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태행산 여행

 

여행일 : ‘18. 10. 8() - 10.12()

일 정 : 석가장 정정현(8)휘현 천계산·만선산(9)임주 태행산대협곡(10)임주 팔천협(11)안양 문자박물관(11)석가장 조운묘(12)

 

여행 셋째 날 : 태항천로(太行天路)

 

특징 : 남북길이 약 600에 동서길이가 250나 되는 태항산맥은 그 규모가 워낙 거대한데다 웅대한 영혼을 담고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그런 태행산에서도 백미(白眉)는 단연 임주에 위치한 태항대협곡을 꼽을 수 있다. 동서의 폭 1~3에 남북길이가 약 45km에 달해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도 불리며,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협곡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태항대협곡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태항천로(太行天路)’이다. ‘환산선(還山線)’이란 이름으로 불려오던 이 길은 도화곡에서 종점인 '몽환지곡(夢幻之谷)'까지 이어지는데, 칼로 산을 내리치면서 깎아놓은 듯한 해발 1,200m 높이의 절벽 위에 25쯤 되는 길이로 나있다. 빵차를 타고 달리다가 곳곳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내려 태항대협곡을 굽어 살펴보는 태항산 최고의 관광코스로 알려진다.


 

도화곡(桃花谷) 트래킹이 끝나는 곳, 그러니까 도화곡의 맨 위에 작고 평화로운 산골마을인 도화동(桃花洞)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태항천로(太行天路) 투어가 바뀌어 진행된다. 30(USD)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옵션관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환산선으로 불려오던 태항천로는 도화동촌에서 출발해 고가대(古家台)에 이르는 구간으로 해발 1,200m 내외의 절벽 상단을 달리는 코스다. 코스의 중간 여러 곳에 태항대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우린 그 가운데 몽환지곡(夢幻之谷)까지만 다녀오게 된다.






태행천로(한산선)는 전동차를 타고 돌아보는 드라이브 코스다. 빵처럼 생겼다 해서 일명 빵차라 불리는 승합차인데 문이 양쪽으로 나 있어 타고 내리는 데 수월할 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트이기 때문에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지는 꼬맹이 차량이다. 빵차가 태항천로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타고가면서 태항대협곡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깎아지른 수직절벽의 위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촌락과 돌무더기를 일궈 만든 밭 등 때 묻지 않은 원주민들의 삶을 허투루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길은 태항대협곡의 깎아지른 절벽 위로 나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태항천로(太行天路)’, ‘태항산 위에 내놓은 하늘 길이란다. 빵차는 아슬아슬한 하늘 길을 잘도 달린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리고 신음에 가까운 괴성(怪聲)을 자신도 모르게 질러댄다. 하지만 운전사 아저씨에게는 그런 것까지도 즐거움의 대상인 모양이다. 속도를 더 높이는 걸 보면 말이다. 경쾌한 한국 가요까지 틀어준다. 손뼉까지 쳐가며 부르는 노랫소리와 신음에 가까운 괴성이 함께 어우러지며 또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한마디로 즐겁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다. 참고로 태항천로는 산골 마을과 마을을 잇는 촌촌통로(村村通路)이다. 4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가 15년 전쯤 2차선 콘크리트 도로로 확·포장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산간오지에 사는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이 코스의 장점으로 꼽고 있었다. 산속에 자리 잡은 동네에 들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행운은 없었다. 30분이면 충분할 텐데도 가이드에게는 그런 자투리 시간마저도 아까웠던 모양이다.



대협곡의 전체적인 모양새는 거대한 기단(基壇) 위에 또다시 몇 개의 단을 쌓아 만든 성()과 같은 느낌이다. 20억 년 전 지반의 융기 이후 계속된 융기와 침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만리장성이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건조물이라면 이곳 태항산은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고 조물주(造物主)가 손수 만들었다. 신이기에 저런 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젠 중간 중간에 자리한 몇 곳의 전망대에서 내려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에 눈을 맞춰볼 차례이다. 왜 이곳을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비유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면 된다는 얘기이다. 첫 번째로 만난 전망대는 천경(天境)’이다. ‘하늘과의 경계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을 바라볼만한 관망대로 손색이 없다. 그래선지 도로의 양쪽 바위절벽에 난간을 둘러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웅대하기 짝이 없는 태항대협곡과 그 위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는 하늘 길인 태항천로, 거기다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태항산맥까지 한눈에 담아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노변에는 서너 개의 좌판이 놓여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버섯, 마른 산열매 같은 것을 파는 조양촌 주민들일 것이다. 눈에 익은 풍경이라 하겠다. 설악산이나 속리산 같은 우리나라 유명산의 들머리에서도 흔히 보아오던 풍경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흥정까지 한국 돈으로 하고 있었으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이곳은 태항천로(太行天路)의 속살을 가장 확실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도화곡 풍경구왕상암 풍경구사이를 연결하는 25km2차선 포장도로인 태항천로는 1,200m 높이에서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하늘길이다. 깎아지른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은 도로만 해도 아찔한데, 산책로는 그 아래 절벽에다 아예 걸쳐놓았다. 저러니 탐방로 어디에서나 태항대협곡이 손쉽게 내려다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태항대협곡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태항천로를 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맞은편 언덕 위에도 또 다른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미국의 소설과 리처드 바크(Richard Bach)’는 그의 소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했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냉큼 올라서고 보는 이유이다. 그래 저곳이라면 태항산이 감추고 있는 속살을 조금이라도 더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로 오르려는데 중국국가지질공원에서 세워놓은 빗돌 하나가 눈에 띈다. 이곳 태행산의 지질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태항대협곡은 융기 지형이다. 25억 년 전의 선캄브리아기 변성암으로 구성된 기반암 위에 덮인 8억 년 전의 사암층이 솟아오르면서 깎여나가 깊고 깊은 대협곡을 만들었다.



막상 오르고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는 못하다. 태항천로가 도로변 바위절벽에 기대어 놓은 전망대보다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태항산의 암릉도 도로에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한자리에서 전체적인 경관을 조망해 볼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이곳만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겠다.





달리는 빵차에서 올려다본 천경전망대



두 번째로 멈춘 곳은 평보청운(平步靑雲)이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얘기인데 도로와 경작지 사이로 난 들머리의 풍경은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 구름 위를 날아가는 짚라인(Zipline)’을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들머리에 골삭(滑索, 짚라인의 중국어 표기)’ 안내판을 세워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참고로 평보청운의 어원이랄 수 있는 금방제명 평보청운(金榜題名, 平步靑雲)’은 중국 고대로부터 과거 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고시문을 황금색으로 적은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 평보청운은 한 번에 푸른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벼락출세를 의미하는데 전망대에다 그런 이름을 붙여놓을 걸 보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최고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데크로드를 걷다보면 건너편 산자락에 들어앉은 산골마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마을이 모두 자색의 돌로 집을 지었다. 심지어는 지붕까지도 납작한 돌을 얹어 놓았다. 내리치면 돼지 울음소리가 난다는 저규석(猪叫石)’으로 지은 집들이란다. 산간오지 절벽 위에 저런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지금이야 잘 포장된 길이 개설되어 접근이 용이한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중국내에서도 오지(奧地) 중의 오지였단다.



잠시 후 유리잔도(玻璃栈道)’의 입구가 나온다. 이곳도 역시 덧버선을 신은 사람만이 입장이 허락된다. 바닥에 깔아놓은 강화유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테니 일단은 따르고 보자. 마침 덧신 사용료도 받지 않으니 박스에 들어있는 것들 중에서 발에 맞는 것을 하나 골라 신으면 된다.



이곳에서도 태항대협곡이 잘 조망된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벽면에는 수목이 자라는 띠가 가로로 층을 이루고 있다.




한꺼번에 50명 이상은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도 붙어있다. 그 뒤로 보이는 유리를 뒤집어 쓴 건물은 짚라인 탑승장으로 이어주는 엘리베이터(elevator)라고 한다. 이곳 태항산은 익스트림(extreme)한 모험까지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진 모양이다.



계단을 올라서자 까마득한 바위절벽에 붙여놓은 유리잔도(玻璃栈道)’가 나타난다. 유리바닥에서 절벽 아래까지의 표고차가 230m나 되는데 바닥이 유리라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여행객들 대부분이 냉큼 들어서지를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이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올라설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어제 천계산에서 만났던 유리잔도에 비하면 이건 장난 수준이라 하겠다. 거리도 짧은데다가 철제 이음새가 중간과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처럼 간이 약한 사람들은 이 부분을 딛고 걸으면 된다는 얘기이다.





어제의 모험이 내 간덩이를 부풀려 놓았나보다. 나타나는 상황들이 아까 얘기했던 평보청운(平步靑雲), 개천에서 용() 났다는 뜻으로 다가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유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그다지 무섭지 않는 등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용이 승천할만한 상황에까지는 이르지 못해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또 다시 빵차가 멈춘다. ‘몽환지곡(夢幻之谷)’ 전망대의 입구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탐방로로 들어서자 우청루(雨晴樓)’라는 간판을 단 돌집이 나타난다. 음식점 아니면 카페로 보이는데 마당에 잡초가 가득한 걸 보면 문을 닫은 지 꽤 되었나 보다. 그나저나 붉은 색 돌로 이어진 건물이 참 이채롭다. 망치로 내려치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낸다는 저규석(猪叫石)’이라는데 돌기둥과 돌벽에 돌지붕을 얹었다. 돌계단과 돌담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마당까지도 돌로 깔았다. 창문 등을 제외한 건축물 전체가 석판(石版)으로 꾸며진 것이다. 얇은 육면체로 쉽게 쪼개지는 이 저규석은 가공할 필요가 없는 천연의 건축 재료다. 석기 시대라면 이 근처는 노다지 땅이라고 불렸을 법하다.





우청루 앞은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난간에 서면 발아래로 태항대협곡이 펼쳐진다. 골짜기는 의외로 넓고 평평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그만 마을들이 그림같이 들어앉았다. 험산준령과 첩첩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저곳은 분명 사시사철 포근할 것이다. 거기다 기암괴벽으로 둘러싸여 경관까지 아름다우니 옛 사람들이 꿈꾸던 무릉도원이 바로 저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태항대협곡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다른 점은 협곡 한복판에 콜로라도강과 같은 대하천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이곳에는 옛 방식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있다. 마을 뒤편 천 길 낭떠러지 아래에는 계단식 밭들이 터를 잡았다. 남해도의 가천마을 등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다랭이논을 닮았다. 그게 아름답게 보였는지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띈다. 맞다. 주민들에게는 생활의 일부이겠지만 여행객들의 눈에는 아름다움의 일부로 비쳐졌을 수도 있겠다.




눈앞에 태항대협곡이 펼쳐진다. 한반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형이다. 한반도의 퇴적지형은 주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안과 해남, 고흥 등지에 백악기 퇴적암층이 있긴 하나 이곳처럼 거대한 퇴적지형은 볼 수 없다. 아무튼 눈앞에 펼쳐지는 태항대협곡은 커도 너무 크다. 이처럼 거대한 위용은 수억 년에 걸친 3단계의 융기와 하식작용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퇴적경관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땅의 솟구침. 지구의 거대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몽환지곡(夢幻之谷)’ 전망대이다. ‘몽환지곡은 태항천로에서 가장 큰 전망대로 넓이가 약 6,000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은 길게 펼쳐지는 대협곡과 첩첩이 쌓여있는 암봉들, 특히 왕상암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으로 다섯 가지를 꼽기도 했다. 첫째는 서쪽에 병풍처럼 늘어선 산이고 두 번째는 계곡의 멋진 풍광, 세 번째는 수령 300년이 넘는 두 그루의 감나무, 네 번째는 지혜의 문, 다섯 번째는 농가(農家) 등이란다. 좋은 정보였지만 감나무는 보지 못했다. 이왕이면 감나무가 있는 장소까지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한쪽 귀퉁이에는 돌로 쌓은 지혜의 문(智慧門)‘이 덩그러니 서 있다. 꿈속에 너무 빠져있지 말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문을 통해 바라보는 산과 하늘의 조화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진학이나 취직, 입신양명 등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지혜의 신광으로 목욕을 하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니 참조해 두자.



이곳은 자전거도로코스로도 유명한 모양이다. 라이딩(riding) 조형물로도 모자라 저렇게 큰 안내도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지도는 출발점인 이곳 몽환곡정거장을 출발해서 종점인 노반학(魯班壑) 정거장에 이르는 길이 7의 코스라면서 중간에 3개의 서비스 구역까지 갖추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엄청난 과장을 담고 있는 지명에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자주 있다. 이곳 몽환지곡(夢幻之谷)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골짜기라니 너무 거창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을 카메라의 앵글에 맞추다보니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과장스런 작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이 왕상암(王相岩)‘이란다. ‘태항의 혼()’이라 불리는 왕상암(王相岩)은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당(明堂)으로 역사적으로도 알아주는 수많은 명인(名人)들이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전설 또한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왕상암이란 지명을 얻게 된 전설이라 하겠다. 아주 먼 옛날 상나라(, BC1600-BC1046)’의 제23대 왕인 무정(武丁, BC1250-1192)이 피난해 은거생활을 하던 중 노예였던 부설(傅說)을 만나 서로 문무를 가르치다가 왕이 된 후에는 그를 재상(宰相)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두 사람의 지위에서 한 글자씩을 따다가 왕상암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헌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니 전설쯤으로 치부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저 당시 부열이 살았다는 성인굴(聖人窟)’의 흔적이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서성(山西省) 평륙현(平陸縣)에 남겨져 있다는 점만 기억해 두도록 하자.





건너편 아슬아슬한 바위절벽의 바로 위에까지 계단식 밭들이 들어서 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낸 서정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그렇다. 태항산대협곡은 멋진 풍경만큼이나 순수한 삶이 함께한다. 작은 돌기와집에서 절벽 바로 앞까지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을 닮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넓고 높은 산과 깊고 험한 계곡 위를 달리고 있는 나 또한 자연을 닮아간다. 아니 닮아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내 표현이다.



에필로그(epilogue), 몽환곡 탐방이 끝나면서 팀이 둘로 나뉘었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왕상암 입구까지 걸어서 내려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빵차를 타고 도화곡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절벽 중간에 수직으로 걸려 있다는 그 유명한 통제(筒梯), 즉 볼펜 스프링처럼 생긴 88m 높이의 회전 사다리 길이 보수공사 중이라서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덕문에 긴 능선을 걸어서 내려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귀띔을 건네 온다. 눈에 담을만한 경치가 없는데도 계단만 많아서 자칫 무릎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행이 일상이 되다시피 한 나이기에 내려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려는데 집사람의 눈초리가 심상찮아진다. 그리고 그 표정에 질린 난 차에서 내릴 생각도 못해봤다. 해외까지 나와서 얼굴 붉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결과는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너무너무 환상적이었다는 트레킹을 한 사람들의 얘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