. 다시 시작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5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천마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만이다. 참고로 천마산이란 이름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마가 이산에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돌탑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마금산 2.2Km/ 바깥신천 1.2Km) 외에도 벤치를 놓아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거기다 천마탑을 세운 취지를 적은 안내판을 세우는 등 등산로 정비에 신경을 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신경을 조금 더 썼더라면 하는 아쉬운 풍경들도 눈에 띈다. 돌탑(365m)과 정상표지석(370m)에 적힌 천마산의 높이가 각기 다른 것이다. 이 마저도 25000분의1 지형도에 표기된 높이(372m)와 다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벌로 보이는 낡은(쇠로 만들어진) 이정표도 치웠으면 좋겠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잡목(雜木)들로 인해 아랫도리가 약간 잘라나가는 방향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시야가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제외하고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없다. 아직까지도 걷히지 않고 있는 미세먼지 탓이다. 다른 이들의 글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낙동강과 은빛 모래톱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창녕 영취산과 병봉, 화왕산, 청도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그림이 한 폭의 산수화나 다름없다.’



정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바위 아래에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정상까지 올라온 것만 가지고는 운동량이 부족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창원시에서 조성했다는 둘레길 사업의 일환일 것이고 말이다. 얼마 전 기존 등산로를 이용해 등산로를 조성한다는 창원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이 둘레길은 마금산온천을 출발해서 마금산 정상과 구름다리, 그리고 천마산 정상을 거쳐 다시 마금산 온천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총 길이는 3.5라고 했다.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마금산은 올라왔던 곳의 반대방향이다. 산길은 대체로 가파른 편이다. 10분쯤 후 온천장갈림길’(이정표 : 마금산1.5Km/ 온천장0.8Km/ 천마산0.7Km)을 만나나 개의치 않고 마금산 방향으로 직진한다.




이번에는 낭떠러지까지 끼어있는 산길을 다시 한 번 가파르게 내려선다. 바위벼랑으로 난 산길은 바위사이를 요리조리 꿰뚫으며 잘도 내려간다. 덕분에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바윗길을 내려서면 멋진 바위 전망대를 만난다. 사기정고개의 주황색 온천구름다리와 그 너머로 가야 할 마금산과 옥녀봉이 겹쳐 보인다. 그 뒤로 아스라이 나타나는 산봉우리는 아마 무릉산일 것이다.




전망대를 지난 마루금은 급전직하(急轉直下)한다. 거대한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나무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계단이 놓이기 전에는 꽤나 난코스였을 것 같다.




바위지대를 지난 능선은 그 가팔랐던 기세(氣勢)를 한꺼번에 누그러뜨린다. 이어지는 산길은 솔숲 사이를 꿰뚫으며 나있다. 한마디로 멋진 산책로라 할 수 있다. 솔향 짙은 산바람을 코끝 아래로 흘리며 걷는 산길은 즐겁기까지 하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백용사갈림길’(이정표 : 백용사150m)을 그냥 지나치면 8~9분 후에는 저수조(貯水槽)를 지나 사거정고개에 이르게 된다. 사거정고개의 표고가 90m이니 제법 많이 내려선 셈이다.




사거정고개에는 현수형(懸垂型)의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마금산온천 구름다리로도 불리는 이 주황색 다리는 도로 위를 가로질러 70m(1.2m, 높이 22m)나 이어진다. 덕분에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게 스릴 만점이다. 참고로 이 다리는 통과하중이 340/로 최대 5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시공됐으며, 다리 양쪽에는 데크로 나무계단을 만들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다리 위를 지나다보면 마금산온천단지가 내려다보이고, 400m가 넘는 백월산의 당당한 자태가 눈앞에 나타난다. 저 아래에 보이는 마금산온천은 역사가 제법 깊다. 그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온천은 창원도호부에서 북쪽으로 18리 초미흘(草未訖)에 있다. 욕칸은 3칸이고 주사가 3칸이다.’라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실려 있다. ‘동국여지지동국여지승람에도 온정이란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조선 중기에는 지역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친다하여 온정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등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온천수는 지하 300m에서 분출되는 약알칼리성 식염온천으로 수온이 57정도다. 20여 가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특히 철, 망간, 나트륨, 라듐 등을 다량 함유해 신경통, 요통, 근육통 등 통증 완화와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토피 피부염의 염증 완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토피에도 효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에 마금산정상(0.7Km)’ 방향만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른편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다.



산길은 갈수록 가팔라진다. 그러다가 끝내는 엄청나게 가팔라져버린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가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정 힘이 들 경우 로프를 붙잡고 오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거기다 거리까지 버거울 정도로 길지는 않기 때문에 잠깐만 고생하면 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5분 남짓 오르면 바윗길이 시작되고, 곧이어 오른편에 멋진 바위전망대 하나가 나타난다. 바위 위에 서면 조금 전에 올랐던 천마산과 낙동강이 흐르는 하천리 일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전망대를 지나면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이어 팔각정이 있는 마금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옥녀봉1.1Km/ 온천초등학교0.9Km, 북면우체국 0.9Km/ 천마산2.2Km)로 나뉜다. 한시라도 빨리 온천욕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바위로 이루어진 마금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두 개나 세워져 있다. 마금산의 원래 이름은 마고산(摩姑山)이었다고 한다. 마고산이라는 이름은 마고할미가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즉 마고할미가 이 산에서 살았다는 얘기이다. 한편 시어머니인 마고할미(마금산)와 며느리인 옥녀(옥녀봉)가 서로 마주보면서 사이좋게 물레질을 했는데, 이때 두 고부(姑婦)가 함께 쓰던 물레를 놓았던 자리가 물레재라고 한다. 오랫동안 마고산으로 불려오다가 온천이 발견되면서 인근 천마산의 ''와 마고산의 온천수를 '()'으로 여겨 마금산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온천이 개발되면서 산의 형세가 말을 닮았다고 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 불렀다고 하는 설()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옛 지도(地圖)해동지도(海東地圖 : 보물 제1591)’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보물 제1581)’백월산이라는 지명과 함께 철마봉(鐵馬峯)이라는 이름이 나타나는데 이곳 마금산을 이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정상에 서면 옥녀봉과 천마산이 양쪽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천마산 밑자락에 자리 잡은 온천지구가 또렷하고, 그 위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 백용사의 전각(殿閣)들일 것이다. 그리고 옥녀봉 방향의 풍경도 멋지다. 옥녀봉 뒤에 겹쳐져 있는 산들은 아마 무릉산과 작대산, 천주산일 것이다.



옥녀봉으로 향한다. 아까 정상으로 올라올 때 지나왔던 데크계단으로 되돌아나간 다음 이번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잠시 후 길게 놓인 나무계단을 가파르게 내려선다. 진행방향에 옥녀봉이 나타나지만 조금 전 정상에서 보았던 것보다 못하니 그냥 지나친다.



계단을 내려서면 산길은 완만하게 변한다. 그리고 10분 남짓이면 옥녀봉과의 사이에 있는 물레재(이정표 : 옥녀봉0.6Km/ 신리마을0.8Km/ 마금산0.5Km)에 내려서게 된다. 아까 마금산에 오를 때 힘들게 올라왔던 것을 떠올리며 만만찮게 떨어지려니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내려왔다. 물레재의 높이가 170m나 되는 것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길을 가다보면 명심보감(明心寶鑑)이나 논어(論語) 등의 글귀를 적어 놓은 글판들이 가끔 눈에 띈다. 이 또한 둘레길 조성사업의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다. 동 조성사업이 기존 등산로를 친환경 등산로로 정비하고, 구름다리와 전망대, 쉼터, 벤치 등 각종 편의시설들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길은 물레재를 지나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경사(傾斜)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잠깐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15분 후에는 옥녀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전설에서 마금산의 주인인 마고할미의 며느리인 옥녀가 살았다는 봉우리이다.




옥녀봉 정상은 산불감시초소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정상표지석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저 정상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정표(현위치 옥녀봉정상 : 창북중 옆1.4Km/ 창북중 뒤1.0Km/ 마금산1.1Km)가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초소를 지키던 아저씨가 이곳이 옥녀봉 정상이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셔터까지 눌러주겠다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말이다.



옥녀봉 정상에서 다시 한 번 시원스런 조망이 터진다. 나타나는 풍경은 마금산 정상에서 보았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옥녀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곧바로 창북중학교로 내려가는 길, 우리는 능선을 따르기로 한다. 진행방향으로 직진해서 크게 돌아 내려가는 방법이다. 초소를 지나서 20m쯤 더 걸으면 능선분기점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창북중학교1.4Km/ 상천리1.5Km/ 신리마을0.9Km, 마금산 1.1Km)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왼편 지능선을 따른다. 곧장 나아갈 경우 상천리에 이르게 되니 주의한다.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꽤 길게 이어진다. 바닥에 작은 바위들이 깔려있지만 내려서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다. 능선을 빼꼭하게 채운 소나무들이 떨어뜨린 솔가리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10분쯤 내려섰을까 숲 사이로 시야가 열린다. 하지만 펼쳐지는 풍경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산자락을 온통 헤집어 놓고 있는 채석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가면 10분 후에는 감나무단지에 이르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과수원인데 그 범위가 너무 넓기에 단지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문득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안내판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안내판은 이곳 창원을 우리나라 최초의 단감 시배지라고 했다. 100년 이상 되는 고령(高齡)의 나무들이 많은 단감의 본고장이라는 것이다.



이곳 창원은 기후 및 토양조건이 감나무의 생육조건에 적당한데다, 재배기술 또한 우수하단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 최고의 품질 좋은 단감이 생산되고 있단다. 마침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들이 꽤나 많다. 품질 좋다는 단감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따먹어 본다. 달다. 아니 너무 달다. 하지만 홍시를 기대했던 내 입맛은 또 다시 들어오는 것을 사양한다. 단감은 역시 싱싱할 때가 제 맛인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마금산온천지구주차장

감나무단지를 지나면 창북중학교이다. 창북중학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동네 안길을 따른다. 그리고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온천지구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이제 물 좋기로 소문난 온천에서 피로를 씻을 일만 남았다. 5천원의 입욕비(入浴費)는 감안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 산행은 총 2시간45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2시간35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우리나라에는 450여 곳의 온천이 있다. 온천은 이것저것 이로운 점도 많지만, 가장 뛰어난 점은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피로와 스트레스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온천들 가운데 보양온천이란 것이 있다. 수온 35이상 수질 좋은 온천 가운데 운동욕장, 수영장, 노천탕 등 보양온천 시설을 갖추고 치료와 요양, 휴양이 복합적으로 가능한 온천 시설을 말한다. 그런 보양온천(전국 8)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금산온천단지의 마금산원탕이란다. 경남지역에서는 유일한 보양온천이란다. 하지만 우린 다른 온천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것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유명세를 찾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석대산(564.4m)-구현산(鳩峴山, 581.4m)-쌍교산(雙轎山, 469m)

 

산행일 : ‘15. 12. 26()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과 장마면, 계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여초주유소법성불원쌍교산전망바위구현산전망봉석대산여초저수지갈림길신당리마을회관(산행시간 : 3시간 4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는 말이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살펴보고 일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이런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산이 바로 쌍교산과 구현산, 그리고 석대산이다. 산을 귀히 여기는 지자체에 있었더라면 대우를 받고 남았을 터인데도 등산로 관리가 허술한 창녕군에 자리 잡은 탓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산은 웅장한 산세(山勢)를 자랑하지는 못한다. 또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산 또한 아니다. 하지만 산길은 걷기에 좋을 만큼 순하고, 특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바위지대에서의 조망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만하면 다른 산들에 뒤질 게 없을 거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 개의 산 모두 정상석은 물론이고 산의 어디에서도 이정표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한번쯤은 꼭 찾아봐도 좋을 산이건만 선뜻 찾아가보라고 권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산행들머리는 현대오일뱅크 여초주유소(창녕군 창녕읍 여초리)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 창녕 I.C에서 내려와 좌회전하여 20번 국도를 타고 창녕읍내 초입의 오리정사거리(창녕읍 교리)로 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080번 지방도를 따른다. 읍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공설운동장삼거리(창녕읍 퇴천리)’에서 5번 국도로 올라가 마산방면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만수판휴게소(창녕읍 여초리)가 나온다. 휴게소 방향으로 빠져나와 여초교차로 아래로 난 지하도(굴다리)를 통과하면 저만큼에 여초주유소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주유소 앞에서 창녕읍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법성불원앞까지 도로가 나있으나 협소해서 관광버스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도로 왼편에 5번 국도가 나있으니 참조한다.

 

 

오른편에 영광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이 보인다. 그 너머에 보이는 산이 잠시 후에 오르게 될 쌍교산이다. 몇 걸음 더 걸으면 홍련화보살이라는 간판을 단 또 다른 사찰이 나타난다. 여기에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법성불원까지 줄줄이 사찰이 늘어서 있는 걸 보면 인근 주민들은 불심(佛心)이 깊은가 보다. 아니면 무속신앙(巫俗信仰)에 관심이 많던가 말이다. 여염집을 개조한 것처럼 보이는 절집의 외형이나 간판에서 불심보다는 다른 뭔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3~4분쯤 걷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들머리 양쪽에 법성불원의 입구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표지석이 마치 수문장(守門將)처럼 버티고 서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법성불원이 나타난다. 일반 여염집을 법당(法堂)으로 개조했다. 절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조계종이나 천태종 등 주요 종단의 소속사찰에서 검색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절집 앞에서 마을 농로(農路)로 내려선다. 차량이 다닐 정도로 반듯하게 나있는 걸 보니 애초부터 농로를 타고 왔어도 되었겠다. 하지만 들머리가 어디인줄 모르니 하나마나한 얘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 법성불원 입구를 들머리로 삼는 게 편하다는 얘기이다.

 

 

농로로 내려서서 100m쯤 걸으면 왼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林道)가 보인다. 임도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임도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만 가파르다. 하지만 이런 맘씨 좋은 길은 딱 묘역(墓域)까지다. 그러고 보니 임도가 아니라 묘역을 조성하면서 낸 사도(私道)였던 모양이다.

 

 

 

묘역 두 곳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오솔길로 변한다. 경사(傾斜) 또한 가팔라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하지만 오르는 게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 이는 주변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신을 맑게 해주는 솔향은 물론이려니와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5분쯤 지나면 가파르기 짝이 없던 산길은 그 기세(氣勢)를 조금은 늦춘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작은 바위전망대에다 올려놓는다. 장마면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리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다. 짙은 연무(煙霧) 때문이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산길을 오른다. 작은 바위들이 그 밀도를 더해가더니 드디어 쌍교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분 만이다. 쌍교산은 옛날 큰 홍수가 졌을 때 산봉우리가 쌍가마 형상으로 남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하지만 이 전설(傳說)에는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홍수와 관련된 전설들은 보통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들먹인다. 봉우리의 생김새를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유독 그 봉우리만 물위로 떠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쌍교산은 인근의 산들보다 낮아도 한참이나 낮은 것이다.

 

 

잡목(雜木)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은 꽤 너른 편이다. 하지만 삼각점(청도 332) 하나만이 외로울 뿐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만일 ·라는 아호(雅號)를 사용하고 있는 최남준씨의 정상표지판마저 없었더라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뻔 했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별로다. 올라왔던 방향으로만 시야가 열릴 따름이다. 아련히 흐르는 낙동강과 창녕평야가 나타나야겠지만 연무로 인해 눈에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구현산으로 향한다. 완만(緩慢)한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그 위에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건 숫제 양탄자가 따로 없다.

 

 

고운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보면 잠시 후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산길은 바위 사이로 나있다. 하지만 앞서가던 집사람은 바위 위로 냉큼 올라서고 본다. 부쩍 손맛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바위의 위는 멋진 전망대이다. 그냥 지나쳤으면 후회했을 뻔 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들이 무성한 산줄기들이 멋지게 펼쳐진다. 아마 화왕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일 것이다. 그 왼편에 있는 창녕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오른편에서는 이따가 오르게 될 구현산과 석대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망을 실컷 즐겼으면 이젠 자리를 뜰 차례이다. 하지만 바위를 다시 내려갈 것까지는 없다. 조금 거칠기는 해도 곧바로 능선을 따라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산길도 역시 고운편이다. 그리고 간간이 나타나는 바위들이 눈요기까지 되어주는 나름대로 재미가 쏠쏠한 구간이다.

 

 

 

그러다가 15분쯤 후에는 또 다른 전망바위에 이르게 된다. 지도에 전망바위로 표기된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486m봉은 어디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바위 위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아까 보았던 왼편의 바위산들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아까보다 시야가 더 넓어졌다. 이번에는 화왕산의 주봉까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여전히 곱기만 하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여유로운 산길이 계속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6분 후 안부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20분 남짓 치고 오르면 드디어 구현산 정상이다. 구현산은 비슬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산의 생김새가 닭의 벼슬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쌍교산에서 45,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35분이 지났다.

 

 

어렵게 올라선 구현산도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가 없기는 쌍교산과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누군가가 구현산이라고 쓴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일로 치면 사설 정상석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는 정상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최남준씨의 정상표지판도 나무에 대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이곳 구현산은 화왕지맥(火旺枝脈)에 포함된 산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화왕지맥은 비슬지맥의 천왕산(619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열왕지맥의 663m봉에서 또 다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구룡산(740.7m)과 관룡산(754m), 화왕산(758m), 구현산(579m)을 품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쌍교산과 큰갓실산(122m)을 거쳐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의 낙동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 도상거리 36.8km의 산줄기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현산에서 쌍교산 대신에 석대산을 거쳐 큰갓실산(122m)으로 연결시킨다. 난 후자에 믿음이 간다. 소문난 산꾼들의 흔적이 모두 석대산으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는 조망이 터지지 않는다.

 

 

 

석대산으로 향한다. 오른편 방향이니 주의할 일이다. 왼편으로 갈 경우에는 화왕산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비닐(vinyl)끈이 매달려있다. 아까 구현산에 올라올 때부터 보였던 끈이다. 아마 이 부근이 송이버섯의 생산지(生産地)인 모양이다. 끈은 몰래 들어가지 말라는 금()줄일 것이고 말이다. 이런 금줄은 이후로도 심심찮게 보였다. 심지어는 비닐끈이 아니라 철조망을 쳐놓기까지 했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오면 양쪽으로 길의 흔적이 나있는 안부이다. 오른편은 여초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맞은편 능선으로 향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10분쯤 올랐을까 시야가 열린다. 조금 전에 올랐었던 구현산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정삼각형으로 생긴 것이 비슬산이라는 다른 이름을 낳게 한 닭의 벼슬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잠시 후 능선삼거리에 이른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석대산은 오른편 방향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왼편, 즉 삼성암 방향으로 일단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바위로 이루어진 뛰어난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조망이 터진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석대산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반대편에는 화왕산과 관룡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산줄기가 버티고 있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전망대에서 바라볼 때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깐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석대산 정상이다. 구현산에서 이곳까지는 30, 산행을 시작한지는 2시간 5분이 지났다.

 

 

석대산 정상도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다 창녕 석대산이라고 써 놓았다. 그리고 주변 나뭇가지에는 화왕지맥 석대산이라고 쓰인 정상표지판도 매달려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바위로 이루어진 덕분일 것이다. 방금 전에 올랐던 전망바위에서 보았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다만 석대산 정상과 전망바위가 서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정상에서 만난 끈질긴 생명력, 거름기 하나 없는 바위틈새에서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광채가 날 정도로 푸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오늘도 난 또 다른 지혜를 배운다.

 

 

정상의 바위지대를 왼편에 끼고 돌며 하산을 시작한다. 마사토로 이루어진 산길은 미끄럽기도 하지만 길 찾기 또한 쉽지가 않다. 눈길 가는 곳마다 모두가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그저 능선만 따른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된다.

 

 

능선은 꽤나 길게 이어진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길이다. 하지만 중간에 몇 곳의 바위전망대가 나타나면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 준다. 가야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 거기다 창녕읍시가지까지 조망되는 등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또한 괜찮은 편이다.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중간에 제법 높은 봉우리도 나타나지만 크게 힘들지는 않기에 작은 오르내림으로 묶어 두었다. 그런 길은 40분 가까이나 계속된다.

 

 

석대산을 내려선지 40분 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옛날에 봉수대 (烽燧臺)라도 있었던 양 돌들이 수북하게 널려있는 지점이다. 계속해서 능선을 따르는 길이 훨씬 더 또렷하지만 우린 왼편 산비탈로 내려선다. 취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던 산악회 버스가 신당리에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당리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르다. 벼랑수준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내려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솔가리가 두텁게 쌓인 흙길은 미끄럽지 않고, 거기다 소나무들이 빼꼭히 들어차있어 내려서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나무를 붙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15분 정도를 가파르게 내려서면 묘()가 보이면서 산길은 편안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임도에 내려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만일 신당산성(新堂山城)을 둘러보고 싶을 경우에는 임도를 따르지 말고 건너편 산자락으로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84호인 신당산성은 가야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원형의 퇴뫼식 산성(山城)이다. 내성 450m에 외성이 650m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만 남아있을 뿐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 성을 목마성(牧馬城)이라 불러왔고, 계성이 옛 현의 소재지였던 것으로 보아 한 때 말을 키운 듯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난 임도를 따랐다. 갑자기 산행코스가 변경된 터라 이곳에 대한 지리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당연히 난 신당산성이라는 새로운 앎을 놓쳐버리게 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멋진 경치를 볼 수는 있었다. 임도의 끝자락에 있는 저수지에서 수면(水面) 위에 그려진 풍경화를 구경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서 왼편에 보이는 산이 석대산이고 신당산성은 오른편 산봉우리에 있다.

 

 

산행날머리는 신당리마을회관

저수지에 내려서면서 산행은 대충 끝났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신당리마을회관은 아직도 20분 정도를 덜 걸어야만 한다. 꽤나 먼 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지대와 띄엄띄엄 서있는 민가들을 지나면 저만큼에 신당리 마을이 보인다. 마을 안길을 통과할 경우 회관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이를 알 수가 없는 우린 부득불 5번국도 아래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물어물어 마을회관을 찾으면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40분이 걸렸다. 온전히 걷는 데만 걸린 시간이라고 봐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