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1구간(두메마을길)

 

여행일 : ‘22. 7. 16(토)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삼정동·갈전동·이현동 일원

여행코스 : 대청댐 물문화관→숫고개→지명산→대청정→보조여수로→이촌·강촌·민촌마을→덕골→갈전동삼거리→이현동억새밭(거리/시간 : 12.7km/ 실제는 두메마을까지 14.22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첫 번째 구간인 ‘두메마을길(12.4㎞)’을 걷는다.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시작해 이현동 두메마을에서 끝나는데, 산길로 이루어진 초반 1/3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숫가를 따라 걷게 된다. 걷는 내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이유이다.

 

▼ 들머리는 ‘대청댐 휴게소’(대전시 대덕구 미호동)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문의·청남대 IC에서 내려와 유성 방면 32번 지방도,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문의면소재지(미천리)에서는 ‘대청호반로(신탄진 방면)’, 오가삼거리(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하석리)에서 ‘노산·하석로’로 옮겨 ‘대청교’를 건너면 대청댐휴게소 주차장에 이른다. 내비게이션은 ‘대청댐휴게소’를 입력하면 된다.

▼ 대청댐물문화관을 출발해 이촌·강촌·갈밭 마을 등을 거쳐 이현동(두메마을) 생태습지에서 끝나는 길이 12.7km의 둘레길이다. 구간 브랜드(두메마을길)는 ‘생태습지(거대한 억새밭과 버드나무 군락을 자랑한다)’라는 멋진 볼거리를 보유한 ‘두메마을’에서 따왔다. 적당히 섞여있는 산길과 호숫가를 걸으며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게 장점. 하지만 여러 곳에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 긴 계단을 오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높이가 72m나 되는 대청댐의 상부로 올라가기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참! 입구에는 ‘대청호반길’의 안내도가 세워져있었다. 대청호오백리길은 ‘2012년’을 경계로 나뉜다. ‘대청호반길’로 불리던 것을 확대·재생산해 대청호오백리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광장이 맞는다. 그 끄트머리, 즉 호안에는 ‘대청 다목적댐 준공기념탑’이 우뚝하다.

▼ 그 오른편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대청호’ 비석이 있고, 뒤에서는 ‘DaeCheongDam’ 조형물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난간도 비워두지 않았다. 대청호의 사계를 담은 풍경사진을 패널로 만들어 걸어두었다.

▼ 광장의 주인공은 복합문화공간인 ‘대청댐 물문화관’이다. 기존 ‘대청댐 물홍보관’을 확충시켜 2004년 재개장했다. 대청댐의 역할과 기능 및 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제1전시관, 대청호와 금강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서식환경을 소개하는 제2전시관, 대청댐 건설로 인해 사라진 마을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기록·재현하는 제3전시관을 운영한다.

▼ 댐 위로 도로가 뻗어있다. ‘공도교’라는 브랜드로 일반인에게 개방했지만 시간을 정해놓았는가 하면, 드론 등 항공촬영이 금지된다. ‘국가중요시설’이어서란다.

▼ 난간에라도 서면 ‘대청호’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대통령의 별장으로 잘 알려진 ‘청남대'가 자리한 호수. 천리의 비단물결을 막아선 대청댐은 대전과 청원(청주)의 경계에 세워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총 저수용량이 14억 9천만t, 대전과 청주, 천안을 비롯한 충청지역 및 군산 등 전북일부 지역에 생활·공업용수를, 금강하류와 미호천 유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홍수조절에 따른 댐 하류 홍수피해 경감과 수력발전을 통한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

▼ 안내판으로도 모자라 빗돌까지 세워놓은 걸 보면 ’금강 자전거길‘도 꽤 유명한가 보다. 참고로 길이 146km의 금강자전거길은 금강하구둑과 대청댐을 잇는 자전거도로다. 이곳 대청댐에서 시작해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공주시·부여군·논산시·익산시 등을 지나 전라북도 군산시 금강하구둑에서 끝난다.

▼ 아니 한술 더 떴다. 오백리길에는 없는 ’인증센터‘까지 만들어놓았다. 완주를 증명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로 이곳 말고도 세종보·공주보·백제보·익산성당포구·금강하구둑 등에 설치되어 있단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0분. 오백리길은 물문화관에서 왼편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열린다. 나무계단(첫 번째 기둥에 1코스 시작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있다)이 놓여있는 데다, ‘대청호오백리길·누리길 종합안내도’로도 부족한 듯 이정표까지 세워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1호’ 이정표가 문제다. 1구간의 길이가 10.5km라는 것이다. 11.5km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 나무계단을 올라 산길을 탄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이게 산책로야 등산로야’ 이를 본 둘레길 도반이 비명부터 지르고 본다. 맞다. 대청호오백리길은 등산로, 그것도 고산(高山)의 등산로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파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오르막의 거리가 8분 정도로 짧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걷다보면 심심찮게 길이 나뉜다. 하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헷갈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웠고, 탐방로에도 대청호오백리길 특유의 팻말과 리본을 촘촘히 매달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면 국가지점번호판에 적힌 현재위치(숫자로 적혀있다)를 파악한 다음 구조를 요청하면 된다.

▼ 대청호오백리길의 얼굴마담격인 이정표다. 상·하단에 종점 및 시점의 거리(방향 포함)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1구간의 거리를 12.7km로 적었다. 탐방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거리가 늘어났다는 얘기일까?

▼ ‘대청호 둘레산 누리길’에서 내건 이정표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청호의 둘레에 솟아오른 나지막한 산들을 연결시켜놓은 걷기 길이란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은 산을 오르내리며 언젠가는 산이었을, 지금은 섬으로 변해버린 산들을 가슴에 담아볼 수도 있겠다.

▼ ‘2백리 로하스길(이곳은 3구간인 ‘누리길’이란다)’에서는 자연학습용의 안내판을 세웠다. 지도도 첨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 능선에 오르고 나면 길은 고와진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숲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데다 흙과 낙엽이 폭신하게 깔려있어 남녀노소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거기다 심심찮게 시야가 열리면서 햇살을 가득 머금은 호수 풍광이 시선을 가득 채워준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자 ‘숫고개’가 나타난다. 미호동에서 수몰지역으로 넘어가던 고개라는데 지명의 유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 10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얼굴을 내민다. 누군가가 이름표까지 매달아놓았지만 조망은 일절 없다. 시야를 가로막는 잡목을 제거하던지, 아니면 벤치까지 놓아둔 점을 감안 ‘쉼터’로 개명하면 어떨까?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어도 조금 힘들어지려 하면 금세 내리막이 나타나 지루함이 없다.

▼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숲이 주는 선물 같은 쉼터(이정표 : 물문화관 2㎞/ 두메마을 8.5㎞)를 만났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 벤치가 놓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청호의 풍광을 느긋이 즐기고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쉼터를 지나면서 숲은 대청호오백리길의 진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낮은 나무울타리 너머로 호수가 여유를 부리는데, 반대편에서는 울창한 숲이 힐링을 선사해준다. 유격훈련장에서나 볼 법한 밧줄도 매달려 있었다. 갑장이자 도반인 유사장의 입에선 ‘해먹’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지만...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로하스가족공원 캠핑장’이 길손을 맞는다. 대덕구가 개장한 이 ‘글램핑장(화려한 또는 매력적이라는 뜻을 지닌 glamorous와 camping을 합친 신조어)’은 40면의 캠핑 사이트와 카라반 사이트 10면 등 대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오백리길은 캠핑장의 부대시설인 풋살경기장을 스치듯 지나간다.

▼ 대청호 쪽에는 문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맞아들이듯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함께 걷던 이석암 선생(‘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이 건너편을 가리키며 청남대(淸南臺)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으로 조성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면 개방, 충북 제1의 명소 중 하나로 떠오른 곳이다. 그 오른편은 문의면(청주시 상당구). 뾰쪽하게 솟아오른 건 ‘샘봉산’이 아닐까 싶다.

▼ 풋살경기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로하스캠핑장’을 거쳐 ‘보조여수로’로 연결된다. 하지만 탐방로는 직진해서 ‘지명산’으로 가란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대청호를 기웃거리다보면 어느덧 ‘지락정’이다. 대청호 너머로 청남대가 바라보인다는 정자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완전체를 이루지 못했다.

▼ 지명산에 가까워질 무렵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 숲도 더 깊어졌다. 그래선지 다양한 식물들은 물론, 이맘때 한창인 버섯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 풋살경기장에서 20분. ‘지락산’이라고도 불리는 ‘지명산(158m)’의 정상에 올라섰다. 혹자는 이곳을 ‘미호동산성’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둘레가 100m쯤 된다는 산성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올라오는 도중 석축 느낌의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는데 그게 성터였을지도 모르겠다.

▼ 정상이 분명하건만 이를 증명해주는 공적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백리길 및 둘레산누리길에서 세운 이정표도 지명이 없기는 매한가지. 그게 안타까웠던지 ‘청주33 금요산오름’에서 정상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 어설픈 행정의 한 단면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위·아래로 나뉘어 적힌 이현동 두메마을(1구간의 종점)까지의 거리가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3.2km나 차이가 난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때 주의할 게 있다. 핸드폰에 다운 받아놓은 트랙을 따를 것이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정표가 가리키는 ‘로하스가족공원’으로 내려가는 게 옳다. 트랙을 따를 경우 고생문이 훤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가파른데다 미끄럽기까지 한 내리막길만 있을 뿐, 볼거리는 전무하니 가능하면 피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호숫가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가에 닿는 것은 아니다. 길은 수면에서 10-20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로. 산비탈을 옆으로 째면서 나아간다. 다시 길을 밟아 땅끝의 둘레길을 걷는다고나 할까?

▼ 산비탈을 헤집는 호반길을 8분쯤 걸었을까 호숫가 언덕에 걸터앉은 ‘대청정’을 만났다. 대청정은 아주 절묘한 위치에 자리해서, 전망도 좋지만 정자 자체가 멋을 풍긴다. 그 경관에 반했는지는 몰라도 소설가 박범신이 잠시 걸음을 쉬어갔다는 곳인데, 대청호의 수위가 높아지면 정자로 가는 길목이 살짝 잠겨 ‘섬’이 되기도 한단다.

▼ 정자에 오르자 대청호가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은 금강의 물줄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이다. 대체로 이쪽은 백제 땅이고, 건너 쪽은 신라였다. 당시 신라군의 전방사령부가 있던 곳이 청주의 상당산성(上黨山城), 대청호를 건너면 금방인 곳에 위치한다.

▼ 대청정을 지나면서 길은 무척 고와진다. 초반은 데크길, 후반에 황톳길로 바뀌지만 길은 보드라우면서도 널찍하다. 거기다 대청호까지 바라보며 걸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바닷가 같은 바람, 일렁이는 물결...

▼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났다. 이정표(캠핑장 0.8㎞/ 지락정 0.5㎞/ 대청정 0.2㎞)는 오른편이 지락정과 연결됨을 알려준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서 내려오는 후미 그룹이 눈에 띈다. 지명산에서 내려왔더라면 저렇게 편했을 것을. 어쭙잖게 트랙을 따르다가 고생만 죽도록 한 꼴이 됐다.

▼ 대청호와 눈 맞추며 잠시 걷자 망루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경계용 초소로 여겨지는데,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대청댐 보조여수로’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품 전망대이니 말이다.

▼ ‘보조여수로’란 예측 이상의 홍수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방류를 위한 시설로 댐과 그에 따른 물길을 포함한다. 다행인지 2014년 설치 이후 방류가 진행된 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상이변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사용될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다.

▼ 또 다른 전망대도 만날 수 있었다. 보조여수가 내려다뵈는 언덕에 팔각정(집사람과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에 편액을 살펴보는 걸 잊어버렸다)을 짓고, 보조여수로 준공기념비도 들어앉혔다. 사업 및 시설의 개요와 단면도를 넣은 안내판까지 세워 문외한들의 이해도 돕는다.

▼ 정자 근처에서 지명산의 등산안내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내려온 길은 아예 그려 넣지도 않았다. 없는 듯 있는 산길이어서 일까? 아니라면 험한 길은 아예 가지도 말라는 신호일 것이고.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오백리길은 ‘로하스가족공원캠핑장(이정표 : 종점 8.5㎞/ 시점 4.2㎞)’에 이른다. 대청호를 찾는 가족들의 오토캠핑, 혹은 글램핑 장으로 유명하다. 오지탐험가 겸 캠핑전문가인 김성선씨가 위탁운영 중이라는데, 대청호 500리길을 개척한 사람이기도 하단다.

▼ 이후부터는 자동찻길(대청호수로)을 따른다. 길은 보조여수로의 수문 위로 나있다. 덕분에 방수로(放水路)를 눈에 담을 수 있는데, 그 커다란 규모에 놀라게 된다. 하긴 초당 7000t을 흘러 보내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겠지?

▼ 도로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탐방로가 도로를 벗어나잔다. 그리고는 왼편으로 갈려나가는 임도(이정표 : 두메마을 7.5㎞/ 물문화관 5.3㎞)로 들어선다.

▼ 조금 더 걷자 펑퍼짐한 언덕이 눈앞에 차오른다. ‘미호동 청동기유적지’로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주거지인데 방추자(실을 뽑을 때 회전을 돕기 위해 가락, 즉 방추의 막대에 끼우는 부속품)·석촉·석도·갈판(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만들 때 사용)·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단다. 농경과 어로생활을 함께 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임도로 들어선지 10분. 대청호오백리길‘은 대청호반을 따라 낮은 산과 숲, 그리고 호숫가를 지나가는 둘레길이다. 그런 길이 시야를 조금씩 열어주더니, 이내 ‘이촌마을(대덕구 삼정동)’로 들어선다. 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숫제 한 폭의 풍경화였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그래선지 마을에는 ‘쥐코찻집’처럼 입소문을 탄 카페도 여럿 들어서 있었다.

▼ 마을에는 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대청호의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정화시설인데, 공원은 너무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다. 하지만 대청호의 기존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흡사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대청호반에 동화되어 있다.

▼ 공원에서 정화된 물까지도 믿지 못했던 모양이다. 호숫가에 또 하나의 습지를 만들어 물을 다시 한 번 걸러낸다. ‘원앙새 부유습지’, 물 위에 띄워놓은 인공 섬이 한 쌍의 원앙을 닮았다는 뜻일 것이다.

▼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댐 만수시 진입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맞다. 대청호오백리길은 담수량에 따라 코스 상의 길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무리해가며 원래코스를 고집하지 말자. 까짓 윗길로 옮겨 걸으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 잠시 후 곶(串)이라도 되는 양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지점에서 ‘박효함(朴孝諴, 1387-1454)’의 신도비(神道碑)를 만났다. 청주목사를 거쳐 강릉대도호부사에 이른 인물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지는 말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서거정이 비문을 지었다니 말이다.

▼ 신도비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강촌마을’이 손짓한다. 이촌마을을 벗어난지 13분만이다. 강촌마을은 법정 동리(洞里)인 삼정동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진주강씨’들이 세거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촌이나 민촌, 삼정마을에 비하여 높은 지대에 있다 해서 윗말·웃말·삼정상리라고도 부른다.

▼ 강촌마을에도 ‘생태습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대청호를 더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정화시설’이다. 비가 오면 농경지나 도로면에 있던 오염물질들이 대청호로 유입되기 마련인데, 이 물질들을 침강지로 모았다가 갈대·억새·부들이 심어진 생태여과지를 거쳐 대청호로 흘려보내도록 고안됐다고 한다. 공원 앞 호반에도 습지를 만들었다. 갈대와 꽃창포, 노란꽃창포가 열심히 정화활동을 하고 있는 저 습지의 이름은 ‘산호빛 부유습지’라고 한다. 산호빛깔을 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나?

▼ 탐방로는 강촌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도로로 올라선다. 그렇다고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로변에 인도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 걷는 도중 강촌마을 앞 대청호반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은 사진촬영 포인트로 알려진다. 인공 섬인 부유습지와 정박 중인 배를 이용해 다양한 구도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청호 속에 반영을 이용하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단다.

▼ 강촌마을이 끝나갈 즈음 고택 하나가 나온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집의공파 종갓집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민충원(閔沖源)의 16대 종손으로 고종 때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경기도 여주에서 이주하면서 지었는데, 대청호 수몰지역인 ‘삼정골’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단다. 참고로 여흥민씨는 조선조 사극의 대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인현왕후(숙종), 명성황후(고종), 순명효황후(순종)를 배출한 명문이다. 충정공 민영환선생과 민복기 대법원장도 이 집안 출신이란다.

▼ ‘민씨 종가’를 지나면 인도가 없어 차가 다니는 도로를 100미터 정도 걸어가야 한다. 눈치도 보지 않고 달려대는 자동차들 때문에 소름끼치는 구간이다.

▼ 데크로 내려서기 직전, 왼편 언덕에 조선 중기 문신 민여검(閔汝儉, 1564-1627)의 신도비가 있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의 공동 저자인 민제인(閔齊仁, 1493년-1549)의 초장지가 근처에 있다는 안내 빗돌도 보인다.

▼ 신도비를 지나면 ‘소골마을’, 오백리길은 마을 앞 도로를 벗어나 데크로드를 따른다. 참고로 ‘소골’이란 지명은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여흥민씨’가 세거한다고 해서 ‘민촌’, 재실이 있다 해서 ‘재실말’로도 불린다.

▼ 소골마을의 명물은 ‘짬뽕마을’이다. 숨겨진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하니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산악회에서 초복 맞이 백숙을 제공한다는 누군가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헛소문으로 판명되어 두고두고 가슴을 쳐야 했지만...

▼ 소골마을을 지나자 탐방로는 또 다시 테크길로 내려선다.

▼ 소골마을에서 13분. 삼정마을(혹자는 이곳을 ‘덕골’로 부르기도 했다.)에 도착했다. 옛 이름은 ‘삼정골’. 과거에 이 지역 주민들이 산전을 일구어 살아서 ‘산전골’이라 부르다가 이것이 ‘삼정골’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노승이 이 지역의 지세를 보고 ‘이 땅은 세 명의 정승을 배출할 명당’이라고 예언한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니 참고해두자.

▼ 마을 앞에는 ‘비점오염 저감시설’이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었다. 산이나 도로, 농경수로를 통해 유입되는 각종 비점오염원을 갈대·물억새·꽃창포 등 습지에서 자라는 다양한 수생식물의 자정작용을 거치게 하여 오염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대청호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인공습지다. 그뿐 아니다. 쉼터 기능을 가미해 주민들은 물론이고, 우리 같은 둘레길 나그네들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 삼정동에서 갈전리까지는 길옆으로 난 데크 길을 걷게 된다. 아니 아래 사진처럼 위태위태한 도로변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위험한 구간이다.

▼ 오백리길에서는 명심보감이 서러워할 만한 뜻깊은 문장이 적힌 푯말을 심심찮게 만난다. <기억하라 등 뒤에서 욕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보다 두 걸음 앞서 있다는 뜻이다> 옳은 말이다. 부러워서 내뱉는 게 욕이 아니겠는가.

▼ 한눈에 쏙 들어오는 이정표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현재의 위치를 가운데 두고 시점과 종점까지의 거리를 적었다. 구간 길이도 모처럼 제대로 적었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으면 ‘갈전동(葛田洞)’에 이른다. ‘갈전’이란 지명은 마을을 뒤덮다시피 한 ‘칡’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칡 갈(葛)’자를 써 칡밭이라는 의미의 ‘갈전(葛田)’이 되었다. 강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갈대’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해두자.

▼ 대청호 주변은 귀촌인구가 부쩍 늘었다는 소문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온 이들이다. 하지만 불편이 싫다며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저리도 고운 대청호반을 마당삼은 집까지도 비어있는걸 보면 말이다.

▼ 송강식당 앞 ‘갈전동삼거리’에 이른 탐방로가 또 다시 도로와의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같은 포장길이지만 폭이 확 줄어든 소로로 접어든다. 이어서 대청호반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길게 이어진다.

▼ 호숫가를 걷다 망초 꽃밭을 만났다. 지난번 지리산둘레길 때도 얘기했듯이 망초는 뽑고 뽑아도 또 다시 자라나는데 질린 농부가 ‘에이 망할 놈의 풀’이라고 외친 게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서글픈 식물이다. 그게 오늘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보라! 저 꽃밭을 보고 어느 누가 괄시할 수 있겠는가.

▼ 망초꽃밭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오솔길로 변한다. 이어서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숲속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 갈전동을 출발한지 30분. 탐방로는 ‘이현동 생태습지’에 이른다. 배오개천 하류에 조성한 친환경 생태습지로, 26,186㎡의 부지에 수생식물(수련·창포·부들·미나리·삼백초·어성초 등을 심었다)학습장과 억새습지(거대억새 및 물억새), 산책로 및 광장을 배치했다.

▼ 생태습지의 메인은 널따란 광장이다. 정자와 식수대 등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호박마을을 홍보하려는 듯 호박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여럿 설치했다. 뒤편 조형물은 대전의 깃대종인 ‘감돌고기’가 구름과 비, 벚꽃 사이에서 노니는 것을 형상화했단다. 깃대종이란 어느 지역의 생태나 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동식물의 종으로, 대전의 깃대종으로는 감돌고기와 함께 하늘다람쥐, 이끼도롱뇽이 있다.

▼ 광장의 한쪽 귀퉁이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했다. 생태습지의 안내판을 세웠는가 하면, 이곳 이현동 두메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오색빛 호박마을’임을 알린다. 참고로 ‘이현(梨峴)’이란 지명은 뒷산의 지형이 배(梨)처럼 생긴데서 유래됐다. 동네로 들어오는 고개를 배고개(梨峴)라 부르다가, 이게 동네 이름으로 굳어졌단다.

▼ 광장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호박을 재배하고 있었다. 파이프로 긴 터널을 만들고 호박넝쿨을 올렸는데, 넝쿨마다 큼지막한 호박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매달린 호박은 못생겼다는 속설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귀엽고 예뻤다. 그래선지 이를 소품삼아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인다.

▼ 날머리는 이현동 두메마을(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호박 구경을 실컷 한 다음 두메마을(계족산 골짜기에 들어선 두메산골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로 향한다. 그리고 7-8분쯤 더 걸어 대전시티투어 승강장을 겸하는 주차장에 이르면서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은 14.22km를 찍는다. 초반 4km 정도가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두메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오색빛 호박마을’이다. 동네 곳곳에 호박 조형물을 배치했는가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죤도 만들어놓았다. 이를 본 집사람이 호박을 형상화한 의자에 냉큼 주저앉더니 포즈부터 잡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