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汝自島)

 

여행일 : ‘20. 11. 15(일)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여자리

트레킹 코스 : 소여자도 선착장→큰등쉼터→붕장어다리→우측 해변→대동마을→개미허리길→마파치마을→붕장어다리→소여자도 선착장(소요시간 : 3시간 15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여수에선 여자만(汝自灣), 순천에선 순천만이라 부르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의 중심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보성에선 ‘가막만’이라고도 부른다니 참조한다. 여수시 관내의 365개의 섬 가운데 하나인 여자도는 ‘소(또는 松)여자도’와 ‘대여자’도 2개의 유인도 및 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유인도인 두 섬을 합쳐도 해안선은 7㎞를 넘지 않는다. 거기다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해발이 51m에 불과하다. 다른 섬들에 자랑할 만한 특별한 볼거리를 갖고 있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두 섬을 연결하는 ‘붕장어다리’가 놓이면서 여자도 주민들에게도 자랑거리가 생겼다. 길이 560m의 이 다리는 붕장어가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해 사진의 배경으로 최적화시켰다. 거기다 다리 곳곳에 낚시터를 만들어 동호인들의 구미까지 동하게 했다. 주말이면 여자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붐비는 이유일 것이다.

 

▼ 찾아오는 방법

여자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섬달천(여수시 소라면 복산리)’까지 와야만 한다. 여자만을 왕복하는 여객선이 이곳 ‘섬달천 선착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의 진입구간이라 할 수 있는 해룡 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방면으로 내려오다 덕양교차로(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서 22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죽림사거리(소라면 죽림리)에서 우회전하여 863번 지방도로 옮기고, 잠시 후 신흥리교차로(소라면 복산리)에서는 좌회전하여 달천길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달천도’가 나온다. 참고로 ‘달천’이란 이 일대를 아우르는 지명이다. 육지 쪽은 ‘육달천’이며, 다리로 이어져 있는 섬 쪽은 ‘섬달천’으로 구분하여 불린다.

▼ 지도를 조금은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여자도(汝自島)’라는 지명이 생긴 근원이기 때문이다. 본섬을 중심으로 주위에 몰려 있는 섬들의 배열이 공중에서 보면 ‘너 여(汝)’자를 닮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육지와 거리가 너무 멀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에서 ‘스스로 자(自)’ 자를 붙여 ‘여자도(汝自島)’라 했단다. 본래의 이름인 ‘넘자섬’이 한자화 되는 과정에서 ‘여자도’로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넘’은 남이란 뜻을 가진 여(汝)로 해석하고 ‘자’는 소리 나는 대로 자(自)로 표기하면서 여자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 버스에서 내리니 바다 건너 여자도가 바로 코앞이다. 그런데 납작하니 옆으로 펴진 게 도무지 산이라곤 없는 모양새이다. 맞다. 사람들은 섬의 저런 모양새에서 ‘여자도’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기도 했다. ‘넘자섬’이 한자화 되는 과정에서 여자도(汝自島)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옛말. 이는 파도가 산을 넘을 정도로 섬의 높이가 낮다는 말로 풀이되며,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여자도의 지형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하겠다.

▼ 우리가 타고 갈 ‘여자호’이다. 유람선 느낌의 여객선으로 정원은 47명, 매표소가 따로 없어서 편도 5천원인 뱃삯은 배에서 직접 받는다. 배는 매일 4회(8:40, 11:40, 14:40, 18:00). 여자도에서도 같은 횟수(8:00, 11:00, 14:00, 17:30)로 출발한다. 참고로 오래 전 ‘여자도’는 오지 중의 오지 섬이었다고 한다. 여수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면 순천만과 가막만에 이어 화정면의 섬들까지 돌고 돈 뒤에야 겨우 여자도에 배를 댔기 때문이다. 그게 5시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분이면 섬달천으로 건너가 여수로 나가는 시내버스(90번)를 이용하면 된다.

▼ ‘섬달천’을 출발한지 20분 만에 ‘소여자도(小汝自島)’에 도착했다. 섬 전체를 소나무가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송여자도(松汝自島)’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섬의 남쪽 해안에는 ‘송여자’라는 마을이 들어서 있다. ‘대동마을’ 및 ‘마파지마을’과 함께 여자리를 구성하고 있는 3개의 단위부락 가운데 하나로 여자도로 들어오는 여객선의 첫 기항지이기도 하다. 참고로 여자도는 마을마다 선착장이 들어서 있다. 본섬인 대여자도와 부속섬인 소여자도를 다리로 잇고, 마을과 마을을 도로로 연결시켰지만 자동차의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가 자동차 역할을 하는 셈이다.

▼ 배에서 내리면 이 섬의 자랑거리인 ‘붕장어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힘센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보행자 전용의 다리로, 대여자도와 소여자도를 연결하는 역할과 함께 낚시꾼들에게는 일류의 낚시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 마을로 들어서자 해양 폐기물을 이용한 센스 있는 벽화가 눈길을 끈다. 참고로 ‘소여자도(小汝自島)’는 작은 여자도란 뜻으로 본래 이름은 ‘솔넘자’였다. 여기서 ‘솔’은 작다는 의미인데, 한자로 고치는 과정에서 ‘송여자도(松汝自島)’가 되었다고 한다. 섬의 뒷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송(松)’자를 붙였다는 얘기도 있으니 참조한다.

▼ 선착장에서 빠져나오자 ‘여자도 유래와 둘레길 안내도’가 눈에 띈다. 단순한 눈요기 보다 섬에 대한 앎이 먼저라는 배려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여자도 전체에 대한 내용을 담았더라면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 안내도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1.7㎞쯤 되는 ‘송여자도 둘레길’이 시작된다. 안내도 옆의 등산로 푯말을 참고하면 되겠다. 등산로는 여기서 우측으로 30m쯤 가면 시작된다. 곧장 숲이다. 하지만 해안가 갯바위지대를 따라가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썰물 때라서 길이 열려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산으로 들어서기 전, 눈이라도 돌릴라치면 여자만의 드넓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실루엣으로 마무리한 여수반도(麗水半島)를 배경삼은 바다는 ‘돈북섬’만이 외로운데, 작은 어선 하나가 이를 달래주기라도 하려는 듯 부지런히 달려간다. 참고로 섬 전체가 푸른 풀밭으로 덮여있다고 해서 ‘풀섬’으로도 불리는 ‘돈북섬’은 평소 낚시가 잘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외로운 저녁 바다에서 불을 밝혀주는 등대가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섬이다.

▼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와 사스피레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도 좋다. 옛사람이 걸었을 법한 지겟길은 본래의 흙길에 돌이 있어 자연스럽게 계단 역할을 한다. 그렇지 못한 곳에는 통나무 계단을 깔아 탐방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또한 곳곳에 등산로 푯말을 세워 길을 잃고 헤매는 일도 미리 없앴다.

▼ 산속으로 들어서는데 짙은 솔향이 코끝을 스쳐간다. 소나무는 그렇게나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 하나. 그래선지 장거리 여행에 지친 심신이 새로워진 느낌이다. 하긴 사람이 호흡을 통해 피톤치드를 흡수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5분쯤 올랐을까 잘 지어진 정자가 길손을 맞는다. 하지만 특별한 조망은 보여주지 못한다.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들 사이로 등대가 걸터앉은 ‘돈북섬’이 살짝 들어나 보일 뿐이다.

▼ 10분쯤 더 걷자 ‘큰등’이다. 봉긋하니 솟아오른 구릉(丘陵)에는 잠시 쉬어가라는 듯 벤치가 놓여있다. 야외용 식탁을 배치했는가 하면 아까 선착장에서 보았던 안내도도 보인다. 지난 2014년 행정안전부에서 공모한 ‘찾아가고 싶은 섬’ 사업에 여자도가 선정되면서 조성한 쉼터란다. 이곳은 소여자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 둘레길 주변에는 묵밭이 많이 보였다. 여자도가 자급자족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밭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밭농사를 하는 사람이 없어진 탓에 저렇게 칡넝쿨과 잡초들만이 무성한 묵밭으로 변해버렸다.

▼ 북동쪽 모퉁이를 돌아서자 여자만에 ‘납계도’가 떠오르고, 이어서 여자도 본섬을 잇는 ‘붕장어다리’가 성큼 다가온다. 폭 3m에 길이가 560m인 연도교로 지난 2012년 4월에 준공됐다.

▼ 송여자도 둘레길의 끝자락에는 아담하고 예쁜 집이 들어서 있다. 1968년 문을 열어 2007년에 문을 닫았다는 옛 송여자분교(소라초등학교)이다. 하지만 지금은 ‘솔’이라는 민박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두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별채와 일반 객실 2개, 거기다 세미나실까지 마련되어 있어 가족여행은 물론이고 회사 차원의 연수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단다. 참! 이곳은 여자도에서 하나뿐인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0분 만에 도착한 ‘붕장어다리’. 여자도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개통된 이 다리 덕분이다. 길이 560m의 이 다리는 ‘붕장어다리’라는 이름처럼 붕장어가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상하좌우로 볼륨을 주었으니 예쁘게 생겼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하나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 다리에 올라서자 ‘몽(夢)’이라는 조형물이 여행객들을 맞는다. 대어를 낚아 올리고 있는 동상인데, 큰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싶어 하는 모든 낚시꾼들의 꿈을 표현한 듯 싶다. 그래. 이곳 여자도의 수역에서 감성돔과 노래미, 갯장어, 숭어 등이 많이 잡힌다니 월척이라도 꿈꿔볼 일이다.

▼ ‘붕장어’라는 애칭만큼이나 다리는 예쁘게 생겼다. 보행자 전용의 이 다리는 여느 다리처럼 밋밋한 일자 형태가 아니다. 좌우로 위아래로 요동치는 커다란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눈에는 지네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지네다리’라고도 부른다니 말이다. 참! 다리의 끝에는 휴게소도 들어서 있었다. 낚시꾼들의 매점 역할은 물론이고 식당 및 숙박시설로도 운영된다고 한다.

▼ 다리에는 모두 7개의 낚시터가 마련되어 있다. 벤치에 구명정까지 배치한 낚시터에는 ‘시판(詩板)’까지 걸어놓아 낭만까지 가미했다. 그 가운데서도 ‘섬에서 배우는 사랑 법’이라는 시가 눈길을 끈다. 섬은 외롭지 않고, 다만 조용한 사랑을 하고 있어 외로워 보일 뿐이란다. 그건 그렇고 낚시 삼매경인 사람에게 조황을 물어보니 피라미 한 마리 못 잡았단다. 그렇다면 ‘감성돔’의 포인트라는 소문은 거짓말 아니냐는 우문(愚問)에는, 입질이야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지 않겠냐는 현답이 돌아온다. 맞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 오른쪽. 그러니까 여자도의 동북쪽 바다에 떠있는 섬은 ‘납계도’이다. 높이가 8m밖에 되지 않는 아주 납작한 섬이어서 ‘납닥섬’이라고 했는데, 한자화 되는 과정에서 납(蠟)으로 닦은 닭(鷄)으로 풀어쓰면서 ‘납계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 왼편으로 보이는 더 작은 섬은 ‘동굴섬’이다.

▼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 바위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이 ‘검둥여’라고 부르는 섬에는 전봇대 하나가 세워져 있다. 뜬금없이 보이겠지만 교환식 전화기를 이용하던 시절에 전화선을 연결하던 시설이란다. ‘검둥여’는 최고의 갯바위 낚시터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낚시꾼 간에 자리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란다.

▼ 다리를 건너자 길은 둘로 나뉜다. 직진은 ‘마파지’ 마을을 거쳐 대동마을로 연결되는 시멘트도로. 한적한 시골풍경이 펼쳐지는 평범한 길이다. 이정표는 없지만 오른편 해안가를 따라 난 데크길을 따르는 이유이다. 아니 대여자도의 매력은 섬의 오른편 해안을 따르는 트레킹이라는 귀띔을 이미 들었는데 어찌 딴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해식절벽과 검은 모래해변, 검은 자갈해변, 공룡알을 촘촘히 박아 놓은 듯한 지형이 지질박물관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 200m 길이의 데크길이 끝나면 여자도가 자랑하는 비경인 암반지대가 시작된다. 곰보빵처럼 울퉁불퉁한 기반암은 마치 공룡의 알집을 보는 것 같다. 중성화산암류(中性火山巖類)의 집괴암에 박혀 있던 돌조각이 빠져나가고 염분이 주변 암석을 깎아 더 큰 구멍을 만들면서 생긴 현상이란다. 저렇게 벌집처럼 보이는 지형을 타포니라고 부른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그나저나 마치 우주의 외딴 행성에 온 것 같은 분위기지만 길의 상황은 별로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철분이 많은 붉은 암괴를 지나자 ‘검은 모래해변’이다. 아니 모래라기보다는 자갈에 더 가깝다. 그것도 몽돌이 아니고 맨발로는 밟지 못할 정도로 각이 져있다. 혹시라도 ‘레이니스피야라(Reynisfjara)’라는 지명을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아이슬란드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변인데 1991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전 세계 비 열대해변 중 방문해야할 TOP 10’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검은색 모래사장(Black Sand Beach)’으로 유명한 해변이다. 제주 삼양해변의 ‘검은 모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꽤 유명한데, 두 해변의 공통점은 용암이 굳어진 화산암이 바닷물에 잘게 부서지면서 자갈과 모래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곳 여자도의 검은 모래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주변의 암석들도 화산암의 흔적을 보이고 있지 않겠는가.

▼ 해변이 끝나는 곳에는 또 다른 데크길이 놓여있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이어서 통행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붕장어다리’로 되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마침맞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길까지 열어주지 않겠는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바윗길을 타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린 무사히 다음 해안에 이를 수 있었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검은 자갈’로 이루어진 또 다른 해변이 나타난다.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해변으로 수심이 완만할 뿐만 아니라 물빛도 맑다. 편의시설만 확충하면 일류의 해수욕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갈이 하나같이 각이 져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신어야만 걸을 수 있는 해수욕장을 어느 누가 찾아오겠는가.

▼ 두 번째 해안에서 다음 해안으로 연결되는 바윗길에는 별다른 안전시설이 없었다. 만조 때는 걸을 수 없는 구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붕장어다리까지 되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물이 빠져나간 지금은 하등 문제될 게 없다. 그저 납계도와 동굴섬 등 주변 풍경을 눈요기 삼아 걷기만 하면 된다.

▼ 이곳에서 나는 여자만 입구에 있는 사도(沙島)에서 마주쳤던 ‘용미암(龍尾岩)’과 비슷한 풍경을 만났다. 용암(熔岩, lava)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급격하게 식으면서 형성된 지형인데, 바위벼랑을 기어오르던 사도와는 달리 이곳은 바닥에 누워있다. 바다에서 멈춘 용암의 기록 보관소 같다고나 할까.

▼ 세 번째 해안도 ‘검은 자갈해변’이다. 자갈이 조금 더 커졌지만 각이 져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참고로 여자도는 수산자원보전지구로 지정될 만큼 수산자원의 서식 및 산란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갯벌 중 가장 좋은 등급인 2등급의 갯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여자도의 남쪽 해안에 해당될 따름이다. 북쪽해안은 수심이 깊어 간조에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해안이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을 드러낸 곳도 검은 자갈해변이 전부이다.

▼ 해안의 끄트머리. 왼편 산자락의 나뭇가지에 산악회의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바닷가 트레킹은 이쯤에서 접고 본래의 길로 되돌아가라는 시그널일 것이다.

▼ 하지만 난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랐다. 바윗길이 아까보다 조금 더 험해졌지만 진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눈요깃거리가 더 늘어났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정도의 풍경이라면 약간의 고생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 아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이라면 거인이 공기놀이하기에 딱 좋은 바위들이 대여섯 개나 널려있다. 어느 기자가 거론하던 ‘샘 북쪽 너머’란 뜻의 골짜기. 즉 ‘샘북넘’은 이곳을 두고 하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장정 열 명이 들어도 들지 못하는 바위를 최 장군이란 사람이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니 말이다.

▼ 중국의 태행산(太行山) 여행길에 왕망령(王莽嶺)에서 보았던 ‘소태항(小太行)’을 닮은 풍경도 만났다. 작은 기암괴석들이 수 없이 널려있는 모양새가 태항산맥을 닮았다는 그 바위 무리들 말이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이곳의 바위들이 오히려 한수 위이다.

▼ 나처럼 모험을 감행한 사람이 쌓아올렸음직한 돌탑도 보인다. 서툴지만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 해안 트레킹을 시작한지 50분. 모퉁이를 돌아서자 저만큼에 대동마을이 나타난다. 바닷가 갯바위를 축대삼아 들어선 ‘초등학교’이다. 그 오른편으로 보이는 섬은 보성군에 속해있는 장도(獐島)이다.

▼ 갯바위와 한판 씨름을 한 뒤에야 바다와 어깨를 맞댄 학교에 올라섰다. ‘소라초등학교 여자분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풍광이 곱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조금 전에 지나온 저 바다로 풍덩 빠지는 아주 작은 아담한 운동장에 교사도 아주 단출하다. 두 칸 정도의 교실이 분교의 유일한 교육 시설. 너무 작아서인지 앙증맞을 정도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승복 동상과 이순신 장군상 등 각종 조형물들도 세워져 있다. 책 읽는 소녀상은 팽나무 근처에다 따로 배치했다. 맞다. 책이란 본디 조용한 곳에서 읽는 법이다.

▼ 운동장 끝에는 거대한 팽나무 두어 그루가 자리를 틀었다. 미니 학교지만 100년이 넘었을 법한 고목들이 학교의 나이를 어림잡게 한다. 팽나무 뒤의 학교 담장을 넘어서면 바로 바닷가다. 담벼락이 방파제 역할을 한다. 바다를 접하는 학교. 파도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온다.

▼ 이젠 ‘대동마을’을 돌아볼 차례이다. 마을은 포구의 동쪽 나지막한 평지에 형성되어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마을은 전면에 공공시설을 배치했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이층 건물은 마을회관이다. 그 옆의 붉은 지붕은 초등학교. 정자와 나란히 붙어있는 또 다른 이층 건물은 간판이 없었다. 옛 마을회관이 아닐까 싶다. 경로당과 파출소도 보인다.

▼ 대동마을의 포구는 외항과 내항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여자도의 특징. 즉 간조(干潮) 때마다 바닥을 드러내는 내항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바깥쪽에 방파제 하나를 더 쌓았다.

▼ 선착장에서 바라보면 대동마을의 외항과 내항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포구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94년에 가동을 시작한 내연발전소. 섬의 북쪽 끝자락 언덕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불만이 없다. 저 시설 덕분에 집집마다 세면장과 수세식 화장실, 세탁기 등 편리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 방파제를 걷다가 산책 나왔다는 동네 주민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주변 풍경을 물어보니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기다랗게 펼쳐진 북쪽의 섬은 보성군에 들어있는 장도(獐島, 아래 사진). 하지만 길어서 장도가 아니라 생김새가 노루와 비슷하다고 해서 ‘노루 장(獐)’자를 썼다고 한다. 그밖에도 순천만 건너로는 고층의 아파트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바다 건너 고흥 땅에서는 팔영산이 나도 있다며 실루엣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풀어놓는다.

▼ 이제 마을안길로 들어가 볼 차례이다. 그런데 ‘여자대동길’이라는 골목의 이름이 왠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남정네들끼리만 걸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어쩌면 남녀의 정분을 유난히도 중히 여기는 마을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골목 입구에 서너 개나 세워놓은 열행비(烈行碑)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곳곳에 밭이 있고 빈집도 더러 보인다. 빈집일 뿐 아니라 폐가도 있다. 하지만 철제 종각이 눈길을 끄는 ‘대동교회’에서는 삶의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 이 마을에도 역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촌답게 바닷가 풍경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꽃과 새들... 삐뚤빼뚤 썼지만 시도 적혀있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라는 글귀도 보인다. 하나같이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벽면을 채우고 있는 그림들은 다시금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 해발이 51m에 불과한 여자도는 물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곳이다. 아무리 샘을 파도 간기가 있는 물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도는 여자들이 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단다. ‘고생고생 물 고생’이라는 말까지 있었다니 오죽했겠는가. 아무튼 사람이 아무리 살고 싶어도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법이다. 이 마을에도 우물이 3개나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2개는 간기가 있었고, 간기 없는 동네 가운데 우물은 멍석으로 덮어 놓았다가 일시에 배급을 했단다. 전하는 말로는 당시의 양동이에는 높이에 맞추어 금을 놓았었다고 한다. 물싸움이 안 나게 하려는 지혜였다.

▼ 30분 가까운 대동마을 투어가 끝났으니 이젠 ‘마파지’를 거쳐 소여자도로 되돌아갈 차례이다. 교회 옆으로 해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파지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좌우로 밭을 거느린 길은 외줄기다. 아니 잘 닦인 도로이다. 차도 거뜬하게 다닐 수 있을 만한 길. 그러나 여자도에는 차량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만한 도로가 없고 육지에서 차를 가져올 수단도 없다. 그런 길의 중간에는 이름도 예쁜 ‘개미허리’가 있다. 양쪽 바다가 길의 바로 아래까지 움푹 파고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하지만 나에겐 식상하기 짝이 없는 길이기도 하다. 하고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놨기 때문이다. 왕벚나무의 원산이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벚나무는 분명 일본의 나라꽃이다.

▼ 여자도는 동남쪽으로 길게, 그러면서 폭이 좁다. 그래서 대동 마을에서 마파지로 가는 길목은 말 그대로 길목이다. 그 덕분에 좌우로 드넓은 바다와 섬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걷는 재미를 더한다. 왼쪽에는 여수반도를 배경으로 납계도와 동굴섬이 떠있고, 반대편(아래 사진) 저 멀리로는 ‘고흥반도’가 실루엣으로 펼쳐진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해변은 활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모래톱. 즉 ‘활꼬밭’이 아닐까 싶다. 그 너머는 ‘매물섬’일 것이고 말이다.

▼ 고개를 넘다보면 저수조(貯水槽)가 눈에 띈다. 여자도는 고기가 많이 잡히고 갯벌에서 패류 채취가 풍족하여 부유한 섬이다. 그러나 식수난은 아직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단다. 소형 관정을 아무리 파 보아도 염기 있는 물만 나오는 실정이란다. 그렇다면 저 저수조는 섬사람들의 생명줄인 셈이다.

▼ 언덕을 넘자 ‘마파지’ 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여자도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남풍 즉 마파람이 부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여자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남원 방씨’가 승주군 낙안면 선조(현 보성군 벌교읍 장양리)에서 섬으로 들어와 이곳 마파지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뒤를 이어 들어온 ‘초계 최씨’는 대동마을에 뿌리를 내렸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외길이다. 그 사이사이에는 샛길이 나있는데, 들어가 보면 빈집들이 더러 눈에 띄는 한적한 풍경이다. 하지만 마파지는 ‘중계민원처리소’와 ‘보건진료소’가 들어서 있는 여자도의 행정 중심지이다. 그런데도 마을 앞 포구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정박 중인 배도 눈에 띄지 않고, 마을 표지석이 세워진 방파제도 다른 곳처럼 포구를 감싸지 않은 채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있을 따름이다. 기항지가 아닌 선착장으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골목을 통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또 다른 포구가 나타난다. 빙 둘러 쌓아올린 방파제 안에까지 바닷물이 차있는 것이 천혜의 항구이다. 그래선지 마을 앞 포구에 비해 제법 큰 편이고 배들도 많이 정박해 있었다. 마을 앞 선착장에 물이 빠져나가면 여객선도 이곳에다 배를 댄다고 한다.

▼ 마파지선착장에서 붕장어다리로 가려면 마을 안길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냥 해안을 따르기로 했다. 썰물 때라서 바닷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지름길을 놓아두고 일부러 돌아갈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배가 들어오려면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시간도 때울 겸해서 찾은 식당은 붕장어다리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다. 눈에 들어오는 다리는 붕장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형상이다. 붕장어 특유의 힘찬 몸놀림으로 솟구치는 몸통이 잘 표현된 것 같다.

▼ 다시 돌아온 ‘붕장어다리’, 코앞으로 다가온 소여자도의 포구 앞에는 ‘솔섬(동도)’이 있다. 방파제 역할을 하는 바위섬으로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널 수도 있는데, 이때 다슬기 잡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