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7코스(합산마을 버스정류장-하사6구 버스정류장)

 

여 행 일 : ‘23. 9. 23()

소 재 지 : 전남 영광군 염산면 및 백수읍 일원

여행코스 : 합산마을 버스정류장월평항두우리 염전당두마을상정마을창우항하사6구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9.7km, 실제는 15.35km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7코스를 걷는다. 7로 이루어진 함평·영광 구간의 네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대부분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긴 방조제를 걷는다. 장점은 볼거리로 넘친다는 것. 칠산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은 기본,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염전과 드넓은 갯벌을 가득 채운 풍력발전기는 양념이다. 거기에 백바위해변의 빼어난 경관이 방점을 찍는다.

 

 들머리는 합산마을 버스정류장(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IC에서 내려와 23·22번 국도와 808번 지방도, 77번 국도를 갈아타고 들어오다 양일마을 경로당(염산면 봉남리)’ 앞에서 칠산로5로 옮기면 잠시 후 합산마을에 이른다. 서해랑길(영광37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염산방조제와 칠산로5길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이번 구간도 간척사업과 인연이 깊다. 방조제의 둑길이 아니면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긴 염전이나 들녘을 횡단한다. 거리는 다소 긴 19.7km, 그게 부담스러운 나는 택시를 불러 5km(집사람은 7.5km)를 이동(같은 코스로)했다. 하지만 5만원이란 거금을 지불했으니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실제 출발지는 운곡마을(雲谷, 염산면 야월리) 앞 방조제(첨부된 지도에서 야월리 서쪽 해안의 툭 튀어나온 지점). 37코스의 시점에서 4.87km쯤 떨어진 지점이다. ‘월평항에서 2.5km쯤 더 나간 지점이기도 한데, 칠산갯길 300(천일염길)의 탐방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나 현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안내판 너머로 검붉은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사리 때는 10km나 떨어진 각씨도까지 경운기를 타고 가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단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간척사업이 빚어놓은 전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물 빠진 갯벌에 바둑돌처럼 놓인 비작도를 위시한 작은 섬들, 그 섬들을 잇는 방조제가 바둑판의 선이라도 그리는 양 여백을 가득 채운다.

 칠산바다 갯벌은 지금 가을빛으로 물든 칠면초로 한가득이다. 그 뒤로는 작은 섬들이 둥둥. 이게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저 그림을 보기 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곳까지 왔다. 집사람을 핑계 삼아 생략해도 될 것을 5만원의 거금까지 들여가면서 말이다.

 11 ; 47. 방조제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가음산(206.2m)을 정면에 두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염산면의 해안은 간척사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앞바다의 작은 섬들을 줄줄이 방조제로 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생긴 들녘은 대부분 염전. 이게 또 경제성을 잃으면서 대하양식장으로 업종을 바꿨다.

 왼편은 칠산바다의 갯벌, 그런데 바다의 폭이 100m도 채 되지 않는다. 항아리처럼 내륙을 향해 움푹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염전에서 사용할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가음산 자락의 농경지. 누렇게 익은 벼가 게으른 농부를 애타게 부른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한 염전이 뒤를 잇는다. 가을볕 아래 소금 알갱이가 알알이 영글어간다. 영광의 대표적 풍경의 하나라 하겠다. 참고로 영광 앞바다에 펼쳐진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라고 했다. 생산되는 소금도 미네랄이 풍부해 질 좋은 소금으로 정평이 나 있단다.

 12 : 09. 내만처럼 파고들던 바다가 방조제(이정표 : 종점 12.9km/ 시점 6.8km)를 만나면서 끝난다. 저 둑을 경계로 야월리에서 두우리로 넘어간다.

 방조제 안쪽은 바닷물을 가두어두는 저수지다. 저 물은 염전에 생명수로 공급된다.

 저수지에서 턴을 한 탐방로는 다시 방조제를 따른다. 바다를 향해 되돌아오는 모양새라고 하겠다.

 둑길을 200m쯤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방향을 트니 두우리의 염전 단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지명(地名) 자체가 이미 소금 산(鹽山)’인 곳, 얼마나 소금밭이 컸으면 칠산 바닷물이 70리길을 들고 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첫 만남은 영백염전이다. ‘1회 전국 염전콘테스트에서 영예의 대상까지 수상한바 있는 50년 전통의 전통갯벌염전으로 소금 모으기, 운반하기, 수차 돌리기 등 염전 체험도 가능하단다.

 소금은 4월부터 10월까지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매일 생산되는 건 아니고, 소금 알갱이가 영글어야 거두어들일 수 있다. 소금밭 두렁을 서성이는 저 염부는 그 때를 헤아리고 있을 게고...

 염전이 단지를 이루다보니 군내버스도 정기적으로 다닌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드문 듯 버스정류장은 오토바이 차지가 되어버렸다.

 길 양옆으로 소금밭이 도열해 있다. 염전이 단지를 이루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화학물질 오염원인 농지와 거리를 둘 수 있어 친환경 소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야 칼슘·칼륨·마그네슘 등 필수 미네랄 함량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다는 한국산 천일염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음식의 깊은 맛을 위해서는 국산 천일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그게 저 소금밭에서 염부들의 노력을 보태가며 얻어지는 것이다.

 이 지역의 염전은 바닥을 타일이나 옹기로 깐 장판염이라고 한다.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 염전은 크게 저수지와 증발지, 결정지로 구분된다. 염도 35(퍼밀·1000분의 1)의 바닷물이 각 구획을 거치면서 물이 증발되고 염도는 높아진다, 결정지에 이르면 200 이상의 염도를 지닌 바닷물에서 소금 결정이 생성된다. ‘꽃이 핀다고 표현되는 이 단계까지 오는 데 약 1개월이 걸린단다.

 비작도 쪽으로도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저런 풍경은 사진작가들에게 훌륭한 낚시감이 된다. 해가 뜨고 질 무렵 염전 풍경을 렌즈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양 옆구리에 염전을 낀 길은 1.4km나 이어진다. 하도 길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맞다.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영광은 신안에 이어 지역 대표 천일염 생산지 중 하나다. 천일염 전국 소비량 기준 약 17~18%가 생산된다. 오죽했으면 면의 이름까지 소금 산(鹽山)이 되었겠는가.

 12 : 32. 정자 둘이 나란히 서있는 둑에 올라섰다. 정자 뒤, 길게 뻗어나가는 방조제 끄트머리에는 비작도가 놓였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로 변한 꼬맹이 섬이다. 그 오른편으로는 칠산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함평만을 벗어난 바다는 썰물이 한창인지 갯벌이 하늘 끝에 닿았다. 간척지도 망망한 염전. 저절로 가슴이 시원해진다.

 저 갯벌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등이 매기는 갯벌 평가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한단다. 겨울 북풍이 불 때 격한 파도가 치면서 바다 밑 뻘을 모두 쓸어가고, 다시 봄부터 새로운 뻘이 내려앉는 지형적 특징 덕분이라나?

 방조제를 따라 당두마을로 간다. 소금밭과 갯벌을 양옆에 끼고 가는 모양새이다. 두우리의 저 싱싱한 갯벌은 영양가 높은 플랑크톤이 풍성해서 고기 떼가 몰려오고, 어패류도 쑥쑥 자란다. 봄에는 실뱀장어, 여름~가을엔 숭어와 새우 꽃게, 가을부터 늦겨울까진 김장용 새우가 잡힌다.

 생태계 복원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도 보인다. 모래 날림으로 인한 염전 피해와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퇴사울타리와 대나무 방풍책을 설치했다. 자생 수목인 해송으로 방풍림도 조성했다. 그런 노력이 인정받아 산림청 주최 전국 우수 산림생태복원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간척지 방향은 옷을 바꿔 입었다. 소금밭을 지나자 진초록 대파 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생명력 넘치는 푸른빛이다.

 당두마을로 가는 방조제는 꽤 길었다. 덕분에 우린 서해바다를 실컷 보게 된다.

 서해바다는 다도해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섬 십여 개가 군데군데 보일 뿐 나머지는 일직선의 수평선이다. 그 많던 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위해 섬과 섬을 연결했고, 그 결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잃었다.

 12 : 53. 배수갑문을 지나 두우리 어촌마을체험관에 이른다. ‘두우리 8km나 되는 해안선을 자랑한다. 바닷물이 많이 빠지면 7~12km나 걸어 나갈 수 있는 갯벌도 자랑거리다. 그러니 많은 주민들이 어촌계를 중심으로 갯벌을 부치며 살아갈 것은 당연. 그런 삶은 1973 KBS TV 연속극 두우리 녀석들로 소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체험관은 문이 닫혔다. 그 이유는 안내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을 앞 갯벌에서 갯벌양식장 환경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합의 지속적인 자원관리를 위해 무단출입을 금한다니, 어찌 체험객들을 받을 수 있겠는가.

 체험관 앞, 서해랑길 이정표(종점 9.9km/ 시점 9.8km) 37코스의 반을 걸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난 5km를 택시로 이동했다. 그러니 이제 시작인 셈이다.

 12 : 56. 200m 남짓 더 걸었을까 삼거리가 나온다. ‘칠산갯길 300 이정표는 두우리해수욕장까지 1.07km 밖에 남지 않았다며 곧장 가란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몇 걸음 더 걸으면 당두마을’. 천일염으로 유명한 두우리(斗牛里) 3개 자연부락(당두·상정·창우) 중 하나로, 마을 뒷산이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닭머리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당두(堂斗)’로 변했다. 그 왼쪽은 상정마을이다. 마을이 높은 곳에 위치하며 정자와 같다고 해서 상정(上亭)’이란 지명을 얻었다.

 13 : 00. 77번 국도로 올라서 상정마을을 관통하는데 이때 원불교 마크가 눈에 띈다. 맞다. 영광은 원불교의 발상지다. 박중빈 대종사의 생가인 구호동 집터를 비롯해 기도터였던 마당바위, 그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노루목대각지까지 모두 영광에 있다.

 시골 마을치고는 제법 번화한 모양새이다. 펜션과 민박에 식당, 마트까지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백바위해수욕장과 인접해있다는 지리적 요건이 작용했을 것이다.

 상정마을 버스정류장. ‘실뱀장어 채포 허가권에 대한 해양수산부 답변이 붙어있었다. 민물에서 사는 뱀장어는 연어와 달리 바다에서 산란한다. 때문에 장어 양식장에 공급할 치어(실장어)를 바다에서 잡아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그물(낭장망 어구)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답변이다. 아무튼 실장어잡이는 불법이 성행한다고 했다. 실장어 가격이 장난이 아니라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 모기장 같은 극도로 촘촘한 그물을 사용해 실장어뿐 아니라 모든 치어를 깡그리 잡아버린다는 것이다.

 상정마을 정자는 칠산바다에 대한 조망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칠산정이란 현판을 달았다. 그렇다면 자리를 잘못 잡았다. 도로 건너의 바닷가 언덕에 얹어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상정마을을 지나 백바위 해변까지는 기분 좋은 산책로였다. 77번 국도(칠산로)의 갓길에 나무데크를 깔았다.

 중간에 전망대까지 만들어두는 세심함도 엿보인다. 칠산바다를 눈에 담아보라는 배려인 듯, 하지만 웃자란 잡목이 풍경화의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렸다.

 13 : 14. 빼어난 경관으로 입소문을 탄 백바위해수욕장에 이른다. 입구의 울창한 노송 숲은 자랑거리, 백사장도 제법 넓은데다 모래 입자가 무척 곱다. 덕분에 모래사장이나 갯벌에서 씨름·닭싸움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갯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아이들도 좋아한단다. 영광군에서 천일염·갯벌축제를 연다니 일부러라도 한번쯤 들러볼만 하겠다.

 해수욕장의 자랑거리는 아름다운 경관만이 아니다. 모래사장 너머의 갯벌은 호미로 헤집는 자리 어디서든 백합과 고둥이 나올 만큼 생태가 건강하다고 했다.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해변은 자동차 캠핑족들로 붐볐다. 그동안 서해랑길을 걸으며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보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칠산바다가 그만큼 곱다는 얘기가 아닐까?

 백사장 너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바위가 눈길을 끈다. ‘백바위(白巖)’라는 지명을 낳게 한 풍경이다. 해안가에 거대한 흰 바위 무리가 갯벌 쪽으로 길게 뻗어 나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백바위 끝에 올라앉은 정자가 풍치를 더해준다. 이곳 백바위해안은 낙조의 명소라고 했다. 정자와 한데 어우러지는 낙조의 색감도 훌륭하지만, 인적을 드물어서 감동적인 낙조풍경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란다.

 백바위는 예쁘장한 나무다리로 연결되고 있었다. 조형미 넘치는 아치를 배경삼은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 참고로 백바위는 무슨 특별한 전설이 있는 게 아니다. 바닷가에 둘러싸여 있는 바위가 하얀색을 띠고 있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

 13 : 24. 또 하나의 다리(조금 전보다 한참이나 작다)를 건너자 백암정(白巖亭)’이란 정자가 반긴다. 쉼터는 기본, 낙조를 바라보는 전망대를 겸했다. 거기에 뒤로 물러설 경우 낙조 풍경의 중심이 된다니 이만하면 다목적 정자라 하겠다.

 정자에 오르면 저 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아스라하다. 맞다. 두우리 앞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이 볼거리다. 마을 앞 10~20km 안에 영광굴비가 잡히는 칠산도, 한국관광공사가 아름다운 섬으로 꼽은 송이도, 영화 마파도 촬영장소인 각이도 등 20여개의 유·무인도가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시선을 조금 비틀자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난다. 영광 앞바다는 산처럼 보이는 일곱 개의 저 섬들이 있다하여 칠산바다가 되었다. 그 바다는 조기들의 고향이었다. 3월에서 4월 무렵,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조기 떼들로 바다는 넘실거렸고, 전국의 어선들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물 반에 고기 반, 사흘 동안 조기를 잡아 평생을 먹고 산다는 '사흘칠산'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정자를 빠져나온다. 하지만 다리 건너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커다란 백바위를 우회해 숲속으로 들어선다.

 13 : 30. 잠시 후 임도(이정표 : 종점까지 8.3km)로 올라 뒷산(81.6m)을 에도는 해안도로를 탄다. 이때 칠산바다의 고운 풍광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마침 오가는 차량도 없으니 실컷 눈에 담으면 될 일이다. 오죽 안 다녔으면 칡넝쿨이 도로 가운데까지 퍼졌을까.

 호젓하고 편안한 길은 주변까지 꽃밭으로 만들었다. 노란 금계국과 하얀 들국화가 더미를 이룬다. 그게 아스라이 펼쳐지는 바다와 함께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저게 바로 칠산이란 지명을 낳게 한 섬들이다. 그런데 섬이 여섯 개 뿐이다.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일곱 개로 나타난답니다.’ 젊은 도반이 너스레를 떤다. 그럼 난 마음씨가 썩 좋은 편은 아닌가 보다.

 고개를 돌리자 백암정이 눈에 들어온다. 백바위 해변은 노을이 없는데도 충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하얀 바위가 넓은 모래사장과 어우러져 흡사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뒷산 자락의 바닷가, 나 홀로 외로운 등대도 잠깐으로 볼거리로는 충분하다. 높이 11.5m(직경 1.8m)의 흰색 원형강관조로 인근을 항해하는 어선의 주·야간 항행지표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13 : 45-59. 뒷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 끝자락에 정자가 걸터앉았다. 칠산바다와 백수읍 들녘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쉼터 겸 전망대이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가져온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칠산바다 조망, 하늘과 바다를 반반으로 나누는 선, 그 위에 고만고만한 섬 여섯 개(정확히는 일곱 개)가 놓여있다. ‘! 피라미드처럼 생겼네?’ 코로나의 만연으로 입국 여부가 불투명하던 시절, 우리부부는 이집트를 여행 중이었다. 당시 기자지역의 사막에서 바라보던 피라미드가 문득 떠올랐나 보다.

 백수읍 갯벌에 늘어선 풍력발전기 무리도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들녘을 가득 메우며 단지를 이룬 규모는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14 : 02. 임도를 벗어나 창우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이 푸른 바다(칠산바다)에 둘러싸여있다 하여 푸를 창()’자를, 소를 닮았다는 마을 뒤 한우산에서 소 우()’자를 따와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잠시 후 이른 창우항(이정표 : 종점까지 6.5km)’은 바다를 삶의 현장 삼아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선착장이다. 하지만 널찍한 물양장에다 크레인을 두 대나 갖춰 웬만큼 크다는 항구가 부럽지 않다. 커다란 창고와 어민회관도 눈에 띈다. 지역맞춤형 소득증대사업인 어촌뉴딜 사업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선착장에는 꽤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인근 해역에 조기·꽃게·가오리·서대·새우 등 바다자원이 풍부하다는 소문이 맞나보다.

 창우항을 지나면 불갑천의 둑길을 탄다. 널따란 갯벌 위로 둑길이 뱀처럼 휘어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진다. 갯벌 사이 고인 물에 햇살이 비치자 물고기 비늘처럼 번쩍인다.

 창우항을 돌아온 갯골은 깊고 긴 물 빠진 갯고랑을 불갑산 자락까지 끌어간다. 그래서 하천의 이름까지 불갑천이 되었다. 이즈음 갯벌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흰 갈매기 때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갈대가 아니라 억새랍니다 둑길의 자취까지 지울 듯 잠식해오는 웃자란 억새를 갈대라고 했다가 집사람에게 초본(草本) 교육을 톡톡히 받았다.

 드넓은 갯벌은 온통 풍력발전기 차지다. 백수읍 하사리와 염산면 두우리의 국공유지 20여만 평에 해상풍력발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융복합 산업플랫폼을 구축한다더니 사실이었나 보다. 해상풍력발전이란 풍력 터빈을 호수나 피오르 지형, 연안 같은 수역에 설치해 그 곳에서 부는 바람의 운동에너지를 회전날개에 의한 기계에너지로 변환해 전기를 얻는 발전방식을 일컫는다.

 저 강태공은 시간이 아니라 운저리(‘망둥어 꼬시래기로도 불린다)’를 낚는 중이라고 했다. 36구간의 무미건조했던 대화가 떠올랐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한마디 더 건네 본다. ‘그럼요. 얼마나 맛있고 식감이 좋은데요’. 회로도 먹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불갑천이 좁아지더니 소하천으로 변했다. 아니 저건 염전에서 사용할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일종의 수로이다. 아무튼 건너편에서 둘레길 도반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출발지 부근처럼 이곳도 자 모양으로 길이 굽어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 염전이 들어서 있는 게 당연. 소금 만들기가 끝물이어서 일까? 염전은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저 소금밭에는 흰 소금 대신 붉은 칠면초가 자라고 있을 게다. 쓸쓸한 분위기로 대변되는 염전의 겨울 풍경...

 14 :37. ‘자형 수로의 끝(이정표 : 종점까지 4.3km)에 이른다. 저 둑을 경계로 서해랑길은 송암리(같은 염산면)’로 넘어간다.

 방조제 안쪽은 커다란 저수지가 들어서 있었다. 이곳 역시 염전에 공급할 바닷물을 가두어두는 곳. 거기에 대하양식까지 겸하고 있는 듯 통발모양의 어망이 쳐져 있었다.

 저수지를 지난 서해랑길은 이제 반대편 둑길(이정표 : 종점까지 4.1km)을 탄다.

 영광은 ‘Green Energy’의 메카다. 원자력에 풍력, 태양광까지 탈 탄소를 위한 발전시설을 모두 갖췄다. 나머지 2%는 조력(潮力)으로 채워 넣으면 완벽해지지 않을까?

 태양광발전소와 농경지 사이를 걷던 서해랑길이 다시 둑길로 올라선다. 탐방로는 풍력발전기 사이사이를 걷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다가가 본 발전기는 멀리서 볼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하나하나가 거대한 구조물이다. 누군가는 저 안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불갑천 주변은 저수지나 염전, 양어장, 수로가 많다. 그래서 사방 천지가 물이다. 물에 비치는 풍력발전기의 그림자가 아름답다.

 15 :02. 탐방로가 함께 걸어온 불갑천과 헤어지잔다. 그리고 이정표(종점까지 2.5km)가 가리키는 들녘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또 다른 들녘을 횡단한다.

 15 : 14. 77번 국도(이정표 : 종점까지 1.6km)에 닿았다. 영광풍력발전() 사옥이 있는 지점이다. 영광풍력은 국내 최대 규모인 140MW(메가와트)급의 서해안 윈드팜(Wind Farm)’이다. 72천 가구가 사용 가능한 26MWh(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111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단다.

 탐방로는 국도로 올라서지 않은 채 왼쪽 아래로 난 소로를 따른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었다. 그 끝에서 불갑천을 만났기 때문이다. 불갑천의 물길은 분명 좁았다. 그렇다고 건너 뛸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니 애초부터 다리를 건너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불갑천과 맞닥뜨린 우린 다리(불갑천교)로 올라갈만한 곳을 찾아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길을 만들었고, 가드레일을 넘어 다리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염산면과 백수읍의 경계를 이루는 다리 아래로는 불갑천(佛甲川)’이 흐른다. 불갑면 자비리의 노은재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유입되는 길이 32.5km의 물줄기이다.

 15 : 28.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난 농로로 빠져나간다. 가드레일을 잘라 통로를 만들었는가 하면, 초입에 이정표(종점까지 0.9km)까지 세워놓았다. 이럴 거라면 애초부터 다리 위로 인도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부터는 농로를 따른다. 누렇게 익은 벼들로 한껏 풍성해진 들녘을 양옆에 끼고 가는 멋진 구간이다.

 15 : 40. 하사리(下沙里)의 자연부락인 염전마을(하사6)’에 이르면서 37코스는 끝을 맺는다. 1952년 염전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하나 더, 종점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마을 노인정이 위치하고 있어 트레킹 날머리로는 이만 곳이 없었다.

 서해랑길(영광 38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농로가 백수로와 맞닿는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 ‘칠산갯길 300의 안내판도 눈에 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염전길에서 백합길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에 15.35km가 찍혀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