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적산(白積山, 1141.2m)

 

산행일 : ‘18. 6. 12()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과 용평면, 진부면의 경계

산행코스 : 모리재 터널모릿재8909781040백적산서북능선 삼거리묘련원주·강릉철도 평창터널 진입로 앞(산행시간 : 3시간40)

 

함께한 산악회 : 갤러리 산악회

 

특징 : 평창군의 용평·대화·진부 등 3개 면의 경계에 정수리를 둔 듬직한 산으로 백두대간이 오대산에서 서쪽으로 곁가지를 내려 남한에서 다섯 번째 높은 계방산(1577m)을 밀어 올리고 이 계방산의 1462봉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정남 방향으로 약 50리를 달려 오랜 산고 끝에 백적산을 낳았다. 이 산줄기는 계속해서 잠두산과 백석산, 중왕산, 가리왕산, 청옥산 등 기라성 같은 명산들을 탄생시킨다. 이렇듯 소중한 백적산이건만 강원도 오지(奧地)의 땅에 위치한 탓에 아직까지도 입소문을 타지 못했다. 찾는 이가 무척 드문 이유이다. 산세는 후덕한 몸매를 지닌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러나 정상 어림에는 바위지대도 섞여있다. 그 바위들이 석영과 석회석이 혼합된 흰색이라고 해서 백적산또는 흰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한번쯤은 꼭 찾아봐야 할 산으로 꼽고 싶다. 다만 이때 산행코스는 이목정리를 기점으로 삼을 것을 권한다. 이목정 마을회관에서 시작해서 정상을 찍고 난 다음, 내려올 때는 괴롭재에서 굴암사로 하산하거나, 체력이 남았을 경우에는 괴발산까지 들른 후 무당봉을 거쳐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면 되겠다. 그쪽 방면에 흰 횟돌의 너덜지대인 왕성단과 상여바위, 삼형제바위, 얼굴바위 등 기이하게 생긴 볼거리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반대편 방향의 능선을 탔을 경우에는 원시림 속을 헤집고 다녀야 하는 개척 산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산행들머리는 모릿재(평창군 대화면 신리)

영동고속도로 평창 IC에서 내려와 31번 국도를 이용 평창방면으로 가다가 신리삼거리(평창군 대화면 신리)에서 좌회전하여 모릿재로로 옮겨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면과 진부면의 경계인 모릿재에 올라서게 된다. 정확히 말해서 새로 뚫린 모릿재 터널의 대화방면 입구로 보면 되겠다.




모릿재 터널앞에서 오른편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차량이 지나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너른 것으로 보아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임도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을 것 같다.



길가에는 잘 지어진 전원주택도 보인다. 주택의 주위는 온통 들꽃들 세상이다. 망초와 찔레나무, 애기똥풀 등 꽤 많은 야생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만개(滿開)하고 있다. 자연스레 생겨난 꽃밭 속에 들어앉았으니 공짜로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포장임도를 걷다보면 차단기(遮斷機)가 길을 막고 있다. 차량통행을 막기 위해 산림청에서 설치한 시설물인데 봉에 매달아놓은 안내문에는 통행할 때 주의해야할 내용을 적었다. 이를 어기다가 사고를 당해도 산림청에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건부 통행이 가능하다면 구태여 이런 차단기가 필요했을까 싶다.



차단기를 넘자 이번에는 길이 둘로 나뉜다. 21일에서 515일까지, 그리고 111일부터 1215일까지는 입산을 통제한다는 안내판 아래에 임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정표 기능까지 수행토록 했으니 다목적인 셈이다. 왼편은 막동과 장전으로 넘어가는 길이고 오른편은 대화4리로 연결된단다. 모릿재는 왼편 즉 막동방향이니 참조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4분 만에 모릿재의 능선마루에 올라선다. 대화면과 진부면이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이곳에서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임도가 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오솔길이다. 백적산은 이 오솔길로 들어서야 한다. 들머리에 평창의 명산, 백적산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임도도 둘이다. 이 가운데 오른편은 잠두산을 거쳐 백석산으로 연결되니 참조한다. 그쪽 방향으로 몇 걸음 나아가니 ‘6·25 전사자 유해발굴기념지역이라는 내용의 철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6·25 당시 이곳은 국군 7사단과 북한군 2사단 사이에 7일간이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단다. 전투의 결과는 승리였지만 이에 따른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130명의 국군이 전사했음은 물론이고, 180명이나 실종되었다니 말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무한책임론에 의거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부터 이곳에서도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현재까지 12구가 발굴되었단다.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처음부터 기()를 팍 죽이고 본다. 시작부터 엄청나게 가파른 것이다. 그나마 주변의 숲이 잣나무이라는 것이 다행이지 싶다. 거칠게 들이키는 숨결을 따라 짙은 솔향이 덤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 솔향에 듬뿍 들어있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능 중에는 몸으로 스며드는 각종 병균에 대한 살균기능 외에도 피로회복 기능까지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잣나무가 아니겠는가. 가파른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버겁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탐방로 주변은 울창한 숲의 연속이다. 원시림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천 미터가 훌쩍 넘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산들이 워낙 유명해서 아직까지 입소문을 덜 탔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참취와 곰취는 물론이고 칼나물과 찔뚝바리, 외나물, 깨나물, 병풍나물, 참나물 등도 흔하디흔하단다. 그렇지 않아도 부지런한 집사람의 손길이 더욱 빨라지는 이유일 것이다.




숨이 턱에 차오르게 만들던 산길이 잠시 기세를 죽이더니 첫 번째 봉우리에 이른다.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12분 만이다. 그런데 정상까지 오르지를 않고 직전에서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주능선에 자리 잡은 ‘890m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제야 겨우 주능선에 올라선 셈이 되겠다.



잠시 후, 그러니까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20분쯤 되었을까 이정표(정상 1.6/ 모릿재터널 0.5) 하나가 나타난다. ‘해피700평창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게 보인다.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해발고도는 700m라고 한다. 그런데 평창의 평균해발고도가 700m란다. 평창에서 브랜드(brand)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란다.



산길은 주능선을 따른다. 이 능선은 대화면()과 진부면()의 경계선을 따라 백적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잠깐 아래로 내려서는데 진행방향에 978m봉이 우뚝 솟아있다. 고생께나 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겠다.



안부에 이르니 능선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나무기둥에 ‘6·25 전사자 유해발굴 완료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아까 들머리에서 보았던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의 현장인 모양이다.



또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밋밋하고 평탄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978m인 모양인데 ‘890m을 내려선지 20분 만이다.



잠시 후 산길은 송전탑(送電塔)의 아래를 지난다. 공사를 위해 주변을 정리한 탓인지 조망이 시원스럽다. 백적산에서 능선으로 연결되는 잠두산과 백석산은 물론이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중왕산과 가리왕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는 것이 강원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후부터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가끔은 바위를 오르기도 해야 하지만 꼭지점에 일단 오르고 난 뒤부터는 산길이 편해진다. 경사가 약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백적산은 전형적 육선(肉山)이다. 그러니 볼거리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망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이 또한 육산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볼거리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앞서가던 집사람이 손짓을 보내온다. 오른편에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가가 보니 비스듬히 드러누운 바위 하나가 고목(古木)에 기대어 있다. 둘 모두 오래 묵은 탓에 색깔까지 닮았다. 그게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웃자란 잡초들이 가득해 속도를 내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그렇게 36분쯤 진행하자 ‘1040m’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물론 978m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다시 내려가는 길, 진행방향에 백적산 정상으로 여겨지는 봉우리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날카롭게 생긴 것이 올라가려면 땀 깨나 흘려야 할 것 같다.



웃자란 잡초를 헤치며 8분쯤 더 내려가자 초원에 가까운 공터가 나타난다. 누군가 이쯤에서 헬기장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갖가지 잡초들로 뒤덮여 있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또 이곳에서 묘련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고도 했다. 하지만 잡초들 때문에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안부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아니 엄청나게 가파르다고 하는 게 옳겠다. 가파르다는 것을 코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나 코를 땅에다 가까이 대었으면 흙냄새까지 맡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 오르고 있는 산길의 형편이 딱 그렇다. 그만큼 가파르다는 얘기이다.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길가에다 밧줄을 매어놓았다.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밧줄로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곧장 오르지를 못하고 오른편으로 사선을 그으면서 비스듬하게 길을 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사선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길은 또 다시 위로 향하면서 길가에다 밧줄을 매어놓았다. 하긴 계속해서 옆으로 나가다간 다른 방향으로 가버릴 수도 있을 테니 어쩌겠는가.



밧줄구간이 끝나는가 싶더니 바위들이 선을 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빈도(頻度)를 높여간다. 하지만 산길은 바위들을 잘도 피해서 간다. 경사가 가팔라서 힘들기는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이다.



그래도 명색이 바윗길인데 밧줄 한 번 잡지 않고 오를 수 있겠는가. 정상 가까이에 이를 즈음에는 2m 정도의 수직에 가까운 벼랑을 만나기도 한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오를 수 없으니 오늘 산행은 손맛까지 즐기게 해주는 셈이다.



밧줄에 의지해서 위로 오르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멋진 바위이다. 오늘은 황사나 미세먼지가 일절 없는 날이다. 덕분에 눈은 최고로 호사(豪奢)를 누린다. 이곳 백적산에서 능선으로 연결되는 잠두산과 백적산은 물론이고, 중왕산과 가리왕산, 청옥산, 남병산 등이 같은 산줄기를 따라 줄을 잇고 있다. 그 뒤로도 1m를 훌쩍 넘기는 강원도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두타산과 상원산, 발왕산 등일 것이다.




전망바위를 지나자마자 ‘Y’형으로 길이 나뉜다. 이정표(골안이(굴암사)/ 골안이( 마을회관))는 두 방향 모두 동일한 지명(골안이)을 표기하고 괄호 안에다 각각 굴암사마을회관이라고 적어 넣었다. 우리가 올라왔고 또 내려가려고 하는 지점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산행 준비를 하면서 검색해본 ‘Daum 지도에도 해피700길 백적산이라는 이름의 5.3km짜리 등산로를 소개하면서 이목정리에서 정상을 거쳐 굴암사로 연결되는 코스만 소개하고 있었다. 이로보아 제대로 된 등산로는 이 하나뿐이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내려가려고 하는 묘련사방향의 탐방로를 찾아나가는 게 만만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50분만이다. 두세 평쯤 되는 정상에는 새로 세운 것 같은 정상표지석과 판독이 어려운 삼각점(봉평 23)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백적산이란 이름은 산자락에 석영과 석회석이 혼합된 흰색의 바위가 많이 쌓여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인근 주민들은 흰적산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보통 때는 바위들이 희게 보이나 날씨가 궂으면 검게도 보인다니 참조한다. 또한 정상어림에는 왕성단이라는 이름의 너덜지대가 있으며, 마시면 힘이 솟아나는 샘도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지나왔던 갈림길 근처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보잘 것이 없다. 빙 둘러서 잡목들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안타까웠던지 정상표지석 뒤편을 조금 열어 놓았다. 그렇다고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방금 올라왔던 길로 서나 걸음만 되돌아나가면 쉬어가기 딱 좋은 너럭바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15명 정도는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듯하다. 마침 조망까지 시원스러우니 준비해간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면 된 일이다. 그래봤자 아까 전망바위에서 보았던 것과 똑 같은 풍경이 펼쳐지겠지만 말이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몇 걸음 더 옮기면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감시탑의 철망에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산악인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데 정상석이 새로 세워지지 전까지만 해도 이게 정상석의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골안이(굴암사) 2.4/ 골안이(마을회관) 3.4)가 가리키고 있는 굴암사 방향이다. 길은 무인산불감시탑을 오른편에 끼고 뒤로 나있다.



괴발산(1097.2m)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시작부분에서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서나 잠시 후에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경사 또한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한 능선이 계속된다. 드문드문 바위도 보이나 이 구간의 특징은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 잔치가 열리면서 능선은 또 다른 볼거리로 화려해질 것 같다.



그렇게 10분쯤 내려오면 길이 둘로 나뉜다. 그런데 이정표(골안이(굴암사)2.0/ 정상0.4)에는 괴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권할만한 코스가 아니니 이쯤에서 굴암사로 내려가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정표를 따를 수도 없다. 우리의 하산지점은 굴암사가 아니고 묘련사이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직진하는 이유이다.



능선에는 바위들이 널려있다. 능선을 따라 듬성듬성 박혀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제법 규모가 있는 암릉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제법 쏠쏠한 눈요깃거리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바위들이 하나같이 흰색을 띠고 있다. 누군가 서북쪽 능선이 흰바위로 덮여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나 보다. 그는 또 흰적산이란 지명(地名)의 유래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서북능선의 이런 특성에서 찾고 있었다.




하산을 시작한지 27분쯤 되었을까 두세 평 남짓한 공터 근처에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가 깔려 있는 게 보인다. 왼편으로 진행하라는 표시이나 길의 흔적은 나타나있지 않다. 그 흔한 산악회의 리본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그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답자들의 후기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아무튼 능선을 계속해서 탈 경우에는 괴롭재를 거쳐서 괴발산’(1097.2m)으로 연결된다. 탐방로는 괴롭재에서 굴암사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괴발산 정상을 찍고 무당봉(856.3m)을 거쳐 이목정마을로 내려갈 수도 있다.



잡목을 헤치고 나오자 희미하게나마 산길이 나타난다. 지능선을 따르는 길인데 전문가가 아니면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다. 심마니나 찾아다니는 길로 보면 되겠다. 초심자들은 절대로 삼가야할 코스라는 얘기이다. 그럼 우리 부부처럼 어중간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 정도는 찾아낼 수 있기에 일단 들어서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엄청난 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지능선으로 내려선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자가 뚝 끊겨버린 것이다. 준비해간 표시지를 모두 사용해버렸단다. 거기다 여분의 종이들까지 다 떨어져버렸다니 어쩌겠는가. 이젠 우리끼리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려가다 길이 끊기면 좌우(左右)로 오가며 길을 흔적을 찾아나간다. 산비탈의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좌우를 오가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진행속도가 더디어질 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진행하니 제법 큰 계곡이 떡하니 나타난다. 회장님과 선두대장이었던 정사장에게 전화를 해봐도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이곳이 어디쯤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계곡으로 내려설 수는 없다. 만일 그랬다가는 조난을 당하기 십상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절벽이라도 만나면 대책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옆으로 째는 길이를 늘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잡목들에 의지해가며 200m정도를 어렵게 옮긴 후에야 희미한 산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악전고투를 치루고 난 후에야 진행방향 저만큼에 첫 민가가 나타난다. 지옥 같던 산비탈을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기는 했다. 곰취와 참취 등 각종 산나물들이 아예 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기 전에 10분 정도를 뜯었는데, 우리 부부가 일 년 내내 먹어도 될 정도의 양을 뜯을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아스팔트도로를 따른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오자 묘련사가 나타난다. 전통 지붕을 얹은 절집 한 동과 그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있는 단출한 사찰이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보이기에 들어가 보는 것은 사양키로 한다. 아니 절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약해져가는 요즘의 내 심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년 가까이를 매주 산에 올라 다니면서 문화재관람료를 내온 것만 해도 불만인데, 일부 승려들이 그런 돈을 제 맘대로 쓰고 다닌다는 내용의 보도까지 접했으니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길가에 늘어선 고랭지 채소밭에는 감자꽃이 만개해 있다. 꽃을 따주어야 감자알이 크고 튼실해진다는데도 저렇게 그냥 놔두는 걸 보면 그에 따른 인건비가 만만찮게 드는가 보다. ! 내려오는 길에 멋지게 지어진 전원주택을 만났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보련사 입구에 세워놓은 입간판의 하단에 ‘LT명지벨리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있는 걸로 보아 펜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아스팔트길이 지루해질 즈음 산딸기가 선을 뵌다. 그리고 그 빈도를 점차 늘려간다. 아무리 따먹어도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으니 이건 숫제 화수분이라 표현하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계속해서 재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그 보물단지 말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부질없는 생각 하나. 아무리 따라도 술이 넘치지 않는다는 계영배(戒盈杯)라도 들고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맛있는 산딸기를 안주 삼아 감로주를 마실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산행날머리는 원주-강릉철도 평창터널 진입로 앞(평창군 대화면 신리 87-2)

상큼하기 짝이 없는 찔레꽃 향에 취하고, 산딸기의 달콤함에 입맛 다시며 걷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아까 들머리로 향하는 길에 버스가 지나갔던 지방도(모릿재)가 나오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산자락을 벗어나고 20분 정도 지난 지점이다. 이곳에서 왼쪽은 모릿재터널, 산악회 버스는 반대방향인 대화 방향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원주-강릉철도 평창터널 진입로의 앞에 주차되어 있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5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3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나물을 뜯느라 속도가 떨어진데다 또한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제법 되므로 의미 있는 시간은 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