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이집트

 

여행일 : ‘20. 2. 21()-29()

세부 일정 : 카이로(1)사카라멤피스(야간열차 1)아스완(1)아부심벨콤옴보(1)에드푸룩소르(1)후르가다(1)카이로(1)

 

에드푸 신전(Temple of Edfu)

 

특징 : 나일강 서안에 자리한 에드푸는 룩소르와 아스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이곳에 이집트 최고의 신 가운데 하나인 호루스에게 봉헌된 신전이 지어져 있다. ‘호루스 신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전은 기원전 237프톨레마이오스 3(Ptolemy )’가 착공한 후 역대의 여러 왕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12(Ptolemy ⅩⅡ)’ 때인 기원전 57년에 현재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시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신전은 버려지게 된다. 그 이후 오랫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초 프랑스 고고학회가 발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전은 탑문과 주벽 등의 구조는 물론, 부조 등의 장식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됨으로써 주신(主神)인 호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지를 창조한 태양신 라(Ra)는 공기의 신 슈(Shu)와 그의 아내 이슬의 신인 테프누트(Tefnut)를 만들었고, 2대인 게브(Geb, 대지의 남신)와 누트(Nut, 하늘의 여신) 부부를 거쳐 호루스의 아버지인 오시리스(Osiris)가 나온다. 오시리시는 아우인 세트(Seth)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데, 호루스가 장성한 뒤에 자기 아버지를 죽인 세트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에드푸 신전은 크루즈 선착장에서 5쯤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집트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라는 마차 투어를 즐겨보기 위해서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 일행은 마차 하나에 두 명씩 탔다. 하지만 그게 정원은 아니었는지 네 명이서 하나를 타고 가는 외국인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여명(黎明) 속의 에드푸.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고 있는 시가지를 통과하자 에드푸 신전의 앞에 만들어놓은 주차장에 이른다. 선착장을 출발한지 15분 만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에드푸신전이 보이지만 기념품 상가를 지나야 하는 등 500m쯤 더 걸어야만 신전에 이를 수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진 신전이 나타난다. 하토르(Hathor)에게 헌정되었다는 마미시(Mammisi) 신전이다. 마미시는 콥트어로 탄생지 또는 생가라는 뜻이다. 신전이 그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곳에서 하토르와 호루스 사이의 아들 하르솜투스(Harsomtus)’가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이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9(Ptolemy ) 때 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하토르를 위한 독자적인 신전이었다지만 지금은 호루스 신전의 부속 신전 같은 느낌이 강하다.

 

 

 

마미시 신전을 지나 동북쪽으로 60m쯤 가면 에드푸 신전의 입구에 이르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폭이 79m라는 커다란 마당이다. 마당 건너에는 보존상태가 썩 좋아 보이는 신전이 있다. 규모도 엊그제 들렀던 콤옴보 신전이나 필레 신전보다 훨씬 더 크다. 참고로 저 신전은 호루스(Horus)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이 지역이 호루스가 삼촌 세트와 전쟁을 벌였던 곳이라고 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단다. 호루스는 이곳에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제압한 뒤 명실상부한 인간계 통치구조의 직접적 관장신이 된다.

 

 

신전은 동서 길이 79m에 남북 길이가 137m인 남북방향의 신전이다. 신왕국의 람세스 시대에 세운 동서방향의 작은 신전이 있었으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os, BC 305-BC 30)’가 이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현재의 신전을 새롭게 지었단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1(Theodosius I)’ 때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이 신전은 버려지게 된다. 또 기독교도에 의해 조각과 그림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더욱이 나일강이 범람하면서 모래가 12m 높이까지 뒤덮게 되었는가 하면 에드푸 지역 주민들이 신전 가까이 집을 짓고 살면서 신전으로서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해버렸다. 이런 호루스 신전이 다시 세상이 알려진 건 1798년 프랑스 탐험대에 의해서였다. 1860년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에 의해 신전 복원작업이 시작되었고, 2005~2006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탑문의 부조를 살펴보자. 36m 높이의 탑문 입구 좌우에는 모두 6개의 큰 부조가 새겨져 있다. 적을 무찌르는 파라오와 호루스(Horus), 그리고 호루스의 어머니 이시스(Isis)이다. 호루스 신화의 주요 장면을 재현해 놓았지 않나 싶다. 탑문 상부에도 양쪽으로 각각 21개의 부조가 두 줄로 새겨져 있다. 모두 이집트의 신과 파라오라고 한다. 또 하나, 탑문의 바로 위쪽에는 태양신 라(Ra)를 상징하는 원반을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Uraeus, 고개를 쳐든 뱀의 머리로 왕권을 상징)가 보호하고 있는 장식이 붙어있다.

 

 

탑문 입구로 가면 좌우에 두 개의 매 형상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호루스는 종종 매의 머리를 한 인간, 매의 머리를 한 동물, 혹은 매 그 자체로 묘사된다. 이 조각상에서도 호루스는 이곳이 자신의 신전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위풍당당한 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석상의 다리 사이에 부조된 인물은 파라오(pharaoh)’라고 한다. 자신을 호루스가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지 않나 싶다.

 

 

오른편의 석상은 파라오를 상징하는 이중관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둥이가 떨어져 나갔다.

 

 

탑문 앞에서 돌아본 풍경이다. 널찍한 마당에는 꽤 많은 의자들이 고정 시설처럼 놓여있다. 이곳에서도 빛의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면 안마당(中庭)이 나온다. 동서 길이 42.6m에 남북 길이가 49m에 이른다니 안마당치고는 상당히 넓다 하겠다. 맞다. 고대 이집트 신전 가운데 카르나크(Karnak)’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보존상태 또한 뛰어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열주실을 전면에 둔 안마당은 삼면(··)에 모두 32개의 대열주 회랑(回廊)이 있다.

 

 

회랑의 열주는 코린트 양식(Corinth style)’을 띄고 있다. 주두(柱頭)에 아칸서스 잎을 이 단으로 두르는 게 코린트양식의 특징이니 말이다. 맞다. ‘에드푸 신전은 그리스 출신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집트의 신들과 신앙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은 건축물이다. 특히 이 열주들은 BC 116-BC 71년에 세워졌다지 않는가. 그러니 코린트 양식이 접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회랑을 걷다보면 생명의 열쇠라는 앙크(ankh)’ 문양이 자주 눈에 띈다. ‘영원한 생명으로 번역되는 상형문자인데, 이집트 신화의 신들은 앙크의 고리를 잡고 있다든가, 양팔을 가로지른 채로 양손에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앙크는 콥트교도들에도 신성시되었단다. 십자가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교회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열주실로 들어가기 전 다양한 부조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9세가 호루스에게 봉헌물이 든 단지를, 하토르 여신에게는 자신을 상징하는 스핑크스를 바치는 장면의 부조가 보이는가 하면, 반대편에는 다른 여신에게 엘렉트럼(electrum, 금과 은의 합금)을 받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탑문의 뒤쪽에서는 일 년에 한번 덴데라(Dendera)의 하토르가 배를 타고 이곳으로 찾아와 남편인 호루스를 만난다는 내용의 부조도 찾아볼 수 있다. 매 장식의 호루스 배와 여신 머리 장식의 하토르 배가 로프로 묶여있는 형상이다. 이집트의 신들은 결혼을 한 뒤에도 같이 살지는 않았었나 보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문 좌우에서 우린 또 다른 검은색 화강석으로 된 호루스 조각상을 만나게 된다. 신전에 있는 다른 호루스들보다 보존이 잘 되어서인지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인해 항상 붐비는 에드푸 신전의 마스코트이다.

 

 

 

열주실로 들어가지 전에 뒤돌아본 탑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외 열주실과 내 열주실이 다시 나타난다. 외 열주실에는 기둥이 6개씩 세 줄, 내 열주실에는 4개씩 세 줄의 기둥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열주실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 방은 종교의식과 관련된 상형문자 텍스트들이 있다고 해서 도서관이라 불린다. 왼쪽은 정화 혹은 봉헌의 방이란다. 또한 12개의 기둥이 있는 두 번째 열주실에도 보물의 방나일강의 방’, 그리고 향수나 방향제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있는 방들이 있다.

 

 

내부의 천장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콥트교도가 오래도록 이곳에 거주하면서 연기를 피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천정에 그려져 있다는 별자리 등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열주실의 기둥과 벽은 온갖 부조 벽화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파라오가 호루스와 하토르의 축복을 받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파라오가 이들 신에게 꽃과 같은 봉헌물을 바치기도 한다.

 

 

 

 

이들 열주실을 지나면 안으로 또 다시 두 개의 전실이 있고, 그 안쪽에 지성소가 있다. 지성소는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조명을 해 놓았으며, 가운데 가마 모양의 범선이 놓여 있다. ‘하늘을 나는 배(나일강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나라답게 나일강을 오가는 배들을 가장 성스럽게 여겼지 않나 싶다)’라는데 그 뒤에는 30왕조의 넥타네보 2(Nectanebo II)’가 만든 신상을 안치했다는 봉안소인 나오스(Naos)가 있다. 원래는 나무에 황금을 입힌 호루스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비어있었다.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 파라오는 이곳 지성소를 찾아 향을 피우고 호루스와 하토르를 기리는 의식을 거행했단다.

 

 

지성소의 내부 벽면도 호루스와 세트가 대결하는 장면 등 부조 벽화들로 가득했다. 아니 조명으로 인해 더욱 화려해졌다. 이를 두고 수렴형 신전의 화룡점정이라는 표현을 쓴 이도 있었다. 그는 또 에드푸 신전이 르네상스식 좌우대칭 양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하대칭 구조까지 중첩시켰다고 했다. 즉 입구에서 지성소 까지 발 디딘 쪽은 점점 높아지고, 기둥 위쪽과 천장 부분은 점점 낮아져, 마치 원근법의 소실법처럼 지성소로 모든 에너지가 수렴된다는 것이다.

 

 

이젠 신전의 외벽을 따라 돌아본다. 서쪽 벽으로 가면 이 신전에서 가장 극적인 부조를 만날 수 있다. 파라오의 수호신 호루스가 악의 상징인 세트(Seth)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10여 개의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삼촌 세트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세트는 엄청 작은 하마로 표현되어 나약한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세트가 악의 화신(동물 형상)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지만, 결국에는 호루스가 하토르와 파라오의 도움을 받아 나일강에서 하마(Nilpferd)로 변한 세트를 찾아내서 죽인다는 내용이다. 처음엔 세 명, 다음엔 네 명, 그 다음엔 다섯 명이 힘을 합쳐 하마를 잡아 올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자세히 그려져 있다. 마지막에는 그물을 이용하여 하마를 육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어서 하마는 칼을 든 호루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들 벽화는 고대 이집트 신화 중 오시리스 신화를 부조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콥트교도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부조의 얼굴이 크게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종교란 게 본디 사랑과 포용인 것을 그들은 왜 몰랐을까?

 

 

북쪽 벽면에서는 수많은 카르투쉬(Cartouche)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절반 정도가 빈칸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새겨 넣을 왕의 이름을 고려해서 미리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란다. 다른 한편으론 그곳에 들어갈 임금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영원하기를 바란 왕국이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웠겠는가. 아무튼 카르투쉬란 고대 이집트 왕의 이름을 새겨 넣는 타원형의 상형문자판을 말한다. 혹자는 우리의 군대 인식표(군번줄)를 닮았다고 해서 왕명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인식표에 군번과 이름이 들어간다면, 카르투쉬에는 파라오가 태어날 때의 이름과 즉위할 때의 이름이 들어간다.

 

 

이곳 에드푸 신전에도 나일로미터가 있었다. 하지만 나일강으로부터 5나 떨어져 있는 탓에 현재는 수위 측정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사라진지 이미 오래란다. 참고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의 눈금을 보고 물이 빠진 뒤의 상황을 예측했다. 길이에 대한 고대의 측정 단위는 큐빗(cubit)이었다. 팔꿈치에서 가운데손가락 끝까지의 길이(46정도)‘1큐빗인데 수위가 12~13 큐빗 정도로 낮으면 가물어 기근이 들고, 16큐빗이면 먹고 남을 만큼의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고 믿었단다.

 

 

 

크루즈가 밤에 운행했던 탓에 나일강의 또 다른 명물이라는 에스나 락(Lock)’은 눈에 담지 못했다. 낮은 수위의 물길로 갈아타기 위한 갑문(閘門)으로 에스나의 랜드 마크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다른 분의 사진을 빌려온 이유이다. 거대한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과 로우댐으로 강물을 두 번이나 막았어도 상류의 수위는 하류의 수위보다 높고, 이를 방치할 경우 물살이 세질 수밖에 없다. 이의 해결을 위해 설치한 시설이 마스르아스완 대교 서단에 있는 에스나 락(Lock)’으로 배가 어디서든 완만하고 안정감 있게 운항할 수 있도록 물 높이를 조절해 준다.

 

 

에스나 락(Lock)’은 급경사가 있는 곳에 갑문식 도크를 만들어 배가 상하로 오르내리도록 하는 시설이다. 내려가는 배가 갑문으로 들어갈 때는 아래쪽 문을 닫고 진입한 다음, 뒤쪽 물문을 닫는다. 그런 다음 도크 안에 있는 물을 서서히 빼면서 하류의 수위에 맞춘 다음 아래 도크를 열고 다시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에필로그(epilogue), 에드푸신전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으면 먼저 고대 이집트 신화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태양신 레를 숭배한 가장 오래된 고대 이집트의 도시)의 신학에 따르면 태양신 아툼(Atum혹은 Ra)이 슈(Shu, 공기의 남신)와 테프누트(Tefnut, 이슬의 여신)를 창조했고, 이 둘이 결합하여 게브(Geb, 대지의 남신)와 누트(Nut, 하늘의 여신)를 낳는다. 그 후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남신 오시리스(Osiris)와 세트(Seth), 여신 이시스(Isis)와 네프티스(Nephthys)가 나오는데 이들 남매가 각각 짝을 지어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가 부부가 된다. 이들 아홉이 이집트의 구주신(九主神)’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다. 이 가운데 오시리스신은 이집트를 통치하며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존경을 받았지만, 이를 시기한 동생 세트의 모함에 빠져 죽게 된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관을 찾아내어 남편을 살려냈지만, 이를 안 세트가 오시리스를 열네 토막으로 잘라 이집트 방방곡곡에 버렸다. 이시스는 다시 조각들을 찾아서 결합시켰지만, 물고기에 먹혀 버린 남근만은 찾지 못했다. 이시스는 나일강의 진흙으로 그 부분을 보충한 후 생명을 불어넣어 오시리스를 살려내었고, 그와 결합해 아들 호루스(Horus)‘를 낳게 된다. 이 호루스가 성장하여 작은아버지이자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를 물리치고 왕위에 복귀한다. 그렇게 해서 호루스는 현세의 왕으로, 오시리스는 내세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호루스신을 믿는 나일강 상류 사람들과 세트신을 믿는 나일강 하류 사람들의 권력투쟁이 반영된 전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