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이집트

 

여행일 : ‘20. 2. 21()-29()

세부 일정 : 카이로(1)사카라멤피스(야간열차 1)아스완(1)아부심벨콤옴보(1)에드푸룩소르(1)후르가다(1)카이로(1)

 

홍해의 휴양지, 후르가다(Hurghada)

 

특징 : 이집트의 홍해 연안에 위치한 이 마을은 멋진 산호초와 터키석처럼 아름다운 빛깔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때문에 윈드서핑(Windsurfing)’이나 스쿠버다이빙(scuba diving)’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거기다 최근 10년 동안 관광지 개발이 진척되어 대형 리조트와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유럽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찾아온단다. 특히 나 같은 애주가들에게는 가히 파라다이스라고 보면 되겠다. 숙소인 리조트에 10불이 채 되지 않는 돈을 추가로 내면, 온갖 종류의 술을 그것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안주까지 무료로 제공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룩소르를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이 지나서야 홍해연안에 도착했다. 이집트 동부의 모래사막을 넘자마자 짙푸른 해변과 조우하는 것 자체가 느닷없다. 우윳빛 지루한 사막 끝에 펼쳐지는 후루가다의 바다는 색의 대비가 더욱 강렬했다. 이어서 해안을 오른편에 끼고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이집트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후루가다가 나온다. 후루가다 해안은 다합, 샤름, 엘 세이크와 더불어 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다이버가 아닌 일반 여행객들은 글라스보트(배 밑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배)’를 타게 되는데, 이때 아름다운 열대어와 산호초, 돌고래를 만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후루가다는 그동안 보아오던 이집트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도시들이 사막과 유적들로 대변된다면 이곳은 잘 정돈 된 거리와 푸른색으로 넘치는 바다가 대표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휴양도시라고나 할까. 그래선지 해변에는 특급 리조트와 호텔들이 줄지어 있었다.

 

 

 

 후루가다로 오는 내내 창밖으로 펼쳐지던 풍경이다. 이집트는 풍성한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황량하고 건조한 서부 사막, 오른쪽으로는 산과 같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동부 사막이 분포되어 있다. 두 사막의 가장 큰 차이는 서부사막이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동부사막은 암석으로 된 산(미처 침식되지 못한 구릉지)’이라는 점이다. 이 사막들이 이집트 국토의 94%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집트를 여행하는 내내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만 눈에 들어온다고 보면 되겠다. ! 동부사막에는 군데군데 푸른 식물도 자라고 있었다. 그래선지 그 풀을 먹이로 삼아 양()을 기른다는 농가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양을 키우는 일은 보통 여자들이 맡는다고 한다.

 

 

 룩소르를 빠져나오는 길. 나일강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나일강 옆에 별도로 만들어진 수로(水路)가 눈에 띈다. 나일강물은 저렇게 식수나 관개용수 등으로 사용되었고 강줄기는 상업 활동과 교통의 주요 통로 역할을 했다. 땅도 사람도 나일 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더 나아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신성시까지 했고 말이다. 참고로 나일강은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해 지중해까지 그 길이가 6650나 된다.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발원한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타나 호수에서 시작하는 청나일이 수단의 하루툼에서 합류한 다음 이집트의 아부심벨로 흘러 들어온다. 아부심벨을 지난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에 의해 만들어진 낫세르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아스완을 지나 룩소르, 아슈트를 지나 카이로에 이르게 된다. 카이로는 나일삼각주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도시로, 여기서 나일강은 다시 동서로 갈라진다. 서쪽으로 흐르는 강은 지중해의 로제타(Rosetta)로 빠져 나가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지중해의 다미에타(Damietta)로 빠져 나간다.

 

 

 후루가다로 오는 도중 들렀던 휴게소에서 만난 원주민 여성이다. 당나귀를 몰고나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리곤 당나귀와 함께 사진이라도 찍을 경우 1불씩을 받는 것이다. 지난 해 페루를 여행하다가 쿠스코에서 만났던 인디오 여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 그저 전통의상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던 페루 원주민과는 달리 이곳 여성분은 약간 깨제제한 것이 달랐을 따름이다.

 

 

 해안을 따라 달리던 버스는 잠시 후 우리가 머물게 될 ‘Desert rose’에 도착한다. 우리말로 하면 사막에 피어난 장미. 이름 그대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5성급 리조트다. 이곳 후루가다에는 이런 고급 리조트들이 많다고 한다. 정부에서 헐값으로 불하 받은 넓은 땅에 디럭스하게 지은 것들로, 투숙객들은 대부분 휴식을 위해 후루가다를 찾는 유럽인들이다. 하지만 이런 리조트의 주인인 이집트 사람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살지 않고, 외국으로 나가 거주한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 하겠다. 참고로 이곳 후루가다는 1980년대 이후 이집트 정부에 의해 계획된 관광지답게 치안이 잘 되어 있다. 리조트의 두꺼운 철문을 여러 명의 보안요원이 지키는가 하면,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쳐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반인들은 들어오기 힘든,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은밀한 공간은 그야말로 여행객들 위한 별천지였다.

 

 

 리조트 중앙 홀의 럭셔리한 '샹들리에(chandelier)‘. 무슬림의 나라답게 기하학적인 문양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동물이나 신상들은 모두 우상으로 취급하여 그리거나 새기는 것을 금기시 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특성으로 인해 생긴 문양들이다.

 

 

 투숙객에게는 빨강 또는 파랑색의 밴드가 주어진다. 아니 서로 바꾸어 이용할 수 없도록 아예 손목에다 고정시켜 버린다. 이 밴드를 보여주면 리조트 내의 모든 편의시설(뷔페식당, 칵테일바, 야외식당 등)에서 식음료를 먹고 마실 수 있는데 밴드의 색깔에 따라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형우군의 손목에는 술이 제공되는 파랑색 밴드가 채워졌다. 물론 10불 조금 못되는 돈을 추가로 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이 밴드는 1 2일 동안 무제한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일종의 티켓이다. 리조트 내에 설치된 수많은 바에서 이 밴드만 보여주면 맥주나 양주, 심지어는 칵테일까지 원하는 종류의 술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피자나 햄버거 등 간단한 안주도 물론 공짜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이라고나 할까.

 

 

 배정된 객실에 짐을 풀자마자 리조트 구경에 나선다. 한마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구획을 나누어가며 시설물들을 중심으로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배치해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앉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더라도 인생샷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다.

 

 

 

 건물의 벽면이나 담벼락, 터널, 화분 등 곳곳에게 심어진 부겐빌레아는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화려함으로 승화됐다. 여행을 밥 먹듯이 해온 내가 접해보기 힘든 화려함이었다.

 

 

 조금 더 걸으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정원의 한가운데에 수영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것도 너른데다 부대시설까지 잘 갖춘 풀이 세 개나 된다. 이런 걸 보고 파라다이스라고 하나 보다. 맞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나저나 풀장 주변은 객실동이 배치됐다. 방마다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쉬면서 리조트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테라스로 나가면 여태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보아오던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은 2, 사막의 나라 이집트이지만 한낮의 기온이 20 내외에 그치고 있다. 풀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철이 이르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물놀이에 한창인 사람들도 제법 된다. 비치타월을 두르고 썬탠(suntan)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대부분이 백인인데 그들에겐 그까짓 기온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햇빛에 목말라하는 유럽인들이니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그냥 흘려버리기 아까웠을 수도 있겠다.

 

 

 풀장 건너편에는 ‘The Palm’이라는 대형 식당이 있었다. 복도 같은 중앙통로에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좌우에 룸이 배치된 구조이다. 음식을 골라 담은 후 아무 곳에나 앉으면 된다. 룸마다 바가 마련되어 있어 반주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그뿐 아니다. 이집트식 얇은 밀떡과 터키 케밥, 다양한 즉석요리도 제공되고 있었다. 그런데 맛도 맛이지만 요리사들의 친절함이 돋보였다. 주문하는 대로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해 물어보면 싫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조금 더 나가니 리조트의 전용해변이 나온다. 항아리처럼 내륙으로 움푹 파고들었는데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흡사 사막의 오아시스를 보고 있는 듯하다.

 

 

 

 비치에는 밀짚모자처럼 생긴 파라솔이 설치되어 있다. 소문난 바닷가들을 여행하다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다만 그 숫자가 많다는 것만 다를 뿐...

 

 

 

 비치파라솔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후루가다를 이집트가 아니라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그는 이집트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보다 유럽 및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은 휴양지라고 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집트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여행 내내 접했던 이집트인의 고달픔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멋들어진 호텔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곳이 바로 후루가다라고 했다.

 

 

 

 

 내해(內海)를 벗어나자 홍해(紅海, Red Sea)의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눈앞의 홍해는 눈부시게 파랬다. 어딜 봐도 빨간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홍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빨갛다는 것과 바다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고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인데도 말이다. 혹시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위장술은 아닐까? 상상이 가지 않는 색을 가지고 있는 바다를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는데 바다 속 해조들 때문에 빨갛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홍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싱겁다.

 

 

 바닷가에는 ‘diving center’가 들어서 있다. 간판 상단에 ‘undersea adventure’라는 홍보문구를 적어 넣었는가 하면, 옆에는 ‘wind surfing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는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의 천국이라는 이곳 후루가다의 명성에 걸맞게 이 리조트에서도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나보다. 바다를 향해 길게 다리를 놓은 걸 보면 말이다. 그 위에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푸르른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사방이 온통 푸른색이다. 하늘과 바다의 색 경계가 없는 듯한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홍해의 무릉도원이라 일컫는단다.

 

 

 데크 아래에서 스노클링(snorkeling)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오리발과 스노클, 물안경, 마스크 등의 장비를 이용하여 잠수를 즐기는 레저 스포츠의 하나인데, 별도의 잠수 기술이나 수영 실력이 없이도 가능하고 연령이나 체력에 구애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들 곁에 안전요원이 붙어있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스포츠는 리조트의 전용해변에서 가능하다. 바닷물이 싫거나 익스트림 스포츠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리조트 내부에 마련된 스파나 웰니스 센터(Wellness center)’를 이용할 수 있다. 그것마저 싫은 사람들에게는 ‘The Dance Club’이라는 나이트클럽이 준비되어 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낙하산(parachute)도 여럿 보였다. 이곳 후루가다의 인기 레포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패러세일링(parasailing)이란다. 특별히 만들어진 낙하산(parasail)을 이용한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인데, 낙하산에 사람을 묶어서 긴 밧줄로 연결한 뒤 모터보트에 매달아 빠르게 달려 나가는 힘으로 낙하산을 하늘 높이 띄게 하는 원리다. 원래는 프랑스 공수부대의 훈련용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1950년의 일이다. 이게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레포츠로 발전되었단다. 이후 세계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레포츠로 성장했으며, 우리나라에는 1985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처음 선을 보인바 있다.

 

 

 외해(外海)의 해변이라고 해서 그냥 놓아둘 리기 없다. 꽤 많은 비치파라솔을 설치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닷물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옹기처럼 둥그렇게 내륙으로 파고 든 비치와 홍해의 푸른 바다 사이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둘 사이 섬에는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나처럼 파란 밴드를 차고 있는 투숙객들에게 술과 안주가 무료로 제공됨은 물론이다.

 

 

 

 자 이젠 본격적으로 마셔볼 차례이다. 일단 맥주부터 한잔 주문했다. 바텐더는 가져다줄테니 테이블에 앉아 있으란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잔을 직접 챙기면서 스카치나 한잔 더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몰드위스키(Malt whisky)를 좋아하는 평소의 습관대로 글렌피딕(Glenfiddich), 그것도 ’On The Rocks‘... 바텐더는 아무런 불평 없이 주문하는 대로 가져다준다. 아니 몇 번을 더 부탁해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가져다주었다.

 

 

 

 이번 여행은 대체로 술이 귀한 일정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이고 시내의 마켓에서도 술을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식당에서도 술은 팔고 있지 않았다. 그저 외국인을 상대하는 식당에나 가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선택했던 게 사카라 맥주였는데 피라미드의 원조인 조세르 피라미드가 있던 사카라의 지명을 브랜드로 가져다 쓰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인가 맥주의 원조도 이집트라고 한 것을 보았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즐겨 마셨던 것이 맥주라고 하였으니 맥주 이름에 사카라는 붙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저녁이 되자 리조트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포위된 야외 카페는 쌍쌍 또는 무리지어 앉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술잔을 앞에 놓았다. 우리 일행도 그 가운데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사막 사파리까지 거르면서 술을 마셨던 형우군과 나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버렸지만 말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홍해 바닷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반잠수정(바닥이 유리로 된 글라스 보트)‘ 투어를 신청했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를 달리니 제법 규모가 큰 부두가 나온다. 선착장에는 하얗고 멋진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었다. 바다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탈 배는 투박하게 생긴 반잠수정이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해서 글라스 보트(glass boat)‘라고도 불린다. 홍해의 아름다운 바닷속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특화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임무에 충실하다보니 외모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겠지만 내 시선은 자꾸 주변의 하얀 요트들에 꽂힌다. 하긴 잘 생긴 것들에 집착하는 게 본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니겠는가. ! 이 배는 원할 경우 스노쿨링이나 스쿠버다이빙도 체험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형우군과 내 관심은 오로지 리조트에 쏠려있다. 술이 귀한 나라에서 공짜로, 그것도 무제한으로 제공되고 있으니 어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생긴 대로 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가 타고 나가는 배가 딱 그랬다. 이게 과연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뭉툭하게 생긴 외모대로 배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인상 좋은 선장아저씨가 조종간인 까지 맡겨주는데 지루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 고래 닷!’ 배가 막 출발하려는데 집사람이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난 들은 채도 않았다. 매 분기마다 출발해온 해외여행에서 이런 장난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6년 동안이나 그래왔다면 반응하는 사람이 더 이상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연안에서는 고래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선원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그런데 빨리 오지 못해!’라며 호통을 치는 집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다가가보니 진짜로 돌고래가 뛰어놀고 있지 않겠는가. 그제야 카메라를 꺼내들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진 한 장 찍지도 못했는데 돌고래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집사람의 놀림에 시달리고 있다.

 

 

 홍해 바다는 푸르렀다. 거기다 청량하고 아름답기까지 해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바다를 향해 가슴을 편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러자 너른 바다가 나를 빨아드린다. 마치 블랙홀처럼. 온통 푸른색의 블랙홀, 그 중심에 지나치게 아름다운 홍해가 있었다.

 

 

 배가 출발하자. 모두들 갑판에 모여 홍해바다를 구경한다. 물빛이 유독 푸르다는 것만 다를 뿐 동해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끝 간 데 없이 바다가 펼쳐지는 동해와는 달리 이곳 홍해의 건너편에는 황량한 모래언덕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다. 홍해 바다에 떠있는 모래섬인 모양이다. 섬은 오직 한 가지 색만 가지고 있었다. 바로 사막의 색, 누런색이다. 온통 사막인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누런 육지의 색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아름다웠다. 문득 저 모래언덕이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시나이 반도일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렇다면 모세가 이곳을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나일강과 시나이 반도를 건너는 모세의 출애굽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바다를 건너 이집트 군대를 따돌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시나이산에서 10계명을 받는 일이다. 이 두 사건은 정말 극적이어서 영화와 연극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면 물이 갈라지게 해서 이집트군을 따돌린 그 바다는 과연 어디일까? 국내에 번역된 성서에는 분명 홍해(Red Sea)라고 적혀 있다. 히브리어 ‘Yam Suph’ ‘Sea of Reeds(갈대바다)’로 번역하면서 이 갈대 바다가 나일 델타의 동쪽 지류 이스마일리아를 따라 형성된 거대한 비터호 (Bitter Lake)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홍해이고, 모세가 건넜다는 시나이반도가 코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우니 그가 이곳으로 건넜다고 상상한다 해서 그게 뭐 나무랄 일이겠는가.

 

 

 배가 움직이는 동안 댄스파티도 열렸다. 선원들과 여행객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데 춤판에 끼어든 고객은 주로 여성이다. 그중에서도 가족여행을 왔다는 터키 여성분이 가장 돋보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배가 조금 더 깊은 바다에 이를 즈음 계단을 통해 배의 바닥으로 내려간다. 바닥은 둥그렇게 생긴 회전의자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앞은 바닷속을 내다볼 수 있도록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 너머로 별천지 같은 바닷속 세상이 펼쳐진다. 홍해가 자신의 알몸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난생 처음 접하는 세상의 신비로움에서 시작된다.

 

 

 후루가다의 바닷속은 거대한 정원 하나가 통째로 가라앉은 것 같다. 수초, 산호, 그리고 형형색색의 온갖 물고기들. 그 가운데서도 사방에 널린 산호초가 가장 눈길을 끈다. 맞다. 저렇게 많은 산호들이 자라는 바다이기에 사람들 눈에 붉은 색으로 보였을 것이고 홍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바닷속 물고기 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고기 떼들이 점점 많아진다. 산호초도 더 굵어졌다. 아름답다. 아니 신비롭다. 그런 설렘 때문이었을까? 닿을 듯 말 듯 산호초를 스쳐 지나가는 고기 때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얼마쯤 더 갔을까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 떼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다. 먹이를 주고 있는 스쿠버다이버들에게 수많은 물고기들이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팬서비스라고나 할까. 아니 팬서비스치고는 너무 장관이다.

 

 

 

 에필로그(epilogue), 이집트를 여행하는 내내 꿈꾸어 온 것이 있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친절한 바텐더가 건네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음미하는 것. 이왕에 떠나온 여행이니 조그만 낭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이곳 이집트는 사막에 이슬람 문화가 더해져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눈을 들면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막뿐이었고 마트에서는 술을 팔지도 않았다. 운이 좋아 술을 파는 곳을 만났더라도 파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가 하면, 술을 샀다고 해서 대놓고 마실 수도 없었다. 그런데 후루가다는 마치 해방의 도시 같았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맥주잔을 부딪치는가 하면 사람들은 눈치도 보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이곳이 이슬람국가인 것을 깜빡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집트 근처의 나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옛 동료가 그랬다. 이왕에 갔으면 양탄자가 깔려있는 노천바에서 이집트 맥주 '스텔라'를 곁들이며 물담배 '시샤'를 피워보라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이집트 음식 빼고 전 세계 음식이 다 있다는 후루가다의 밤거리로 나가보라고 했다. 그게 바로 이집트 속의 유럽인 후루가다의 매력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밤거리로 나가보지도 못했고 물담배는 구경도 못했으니 이번 이집트 여행은 실패한 셈이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있던 형우군의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다시 한 번 더 오면 되지 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