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5코스(돌머리해변-향화도항)

 

여행일 : ‘23. 8. 26()

소재지 : 전남 함평군 함평읍·손불면 및 영광군 염산면 일원

여행코스 : 돌머리해변주포항대발마을석계마을농암마을월천방조제안악해변함평항향화도항(거리/시간 : 19km, 실제는 첨단양식장부터 13.47km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5코스를 걷는다. 7로 이루어진 함평·영광 구간의 두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함평만의 동쪽 해안을 따라 함평군에서 영광군으로 간다. 덕분에 함평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트레킹 내내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주요 볼거리로는 안악해변의 꽃밭과 칠산타워의 조망을 꼽을 수 있다.

 

 들머리는 돌머리 해수욕장(함평군 함평읍 석성리)

서해안고속도로 함평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따라 함평방면으로 2km쯤 내려오다 양림교차로(함평읍 진양리)에서 주포로로 옮겨 4.5km쯤 들어가면 돌머리해수욕장이 나온다. 서해랑길(무안 35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해수풀장 근처에 세워져 있다.

 해제반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걷는 19km 길이의 코스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6Km를 줄여 첨단양식장 버스정류장(첨부된 지도의 석창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산악회의 배려로 중요 포인트인 돌머리해변과 주포항을 둘러봤으니 봐야 할 것들은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고 보면 되겠다.

 이동 중 들른 주포(酒浦), 옛 이름은 주항포(酒缸浦, 1865년 간행 대동지지 지명), 1900년대 초부터 주포로 부르기 시작했다. 주막이 많은 포구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주포방조제가 건설되고 구주포가 포구의 구실을 못하게 되자 신설포로도 불리었는데, 당시는 서해에서 잡은 수산물의 집산지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단다. 그러니 주막이 많았을 것은 당연, 하지만 어선이 대형화 되는 1955년 이후 점차 사양화되어 폐항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1962년 돌머리해수욕장 개장으로 횟집이 늘어나면서 본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만 잡히는 엽삭(곰삭은 엽삭젓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단다)’이란 특이한 물고기가 있었다고 했다. 황실이(강달이준치·조기(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등도 주포항으로 모였단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포구는 서너 척의 어선이 매어져 있을 뿐 한적하기 짝이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는 싯구가 떠오를 정도로...

 쇠락한 포구의 물양장은 텅 비었다. 하지만 옛날, 특히 배가 들어온 날의 주포는 북적거렸다고 한다. 만선의 풍어를 알리는 배는 오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고, 주머니가 두둑한 어부들로 붐비던 주포는 술과 음식이 넘쳐나고 노랫소리가 드높았단다. 주포의 이름에 술 주()’자가 박혀있는 이유일 게다.

 돌머리해수욕장이 개장된 뒤로 찾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지자체가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수산물 직거래장터를 열었다. 그 옛날 주포를 먹여 살리던 뱃사람들 대신, 이젠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린다고 보면 되겠다.

 물양장 난간에 서면 함평만의 풍광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35코스가 시작되는 돌머리 해안은 물론이고, 그 너머로 서해랑길을 답사하면서 걸었던 현경면과 해제면의 해안, 즉 곶부리로 점철되던 아름다운 해안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른쪽에는 석창리를 에돌아가는 해안이 있다. 중앙에 보이는 산은 두류봉’, 그 왼쪽 끝을 돌꼬리(돌고지)라 부른다고 했다. 석창리의 포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포구의 오른쪽은 주포방조제다. 동쪽 깊숙이 파고든 함해만을 가로막은 방조제로 이로 인해 장교리(함평읍)과 궁산리(염산면)에 드넓은 들녘이 만들어졌다. 저 방조제는 수랑개라는 지명을 만들기도 했다. 바다를 막은 간척지의 진흙탕 즉 질흙 투성이 갯가로 발이 술술 빠지는 수렁의 갯가라는 뜻이다.  수랑개 술항개를 거쳐 주포가 되었다는데. 낭만적인 이름으로 이보다 더한 이름이 있을까 싶다.

 포구 근처에는 한옥 전원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주변의 볼거리(함평만의 황홀한 낙조)와 놀거리(돌머리해수욕장), 먹거리(식당·카페)를 연계시킨 체류형 관광단지로, 50여 동의 한옥 가운데 30여 동이 민박으로 쓰이고 있단다.

 주포방조제 끄트머리에는 함평의 명물 해수찜 마을(손불면 궁산리)이 있다. 유황이 함유된 돌을 소나무로 달구어 데운 물로 찜질을 하는 곳인데, 함평의 바닷가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간요법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해수찜은 따뜻한 물이 담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아니다. 해수에 뜨겁게 달군 유황석을 넣은 물에서 나온 증기로 몸을 데우고, 그 물에 적신 수건을 몸에 덮는 방식이다. 우리가 흔히 경험한 해수탕과는 완전히 다르다. 피부질환·신경통·당뇨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의 해수찜은 세종실록의 도자기 가마를 이용한 한증법을 계승·발전시켰다고 한다. 가열한 유황석을 쑥·삼못초·뱀딸기풀 등의 약초가 담긴 해수탕에 넣어 데워진 물로 찜질하는 것. 뒤뜰 아궁이에서 갓 구워낸 유황석을 넣은 탕의 온도는 섭씨 7080.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수건에 물을 적셔 찜질한다. 이렇게 하면 온천과 약찜의 효능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실제 출발지는 첨단양식장 버스정류장(함평군 손불면 석창리)’이다. 돌머리해수욕장에서 811번 지방도를 타고 손불 방면으로 6km쯤 오면 나온다.

 11 : 20. 서쪽, 그러니까 함평만을 향해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정표에 적힌 첨단 양식장 300m쯤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담수어 양식단지, 첨단시설을 갖춘 입주업체들은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인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적용업소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위해 물질이 섞이지 않은 담수어(장어)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바닷가에는 둥근 반지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양식장에서 기르고 있는 장어를 형상화했는데, ‘대지의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참고로 뱀장어는 함평군의 군어이다. 함평군은 이밖에도 군 나비인 호랑나비와 은행나무·춘란·비둘기 등을 군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갖고 있다.

 줌을 당기자 돌머리해안이 성큼 다가온다. 둥그렇게 울타리를 쳐놓은 곳은 낙지 산란장(낙지목장이란 이름표를 달기도 한다)’일 것이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갯벌낙지의 보존을 위해 낙지 산란장 조성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단다.

 서해랑길은 함평면의 해안선을 따라간다. 그리고 종점인 향화도항에 이를 때까지 한 번도 바닷가와 헤어지지 않는다. ! 앱은 서해랑길과 만나는 이곳을 시점에서 6.13km쯤 떨어졌다고 표시한다. 집사람 덕분에 오늘도 6km 정도를 단축한 셈이다.

 갯벌은 아직도 황토색이다. ‘황토 랜드라는 브랜드는 무안만의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함평의 바다도 맑고 고운 황토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물 빠진 갯벌에 기대어 쉬고 있는 고깃배 한 척이 한가롭기 짝이 없다. 저 배는 무심한 주인이 물때를 맞춰 찾아올 때까지 하릴없이 낮잠만 잔다.

 11 : 35. 해안선을 따라 700m쯤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아니 둑길 옆에 월천항으로 가는 811번 지방도를 새로 내고 있었다. 서해랑길은 왼편 둑길을 따른다.

 들녘 너머는 석계마을’. 법정 동리인 석창리(石倉里)’를 구성하는 6개 자연부락(석계·해창·대발·농암·대덕·해안) 중 하나로, 군유산과 두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마을 돌꼬리로 유유히 뻗어 나가 바다에 빠져버리는 것이 시냇물 같은 형국이라 하여 석계(石溪)’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금 더 걸으면 석창리 어민회관이 있는 돌고지 선착장이다. 35코스의 시점인 돌머리와 상대되는 지명으로 돌머리와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돌꼬리(또는 돌고지)’로 불린다고 한다. 함평의 구릉지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두 곶(), 즉 돌머리와 돌꼬리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선착장 앞에서 도로가 둘로 나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석계마을과 농암마을을 거쳐 산남리 방조제로 연결된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기는 했지만 산남방조제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돌꼬리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도로가 온통 헤집어져 있다. 하지만 바닷가를 따라 난 옛길이 선명해 진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눈을 들자 석창리 앞바다의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저 갯벌은 석화가 지천이라고 한다. 석화는 해풍에 맛을 키우고 갯벌의 영양분을 빨아 제 살을 불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석화는 바다의 인삼로 불릴 만큼 영양이 높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칠 때면 맛과 영양이 최고에 달해 이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나?

 11 : 54. 정자가 길손을 맞는 산남방조제(석창리-산남리-월천리를 잇는다)’에 이른다. 초입의 이정표는 종점(칠산타워)까지 10.5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함평만해안도로는 서해랑길 5코스처럼 돌머리해안과 영광군 칠산대교를 잇는다. 함평만의 수려한 경관과 명품 해상교량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명품 드라이브 코스로 명성을 얻었다.

 이제 산남리 앞 방조제를 걷는다.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도 45분이나 걸린 엄청나게 긴 방조제이다. 이 방조제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생 김연수가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삼양사라는 회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월천리 백옥과 석창리 농암 간 3.8km의 둑을 쌓았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시작해 1933년에 완공된 이 간척사업으로 인해 400정보(町步)나 되는 손불간척지가 생겨났으니, 그게 바로 산남리의 저 너른 들녘이다. 이후 갯땅은 농토가 되었고, 지금은 고소하고 쫀득한 맛좋은 함평 간척지 쌀이 생산된다. 하나 더, 산남리 마을에는 1970년대 초 꽃반지 끼고의 가수 은희가 만든 문화공간 민예학당이 있다. 자연재료를 활용한 디자인 제품, 천연염색의 현장을 보고 싶다면 잠시 들려도 좋을 것이다.

 반대편은 함평만의 드넓은 갯벌,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경사가 완만해 석화()와 바지락, 낙지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석화(石花)’는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코끝이 알싸할 정도로 찬바람이 불 때부터 맛이 들기 시작해 12월이면 절정에 이른다. 농한기의 귀한 소득원이기도 하다.

 갯벌에 쳐놓은 저 그물망의 정체는 대체 뭘까? ‘개막이일지도 모르겠다. 조석간만의 차가 클 때 갯벌에 그물을 쳐 놓고 밀물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히도록 하는 전통 고기잡이다.

 12 : 18 - 12 : 48. 방조제의 중간쯤에서 만난 정자, 끝이 보이지 않는 둑길이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이라서 더욱 반갑다. 덕분에 우린 준비해 간 간식을 서로 나누며 30분 정도의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갯벌이 하도 넓다보니 그 사이로 강처럼 물길이 나있다. 평평하게만 보이는 갯벌에도 높낮이는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갯고랑(전남 지역에서는 개웅이라 한다)이다. 어부들은 그 고랑을 용케도 찾아내고, 이제는 길이 된 고랑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

 생김새로 봐서는 낙지 산란장 같은데... 이곳 함평만이 세발낙지의 본고장이라니 말이다. 세발낙지는 발이 세 개여서가 아니라 가늘어서 붙은 이름이다. 갯벌에서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한 낙지는 일하다가 쓰러진 소를 일으킨다고 할 만큼 원기를 북돋아 주는 해산물로 알려져 있다. ‘바다의 산삼 혹은 노다지라고도 불린다.

 13 : 07. 길고 긴 방조제의 끝은 일공구(이정표 : 종점까지 7.1km)’이다. 맨 처음 공사를 시작한 곳이어서 일공구라 한다는데, 위에서 얘기하던 삼양사의 간척공사 산물이다. 하나 더, 향토사 공부를 한다는 김경수씨는 간척공사 이전에는 이곳이 백옥동(白玉洞) 마을이었다고 적고 있었다.

 일공구에도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갯벌에 기우뚱 몸을 기대고 있는 고깃배도 여럿 보인다. 포구에는 잡아온 물고기를 파는 횟집도 들어서있었다. 하지만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간척공사 때 이곳은 각처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뿌리는 돈으로 늘 흥청거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우리 같은 둘레길 나그네들이나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니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 되어버린 셈이다.

 신옥교라는 무지개다리를 이용해 월천저수지(손불간척지의 수원)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건넌다. 한가하게 날개짓을 해대는 서너 마리 갈매기의 환송을 받으며...

 ‘1공구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양, 포구는 아직도 새로운 방파제를 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일공구부터는 월천방조제를 걷는다. 일공구에서 안악에 이르는 이 방조제는 2000 8월 태풍 프라피룬으로 유실되었다.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을 때 거친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해당화 6만여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13 : 22. ‘안악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월천리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안악(雁岳)이란 지명은 雁來基(안래기 안애기)’ 또는 雁落(안락 안악)’이 변형된 것이란다.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기러기와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월천방조제가 끝나는 곳에는 작은 공원(이정표 : 종점까지 5.7km)이 조성되어 있었다. 큼지막한 빗돌이 방금 전 월천방조제를 걸었고,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안악마을임을 알려준다.

 안악마을의 포구는 작다. 시쳇말로 주먹만 하다고나 할까? 정박하고 있는 어선도 주먹만 한 보트 두어 척이 전부다. 하지만 횟집에 펜션까지 들어서있으니 먹거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함평만 갯벌에서 나오는 싱싱한 숭어·세발낙지·보리새우 등은 여름철 미각을 돋운다고 하지 않던가.

 포구에는 소녀상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함평만의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안정감과 미래를 지향하는 함평의 기상을 형상화 했단다. 거기에 국민가수 이미자가 노래한 섬마을 선생님에 나오는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 처녀의 간절한 기다림을 담았단다. 그럼 이곳 안악마을이 원래는 섬이었다는 얘기일까?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도 눈에 띈다. 10년쯤 전 대이작도를 답사하다 섬마을 선생님과 관련된 관광지를 만났었다. 1967년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 섬마을 선생님의 촬영지라면서 이미 폐교된 초등학교를 보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노래와의 인연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운 점이라고나 할까?

 몇 걸음 더 걸어 이른 안악해수욕장. 200m 길이의 결 고운 백사장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감싼다. 그 숲에는 썬 베드를 놓아 피서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했다. 백사장에는 규모는 작지만 전천후 인공해수풀장도 만들었다. 명품 피서지로 만들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화이트 정원(‘해름애 언덕’, ‘바람의 언덕으로도 불린다)’은 안악해변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농산어촌 활력화 경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는데, 수국·팜파스그라스·코스모스 등 여름부터 가을까지 형형색색의 꽃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싱그러운 여름 수국은 시들어가는 중, 대신 팜파스그라스가 나그네의 동심을 소환시킨다. 깃털모양의 풍성한 이삭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데, 거기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기까지 해 여간 신비로운 게 아니다.

 그밖에도 보라색 버들마편초가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버들잎처럼 좁은 잎 모양 형태와 긴 꽃대 끝에 꽃이 달려서 마편 즉 말채찍처럼 생겼다고 해서 버들마편초란 이름을 얻었다.

 해당화는 일종의 보너스다. 해안가 도로변에서 만나게 되는데, 넓디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소금물투성이의 모래땅에 뿌리를 묻고 살아간다.

 꽃밭에서의 힐링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진행방향에 칠산대교를 놓고 걷게 된다.

 함평만 해안도로는 황혼 무렵의 해넘이가 자랑거리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해제반도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이 짙은 감흥을 선사한단다. 하지만 지금은 벌건 한낮, 일몰이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을 따름이다.

 13 : 46. 이번에는 학산리(鶴山里) 앞 방조제를 걷는다. 1930년경 목포사람 정태성이 막았다고 한다.

 방조제가 만들어낸 들녘(둑을 쌓은 이의 이름을 따 정태성농장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300m 남짓의 둑이 만들어낸 들녘치고는 꽤나 넓다. 그 너머 산자락에는 학산리의 자연부락인 지호(芝湖) 마을과 평산(平山) 마을이 있다.

 서해랑길은 한없이 구불대는 함평만의 해안선을 따라 종점인 향화도항으로 간다. 문득 이은상 시인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가 떠오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칠산대교가 코앞인데도 걷고 또 걸어도 이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평만은 육지에서 흘러 내려온 흙이 퇴적돼 만들어져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보고다. 수심이 깊지 않고 조차가 크고 조류 소통이 좋아 갯벌이 발달했다. 덕분에 주민들은 갯벌에 기대어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고, 김 양식을 하며 생활해왔다. 갯벌을 막아 농지를 조성하고 염전을 만들기도 했다.

 해안선은 곳곳에서 구불댄다. 해변에 바짝 붙어 구불구불 이어진 이 길은 한결 운치 있다. 옛 사람들은 그런 지리적 여건도 그냥 버려두지 않았다. 방조제를 쌓았고, 주민들은 그 들녘에 기대어 살아간다.

 바다는 김 양식장의 지주로 한 가득이다. 갯벌에 저런 기둥들을 세우고 김을 매달아 양식한다. 바다 건너 도리포 곱창김의 주산지로 알려진다. 그만큼 청정해역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해역을 끼고 있는 함평에서도 곱창김을 양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양식은 바다에서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해수를 저장해두는 저 저수지는 동성수산과 손불수산에서 양식업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잠시 후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808번 지방도에서 갈라져 나온 함평항길이 해안도로와 만난 것이다.

 함평항으로 가는 길, 물 빠진 갯벌에 기대어 쉬고 있는 고깃배들이 의외로 많다. 근처에 함평항이라는 틀이 잡힌 포구가 있는데도 말이다. 함평항이 항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14 : 26. 함평항에 도착했다. 원래 이름은 해은항’, 해은마을(함평군 손불면 학산리)에 있는 포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까지 어업은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고, 2006년에 어촌정주어항(어촌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이 되었다. 하지만 여객선은 들르지 않는다. 아니 들러본 적도 없고, 그저 인근 어민들의 선착장으로만 활용되어 왔었다. 그게 해안도로가 건설되고, 국가어항으로의 승격을 목표로 시설을 확충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부두는 웬만한 축구경기장보다도 더 넓었다. 하긴 국가관리 연안어항으로의 승격을 위해 명칭까지 바꿨다니 어련하겠는가. 해양 마리나 시설, 항로준설, 연안정비 등 개발 사업도 현재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하나 더, 이곳에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널찍한 잔디공원에서 ‘HAM PYEONG’이라고 적힌 커다란 전시물이 반긴다. 이곳 함평항은 해넘이의 명소 중 하나다. 조형물 곁에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유리 전망대를 지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저 멀리 육지와 섬의 실루엣, 이 둘을 이어주는 칠산대교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거기다 일몰까지 더해지면 조물주만이 그려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단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어서 옥실 방조제를 지나 영광 땅(염산면 옥실리)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이 방조제가 함평과 영광의 군 경계인 셈이다.

 푸름으로 뒤덮인 옥실리 들녘과 새하얀 철새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칠산대교가 바다를 가른다. 호리병처럼 생긴 함해만의 주둥이이자, 해제반도가 끝나는 북쪽의 도리포와 영광군 염산면의 향화도 사이에 놓은 다리다. 왕복 2차선, 길이 1800m로 지난 2019 12월에 개통됐으며, 그 덕분에 양 지역은 차량 이동 시간이 70분에서 5분으로 단축돼 생활편의가 크게 향상됐다.

 옥실방조제의 끄트머리에도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고깃배보다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무동력선들이 더 눈길을 끄는 포구이다.

 선착장을 지나자 칠산대교가 머리맡으로 다가온다. 35코스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얘기일 것이다.

 함평만의 입구, 바다가 깊어졌나보다. 고기잡이에 한창인 어선들이 꽤 많다.

 14 : 56. 날머리인 향화도항에 도착했다. 항구에 들어서자 111m의 높이를 자랑하는 칠산타워가 시야를 꽉 메워버린다. 전남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영광군의 11개 읍면이 하나로 화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단다. 전망대에 오르면 칠산대교와 인근의 섬과 바다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서해랑길 안내도(영광 36코스)는 향화도항의 입구, 버스승강장 옆에 세워져 있었다. 참고로 함평만이 함평군과 무안군을 아우르는 큰 항아리라면 이곳 향화도항과 도리포 유원지는 그 항아리의 주둥이다. 지명에서 드러나듯 섬이었단 향화도(向化島)는 간척사업에 의해 육지가 됐고, 항구가 들어서면서 송이도와 낙월도를 잇는 여객선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에 13.47km가 찍혀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니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속도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