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5구간(백골산성 낭만길)

 

여행일 : ‘22. 9. 17(토)

소재지 : 대전광역시 동구 신상동·신하동·신촌동·사성동 및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일원

여행코스 : 신상교→흥진마을(전망대)→바깥아감→강살봉→백골산성→신절골→구절골→방축골→카페 팡시온→신촌동→사성리→와정삼거리(거리/시간 : 13km/ 실제는 사성리까지 12.03km를 4시간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다섯 번째 구간인 ‘백골산성 낭만길(13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호숫가를 걸으며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3km나 되는 산길(백골산)과 차도(마지막 3km 구간은 인도가 따로 없다)를 걸어야만 하는 단점도 있다.

 

▼ 들머리는 ‘신상교’(대전시 동구 신상동)

경부고속도로 대전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 비래서로와 신상로를 잇따라 타고 대청호까지 오면 ‘신상교(新上橋)’가 반긴다. 신상교 건너 지역농산물 간이판매장 근처에 대형버스 주차공간이 있다.

▼ 이름 값 못하는 구간. ‘대청호 오백미(五白眉)’ 가운데서도 으뜸인 ‘벚꽃길’을 놓아두고도, ‘백골산성 낭만길’이란 구간 브랜드로 인해 가파른 산길을 3.3km나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볼거리인 백골산성에서의 조망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겪어야 하는 고생에 비해 가성비가 너무 낮다.

▼ 신상교 근처에서 호숫가로 내려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트레커들을 위한 배려인지 초입에 ‘대전 시티투어’ 승강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백리길 안내도 옆에 세워놓은 ‘자살예방’ 푯말도 눈길을 끈다. <안아줄게요, 들어줄게요, 함께할게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身體髮膚)이니 자신의 생명을 아끼는 것 또한 효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 몇 걸음 걷지 않아 만난 삼거리. 명찰(신상교)까지 단 이정표(5구간 갈대밭추억길/ 4구간 신선바위)는 이곳이 4·5구간의 경계지점임을 알려준다.

▼ ‘흥진마을의 갈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대청호의 수변을 끼고 도는 오백리길 5구간 초반부(3.1km)를 소개하고 있는데, 길 양옆으로 억새와 갈대가 풍성하게 자라나 있어 무릉도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고 한다.

▼ 300m쯤 더 걸어 ‘흥진마을’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 만났던 안내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민초들이 찾아 헤매는 ‘이상향’쯤 되겠다. 억새와 갈대로 인해 이 부근이 무릉도원으로 변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 마을 앞 주차장에는 ‘대청호 오백리길 대전 권역’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6개 구간(1~5, 21)을 지도와 도표로 소개한 다음, 접근 방법과 이용 가능한 맛집을 추가로 적었다. 해당 구간(5구간)에 대한 소개를 따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안내판의 예고대로 이 구간의 특징은 갈대다. 오백리길 대전구간에서 가장 멋진 갈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무성한 갈대밭 S라인의 아름다운 길을 이 구간의 포인트로 꼽고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타원형을 이룬 백사장도 눈에 띈다고 했다. 이때 물속이 훤히 내다보일 정도로 한없이 맑은 물도 만난단다. 하지만 대청호의 물이 가득 차올라 그런 풍광은 눈에 담을 수 없었다.

▼ 길은 트레커만의 전용은 아닌가 보다. 속도감에 취한 듯 페달을 밟아대는 라이더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 갈대밭 너머 ‘신상교’는 여전히 물에 잠겨있다. 아니 찰랑거리는 물을 피해 신상교를 건너며,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2주 전보다도 오히려 물이 더 차올라 있었다.

▼ 대청호반길의 ‘갈대밭 추억길’을 겸하는 이 구간은 대청호의 호반을 끼고 흥진마을 갈대와 억새숲길을 돌아보는 약 3.1km의 산책로이기도 하다. 파란 호숫물과 진초록 갈대, 거기다 주변 숲까지 더하면 자연은 아름다운 앙상블을 연출한다.

▼ 시야가 트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벤치를 놓아두었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양, 한 쌍의 남녀는 망중한을 즐긴다. 저래서 5구간에 ‘낭만’이란 단어를 덧댔나보다. 저리도 아름다운 경관에 연인들의 사랑까지 더해지니 어찌 낭만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벤치에라도 앉으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청호오백리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레킹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1980년 대청댐 건설 이후, 주변이 각종 개발규제지역에 포함돼 자연경관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로 양호하게 보존되어왔기 때문이다.

▼ 중간 지점에서 만난 정자는 자리를 잘못 잡았다. 시야가 트이지 않으니 전망대로는 실격, 그저 쉼터의 기능만 수행할 따름이다.

▼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의 끝을 반환점 삼은 둘레길은 이제 반대편 호숫가를 따른다. 갈대밭에 울창한 숲이 더해진 구간이라 하겠다.

▼ 호숫가 소박한 숲길을 걷다보면 가을꽃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갈대밭만으로는 주민들의 양에 차지 않았나보다. 길가에 코스모스와 무궁화, 나리 등 다양한 꽃들을 심어 가을의 풍치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 구간은 대청호에 물이 비었을 때 마사토 위를 맨발로 걸어야 제격이라고 했다. 특히 은빛 갈대가 가득할 때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행운은 없나보다. 대청호에는 물이 가득했고, 꽃대만 내민 갈대는 은빛으로 만개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 길을 나선지 40분, ‘조선’이라는 오리구이 전문식당에 이른다. 오백리길 안내판에까지 올랐으니 맛이야 보증된 셈. 하지만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인지라 잠시 둘러보기만 했는데, 허브와 수크렁 등으로 한껏 멋을 부린 정원이 눈길을 끈다. 1993년 열린 대전엑스포의 마스코트인 ‘꿈돌이’도 한몫 거들고 있었다.

▼ 대청호반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 바깥아감 마을에 도착했다. 아감마을의 바깥에 있다고 해서 바깥아감이다. 아감이란 이름은 이 마을 아가미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마을 앞, 바람개비로 한껏 멋을 부린 ‘벚꽃한터주차장’은 넓기까지 했다. 하긴 ‘갈대밭 추억길’로도 모자라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니 찾아오는 이들이 오죽이나 많겠는가.

▼ 오백리길은 ‘바깥아감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회남로(571변 지방도)를 가로지른다. 이어서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초입에 오백리길에서 내건 이정표(백골산성 2.6㎞)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백골산성을 경유하는 정규 탐방로는 물론 도로를 가로지른다. 하지만 난 회남로를 따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볼거리도 없는 가파른 산길을 3km나 헤매는 것보다는, 벚꽃나무로 뒤덮인 데크로드를 따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아서다.

▼ 동구(대전시)는 관내 ‘대청호오백리길’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을 백미(白眉)로 지칭, 총 5개 코스(벚꽃길 코스·촬영지코스·추동 생태코스·냉천골 사진코스·황새코스)를 선정했다. 그 첫째가 이곳 바깥아감에서부터 충북 옥천군 회남면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인데, 길이가 무려 26.6Km나 돼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 하지만 난 백골산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백골산성’을 5구간의 브랜드(백골산성 낭만길)‘로 내놓았으니, 트레킹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겨가는 나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무지막지한 고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갈 지(之)’자를 쓰지 않고서는 고도를 높일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반면,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가 전혀 없는 산길은 걷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 10분쯤 죽을 고생을 하고나서야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섰다. 그런데 더 높은 봉우리 하나가 어서 오라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내 행복감을 만족시켜줄 ‘강살봉’은 저곳도 아니었다. ‘산너머 저쪽에 행복이 있다기에 사람들과 함께 찾아갔다가 울면서 돌아왔다’는 ‘칼 부세’의 경고가 떠오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 벤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고생한 다리품을 잠시라도 풀고 가라는 듯 두어 곳에 벤치를 놓아두었다.

▼ 얼마나 터가 좋았으면 이런 산중, 그것도 이렇게 놓은 곳에까지 묘를 썼을까?

▼ 가파른 오르막길은 가고 또 가도 끝날 줄 몰랐다. 사나운 기세도 수그러들지를 몰랐다.

▼ 산길로 들어선지 40분. 그 고생을 해서 올라선 ‘강살봉(335m)’은 텅 비어 있었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나 선답자의 리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누군가 매직으로 나무기둥에 ‘강살봉’이라 적어놓았다. 그나저나 요즘은 고사성어도 통하지 않는가 보다. 고진(苦盡)이 끝났건만 감래(甘來)가 찾아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 강살봉을 지나면서 산길이 고와졌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지는데, 경사까지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만하다. 거기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산길은 산뜻하고 안온했다.

▼ 7분쯤 지나 도착한 두 번째 봉우리 ‘꾀꼬리봉(324m)’은 낙서까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이 대청호오백리길임을 알리는 팻말이 전부였다.

▼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났다. 그런데 이정표(백골산성 0.5㎞/ 요골 1.3㎞/ 강살봉 0.4㎞)에 나타난 요골은 대체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 가파른 오르막길이 또 다시 시작된다. 아니 버겁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아무튼 이 구간도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고도를 높일 수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 드디어 ‘백골산(346m)’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정상석이 없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두 개나 되는 이정표(#1 : 한식마을 1㎞/ 시·도경계 1.3㎞/ 강살봉 0.9㎞, #2 : 태봉정 1.4㎞/ 구절골 1.1㎞)도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그저 누군가가 매달아놓은 정상표지판이 이 모든 것들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보잘 것이 없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조그맣게나마 숲이 열리는 정상표지판의 뒤가 전부라고나 할까? 하지만 작아도 작은 것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눈에 들어오는 리아스식 호안의 아름다운 곡선은 만만치가 않았다.

▼ 이곳에는 백골산성((白骨山城, 대전시기념물 제22호)이 있었다고 한다. 백골산 정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400m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파른 지형에 쌓여진 까닭에 완전히 무너져 내려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정상 부근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 불완전한 조망의 아쉬움은 100m쯤 떨어진 다른 봉우리(묘지가 있었다)에서 달랠 수 있었다. 대청호의 물길이 시원스럽게 들어오는 게 백골산성의 장대(將臺) 자리로 이만한 곳이 없겠다. 백골산성이 백제가 신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초소 역할을 했다니 말이다. 지금은 대청호가 삼켜버렸지만, 산성이 축조될 당시만 해도 신라를 마주보고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백골산성은 육로와 수로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 소나무 아래로 다가가자 대청호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호수는 수많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수면을 드러내었다 숨겼다 한다. 산자락과 만난 호반이 올록볼록한 리아스식 해안을 쏙 빼다 닮았는데, 그 중앙에 잠시 후에 들르게 될 ‘방축골’이 놓여있다.

▼ 이제 산을 내려갈 일만 남았다. 하산 지점인 한식마을까지는 1km. 경사가 조금 심하지만 내려가는 길이니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지옥의 구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티눈 때문에 오른발이 부담스러운데, 새로 산 신발에 시달린 왼발에 물집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둘레길 도반인 ‘즐산’님이 건네준 밴드(Bandage)가 아니었으면 오도가도 못 할 뻔했다.

▼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안부에서 삼거리(이정표 : 전망좋은 곳 0.05㎞/ 한식마을 0.53㎞/ 백골산성 0.47㎞)를 만났다. 둘 모두 한식마을로 연결되지만, 오른쪽 길이 조금 편하다고 보면 되겠다.

▼ 그런데 맞은편 능선을 올라가라는 게 아닌가. 두 방향 모두 한식마을로 연결되나, 오른편으로는 가지 말란다. 다리가 위험해서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 50m쯤 올라간 산봉우리에는 ‘태봉정’이란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산봉우리의 이름이 ‘태봉’이란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전망좋은 곳’이라 적혀있던 이정표가 무색하게 전망은 제로였다. 이정표의 표기를 바꿔야 할 듯.

▼ ‘태봉정’부터는 침목계단의 연속이다. 길고 긴 계단이 끝났다싶으면 또 다른 긴 계단이 나타나는 모양새이니, 집사람처럼 무릎이 성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구간이 될 수도 있겠다.

▼ 그렇게 15분쯤 진행하자 아까 헤어졌던 두 길이 합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정표(태봉정 0.4㎞/ 백골산성 1.0㎞) 및 등산안내도가 조금 낯설다. 이제껏 보아오던 오백리길의 시설물이 아니고, 오롯이 백골산성을 찾는 이들을 위한 정보를 적었다.

▼ 몇 걸음 더 걸어 591번 지방도(이정표 : 와정삼거리 5.7㎞, 구절골 0.5㎞)로 내려섰다. 이정표에 적혀있던 ‘한식마을’이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은 ‘신절골’로 적고 있었다. 대청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주민들이 새롭게 정착한 터가 이 부근에 있다더니 이곳을 두고 한 말이었던가 보다. 아무튼 이후 ‘구절골’까지는 벚꽃길의 데크로드를 따르게 된다.

▼ 코스를 단축한 집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던 ‘SONG CAFE’를 지나자마자 ‘팡시온’ 입간판이 잠시 들렀다 가란다. 다른 이들의 글에서 곁눈질한바 있는 ‘꽃님이 식당’의 간판이 바뀌었나 보다. 아무튼 코너에 세워놓은 이정표가 ‘방축골’로 들어서라니 이를 따르면 되겠다.

▼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절골’로 들어선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절골마을 중에서 남은 가구들로 이뤄진 마을이다. 참고로 1500년 전 백제와 신라가 패권을 다툴 때 지금의 대청호는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때 한 스님이 죽은 병사들을 위해 이곳에 절을 세우고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고 해서 ‘절골’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마을 앞에는 ‘신하 한터’가 들어앉았다. ‘한터’가 넓은 빈자리를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이니 ‘신하동(新下洞)’에 위치한 널따란 주차장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오백리길은 이제 ‘꽃님이 반도(방축골의 또 다른 이름)’를 향해 고개를 넘어간다. 대청호 호반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있던 한 식당(지금은 팡시온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의 이름이 좋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고개를 넘으면 대청호 가운데로 돌출된 지형이 나온다. 삼면이 호수로 둘러싸인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고개를 넘다가 길에서 잠시 벗어나니 대청호가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드문드문 떠있는 작은 섬으로 인해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풍경이 펼쳐진다.

▼ 브런치 카페인 ‘라크블루’를 지나자 ‘경치좋은 마을’이란 찬사까지 덧붙인 ‘방축골’의 표지석이 길손을 맞는다. 삼거리인 이곳에서 왼편은 대청호수질관리소, 오백리길은 오른편에 있는 ‘팡시온’을 향해 간다.

▼ 수질관리소 쪽으로 나가자 다시 한 번 대청호가 펼쳐진다. 잔잔한 호수와 불쑥불쑥 솟은 봉우리들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호수와 만나는 호반의 곡선미는 부드럽고 포근하다.

▼ 조금 더 걸으니 ‘레이크 뷰’에 이어 ‘팡시온’이 나온다. ‘꽃님이 반도’에는 이렇듯 풍광이 좋은 카페들이 많다. 아픈 다리도 달랠 겸 찾아보면 좋으련만 갈 길 바쁜 나그네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요즘은 ‘느림의 미학’이 대세라던데 이 무슨 난센스란 말인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없다니.

▼ 지금은 추억의 이름이 된 ‘꽃님이 식당’. 그곳의 야외 테이블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압권이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팡시온’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건물 외벽을 모두 통유리로 넣어 실내에서도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감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카페는 이를 기대하고 찾아온 손님들로 바글거리고...

▼ ‘팡시온’ 주차요원의 도움을 받아 반도의 끝으로 나가봤다. 이곳 방축골은 대청호반의 오랜 명소 가운데 하나다. 대청호의 경관이야 어디에서나 빠지는 곳이 없지만 방축골은 그중에서도 손꼽힌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적함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 시골길의 추억이 떠오르는 호숫가를 따라 급할 것 없이 걷다보면 한적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5분쯤 더 걷자 반도의 끝에 다다른다. 하지만 호수로 뻗어나간 모래톱에는 버드나무숲이 호수 위에 반영을 만들고 있을 뿐, 백골산 정상에서 바라보던 그 절경은 아니었다. 물이 빠져나간 모래톱을 걸으며 바라봤더라면 한결 업그레이드되었을 텐데 아쉽다.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방축골 표지석’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쪽으로 향한다. 곧이어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밤실마을 애향탑 1.0㎞)에서도 왼쪽이다.

▼ 이어서 꽃님이반도의 왼쪽 호안을 따른다. 이때 대청호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한참이나 격이 떨어진다.

▼ 지방도로 연결되는 이 구간은 제법 높은 고개를 넘기도 한다. 보통 때야 뛰다시피 넘을 수도 있겠지만, 두 발이 모두 불편한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 방축골의 반도를 둘러보는 데는 50분이나 소요됐다. 앱에 찍힌 거리가 3.1km이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571번 지방도로 내려선 오백리길은 이제 도로를 따라간다. 지방도지만 오가는 차량은 무척 많았다. 하지만 벚꽃나무 아래로 데크로드를 만들어놓았으니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이때 신촌동(新村洞, 이정표는 ‘밤실마을’로 적고 있었다) 너머에서 대청호가 얼굴을 내민다. 신촌리를 포함한 수많은 마을들을 삼켜버린 호수이건만, 나는 길에서 만난 그 풍경이 너무 예뻐 셔터를 눌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주변 풍경이 대청호의 움직임을 멈춘 수면에 그림처럼 반영으로 머문다.

▼ 오백리길은 이제 ‘벚꽃 길’을 따른다.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왕벚나무가 자라 꽃길로 승화된 아름다운 길로, 대청호반을 따라 길이가 무려 26.6㎞에 달한다. 회인선이라고도 부르는 지방도 571호선 구간이 포함돼 과거에는 ‘회인선 벚꽃길’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부르고 있다.

▼ 도로로 내려선지 10분, ‘신촌리 애향탑’을 만났다. 고향을 떠나야했던 신촌리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운 탑이다. 탑은 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대청호에 수몰된 이후 겪어야만 했던 망향의 그리움을 담았다. 그래서일까? 애향탑 앞에서 바라본 대청호는 푸르고 애잔해 보였다.

▼ 4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신촌 한터’가 반긴다.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것으로 보아 오롯이 벚꽃길 방문객들을 위한 시설인가 보다.

▼ 주차장에는 ‘행복누리길’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행복누리길이란 신상동 바깥아감마을 삼거리에서 사성동애향탑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을 말한다. 대청호반과 벚꽃길이 겹치는 이 구간에 보행데크와 쉼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행복한 휴식공간으로 꾸몄다.

▼ 주차장 한켠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아까 거닐었던 꽃님이반도가 호수 건너에서 나타난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호수를 향해 뻗어나간 반도, 그리고 아름다운 집들이 대청호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진다.

▼ 몇 걸음 더 걸어 만나는 ‘신촌2전망대’. 1전망대에서 만났던 풍경과 똑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 사성동(沙城洞)으로 향하는 도중 또 다시 대청호를 엿볼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은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기다란 하늘색 깁(명주실로 조금 거칠게 짠 비단)을 펼쳐놓은 듯 호수는 한없이 푸르고, 잔잔한 수면 위에 동동 떠있는 자그만 섬은 조금도 외롭지 않아 보인다.

▼ 신촌동애향탑에서 20분, ‘모래재’ 버스정류장 도착했다. 날머리인 ‘와정삼거리’는 아직도 3km쯤 더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고장나버린 내 발은 그만 걸으라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히치하이킹’에 도전해봤지만 멈춰주는 차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다니러 온 듯한 현지인께 부탁해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넉넉한 인심으로 소문난 충청도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 날머리는 ‘와정삼거리(방아실)’(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날머리(방아실)에 도착한 다음에도 넉넉한 인심은 수그러들지 몰랐다. 산악회 버스를 찾고 있는데, 우리를 내려준 트럭이 후진을 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300m나 떨어 진 지점에 버스가 있었다며,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그곳까지 태워다준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배려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이들이 있기에 ‘충청도 인심’이라는 기분 좋은 ‘브랜드’가 생겨났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4시간 10분을 걸었다. 앱이 12.03km를 찍고 있으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 3km의 산길로도 모자라 절뚝거리기까지 했던 악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