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곡산(九曲山, 961m)

 

여행일 : ‘16. 10. 22()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삼장면의 경계

산행코스 : 덕천서원도솔암계곡삼거리와룡폭포도솔재구곡산헬기장삼거리동당마을덕치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지리산의 주능선은 아니지만 지리산의 한쪽 축을 구축하는 능선에 솟아오른 봉우리로 모산(母山)인 지리산을 닮아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형태를 하고 있다. 때문에 천 미터에 가까운 높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눈요깃거리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황금능선때문이다. 무성한 산죽(山竹)군락이 가을이면 누렇게 변한다고 해서 황금능선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 능선은 이름 그대로 온통 산죽들로 뒤덮여 있다. 때문에 이 길은 줄기는 게 아니라 고행을 해야 하는 길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 숲을 헤쳐 나가가다 보면 싸대기를 맞는 것쯤은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원시의 숲을 탐험을 하듯 헤쳐 나가는 재미를 느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번쯤은 찾아볼만한 산이지만 그런 고행(苦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시간을 내면서까지 찾아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덕천서원(산청군 시천면 사리)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방면으로 들어가다 사리교차로(산천군 시처면 사리)에서 내려오면 시천면의 면소재지인 사리이다. 고등학교까지 있을 정도이니 면소재지 치고는 규모가 제법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마을을 통과하다보면 그 끄트머리에서 덕천서원을 만나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입구에다 커다랗게 홍살문을 세워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원(書院) 앞에 내리면 수령(樹齡)400년도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당당하게 길손을 맞는다. 서원의 오래된 역사를 자랑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홍살문과 정면 3,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연이어 통과하면 '덕천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경의당(敬義堂)이 나타난다. 정면 5칸에 측면 2칸인 강당(講堂)인데 그 앞쪽으로 유생들이 거주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덕천서원(德川書院 : 경남유형문화재 제89) 안에 들어선 것이다. 덕천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건립 당시에는 덕산서원(德山書院)이었다. 1576(선조 9) 최영경, 하항 등 사림(士林)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했는데, 현재는 이 일대를 한데 묶어 조식유적지(사적 305)’로 조성해 놓았다. 이후 1609(광해군 1)에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덕천(德川)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면서, 남명학파(南冥學派) 강우유맥(江右儒脈)의 본산으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때는 불타기도 했으며,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철폐된 뒤 1930년대 다시 복원된바 있다. 참고로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세심정(洗心亭조식묘 등이 있다.



경의당 뒤로 돌아가면 조식(曺植)과 제자인 최영경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있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고 8월에는 남명 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남명(南冥)1501(연산군 7)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군)에서 출생하였는데 이황과 함께 당시 영남 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로 실천적인 성리학을 중시하였다.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던 그는 나이 60세에 이르러 지리산이 모든 학문의 바탕처럼 의로운 기운을 간직한 산이라 하여 삼가에서 덕산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지리산의 맥이 에워싼 곳에다 산천재(山天齋)라는 서당(書堂)을 짓고 본격적으로 후학을 가르치다가 1572(선조 5)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서원을 둘러본 뒤 산행을 시작한다. 중산리 방향으로 100m쯤 걷다가 세운빌라트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입구에 '도솔암(2Km)''불지사(500m)'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행방향에 보이던 성운사라는 사찰이 가까워졌다 싶으면 도솔암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만난다. 길을 걷다보면 눈에 띄는 것이라곤 오로지 감나무들뿐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그 무게를 못 이겨 가지들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이틀 전에 다녀온 상주의 들녘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다만 감의 크기가 조금 작아졌지 않나 싶다. 참고로 덕산으로도 불리는 이곳 시천면은 곶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낮에는 따사롭고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일교차 덕분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맛있는 곶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불지사(佛知寺]가 나타난다. 전면 3칸의 법당(法堂)과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두 채가 전부인 단출한 규모의 사찰이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세상에는 제법 알려진 편이다. 주지스님으로 있는 보현스님이 연다는 산사음악회때문이다. 보현스님은 1980년대 사모곡과 설마 등의 노래를 불렀다는 가수 이경미란다. 당시 CF모델과 탤런트로도 활동을 했다는데, 1986년 돌연 잠적한 뒤 보현이라는 법명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는 '비구니 엄마'가 됐고, 1999년에는 '부처님 마을'이라는 장애인시설을 설립했단다. 아무튼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스님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드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행복을 원하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적힌 입간판에 더 관심이 쏠린다. 성공을 원하지 말고 행복을 추구하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지만, 얻은 것에 만족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게 행복이다. 우리는 행복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지로 고민한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든 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을 얻는 게 행복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불행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 자체를 깨닫고, 그에 만족해야만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 피터 팬의 저자 제임스 베리(James Matthew Barrie)’가 문득 떠오른다.



불지사를 지나면서 숲길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이 터널을 만들고 있는 멋진 길이다. 거기다 사륜구동차가 아니어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유롭기 짝이 없다는 얘기이다.



길은 계곡을 끼고 나있다. 하지만 물가로 내려가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계곡 전체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내려갈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길가에는 가을의 전령이라는 들국화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그러고 보니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날씨가 서늘해졌다. 그래, 강원도 산간에는 서리까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던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만에 도솔암(兜率庵)에 이른다. 도솔암은 산청군의 4대 사찰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입구에서 바라본 암자(庵子)는 특이한 게 하나도 없다. 비탈진 산자락에 높다랗게 축대(築臺)를 쌓아 만든 비좁은 부지 탓인지 법당(法堂) 하나에 여염집처럼 지어진 요사채 두 동이 전부이다. 규모나 외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이다. 절에 대한 안내가 없어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지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산길은 절의 입구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구곡산 등반안내도와 이정표(구곡산 정상2.62Km/ 덕천서원2.45Km)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설 일이다. 산행의 코스를 미리 알고 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와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찬 걸로 보아 계곡이 제법 깊은 모양이다. 대략 4분쯤 올랐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등반안내도가 나타난다. 이어서 바위를 돌아가면 안내도에 나타나 있듯이 길이 둘로 나뉜다. 계곡을 따르는 오른편 길은 곧장 구곡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이고, 왼편은 일단 능선(도솔재)까지 오른 다음에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코스이다. 하지만 삼거리에 세워놓은 두 개의 이정표(#1:구곡산 정상2.37Km/ 도솔암0.2Km, #2: 도솔릉 1.5Km/ 도솔암) 모두 오른편 방향은 표기하고 있지 않다. 왼편으로 오르라는 무언의 안내가 아닐까 싶다.



왼편, 즉 이정표가 가리키는 도솔릉 방향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변한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황금능선을 미리 느껴보라는 듯이 좌우로 산죽무리가 줄을 잇는다. 경사 또한 많이 가팔라졌다.



그럴게 7분쯤 더 올라갔을까 갑자기 물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왼편의 산죽무리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나타난다. 망설일 필요 없이 일단은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잠시 후 와룡폭포(臥龍瀑布)’를 만난다. 20m에 높이가 10m 정도 되는 폭포는 늦가을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물이 떨어지고 있다.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하겠다.



길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폭포의 위로 오른다. 와룡바위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바위이다. 바위의 위에서 바라본 폭포는 별로이다. 폭포의 아래에 응당 있어야할 물웅덩이, 즉 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구경거리가 별로이니 머무는 사람 또한 없다. 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만들어 놓은 쉼터가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폭포를 지나면 울창한 대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인 소유이니 들어가지 말라며 금줄()줄까지 쳐놓았다. 혹여 죽순(竹筍)이라도 뜯어갈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모양이다.



대나무 숲을 지난 산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곧장 위로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좌우를 갈지()자를 그리고 나서여 겨우 위로 오를 지경이다. 그리고 그 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니 오를 수도 없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즐기라고 했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서서히 걸어볼 일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다. 아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더 맞겠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 그런 재미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산길은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주변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보이던 단풍이 언제부턴가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버렸다.




어린아이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벌린 듯 단풍은 파란 하늘을 가리고 섰다. 한 나무에서 돋아난 잎이지만 그 색깔도 제각각.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어우러져 자연이 만들어낸 색의 조합을 보여준다.



그렇게 35분 정도를 더 오르면 통나무계단을 만나고, 곧이어 도솔릉에 올라서게 된다. 더러는 도솔재라고도 하는데, 힘들여 올라온 사람들이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곳이다. 삼거리(이정표 : 구곡봉1.2Km/ 절골1Km/ 도솔암1.5Km)인 이곳에서 정상은 오른편 방향이다.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이제부터 황금능선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이다. 능선에 오르면 산길은 그 사나웠던 기세를 많이 누그러뜨린다. 그렇다고 평지 수준은 아니니 너무 좋아할 일은 아니다. 참고로 황금능선이란 동부지리산의 써리봉(1642m)에서 덕천강변의 외공마을까지 내리뻗은 길이 15.5km의 능선을 말한다. 해질녘이면 산죽(山竹)으로 뒤덮인 능선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해서 황금능선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구곡산까지 이어졌다고 해서 구곡능선으로도 불린다. 1979년에 정원강(세석산장 관리인)’선생이 이 구간을 낫으로 개척한 후, 가을 날 햇볕에 반짝이는 능선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반해 황금능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능선의 좌우는 급경사를 이루는 사면(斜面). 그 덕분에 가끔가다 만나는 봉우리 위에서는 조망(眺望)이 트이기도 한다. 10분 조금 못되어 오르게 되는 첫 번째 봉우리가 그 주인공이다. 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있는 바위에라도 오르면 서쪽 방향으로 트이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발아래에는 중산리로 연결되는 20번 도로가 나있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그 뒤에 보이는 곡점능선 말고도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곡점능선 뒤에 포개진 능선은 세석평전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일 것이다. 청학동의 뒷산인 삼신봉(1289m)과 관음봉, 형제봉 등이 들어 있는 산줄기 말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아니 버거울 정도로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 대부분이다. 하긴 그래야만 구곡산의 높이에 맞추어 고도(高度)를 높여갈 수 있었을 것이다. 굵직한 능선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다 마지막으로 통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널따란 헬기장(이정표 : 구곡산 정상 0.75Km/ 도솔암·덕천서원 4.75Km)이 있는 922m봉이다.




헬기장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시야가 열리는 것이다. 천왕봉과 중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과 촛대봉(1703.4m)이 가깝고, 삼신봉과 그 너머에 있는 백운산 등 높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석봉과 달뜨기능선도 시야에 잡히는 것은 물론이다. 그야말로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남한 땅에서 가장 높다는 지리산의 산줄기들답다. 웃자란 잡목들이 그들이 그려놓은 풍경화의 아랫도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헬기장을 뒤로 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4분 남짓 걸었을까 삼거리를 만난다. 덕산관광휴양지로 내려가는 길이 이곳에서 나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덕산관광휴양지의 방향만 나타나 있을 뿐, 거리가 적혀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있다. 구곡산 정상과 그 반대방향은 더한 편이다. 거리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왕에 만들어 놓은 시설이니 수시로 정비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무인산불감시탑(이정표 : 정상 400m/ 도솔능 800m)에 이른다. 지도에는 자연보호탑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점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자연보호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자연보호탑으로 이름을 바꾼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잠시 아래로 내려가던 산길이 다시 위로 향한다. 그리고 또 다시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면 작은 돌탑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구곡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서너 평도 못 될 정도로 비좁은 정상에는 달팽이(蝸牛, 와우) 산악회에서 세웠다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 팻말 형으로 된 작은 이정표(천잠능 3.1Km/ 도솔능 1.2Km)는 정상이지만 봉() 끝에 매달린 이정표는 도솔암(2.62km) 방향만 남아있다. 어찌 만나는 이정표마다 하나 같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보수가 시급해 보인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누군가 이곳을 가리켜 지리산의 주능을 바라볼 수 있는 뛰어난 전망대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천왕봉과 중봉이 나란히 있고, 촛대봉과 삼신봉 등 지리산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빠짐없이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전망대라 일컫는 산들이 더러 있지만 가깝고 뚜렷하기로는 구곡산이 가장 으뜸이 아닐까 싶다. 그밖에도 멀고 가까운 수많은 산들이 속속 들어온다. 금오산과 월아산, 여항산, 자굴산 등일 것이다. 천왕봉을 향해 굽이치고 있는 황금능선도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천잠능방향이다. 짧게 아래로 내려섰다가 반대편 봉우리로 올라선다. 이곳에도 역시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훼손을 할 경우 처벌을 하겠다는 경고판까지 세워 놓은 걸로 보아 아까 정상에서 보았던 삼각점보다도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관리번호는 글씨가 훼손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도솔암1.65km/ 구곡산 정상0.05km)로 나뉜다. 오른편은 도솔암으로 연결되는데, 아까 올라올 때 지났던 계곡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지름길을 택했을 경우 이곳으로 올라오게 된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천잠능은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니 그쪽 방향을 아예 비워 놓았다. 탐방을 금지하지 않는 코스를 표기를 하지 않는 것은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의 월권(越權)이 아닐까 싶다. 무릇 행정행위란 행위의 상대방 입장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일상용어가 되다시피 한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만족이란 화두(話頭)를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림길 근처에서 시야가 트이면서 아까 정상에서 바라보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천잠능, 즉 천왕봉을 정면에 두고 진행한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완만해진다. 조망이 막혀있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볼거리가 아주 없지만은 않다.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답게 오래 묵은 고목(古木)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거대하면서도 기괴(奇怪)한 생김새가 잠시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15분쯤 되었을까 널따란 공터에 이른다. 생김새로 보아 헬기장으로 조성되었던 모양이나. 하지만 지금은 웃자란 잡초와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이정표 : 동당1.62Km/ 정상0.76Km)로 나뉜다. 그러나 동당마을로 내려가는 길만 나타나 있을 뿐 국수봉 방향은 텅 비어있다. 국수봉이 비법정탐방로라는 것이 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천잠능까지는 탐방로가 열려있으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황금능선을 타는 고행을 해보느냐, 아니면 이쯤에서 하산을 하느냐로 말이다. 결론은 후자이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는 내 몸이 일부러 하는 고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왼편 지능선을 따라 5분쯤 내려갔을까 안부에 이른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휘면서 골짜기로 내려선다. 하지만 이정표(구곡산 정상 0.83Km)에는 오른편으로 틀라는 방향표시만 되어 있을 뿐 거리나 지명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마저도 없었다면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계곡은 한마디로 깊다. 이곳 황금능선이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partisan)들의 보급로(補給路)였다고 하더니 과연 그랬을 만도 하겠다. 그만큼 험한 것이다. 거기다 너덜 구간이 많기 때문에 자칫 넘어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불행히도 그런 우려는 실제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집사람이 넘어져서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결과는 5주 동안의 깁스(gips)란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나 혼자서 산행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무들도 링거(ringer)를 맞는다?’ 계곡의 나무들은 하나 같이 여러 가닥의 호스(hose)들을 꽂고 있다. 고로쇠를 채취하기 위해 꽂아놓은 호스인데, 그게 마치 병상에 누운 채로 링거를 꽂고 있는 환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25분쯤 내려서면 드디어 임도(이정표 : 구곡산 정상 1.48Km)를 만난다. 이후부터 길은 좋아진다. 널따란데다가 경사까지 완만해서 내려서는 게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다시 15분쯤 더 걸으면 울창한 일본이깔나무 숲을 만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나무들이 끼리끼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잠시 후 사방댐이 나타났다싶으면 저만큼에 민가(民家) 몇 채가 나타난다. 동네 앞에 세운 입간판에 곶감과 벌꿀을 적어 놓은 걸로 보아 이곳 시천면의 특산물이라는 곶감 외에도 벌꿀을 생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헬기장 삼거리에서 이곳까지는 50분이 걸렸다.



민가에서 20번 국도까지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된다. 산의 사면(斜面)을 깎아 만들다보니 구불구불하기 짝이 없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실제로는 꽤나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을 구경하거나, 길가의 늘어선 감나무들을 살펴보면 될 일이다. 혹시라도 잘 익은 홍시라도 하나 건질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길가 담벼락에 예쁜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하얗고 탐스런 것이 가을철 꽃 같지 않아 보여 카메라에 담아 봤다.



산행날머리는 덕치마을 물레방아탑

그렇게 30분 남짓 더 걸으면 20번 국도를 만난다. 부상을 입은 집사람이 절뚝거리며 걸은데 걸린 시간임을 참조한다. 중산리로 연결되는 도로의 주변에는 꽤나 많은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당리인데 이 마을도 역시 감나무 천지이다. 심지어는 정원수까지도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사방이 온통 감나무인 셈이다. 아무튼 도로에 이르면서 산행이 종료되었다고 보면 된다.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덕치마을까지는 현지 주민의 트럭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20분이 걸렸다. 간식시간과 부상치료를 위해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있다. 오늘 산행에서 우리 부부가 맞닥뜨린 상황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어른 허리쯤 되는 높이의 계곡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다행이도 팔목에 금이 가는 것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우린 산청군과 인연이 없나 보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곳 산청군 소재의 산에서만 두 번째로 사고를 당했다. 20년 가까이 산행을 해오면서 당한 3번의 사고 중 2번을 이곳 산청 땅에서 당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집사람이 간과(看過)한 것이 있다. 이곳 산청 사람들의 친절함을 말이다. 5년 전쯤, 이곳 산청군 소재의 석대산에서 말벌 때의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위험상태는 아니었지만 쏘인 부위가 곪는 등 부작용이 심해 부랴부랴 산청보건의료원으로 달려간 나에게 베푼 그들의 친절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고마운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야할 환자이니 먼저 진료를 해주면 어떻겠냐며 먼저 온 환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던 간호사나 망설임 없이 양보를 해주시던 주민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그런 친절을 보았다. 집사람이 동당마을에 이를 때쯤에는 걷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산악회 버스가 멈춰있는 덕치마을까지 태워다 준 트럭과,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집사람을 시천면 소재지에 있는 약국까지 태워다 준 승용차는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친절이었다. 특히 시천의 약국이 문을 닫았을 경우 원지까지 실어다 주겠다며 기다려준 부부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니 두 번이 아니라 더 많은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어찌 산청 땅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들이 있기에 아직도 세상은 살아갈 만 하다고들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5주 동안이나 깁스를 해야만 하는 집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나들이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