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玉山, 615m)-천왕봉(天王峰, 602m)

 

산행일 : ‘17. 3. 11()

소재지 : 경남 하동군 북천면

산행코스 : 옥종주유소옥산샘옥산헬기장임도천왕봉567청수 삼거리청수마을입구 도로(산행시간 : 2시간 5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두 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제대로 된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라면 대충 짐작이 갈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산길은 한없이 고운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구간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여느 흙산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옥산과 천왕봉은 다른 흙산들이 갖지 못한 특징을 보여준다. 흙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조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리산의 주능선과 남해방향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어림의 나무들을 완전해 제거해 놓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날씨가 좋을 때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은 산이다. 기왕이면 가족과 함께 말이다. 그때는 짙은 솔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소나무 숲길을 느긋하게 걸어보는 느림보의 미학에 도전해보고 싶다.


 

산행들머리는 옥종주유소(하동군 옥종면 양구리 29-3)

남해고속도로 곤양IC에서 내려와 우회전하여 58번 지방도를 타고 곧장 가다가 2번 국도를 만나면 좌회전 한다. 북천면으로 가는 길인데 곳곳에 지리산 이정표가 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1005번 단성 옥종 이정표를 따라 죽 들어가다 보면 배토재를 지나 산행들머리인 옥종주유소에 이르게 된다.



산행은 첨부된 지도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청수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 부산일보와는 달리 옥종주유소(양구마을) 앞에서 시작해서 옥종샘을 거쳐 옥산 정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지도에 표시된 등산로를 그대로 따랐다.




옥종주유소(Oil-bank)에서 북천면 방향으로 50m 남짓 떨어진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옥산까지의 거리가 3.5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농로로는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길가에 멋진 정자(亭子)를 지어놓았다. 그런데 몇 가지의 운동기구까지 갖춘 풍경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주민의 대부분이 노인들인 점을 감안한 발상인 것 같아서이다. 그냥 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건강도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이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내 고향 도랑 살리기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었다고 적혀있다. 도랑을 복원하고 청결하게 관리함으로써 마을을 행복하고 즐거운 삶의 터전으로 만들려는 클린마을 만들기 운동이란다.



일직선으로 나있던 농로가 좌우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조금 더 넓은 길을 따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15쯤 진행하자 매실과수원이 길손을 맞는다. 온도계의 수은주가 영하(零下)를 가리키고 있는 서울지역과는 달리 이곳 하동은 이미 봄이 무르익었나 보다. 매화나무가 모든 가지마다 하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코끝을 찡긋거려 보지만 향내는 맡아지지 않는다. 매화꽃에도 꿀벌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다.




과수원 근처에는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늬만 안내도이다. 등산안내도가 빼먹어서는 결코 안 되는 등산로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저 옥산면의 관내지도라고 보는 게 옳겠다. 그러니 지도의 하단에 적어놓은 여러 곳의 들머리에서 옥산정상까지의 거리와 소요시간들도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시작지점이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4분쯤 더 걸으면 산길은 농로(이때쯤에는 임도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와 헤어진다. 그리고 왼편 산자락으로 향한다. 이곳에도 역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지명과 거리, 거기다 방향까지도 모두 지워져버렸지만 등산로의 진행방향을 추정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는 편이다. 경사(傾斜)가 조금이라도 심한 곳에는 어김없이 통나무계단을 놓았다. 길가의 잡초도 깔끔하게 제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널따란 등산로가 훨씬 더 넓어 보인다



9분쯤 더 진행하자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아까 길이 나뉘던 지점에서 계속해서 임도를 탔을 경우 이곳으로 연결되지 않나 싶다. 아무튼 임도는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등산로는 이곳에서부터 오솔길로 변한다. 들머리에 이정표(옥산 3.0Km)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산길이 능선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곧장 치고 오르지를 않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사면(斜面)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사가 없는 평지와 다름없는 산길이 계속된다.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옥종면의 너른 들녘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그 색깔이 온통 하얀색이다. 흡사 눈이라도 내린 것 같다. 이곳도 역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영농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까 오늘 길에 만났던 비닐하우스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딸기를 제배하고 있었다. 겨울딸기를 재배하느라 비닐하우스를 지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이곳 덕천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옥종딸기는 풍부한 영양과 높은 당도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기까지도 뛰어나단다. 그래선지 많은 양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단다.



조망을 즐기면서 7분쯤 걷다보면 옹달샘 하나를 만난다. 첨부된 지도에 옥산샘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샘은 잘 다듬어진 화강암을 정사각형으로 쌓아올려 주변의 흙이 샘으로 밀려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붕까지 씌워 놓았다. 플라스틱 바가지 몇 개가 걸려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마셔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한다. 물이 고여 있는 듯한 모양새가 구미(口味)를 잃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옥산샘의 주변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다. 나무의 굵기나 숲의 면적 등으로 보아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른 편백나무 숲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하다. 하지만 속세에 지친 육신이 잠시 쉬어가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겠다. 숲의 곳곳에 평상이 놓인 것을 보면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치유(治癒)의 효능을 갖고 있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편백나무라는데, 그런 좋은 조건을 그대로 놓아둘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편백나무 숲의 끄트머리에서 산길은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이어서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탄다. 오른편으로도 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나타나지만 어디로 연결되는 지도 모르겠기에 그냥 무시하기로 한다. 능선으로 올라선 후에도 산길은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고, 경사도 변함없이 완만하다. 그러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기는 여느 오름길과 매한가지이다. 아무리 경사가 약하다고 해도 그 오르내림이 평지 같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주는 아늑한 편안함 덕분이 아닐까 싶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에 잔뜩 취해버린 머릿속에 어떻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올 틈이 생겨나겠는가.



옥산샘을 나서고 15분 남짓 지났을까 급할 것 없어하던 산길이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정상을 내주기 싫은 옥산이 투정이라도 부리는 모양이다. 왔다갔다 갈지()자를 쓰고 나서야 위로 오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아직도 계속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훨씬 더 힘든 산행이 되었을 것 같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한 번 시야가 열린다. 이번에도 역시 옥종면 방향이다. 다만 그 범위가 아까보다 조금 더 넓어졌을 따름이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잠시 숨을 고르던 산길은 정상 바로 아래에서 둘로 나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왼편은 청수마을(의양)로 연결될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둘 일은 아니다. 어차피 정상을 찍지 않은 채로 하산을 감행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옥산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하고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구릉(丘陵)처럼 생긴 정상은 고운 잔디로 뒤덮여있다. 그래선지 산의 꼭대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웃집 안마당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것도 잘 가꾸어진 마당이다. 그 마당에는 두 개의 정상석과 옥종면의 관광안내도로 보이는 지도, 삼각점,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다. 벤치 몇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옥산은 봉황새가 양 날개를 벌리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품안에 든 어린 새끼를 보호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산세(山勢) 또한 어머니의 치마폭같이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올라오는 내내 참으로 포근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옥산의 정상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 말고도 옥산봉, 지리산 정맥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아니 정상석 보다도 훨씬 더 크게 만들어 놓았다. 2000년에 간행된 옥종면지(玉宗面誌)‘의 기록과 연관이 있는 시설물이 아닐까 싶다. 면지(面誌)에서 옥산을 지리산의 한 줄기가 뻗어 나와 정수리 앞산 줄기를 따라서 북천면과의 경계인 백토재를 건너가서 한 줄기는 멀리 사천과 고성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통영시를 건너서 미륵도까지 갔으며, 또 한 줄기는 함안·김해까지 갔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옥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옛적 옥황상제가 남도의 명산들은 아무 날 아무 시까지 지리산으로 모이시오.’라는 명령을 내렸단다. 당시 진주 근방에서 우쭐대던 옥산도 이에 합류하고자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데 옥종에 이르렀을 무렵 통샘에 물을 길러 가던 청수마을 처녀의 눈에 띠었던 모양이다. 이에 놀란 처녀가 ! 저기 산이 걸어가네.’라고 외치자 움찔한 옥산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리산에 가지 못한 그 산은 옥종면의 진산(鎭山)이 되었고 말이다.



산불감시초소는 청수마을(의양) 방향에다 배치했다. 초소라는 게 원래 시야(視野)가 가장 넓게 열리는 곳, 즉 산꼭대기에다 만드는 게 보통이기에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하도 예쁘게 가꾸어 놓은 정상의 경관을 헤치기 싫었던 게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세세한 것에 까지 신경을 쓴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려본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한마디로 빼어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리산의 천왕봉이다. 감시초소에서 일하는 분이 저것이 천왕봉이고 그 옆이 중봉이라며 봉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리켜 주신다.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려본다. 천왕봉의 옆에는 제석봉이 서있고, 조금 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잘록한 곳에 장터목,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면 촛대봉이 반갑게 맞는다. 그 오른편에는 영신봉과 칠선봉, 그리고 연하천이 있을 것이다.



반대방향의 산들도 반갑게 맞는다. 영신봉에서 갈라져 나와 삼신봉과 거사봉을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렷하고 그 왼편 섬진강 너머에는 백운산이 우뚝하다. 그보다 더 왼편에서도 수많은 산들이 나도 여기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남해바다 근처의 금오산과 연화산 등으로 보이지만 점점 짙어져가는 연무(煙霧) 때문에 어느 산인지는 구분이 안 되고 있다.



정상은 도심(都心)의 공원(公園)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간간이 보이는 소나무들은 누구네 집 정원수처럼 깔끔하게 전지(剪枝)를 해놓았고, 이정표나 옥종면관광도 등의 시설물에는 수많은 솟대를 꽂아 두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곳곳에 쇠파이프를 꽂고 그 위에다 솟대를 올렸다. 감시초소에서 일하는 분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우린 멋진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정상에서 산길은 둘로 나뉜다. 산불감시초소 옆에 이정표(백토재, 돌고지재/ 의양 3.0Km/ 양구 3.5Km)가 세워져 있으니 잘 살펴보고 출발하는 게 좋겠다. 물론 백토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천왕봉으로 향한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내려설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저 그 거리가 짧다는 게 다행일 따름이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내리막길이 끝나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이 끝났다싶으면 곧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보도블럭으로 표시한 ‘H’자가 아직까지도 또렷한 것으로 보아 계속해서 정비를 해온 모양이다. 이곳 헬기장 근처에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백토재4.0Km/ 의양3.2Km/ 옥산0.5Km)로 나뉜다. 천왕봉으로 가려면 백토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왼편은 수정암을 거쳐 하산하는 길이니 주의한다.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널따란 길이 눈에 거슬릴 만도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괜찮은 편이다. 주변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서까래로 써도 충분할 만큼 굵게 잘 자라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아마 7분쯤 걸었을 게다. 주변이 낙엽송(일본이깔나무) 군락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왼편으로 오솔길 하나가 나뉜다. 이정표(돌고지재 3.5Km/ 백토재 3.7Km/ 옥산 0.8Km)가 세워져 있지만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눈에 익은 지명인 백토재가 왼편으로 진행할 것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돌고지재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물론 백토재 방향으로 올라가도 천왕봉에 이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천왕봉을 둘러보고 난 후에는 올라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만 하는 단점이 있다.



계속해서 임도를 탄다. 물론 돌고지재 방향이다. 8분쯤 더 걷자 삼거리가 나온다. 천왕봉으로 가려면 이정표(백토재4.4Km/ 돌고지재2.7Km/ 옥산1.7Km)가 가리키고 있는 백토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계속해서 직진할 경우 돌고지재로 연결되니 주의한다. 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그 돌고지재 말이다. ! 잊고 지나갈 뻔 했다. 섬진기맥(蟾津岐脈)을 말이다. 돌고지재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546m봉에서 분기하는 지맥이 바로 섬진기맥인데 이 산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수계(水界)를 가르며 황치에서 계명산 이명산으로 맥을 있다가, 그중 하나가 하동 금오산에서 마지막으로 솟아올랐다가 남해대교 앞 바다로 잦아든다.




삼거리에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경사는 거의 없는 편이다. 사륜구동형의 차량이 아니라 일반 승용차가 올라 다녀도 되겠다. 천왕봉의 정상에 있다는 활공장으로 연결시키는 임도라서 경사를 뚝 떨어뜨려 놓은 모양이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을 따른다. 낙남정맥이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智異山)의 영신봉(靈神峰)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하여, 진주와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지다가, 마산·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산들을 일구어 낸 후 김해의 분성산(盆城山, 360m)에서 끝을 맺는 총 길이가 200쯤 되는 산줄기이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 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分水嶺)이 되는데, 연결되는 주요 산으로는 옥녀산(玉女山)과 천금산(千金山), 무량산(無量山), 여항산(餘航山), 광로산(匡盧山), 구룡산(九龍山), 불모산(佛母山) 등이 있다.



10분쯤 올라서니 천왕봉 정상이다. 천왕봉도 역시 잔디로 뒤덮여 있다. 옥산만은 못해도 관리를 해온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옛날에 있었다는 활공장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잘 지어진 육각정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상표지석은 맨 꼭대기에다 세워놓았다. 천왕봉을 사랑하는 양천 사람들이 설치했다는데, 그 앞에다 제단(祭壇)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뭔가 행사를 치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낙남정맥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곳을 옥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병기(倂記)하기도 한다. 원래의 옥산이 정맥에서 살짝 비켜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곳 천왕봉과 옥산봉을 하나의 산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옥종면민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아까 옥산의 정상에서 보았던 면민(面民)들이 세웠다는 표지석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지리산 줄기에 있는 노고단노고산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그들은 옥산을 옥산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천왕봉에서의 조망(眺望)도 탁월하다. 사방이 확 트여있기 때문이다. 북쪽의 주산과 구곡산 뒤에는 지리산의 천왕봉이 우뚝하고, 서쪽으로는 칠성봉과 구재봉, 분지봉이, 그리고 북서쪽에는 삼신봉이 또렷하다. 남쪽에 이명산과 금오산이 도열해 있음은 물론이다. 누군가 남해바다가 보인다고 외친다. 약간 희게 나타나는 지점이 바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곳에서는 옥종마을 뒤편에 있는 진양호는 물론이고, 산 너머에 있는 남해바다까지 조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비록 연무(煙霧)로 인해 또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옥종면의 대평 평야지대를 바라보면서 하산을 시작한다. 신라시대 한다사군에 속해있던 옥종면은 옥동면(玉東面)자와 가종면(加宗面)자를 따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1929년에 두 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이다. 가야시대의 청동기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옥종면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와 담계(澹溪) 정온(鄭蘊) 등 유학자가 많이 배출된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덕행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과 진양 하씨 문중 사당인 경현사(景賢祠), 하홍도를 기리는 서원인 모한재(慕寒齋), 정온(鄭蘊)을 기리는 재실인 원모재(遠慕齋), 그리고 강민첨(姜民瞻)의 신도비와 재실인 두방재(斗芳齋) 등 유학과 관련된 문화재들이 산재해있어 현세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옛 선인들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오늘 산행에는 유난히 많은 청미래 넝쿨들이 눈에 띈다. 꽃이 귀한 계절이라선지 청미래의 빨강 열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윤기가 흐르는 빨강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철의 혹한(酷寒)에 많이도 시달렸나 보다. 아무튼 늦겨울, 봄의 문턱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작은 것에도 소중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숲속의 작은 속삭임에도 눈과 귀가 솔깃해진다. 봄을 생각하니 어느새 마음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솔숲을 헤집으며 난 산길은 편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길에는 솔향기로 가득하다. 이런 길은 혼자 걸어도 좋지만 둘이 걸을 때 제 맛이 나지 않을까 싶다.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주고받으며 걷기에 딱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길에는 은방울꽃이 만발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10분쯤 내려서면 삼거리(이정표 : 백토재3.5Km/ 옥산1.0Km/ 돌고지재3.6Km)를 만난다. 왼편은 아까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길 찾기에 주의를 하라고 했던 지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산길은 완만한 오르내림으로 반복하고 있다. 중간에 2(567m)3(505m)을 지나게 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그만큼 오르내림이 많이 반복되는데다 두 개의 봉우리 또한 특별히 내세울만한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야(視野)가 열리기도 한다. 나뭇잎을 다 떨구어버린 빈 나뭇가지 사이로 옥산이 빼곰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오른편에는 옥종면의 들녘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이는 겨울철에나 가능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풀려 나뭇잎이라도 돋아난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내리막길이 약간 가팔라진다. 하지만 산길은 여전히 고운 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드라운 흙길에는 솔가리(소나무 落葉)가 수북하게 쌓여 마치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그래선지 해빙기(解氷期)임에도 불구하고 질척거림이 조금도 없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기분 좋은 산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니 오늘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산길이 계속된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리 걸어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산길이다.



정상을 출발한지 35분 만에 청수삼거리’(이정표 : 청수1.2Km/ 백토재1.5Km/ 옥산3.0Km)를 만난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낙남정맥과 헤어진다.



산길은 여전히 곱다. 보드라운 흙길이 경사까지도 완만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낮은 산이라서 급하게 고도를 떨어뜨릴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거기다 능선에는 송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어루만지듯이 볼을 스쳐가는 온화한 바람결에는 솔향으로 가득 찼다. 이건 숫제 삼림욕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소나무 숲길은 이곳까지 오는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만큼 소나무로 가득 찬 산이라는 얘기이다. 오늘 산행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바닥에 거의 떨어졌다싶은데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나타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바위라선지 반갑기까지 하다. 마침맞게 바위의 위가 평평하게 생겼다. 아직 덜 먹은 간식이 남아있다면 비워버리고 가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산행날머리는 청수마을 입구(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삼거리에서 내려선지 20분 남짓 지나자 숲이 활짝 열리면서 저만큼에 청수마을이 나타난다. 산악회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청수마을 입구의 도로변은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하지만 이쯤에서 산행을 끝내기로 한다. 그리고 산자락에 만들어진 밭으로 들어가 냉이를 캐기로 한다. 순전히 집사람의 우김이었지만 그렇게 캔 냉이는 우리 부부의 밥상을 일주일 내내 지켜주었다. 향긋한 봄내음을 듬뿍 품고서 말이다. 그만큼 많은 양을 캤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정확히 3시간이 걸렸다. 준비해온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해본다면 2시간 50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청수리로 내려가는 길에 올려다본 옥산과 천왕봉은 지리산의 일원답게 우람한 기세를 자랑한다. 거기다 지리산의 특징이랄 수 있는 푸근한 산세를 함께 지니고 있는 모양새이다. 옥종면의 진산(鎭山)으로서 갖춰야 할 품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