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太華山, 676.8m)-침곡산(針谷山, 725.4m)

 

산행일 : ‘17. 5. 27()

소재지 :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과 기계면기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한티재먹재태화산서당골재송전탑침곡산배실재덕동마을(산행시간 : 4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산행 내내 제대로 된 바위 하나 볼 수 없었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때문에 특별히 가슴에 담아둘만한 산세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태화산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 또한 보잘 것이 없다. 아니 아예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침곡산이나 태화산 만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이가 드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저 낙동정맥을 하는 사람들이나 찾아오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내 생각도 역시 같다. 일부러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산행들머리는 한티터널(포항시 북구 기계면 가안리 산 57-8)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구간) 서포항 I.C에서 내려와 31번 국도를 타고 청송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낙동정맥의 산줄기를 관통하는 한티터널이 나온다. 터널로 들어가기 전 왼편에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당진-영덕고속도로의 청송 I.C에서 내려와 31번 국도를 거꾸로 타고 이곳으로 오는 방법도 있다. 사실 우리를 실어다 준 버스는 이 후자를 택했다.




공원의 뒤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길이 제법 또렷할 뿐만 아니라 들머리의 나뭇가지에 산악회의 시그널(signal) 몇 개가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8분이 채 안되어 능선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한티재의 높이가 266.3m나 된다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능선에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능선으로 올라선 산길은 일단 숨을 죽인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능선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무덤 한 기를 만난다. 이렇게 능선을 독차지하고 있는 무덤들은 산행을 하는 동안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만큼 이 지역의 산들이 비탈지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묘()를 쓸 만한 자리를 찾다보니 능선까지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의 특징 중 하나라고 봐도 되겠다.



사유지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입산금지안내판도 보인다. 아니 경고판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 임산물(林産物)을 채취할 경우에는 관련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 문구까지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약초는 모르겠지만 재배하는 것도 아닌 산채나 나무열매, 버섯 등까지 채취하지 말라니 이 동네 인심 참으로 야박한 것 같다.



능선에 올라선지 10분이 채 안되어 334m봉에 올라선다. 높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봉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눈여겨 봐두어야 할 것은 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삼각점(기계435, 2004년 재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334m봉에서 5분쯤 내려갔을까 십자안부가 나타난다. 좌우로 난 길의 흔적이 제법 또렷하다. 선답자들의 후기에 나타나고 있는 먹재고갯마루가 아닐까 싶다.




먹재를 지나면서 산길은 서서히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리고 15분 후에는 멋진 전망바위 앞에다 올려놓는다. 비학산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조망처이다. 이곳 말고도 이 부근은 심심찮게 조망이 열린다. 서둘지 말고 조망을 즐기면서 진행해 볼 일이다.





그렇게 20분쯤 더 진행하면 585m봉에 올라선다. 작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석이나 이정표 하나 없다는 얘기이다. 하긴 이름도 없는 이런 봉우리에 정상석이 있을 리가 없다. 조망(眺望) 또한 보잘 것이 없다. 기룡산과 면봉산 등이 시야에 들어오나 잡목들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어 버렸다.




이후로도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정맥(正脈) 산행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오늘 걷고 있는 능선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낙동정맥이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의 구봉산(九峰山, 강원도 태백시)에서 남쪽으로 분기(分岐)하여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서 그 숨을 다하는 총 길이 370의 산줄기이다. 정맥이 품고 있는 주요 산으로는 백병산(白屛山, 1,259m)과 주왕산(周王山, 907m), 단석산(斷石山, 829m), 가지산(加智山, 1,240m), 취서산(鷲棲山, 1,059m), 금정산(金井山, 802m) 등이 있다.



변화가 없는 지루한 산행이 이어진다. 참나무 천지인 능선에 가끔 나타나는 소나무들이 볼거리라면 볼거리일 뿐 특별히 눈에 담을 만한 것은 없다. 그럴 즈음 눈이 확 뜨이는 조망이 펼쳐진다. 기룡산과 보현산, 면봉산 등 경북 내륙의 수많은 산들이 줄을 이루며 첩첩이 쌓여있다.




산길은 가끔은 착한 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능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가끔은 우회(迂迴)를 시키기도 한다는 얘기이다. 특별한 의미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는 게 싫었는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쯤 지났을까 커다란 봉우리 하나가 진행방향에 나타난다. 산길은 곧장 위로 치고 오르지를 않고 왼편으로 향한다. 우회(迂迴)를 시키려나 보다 했더니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비탈진 경사가 부담스러워 갈지()자로 길을 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길가에 밧줄까지 매어 놓았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안전시설이다.




밧줄이 끝났다 싶으면 태화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만이다. 밋밋한 구릉(丘陵) 모양으로 생긴 정상은 산불감시탑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태화산이라고 적은 자연석을 감시탑 아래에 세워놓았을 따름이다. 그 옆에 이정표(한티) 용도의 돌 하나를 더 세우고 높이는 거기에다 적어 넣었다. 정상석으로 삼은 돌의 표면이 좁았던 모양이다. 감시탑 앞에는 서툴게 쌓아올린 케언(cairn)도 보인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이지만 저 돌맹이 하나하나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들이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다.




태화산은 죽장면과 기북면, 그리고 기계면이 맞닿는 삼면 경계 지점으로 오늘 구간에서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산불감시탑이 아닐까 싶다. 망루(望樓)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서쪽에서는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보현산(1,124m)과 배틀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고, 남서쪽으로는 대구와 경산 그리고 영천과 군위를 잇는 팔공산(1,192m)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또한 동으로는 포항 앞바다와 호미곶(虎尾串)이 아스라하다. 한편 남쪽에서는 운주산이 푸근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한티재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31번 국도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침곡산으로 향한다. ‘7시 방향쯤으로 보면 되겠다. 올라왔던 길에서 좌측으로 크게 꺾어 숲길로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이다. 아니 산불감시탑의 뒤편에서 길을 찾으라고 하면 더 알아듣기 쉬울 수도 있겠다. 잠시 평평하던 산길은 허물어져가는 무덤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것도 똑바로 서서는 내려가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가팔라져 버린다.




볼거리가 없다 했더니 야생화까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만난 백선(白鮮, 희고 선명하다는 뜻)’이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부리나케 달려가 카메라에 담고 본다. ‘자래초또는 검화라고도 불리는 백선은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햇볕이 잘 드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흰색 바탕에 엷은 홍색의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 또한 뛰어나며 뿌리껍질은 백선피라고 해서 약용으로 쓰인다. 특히 뿌리를 봉삼(鳳蔘)’ 또는 봉황삼(鳳凰蔘)’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끔은 아래 사진과 같이 노송(老松)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풍경도 만난다. 가도 가도 참나무 일색인 산에서 이런 그림도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지루했을지 모를 일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가까이 되면 안부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맞은편 능선을 1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서낭당이라고 적혀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봉우리 위에 널려 있는 이 돌들은 옛날 이곳을 넘어 다니던 사람들이 쌓아올린 흔적들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염원이 담긴 돌들 또한 이런 모습으로 흩어졌을 게고 말이다.



또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이번에도 역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파르다. 길가에 철쭉이 우거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뭇가지를 잘만 이용하면 몸의 중심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8분 정도를 내려서면 서당골재이다. 서쪽의 감곡리(죽장면)와 동쪽의 용기리(기북면)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인데 요 아래 감곡리 방향에 있는 서당골이란 계곡에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왼편으로 약간 비켜난 곳에 포항 팔도산악회에서 제작한 이정표(침곡산/ 기북면/ 산불초소한티재)가 매달려 있다. 이곳의 해발이 530m인데 침곡산 정상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단다. 그런데 태화산의 지명을 산불초소로 표기해 놓았다. 이 지방에서는 태화산이라는 지명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첨부된 지도에도 태화산이란 지명은 없다.




산길은 맞은편 능선을 향해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 경사가 완만해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서당골재로 내려오던 길이 하도 가팔랐기에 올라가는 길 또한 그만큼이나 가파를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분쯤 오르면 송전탑(送電塔)을 만난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산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하긴 서당골재와 침곡산 정상의 표고(標高) 차이가 200m가까이나 되니 마냥 느긋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다. 거기다 능선상의 모든 봉우리들을 오르지도 않는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봉우리 하나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켜버린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더 오르면 드디어 침곡산(針谷山) 정상이다. 헬기장으로 이용되었음직한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오석(烏石)으로 만든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잡목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참고로 침곡산에는 바늘 침()’자가 들어있다. 다들 산의 생김새가 뾰쪽하게 생겨서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다. 서쪽 아래 죽장면 입암리에서 이 산을 향해 형성된 좁고 긴 바늘 같은 골짜기 일대를 침곡리(針谷里)라 부르고 있어 이에 연유하여 생겨난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선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산의 이름을 사감산(士甘山)’으로 표시하고 있다. 아무튼 낙동정맥에선 당당히 제 이름을 걸고 있는 산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포항 팔도산악회에서 붙여놓은 이정표(덕동수련장성법재/ 산불초소한티재)가 가리키고 있는 덕동수련장 방향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정상석 뒤편에 매달려 있는 리본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이다. 옳은 산길은 이정표 근처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잠시 후 작은 바위봉우리를 지나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면 희미하게나마 좌우로 길이 나뉘는 안부에 이른다. 침곡산 정상에서 30분 거리이다. 하지만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는 계속해서 능선을 따르란다. 그래 오늘은 낙동정맥을 하는 산꾼들을 따라나선 산행이다. 그러니 그들의 일정에 맞춰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게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가끔은 가파르게 내려서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상당히 높게 올라야만 하는 봉우리도 만난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고 대부분의 구간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으면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편으로 나뉘는 길이 또렷한 것을 보면 덕동마을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중간에 오르는 게 약간 부담스러운 봉우리(492.4m) 하나를 넘어야 하지만 대부분은 고도를 낮추어가는 구간이라서 부담은 되지 않는다.



그렇게 15분 남짓 걸으면 드디어 배실재에 내려서게 된다. 침곡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 15분만이다. 배실재는 넓은 안부로 이곳이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중간지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대구 K2산악회에서 내걸었는데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피재까지의 거리가 227.3Km이고 정맥이 그 숨을 다하는 몰운대까지는 223.7Km가 된단다. 그 옆에는 개인이 만든 또 다른 표지판이 걸려있다. 그런데 거리는 피재 212.9Km와 몰운대 219.7Km로 적어 놓았다. 누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벼슬재(士官嶺,490m)는 기북면 오덕리성법리에서 죽장면 가사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전국 지리지인 대동지지(大東地志)’ 경주편에는 관령(官領)으로 기록돼 있으며, 관령은 순우리말인 벼슬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벼슬재, 배실재, 사관령(士官嶺)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요 아래 기북면 오덕리 덕동은 신라때 죽장부곡(竹長部曲)과 성법이부곡(省法伊部曲)이 형성된 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제철과 연관된 철물기구와 무기 생산 공장들이 있었으므로 관리 이외에는 넘어 다니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도 벼슬아치들만 넘어 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참고로 향. . 부곡은 특수 신분계층 즉 왕조에 반하는 사람들의 집단거주지였다. 그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점점 반왕조(反王朝) 정신이 엷어졌다. 처음엔 특수 신분들이라 격리 차원이었고 다음엔 특수 직업군이 모여 있어 정부로서는 관리하는 차원에서 통제를 했던 곳이다.



배실재에서는 덕동마을이 있는 오른편으로 내려선다. 이후 덕동마을까지는 임도(林道)로 연결된다. 널찍한데다 경사까지 거의 없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코스이다.



걷는 게 편하다보니 마음에 여유까지 생겼나보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새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냉큼 다가가 손을 내밀고 본다. 새콤달콤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산행날머리는 덕동마을(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15분 남짓 내려섰을까 산자락을 벗어나면서 저만큼에 덕동(德洞) 마을이 나타난다. ()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생각보다는 너른 들녘에 자리 잡았다. 이어서 15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덕동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아무튼 덕동마을에 이르면 산행은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마을에 이르면 한옥건물들이 즐비하다. 하긴 문화마을이 어디로 가겠는가. 1992년 국가로부터 제15호 문화마을로, 2001년에는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문신 정문부(鄭文孚, 1565~1624)가 종전 후 전주로 돌아가면서, 재산 모두를 손녀사위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 1621~1688)에게 준 것을 계기로 이강이 이곳에다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전미를 자랑하는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북민속자료 제80호인 애은당고택과 제81호인 사우정고택,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43호로 지정된 용계정 등이다. 특히 마을의 맑은 저수지와 계곡 사이에 있는 소나무 숲은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상에 선정된 곳으로, 200년생 은행나무와 160년생 향나무 등 다양한 고목이 자라고 있다. 집성촌 대대로 내려온 유물들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덕동민속전시관(아래 사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단 2개가 보존돼 있다는 독(과학 단지)을 볼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덕연구곡(德淵九曲)’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근처에 있는 덕연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명소를 추려낸 곳들이란다. 1곡은 물이 흐르는 연못이라는 수통연(水通淵), 2곡은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의 막애대(邈埃臺), 3곡은 서천폭포(西川瀑布). 4곡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섬솔밭이고, 5곡은 용계정 부근에 위치한 연어대(鳶魚臺), 6곡은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합류대(合流臺). 7곡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연못이라는 운등연(雲騰淵), 8곡은 용이 누운 바위라는 뜻의 와룡암(臥龍岩), 9곡은 가래같이 생긴 연못이라는 삽연이다. 덕연구곡의 구곡 경관 중 대부분은 명승 용계정과 덕동숲에 포함되는 경승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