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4코스(상수장마을-돌머리해변)

 

여행일 : ‘23. 8. 12()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현경면과 함평군 함평읍 일원

여행코스 : 상수장마을송정교차로하수장마을유수정마을외현화마을내현화마을파도목장돌머리해변(거리/시간 : 17.2km, 실제는 현경면사소부터 14.62km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4코스를 걷는다. 7로 이루어진 함평·영광 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함해만의 동쪽 해안을 따라 무안군에서 함평군으로 간다. 덕분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비경들을 곳곳에서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전천후 풀장 등 다양하게 꾸며진 돌머리해안은 잠시 쉬었다가기에도 충분하다.(이 후기도 무안문화원의 자료가 많이 활용됐습니다)

 

 들머리는 상수장마을(무안군 해제면 송정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방면으로 들어오다 송정교차로(해제면 송정리)에서 현해로(해제방면)로 옮겨 400m쯤 들어가면 상수장(3)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50m쯤 들어가면 24번 국도의 가드레일에 닿는다. 서해랑길(무안 34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가드레일 아래에 세워져 있다.

 해제반도의 동쪽 해안(함해만과 면한)을 따라 걷는 17.2km짜리 코스이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코스를 조금 단축했다. 5.7Km를 줄인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시간을 감안 현경면소재지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는 현경면 소재지인 외반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했다. 77번 국도에서 곧바로 서해랑길로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접근성에 대한 설명이 난감해 거리를 조금 늘리기로 했다.

 11 : 45. 815번 지방도(장군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때 5층짜리 아파트가 눈에 띈다. 이곳 외반리의 규모가 제법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11: 55, 현경중학교를 지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77번 국도가 나타난다. 서해랑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gpx트랙은 시점까지의 거리를 4km로 찍고 있다. 하지만 내 앱은 0.7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아낸다더니, 약하디약한 집사람에게도 내 코스를 3.3km나 줄여줄 능력이 있었나 보다.

 서해랑길은 국도 아래로 난 소로를 따른다.

 200m쯤 걷다가 굴다리 근처(이정표 : 종점 12.6km/ 시점 4.6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구릉지로 올라선다. 이곳은 황토로 유명한 해제반도.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푸름으로 물들었다. 무안의 또 다른 특산물인 고구마와 콩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본래의 황토색을 덮어버렸다. 맞다. 무안은 요즘 구릉지마다 고구마 밭의 긴 이랑들이 줄지어 펼쳐진다. 지난 겨울 양파 밭이 그렇더니, 이 여름엔 또 고구마 밭들이 붉은 황토색 밭을 온통 푸르게 뒤덮어 버린다.

 그렇게 10분쯤 걸으면 유수정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평산리(平山里) 4개 자연부락(원평산·평림·통정·유수정) 중 하나로 유수정(流水亭)이란 지명은 감방산 아흔아홉 구비에서 흘러내린 물이 평산을 지나 마을 앞으로 흘러간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한 해방 전까지 마을 뒤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게 시원한 정자구실을 톡톡히 한다며 ()’ 자를 붙였다나?

 마을회관 앞 빗돌은 마을의 유래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200년쯤 전 장흥고씨가 터를 잡았고, 이후 여러 성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커졌단다. 빗돌은 또 장흥고씨 후손들이 마을 앞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고, 임야를 개간하면서 마을을 부촌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널따란 들녘이 펼쳐진다. 무안문화원은 고기주라는 이가 서해바다라는 식당이 있는 곳에서 노두목까지 제방을 막았다고 적고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들녘 덕분에 부촌이 되었다며 마을 주민들은 칭송하고 있었다.

 들녘의 끝, 그러니까 건너편 구릉지 아래에도 작은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무안문화원의 자료에서 본 저건너란 마을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확인해볼까 민가를 기웃거리는데, 누렁이 두어 마리가 단체로 짖어대는 게 아닌가. 아서라. 난 그저 마을 이름이 궁금했을 따름이란다.

 12 : 16. 길을 나선지 30, 815번 지방도의 평산4리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평산4리는 유수정마을의 행정단위이니 유수정의 입구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이곳에서 함해만과의 첫 대면이 이루어진다. 바닷가에는 흰발 농게(수컷의 하얗고 큰 집게발이 특징)’ 대추귀 고둥(주둥이 쪽이 사람 귀처럼 생겼고, 전체적으로는 대추를 닮았다)’의 집단 서식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이니 무단 채집이나 쓰레기 투기를 금지한단다.

 잠시지만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집사람은 출발도 하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낭군과 함께 걷겠다며 2.4km쯤 뒤에서 출발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바다는 온통 황토색깔이다. 맞다. 이곳 함해만은 자연 침식된 황토와 사구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런 특이성을 인정받아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지난 2001년 전국 최초 습지보호지역지정, 2008년 람사르습지 등록, 같은 해 6월에는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함해만의 빼어난 경관을 구경하며 200m쯤 걷다가 구릉지로 올라선다. 이때 해제반도의 전형적인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양파 수확이 끝나고, 속살을 드러낸 농토가 온통 황토색이다. 얼핏 보기에도 한없이 부드럽고 기름지다. 그러다보니 저 땅은 언제나 푸름을 물든다. 늦가을 무와 배추 수확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어도 일대 들판은 푸른빛이 펼쳐진다. 대파와 양파, 마늘이 황톳빛 들판을 뒤덮기 때문이다.

 구릉지에서의 둠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릉지는 농업용수 확보가 생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팠다. 얼마나 물이 절실했으면 한 방울의 물도 아까워 바닥에 비닐까지 깔았을까 싶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다. 이를 알리는 입추도 며칠 전에 지났다. 수확을 마친 저 참깨 단이 그 증거라 하겠다.

 구릉지를 헤집는 탐방로는 요리조리 잘도 방향을 튼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게 서해랑길의 가장 큰 장점이니 말이다. 서해랑길의 방향표식과 리본으로도 모자라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까지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 웃자란 잡초로 뒤엉킨 밭이지만 금화규가 어여쁜 꽃을 피워냈다. (항산화·항바이러스·항알레르기·항균) 작용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최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약초이다. 하지만 기르는 게 쉽지는 않은 듯. 동네 할머니는 어렵사리 씨앗을 구해 심었는데 자라라는 약초 대신 잡초만 한가득이라며 입을 석 자나 내밀고 있었다.

 12 : 38. 2차선 도로인 현화로로 올라선다. 이어서 300m쯤 떨어진 외현화마을 입구까지 이 길을 따라간다.

 길가에 효부 금성나씨 기행비가 세워져 있었다. 여자들에 대한 칭송은 열부(烈婦), 즉 남편에 대한 순종과 수절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도 이 빗돌은 효부로 적었다. 그게 특이해 자료를 찾아봤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외현화마을(현화1) 입구. 버스정류장에 적힌 로두목이란 지명이 눈길을 끈다. 두음법칙을 적용 노두목으로 적는 게 보통일 텐데, 누군가의 위트가 더해지면서 정감어린 지명으로 변했다. 하나 더, 여기서 노두(路頭)는 갯벌을 건널 때 발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놓은 징검다리를 말한다. 그러니 저 로두목마을은 바닷가일 게 분명하다.

 작은 고개 하나를 넘자 외현화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법정 동리인 현화리(玄化里)를 구성하는 6개 자연부락(외현화·청룡·내현화·성자동·절동·노두목) 중 하나이다. 새터와 구터로 이루어진 마을은 지형이 게()의 형국이란다. 구터와 새터가 게의 두 발이고 마을 앞에 있는 두 개의 선독이 게의 눈에 해당된다나? 하나 더, 옛날에는 저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들은 게가 거품을 품을 수 있어 당시는 부자마을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닷물이 끊기면서 게의 거품이 일어나지 않아 마을도 가난하게 되었단다.

 동구 밖에는 전주최씨 삼강문이 들어서 있었다. 삼강(三綱)이란 한나라의 동중서와 반고가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강조한 세 가지 덕목(··)이다. 이 집안에서는 임진왜란 때 충신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제남을 충()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하늘의 감응을 이끌어낸 달신과 그의 아들 상효를 효(), 그리고 열()은 상효의 부인인 죽산안씨가 주인이다. 안씨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전염병으로 위독하자 허벅지살을 베어 약제로 사용함으로써 병을 낳게 하였단다. 삼강문 안에는 이를 기리는 2기의 비석이 있다.

 길가에 유정각을 지어 주민들뿐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쉼터로 제공하고 있었다. 문객들로 붐비던 옛날이 그리웠나 보다. 참고로 조선 말, 최동현( : 노강)이란 선비가 이 마을에 살았더란다. 덕분에 그에게 배움을 원하는 수많은 인재들로 마을은 항상 붐볐고, 고을에 원님이 부임할 때는 직접 노강 선생을 찾아와 담소를 나누었을 정도였단다.

 건너편 구릉지에는 제각이 들어앉았다. ‘미수목란(난초가 필락말락 하는)’의 형국에 지었다는 전주최씨 제각 목란재가 아닐까 싶다. 이 집안에서 고시 합격자를 5명이나 배출했다니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탐방로는 구터를 지나 새터로 간다. 이어서 벽화로 치장된 마을안길을 지나 뒤편 들녘으로 빠져나간다. 원픽한 예쁜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딱 좋은 구간이다.

 마을 앞에 서있는 저 바위가 게의 눈에 해당된다는 선독일지도 모르겠다. 뜬 눈에 해당된다는 새터의 그 바위 말이다.

 마을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현화리의 주산인 태통산(兌通山, 55.1m)’을 에둘러 간다. 추석 때 현화리의 주부들이 저 산에 모여 강강수월래를 하며 정을 확인했단다. ‘화합의 장이었던 셈이다. 당시는 정상 부근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져 풍치가 대단히 좋았다고 전해진다.

 12 : 58.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2, 탐방로는 내현화마을에 이른다. 와우형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지형이 주민들의 넉넉한 심성을 만들어주었다는 마을로, 조선시대의 대학자 미수 허목의 제자 김석구(金錫龜(호는 玄圃) 배우고 익히며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하며 이곳에 터를 잡았단다.

 ! 내가 동경해온 풍경이 아닌가. 취선루(醉仙樓), 이백(李白)만 술과 달을 희롱하는 게 아니라는 저 배포가 부럽기만 하다. 벽에 적힌 싯구도 감성 풍부한 나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 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 녀석 와락 안았더니 눈물이더라/​ ​세월 안고 그리움의 눈물 흘렸더니 아! 빛나던 사랑이더라>

 마을 앞 팽나무 그늘에는 정자가 들어앉았다. 유리문을 달아 신발을 벗어야만 이용할 수 있던 외현화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통째로 개방되어 있다. 덕분에 우린 걸터앉은 채로 준비해간 간식을 나누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긴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덕분에 할머니들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먼저 밀고 다니던 유모차가 자신만을 위해 제작된 자가용으로 바뀐다. 편의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췄으니 모터가 없는 수동이라고 해서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던 것이 요즘은 모터까지 달아 젊은이들의 승용차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은포 김영원이란 이의 기행비도 눈에 띈다. 마을의 양대 성씨인 김해김씨가 낳은 효자로, 무안군청 홈페이지는 그의 효행을 친병에 상분하고 정간에 애훼과인하다고 적고 있었다.

 이번 구간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시설물들을 자주 활용하게 된다. 무안지역은 갯벌 낙지길을 브랜드로 내세우는데, 그중 평산4리 버스정류장에서 해운보건소까지의 1구간(마을과 들녘 : 9.3km) 대부분이 서해랑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15분 정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4분쯤 더 걸어 현화로(이정표 : 종점까지 8.2km)’로 올라선다. 만나는 지점에 생록동의 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렇다고 도로를 따르지는 않는다. 곧바로 횡단해 생록동 마을을 향해 간다. 사슴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고 해서 그런 지명을 얻었다.

 4분쯤 더 걸으면 삼거리, 왼쪽은 생록동으로 이어지는 길,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간다. 이정표는 4.5km 전방에 후동마을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때 현화리의 나머지 자연부락들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감방산(259m) 자락에 들어앉은 구산마을과 성자동마을이다. 현화4리에 속한 작은 부락들로 감방산 아래 815번 지방도(장군로)를 사이에 두고 내현화 마을과 마주보는 형세이다.

 탐방로는 들녘을 향해 나아간다. 눈에 익숙한 구릉지가 아닌 걸 보면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겨났을 것이다.

 이 동네는 마음 고운 이들로 가득한 가 보다. 길가에까지 꽃밭을 만들었다. 덕분에 나그네들은 예쁜 낮달맞이꽃을 눈에 담으며 걸을 수 있었다.

 생록동 삼거리에서 8. ‘광덕1교로 현화천을 건넌다. 그리고는 하천 둑길을 따라 바닷가로 간다. 하천변에는 야관문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원래 이름은 비수리’, 잘게 썰어 술로 담가 먹는데, 이게 남자의 정력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약재명인 야관문(夜關門)으로 세간에 입소문을 탔다.

 야관문의 약효를 의심하면서 걷길 8. ‘약효가 없다로 결론이 날 즈음 함해만에 이른다. 물 빠져나간 바닷가에는 꼬맹이 고깃배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주인을 모시고 고기잡이 나갈 물때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방의 안쪽, 한때 양식장이었을 법한 연못은 방치되고 있었다. 대하양식장으로 그만이겠는데도 말이다.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건너편 해제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맑고 고운 황토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맞은편 해제반도까지 짧은 곳은 7km, 먼 곳은 11km까지 드넓은 갯벌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다. 갯벌은 하루 두 번 물이 들고 나면서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6시간마다 스멀스멀 갯골을 기어오른 바닷물은 다시 눈에 띄지 않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를 반복하면서 갯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는 저런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느긋이 쉬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눈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가라는 모양이다.

 계단 모양으로 만든 방조제도 눈에 띈다. 단에는 구멍을 뚫어놓았다. 이게 또 자다르(크로아티아)에서의 추억을 소환시킨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인데, 그곳도 역시 돌로 만든 방파제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었기 때문이다. 파도가 일렁이면서 이 구멍으로 물결이 밀려들어가고, 이게 방파제 밑의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면서 오르간처럼 소리를 내는 것이다. 파도의 크기와 속도에 따라 다른 음을 내는 것은 물론이다.

 바닷가 갈대밭은 가을철이면 또 다른 볼거리로 제몫을 할 수도 있겠다. 하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갈대꽃만으로도 아름다울 텐데, 그 너머로 해제반도의 빼어난 풍경까지 더해진다면 이 아니 아름답겠는가.

 눈의 호사는 10분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는 바닷가를 떠나 내륙으로 향한다.

 잠시 후 2차선 도로인 해운로로 올라선다. 이정표는 34코스의 종점인 돌머리해변까지 5.6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14 : 00.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갯벌체험과 낙농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파도낙농체험농장에 도착했다. 치즈만들기, 젖소 젖짜기 등 다양한 낙농체험 프로그램으로 억대 농외소득을 올리는 알짜 목장이라고 한다. 농촌 살림도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목장의 끄트머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는 1.7km전방에 있는 후동마을을 가리킨다. 서해랑길도 이를 따르면 된다.

 탐방로는 바닷가를 향해 간다. 하지만 바다를 코앞에 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겨난 들녘으로 들어선다.

 들녘에 들어선 길은 요리조리 잘도 방향을 튼다. 이유는 단 하나, 해운천과 자명천에 놓인 다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이 구간은 서해랑길의 표식에 더해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파도목장에서 21, ‘해운1로 해운천을 건넌 다음 둑길을 따라 바닷가로 간다. 오리농장이 줄을 잇는 구간이다.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바닥을 드러낸 담수호(?)가 떡하니 길을 막는다. 탐방로가 내륙을 향해 방향을 틀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자명천을 건넌다. 이름조차 없는 이 다리가 군경계이다. 무안군을 누비던 서해랑길이 이 다리를 건너 함평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4 : 30. 잠시 후 바닷가에 이르니 다리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공사 중이기는 하지만 건너다닐 수는 있는 것이다. 이는 아까 파도목장에서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이곳으로 와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괜히 알바를 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진행방향 저 멀리서 34코스가 종료되는 돌머리해안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함평 땅에서 만난 갯벌은 아까와는 많이 다르다. 맑고 고운 황토색이 아니라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하지만 보여주는 풍광만큼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모래톱이 고와 카메라에 담아봤다. 모래톱(沙濱)은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인해 생긴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해안을 말한다. 그게 오래가면 비진도처럼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안길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걷는 게 썩 편하지는 않았다.

 목적지인 돌머리해안이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해안선을 따라 빙 둘러 가야하기 때문에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까 해안에 올라선 후로 35분이나 더 걸어야만 했다.

 갯벌은 온통 구멍투성이다. 맞다. 이곳 함해만에는 해양수산부 지정 해양보호생물인 흰발농게, 대추귀고둥을 비롯한 250종의 저서생물이 살아간다. 또한 칠면초, 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 혹부리오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약 52종의 철새 등 많은 생명체가 이곳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15 : 06. 드디어 종착지인 돌머리해안에 도착했다. 첫 만남은 ‘Stone Dahlia’ 호텔&리조트이다. 해안선을 따라오면서 랜드마크삼아 방향을 잡았던 건축물로, 객실에서의 프리미엄급 spa ocean view, 거기에 갯벌체험이 더해지면서 최근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리조트 앞 갯벌은 게나 조개, 해초류 등을 직접 잡아볼 수 있는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나보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노두 주변에서 뭔가를 잡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탐방로는 리조트의 왼쪽 옆구리 쪽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우린 바닷가를 걸어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30m쯤 걷다가 광산김씨세장산 빗돌 앞에서 탐방로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잘 생긴 거북이 한 마리를 포획할 수 있었다. 보라. 바닷가 해식애 속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있는 저 거북이를.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면 전망대가 반긴다. 아니 3층 높이에 조망대가 있으니 전망타워로 불러도 되겠다. 트레킹의 막바지, 이미 바닥을 보이는 체력 때문에 3층 높이의 계단은 다소 부담스럽다. 하지만 함해만이 한눈에 쏙 들어오니 어찌 올라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내 예상은 옳았다. 일망무제의 조명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내륙을 향해 항아리처럼 파고들어온 함평만이다. 그 건너는 해제반도, 폭이 불과 400m 정도인 송정리 땅으로 인해 뭍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저 멀리 함해만 입구에는 칠산대교가 놓여있다. 함해만은 반 폐쇄적인 특성을 지닌다. 면적이 344(길이 17km/  1.8km)쯤 되는데, 입구에서 영광의 칠산 바다를 만난다. 길이 109.2km의 해안선이 원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맨 오른쪽에는 백사장의 길이가 1Km쯤 된다는 해수욕장이 들어앉았다. 아니 돌머리지구 연안유휴지 개발사업(85억 원이나 들였단다)’이 만들어낸 일종의 유원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 일대에 해변탐방로·갯벌탐방로·어린이풀장·해수풀장·오토캠핑장 등 친서민 휴양시설을 조성했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잠시 쉬었다가라는 듯 정자를 지어놓았다. 눈요깃거리로 예쁜 돌탑도 쌓아올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함평만 생태보존기념비’, 함평 땅에 들어서더니 함해만이 함평만으로 둔갑해버렸다.

 그 옆에는 어린이 물놀이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워터버킷·워터슬라이드 등을 갖춰 해수욕과는 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돌머리해수욕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썰물 때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끌어와 인공풀장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무려 7480나 된단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해수를 교체해준다니, 피서객들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서해의 특징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무척 크다는 것이다. 그런 서해에서도 가장 큰 곳을 고르라면 단연 이곳 돌머리해안이 꼽힌단다. 그런 특징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게 갯벌탐방로이다. 해수풀장 근처에서 405m의 탐방로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다. 그 끝에는 물이 차면 보이지 않는 암초가 있다고 한다. 이 암초를 돌머리라고 부르는데, 이게 해안의 이름이 됐다.

 해안은 거의 유원지 수준이다. 샤워장·취사대·매점 등 편의시설을 두루두루 갖췄는가 하면, 원두막과 야영장 등 웬만한 유명 관광지가 부럽지 않게 잘 꾸며 놓았다. 하긴 깨끗한 갯벌, 아름다운 낙조, 상쾌한 소나무 숲이 부각되면서 전국 청정해수욕장 20에 선정되기도 했다니 어련하겠는가.

 물이 빠져나간 해수욕장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생태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에서 게, 조개 등이 살아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고, 마음 내키면 직접 잡아볼 수도 있다. 또 전망대 쪽으로 가면 자연산 석화(이 지역에서는 이라 부르기도 한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갯바위도 만나게 된다.

 서해랑길 35코스(함평)의 안내판은 해수풀장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부근에 편의점이 있어 맥주 두어 캔(집사람은 아이스크림)을 챙기는 행운까지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이 14.62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