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6코스(향화도항-합산마을 버스정류장)

 

여행일 : ‘23. 9. 9()

소재지 : 전남 영광군 염산면 일원

여행코스 : 향화도항염전(옥실리)신흥마을내묘마을설도항합산항합산마을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4km, 실제는 14.13km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6코스를 걷는다. 7로 이루어진 함평·영광 구간의 세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긴 방조제를 시종여일 걷는다. 이때 물때에 맞춰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갯벌을 실컷 눈에 담게 된다. 자칫 지루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칠산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눈요깃거리로 삼다보면 트레킹은 어느새 끝을 맺는다.

 

 들머리는 향화도항(영광군 염산면 옥실리)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으로 들어온다. 신풍교차로(영광읍 신하리)에서 22번 국도(함평방면), 종산교차로(영광읍 신하리)에서 808번 지방도(염산방면), 봉전교차로(염산면 상계리)에서 77번 지방도(해제방면)를 번갈아 타며 30km쯤 들어오면 향화도항에 이른다.

 칠산바다의 해안선, 아니 방조제의 둑길을 걷는 14km 길이 코스다. 오늘은 전 구간을 다 걸어보기로 했다. 앞세운 집사람과의 거리는 3km, 조금만 재촉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서해랑길(영광 36코스) 안내도는 칠산 갯길 300 탐방안내도와 함께 버스정류장(칠산타워) 옆에 세워져 있다.

 11 ; 28. 향화로를 따라 포구를 벗어나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200m쯤 걷다가 첫 삼거리(이정표 : 종점 13.7km/ 시점 0.3km)에서 방향을 틀어 방조제로 간다.

 이때 칠산바다에 떠있는 목도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또 둘이 하나로 돌아오는 요술 섬이다.

 옥실리 앞바다, 무동력선 여러 척이 갯벌에 기대어 쉬고 있다. 바다를 삶의 현장삼아 살아가는 어부의 작업장이다.

 길이가 500m쯤 되는 대무마을(옥실리) 앞 방조제를 걷는다. 서해랑길 36코스는 이런 방조제들을 번갈아가며 걷는 여정이다.

 고개를 돌리자 향화도항이 눈에 들어온다. 칠산대교가 놓이면서 항구는 제 기능을 많이 잃었다. 하지만 영광권역 해안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칠산타워만큼은 요지부동이다. 함평만과 칠산바다가 한꺼번에 조망되는 높이 111m의 전망대에 올라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간척사업으로 생긴 들녘은 아직도 염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웃자란 갈대가 숲을 이룰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다.

 방조제가 끝나자 이번에는 산자락을 에돌아간다. 방조제는 아니지만 해안을 따라 길이 나있다.

 이즈음에서 우린 닭섬(kakaomap 닥섬으로 적었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닭을 닮았다는 섬이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섬은 민닭섬이다. 등대 위로 떨어지는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11 : 40. 길이가 700m쯤 되는 두 번째 방조제는 송촌마을(옥실리) 앞을 지난다.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들녘은 염전으로 가득하다. 맞다. 영광군의 염전은 568ha로 전남 서남해안 염전(3007ha) 중 신안군 다음으로 많다. 소금도 전남 전체 생산량의 19%를 차지한다. ‘소금 염(), 뫼산()’이라는 지명을 낳게 한 근원이기도 하다.

 토판염전으로 여겨지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흙판에서 소금을 만드는 친환경적인 토판염은 장판염전에서 추출한 소금보다 미네랄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염도가 낮은 데다 맛도 순해 요리에 그만이다. 그러나 장판염보다 품이 많이 들고 생산 날 수도 훨씬 짧아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후쿠오카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 때문에 시끄러운 요즘. 사재기로 인해 금값이 된 소금은 없어서 못 판다고 했다. 그런데도 저 소금밭은 왜 놀리고 있는 것일까? 경제성을 이유로 토판염전이 장판염 생산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그 과정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공간은 대하양식장 차지다. 오래 전, 소금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값싼 중국산 소금에 밀린 많은 염전이 문을 닫는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다. 당시 선택했던 대체업종이 바로 저 대하양식이었을 것이다.

 왼쪽으로는 칠산 바다가 펼쳐진다. 연평도와 더불어 그 옛날 조기 황금어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11 : 50. 방조제는 장고도(이정표 : 향화도에서 2.67km)’를 만나면서 끝난다. 간척사업이 바닷가 작은 섬을 뭍으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비탈이 심했던지 길은 신흥마을 쪽 내륙으로 에돌아간다.

 칠산 갯길 300의 탐방안내도가 눈에 띈다. 전국에 번지고 있는 걷기 열풍에 동참한 영광군이 조성한 둘레길이다. 모두 5개 코스(굴비길·노을길·백합길·천일염길·불갑사길)로 나뉘는데, 이중 불갑사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해랑길과 일치한다. 하나 더, 오늘은 4코스인 천일염길(향화도항-설도항-야월리염전-백바위해수욕장)’을 따라 걷게 된다.

 잠시 후 옥실4에 이른다. kakaomap 신흥마을로 표기하고 있으나 옥실리(玉瑟里)’를 형성하는 8개 자연부락(신옥·와룡·내묘·송정·미동·소무·송촌·대무)에는 끼지 않는다. 새로 생긴 마을일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꽤 넓은 담수호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칠산대교와 칠산타워가 겹쳐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향화로2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가다 한우사육장인 성율농장(이정표 : 향화도에서 2.9km)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마을 뒤 작은 언덕을 넘어 또 다른 방조제로 올라선다.

 꼬맹이 방조제를 지나면, 이번에는 산자락을 에돌아간다. 아니 곶부리와 곶부리를 잇는 게 방조제일지니 반대편 곶부리를 에돌아간다고 보면 되겠다.

 이때 쥐섬이 눈에 들어온다. 생긴 게 쥐를 닮았는지는 몰라도, 생쥐만큼이나 작은 섬이다. 땅 투기로 뜨겁던 시절, 친구는 여수 앞바다의 무인도를 가보지도 않은 채 샀었다. 지금까지도 애물단지로 남아있다던 섬이 저런 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2 : 08. 미동마을 앞 방조제로 올라선다.

 길이가 500m쯤 되는 방조제는 꽤 너른 들녘을 만들어놓았다. 미동마을과 송정마을 등 들녘에 기대어 살아가는 마을도 둘이나 된다.

 입질은 자주 있나요?’. ‘이제 막 왔답니다’. ‘뭐가 잘 잡히는가요?’. ‘안 잡아봐서 몰라요’. 강태공의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무미건조한 대화가 되어버렸다. 4년쯤 전 튀르키예의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만난 강태공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었고, 당시 난 팔뚝만한 물고기를 선물로 받기도 했었다.

 방조제가 끝나고 잠시지만 해안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잠시 후 해안에 다시 닿는다.

 12 : 20. 방조제가 끝나는 지점, ‘칠산갯길 300에서 이정표(장고도에서 2.96km)를 세워놓았다. 산자락을 향해 길이 나있는데도 서해랑길 방향표시는 오른쪽으로 가란다. 길이 끊겨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집사람을 따라잡은 기념으로 한 컷. 활짝 웃는 게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녀 뒤로 칠산바다가 펼쳐진다. 칠산바다는 꽃게··조기·새우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어족자원을 자랑한다. 이들은 아까 거론한바 있는 천일염과 만나 젓갈·굴비 등 2차 가공품으로 재탄생되어 영광 수산업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서해랑길은 바닷가와 이별을 고한다. 장고도에 이어 두 번째인데 내묘마을(옥실리)’을 향해 내륙으로 파고든다.

 썩 넓어 보이지는 않은 간척지는 갈대로 한가득이다. 아직도 염기가 덜 빠져나간 모양이다.

 잠시 후 이른 내묘마을(이정표 : 종점까지 9.3km)’ 옥실리(玉瑟里)’를 형성하는 8개 자연부락 중 하나다. 마을 지형이 고양이 머리를 닮았다 하여 괴머리라 불렀으며, 그 후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묘라 부른다.

 그렇지 않아도 꼬맹이 마을인데, 두어 곳은 아예 폐가로 방치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전라도를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움 인정과 풍요로운 자연을 보고 팔불여(八不如)를 말했다. 그중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영광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저런 풍경이라니.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마을 뒤 고갯마루를 넘으면 또 다른 방조제가 반긴다. 길이가 1.5km나 되는 긴 방조제다.

 12 : 39-49. 둑길이 하도 길다보니 쉼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저런 정자가 세 개나 길손을 맞고 있었다. 덕분에 우린 준비해간 간식을 나눠먹으며 여유롭게 쉬다 갈 수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그 너머에 논농사로 업을 삼는 신옥마을과 신오마을 등 옥실리와 오동리의 자연부락들이 들어앉았다.

 일주일 후면 추분(秋分). 둑길도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가을의 전령 인 물억새, 가을이 깊어갈수록 색이 짙어진다는 갈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KBS-2TV 건강 혁명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2년 제작 과정의 장기 프로젝트로, 전국에서 모집된 30여명의 당뇨 환자들이 매월 23일의 캠프를 차리고 설도항의 아름다운 해변을 걸으며, 운동법·식습관·생활습관 등의 미션 수행을 통해 당뇨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던 프로그램이다.

 13 : 02. 젓갈 생산지로 유명한 설도항(雪島港)’으로 들어선다. 멸치며 민어, 조기 등 수산물을 깔아놓은 좌판이 주욱 늘어서 있고 갈매기들이 자유로이 유영하는 작은 포구다. 하나 더, 설도는 원래 와도(臥島, 사람이 누워있는 모양새란다)라는 조그만 섬이었다. 1930년께 설도관문이 건설되면서 육지의 바닷가로 변했다. 이 와중에 누운섬 눈섬이 되었고, 이게 또 한자로 변환되면서 설도(雪島)로 굳어졌다.

 자그마한 포구는 선착장도 아담하다. 하지만 통통배부터 중형의 고기잡이배까지 정박하고 있는 어선의 크기나 숫자는 서해안답지 않게 컸다. 인근 어장에서 잡히는 수산물의 양이 그만큼 짭짤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설도는 가슴 아픈 현장이기도 하다. 6.25 전쟁 중 공산당에 의해 수많은 기독교인이 희생됐다. 그 현장에 기독교인 순교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독교인 순교탑을 세워 놓았다.

 설도항은 젓갈 생산지로 유명하다. 고만고만한 젓갈 가게들이 줄지어 섰다. 하지만 내 집에 들든 네 집에 들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호객행위가 없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 구입해도 맛과 가격이 같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여담 하나, 옛날 농사와 고기잡이를 함께 해야 하는 갯마을 어머니들에게 반찬 마련은 이중고였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미리 반찬을 만들어 놓을 수도 없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젓갈이다. 새우·송어 등 재료가 흔했고, 거기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설도항의 명물 젓갈타운은 고깃배 모양으로 따로 지었다. 앞바다에서 잡히는 새우·꼴뚜기·조개·멸치 등 각종 수산물에 천일염으로 간한 다양한 젓갈을 팔고 있음은 물론이다. ‘잡젓도 그중 하나. 황석어젓·밴댕이젓·곤어리젓으로 잡젓을 만들고, 풋고추를 담가 석 달 정도 숙성시킨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밥도둑이 따로 없단다.

 수산물판매센터는 젓갈타운과 함께 설도항의 주축을 이룬다.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신선한 활어와 꽃게·왕새우·낙지 등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안강망이나 닻자망으로 잡은 수산물을 수협을 거치지 않고 어민들이 직접 판매하기 때문이다.

 입주 상점들은 하나같이 영세했다. 커다란 수족관으로 치장된 다른 수산시장들과는 달리 작은 고무통들만 눈에 띈다. 그나마 수산물을 반도 채우지 못했다.

 13 : 10.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염산방조제의 둑길을 걷는다. 직진으로 뻗은 길은 차 한 대가 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에 앞뒤로 오가는 자동차를 유의해 다니는 편이 좋다.

 이 구간은 자전거로 달려 볼 수도 있다. 염산면사무소에 비치된 약정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자전거(안전모와 무릎보호대 포함)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사전예약도 가능하단다. 참고로 자전거 둘레길은 설도항에서 봉양들까지의 방조제(7km)와 염전 및 청보리밭을 감상할 수 있는 농어촌도로(5km)를 합쳤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덧 남도의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젓갈과 자연산 횟집으로 유명한 설도항에서의 먹거리는 덤이다.

 오른쪽으로는 방조제를 쌓아 만든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그 너머 봉덕산(295.6m) 자락에는 염산면 소재지인 봉남리가 들어앉았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봉남평야가 펼쳐진다. 1930년대 설도를 사이에 두고 옥실리와 야월리 방향으로 각각 방조제를 쌓았다. 이때 저 들녘이 생겨났고, 설도는 섬에서 육지로 바뀌었다.

 봉양들로 가는 방조제를 걷는다. 바다를 향해 줄곧 달린다고나 할까? 하나 더, 이 구간 역시 건강 혁명의 촬영지이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길가 들녘에서 생산되는 찰쌀보리·새싹보리·보리빵과 영광의 특산물인 청보리 한우·굴비 등이 제공됐다.

 졸지에 한나라의 공주로 둔갑해 남흉노로 시집가던 왕소군은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고 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다. 하지만 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를 외친다. 여름철에 피어야할 금계국이 입추가 내일모래인데도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봄꽃인 민들레도 한 몫을 거든다. 하지만 국내 산천을 접수해버렸다는 서양민들레가 아닌 순수 토종민들레로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꽃받침(총포)이 뒤로 젖혀져 있지 않고 곧게 감싸고 있으면 토종민들레라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쯤 걸었을까 농경지가 끝나는가 싶더니 들녘이 온통 물 밭으로 변해버렸다. 커다란 합산제를 중심으로 고만고만한 저수지들이 줄을 이룬다. 양식시설이 집단으로 들어섰다는 얘기일 것이다.

 13 : 40. 지자체도 이때쯤이면 다리가 뻐근해질 것임을 예상했던 모양이다. 정자를 지어 잠시 쉬어가도록 했다. ! 이곳은 단축코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점이기도 하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을 에돌지 않고 간척지 들녘을 횡단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1.5km 정도가 단축된다.

 단축코스에 대한 유혹을 겨우 떨쳐내고 이정표(종점 4.8km/ 설도항 2.3km)가 가리키는 종점 방향으로 간다. 집사람은 물론 단축코스를 선택했다.

 이즈음 썩 내키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간척지에 그보다도 더 넓어 보이는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 결정이겠지만, 원자력을 축소하면서까지 장려된 점은 분명 문제다. 이는 발전단가를 상당히 높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시선을 조금이라도 옮길라치면 저만치 눈앞에는 어김없이 칠산타워가 놓여있다. 맞다. 이곳 영광의 랜드마크는 칠산타워라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아무리 해안 길을 빙글빙글 돌아도 눈앞에서 칠산타워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둑에 걸쳐놓은 저 시설의 용도는 대체 뭘까. 칠산바다를 실컷 구경해보라는 전망대일지도 모르겠다.

 발아래는 끝없는 갯벌, 뻘 바다에 올라앉은 어선, 너른 개펄에 놓인 통발과 행여나 통발에 걸릴까 집게발 들고 조심조심 오가는 게들을 관찰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밋거리일 것이다.

 둑길은 가고 또 가도 끝이 없다. 그나저나 가을이 무르익어가나 보다. 공활한 하늘은 푸름을 한껏 자랑하고, 쏟아지는 햇살은 화사했다. 그 푸름에 바다가 더해진다. 그러자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이 티가 되어버린다.

 간척지가 하도 넓다보니 대하양식장도 단지를 이루고 있다. 다른 지역의 양식장들과는 달리 대하를 잡는 통발 모양의 어망도 눈에 띈다.

 바다에 타워와 다리가 겹쳐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14 : 08. 드디어 바다를 향한 긴 여정이 끝을 맺는다. 서해랑길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저곳(둘레길 자전거여행 안내도는 합산항으로 적고 있었다)을 반환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끄트머리에는 선착장(이정표 : 봉양들 3.16km/ 설도항 4.36km)이 만들어져 있었다. 쉼터용 정자도 들어섰다. ‘월봉마을 어민들을 위한 시설로 보이는데, 정박하고 있는 배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 건너는 무안군(해제면) 도리포, 그 사이에 김 양식을 위해 세운 지주가 숲을 이룬다. 맞다. 도리포 인근 갯벌에서는 일찍부터 김 양식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지주식으로 곱창김을 생산하는데, 일반 김보다 채취 횟수가 적어 대량 생산이 어려운 반면 김 값이 훨씬 좋단다.

 이후부터는 조개산(118.2m)을 전방에 두고 걷는다. 대하양식장과 태양광발전소 등 아까 합산항으로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역순으로 펼쳐진다.

 집사람과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던 둘레길 도반을 따라잡았다. 80대 중반을 바라보는 연세이신데도 아직도 노익장을 자랑하신다.

 건너편에는 37코스가 지나가는 월평항이 있다.

 길은 가음방저수지와 내남저수지, 봉양저수지로 연결되는 수로형 내만의 둑길을 따라간다.

 트레킹이 막바지에 이르자 마음부터 여유로워진다. 그러자 누렇게 물들어가는 봉남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저런 들녘이 있었기에 영광이 ‘4()’의 고장으로 불렸을 게고 그 속에 쌀이 끼어 있을 것이다.

 조개산(118.2m)이 성큼 다가왔다. 그 앞이 종점인 합산마을이다. 1927년 간척지가 조성되고,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생긴 마을이다. 봉남리(奉南里)를 구성하는 6개 자연부락(동촌·내남·합산·설도·한시·봉전) 중 하나로 합산(蛤山)’이란 지명은 마을 뒷산이 조개처럼 생겼다는데서 유래했다.

 14 : 42. 합산갑문을 지나 합산마을 앞 도로(칠산로5)에 이르면 트레킹이 끝난다. 염산방조제의 끝이자 버스정류장(합산마을)에서 100m쯤 떨어진 지점이다. 오늘은 3시간 10분을 걸었다. GPX트랙이 14.13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서해랑길(영광 37코스) 안내도는 방조제와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하나 더, 시작점 표시판은 안내도 기둥에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