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이집트

 

여행일 : ‘20. 2. 21()-29()

세부 일정 : 카이로(1)사카라멤피스(야간열차 1)아스완(1)아부심벨콤옴보(1)에드푸룩소르(1)후르가다(1)카이로(1)

 

룩소르(Luxor,  Thebes),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

 

특징 : 대기와 풍요를 관장하다 나중엔 전지전능한 신으로 해석된 아몬(Amon)은 이집트의 () 중의 신이다. 고대이집트의 수도인 테베(룩소르)가 이 아몬을 주신으로 모시면서 카르나크 신전은 이집트 최대·최고 권력의 신전으로 꼽혀왔다. ‘T’자 형으로 생긴 이 거대한 성전은 기원전 2000년경 중왕국 시대부터 짓기 시작해 신왕국 제18 왕조 때 틀을 갖추었고, 앗시리아 등 외세의 침공이 있을 무렵인 20왕조까지 크고 작은 공사를 계속했다. 틀을 갖추는 데에만 400년 넘게 걸린 것이다. 현재의 신전은 10개의 탑문과 람세스 1세로부터 3대에 걸쳐 건설된 대열주실, 투트모세 1세와 그의 딸로 여왕이 된 하트셉수트가 세운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3세의 신전과 람세스 3세의 신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높이 약 23m의 석주 134개가 늘어선 대열주실은 너비 약 100m, 안쪽 깊이 53m로 안쪽의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함께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참고로 카르낙은 이집트어로 이페트 수트(Ipet sout)’. 가장 신성한 장소를 나타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예배소였던 것이다. 주신인 아몬을 위해 지어진 이 신전에서 왕들이 즉위했고, 아문 신과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파라오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중심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나일강의 동쪽이다. 이집트인들은 예로부터 나일강 동쪽은 살아 있는 사람과 신전을 위한 공간이고, 해가 저무는 강의 서쪽은 죽은 자들을 위한 영혼의 안식처로 여겼다. 그러니 아몬신이 머무를 카르나크를 강의 동쪽에 지었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관광안내소(매표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신전의 사진과 모형도가 만들어져 있다. 특히 모형도는 현재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아 이해를 쉽게 했다. 그래선지 가이드도 이곳에서 역사공부를 시켜준다. 카르나크 신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중심이 되는 가장 큰 신전이 아문(Amun) 신전이다. 그리고 아문의 아내 무트(Mut)를 위한 신전이 있고, 아문과 무트의 아들인 몬투(Montu)를 위한 신전이 있다.

 

 

 신전은 매표소를 지나서도 한참이나 더 걸어야 나왔다. 신전 앞 운동장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집트 최고의 신전이라는 걸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운동장 너머로는 성벽 형태의 제1탑문이 나타난다. 여러 개의 탑문들 중 가장 늦은 30왕조의 넥타네보 1(Nectanebo I, BC 380-362 재위)’가 세운 것으로 길이가 113m, 두께가 15m, 높이가 45m에 이른다. 그동안 들렀던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부조가 새겨져 있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색적이다.

 

 

 신전의 오른편에 이슬람의 모스크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는데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파라오 아케나텐(Akhnaton, BC 1350-1334 재위)이 아마르나(Amarna)로 천도하기 전에 세운 아텐신전(Temple of Aten)‘ 1탑문의 동쪽 어디쯤에 있었다고 했다.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호렘헤브(Horemheb, BC 1319-1292 재위)‘에 의해 파괴되어 아몬신전의 탑문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고 하더니 그 터에 후세 사람들이 뭔가를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다가가자 작은 오벨리스크가 하나 서 있다. 이곳부터 카르나크 신전이 시작된다는 표시 같기도 하다. 이 신전은 신들의 제왕인 아몬을 숭배하기 위해 건축됐다. 가로 1.5에 세로가 0.8에 이르는 엄청나게 너른 부지에는 10개의 탑문과 2개의 안마당, 대 열주실을 포함한 여러 개의 열주실, 2개의 오벨리스크, 커다란 성스러운 연못, 그리고 여러 개의 작은 부속신전과 제실들이 있다. 또한 콘수신전, 오페트신전, 프타신전과 람세스 3세 신전, 투트모시스 3세 신전 등 여러 개의 신전을 포함한다.

 

 

 오벨리스크 뒤로 탑문까지 숫양 머리를 한 스핑크스 40마리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이들은 신전을 지키는 위병으로 파라오와 신들을 지키고 보호해준다. 신전이 만들어진 신왕국 시대 이 길은 나일강 부두까지 이어졌다. 당시는 100개가 넘는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한다.

 

 

 스핑크스는 턱 아래 두 발 사이로 파라오를 상징하는 오시리스 상을 품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양을 아몬신의 상징으로 여기니 저 형상은 아몬신이 파라오를 보호하고 있다는 의미이지 싶다.

 

 

 1탑문의 뒤편에서 이 탑문이 지닌 비밀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겉면이 떨어져 나가면서 속에 있던 벽돌이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 우리는 벽돌을 쌓아 탑문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탑문을 지나면 신왕국 22왕조 때 증축된 널따란 안마당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가장자리에 스핑크스가 도열해 있고, 좌우로 두 개의 소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 왼쪽으로 나가면 야외박물관이라 불리는 지역이라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이의 글로 그 풍경을 설명해 본다. <‘하얀 제실(White chapel)’과 같은 몇 개의 유적이 있는데, ‘세소스트리스 1(Sesostris I)’의 하얀 제실에서는 걸작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상형문자를 볼 수 있다. 하트셉수트여왕의 붉은 제실은 석영암으로 지어진 외관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당 중앙에는 잘 생긴 기둥 하나가 서있다. 25왕조의 4번째 파라오 타하르카(Taharqa, BC 690-664 재위)’가 세운 키오스크(kiosk)’를 지탱하던 기둥이란다. 원래는 10개의 기둥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원형정자였다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기둥 하나만 외롭게 남아있다.

 

 

 

 안마당의 왼쪽(북쪽)에는 세티 2(Seti II, BC 1204-1198 재위)’의 신전이 있다. 카르나크신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부속 건물로 졸속복원의 상징인 시멘트 땜질이 많이 되어있으나 정교한 부조들이 아직까지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안에는 테베의 세 신()인 아몬(Amon)과 무트(Mut, 아몬의 아내로 하늘의 여신), 콘수(Khonsu, 아몬의 아들로 달의 신)를 위한 예배당(chaple)이 있는데, 오페트축제(Opet festival, 카르낙 신전의 세 신을 룩소르 신전으로 옮기는 의식) 때 이들 신이 사용할 배를 보관하던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오른편에는 람세스 3(Ramses III, BC 1190-1187 재위)‘ 아몬(Amon)‘에게 바친 신전이 있다. 그래선지 신전 입구의 현관 앞에는 람세스 3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오른쪽의 것은 얼굴이 많이 훼손되었다. ! 누군가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이곳 람세스 신전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19세기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이룬 마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왕 루이 필립에게 건넨 선물이었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개념을 상실한 통치자였던 게 분명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훼손된 부분이 많은 오시리스 석상(石柱를 겸한다)이 안마당 좌우로 나란히 서 있다. 석주를 지나면 신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일부러 들어가 볼 필요는 없겠다. 신전 내부에 특별한 것이 없고 지성소도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 ’람세스 3세 신전의 뒤편에 역시 람세스3세가 세운 콘수신전(Temple of Khonsu)‘이 있다는데 찾아보지는 않았다. 스핑크스가 있는 참배로와 탑문, 기둥이 있는 안마당, 열주실, 지성소 등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신전 내부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검은 화강석으로 된 발 부분이 보인다. ‘람세스 3라는데 윗부분은 파괴되고 발목만 남았나 보다. 발목만 보고 그 주인을 알아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기단부 측면에 새겨진 카르투시(cartouche) 상형문자를 통해 알 수 있단다. 이 문자는 람세스 3세의 즉위명(Thronname)으로 우세르-마트--메리-아문(User-maat-Ra-meri-Amun)이라 읽는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아문의 사랑을 받는 라의 진실은 강하다'가 된다. 카르나크신전을 아문-라 신전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젠 제2탑문 앞으로 간다. 신왕국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헤브(Horemheb, BC 1319-1292 재위)’ 때 착공하여 19왕조의 람세스 2 때 완공되었단다. 탑문 입구에 거대한 석상 둘이 마주보고 서있는데, 탑문을 완성시킨 람세스 2(Ramses II)’. 왼쪽의 것은 제21 왕조 때 아몬신의 신관이었던 피네젬(Pinedjem)’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기 때문에 피네젬의 거상이라고도 한다.

 

 

 한쪽 석상의 발쪽에는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가 부조(浮彫)되어 있다. 네페르타리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알려져 있다.

 

 

 탑문의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에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길 양쪽으로 굵은 기둥이 이어지고 그 뒤로 기둥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서 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대열주실(大列柱室)이다. 대열주실은 가로 102m에 세로 53m, 전체 면적이 5,500쯤 된다. 이곳에는 16줄에 모두 134개의 파피루스 모양 기둥들이 마치 숲처럼 늘어서 있다. 기둥의 높이는 23m이고 기둥의 둘레는 10m나 된다. 이들 기둥에는 신과 파라오와 관련된 수많은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중앙부의 거대한 원형 열주에는 정교한 파피루스 꽃 모양과 아문을 숭배하는 왕의 치적이 새겨져 있다.

 

 

 기둥 반 공간 반으로 빼곡히 줄지어 선 대열주실의 위용은 대단하다. 그러다보니 누구든 열주 사이에 서면 인생샷이다. 인생샷을 건지느라 시간을 잊고 있는 커플들도 보인다. 열주들이 주는 위압감은 동반자와 함께 열주 사이를 숨바꼭질 하면서 푼다. 이때 열주는 만지는 피라미드처럼 숨겨주는 친근한 존재가 된다.

 

 

 중앙기둥 12개는 아멘호테프 3(Amenhotep , BC 1390-1353 재위)’가 그리고 나머지 기둥들은 세티 1(Seti I, BC 1290-79 재위)’ 람세스 2에 의해 만들어졌다. 가운데 2열로 6개씩 서있는 아멘호테프 3세의 기둥이 다른 것들에 비해 큰데 높이는 20m가 넘고, 활짝 핀 파리루스 꽃 모양의 기둥머리는 둘레가 15m나 된다고 한다. 기둥에는 투트모세 3(Thutmose III, BC 1479-1426 재위)’의 연대기나 왕명표 등 중요한 역사적 자료와 파라오가 신에게 예물을 봉헌하는 모습, 성스러운 배, 신전에서의 생활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기둥 위에는 창문도 만들어져 있었다.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든 창문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파괴되고 없지만 원래 대신전은 지붕이 덮여 있었다니 말이다. 아무튼 돌을 깎아 창살을 만들었다니 대단히 정교한 솜씨였던 건 분명하다.

 

 

 이들 기둥의 위에 있던 지붕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천정 일부에 채색한 그림과 카르투시(cartouche)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 표현된 동식물 그리고 자연이 어찌나 사실적이고 선명한지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다.

 

 

 옛날에 파피루스에 기록했듯이 각각의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에는 여러 가지 부조들로 가득하다. 기둥을 세운 파라오의 업적을 새겨둔 것으로 대부분은 적을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두 개로 갈라진 긴 모자를 쓰고 있는 아문 신에게 포도주를 바치는 왕들의 모습부터, 여러 신들의 손에 이끌려가고 있는 왕들의 모습도 눈여겨 볼만하다.

 

 

 

 열주들 사이에 숨어있는 석상이 눈에 띈다. 뭔가 내력이 있을 것 같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는데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지은 세 번째 탑문을 지나면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투트모세 1(Thutmose I)’ 하트셉수트(Hatshepsut)‘가 세운 오벨리스크인데, 하트셉수트의 것은 사실 4탑문 너머에 있다.

 

 

 3탑문과 4탑문 사이 마당에는 투트모세 1(Thutmose I, BC 1493-1482 재위)’ 투트모세 3가 세운 오벨리스크 4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투트모세 1가 세운 22m 높이 오벨리스크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투트모스 1세는 하트셉수트의 아버지로 기원전 1500년경 13년 정도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는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실 일부와 제4, 5 탑문 그리고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3탑문과 4탑문 사이에서 무트신전 방향인 오른쪽으로 꺾으면 7~10탑문으로 가게 된다.

 

 

 4 탑문은 신왕국 18왕조의 투트모세 1가 세운 문으로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투트모세 3세의 열주실로 연결된다.

 

 

 4탑문과 5탑문 사이에는 14개의 기둥이 있는 투트모세 3의 열주실이 있다. 가운데에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웠다는 오벨리스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높이 30m에 무게가 430톤으로 현존하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그녀도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하나는 부서져 인근 성스러운 호수 옆에 전시돼 있다. 그러니까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진 6개의 오벨리스크 중 2개만 온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표면에는 여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투트모세 1를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과 자신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단다. 또한 오벨리스크의 제작과정과 관련해 채석에서 완성까지 약 7개월이 걸렸으며 나일강물이 불었을 때 배로 실어오기로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훗날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어떻게 세웠을까 불가사의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적어놓았단다.

 

 

 4탑문 안으로 들어서면 투탕카멘(Tutankhamen, BC 1333-1323 재위)의 모습을 한 아몬 신과 그의 아내 아모네트(Amonet)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탐방을 하다보면 꽤 많은 석상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안내판이 세워진 곳은 없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왕명표라는 누군가의 말에 홀려 카메라에 담아봤다. 글자들 밖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것은 왕의 이름이라는 것. 그 위에 벌이 있으면 왕의 직위명이라는 등 그의 설명을 들었지만 내 눈에는 그게 그거로 보일 따름이다. 그저 옛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알고 있는 일행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훼손이 심해 사진 촬영을 하진 않았지만 5탑문과 곧이어 나오는 6탑문은 투트모세 1 투트모세 3가 세웠다. 6탑문을 지나면 지성소로 이어진다. 지성소 주변의 유적들도 훼손이 심해 사방으로 흩어진 상태다. 양 옆으로 두 개의 홀을 가진 지성소는 성스러운 배를 위한 장소인 아몬신의 지성소이다. 이곳에 모시던 신상은 새해 첫날 오페트 축제가 열릴 때면 남쪽으로 3 떨어진 람세스 신전으로 3주간 옮겨져 있다 돌아왔다고 한다.

 

 

 지성소에는 가운데 제단 같은 것만 있고 휑한 편이다. 하지만 벽면에는 수많은 신들의 부조가 있고, 천장에는 천신 누트(Nut)를 상징하는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천신 누트와 지신 겝(Geb)이 결혼해 네 자식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아들이 호루스고, 호루스의 부인이 하토르다. 하늘에는 누트 외에 태양신 아몬과 라가 있다. 아몬은 무트와 결혼해 아들 콘수(Khonsu)와 몬투를 낳았다. 그러므로 무트는 천국의 왕비이자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추앙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문과 라는 기원전 21세기 무렵부터 몬투를 대신해서 테베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신왕국 시대 아문과 라는 오시리스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이 되었다. 그래서 카르나크 신전도 아문과 라에게 바쳐진 것이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세소스트리스 1(Sesostris I, BC 1918-1875 재위)’의 신전 터, 혹은 중왕국 시대의 마당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나온다.

 

 

 중왕국의 안뜰을 사이에 두고 지성소와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아크메누(Akh-Menou)’라는 곳이다. ‘기념물들의 빛이라는 의미라는데 용도는 역대 파라오들이 종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란다. ‘투트모세 3세의 축제전이라고도 부르는데, 홀 가운데쯤에는 식물원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 벽에는 투트모세 3세가 군사 원정길에 보았을법한 이국적인 동식물을 표현한 섬세한 부조가 새겨져 있단다. 축제전 벽 너머에는 투트모세 3세의 신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그나저나 이곳은 관람이 가능한 마지막 장소다. 이젠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는 얘기이다.

 

 

 

 아크메누를 끝으로 되돌아 나오다가 성스러운 호수로 향했다. 아래 사진은 호수에 이르러 뒤돌아본 풍경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에서 빠져나왔는데 왼편에 투트모세 1가 세웠다는 7탑문이 보인다. 7탑문 전의 안마당은 은신처, 또는 은닉처를 뜻하는 ‘cachette’로 불린다. 1902-1904년 프랑스 고고학자 ‘Feorge Legrain이 이끄는 발굴팀이 이곳에서 숨겨진 신왕조의 석상들을 많이 발견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유물들은 현재 룩소르박물관에 보관중이란다. 안마당의 벽에는 히타이트를 물리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 람세스 2세와 해양족과 리비아를 물리친 메렌프타의 부조가 있다.  7탑문에 이어 8탑문과 9탑문을 지나면 10탑문으로 연결된다.

 

 

 카르나크 신전의 동서축과 남북측이 만나는 지점의 동남쪽 방향에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신성호수(Sacred Lake)‘이다. 현재의 연못은 후세에 복원해 놓은 것으로 길이 200m에 너비 117m의 규모이다. 이집트 왕국 시절 사제들은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이 호수에서 심신을 정화시켰는데 호수의 물은 태초의 물을 상징하는 신인 (Nun)', 즉 바다로부터 가져왔단다. 참고로 호수 동쪽에 만들어진 관람석에서는 빛과 소리의 쇼를 볼 수 있다.

 

 

 아까 얘기하던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 그러니까 쓰러졌다는 오벨리스크는 아직도 넘어진 채 성스러운 호수로 가는 길에 전시되어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투트모세 3세가 부셔버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오벨리스크의 상단 삼각뿔 부분에 보면, 하쳅수트가 아문 신으로부터 파라오의 자격을 인정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위 카르투시에는 그녀의 즉위명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마트--(Maat-ka-Ra)라고 읽으며, '라의 정의와 생명력'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성으로 남성이 하는 파라오를 했던 여걸 하트셉수트, 그녀는 정치와 건축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통치이념에서도 정의와 생명력을 강조했고, 아문-라신의 사랑을 받았던 최초의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스러운 호수 부근에는 쓰러진 오벨리스크 말고도 스카라브(scarab, 쇠똥구리)’ 석상이 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 장식으로 많이 쓰이는데 이 주위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 조각상을 시계가 도는 반대방향으로 1번 돌면 행운을, 3번 돌면 결혼을, 5번 돌면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근처의 벽에서는 상형문자로 표시한 숫자도 찾아볼 볼 수 있다. |, , ϱ의 세 가지 숫자가 보인다. 이게 우리의 1, 10, 100이란다. 이집트인들은 이와 같은 정수뿐 아니라 분수와 제곱근() 개념까지 사용했다고 하니, 그들의 사고력이 현대인에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에필로그(epilogue), 카르나크 신전의 주신전인 아몬신전을 관람하는 것이 메인 루트라면 그 왼쪽(북쪽)으로는 몬투(Montu)신전, 그리고 오른편(남쪽)에는 무트(Mut)신전이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둘러보는 것은 생략하기로 했다. 아니 볼 것이 없다는 귀띔 때문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대신 그의 귀띔을 글로 옮겨본다. 무트신전(Temple of Mut)은 아몬신의 아내인 무트를 위해 아멘호테프 3세가 세운 신전으로 아몬신전의 10탑문과 연결된다. 신전에는 탑문, 안마당, 열주실 등이 있고 700개의 석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몬투신전(Temple of Montu)’은 테베의 토착신이자 아몬과 무트여신의 아들인 무트를 위한 신전이다. 매의 형상을 한 전쟁의 신 멘투를 위해 역시 아멘호테프 3세가 세웠는데 현재는 문 정도만 남아있다. 가는 길에는 프타신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