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시지 않고요"
아침운동을 수영으로 선택한 탓에 사우나에 들릅니다.
어느정도 땀을 흘려야만 어제 산악회원들과 마신 술의 독을 덜어낼 수 있으니까요.
엎드려 무언갈 줍고 있는 분이 보입니다. 바닥에 모래시계가 깨져있습니다.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줍고 있는 중이랍니다"
나무라듯이 넌지시 던진 말을 난 곧바로 후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려다보며 웃는 그분의 웃음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습니다.
그 웃음에 감염된 나, 곁에 쭈그리고 앉아 유리파편 줍는데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느새, 깨뜨리고도 나 몰라라 그냥 사라진 이의 부끄러움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입구에 구두가 안보이지만 늦게 닦았다고 닥달하지 않습니다.
사우나에 들기 전에 주문해둔 동태찌개도 오늘따라 더 맛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 아닐런지요? 좋은 하루!

 

아차~ 오늘 차를 가져오지 않았네요. 부지런히 통근버스로 향합니다.
오른손에 들린 "Suzanne's Diary for Nicholas"의 마지막장을 넘길 계획입니다.
"사랑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다시 사랑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책이었습니다.

 

감명있게 읽었던 부분을 옮겨봅니다.

 

인생은 양손으로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게임 같은 것이란다.

그 다섯 개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자기 자신이야.

우리는 끊임없이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하는데,

그중에서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서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르지.

하지만 건강, 친구, 가족, 자기 자신이라는 나머지 네개의 공은 유리공이란다.

그래서 한번 떨어뜨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흠집이 생기거나 금이 가거나,

아니면 완전히 깨져버리지.

그 다섯 개의 공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거야.

 

코카콜라의 사장이 신년사로 직원들에게 했던 말일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에 평소에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그말을 따랐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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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본다!
푸르름이 아름다움에 겨워 쪽빛으로 기우나보다.

 

다시 나를 본다.
아무리 봐도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은 외양이다.
주름진 바지, 하이얀 셔츠....

 

어?
그러나 어딘가 빈듯하다.

 

휘휘~~
주위를 둘러본다.
뭐 떨어뜨린 거 없나?
어디에도 빈곳에 맞는 형상은 없다.

 

갑자기 찾음이 무언지를 잊는다.
훠어이~ 훠어이~ 다시 두리번거리다
방황끝에 언듯 머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다가온다.

 

갑자기 가슴이 가벼워진듯 하다.
아~~
내 심장 한쪽이 없구나.
그 빈곳을 향해 아픔의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은 저리도 아름답게 푸르른데
내가슴은 아픔에 멍이들어 푸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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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화면좋고~~~, 거기다 인켈에 연결시킨 음향이 더욱 끝내준다.
삼부자가 같이 비디오 보는게 한 반년만이나? 이유는 내가 비디오 보기 보다는 영화관에 가서 관람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고, 오늘도 극장으로 가려고 했지만 동지를 못 구했기 때문..., 별 수 없이 애들에게 부탁해서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 틀어놓고 참외 몇개 깍아 먹으며 일본영화를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많다.
"아들아! 요새 잘나가는 비디오가 무어냐? 하나 빌려다 줄래~~"
"왜요? 테이프 있어도 비디오 못 볼건데요. 지난해말에 비디오 고장나서 이용 안하고 있거든요"
"그럼 서비스센터에 연락해서 고치지 그랬냐?"
"한계에 이르렀으니 그만 새걸로 바꾸래요. 언젠가 아빠한테 말씀드린걸로 아는데요?"
 
내가 생각해도 내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언젠가 가족회의에서 새걸로 바꿔 달라기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바꾸자고 미루었던 기억이 난다. 하기야 86년에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있던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거니까 참 오래도 사용했고, 이제 버릴 때도 되었다.

 

원래부터 우리집 내력이 한번 이야기하면 끝이지 두번 세번 리바이벌 하지 않는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동안 비디오 보고싶어서 어떻게 참았누??????

 

부랴부랴 회사에 전화에서 해당산업 담당자에게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니, 삼성전자 전무님을 자기보다 더 잘 알면서 뭘 묻고 난리냐고 대충 구입하란다. 그렇다고 비디오 하나 사려고 전화하기도 그렇고 조금이나마 절약하려 했더니만 안 따라주네?

 

두 애를 보디가드 삼아 난생 처음으로 강변역의 테크노마트로 가본다.
혼자가도 되겠지만 두애를 대리고 가는 이유는 가격 흥정의 진미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삼층 가전관에 들어서 아무 상점이나 들어가 본다. 비디오 카탈로그를 구경하면서 기능과 가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우리집은 오디오에 비디오를 연결하여 듣기 때문에 4헤드는 안되고 6헤드 이상이어야 한다. 이짓을 최소한 3곳을 돌며 듣다보면 대충 기능과 가격이 연결된다.
 
다음 상점부터는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내가 주도권을 갖고 기능과 가격에 대해 묻는다. 그러고 나서는 이왕에 테크노 마트에 온김에 다른 상점의 가격도 한번 알아보고 구입을 결정하겠다고 하면 첫번째 상점 내지 두번째 상점에서 자기가 원하는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상점마다 꼭 받을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가격은 대충 비슷하기 때문이다.

 

목표대로 처음 제시가격보다 20%를 할인해서 구입한 나는 기분이 좋았지만 우리 애들은 지겨운 눈초리다. 피자집에 들러 "내가 필요한 물건을 내가 원하는 가격에 구입하고 남는 돈으로 이렇게 피자 사먹는 기분도 괜찮지 않냐?"는 내말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흥정하는 아빠가 자기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나?

 

그래도 "앞으로 물건 구입할때 시도는 해보겠다"는 애들의 말은 한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가 될 것이니 오늘 거둔 수확(현장학습)이라면 수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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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덕분에 강남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쩌다보니 오늘은 나 또한 친구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본다.

 

"야, 여기 삼성동 니가 자주 가는 음식점인데 빨리 나온나"
"이시간에 무슨 음식점?"
"얌마 술마시자는게 아니고 차를 가져가야하는데 술이 취해서 그러니 차좀 운전해주라"
"내일 아침에 가져가면 될거아냐?"
"내일아침 일찍 쓸일이 있어 그러니까, 빨랑 결정해~"
어쭈구리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일쎄?

 

어제저녁 열두시가 다된 시간...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데 갑자기 친구의 호출이다
동료 교수들과의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셔 운전을 못하겠으니 대리운전 해달란다.
이게 왜 남의 서방한테 대리운전까지 명령하고 난리누?

 

귀찮은 마음에 내일아침 찾아가라고 해봤지만,
오늘 이른 아침에 제자들과 지방 탐사나가야 한다나?
그런 여자가 술은 왜 많이 마셔가지구 남까지 피곤하게 하누?

허지만, 두고두고 씹힐 일이 걱정되어
부랴부랴 택시로 도착하니 흐트러진 모습이 꽤나 가관이다.

 

하여튼 처녀혼자 사는 집에
흐트러진 여자 부축해서 들어가면 주위사람들에게 눈치보일까봐 우리 집으로 호송,
집에 들어오자 마자 내 침대로 직행해버리는게, 인사하는 우리 애들도 안보이는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그리도 잘 챙기더니만...

 

나에게는 이때부터가 문제다.
잠이야 거실 현관에서 자면 그만이지만, 입은 채로 쓰러진 그녀의 옷을 벗겨줘 말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시트만 덮어주고 거실로 나와버린다.
옷이야 구겨지면 세탁소 보내면 되지만, 아침에 볼 의심의 눈초리는 끔찍하니까

 

거실에서 불편한 잠을 청했더니 설잠 탓에 눈을 뜨니 여섯시가 채 안됐다.

이왕에 일어난김에 술국으로 북어국을 준비해본다.
술 좋아하던 애들 엄마 내가 끓여주는 북어국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보글거리는 국물 한입 맛보며 와이프 얼굴을 떠올리는건 북어국이 너무 맛있어선가?

 

둘이만 앉을 식탁이 쓸쓸할 것 같아 아이들까지 깨워 둘러앉은 아침 식탁은
완존히 옛날 우리집이다, 다만 아내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이모 주말에 데이트 약속 없으면 우리랑 놀러가자"
이 짜슥들이 내가 가자고 하면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내빼더니만
친구보고 놀러가자고 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성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얌마들아 미안하지만 너희들과 놀시간 없단다.

 

오피스텔에 가서 짐 챙겨 출발해야 한다는 친구를 현관에서 배웅하고 돌아서니
둘째가 메모함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고 보니 요사이 퇴근이 항상 늦어서 애들과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난 벽에 걸린 메모함에서 애들의 意見을 꺼낸다.

"아빠, 내일은 학교 안나가니 혼자 가시옵소서"

달리 할 일도 없어 곧바로 출근해보니 여덟시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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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걱정거리가 해소되는 안도의 한숨소리다.

 

어제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미안함이 가신 탓인지 무더움 속에서도 아침하늘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늘 둘째가 학교에서 2박3일 일정으로 현장체험 가는 날이라고 김밥을 쌓아달라고 하는데, 다른건 다 해줄 수 있지만 김밥은 사실 말지를 모른다.

 

어제 저녁내내 애를 달래어 김밥대신 햄버거와 음료수로 대체시켜 주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의 부탁을 못들어주는 미안함에 가슴이 아팠던게 사실이다.

 

아침일찍 둘째와 이것 저것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불쑥 찾아온 친구가 보퉁이 하나를 내밀고는 아침 강의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가버린다.

 

부랴부랴 보퉁이를 풀어보니 배추 절이김치, 총각김치, 소고기조림 등 다양하게도 들어있다.
마침 김치가 다 떨어져 오늘쯤 킴스에 다녀오려 했는데 어찌그리 남의 사정을 잘알고 챙겨왔을까? 이제 이삼주일은 반찬걱정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것 같다.

 

거기다 나를 더욱 즐겁게 한건 김밥이 곱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잘 다녀오라는 메모와 함께...


"얌마~~너"
"그래요. 이모에게 내가 전화했어요. 다른애들은 다 김밥 싸오는데 나만 햄버거 갖고 가기가 뭐해서요"
둘째에게 눈을 흘기는데 말 끝나기도 전에 자기방으로 휭하니 들어가며 하는 말이다.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대모산만 바라보다 아이방을 찾는다.

 

"그래 잘했다. 내가 먼저 부탁해서라도 챙겨주었어야 하는건데 미안하다. 햄버거가 정 싫으면 어제저녁에 얘기하지 그랬냐?"
"아빠 미안해요. 참아보려 했는데 갑자기 이모가 생각나서 그냥 한번 전화해봤는데 부탁을 들어주더군요"

 

아이가 원한것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 휭하니 찬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다.

찌부둥한 기분속에서도 친구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껴본다.

역시 나는 친구하나는 끝내주게 잘 두었나보다. 이런 친구를 나의 곁에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 본다.

 

덕분에 아침을 내가 좋아하는 밥대신 햄버거에 우유로 때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아침식사라면 날마다 햄버로 때워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출근길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왜이리 아름답게만 보이는걸까?

 

--------------------------------------------------------------

 

몇년도 더 지난 옛글이 눈에 띄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집에서 머물고 간 날 아침에...

 

싸디싼 도야지 껍데기집이었지만 내 이웃들의 삶이 있어 좋았고,

비록 맑지 않은 음질이지만 애써 들러주는 축가가 있어 좋았던 호프집...

 

어렵게 선물한 진주목걸이가 잘 어울린다는

함께하는 이들의 축복에 수줍은 미소로 답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있어 행복한 나,

이 행복, 천년만년 고이 간직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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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간담회가 있어 르네상스호텔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어찌나 무덥던지 한 여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방송에서 말하는 초여름이 아닌 무르익은 여름을....

 

작년 여름

강원도에 있는 우리나라 최후의 비림...

내린천을 다녀와서 적어본 글을 올려봅니다.

 

 

山紫水明
계곡 물이 푸르니 산도 푸릅니다.
내 가슴 어느새 배어든 푸른 물이 오래오래 빠지나가지 않았으면...

 

그 푸르름에 취해 그냥 뛰어들고 봅니다.
퐁당 퐁당... 재주 한번 넘다 물 한모금 얼떨결에 넘기네요.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이렇게 물빛이 푸르른데도요.

 

퐁당거리는 이나 구경하는 이...
다 같이 와르르까르르 웃으니 계곡 나뭇잎들도 덩달아 푸르르떱니다.
산 좋고 물 좋고 山水간에 나도 좋고 앞산 마루 발 걸치고 한 이틀 푹 쉬고싶네요.

 

이끼낀 바위 미끄러워 퐁당...
어찌 나 혼자만 멍칠소냐 사방에 물 사래를 쳐 댑니다.
그리고 사이좋게 퐁당거림은 우린 산사람들이니까요.

 

어!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저 처자는 누굴까요?
한 가족임을 증명하는 양 끝까지 물속에 쳐 넣고 마는군요.

다시 한번 와르르까르르 하늘 맴돌던 새한마리 궁금함 못이기고 기웃거려봅니다.
나래 너머 검푸른 하늘엔 깃털구름 한점 둥둥 떠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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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추억

2004. 4. 10. 08:16

휴~~~ 오늘의 일과 끝
나를 생각코 찾아와 주었겠지만 한꺼번에 몰려온 덕분에 번거롭고 짜증스럽기도 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다들 돌아가고 나니 주위의 썰렁함에 조금은 외롭다. 애들이 돌아오면 괜찮아지겠지.

 

오늘은 병원에 들러야 하는 날. 하지만 집안식구들이 찾아온다니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 수 밖에 없는 날이다. 오늘을 대비하여 찬장과 냉장고는 어제 깨끗히 청소해 놓았고, 오늘은 레인지와 집안 청소만 하면 된다.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땀이 목의 상처부위로 흘러들까 봐 조심스럽다. 왜 굳이 찾아온다고 하여 사람을 고생시키는 건지 원...

 

그냥 두면 찾아오는 어머님이나 여동생이 해 줄 것을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와이프 때문이다. 집안의 거의 모든 구성원은 집사람을 많이도 싫어하고,. 특히 여동생은 밥먹듯이 헤어지라고 종용할 정도이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생을 나무라지 않는 부모님도 반동의하고 계시다는 증거일 게다. 하긴 우리 부모님과 여동생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공부 더한다고 멀쩡한 남편과 자식을 놔두고 떠난 내 집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게 정상일 거다.

 

이번에 입원도 모두다 집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난리들인데, 집에 찾아와 구질구질한 꼴을 보면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어제부터 미리미리 청소를 하여왔고 그 마무리를 오늘 아침에 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집사람을 향한 나의 조그마한 정성과 사랑을 집사람은 짐작이나 할런지 모르겠다.

 

10시에 예약이 되어있기에 서서히 걸어서 병원으로 향한다. 아침공기는 상쾌하더니만 비가 내리는 탓인지 후덥지근한게 별로다.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를 걷는데도 땀이 흐르니 말이다.

 

다행이 예약되어 있기에 기다림 없이 곧바로 진찰을 받을 수 있다. 담당의사가 수술을 집도했고 그동안 늘 관심을 갖고 회복의 진도를 관찰하던 의사분이다.
모든게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단다, 아물지 않은 목부위를 응급조치후 일주일 후를 기약하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웬지 상쾌한 기분이 드는건 회복속도가 정상이라는 의사의 말 때문일까?

 

집에 돌아오니 이미 부모님은 도착해 계시고 여동생과 작은 아버님댁 식구들은 오고 있는 중이란다. 역시 내가 미리미리 준비했던게 효과를 본다. 식구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다 둘러보고난 뒤에도 아무말이 없다. 단지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땡땡이치는 여동생의 불만에 찬 목소리 "어이그, 이러고 사니 여자가 맘놓고 집을 떠나지... 아무것도 못해야 혹여 굶어 죽을까봐 떠날 생각을 못할거 아냐?"

그래도 깨끗이 해놓길 잘했지, 조금만 어질러 졌어봐라 세상에 둘도 없는 "모진女!"라고 길길이 뛰다 못해 나중에는 결심해라로 진전했을걸... 안봐도 안다 알어!!

 

하여튼 국수 한뭉치를 다 삶아서 어머님이 준비해 오신 콩국물에 말아 먹는데, 오랫만에 먹어보는 별미의 맛은 둘째치고 시원함이 먼저 와 닿는걸 보니 여름이 오기는 왔나 보다.

 

식후에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 죽이는데 대부분이 내 건강이야기이고 그러다보니 집사람 주위를 맴돌다 끝끝내 집사람 흉으로 귀결..., 그런데 이상한 건 처음에는 집사람 흉보는 것도 들을만하고 또 같이 박자도 맞춰주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옹호로 변하게 되고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집사람을 대변하게 되는 것은 집사람에 대한 내 사랑의 발로일까?

 

그래도 다행이 가족들간의 대화이고, 그러다 보니 모든 대화가 서로의 위함을 주재로 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이 넘치는 귀결을 맺는다.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건 또 혼자서 애들 뒷바라지하며 고생할 나를 생각하는 가족들의 염려탓일거다. 그러나 "염려 놓으시옵소서, 저는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또 보내고 있으니 모든 일이 만사형통일 것이옵니다." 

 

사랑의 마음도 애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아픈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들어 두고두고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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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花信

2004. 4. 9. 08:57

오후 내내 얼굴에 기쁜 내색을 지울 수 없었는지
직원들로부터 무슨 좋은 일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아무렴 좋아하는 분으로부터 반가운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도 부산의 동백꽃잎으로 마든 카드에 꽃 향을 가득 담아
 
95년 지방에 있는 기관의 책임자로 잠깐동안 근무할 때
그분을 처음 뵈었으니 우리가 알게된지도 벌써 8년이 흘렀다.
꽃향속에서 처음 만났고, 꽃향이 그리울 때
그분으로부터 꽃소식을 받은걸 보니 나와는 꽤나 인연이 깊나보다.


그분을 처음 뵌 것은 4월의 어느 나른한 봄날 오후...
따스한 봄기운 탓인지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창문을 열고
바람결에 실려온 벚꽃 향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있는데
(그 도시는 꽃 이름의 축제가 열릴 정도로 벚꽃이 유명한 도시고
내가 근무하던 청사가 꽃의 한복판에 위치한 덕분에,
축제기간 내내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도로나, 청사 안에 있는 공원을
빌려달라는 민원 때문에 골치를 썩힐 정도로 꽃속에 묻힌 곳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왠 아담하고 예쁘장한 수녀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공업단지에서 선교행사(종교서적을 판매하는 등의 행사)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신 수녀님은 사무실 분위기에 낯설은지 꽤나 어려워하는 눈치인데,
마침 내가 믿는 종교가 천주교고 하시려는 사업도 좋은 것 같아
행사기간 동안 조그만 편의를 보아 드린 일이 있었다.

 

항시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바로 발령이 났기에 금방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내시는지 매년 부서를 옮기는데도 성탄때만 되면
예쁜 다이어리 몇권과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엽서를 보내주셨다.
해외선교를 하시는 중에도 빠뜨리지 않고...

거기에 비해 나는 해외선교를 위한 자료를 얻으러 찾아오신 수녀님을
회의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직원을 통해 자료만 전달했을 뿐인데...

 

그 수녀님이 올 1월말에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고
부임지가 용두산공원 근처에 있어 매일 공원에서 운동을 하신단다.

용두산 공원에 동백꽃이 많이 피어있는지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혼자보기 아깝다 하시며
그 꽃잎으로 예쁜 카드를 만들어 부산의 꽃소식을 전해주신 것이다.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비는 축원과 함께...

 

"이러한 정성이 담긴 편지 받아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것도 하느님이 보장하는 처녀로부터!"
오후 내내 직원들에게 카드를 보여주며 자랑한 말이다

 

요사이 카페에 들러보면 온통 꽃소식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는데
나도 드디어 남쪽나라의 꽃내음을 직접 맡았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 손가?
그러니 싱글벙글 할 수 밖에

 

귀한 엽서 서랍속 깊이 넣어두고 오래도록 곱게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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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런닝머신 위...
10분이 채 안됐는데도 입에서 단내가 나는 건
어쩌면 엊저녁 술이 조금 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말도 없이 쏟아진 일속에서도
군소리 없이 따라준 직원들이 고마운데다
한 이틀 여유로운 일정에 오는 술을 뿌리치지 못했나보다.

 

속도를 12마일로 올려본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방차 사이렌소리...

 

어!
가스레인지에 찌개를 올려놓은 것 같은데?
한걸음에 라커룸으로 뛰어올라 헨폰부터 때려본다.

 

"아빠! 나 죽이려고 했지?"
설마하는 내 귓가를 때리는 퉁명스런 목소리...
아까의 그 소방차는 우리 집을 향하는 게 맞았다.
현관으로 새나오는 연기를 본 옆집의 신고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사이 아침을 건너뛰는 내가
애라도 끼니 거를까 찌개를 덥혀주려다 깜빡한건데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이 자슥 부자지간을 끊어버려...?

 

그래도 참는 건
난 내 자식을 믿어야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믿기 위해서라도...

 

"아빠! 미안해요."
"아깐 놀란 탓에 제가 함부로 말했나봐요."
사무실 도착전에 걸려온 헨폰이 그 믿음을 증명해줬다.

 

"역시 난 애들을 高貴하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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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화합

2004. 4. 2. 08:47

조그마한 여유라도 갖고 살아가야 하건만
왜 하루하루를 그리도 정신없이 보내야 하는지...
엉겁결에 둘째의 생일까지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휘몰아치던 일들이 대충 마무리되어지고
오랜만에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가 주위를 돌아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둘째의 빈자리를 들여다보며 둘째와의 추억을 찾아 헤맨다.


모처럼의 주말인데 할 일이 좀 많을 것 같다.
지난 일요일부터 시작된 야근에 집안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고,
아침식탁에서나 볼 수 밖에 없던 애들과도 대화가 거의 없었다

 

우선 집안 대청소, 왕창 밀린 빨래도 하구(이건 다릴 일이 더 문젠데?),
아! 철지난 겨울옷도 봄옷으로 바꾸어 걸어 놓아야 겠다.

 

모처럼의 주말 식탁을 위해 찌개 끓이고, 봄나물도 좀 무쳐봐야겠지?
킴스에 들러 인스탄트 사다 냉장고도 채워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은 애들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옛말에 머리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조상님의 음덕 때문인지
하느님으로부터 잘 발달된 잔머리를 물려 받을 수 있었다.

 

할 일은 수두룩하고 내 주특기인 잔머리를 굴려봐?
기껏해야 사랑스런 우리 아들놈들 고생시키는 방법 연구지만....

 

우리 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어지?
다리미질은 안되고, 털털하니 옷 정리하기도 안되겠지?
애들이 끓인 찌개라야 맛도 별로일테고
시장보기? 아니 그것도 내 카드로 결재해야하니 안되고.
막상 애들 시킬만한게 별로 없다.

 

별 수 없이 마음놓고 시킬 수 있는 청소나 맏기기로 결정.
그러나 요놈들도 하기 싫어할게 뻔하니 작전이 필요하다.
우선 해야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여
가족회의에서 발표하면서 삼인의 공동배분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능력이 별로 없는 요놈들
(우리집은 정당한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없을 땐 자동적으로
다음주 설거지 당번으로 정해짐)
내가 맏길려고 하는 일을 서로 하겠다고 나서게 되니
그저 나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 주면 된다.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청소를 넘겨서 좋고,
설거지하기 싫어하는 우리 애들은 자기가 원하는 일은 해서 좋고
가족들 화합을 잘 유도하는 나는 역시 머리가 너무 좋은가 보다

 

일단 구상은 끝났고 이제는 즐거운 주말을 맞이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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