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艾島, 쑥섬)

 

여행일 : ‘21. 4. 19(월)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

트레킹 코스 : 선착장→갈매기카페→난대원시림→환희의 언덕→야생화정원→여자산포바위→신선대→성화등대→동백길→사랑의 돌담길→선착장(소요시간 : 1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고흥반도 최남단의 외나로도항 선착장 건너편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자그마한 섬(면적이 0.32㎢로 봉래면을 구성하는 6개의 유인도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이란다)이다. 애도(艾島)는 쑥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래선지 섬사람들은 행정명칭인 애도(艾島)보다는 ‘쑥섬’이라는 옛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단다. 애도의 ‘애’자가 ‘쑥 애(艾)’이니 그게 그거겠지만 무릇 인간에겐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이 있다지 않는가. 아무튼 사는 집보다 집을 헐어낸 공터가 더 많은 이 한적한 섬이 최근 입소문을 탔다. 수백 년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난대원시림’과 수백 종의 꽃들이 피어나는 ‘비밀의 하늘정원’. 그리고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마다 엄선하는 ‘2021~2022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 찾아오는 방법

쑥섬(이후 애도 대신 쑥섬으로 통일한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나로도 연안여객선터미널(고흥군 봉래면 신금리)’까지 와야만 한다. 애도를 왕복하는 배가 이곳 ‘나로도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고흥 IC에서 내려와 국도 15호선을 타고 내려오면 내나로도를 거쳐 이곳 외나로도에 이르게 된다. 참! 작년 2월 말엔가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 4개가 한꺼번에 개통된 뒤로는 화양반도를 거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산악회 버스는 옛 노선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었다.

▼ 쑥섬 탐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선착장에 세워져 있는 지도를 핸드폰에 저장한 후, 지도에 표기된 일련번호대로 걷기만 하면 된다. 두어 곳에서 단축코스가 나오나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도 없다.

▼ 승선권을 구입했다고 다가 아니다. 배를 타기 전 간단하게나마 섬에 대한 안내가 선행된다. 눈과 가슴에 담아둘만한 명소들을 코스를 따라가며 설명해주는데, 마스크 쓰기나 주민들과의 접촉 삼가기 등 섬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도 살짝 곁들인다. 참! 배낭의 반입을 금지하는 이유도 설명하고 있었다. 음주가무에 쓰레기 투기까지 만악(萬惡)의 근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란다. 내가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하나 더. 5000원의 입장료도 받고 있었다. 쑥섬의 탐방로를 가꾸고, 정원을 다듬는 등 마을을 가꾸는 비용에 쓰인단다.

▼ 이곳 나로도항과 쑥섬을 오가는 배는 이름까지도 ‘쑥섬호’이다. 정원이 12명이라는 배는 선실과 선미에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섬으로 들어갈 때는 선실, 반면에 나올 때는 선미만 앉을 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 배를 타러 나가는데 건너편에 있는 쑥섬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0.326㎢ 밖에 되지 않는 자그만 섬이 카메라의 앵글에 집어넣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커져있다. 그 정도로 가깝다는 얘기이다. 시셋말로 멀리뛰기 한번이면 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

▼ 나로도항에서 배를 탔다싶은데 다 왔으니 어서 내리란다. 그렇게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꼬맹이 어선 두세 척만이 한가로운 쑥섬에 배가 닿았다. 선착장은 남방파제 끝에 만들어놓은 부잔교(浮棧橋)다. 조수간만의 차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한가롭기 짝이 없는 저 포구도 크고 작은 어선들로 붐비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 배들이 서남해안을 누비며 삼치, 민어 등의 고기를 잡아 뭍사람조차 부러워할 지경이었단다.

▼ 배에서 내리자 마을 어귀의 ‘갈까’가 반긴다. 갈까는 갈매기카페의 줄임말. 원통형의 이층 건물에 지붕을 갈매기 조형물로 장식했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무인 카페인데 냉장고의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 대금은 돈통에 넣으면 된다. 그 옆의 또 다른 건물은 로컬 푸드 판매장인 ‘쑥섬’이다.

▼ 선착장을 빠져나오는데 ‘왔냐~옹’이라는 고양이 조형물이 반긴다. 쑥섬의 마스코트가 고양이인 모양이다. 맞다. 마을에는 현재 17가구 26명의 주민들과 40여 마리의 고양이가 공존하고 있다한다. 그러니 주민의 수보다 더 많은 고양이가 섬을 대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 않겠는가. ‘고양이 섬’이라는 쑥섬의 애칭이 이를 증명한다 하겠다. 마을에 사는 ‘고양이 할머니’도 유명하다. 이 섬의 길거리를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양이들에게 손수 먹이를 주다보니 그런 애칭을 얻게 되었단다.

▼ 본격적인 탐방은 ‘갈까’ 앞에서 시작된다. 카페 앞에 탐방로 입구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90m만 더 가면 멋진 숲이 있고, 900m를 더 가면 별정원이 나온다며 거리까지 적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카페 안에 있는 화장실을 꼭 들른 다음 트레킹을 시작하라는 것. 탐방로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허투루 여기지 말고 꼭 들렀다 가자.

▼ ‘100m만 가면 되는 길’이라는 또 다른 이정표를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트레킹에 나서본다. 초입의 계단. ‘헐떡길’이 상당히 가팔라 보이지만 까짓 100m쯤이야 못 참겠는가. 그렇게 잠시 올라서자 쑥섬의 속살인 원시림이 펼쳐진다. 덩굴들이 우거진 가운데 태양을 보고 싶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경쟁적으로 솟아오르면서 숲의 하늘을 모두 가렸다. 대부분 서어나무, 후박나무, 육박나무 등 숲이 가장 안정화된 곳에서 자란다는 나무들이다. 안내판에 나타난 이름은 ‘난대 원시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제1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누리상’을 받기도 했단다.

▼ 숲으로 들어가자 경고판이 먼저 반긴다. 쑥섬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니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란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별수 없이 개방했으나 400년 동안이나 비원(祕園)으로 보존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숨은 그림 찾기’까지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무가 하도 오래 묵다보니 기괴한 문양들을 만들어놓았는데 이걸 찾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옥황상제의 심부름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말(위의 그림),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은 ‘당할머니 나무’, 옥황상제의 귀염둥이라는 ‘코알라(아래 사진)’ 등 그 모양새도 각양각색이다.

▼ ‘총리나무’도 만날 수 있었다. 쑥섬에 들른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인연을 갖고 있는 엄청나게 굵은 ‘푸조나무’이다. 기념사진의 배경이 된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아 이낙연씨가 국무총리가 되었다면서 뭔가 바라는 게 있으면 빌어보라고 권한다. 400년 묵은 당숲에 새로운 당나무(堂木)가 탄생한 셈이다.

▼ ‘난대 원시림’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2~3층 높이의 돌계단만 오르면 끝나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 계단의 끄트머리에서 포토죤을 만났다. 좌우가 바뀐 한반도 모형에다 피사체를 집어넣을 경우 인생샷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단다.

▼ 인생샷 얻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기본.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포즈를 잡다가는 인생샷은커녕 보통의 사진 하나도 얻기 힘들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또 다른 포토죤이다. 이곳에서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구도를 채 잡지도 않았는데 서너 명이나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덕분에 안내판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사진이 나와 버렸다.

▼ 포토죤을 지나자 ‘환희의 언덕’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안내판은 ‘가슴이 뻥 뚫리시죠?’로 시작된다. 그만큼 조망이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환희의 언덕은 탁 트인 바다와 멀리 보이는 섬들이 이루는 풍광에 자연스레 마음속 감탄이 나오는 곳이다.

▼ 해식애로 둘러싸인 작은 섬도 눈에 들어온다. 아까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보았던 꼬맹이 섬으로 본섬과는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쑥섬은 본섬과 저 무인도 등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판은 저 섬에서 ‘인어’와 ‘큰바위 얼굴’을 찾아보라는 숙제까지 던져준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형상이 그려지지 않으니 문제다. 무학대사는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칠십 평생을 살아왔건만 아직도 내 수양은 멀었나 보다.

▼ 환희의 언덕이 자랑하는 조망도 살펴보자. 여기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다도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왼쪽 무리는 소거문도와 거문도, 손죽도. 가운데는 초도와 청산도이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더 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산도와 거금도, 소록도 등 큼지막한 섬들은 물론이고, 지죽도와 대염도, 석환도, 머구섬 등 꼬맹이 섬들이 널따란 바다를 점점이 수놓고 있다.

▼ ‘무덤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사람이 죽으면 육지로 나가 화장시키는 게 기본. 횡사나 액사를 하면 초분을 만들었다가 좋은 날을 잡아서 섬 밖에다 미리 만들어놓은 선산으로 모시고 나간다고 한다. 이는 섬에다 무덤을 만들지 않기로 한 주민들의 약속이란다. 그나저나 이로 인해 개와 닭, 봉분(封墳)이 없는 ‘3무(無)의 섬’이라는 별칭까지 얻어냈으니 약속 이행이 또 하나의 관광자원이 된 셈이다.

▼ 섬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몬당길’이다. ‘만만하다’, ‘마땅하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몬당하다’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 길은 또 ‘아버지의 길’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쑥섬지기인 김상현씨의 아버지(김유만님)가 아들과 쑥섬 방문객들을 위해 계속해서 길을 가꾸어오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몬당길’을 지나면 쑥섬의 절정인 ‘바다 위 비밀정원’에 이른다. 쑥섬 산책길을 조성한 김상현씨 부부가 특히 정성을 들인 곳으로, 1천600㎡ 정도의 평평한 분지에다 별정원(코티지정원)과 달정원, 태양정원 등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쏘아올린 지역답게 우주와 연관된 주제로 꾸며놓았다. 이밖에도 수국정원, 치유정원(허브정원) 등을 서브메뉴로 넣었다.

▼ 전라남도의 민간정원 제1호인 이곳은 쑥섬에서만 볼 수 있는 비경 중에 비경이다. 첫 번째 만남은 ‘별정원’. 380여 가지의 꽃들이 사계절 피고 지는 ‘코티지 정원(cottage garden)’으로 KBS-TV의 ‘인간극장 : 그 섬엔 비밀정원이 있다’와 EBS의 ‘한국기행’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펼쳐진 야생화의 향연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사계절 내내 저런 풍경이 연출된다니 만일 무릉도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비밀정원’이라는 은밀한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보기 드문 풍경이라면서 말이다.

▼ 고개를 돌리자 바다 건너에 있는 ‘나로도항’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2㎞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인데다 티 하나 없는 날씨까지 받쳐주니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다. 하나 더. 외나로도와 쑥섬 사이에 놓은 저 바다는 ‘봉호(蓬湖)’라 불리기도 한단다. 하도 잔잔하다보니 평온한 호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꽃밭에 만들어놓은 포토죤도 역시 고양이 차지였다. 하긴 고양이들이 주민들보다 더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고양이 섬’으로까지 불린다는데 오죽하겠는가.

▼ 트레킹은 꽃구경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곳곳에 세워놓은 시판(詩板)의 시와 명언(名言)들을 읽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 커다란 이정표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힘이 부칠 경우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인데, 이 정도면 초등학생들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겠다.

▼ 쑥섬의 자랑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꽃밭이다. 380여 종의 다양한 꽃들이 사시사철 피고지면서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에게 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한다. 이 꽃밭들은 교사와 약사로 맺어진 김상현·고채훈 부부가 직접 연구하며 꽃씨를 심고 쑥섬에 맞는 꽃모종을 만들어서 가꾸어왔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00년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고 약속하고 쑥섬 가꾸기를 지상과제로 정하면서 시작됐단다.

▼ 별정원을 지나면 ‘문학정원&인연정원’이다. 섬이나 꽃 관련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팻말에 담고 쑥섬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팻말에 담아서 만들어 가는 정원이라고 한다.

▼ 그래선지 ‘한 줄로 읽는 책’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팻말들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띄었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내용들이니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산책을 즐겨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 ‘문학정원&인연정원’도 역시 꽃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만 들면 사방이 온통 꽃으로 둘러싸이는 이유일 것이다. 맞다. 쑥섬의 정원은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꽃들이 1년 내내 피고지고를 반복한단다. 섬 밖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의 화원이 사방으로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칡넝쿨을 제거해줬더니 이렇게 예쁜 석부작(石附作)으로 변했다고 자랑하는 팽나무이다.

▼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을 따라 꾸민 듯 꾸미지 않은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바다를 옆에 두고 햇살을 받으며 산책길을 걷는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제껏 보아왔던 풍광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기화요초가 가득한 산상화원은 물론이고 다도해의 널따란 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 ‘여자 산포바위’를 만났다. 쑥섬에서는 경치가 좋은 곳에서 놀거나 잠시 쉬는 것을 ‘산포’한다는 표현을 쓴단다. 그렇다면 이곳은 여자들이 명절에 음식을 가져와 가무를 즐기고 가정의 안녕을 기원했던 곳이 된다. 100m쯤 떨어진 곳에는 남자들이 놀던 ‘남자 산포바위’도 있었다. 이 섬에는 다양한 남녀 짝짓기놀이 문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곳은 짝짓기가 이루어지던 곳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각각의 지정된 장소(남·녀 산포바위)에서 놀던 남녀가 중간지점에서 만나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 남·녀 산포바위 사이. 아니 남자산포바위 근처에 세워놓은 앙증맞은 ‘정상표지판’이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쑥섬 정상의 높이는 고작 ‘83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에베레스트(8848m)와 백두산(2750m), 한라산(1950m) 등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며 너스레까지 떨고 있다.

▼ 이젠 또 다른 명소인 성화등대로 가볼 차례이다. 내려가는 도중 ‘인간극장에서 주인공이 빠진 곳’이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띄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가슴이 아니라 눈에 담기조차 어색한 풍경일지라도 ‘스토리텔링’을 거치고 나면 이렇게 새로운 얘깃거리로 탈바꿈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조금 더 걷자 와우형(臥牛形)이라는 쑥섬의 풍수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와우형이란 소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상의 지형을 말하는데 안내판은 이곳이 와우형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소의 머리 부분이라고 적고 있다. 거기다 소의 머리답게 팽나무 한 그루가 뿔처럼 자란다는 너스레까지 떨고 있다. 또 하나의 멋진 스토리텔링이라 하겠다.

▼ 잠시 후 ‘선택의 길’에 내려섰다. 왼편은 성화등대로 가는 길로 거친 길이라고 적었다. 반면에 동네로 이어지는 오른편 길은 야자매트를 깐 덕분에 덜 거칠단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지점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쑥섬의 또 다른 비경인 해안절벽을 둘러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 왼편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신선대’이다. 하늘의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며 놀다간 자리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안내판은 바위 주변의 잘생긴 소나무들와 함께 다도해 조망을 이곳 신선대의 자랑거리로 적고 있었다.

▼ 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서자 푸른 바다 위로 2000년 전반기에 만들어진 성화등대가 우뚝하다. 생김새가 성화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데, 등대 주변은 고흥반도 남쪽 끝자락과 작은 섬들 사이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몰 명소로 알려져 있다.

▼ 성화등대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눈길을 사로잡는 비경이 기다리고 있다. 널따란 너럭바위와 수직을 이룬 해안절벽이 푸른 바다와 어울린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 너럭바위 옆 깎아지른 기암절벽은 안으로 동굴이 뚫려 바닷물이 들락거린다. 행실이 좋지 않은 탁발승이 자신의 법력을 과시하다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중 빠진 굴’이다. 참! 배를 빌려 타고 이 일대를 둘러보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수직의 기암이 장엄한 신선대나 재미난 전설을 간직한 대감바위를 보다 더 확실히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자바위나 두꺼비바위 같은 기암괴석들도 추가로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 고개를 조금 돌리자 망망대해가 펼쳐지면서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바다와 만나면서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 고흥반도는 멀리서 육지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 ‘선택의 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덜 거친 길을 따라 마을로 향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커다란 후박나무를 만난다. 그늘 아래에는 통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쑥섬을 자주 찾는 어느 독지가가 손수 만들어서 기증한 것이란다.

▼ 마을로 내려서기 전 ‘우끄터리 쌍우물’을 만났다. 우측 끄트머리에 위치한 두 개의 공동우물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깨끗한 위 우물은 식수, 아래 우물은 위쪽 우물이 넘쳐흘러 생겨난 것으로 빨래 등의 허드레용으로 사용했다는데, 상수도가 놓인 지금은 둘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시는 것은 금물. 그저 손이나 씻어보는 걸로 만족하자.

▼ 바닷가로 내려와 왼편으로 나가자 바위지대가 펼쳐진다. 높지는 않지만 통행을 불가능할 듯. 그래선지 탐방로도 이곳이 끝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섬은 ‘사양도’이다. 섬에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고 해서 주민들은 ‘남자의 섬’이라 부른다. 대신 이곳 쑥섬은 ‘어머니의 섬’ 또는 ‘여자의 섬’으로 불린다고 한다.

▼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일명 ‘동백길’이다. 200~300년 된 동백나무들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3~4월쯤이면 동백꽃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그런 풍광에 도취라도 해보라는 듯이 동백나무 그늘 아래에다 열 개도 넘는 벤치를 놓아두었다.

▼ 안내판은 이 동백길을 ‘최불암 선생님이 좋아하신 길’이라고 적고 있었다. 2018년 ‘한국인의 밥상’을 이곳 쑥섬에서 찍었는데, 당시 이곳에서 오프닝 멘트를 했었다고 한다.

▼ 이곳도 역시 ‘숨은 그림 찾기’의 명소이다. 울창한 숲 곳곳 특이한 형상의 나무에 시선을 맞춰보라는 얘기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처럼 생긴 나무, 머리를 풀어헤친 듯한 나무 등 다르게 생긴 모양대로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을은 북동쪽 바닷가에 들어앉았다. 하지만 돌담에 둘러싸인 공터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사람이 떠난 빈 집을 헐어낸 공간이리라. 맞다. 1973년만 해도 이곳은 64가구 397명이 북적댔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17가구 26명 정도가 호젓하게 살아갈 따름이니 저런 빈 터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자그만 섬이지만 음식점도 들어섰다. 백반을 메인 메뉴로 삼고. 섬의 특산품인 쑥을 넣은 부침개를 사이드메뉴로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밥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담장이 참 높다. 아니 눈에 들어오는 마을의 돌담들이 하나같이 처마에 이를 정도로 높이 쌓여 있다. 연근해이지만 이곳을 지나는 태풍 역시 만만찮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마을로 들어오면 주택가 사이에 ‘사랑의 돌담길’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이곳은 옛날 섬 마을에 살던 남녀들이 어른들 몰래 만나던 장소였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탐방객들이 사진을 찍고 추억을 장식하는 자리가 됐다.

▼ 좁디좁은 마을안길이라고 보면 된다. 그 양쪽에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각기 다른 작은 돌들을 정교하게 짜 맞춘 돌담을 쌓았다. 그것도 골목을 따라 구불구불 잘도 굽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몰래 숨어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지 않겠는가.

▼ 마을 앞 바닷가에 세워놓은 포토죤도 역시 ‘고양이’이다. 요번 것은 ‘반갑다~옹’. 고양이가 허리를 곧추세우면 반갑다는 의사표시라도 되는 모양이다. 참! 섬을 돌아다니다보면 실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외부인들이 오면 도망을 가기는커녕 스스로 다가와 애교도 부린단다. 사람과 고양이가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다는 반증이리라. 그러다보니 요즘은 쥐도 잡지 않은 채 놀고먹는다는 안내원의 넋두리도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포동포동 살이 쪘기에 그럴까가 궁금했지만 불행히도 고양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 한국전력의 옛 건물까지도 관광객의 흥미를 북돋우는 소품으로 등장했다. 아니 1976년에 첫 점화를 했다니 지역단위 문화유산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겠다. 맨 아래에 적힌 점화 당시의 이장 이름이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 길가 담벼락은 벽화로 꾸며졌다. 설치미술을 하는 젊은 작가들의 재능기부로 탄생했다는데, 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는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그 옆에는 고양이 몇 마리를 초상화처럼 그려 넣었다. 고양이를 대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도 빼먹지 않았다. 고양이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한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며, 지금처럼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기 때문이란다.

▼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게처럼 지어진 민박집 앞에서 지역 특산물인 쑥과 톳, 돌미역으로 만든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쑥가루와 쑥선식, 쑥식혜 등 쑥으로 만든 웰빙 제품이 대다수이다. 맞다. 이 섬의 이름은 ‘애도’. ‘쑥 애(艾)’ 자를 쓰고 있지 않는가. 이름에 걸맞는 상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입도 전 섬에 대해 설명해주던 안내원은 쑥이 많아서가 아니라 쑥이 좋아서 쑥섬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래선지 섬을 둘러보는 동안 쑥밭은 구경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저 제품의 원료는 대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