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산(兀山, 858m)

 

산행일 : ‘12. 9. 14(일)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산행코스 : 올산리→채석장→올산→히프바위→719봉→떡바위→512봉→사방댐→두꺼비 바위→미노리(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우뚝할 올(兀)자를 쓰고 있는 올산(兀山)은 그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변의 큰 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우뚝 솟아있다. 소백산과 황장산, 도락산 등 주변의 큰 산에 가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큰 산에 못지않게 골짜기가 깊고 산세(山勢)가 웅장하다. 특히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이 즐비한 능선은 주변의 소나무들과 어우러지며 멋진 경관(景觀)을 연출해 낸다.

 

 

산행들머리는 덧고개

중앙고속도로 단양 I.C를 빠져나와 장림사거리(대강면소재지)에서 좌회전, 927지방도를 따라 예천읍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사인암과 미노리를 거쳐 산행들머리인 올산리에 이르게 된다. 올산리와 덕촌리의 경계인 덧고개의 고갯마루에는 올산마을을 자랑하는 내용이 적힌 ‘마을 표지석’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산행들머리는 마을 표지석에서 덕촌리 방향으로 100m쯤 걸어 내려가는 곳에서 열린다. 북서쪽 방향에 산행안내판(案內板)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들머리 근처의 널따란 분지(盆地)는 가을걷이가 끝난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여름철이면 이곳 주민들은 주산물(主産物)인 고랭지채소와 한약재가 가득할 것이다.

 

 

 

들머리 입구에 세워진 산행안내판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산행코스와 거리 등이 표시되어 있는데, 올산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안내판이기 때문이다. 올산은 행정당국(行政當局)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이 드는 산이다. 안전로프 외에는 등산객을 위한 편의시설(便宜施設)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앞에 보이는 황정산의 유명세(有名稅)에 눌린 탓에 찾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올산리는 고도(高度)가 600m 가까이 되는 높은 구릉(丘陵)지대, 올산 정상의 높이가 858m이니 200m 남짓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거기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1.5km이니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가 있다. 얼렁뚱땅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공으로 먹는’ 산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도가 낮은 미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다운 산행을 해보려는 것이겠지만, 올산의 등산로가 마사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미노리를 산행들머리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판을 뒤로 하고 산으로 들어선다. 잡초(雜草)로 우거진 산길은 의외로 널따랗다. 왜 그렇게 널따란지는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들머리에서 15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채석장(採石場) 터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비록 폐쇄(閉鎖)되었지만 옛날에는 번성했을 것이고, 당시에 이곳에서 캐낸 석재(石材)를 옮기려면 당연히 널따란 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채석장터를 지나면서 산길을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채석장터에서 왼편에 보이는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산의 사면(斜面)을 짧게 치고 오르면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오름길이 비록 가파르지만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르는 길 내내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20분이 채 못 되어 정상에 이르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물(風物)이 갑자기 변한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라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참나무 일색이던 주변의 나무들이 소나무들로 바뀌어있는 것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왼편에 숲이 뚫려있는 곳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어가 보자. 눈앞에 황정산이 널따랗게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壯觀)이다.

 

 

 

 

서너 평이나 됨직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하다못해 등산객 몇 명이라도 보이련만 그마저도 없이 텅 비어있다. 정상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전혀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데다가 주위 풍물(風物)까지도 보잘 것이 없기 때문인가 보다.

 

 

 

정상에서 미노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무척 가파르다. 바닥이 마사토로 이루어져 있어 무척 미끄럽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안전(安全)을 위해 곳곳에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산길은 어느 정도 고도를 낮추다가 평평한 바윗길을 만들어내면서 멋진 예술품(藝術品) 하나를 조각(彫刻)해 놓았다. 바로 ‘히프 바위’이다. 여성의 탐스런 엉덩이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다른 형상(形象)으로 다가오니 문제다. 내 눈에는 여성의 탐스런 엉덩이가 앉기에 안성맞춤인 말안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히프바위를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진행방향에 우람하게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가 보이는데, 오른편이 거대한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해골바위라고 부른다. 절벽 방향으로 숭숭 뚫려있는 구멍들이 해골과 흡사하게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골바위에서는 시원스럽게 조망(眺望)이 트인다. 왼편에는 황정산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올산의 북서릉과 그 뒤의 덕절산이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 분지골은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으로 한창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남쪽 저 멀리에 보이는 산군(山郡)들은 아마 선미봉과 수리봉 등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만들어내고 있는 마룻금일 것이다.

 

 

 

 

 

해골바위를 지나면 왼쪽 아래가 수십 길의 단애(斷崖)로 이루어진 절벽지대를 가로질러야 한다. 굵은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이번에는 왼편 아래가 아찔한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바위벽의 허리를 횡단하여만 한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구간이나 다행히 길이가 짧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횡단구간이 끝나면 곧이어 가파른 내리막 바윗길이 기다리지만 이것 역시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지대가 끝나면 산길은 흙길로 변하면서 숲속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따라 10분 남짓 걷다보면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왼편은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아마 송이버섯 채취(採取)기간이어서 인가 보다. 오른편 길로 접어들어 5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또 다시 길이 나뉜다. 오른편에 분지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나, 이번에도 역시 길을 막아놓았다. 거기다 더해 ‘산약초재배지’이니 출입할 경우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겁까지 주고 있다.

 

 

 

 

 

분지골 갈림길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바위 아래를 우회(迂廻)시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밧줄을 이용해 위로 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아무런 안전장치의 도움 없이 세미 클라이밍(semi-climbing)만으로 올라야 한다. 바윗길에서 몸을 부대끼며 10분 남짓 기어오르면 드디어 719봉 정상이다. 719봉의 능선은 바위들과 노송(老松)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멋진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719봉의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719봉을 급하게 내려서다보면 진행방향 저 멀리에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하여 사람들이 떡바위라고 부르는 바위이고, 저 바위 아래에는 있는 자그마한 바위굴(해산굴)로 인해 산부인과바위로도 불리고 있다. 바위 아래에 이르면 거대한 2개의 바위 사이로 길이 나있고, 사이길이 끝날 무렵에 오른편에 자그마한 구멍(바위굴) 하나가 보인다. 구멍은 뚱뚱한 사람들은 애당초부터 통과가 불가능하고, 비만(肥滿)이 아닌 사람들일지라도 배낭을 벗지 않고서는 결코 통과할 수가 없을 만큼 자그마하다.

 

 

 

 

 

모태(母胎) 안의 아기가 어머니의 산도(産道, birth canal)를 빠져나올 때가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몸짓이 애처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굴을 해산굴이라고도 부른다.

 

 

 

해산굴을 빠져나오면 45도 각도를 이룬 침니가 나온다. 사람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느라고 정신들이 없다. 바위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실루엣(silhouette)처럼 나타나는 사람의 형상이 의외로 생경(生梗)스럽기 때문이다.

 

 

 

침니를 지나면 분재(盆栽) 같은 노송(老松)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위능선이다. 잠깐 등산로를 벗어나 떡바위 위로 올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면 그 보상(補償)으로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떡바위 꼭대기에 오르려면 왼쪽으로 자연석이 길게 뻗어나간 바위 끝머리에 있는 뜀바위를 건너야 된다. 수십 평 넓이에 사방이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떡바위 정상에서는 환상적인 조망이 펼쳐진다. 황정산과 도락산은 광활(廣闊)하고, 건너편에 보이는 채석장까지도 멋스럽게 다가온다

 

 

 

 

 

 

떡바위를 지나서도 산길은 바윗길과 흙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바위봉우리인 553봉을 넘으면서 바위틈에서 누운 채로 살아가고 있는 명품(名品)소나무도 바라보고, 주변 멋진 풍광(風光)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암봉인 512봉에 이르게 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암릉에서 한껏 스릴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좌우(座右)로 시원스럽게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덕절산과 도락산, 황정산, 수리봉 등이 조망되고 왼쪽 어깨 너머로 흰봉산과 오른쪽으로 도솔봉에서 묘적봉, 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시원스럽다. 짜릿한 스릴에 더해 아름다운 조망까지 더해지니 산행의 즐거움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512봉에서 분지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512봉이 바위로 이루어진 탓인지 산길도 바윗길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금도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고, 암릉에서 느낄 수 있는 짭짤한 재미만 즐기면 될 일이다. 계단과 로프 등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안전(安全)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바윗길이 끝나면 또 다시 산길은 마사토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지골에 만들어 놓은 사방댐에 내려서게 된다.

 

 

 

분지골 사방댐 위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시멘트포장 농로(農路)이다. 농로의 건너편은 과수원(果樹園), 몇 그루에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매달려 있는데, 그 알이 굵고 실하다. 몇 개 구입해볼까 해서 주인장에게 말을 건넸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충청도에 산다고 해서 모두 다 양반들은 아닌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미노교

사방댐에서 산행이 종료되는 미노교까지는 대략 1Km 정도,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진행방향에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미노리가 자랑하는 명물(名物)이자 수호신인 두꺼비바위로서 올산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꺼비바위는 측면에서 보는 것보다 정면에서 봤을 때 두꺼비의 형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명품바위를 더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바위 위에 오롯이 앉아있는 분재(盆栽) 같은 한 그루의 소나무이다.

 

 

 

 

 

 

금수산 신선봉(845m)-미인봉(저승봉, 596m)

 

산행일 : ‘12. 9. 23(일)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과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갑오재→단백봉→신선봉→학봉→미인봉→조가리봉→영아치(산행시간 : 4시간 5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신선봉 능선’은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900m봉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향으로 뻗어 내려간 약 7㎞의 능선을 말한다. 조가리봉, 학봉, 미인봉, 신선봉 등 4개의 봉우리로 이루진 능선은 가파른 암벽(巖壁) 곳곳에 분재(盆栽)처럼 소나무가 자라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그뿐만 아니라 조망(眺望)까지 뛰어나기 때문에 사시사철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리아스(rias)식 청풍호반(湖畔)과 그 너머에 헌걸차게 솟아오른 월악산이 잘 조망되는 등, 머무르는 곳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가 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갑오고개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를 빠져나와 청풍으로 이어지는 82번 지방도를 타고 들어가면 금성면소재지(面所在地)를 지나 청풍호반(湖畔)에 이르게 된다. 청풍호(湖)를 오른편에 끼고 계속해서 82번 지방도를 달리다가 청풍대교를 건너기 전에 왼편에 보이는 지방도(地方道 : 학현소야로)로 방향을 바꾸어 들어가면, 학현리에서 소야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갑오고개이다.

 

 

 

제천시(청풍면 학련리)와 단양군(적성면 소야리)의 경계인 갑오고개에서 금수산 방향의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등산로 입구에 이정표(900m봉 2.9Km, 신선봉 3.9Km)와 ‘산악 마라톤’코스 안내판(案內板)이 있으니 들머리를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물론 고갯마루에서 반대편으로 진행할 경우 동산이 나오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문 탓인지 등산로의 흔적(痕迹)이 희미하다. 들머리에는 이정표 외에도 인근 마을주민들이 걸어놓은 ‘입산금지’라는 플랜카드가 보인다. 이곳이 송이버섯 산지(産地)로 알고 있는데 아마 버섯 채취(採取)를 하지 말라는 얘기인 모양이다. 그러나 경고(警告)에도 불구하고 버섯을 찾아 능선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보기에 좋지 않았다.

 

 

 

 

갑오고개에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아무런 특징이 없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의 울창하게 우거진 참나무 숲으로 인해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을뿐더러 별다른 볼거리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능선은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오르내리면서 꾸준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러나 가파르게 치고 오르지는 않기 때문에 오르는데 크게 부담을 주지 않아 다행이다. 금수산이 바위산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바윗길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흙길이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자그마한 바위절벽(絶壁)이라도 가로막을라치면 어김없이 우회(迂廻)를 시키면서 흙길을 만들어낸다. 무심코 걷다보니 '용바위봉(755m)‘을 지나쳐버렸다. 정상표지석도 없을뿐더러, 특별한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밋밋한 능선이다 보니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하긴 신경을 썼다고 하더라도 알아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900m까지 오르는 동안 딱 한번 울창한 참나무 숲이 일시적으로 트이면서 오른편에 ‘동산’의 부드러운 능선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참나무 숲 아래로 난 산길을 1시간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단백봉으로 불리는 900m봉이다. 단백봉은 봉우리라고 불리기에는 어설플 정도로 평범함 그 자체이다. 능선에서 약간 솟아 오른 지점으로 이해하면 빠를 것이다.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신선봉 1.0Km/ 갑오고개 2.9Km/ 금수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정표에 금수산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만나게 되는 이정표들이 산악마라톤을 위해 설치한 모양이고, 금수산 정상은 마라톤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단백봉에서 신선봉까지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바위 하나 보이지 않는 흙길이다 보니, 길가에 보이는 풀들조차 마치 융단처럼 부드러울 정도이다. 등산로 주변은 단백봉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때문에 조망(眺望)도 일절 터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단백봉에서 신선봉까지는 불과 1Km,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신선봉 정상(이정표 : 미인봉 4.7Km/ 상학현 3.5Km/ 900m봉 1.0Km)도 단백봉과 마찬가지로 능선 상에서 뽈록하니 솟아오른 자그마한 봉우리일 따름이다. 봉우리 주변의 참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 것도 매 일반이다. 다만 정상표지석이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것이 단백봉보다 조금 더 품위(品位) 있게 보이고, 그 옆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탑(石塔)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 단백봉과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선봉이란 산 이름이 많다. 이는 도교(道敎)적인 신선사상(神仙思想)이 우리네 삶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신선(神仙)이 노닐 정도로 경관(景觀)이 좋다고 해서 ‘神仙峰’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이곳 금수산의 신선봉은 신선들이 놀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신선봉에서 학봉까지 가는 등산로도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참나무 숲을 뚫고 800m 정도 걸으면 왼편의 참나무 가지사이로 청풍호가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500m쯤 더 걸으면 시야(視野)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터지는 곳에 전망대(展望臺)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몽환적(夢幻的)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사방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들 아래에 리아스식 해안(海岸)으로 이루어진 비취(翡翠)색으로 빛나는 호수(湖水)가 고요히 앉아있다. 신선봉에서 이곳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 학봉(鶴峰:774m)은 미인봉과 신선봉 사이에 위치한 바위봉우리이기 때문에, 따로 떼기보다는 옆의 봉우리들과 연결해서 산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목을 빼고 비상을 준비하는 학(鶴)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산 아래에 있는 동네의 이름인 학현리에서 따왔다는 설(說)도 마냥 흘려버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전망대 근처에 이정표(미인봉 3.41Km/ 신선봉 1.3Km/ 학생야영장 2.5Km)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학봉이라는 지명(地名)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도(地圖)를 보면 이 부근 같은데도 정상표지석은 고사하고 이정표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이다. ‘학봉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타 지역 사람들이 지명을 더 잘 아시네요.’ 이 봉우리가 학봉이 아니냐는 내 질문에 대한, 제천지역 등산객들의 답변이다. 그들의 말마따나 산행을 마칠 때까지 학봉이라는 지명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학봉은 삼거리로서,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암릉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오른편의 학생야영장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다.

 

 

 

학봉에서부터 바윗길이 시작된다. 바윗길은 우선 급하게 아래로 떨어지더니 조금 후에는 수백 길 낭떠러지가 갈 길을 멈추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 찾아보면 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위 곳곳에 발판용 철판(鐵板)이 박혀 있고, 상부에는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쉬운 길은 결코 아니다. 산행에 이력(履歷)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서겠지만, 산행초보에 그것도 여자들이라면 상황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선 대구 아주머니들은 로프에 매달려 기성(奇聲)만 지를 뿐 한 걸음도 내려서지를 못하고 있다.

 

 

 

밧줄을 잡고 절벽(絶壁) 상부를 돌아 내려오면 다음에는 끝이 아득하게 보이는 철(鐵)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계단이 얼마나 높은지 발밑이 허전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그래도 이 정도이면 양호하다고 할 것이다. 8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철계단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절벽에는 밧줄만 가로세로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었다. 암벽(巖壁)등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름끼치는 두려움에 떨던, 악명(惡名) 높은 구간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산책(散策)코스나 다름없는 것이다.

 

 

 

학봉에서 철계단을 이용해서 안부로 길게 내려선 후, 다시 철계단을 이용해 반대편 절벽(絶壁) 위로 오르면 눈은 다시 호사(豪奢)를 누린다.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아까 학봉에서 보았던 청풍호가 다시 한 번 나타난 것이다. 경사(傾斜)진 암벽의 정수리를 내려서면,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있는 노송(老松)과 고사목(枯死木)들이 나타나고, 청풍호와 월악산군(山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암괴석에 얹힌 소나무들은 어느 것 하나 예사스러운 것이 없다. 누군가가 일일이 철사를 이용해 틀을 잡아가며 키워낸 것 같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하게 몸을 뒤틀고 있는 소나무들이 푸르른 청풍호의 물살을 배경삼아 멋스런 광경을 연출해내고 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 학봉에서 미인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에 대한을 표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낳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이 온통 아찔한 절벽(絶壁)이건만 그 위험성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절경(絶景)이 펼쳐지고 있다.

 

 

 

 

 

 

발아래가 아찔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아찔한 바윗길을 걷기도 하고, 진행방향에 펼쳐지는 청풍호반(湖畔)의 아름다운 곡선(曲線)에 취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특히 기암괴석(奇巖怪石)과 노송이 어울리는 경관(景觀)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다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거북이처럼 생겼네요.’ ‘옆에 보이는 바위는 궁뎅이처럼 생겼는데요.’ 주고 받는 얘기들이 온통 바위의 생김새이다. 그만큼 등산로 주변에 기암(奇巖)들이 수도 없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암들 사이사이에는 오래 묵은 소나무(老松)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마치 숙련된 정원사가 연출해 놓은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폭의 잘 그린 동양화(東洋畵)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손바닥바위, 그 생김새가 기이하다고 해서 킹콩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곳을 학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손바닥바위 뒤로 충주호가 아스라하고, 걸어온 능선이 장쾌(壯快)하게 펼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바위 능선이 끝나면 길은 다시 흙길로 변한다. 길게 이어지는 숲길은 능선 중간에서 학생야영장 갈림길(이정표(미인봉 2.1Km/ 학생야영장 2.6Km/ 신선봉 1.9Km)과 아름마을 갈림길(이정표 : 미인봉 0.5Km/ 아름마을 0.9Km/ 신선봉)을 만들어 놓는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둘 중에서 한곳을 골라 오른편의 하학현으로 탈출하면 될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의 손마다 망태기를 하나씩 들고 있고, 그 안에는 플라스틱 등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제천지역의 등산동호회원들이라는데 산을 오르면서 쓰레기를 줍는 길이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저런 사람들이 진정한 산악인의 표상일 것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숲길은 미인봉에 가까워지면서 또 다시 조망(眺望)이 터지기 시작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미인봉에 올라서면 오른편에 ‘동산’이 길게 늘어서 있고, 뒤로 돌아보면 지나온 신선봉이 우람하게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막상 미인봉 정상은 보잘 것이 없다. 별다른 특징(特徵) 없는 바위봉우리 위에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앉아있을 따름이다. 학봉의 전망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30분이면 충분하지만 초보(初步) 산악인들로 인해 산행이 지체될 경우 소요시간은 의외로 길어질 수 있다.(정상의 이정표 : 조가리봉 2Km/ 하학현 1.1Km/ 신선봉 4.7Km)

* 미인봉 (美人峰)은 저승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랜 옛날에 마을사람들이 한번 들어섰다 하면 다시는 돌아 나오지 못하는 협곡(峽谷)이 있었다고 해서, 그 골짜기를 저승골, 골짜기가 위치한 산을 저승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인근이 많았던 돼지가 오르내렸던 봉우리라고 해서 돼지 저(猪)자를 붙여 저승봉(猪昇峰)이라고 했다는 설(說)도 있다.

 

 

 

미인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바윗길로 변한다. 그러나 험하다고 하기 보다는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계속된다. 이 지대를 통과할 때에는 암릉의 날등을 타볼 것을 권하고 싶다. 비록 안전(安全)시설은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위험을 느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의 암릉이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에는 최상의 코스일 것이다. 그래도 위험하다 생각된 사람들이라면 우회로(迂廻路)를 이용하면 된다. 암릉 위를 걷다보면 동산의 장대한 능선이 이쪽의 신선봉능선과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듯하고, 발아래에는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도로가 골짜기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미인봉을 출발한지 40분 정도가 지나면 정방사 갈림길이다(이정표 : 조가리봉 0.3Km/ 신선봉 5.6Km/ 정방사)

 

 

 

 

 

 

정방사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자마자 소나무로 둘러싸인 바위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바로 조가리봉(562m)이다. 능선은 잠깐 동안 내리막길을 만들다가, 조가리봉 앞에 이르자마자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해버린다. 앞을 가로막는 거친 바위와 용트림을 하면서 5분 정도를 치고 오르면 조가리봉 정상이다. 조가리봉 정상은 능선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볼품이 없다. 정상표지석도 없는 가난한 봉우리를 얼기설기 쌓아놓은 돌탑 몇 기(基)와 이정표(하학현 1.7Km/ ES리조트/ 신선봉 5.9Km)가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구태여 뭐라도 기억해둘만한 것을 찾으라고 한다면 바위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꼽고 싶다. 척박(瘠薄)한 바위틈새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소나무에서 삶의 의지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조가리봉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무심코 ES리조트 방향으로 내려서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거리도 길뿐더러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탓에 등산로의 상태도 거칠기 짝이 없다.

 

 

 

 

 

조가리봉에서 하학현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의외로 편하다. 가끔 바윗길이 나오지만 거칠지 않을뿐더러 경사(傾斜) 또한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가리봉을 내려설 때에는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곳곳에 나타나는 바위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올라가 보라는 말이다. 힘이야 조금 들겠지만 그 보상(補償)은 충분하다. 청풍호와 그 뒤의 월악산릉(山稜)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이다. 참고로 청풍호반에 대한 조망은 조가리봉에서 하학현으로 이어지는 북서릉이 가장 뛰어나다. 이 능선이 곧바로 호수에 내려 꽂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하학현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리다보면, 어느새 영아치라는 마을이 있던 계곡가의 포장도로에 닿게 된다. 이정표에는 하학현이라고 표기된 곳이다. 조망 좋은 산길이 부드럽기까지 하니 1.7Km라는 거리가 금방인 것이다.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지 시간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영아치 마을은 전형적인 펜션(pension)마을로서 여기저기 보이는 곳마다 멋들어지게 지어진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집들이 모두 비어있는 것을 보면 여름철에만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날머리 이정표 : 신선봉 7.6Km)

 

 

 

월류봉((月留峰, 401m)

 

산행일 : ‘12. 8. 9()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산행코스 : 에넥스 공장월류봉2~5전망대초강천(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징 : 한천정사 쪽에서 보면 떠오른 달이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계속 봉우리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달이 머물다 간 봉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바위산이다. 월류봉에 오르면 한반도(韓半島) 지형의 특이한 언덕을 감상할 수 있는 등 볼거리가 제법 쏠쏠할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에서 접근(接近)이 편하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산행들머리는 에넥스 황간공장 입구

경부고속도로 황간 I.C에서 내려와 황간삼거리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김천 방면으로 달리다가, 마산삼거리에서 백화산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조금만 들어가면 에넥스 황간공장 안내판이 보인다.

 

 

 

오른편에 보이는 에넥스공장 진입로(進入路)를 따라 100m쯤 들어가면서 공장의 정문에 다다르게 된다. 정문 왼편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150m쯤 들어가면 이정표(월류봉 등산로, 1800m)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등산로 입구이다. 정문 근처 임도의 가장자리에 이정표(월류봉 등산로 150m)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100m 조금 못되게 진행하다 오른편 산비탈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이정표 : 월류봉 등산로 700m/ 하산 길). 산길은 초반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없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다가, 오늘 오르는 산이 바위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메시지라도 주려는 듯, 자그만 바윗길을 잠시 보여주더니 이내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해버린다. 바윗길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보면 황간 시가지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오래지 않아 월류봉에 올라서게 된다. 월류봉 정상인 1봉은 주봉(主峰)이지만 봉우리의 높이(365m)는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다. 그러나 주변 풍광(風光)만큼은 다른 봉우리에 비해서 월등하다. 비록 정상표지석하나 없이 조그만 이정표(출발점 800m/ 110m)가 대신하고 있지만, 시야(視野)가 열리는 오른편 암릉 위에 올라서면, 우선 절벽(絶壁) 아래 월류정 앞을 휘돌아가는 초강천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초강천이 U자 모양으로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지형은 영락없는 한반도(韓半島)의 모양이다. 또한 북동쪽으로 주행봉과 포성봉으로 연결되는 백화산릉이 잘 조망(眺望)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정도 지났다.

 

 

 

 

 

월류봉에서는 한반도 지형(韓半島 地形)을 닮은 특이한 언덕이 내려다보인다. 오른편 아래 초강천 너머로 우리 땅 모양을 꼭 빼다 박은 언덕이 펼쳐지는데, 마치 강원도 영월에서 보았던 한반도 지형의 마을과 흡사한 분위기다. 이러한 한반도의 모양은 1봉과 2봉에서 볼 때 가장 많이 닮았고, 3봉을 거쳐 4봉으로 가면서 점점 그 형상을 잃어간다.

 

 

 

1봉에서 5봉까지의 능선은 오른편에 수백길의 바위절벽(絶壁)을 끼고 이어진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능선 산길의 폭이 넓을뿐더러 절벽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절벽에 가까워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로프로 경계표시를 해 놓고, ‘추락주의라고 적힌 위험표시판을 매달아 놓았다.

 

 

1봉에서 잠깐 짧게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붙으면 금방 2봉에 올라서게 된다. 2봉의 정상은 이정표(1200m/ 3230m) 외에도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까 1봉에서 보았던 한반도 지형(韓半島 地形)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2봉에서 3봉으로 가려면 이번에는 제법 깊게 떨어졌다가 다시 맞은편 바위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바윗길은 왼편에 우회(迂廻)로가 있지만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다. 경사(傾斜)가 약한 슬랩(slab)이라서 꼿꼿이 선채로 걸어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3봉에 올라서면 아직도 한반도 지형이 조망되기는 하지만 서서히 그 원형(原形)을 잃어가고 있다.(이정표 : 2230m/ 4300m)

 

 

 

 

3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바라본 4봉과 5봉

 

 

 

3봉을 내려섰다가, 맞은편 바윗길을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4봉이다. 4봉에 오르면 월류정 앞을 스쳐 U자를 그리며 흘러나가는 초강천의 모습이 잘 보인다. 한반도(韓半島)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던 지형이 뒤틀어져 보통의 지형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부터는 한반도를 담아왔던 가슴에 주행산과 포성봉으로 이어지는 백화산맥의 웅장(雄壯)한 흐름을 담아가며 산행을 이어간다.(이정표 : 3300m/ 5320m)

 

 

 

 

산행을 이어가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들이 잘 조망된다. 능선의 바위 색이 짙은 갈색 또는 붉은색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자철(磁鐵)의 성분이 많은 바위 탓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 월류봉 곳곳에 광산의 흔적(痕迹)이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4봉에서 길게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5봉이다. '상봉'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5봉은 해발 405m5개 연봉 가운데 가장 높지만, 봉우리 자체는 별로 특징(特徵)이 없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일 따름이다. 그러나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초강천과 원촌마을, 그리고 저 멀리에 우뚝 솟아오른 백화산의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5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하산 갈림길 350m/ 4320m). 맞은편으로 곧장 진행하면 노근리 또는 우촌리 소내마을로 내려가게 되므로, 월류정으로 하산지점을 잡았을 경우에는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1봉에서 4봉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충분하다.

 

 

 

주어진 하산시간에 여유가 있기에 하산 갈림길방향으로 곧장 진행한다. 일부 사람들이 6봉이라고 부르는 봉우리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6(?)으로 향하는 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이 오르내림 없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곱디고운 흙길을 따라 300m 가까이 걸으면 자그마한 바위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6봉은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조망(眺望)이 뛰어난 멋진 전망대(展望臺)이다.

 

 

 

 

5봉에서 초강천으로 내려서는 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에서 1봉에서 4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잠시 감상한 후부터는 비탈길과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된다. ‘겨울철에는 오르내리기가 힘들겠네요.’ 웬만한 산행에는 이골이 난 집사람이지만, 이곳 월류봉의 내리막길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곳곳에 안전로프를 설치해 놓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길을 거꾸로 올라간다면 어떤 표현이 맞을까. ‘코에서 흙냄새가 날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봉에서 15분 정도를 비탈진 산길과 힘들게 싸우며 내려오면 커다란 동굴이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 굴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일본인들이 금은(金銀)을 찾아 파헤쳤던 흔적이란다. 해방 후에도 계속해서 운영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야 문을 닫았다고 한다. 월류봉에는 이곳 말고도 이런 동굴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하니, 금의 매장량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굴을 지나면서 갑자기 부드러워진 산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월류봉 산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보인다. 서낭당은 왜소(矮小)하고 허술하기 이를 데 없으나, 누군가가 최근까지 기도를 드린 듯, 촛대와 그릇 등 제기(祭器)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서낭당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이내 초강천이다.

 

 

 

산신당을 벗어나면 진행방향의 수풀사이로 초강천이 내려다보인다. 냇가에 내려서면 미루나무들이 늘어서있는 백사장(白沙場)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TV 드라마 해신(海神)’을 찍었다고 한다. 오른편의 자그마한 바위봉우리 위에 월류정이 의젓하게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이 정자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2006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는 가히 돋보이는 역작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월류정에 올라본다. 난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초강천의 유연한 곡선(曲線)이 보기 좋게 펼쳐지는데, 냇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 윗도리를 가슴까지 걷어 올려본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바람을 맞고 싶기 때문이다.

 

 

 

월류정에서 내려와 산행이 종료되는 원촌마을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초강천을 건너야만 한다. 그러나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물살이 약한 곳에 징검다리 비슷한 흔적이 보이나, 장마철 소낙비에 쓸려가 버렸는지 신발을 벗지 않고는 건널 수가 없다. 신발을 벗어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집사람을 붙잡고 개울로 들어선다. 바닥에 깔린 이끼 낀 바윗돌들이 무척 미끄럽기 때문이다. 발을 물에 담그자 물살이 발가락을 어루만진다. 비록 차갑지는 않지만 물의 촉감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아진다. 이 물을 예전에는 차다고 해서 한천(寒川)으로 불렀다는데, 이상고온(abnormal weather) 탓인지 물은 미지근할 따름이다.

 

 

주차장의 강둑에서 초강천 건너를 바라보면 절경(絶景)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깎아지른 절벽(絶壁) 위 능선에 솟은 5개 봉우리가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이기 때문이다. 산 아래를 휘감아 도는 초강천을 따라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은 5개의 봉우리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거기다 월류봉에서 초강천을 향해 내려온 능선의 끝에 세워진 월류정(月留亭), 한마디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런 풍광(風光)을 보고 달마저 멈춘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얼 하겠는가.

 

 

 

 

주차장에서 월류봉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이가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거리가 백 미터도 되지 않으니 다가가 보자. 이곳 월류봉을 유명하게 만든 한천정사(寒泉精舍)’우암유허비가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옆 구멍가게 맞은편에 한천정사가 있고, 구멍가게를 끼고 왼편으로 돌면 우암유허비가 보인다. 월류봉은 우암 송시열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그는 한때 이곳에 머물며 초당(草堂)을 짓고 후학(後學)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기려 후손과 유림(儒林)들이 한천서원(寒泉書院)을 세워 우암을 배향(配享)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인해 폐쇄(閉鎖)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 한천정사(寒泉精舍,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8)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충청북도기념물 제46)이다.

* 송시열은 조선(朝鮮)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인물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평가는 개개인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사약(賜藥)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서원(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되었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는 움직였다. 그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흠결을 다 감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기득권보호를 위한 당파(黨派)싸움의 한쪽 축(老論)이었고,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빠진 선비였다. 무이구곡에 비해 화양구곡을 지칭한 것이나, 주자의 운곡정사(雲谷精舍)를 모방해 암서재(岩棲齋)라는 정자를 세운 것만 봐도 능히 그의 사대성(事大性)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송시열은 화양동에 머물면서 중국(中國) 방식을 따르기 위해 명나라 복장과 평정건(平頂巾)을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다 더해 부인에게도 명()나라 여자처럼 쪽을 지게하고, 아이들에게는 머리를 쌍각으로 땋아서 드리우게 하였을 정도이다. 조선을 이끌어가던 최고의 지도자가 이렇게까지 중국을 사모했으니, 일반 사대부(士大夫)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결과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불러오지는 않았을까?

 

 

 

 

산행날머리는 원촌마을 주차장

초강천을 건너 맞은편 제방(堤防)으로 오르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원촌마을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수도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정자(亭子) 등 제반 편의시설(便宜施設)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주차장의 초강천쪽에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맞은편에는 원촌마을 유래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주월산(舟越山, 470m) - 박달산(朴達山, 825m)

 

산행일 : ‘12. 7. 1(일)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과 장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월령→주월산→느릅재→봉수대→헬기장→박달산→동골재→동골→방곡리 간곡마을(산행시간 : 50분 정도의 점심과 목욕시간 포함 5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산이 많기로 소문난 괴산군에서는 군내(郡內)에 소재한 수많은 산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35개의 산을 골라서 명산(名山)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박달산과 주월산은 35명산의 스물한 번째와 서른다섯 번째의 자리에 당당하게 올라있다. 2개의 산이 느릅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으며, 또한 두 산 모두 코스가 짧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 산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방법을 선호(選好)하는 편이다. 두 산은 바로 옆에 붙어있으나 산이 지닌 특성은 180도로 상이(相異)하다. 주월산은 옹골찬 바위산(骨山)인데 비해, 박달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장연면과 감물면의 경계인 주월령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國道)를 따라 괴산읍방향으로 잠깐 들어가면 방곡리 간곡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구월리로 연결되는 지방도(주월로)로 바꿔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주월령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주월령은 감물면 구월리와 장연면 방곡리의 경계(境界)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주월령 고갯마루의 주월산 방향은 시멘트 축대(築臺)와 철망으로 된 펜스(fence)가 가로막고 있다. 장연면 방향의 펜스 끝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에 들어서면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할 수도 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더 진행하다보면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痕迹)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길의 흔적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 산길이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면서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간벌(間伐)을 한 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방치한 탓에, 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바닥에 깔린 나무들을 넘거나, 넘을 수도 없을 경우에는 돌아서(迂廻)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하긴 욕설이 안 나오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가파른 오르막에 나뭇가지라는 복병(伏兵)까지 만났으니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변산반도 맞은편에 있는 위도에 간 일이 있었는데, 산행 중에 그곳의 면장(面長)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난 그가 쏟아내는 열정(熱情)을 피부로 느끼며 무릎을 쳤었다. 매주 주말의 이틀 중 하루를 꼭 섬내의 등산코스를 둘러보며, 이곳을 찾는 외지인(外地人)들의 시각(視覺)에서 고쳐야할 사안을 찾는단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열정에 탄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곳 주월산에서 정반대(正反對)의 경우를 대하고 보니 입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이 지역 관료(官僚)들이 한번이라도 이곳을 둘러봤다면 이런 상황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를 증명(證明)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월산 정상에서 느릅재로 내려가는 등산로 길가에는 간벌을 한 나무들을 마치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쌓아 놓았다. 사람들의 눈에 빤히 드러나는 코스이기 때문이리라.

 

 

 

간벌목(間伐木)과의 악전고투(惡戰苦鬪)를 30분 정도 치르다보면 지능선과 나뉘는 분기점과 만나게 된다. 간곡마을에서 지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등산로가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주월령을 산행들머리로 삼은 것이 잘못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주월산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월령보다는 간곡마을을 들머리로 삼을 것을 권하고 싶다.

 

 

 

 

간곡마을에서 올라오는 지능선과 만나면서 오르막길의 가파름은 사라진다. 본격적인 능선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산길 주변은 소나무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보조라도 맞추려는 양 바위들의 숫자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완만(緩慢) 능선에서 두어 번 바위를 돌아 오르면, 전망대(展望臺)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사방이 시원스레 트인 주월산 정상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온 뒤끝인지라 구름에 덮인 산하는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겨우 발아래에 있는 산촌마을만 보여줄 따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주월산의 정상은 서너 평 정도의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盆地), 한가운데에 사각의 말뚝형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심어져 있고, 그 뒤를 정성들여 쌓은 돌탑(石塔)이 지키고 있다. 주월산은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보잘 것 없는 산은 아니다. 그래서 괴산의 35명산(名山)에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나지막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조망(眺望)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위(四圍)가 운무(雲霧)로 둘러싸인 오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정성스레 돌맹이를 얹고 있는 저들은 무엇이 저리도 간절할까? 원래 돌탑이란 사람들이 자기의 염원(念願)을 담아 쌓는 것이니, 저 돌탑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을까? 가야할 길이 바쁜 난, 남의 손을 빌어 내 소원(所願)을 빌어본다. 저들이 얹고 있는 돌맹이에다 덤으로 내 작은 소원 하나 덧붙이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집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천만번의 수많은 윤회(輪回) 속에서도 결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인연(因緣)이 되게 해 주소서!’

 

 

 

정상에서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서 못생긴 노송(老松)들이 늘어선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이 시원스레 열린다. 깎아지른 단애의 위에 위치한 전망대이다. 단애(斷崖)의 끄트머리에 서면 맞은편에 있는 박달산이 한눈에 들어오련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탓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마을 풍경(風景)은 한 폭의 그림이다. 몇 가구 되지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이 예전의 우리네 삶을 닮아 있는 것 같아 정이 간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암릉과 노송(老松)이 잘 어우러지고 있는 서릉을 타고 10분 정도 진행하다보면 매바위가 나온다. 누가 뭐래도 주월산의 백미(白眉)는 매바위 부근의 암릉일 것이다. 순탄한 산길을 여유롭게 걷다보면 갑자기 거대한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을 바위를 우회(迂廻)하도록 되어있지만, 손맛도 즐겨볼 겸 서슴없이 바위벽에 들어붙고 본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나 암벽(巖壁)산행의 초심자만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암릉 위로 오를 수가 있다.

 

 

주월산 정상에서 매바위능선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매바위, 남쪽 끝에 부리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매 한 마리가 머리를 한껏 뒤로 제키고 있다. 마치 맞은편 박달산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듯이...

 

 

 

매바위 암릉에는 분재(盆栽)처럼 아담하고 예쁜 명품(名品)소나무가 바위들과 어울려 멋진 풍광(風光)을 연출해내고 있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느릅재에서 이곳까지 30분 정도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꼭 산행이 아니더라도 이런 풍광(風光)을 찾아서 이곳까지 산책삼아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깎아지른 단애와 그 단애 위에 올라앉은 분재(盆栽)를 닮은 소나무들은 한마디로 말해 아름답다. 그래서 이곳을 주월산의 백미(白眉)라고 부르는 것이다.

 

 

 

 

매바위 능선에서는 이담저수지와 별로 넓지 않은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村落)의 모습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동쪽에는 조금 전에 지나온 주월산이 선명하고, 발아래의 구불구불한 19번 국도에는 성냥갑만한 차량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느릅재 너머에는 조금 후에 가게 될 박달산이 장쾌하겠지만, 짙은 구름 탓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에 새로 지어진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선답자(先踏者)들이 올린 산행기에는 매바위 암릉 위에 있었는데, 아마도 정상을 정비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나보다. 평소에는 초소(哨所)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인기척이 없다. 초소 옆의 아름다운 소나무들은 운무 속에서 환상적(幻想的)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초소의 뒤로는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이고 있다. 백양리 들녘에는 이담저수지가 다소곳이 앉아있고, 그 너머에는 산모롱이를 휘감아 도는 달천이 운무(雲霧)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그 자태(姿態)를 선보이고 있다. 오늘 같이 비온 뒤끝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멋진 풍광(風光)을 즐길 수 있겠는가.

 

 

 

산불감시탑을 지나 느릅재까지는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조림(造林)이 잘된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이 줄을 맞춰 하늘과 키 재기를 하고, 굵은 나무가 잠깐 자리를 비운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한마디로 볼만한 풍경(風景)이다. 들꽃들과 장난을 치며 걷다보면 어느새 느릅재에 내려서게 된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느릅재는 장연면과 감물면이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서, 예로부터 감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감나무골로도 불린다.

 

 

 

느릅재에서 박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19번 국도의 방곡리 방향으로 50m쯤 걸어 내려가다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저(高低)의 차(差)가 심하지 않아서 걷기가 편안한,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조림지역을 7~8분 걸으면 새로 개설(開設)한 것 같은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임도(林道)를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붙으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임도에서 봉수대(烽燧臺)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區間)중의 하나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40분이나 계속해서 치고 올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원시림(原始林)을 방불케 하는 숲의 아래로 난 길은 다행히도 또렷하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 아래로 난 가파른 오르막길을 4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인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박달산 1.5Km/ 느릅재 1.5Km).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전망대는 50평쯤 되는 평평한 쉼터인데, 구불구불 제멋대로 자라난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전망대 앞에 서면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액자(額子) 속에 갇혀 있는 산골마을의 풍경(風景)을 볼 수 있다. 넓지 않은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산골마을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전망대를 지나면 산길이 갑자기 바위지대로 변한다.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을 정도인데도 이곳의 행정관청에서는 친절하게도 안전로프를 매어 놓았다.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내리다보면 이정표(박달산 1.1Km/ 느릅재 1.9Km) 하나가 눈에 띄고, 그 오른편은 널따란 헬기장(740봉)이다. 박달산에서 유일하게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트이는 곳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짙은 운무(雲霧)에 가려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길은 아주 편하게 이어진다. 헬기장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오르내리면 800봉에 올라서게 된다.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무 특징(特徵)이 없는 곳이므로 머무르지 않고 곧장 발걸음을 옮겨버린다. 800봉에서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참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둘러싸인 박달산 정상이다. 정상근처의 능선에는 울창한 참나무 아래에 진달래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별로 넓지 않은 정상에는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과 무인(無人)산불감시탑, 그리고 국기게양대(揭揚臺)가 하나 서있는데, 특이한 것은 태극기가 게양대에 걸려있지 않고 산불감시탑의 철망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게양대를 설치해 놓았는지가 궁금하다. 정상은 잡목(雜木)들이 봉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늘같이 안개가 자욱한 날이 아니더라도 조망(眺望)은 별로일 것 같다.

 

 

박달산에서 하산지점을 방곡리나 추점리로 잡을 경우에는, 정상으로 올라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코스인지 산길은 의외로 또렷하게 나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잠깐 내려서면 눈에 익은 바위 두 개가 보인다. 다른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타나던 바위이다. ‘통천문(通天門)’이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인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바위일 따름이다.

 

 

 

 

정상에서의 10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무임사, 종자마을 35분/ 추점리 70분/ 박달산 정상 20분). 바로 동골재로서 방곡리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정표에는 방곡리 방향을 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지점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추점리 코스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기를 종합해보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코스 중간에 있다는 작은 암릉을 걷는 재미는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간벌목(間伐木) 때문에 고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오늘 주월산을 오를 때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고생을 기꺼이 감수(甘受)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골재에서 왼편의 동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행날머리를 방곡리로 잡았기 때문이다. 동골로 내려서는 산길은 많이 가파르다. 그러나 계곡에 이르게 될 때까지는 흙길이기 때문에 무릎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다.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일본이깔나무(落葉松)의 솔가리(落葉)들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산길은 차라리 폭신폭신할 정도이다.

 

 

계곡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숲길이 나타난다. 숲은 밀림(密林)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거져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그런데 내려가다 보면 가끔 돌을 반듯하게 쌓은 축대(築臺)의 흔적이 눈에 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痕迹)일까? 그렇지 않고 산림보호를 위해 인위적(人爲的)으로 쌓은 것이라면 산림청 관계자들에게 찬사(讚辭)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런 정성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산림(山林)이 이렇게 우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부사거리를 출발한지 30분쯤 되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골 계곡에 이르게 된다. 인적이 끊긴 원시(原始)의 계곡은 푸른 이끼들로 포위되어 있다. 바위마다 본연의 바위 빛깔을 잃어버리고 진초록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의 수량(水量)이 충분하다 싶으면 잠깐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른 오지(奧地) 산에 비해 서울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귀경길이 여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골자기를 빠져나와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를 따라 20분 가까이 걸으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간곡마을이다. 자칫 지루하기 쉬운 농로의 주변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열매가 눈요기를 시켜주고, 길섶(길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오디와 산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가은산(可隱山 : 575m) - 둥지봉(430m)

 

산행일 : ‘12. 5. 20(일)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산행코스 : 상천리→기와집바위→가은산→갈림길→둥지고개→둥지봉→새바위→옥순대교(산행시간 : 4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가은산과 둥지봉은 충주호반(湖畔)을 사이에 두고 경승지(景勝地)인 옥순봉과 구담봉을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그 덕분에 충주호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는 두 봉우리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충주(청풍)호반과 암봉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風光)은 한 폭의 잘 그린 풍경화(風景畵)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상천휴게소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를 빠져나와 82번 지방도(地方道)를 타고 청풍방향으로 들어서면 10분이 채 안되어 청풍(충주)호에 이르게 된다. 계속해서 창밖구경을 하면서 들어가다가, 수산면소재지(面所在地 : 수산사거리)에서 왼편 36번 국도(國道)로 옮겨 단양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대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의 옥순봉로(路)를 따라 들어가면 옥순대교(大橋)를 지나 상천휴게소에 이르게 된다.

 

 

 

상천휴게소 앞의 도로 맞은편에 있는 식당건물 옆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산행안내판을 세워놓았으니 참고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안내판에는 오늘 우리가 가려고 하는 둥지봉이 출입금지구역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고민스럽지만 일단은 산행을 시작하고 본다.

 

 

밭의 오른쪽 가장자리로 난 농로를 따라 200m 정도를 들어가면 급경사(急傾斜)로 이루어진 산자락과 마주치게 된다. 곧이어 나타나는 바위지대 역시 급경사이기는 마찬가지, 오른쪽에 우회(迂廻)하는 길이 있는 모양이나, 선두는 왼편의 바윗길을 고집하고 있다. 세미클라이밍으로 암릉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리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 보다는 짜릿한 스릴이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앞사람을 밀어주고 뒷사람을 당겨주며 바윗길과 씨름하다보면 어느덧 능선위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가은산 2.7Km/ 상천주차장 0.5Km). 능선은 바윗길과 흙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데,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군락(群落), 소나무는 어쩌다가 하나씩 보이는 정도이다. 짙게 우거진 숲 사이에서 괴이(怪異)한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촛대바위, 시계바위, 기와집바위, 얼굴바위 등등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지도(地圖)에 나와있는 바위의 이름들을 떠올려보지만, 바위의 생김새와 일치시키는 일을 결코 쉽지 않다. 그만큼 이름을 지은 사람들의 상상력(想像力)을 나와 같은 범인(凡人)들의 눈으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능선이 시작되면서 오른편에 충주호가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서쪽으로 깊고 길게 패어져 나간 충주호반(湖畔)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산들과 함께 시야(視野)에 들어오는데,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금수산이 하늘금을 그려내고 있다.

 

 

 

 

계속되는 산길은 눈요기로 즐겁기만 하다. 바위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기암(奇巖)과 노송(老松)이 절묘하게 배합될 때에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가은산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몇 번의 거친 오르내림이 지나면 기와집바위에 닿게 된다. 등산로는 기와집바위의 왼편으로 돌게 되어 있지만, 재미삼아 바위 아래로 난 자연석굴을 통과해 본다. ‘해산(解産)굴 아냐?’ 일행의 조크(joke)가 있었으나 해산굴이라고 부르기에는 굴의 크기가 너무 넓고 높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기와집바위의 용마루 위로 올라서면, 충주호반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와집바위를 지나서 얼마간 더 진행하면 급경사 내리막 바윗길이 나타난다. 바윗길의 끄트머리는 가마득한 단애(斷崖),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왼편으로 나있는 길이보이기 때문이다. 안전시설(安全施設)에 의지하지 않고는 더 이상 내려서기가 힘든 벼랑의 끝 부분에는, 타워(tower)를 닮은 높다란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르면 커다란 곰바위를 만나게 된다. 곰바위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알맞게 섞여있는 무명봉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가은산 200m/ 옥순대교 3.4Km/ 상천주차장 3.0Km). 둥지봉으로 가려면 일단 가은산 정상을 둘러본 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옥순대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무명봉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가은산 정상이다. 가은산 정상은 힘들게 올라온 것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별로 넓지 않은 공터의 중간에 정상표지석과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세운 정상표지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도 일절 없다.

 

 

 

둥지봉으로 가려면 일단 둥지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둥지봉으로 올라가야 한다. 둥지고개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인파들과 부대끼면서 1Km가까이 내려서면 이내 둥지고개이다(이정표 : 가은산 1.1Km/ 옥순대교 2.5Km). 둥지고개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옥순대교, 둥지봉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왼편은 오래전에 말목산을 답사(踏査)하고 내려왔던 길인데,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나와 있지 않다.

 

 

 

둥지고개에서 맞은편 능선을 잠깐 치고 오르면 둥지봉이다. 진입로 초입(初入)에 ‘통행금지’ 현수막이 걸려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산행을 진행하고 본다. 옳지 않은 일인 줄은 알지만 워낙에 가보고 싶은 코스이고, 거기다 웬만한 산악회들은 모두 다 가은산과 둥지봉을 한꺼번에 답사(踏査)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둥지봉 정상도 가은산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둥지봉에서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라고 일컫는 새바위를 가기 위해서는 충주호의 호안(湖岸)까지 내려서야만 한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스릴과 조망(眺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은 거의 전 구간이 바윗길로서 곳곳에 슬랩(slab)을 만들어 놓고 있다. 로프에 매달리거나 릿지(ridge)로 암벽을 내려가다 보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 갑자기 산행속도가 지체되기 시작한다. 로프에 매달린 여자들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고, 그 것을 지켜보는 안타까운 눈초리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잡아주고 밀어주는 스킨십(skinship : physically affectionate)이 필요한 코스이니. 사랑의 진전(進展)이 필요한 커플(couple)들이라면 그들의 바람은 금방 이루어질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곳곳에서 잘 그린 동양화(東洋畵)들을 만날 수 있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그 사이에서 자라는 노송(老松)들이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곳곳에 산재한 암릉에 올라서면 월악산 영봉과 만수산으로 이어지는 들쭉날쭉한 능선이 막힘없이 펼쳐지고 있다. 연초록으로 빛나는 충주호반 위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유람선(遊覽船)을 감상하는 재미는 가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랑일 것이다.

 

 

 

 

 

바윗길이 끝나면 길은 순한 흙길로 변하면서,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두 길은 서로 만나게 되지만, 만일 벼락바위를 보고 싶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오르편 길을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호안(湖岸)까지 떨어졌던 산길은 또다시 경사(傾斜)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하더니, 종내는 로프까지 잡아야만 오를 수 있게 만들고야 만다.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을 버티어 살아온 늙은 소나무,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저리도 몸을 비틀고 있을까? 나도 몰래 내 처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고달프다고 투덜대던 내 삶이 어디 저 소나무만이야 했겠는가. 한 그루의 노송(老松)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본다.

 

 

 

 

힘들게 능선 위로 오르면 또 한 번 눈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의자 비슷하게 생긴 바위의 건너편에 옥순봉이 늠름(凜凜)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봉우리 아래 충주호반(湖畔)에서는 관광객들을 실은 유람선(遊覽船)들이 흥겨운 노랫가락을 들려주며 맴돌고 있다. 멀리로는 월악산의 영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아름다운 둥지봉의 기암(奇巖)들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있다.

 

 

 

 

의자처럼 생긴 바위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둥지봉의 명물(名物)이라는 새바위이다. 아까 둥지봉을 내려올 때는 둥그런 알처럼 생겼었는데 가까이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새이다. 그것도 '아기 새‘까지 거느리고 있는 새들의 가족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오는 동안에 부화(孵化)되었나봅니다.’ 일행의 말마따나 한 마리로 보이던 것이 어느새 두 마리로 변해 있는 것이다.

 

 

 

 

새바위를 지나 바윗길을 조금 더 오르면 무명봉이 나오고, 이 봉우리에서 오른편으로 10분 정도 내려서면 고갯마루에 닿게 된다.(이정표 : 옥순대교 1.4Km/ 가은산 2.2Km). 이 고갯마루는 아까 가은산에서 둥지봉으로 건너가기 전에 만났던 고갯마루인 둥지고개에서 옥순대교로 이어지는 주 등산로이다.

 

 

 

산행날머리는 옥순대교 휴게소

주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봉우리 하나를 넘게 되고, 봉우리를 내려서면 충주호 방향을 목책(木柵)으로 막아 놓은 간이 전망대(展望臺)를 만나게 된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충주호반을 가로지르고 있는 옥순대교(大橋)의 우아한 자태를 구경하면서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옥순대교휴게소이다.

 

 

 

주봉산((珠峰山, 643m)- 고봉(459m)

 

산행일 : ‘12. 4. 28(토)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산행코스 : 수리재→고봉→수리재(back)→양아리고개→주봉산→흑목고개→부대산→안부→진여원→충주나루휴계소(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천등지맥(天登支脈) 종주(縱走)라는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면 꼭 찾아봐야할 필요는 없는 산으로 생각된다. 비록 고봉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조망(眺望)은 뛰어나지만 그것만으로 이곳을 찾기에는 산행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쯤 꼭 찾아보고 싶을 경우 고봉과 주봉산을 연결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면 3시간, 천천히 걸을 경우에는 3시간30분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천등지맥(天登支脈) : 천등지맥은 치악산 남대봉에서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로 이어지는 백운지맥이 오두재를 지난 971m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함암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십자봉(983.2m), 옥녀봉(719m), 시루봉(734m), 오청산(655m), 천등산(807.1m), 인등산(666.5m), 관모봉(630m), 부대산(627.0m), 주봉산(642.7m), 고봉(459m)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산행들머리는 충주호반에 위치한 동량면 서운리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I.C를 빠져나와 38번 국도(國道/ 제천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산척면소재지(面所在地:충주시)에서 오른편 531번 지방도(地方道/ 충주방향)로 바꾸어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한강변(南漢江邊)에 위치한 동량면소재지(面所在地:충주시)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남한강을 따라 잠깐 상류(上流)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내 충주호(湖)의 댐이 보이고, 이어서 오늘 산행의 하산(下山)지점인 충주나루휴게소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에 충주호반(湖畔)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지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지등로)를 따라 들어가게 되는데,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서운리이다.

 

 

산행은 충주호 댐에서 왼편 호반(湖畔)을 따라 이어지던 군도(郡道, 지등로)가 끝을 맺게 되는 서운리에서, 산너머 반대쪽에 위치한 지동리로 넘어가는 임도(林道)를 따라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며칠 전에 내린 봄비가 계절을 독촉했던지 임도 주변은 봄기운으로 완연(完然)하다. 활엽수들이 이미 신록(新綠)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왼편으로 충추호가 심심찮게 얼굴은 내밀고 있다.

* 서운리-지동리 임도(林道),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 세워진 안내판에 ‘도로법(道路法)에 의한 도로가 아니니 목적 외의 차량은 통행을 금지(禁止)’하라고 적혀있으나, 임도(1차선)의 입구에 커다란 이정표(里程標) 까지 설치해 놓은 것을 보면, 다니고 싶은 사람은 다녀도 좋으나, 만일 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충주시청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수리재로 올라서는 중간에 고개를 넘어가는 차량(車輛)을 여러 대 만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차량 통행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임도를 통행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임도가 1차선뿐이라서 비좁기 때문이다. 차량(車輛)이 지나가기라도 할 경우에는 행인(行人)들이 도로의 가장자리로 완전히 비켜서야 할 정도이니, 오가는 차량이 마주치기라도 할 경우에는 꽤나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 같다. 임도를 따라 소풍 나온 기분으로 30분 정도 걷다보면 수리재에 닿게 된다.

 

 

 

수리재에서 고봉으로 진행하려면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들머리에 ‘통정대부 신태하선생 묘소 입구’라고 쓰인 표석(標石)이 세워져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먼저 산길을 가득 메운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코끝을 스치는 짙은 솔향이 청량(淸凉)하기 그지없다. 이어서 나타나는 가파른 바윗길을 치고 올라, 앞을 가로막는 큰 바위를 우회하여 치고 오르면 드디어 고봉 정상이다. 서운리를 출발한지 45분 정도 지났다.

 

 

 

 

고봉 정상은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에는 비좁은 뾰쪽한 바위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에 ‘충북 고봉, 459m’이라고 쓰인 검은 판자(板子)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고봉만 다녀와도 오늘 본전을 뽑는 것입니다.’ 올라오는 길에 만난 선두그룹이 우리에게 하던 말이 실감날 정도로 정상의 조망(眺望)은 빼어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위봉우리 인지라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시계(視界)가 트이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서 시작해서 남쪽을 거쳐 동쪽까지 길게 펼쳐진 충주호의 물빛이 파랗게 빛나고 있고, 북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수리봉과 주봉산이 이제 갓 잎사귀를 내민 탓에 연록의 색상(色相)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다.

 

 

 

 

 

 

다시 수리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선다(1시간 경과). 이번에는 들머리에 수리재라고 쓰인 표석(標石)이 서있으니 참고하면 될 일이다. 능선은 처음부터 바윗길로 시작된다. 바위길 주변은 짙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손과 발을 이용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바윗길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크게 위험하지 않아서 조금만 조심한다면 별다른 사고 없이 바위능선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끝을 간질이는 솔향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도전해보는 세미-릿지(semi-ridge)의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오르다보면 곳곳에서 충주호가 조망(眺望)된다. 어느 이야기꾼의 말마따나 충주호는 ‘내륙(內陸)의 바다’가 틀림없다. 고봉의 오른편이 충주호인데, 고개를 돌려보면 왼편에도 충주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충주호의 조망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 그 가운데 바위봉우리인 고봉이 우뚝 솟아있다.

 

 

 

 

 

바윗길과 씨름하다보면 커다란 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展望臺)로 올라서게 된다. 좌우(左右)로 시야(視野)가 확 트이는 곳이다. 왼쪽으로 제천 방향의 충주호가 보이는데, 푸른 호수(湖水)를 감싼 산의 능선과 하얀 구름 점점이 박힌 파란 하늘이 맞닿아,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뒤편으론 고봉이 피라미드의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뒤에는 충주호와 산줄기들 사이에 고요히 앉아있다.

 

 

 

 

 

암릉이 끝나면서 산은 180도 다른 보습으로 변환(變換)을 시도한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보드라운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드디어 수리봉이다. 지도상에는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정상에는 ‘수리봉 (천등지맥 519m) 산친구산악회’라고 적힌 코팅(coating)지가 매달려 있다.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인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통과해 버린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40분이 지났다.

 

 

 

수리봉을 떠나 경사가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새목이 고개이다. 물론 계속해서 내려서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올라가는 구간(區間)도 만나지만 거리가 짧은데다 경사(傾斜)도 완만하기 때문에, 걷는 사람들은 그저 내리막길로만 느껴질 정도라는 얘기이다. 새목이 고개에서는 오늘 산행 중에 처음으로 이정표(里程標)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서운리,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양아리에 닿게 된다. 주봉산 정상은 물론 곧바로 진행해야 하며 0.7Km를 더 걸어야만 한다.

 

 

 

새목이고개에서 주봉산 정상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나오지만 그 길이가 길지 않고, 대부분의 구간은 경사가 완만한 흙길이다. 등산로 주변에 ‘주봉산 등산로→’라는 표시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다른 산들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다. 정상까지는 산행을 시작해서 2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잡목으로 둘러싸인 주봉산 정상은 제법 넓은 편이지만 정상표지석 하나만 달랑 놓여있을 따름이다. 조망(眺望)도 월악산 쪽으로 조금 트였을 뿐 잡목 때문에 주변을 살펴보기가 어렵다. 주봉산의 정상표지석은 검은 돌에 해발(643m)과 설치자(設置者 : 충주시청)를 적어 놓은 점은 다른 산들과 같은데, 하단(下段) 받침돌에 이정표(里程標 : 양아리계곡 2.3Km/ 발락동고개 3.2Km)를 새겨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곳에서 주의할 점은 정상을 둘러보고 아까 지나왔던 곳(2~3분)으로 되돌아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꺾어지는 능선을 타야 부대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봉산 정상을 내려와 두 번째 이정표(서운리/ 양아리 1.4Km)가 세워져 있는 지점까지는 평지와 다름없는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부대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세 번째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능선 안부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곳 흑목재의 능선사거리도 주봉산에 올라오기 전에 만났던 사거리와 같이 왼편은 서운리,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양아리에 닿게 된다. 하나 이상한 것은 우리가 진행하려는 부대산은 방향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충주시청에서 부대산 등산로는 아직 정비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는 사람이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었다.

 

 

 

 

안부사거리에서 임도(林道)를 따라 한참을 오르다보면 왼편에 산악회 리본이 몇 개 보인다. 아마 임도를 가로지르려는 모양이다. 당연히 거리는 단축(短縮)되겠지만 대신 길은 험해질 것이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는 흔적(痕迹)이 희미하고 가파르기 짝이 없다. 날씨는 초여름처럼 무척 무더운데, 거기다 더해 건조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길은 아직도 절반이상이 남았는데 물통의 물은 거의 바닥에 가까워오고 있다. 오늘의 산행일정을 다시 챙겨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힘들게 오른 부대산은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실망만을 안겨준다. 잡목으로 둘러싸인 정상은 공간도 비좁을뿐더러 아무런 볼거리도 없는데, 나뭇가지에 ‘충북 부대산 626m’이라고 적힌 판자 하나만 달랑 매달려있어 외롭기까지 하다. 맞은편의 잡목(雜木)사이로 내다보이는 제천방향의 충주호를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발걸음을 돌린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가까이 지났다.

 

 

부대산에서 관모봉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멀다. 오른편에 충주호가 바라보이는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反復)하며 이어간다. ‘아예 두릅나무 밭이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등산로 주변에는 두릅나무가 널리다시피 산재(散在)해 있다. 그러나 제철임에도 새순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아까 오는 길에 보았던 직업적(職業的)인 채취(採取)꾼들이 훑고 지나간 모양이다.

 

 

 

물이 바닥을 보이는 탓에, 관모봉으로 진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쯤에서 그냥 하산하기로 산행코스를 변경한다. 지도(地圖)에는 이곳에서 왼편의 충주나루휴게소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름산행에서 물이 부족할 경우 불상사(不祥事)를 당할 염려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하산을 결심하니 갑자기 시간이 여유로워진다. 당연히 산나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는 길에 간간이 보였던 참나물은 물론이요. 전문채취꾼들이 훑고 지나간 두릅나무에 숨어있던 새순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후미그룹이 도착할 때 까지 꽤나 많은 산나물을 채취(採取)할 수 있었고, 그리고 모처럼 일찍(오후 7시경) 집에 도착한 행운(幸運)과 겹쳐져, 돌아온 날 저녁밥상에서 봄맛을 음미(吟味)해보는 호사(豪奢)까지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삼겹살과 소주는 필수, 거기에다 초장에 찍어먹는 두릅의 새순과, 들기름에 무친 참취는 천하일미(天下一味) 그 자체였다. 봄의 내음이 가득한 산나물을 안주삼아 박주(薄酒) 한잔 들이키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물론 이게 다 집사람이 고생한 덕분이며, 이래서 난 집사람의 터울 안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꿈도 꾸어볼 생각 자체를 않는 모양이다.

 

 

 

후미그룹과 함께 충주나루휴게소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지만 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무작정 왼편으로 치고 내려가니 희미한 산길의 흔적이 보이다 끊어 지다를 반복(反復)하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희미한 산길에서 길 찾기에 정신을 쏟다보면 어느새 초지(草地)으로 변해버린 과수원(果樹園)에 이르게 되고, 과수원 아래의 냇가에서 흘린 땀을 씻고 나서면 길은 임도(林道)로 변해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사회복지시설인 진여원이 내다보인다. 마당 앞에 석탑과 불상이 모셔져 있는 것을 보면 사찰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고, 진여원의 옆에 화암사라는 사찰(寺刹)이 보이는데 같은 주체가 아닐까?

 

 

 

산행날머리는 충주나루휴게소

진여원에서부터는 2차선 아스팔트도로가 이어진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에서부터 충주나루휴게소까지는 1.5Km나 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내려설 때부터 통증을 호소하던 집사람의 무릎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나보다. 숫제 중증 장애인이 걷는 것처럼 절뚝이고 있다. 업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집사람의 손을 더 굳게 잡아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저만큼에 우리가 타고 왔던 산악회 관광버스가 보인다. 기업은행 연수원(硏修院)을 거쳐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충주나루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두타산 (頭陀山, 598m)

 

산행일 : ‘12. 2. 26()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과 괴산군 도안면, 증평군 증평읍의 경계

산행코스 : 초평삼거리두타정전망대정상큰재넘이재남릉암릉지대(돌탑봉)탑선마을 보타사(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두타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인데다가 별로 높지도 않기 때문에 누구나 오르기에 부담이 없는 산이다. 흙산이면서도 곳곳에 전망(展望)이 뛰어난 곳이 많은 것이 장점이다. 특히 산행 중에 수시로 조망되는 초평저수지와 저수지에 떠있는 낚시좌대들은 수면에다 한 폭을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전체를 다 둘러보면서도 원점(原點)산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家族)산행지로 추천할만하다.

 

 

산행들머리는 초평면 영구리의 영수사 입구

중부고속도로 진천 I.C에서 내려와 진천시가지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서 34번 국도(國道/ 증평방향)로 옮겨 달리다가, 초평면사무소를 지난 후, 동잠교 못미처에서 좌회전하면 화신주유소(注油所)가 보인다. 주유소 건너편 멋들어지게 지어진 주택(住宅) 앞에 두타산 영수사라고 쓰인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산행 들머리는 이곳에서 영수사 방향으로 200m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주유소에서 영수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는 간이화장실(化粧室)이 깔끔하게 지어져 있고, 그 곁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등산로는 산행 안내도의 뒤로 열린다. 산행안내도 옆에는 인근 군부대(軍部隊)에서 세워 놓은 경고판이 보인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사격훈련이 있으니 산행 전에 군부대에 전화해 사격실시여부를 확인할 것,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산행 안내도 뒤로 들어서면 먼저 침목(枕木)으로 만들어진 나무계단이 눈에 띈다. 등산로 주변은 초입(初入)부터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어제 곡성의 통명산에서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실컷 들이마셨지만, 아마도 조금 부족했는가 보다. 오늘도 이렇게 짙은 소나무 숲을 걷게 되니 말이다. 그럼 오늘 산행도 역시 웰빙(well-being) 산행으로 컨셉(concept)을 잡아본다.

* 사람의 인체(人體)가 편안하고 안정된 심리상태에 있을 때는 알파파(α-wave)를 발산한다. 이 알파파는 숲 속에 들어가면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숲 속 길을 거닐면서 보고, 듣고, 그리고 냄새를 맡거나, 만져보자. 연한 숲 냄새 속에 숨어있는 피톤치드(Phytoncide)와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며 혈압까지 낮추어 준다는 테르핀(Terpene)까지 가득한 솔숲에서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침목계단을 오르면 5분이 채 안되어서 능선의 위로 올라서게 되고, 진천읍이 바라보이는 두타정(頭陀亭)까지의 구간은 경사(傾斜)가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고운 황토흙길 주변에는 꽤나 많은 묘지(墓地)들이 보인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럼 후손(後孫)들이 선조(先祖)들의 유지(遺志)를 어겼단 말인가?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마다 생거진천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결코 잊어먹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인데도 말이다. 산행을 시작하고 20분 정도 지나면 팔각정인 두타정에 이르게 된다.

 

 

 

 

두타정(이정표 : 동잠교 1.35Km/ 두타산 정상 3.15Km, 전망대 2.65Km)을 지나도 완만(緩慢)한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30분 정도 진행하면 너른 공터인 제3지점이 나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쉼터(동잠교 3.55Km/ 전망대 0.45Km, 두타산 정상 0.95Km)가 보인다. 제법 너른 공터인데, 오른편이 수십 길의 낭떠러지로 되어 있다. 벼랑 위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자태를 자랑한다. 그런데 그 외형(外形)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아마도 이곳 산신령은 자유방임형 리더십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닮은 점을 꼭 하나라도 찾으라고 한다면, 모든 소나무 가지들이 하나같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뻗어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쪽에 뭔가 못다 한 인연(因緣)이라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소나무사이로 내다보이는 건너편 산에는 TV 송신탑이 우뚝 서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 간다. 어느 정도 가파르게 올라섰다 하면, 이번에는 살짝 안부에 내려선다. 덕분에 피로감을 덜 느끼게 되니 고마울 따름이다. 여유를 부리며 걷다보면 갑자기 가파른 암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암벽(巖壁)에 기대어 만들어 놓은, 긴 나무계단을 오르면 목책(木柵)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전망대 근처에서 산길이 둘로 나뉜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영수사, 정상으로 가려면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이정표 : 동잠교 4km/ 영수사 2km/ 두타산 정상 0.5km)

 

 

 

전망대에 오르면 시야(視野)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열린다. 건너편 중심봉을 향해 두타산의 능선이 말발굽처럼 휘돌아나고 있고, 그 중간에 MBC 송신탑(送信塔)이 앙증맞게 솟아 있는 것이 건너다보인다. 전망대에 설치되어 있는 진천읍의 전경을 담아놓은 안내도를 따라 시선을 움직여본다. 발아래에는 초평저수지와 진천시가지(市街地)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만뢰산과 갈미봉, 옥녀봉이 늘어서 있다.

 

 

 

이곳을 다녀간 어느 블로거(blogger)는 두타산을 찾는 이유를 소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워서..’라고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두타산을 걷는 동안 여러 곳에서 아름다운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곳은 전망대 부근을 꼽고 있었다. 그랬다. 전망대 주변은 용틀임을 하고 있는 노송(老松)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난 이곳의 소나무들에서 그가 발견했던 아름다움 보다는 자유(自由)라는 화두(話頭)를 얻어내고 싶다. 하늘을 향하거나 또는 수평(水平)을 만들면서 용틀임을 하고 있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자유자재로 몸을 비틀고 있었다. 뭔가 규격화된 삶보다는 자유라는 날개를 단 삶도 한 번 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두타산은 600m가 채 못 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그러나 주변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두타산의 자존심(自尊心)일까? 위엄이라도 부려보려는 듯이 정상 앞에서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들고 있다. 길가에 로프가 매어져 있으나 붙잡아야할 만큼 가파르지는 않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다.(이정표 : 동잠교 4.5Km, 영수사 2.5Km/ 붕어마을 9Km)

* 전설(傳說)에 의하면 단군이 팽우에게 산천(山川)을 다스리게 했는데 큰 홍수가 져서 온 산천이 거의 다 물에 잠기고, 산 정상부만 섬처럼 조금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 두()자에 비탈질 타()자를 붙여서 두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정상은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는데, 올라온 반대방향에서 보면 넉넉하게 펼쳐진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3개나 세워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중앙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도 다른 산에 비해 커다란 편이다.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眺望)이 막힌 정상에서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금방 중심봉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정상에는 삼국시대의 석성(石城)이 있다고 하나, 잔설(殘雪)에 가려 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 산성(山城)은 신라시대에 백제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전한다.

 

 

 

정상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 정도 내려서면 갈림길(이정표 : 두타산정상 0.77km/ 돌탑 0.68km/ 두타산삼거리 0.53km)이 나온다. 오른쪽에 송신탑(送信塔)이 보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도 선두대장은 왼편 돌탑으로 향하고 있다. 이때쯤 해서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가야할 MBC 송신탑이 오른편에 보이는데도, 산길은 계속해서 왼편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느 길로 가든 나중에는 만나게 되어 있다. 다만 산행거리와 시간을 절약(節約)하고 싶다면 우측 두타산삼거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갸웃거려지던 고개는 벼루재에서 멈추게 된다. 이곳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저(高低)가 크지 않은 능선을 오르내리다보면 미암재 안부사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두타산정상 1.7km/ 붕어마을 9km/ 증평미암리 1.2km).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증평 미암리에 이르게 되고,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붕어마을이다. 중심봉으로 가려면 물론 진행방향의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미암재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올라간 봉우리도 또 하나의 갈림길이다(이정표 : 송신탑삼거리 0.84km/ 두타산정상 2.21km/ 삽사리 1.49km). 이곳 삼거리봉에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MBC송신탑이 나온다. MBC송신탑의 철망을 끼고돌아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도로변에 산행안내도와 이정표(통신대 삼거리 0.63Km/ 삽사리 삼거리 0.84Km/ 삽사리 1.36Km)가 세워져 있고, 포장도로를 이용해 내려갈 수 없음을 알리는 군부대의 경고(警告)판도 보인다.

 

 

능선에는 갈림길마다 이정표와 벤치가 놓여 있다. 어쩌다 구급함(救急函)이 보이기도 한다. 진천군청(郡廳)의 사려 깊은 배려가 돋보이는 산이다. 솔향 짙은 노송(老松) 숲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몸도 마음도 어느새 숲의 기운에 촉촉이 젖어 있다.

 

 

 

 

 

전면에 보이는 군()의 안테나기지로 향하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잠깐 오르다가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둥그렇게 시멘트로 포장된 헬기장에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활짝 열린다. 두타산 최고의 조망(眺望)처라고 할 수 있다. 안테나기지 때문에 시야가 막힌 진천방향을 제외하고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이곳에서 다시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유지(遺志)를 어기고 있는 현장이 눈에 띈다. 헬기장 한쪽 귀퉁이, 어떻게 보면 봉우리의 한 중간쯤에 밀양 박씨할머니의 묘()가 널찍하게 자릴 잡고 있는 것이다. ‘밀양 박씨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너스레를 떨고 있는 곰바우산악회의 박용규회장님은 틀림없는 밀양(密陽) 박씨(朴氏)일 것이다.

 

 

안테나기지 쪽에 보이는 '모노레일 (Monorail)을 바라보고 내려가다가, 이번에는 레일을 가로지른 후에 능선으로 올라서서 산행을 이어간다. 이어서 별다른 특징이 없는 무명봉 두 개를 넘으면 안부 삼거리(이정표 : 공병대대 1.33km/ 보타사 삼거리 0.56Km/ 통신대 삼거리 1Km)에 닿게 된다. 배넘이고개이다.

 

 

 

 

배넘이고개에서는 가파른 암릉을 10분 조금 넘게 치고 올라야 한다. 모처럼 힘들여 올라간 봉우리는 그 보상을 넉넉하게 해준다. 봉우리 위에는 전망바위가 있어 조망이 무척 뛰어나기 때문이다. 발밑에는 초평저수지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건너편에는 중심봉이 멋스럽게 서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와 2분 정도를 걸으면 보타사 삼거리이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이정표 : 보타사 1.4Km/ 두타산 정상 5.24Km/ 진천등산로 0.95Km) 하산지점인 보타사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인 중심봉을 다녀오기 위해서 진행방향의 암릉으로 올라선다.

 

 

보타사삼거리에서 바윗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진행방향에 바위봉우리 하나가 의젓하게 서있다. 바로 중심봉이다.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텐계단을 이용해 중심봉 정상에 오른다. 오늘 두타산 산행 중에서 가장 멋진 곳이다. 수많은 낚시좌대가 떠 있는 초평저수지 뿐만 아니라 사방이 시원스레 열리고 있다. 두타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능선의 선이 무척 곱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중심봉은 사방으로 시원스레 조망이 트이고, 공들여 쌓은 듯한 2()의 돌탑들이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편에 초평저수지의 물빛이 푸르고, 왼편에는 증평시가지(市街地)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타사 삼거리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방향을 향해 내려선다. 처음에는 무척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길의 경사는 완만하게 변하고 있다. 중간어림에 금(禁)줄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움막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나무 숲 사이로 보타사가 내다보인다.

 

 

 

산행날머리는 탑선리 보타사(寶陀寺) 주차장

대나무 숲을 돌아서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보타사 앞 주차장이다. 후미(後尾)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꽤 남았기에 보타사 경내로 들어선다. 대한불교 태고종 사찰이라는 보타사는 현대식 2층짜리 기와집인 요사(寮舍)와 대웅전, 삼성각, 그리고 종각뿐인 자그마한 사찰(寺刹)이다.

 

 

 

 

 

등곡산(燈谷山, 589m)-월형산(月螢山, 526m)

 

산행일 : ‘12. 2. 11(토)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산행코스 : 탄지리→중치재→406봉→등곡산→떡갈봉→쇠사리재→북봉→월형산→월악휴게소(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충주호반을 돌아 신단양으로 가는 도로(3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월악산과 마주보고 있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은둔(隱遁)의 산이다. 소나무 등 자체(自體)가 갖고 있는 경관보다는 충주호의 리아스식 해안과 월악산 일대의 준수한 봉우리들을 조망(眺望)하는 재미로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탄지리 월악휴게소(주유소)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을 빠져나와 19번 국도(國道/ 충주방향)를 타고 잠깐 달리다가 세성교차로에서 36번 국도(단양․영주 방향)로 옮겨 들어가면 충추호반(湖畔)을 가로지르는 월악교(橋)를 지나 산행들머리인 상탄리 월악주유소(S-oil)에 이르게 된다. 월악휴게소에서 월악나루 방향으로 100m 정도 되는 거리에, 등곡산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 입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로 이어지는 도로(道路)는 최근에 새로 정비한 모양, 아스팔트의 검은 빛깔이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고, 도로의 우측 사면(斜面)은 붉은 황토색깔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월악산의 거대한 암릉이 위압적으로 서 있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고갯마루에 닿는다. 상노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중치재이다. 산행 들머리는 중치재 고갯마루 조금 전에서 우측으로 열린다(이정표 : 등곡산 2.1km). 길을 새로 정비하면서 산의 사면(斜面)을 깎아놓은 탓에, 정작 고갯마루에서는 산을 오를 수가 없게 된 탓이다. 사면위의 거대한 느티나무를 카메라에 담을 겸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월악산 하봉, 중봉이 잘 보이고, 영봉은 그 뒤에 숨어있다

 

중치재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산길은 절개지(切開地) 사면(斜面)위로 이어진다. 절개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등곡산 1.9km)가 보이고,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 갑자기 오늘 산행이 불안해 진다. 처음부터 산길이 가파른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아까 도로를 걸으면서 오른편에 보이는 산의 가파른 경사를 보며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 거리는 길지 않았다. 5분 정도 힘들게 오른 작은 봉우리에서 한 숨을 돌린 후 비교적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한 능선 길로 들어섰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주종(主宗), 초반에는 참나무의 개체수가 많더니만 점점 고도를 높아지면서 소나무가 그 밀도를 정비례(正比例)로 높여간다. 소나무는 요즘 부쩍 각광(脚光)을 받고 있는 편백나무에 비견(比肩)될 정될 정도로 피톤치드(phytoncide)를 많이 배출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진행방향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산길도 능히 참아 낼만 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거칠게 내뿜게 되는 호흡 속에는 당연히 더 많은 피톤치드가 함유(含有)되어 있을 터이니까 말이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왼편 숲 사이로 충주호가 조망(眺望)되기 시작한다. 오른편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언뜻언뜻 보인다. 이러한 조망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지만 결코 그 자태를 시원스럽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밋밋한 봉우리를 넘어 다시 급경사(急傾斜)가 시작될 즈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선택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별 볼거리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느라 헛힘을 쏟느니 사면(斜面)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런 선택이 필요한 지점은 등산을 마칠 때까지 2~3곳을 더 만나게 된다.

 

 

 

사면(斜面)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통과하고 나면 이어서 정상을 향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가파름보다 훨씬 더 심하다. 비록 야트막한 산이지만 쉽게 정상을 내어주기는 싫은 모양이다. 그게 모든 산들이 갖고 있는 자존심(自尊心)일 것이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두런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정상인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못되었다.

 

 

 

등곡산 정상은 두 평 정도의 비좁은 공간, 이정표(등곡산 정상 해발 589m. 탄지리 2.7km/ 떡갈봉 3.1km)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정표 옆에 정상표지석이 있었던 것 같으나, 상단의 빗돌은 보이지 않고 검은 기단(基壇)만이 덩그러니 누워있다. 누군가가 실수로 굴러 떨어뜨린 모양이다. 산의 경사도(傾斜度)가 심한 탓에 멀리 굴러갔을 것이고, 당연히 다시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에 서면 오른편의 월악산이 굉장히 커다란 덩치로 보인다. 중봉까지 얼굴을 내밀어 아래서 보이던 것보다 한층 수려함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왼편의 충주호도 시야(視野)에 들어오나 나뭇가지에 가려 기대보다는 시원스러운 조망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등곡산 정상에서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적당히 섞여 있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내리막에 눈이 얼어붙으면서 만들어낸 빙판길은 내려딛는 발걸음을 무척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면에 충주호가 멋지게 펼쳐지지만 아쉽게도 나무에 가려 시원스럽지는 않다. 조심조심 10분 조금 넘게 내려가면 능선안부의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월악휴게소이다.(이정표 : 월악휴게소 2.6Km/ 등곡산 0.5Km/ 떡깔봉 2.6Km) 최근의 고온(高溫)으로 그동안 내린 눈이 녹은 탓인지 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겨울산행인데도 걷기가 무척 편하다. 그러나 음지(陰地)쪽의 상황은 또 다르다. 그동안 지나다닌 사람들이 다져놓은 눈길이 얼어붙은 탓에 완전히 빙판(氷板)길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이젠(Eisen) 착용을 싫어하는 집사람도 끝내는 꺼내 신을 수밖에 없었다.

 

 

 

월악휴게소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봉우리 위로 올라선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자주 눈에 띄는 등산로 왼편에 충주호가 길게 펼쳐지며 함께 따라오고 있다. 이어서 가파르거나 완만(緩慢)한 오르내림이 길거나 혹은 짧게 반복되다가, 가야할 떡갈봉이 시원스럽게 조망(眺望)되는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다. 등곡산 정상을 출발한지 40분 가까이 되었다. 등곡산과 월형산은 한마디로 말해 가파르다. 따라서 등산로의 좌우(左右)가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능선이 흙으로 이루어졌고, 능선 위의 길이 약 1m정도로 반반한 것이다. 등곡산 자체(自體)만 가지고 내세울만한 것을 들라면 누구나 소나무를 꼽을 것이다. 수십 년도 족히 넘을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은 갖가지 형상의 자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자태(姿態)는 한마디로 예술이다. 거기다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충주호의 모습은 한 폭의 잘 그린 동양화(東洋畵)라고 불러야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봐도 좋은가 보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급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이내 떡갈봉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 구간은 오르면 오를수록 가파름이 더욱 심해지는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아마 경사(傾斜)가 50~60도는 넉넉할 것 같다. 혹자(或者)는 지독한 가파름을 일러 ‘산이 허리를 곧추세웠다’라는 표현을 쓴다. 등곡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다. 특히 떡갈봉에 올라갈 때는 누구나 이 표현을 실감할 것이다. ‘코에서 흙냄새가 나네요.’ 공직(公職)에서 최고위 간부로 재직하시다가 은퇴 후, 산에 다니면서 사진촬영으로 여가(餘暇)를 보내고 계시는 분의 말씀이시다. 얼마나 경사(傾斜)가 심했으면 흙냄새가 코로 스며들 정도로 코가 땅에 닿게 허리를 굽혔겠는가? ‘그래도 당신 것 보다야 덜 섰는데요. 뭐’ 집사람의 조크(joke)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지금 내 처지가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떡갈봉 정상은 허무(虛無) 그 자체이다. 선답(先踏)자의 후기(後記)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떡갈봉인지도 모르고 통과했을 정도로 아무런 표시(標示)가 없다. 다만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비록 나뭇가지 사이이지만 월악산이 멋스럽게 서있는 광경이 보인다. 등곡산 정상을 출발한지 대략 1시간 정도 흘렀다.

 

 

 

월형산으로 가기 위해 떡갈봉에서 오른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조심조심 빙판(氷板)길을 내려서다보면 갑자기 왼편 숲이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그 사이로 충주호가 고요한 자태(姿態)로 갇혀 있다. 골짜기 마다 물이 들어차면서 만들어 낸 리아스(rias)식 해안(海岸), 갈수기(渴水期)인 겨울철인지라 물위에 하얀 띠까지 두르고 있는 광경은 가히 절경(絶景)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떡갈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계속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가고 있다. 자그마한 봉우리를 몇 개 넘게 되지만 짧은 오르막과 긴 내리막이 반복되기 때문에 고도가 계속해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평지(平地)처럼 밋밋한 능선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길을 짧게 치고 오르면 453봉이다. 이곳 산불감시초소에는 두 개의 구조물(構造物)이 설치되어 있다. 하나는 철탑으로 된 감시용 전망대(監視用 展望臺)이고, 나머지 하나는 요원들이 대기하는 휴식공간일 것이다.

 

 

 

 

 

450봉에서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잠깐 내려서면 임도(林道)가 보인다. 쇠사리재로서 탄지리와 반대편의 덕구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또한 이곳 쇠사리재는 등곡산과 월형산이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월형산에 오를 계획이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내려서면 월악휴게소 옆 성천교에 이르게 된다.

 

쇠사리재

 

 

임도(林道)를 건너 산행을 시작하면 산길은 뚜렷하게 나있다. 경사(傾斜)가 심하지 않은 능선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오르면 북봉이다. 능선 분기점(分岐點)인 북봉은 아무런 표시도 없고, 특별한 볼거리나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통과해 버린다. 북봉의 남동쪽 바로 아래에 고산사라는 고찰(古刹)이 자리 잡고 있다지만, 그 고찰 또한 꼭 들러봐야만 할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기는 매 일반이다.

 

 

산길은 북봉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완만하게 내려간다. 여유롭게 걷다보면 참나무 숲 사이로 정자(亭子) 하나가 나타난다. 2층으로 된 팔각정(八角亭)인데, 우리가 보통 보아온 팔각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철(鐵) 구조물로서, 흙 기와와 단청(丹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古典) 팔각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래층은 사방이 유리로 막혀있는 것이 휴식공간이 목적인 듯 하고, 이층은 전방(前方)이 시원스레 뚫려 있는 것이 전망대(展望臺)로 이용됨이 분명하다. 이층으로 올라서면 월악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오고, 오른편에는 오늘 지나온 등곡산과 떡갈봉을 잇는 능선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전망대에서 월형산으로 진행하자마자 자그마한(小型) 풍력발전기(風力發電機) 하나가 서있는 것이 보인다. 발전기 옆에는 가로등이 몇 개 세워져 있는데, 풍력발전기가 돌때마다 가로등의 LED등(燈)이 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발전기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길가(路邊)를 로프로 지지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쇠시리골을 거쳐 탄지리로 내려서게 된다. 월형산은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곧바로 올라서야 한다.

 

 

갈림길에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얼마 안 있어 월형산 정상이다. 나무에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나무푯말이 매달려 있다. ‘충북986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았는데, 문득 쓸데없는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986’의 뜻이 뭘까? 혹시 ‘99살까지 88하게 산다?’ 그럼 6은 뭘 뜻하고 있을까? 66살에 은퇴(隱退)? 그럼 이분들은 틀림없이 은퇴한 선생님들이 조직한 산악회일 것이다. 월형산은 월악산의 산군(山群)들이 가장 잘 조망되는 곳이다. 대미산과 문수산 등이 월악산과 함께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로 다가오지만, 아쉽게도 나뭇가지에 가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만도 못하다. 산행을 시작하지 대략 4시간 조금 못되었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서있는 맞은편의 월악산 영봉을 바라보며 하산을 시작한다. 오른편에 등곡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져오는 주능선이 선명(鮮明)하게 바라보인다. 산길은 고도(高度)를 낮추어갈수록 점점 가팔라져 간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는데 선두에 선 집사람의 주특기인 알바가 불쑥 튀어나온다. 길이 끊겨있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것이다. 되돌아 나와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편 월악휴게소 방향으로 지능선이 갈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아까 떡갈봉을 오를 때 겪었던 가파른 경사(傾斜)를 이번에는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조건은 더욱 좋지 않다. 떡갈봉은 등산로라도 또렷하게 나있지만, 이곳은 길의 흔적(痕迹)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잡목(雜木)으로 온통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윗길까지 간간히 섞여있기 때문에 걷기가 무척 사납다.

 

 

 

가시에 찔리고 나뭇가지에 뺨을 맞으면서 내려서다보면 산길은 완만(緩慢)한 경사를 보이면서, 어느덧 길 또한 흔적이 또렷해진다. 걷기 좋은 길에서의 편안함도 잠시, 출입금지(出入禁止)구역 표지판을 만나면서 산길은 다시 한 번 요동을 친다. 더덕과 인삼을 심어놓았다며 철조망(鐵條網)으로 길을 막아 놓은 것이다. 별수 없이 철조망을 따라 내려선다. 이 길은 원래(元來) 등산로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기 짝이 없다. 다행히도 길지 않은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5년생 정도 된 매실나무 묘목(苗木)이 심어진 밭이 나온다.

 

 

 

산행날머리는 월악휴게소

밭을 지나면 산길은 멋지게 지어진 펜션(pension)의 마당을 지나게 된다. 진돗개를 닮은 하얀 개가 우리를 보고 열심히 짖어대고 있다. 꼬리까지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가 반갑다는 메시지인가 보다. 이어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월악휴게소이다.

 

막장봉(幕場峰, 887m)-장성봉(長城峰, 916m)


산행일 : ‘11. 9. 3(토)

소재지 : 경북 문경군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청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제수리재→투구봉→통천문→막장봉→절말 갈림길→장성봉→절말 갈림길→시모살이계곡→쌍곡폭포→절말 쌍곡휴게소(산행시간 : 4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막장봉은 작지만 큰 산이다. 900m가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산이지만 흙산과 바위산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곳곳에 널려있는 기암괴석들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의 형상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바위산의 특성대로 조망 또한 뛰어난 산이다. 여기에 비하면 장성봉은 밋밋한 흙산으로서 백두대간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봉우리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쌍곡계곡에서 관평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제수리재(諸水里峙)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 I.C를 빠져나와 34번 국도(國道/ 괴산읍 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쌍곡교(橋)를 건너기 직전 쌍곡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517번 지방도(地方道/ 청천면 송면리 방향)로 들어서면 호룡소를 거쳐 쌍곡계곡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청천면 관평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가 제수리재이다. 해발 530m인 제수리재는 괴산군 칠성면과 청천면의 경계이다. 참고로 중부고속도로 증평 I,C에서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칠성면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데, 오늘 산행을 안내한 안전산악회도 이 방법을 택했다.

고갯마루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고갯마루의 쌍곡계곡 쪽으로 약 40m쯤 치우친 곳에 통신탑이 서있다. 산행은 통신탑과 오른편의 등산로안내판(장성봉 4.8km, 막장봉 3.6km)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울창한 참나무 숲, 간간히 소나무가 보이기는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한다. 참나무 숲 아래로 뚜렷한 산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라가면 이상한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빨바위란다. 이름에 걸맞게 치과병원에서 본적이 있는 틀니를 쏙 빼다 닮았다.

 

 

 

이빨바위에서 조금 더 걸으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고저(高低)의 차가 심하지 않은 능선은 걷기에 무척 편하다.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덮인 등산로는 시야(視野)를 열어주지 않지만, 어쩌다 한번 씩은 눈에 호사(豪奢)를 주기도 한다. 오른편 숲 사이로 바위라도 얼핏 보일라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어서보자. 눈앞에 펼쳐지는 산하는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모처럼 찾아온 화창한 가을 날씨, 하늘은 파랗고, 하늘아래 산하(山河)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하늘가엔 하얀 구름 둥둥... 남군자산과 대야산이 그 너머로는 둔덕산, 속리산, 백악산, 도명산, 낙영산 등이 보인다. 곳곳에 보이는 바위들은 그냥 바위가 아니라 뛰어난 조망대(眺望臺)인 것이다.

 

 

 

능선을 몇 번 오르내리다 보면 커다란 바위봉우리가 길을 막는다. 투구봉이다. 제수리재에서 올라가는 능선에서 보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지만, 막장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뒤돌아보면 왜 투구봉이라고 부르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투구봉의 매력은 멀리 떨어져서 깎아지른 절벽을 봤을 때에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두 번 정도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선 투구봉의 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암반(巖盤)으로 되어있다.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眺望)이 터진다. 북쪽의 칠보산과 악휘봉, 남쪽의 대야산, 서쪽의 군자산과 남군자산이 가깝게 보일 만큼 조망이 좋다.

 

 

 

 

 

 

투구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면 만나는 봉우리에 노적봉으로 가는 길과 막장봉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에서 다시 능선을 한참 오르내리다 보면 본격적으로 바윗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구간이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하게 생긴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바위전시장이다.

 

 

 

 

전시된 여러 바위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분화구(噴火口)바위이다. 삼각형 꼭대기가 그릇처럼 둥그렇고 가운데가 움푹 패어 있다. 이곳에 빗물이 고이거나 눈이 쌓이면 백두산 천지(天池)처럼 보인다 하여 백두산천지바위라고도 불린단다. 분화구(噴火口) 바로 아래에 앉기 적당할 정도로 움푹 파인 곳이 보인다. 산행대장은 그 형상을 보고 용상바위라고 귀띔해준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 혹시라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들 분화구에 올라가 폼들을 잡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며 늘어선 줄이 제법 길다.

 

 

 

분화구바위를 지나 양쪽 절벽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날카로운 암릉을 통과한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지레짐작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벼랑 쪽에 철제난간을 설치해 놓았으니까... 암릉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은 주변의 조망이 좋고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세미클라이밍코스도 지난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면 능선에는 또다시 멋진 형상의 바위들이 나타난다.

 

 

 

 

 

 

 

 

 

 

 

 

 

 

 

 

 

'통천문'은 20여m의 바위가 길쭉하게 세워져 만든 문인데 좁지만 누구나 통과할 수 있다.

 

 

 

 

통천문을 지나면 코끼리바위이다. 코끼리바위는 전면(前面)보다는 옆에서 바라봐야 코끼리의 형상이 또렷하고, 그래서 촬영해봤으나 숲이 우거진 탓에 각도가 나오지 않아 산행기에 사용하는 것은 포기했다

 

 

 

줄을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밧줄을 잡고 오르고, 또다시 긴 밧줄을 잡고 내려왔다가, 다시 밧줄을 부여잡고 오르면 드디어 막장봉이다. 막장봉 정상은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에 조그만 정상표지석이 아니라면 능선상의 어느 한 봉우리로 여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주변이 잡목으로 둘러싸여있어 조망 또한 보여주지 못한다.

* 막장봉은 좁고 길게 뻗친 시묘살이골짜기가 봉우리에 의해서 막혀있는 것이 마치 광산의 막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막장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막장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이다, 왼편은 시묘살이골로 하산하는 길이고, 장성봉으로 가려면 맞은편의 가파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5분 정도 숨가쁘게 오르면 주능선 삼거리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악휘봉이 나오지만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출입을 막고 있다. 장성봉은 오른편 등산로를 따르면 된다.

 

 

 

주능선 삼거리에서 장성봉까지는 약 1Km,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능선의 고저(高低) 차(差)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다. 장성봉 정상은 3~4평 정도의 분지(盆地), 가운데에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울창한 잡목으로 둘러싸인 정상은 조망도 트이지 않고, 백두대간상의 한 봉우리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부지런히 걸으면 절말 갈림길에서 장성봉까지 3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절말 갈림길에서 시묘살이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急傾斜)의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원시림(原始林)을 닮은 계곡은 대낮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는데 군데군데 밑둥이 부러진 아름드리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시묘살이계곡은 처음에는 물기 한 점 구경할 수 없는 건천(乾川), 점차 아래로 내려가면서 물기가 보이더니 어느덧 도랑을 만들어내고 있다. 개울을 몇 번 가로지르다보면 물소리가 점점 커지고, 물줄기 또한 굵어져 있다. 그 굵어진 물줄기는 어느새 폭포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은선폭포이다.

* 시묘살이골은 옛날 어느 효자가 자기 부모의 묘를 이 골짜기 어딘가에 쓰고, 부모의 묘 옆에 초막을 짓고 묘를 지키며 살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산행날머리는 절말의 쌍곡계곡휴게소 주차장

은선폭포를 지나서도 등산로는 시묘살이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맑고 차가운 물이 이리저리 바위 사이로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폭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넓은 너럭바위 위를 넘으며 부챗살 무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소리를 벗하다 보면 어느덧 칠보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되는 살구나무골 삼거리,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반석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지고 있는 쌍곡폭포이다. 쌍곡폭포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개울건너에 쌍곡계곡 휴게소의 주차장이 보인다.

 

 

 

 

 

 

 

월이산(月伊山, 551.4m)

 

 

산행일 : ‘11. 8. 21(일)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과 옥천군 이원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옥계폭포→월이산→투구봉→서봉→옥계폭포(원점회귀, 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새싹산악회

 

 

특징 : 순수한 우리말로 ‘달이산’이라고도 불리는 월이산은 이름 그대로 ‘달이 떠오르는 산’이다. 달(月)이라는 단어가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듯이 산세(山勢) 또한 그러하다. 전체적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단아하며 산행을 하면서 금강의 절경(絶景)을 굽어보는 호사(豪奢)까지 누릴 수 있다. 산행코스도 길지 않으므로 ‘가족 산행지’로 권할만하다.  

 

 

산행들머리는 영동군 심천면 옥계폭포 주차장

경부고속도로 옥천 I.C를 빠져나와 4번국도(國道/ 김천, 영동 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심천면 고당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옥계폭포 주차장이 나온다. 4번국도의 도로변에 옥계폭포를 알리는 커다란 광고판이 보이니 참고하면 된다. 산행은 옥계폭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천국사의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은 최신식 화장실과 쉼터가 잘 갖춰져 있다. 잠깐 짬을 내어 들러본 천국사는 우선 낯선 느낌부터 든다. 건물 외관도 특이할뿐더러, 주요사업이 사찰(寺刹)의 본업인 포교(布敎)사업이 아니고, 소득창출을 위한 장례(葬禮)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천국사 : 현(現) 주지인 해정스님이 최근(最近)에 창건한 사찰로서 아직까지 불사(佛事)가 진행 중이다. 1층은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의미하는 사각(四角),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의 길)를 의미하는 팔각(八角)의 2층, 그리고 법당 외부의 상층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구조로, 특이한 외양(外樣)을 지니고 있다. 미얀마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천국사를 둘러보고 옥계폭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옥계폭포까지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林道)는 깔끔하게 정비가 잘 되어있다. 아마 영동군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모양이다. ‘우렁이 된장 쌈밥’이 맛있다고 소문난 폭포가든을 지나면 옥계저수지이다. 높다란 보(洑)를 가진 옥계저수지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과 어울려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저수지를 벗어나 조금 더 오르면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轟音)이 들려온다. 바로 옥계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이다. 옥계폭포의 앞 광장에는 관모(冠帽)를 쓴 박연 선생이 대금을 불고 있다. 박연선생은 '국악의 고장 영동'이라는 말이 탄생되게 한 장본인이다. 동상(銅像)이 우리들을 반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또한 이곳 옥계폭포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 난계 박연(1378~1458)은 이곳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영동군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악(國樂)의 고장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박연은 악곡(樂曲)을 정리한 인물로서 우륵,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꼽힌다. 또한 벼슬이 대제학과 이조판서까지 오른 큰선비이기도 했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절경(絶景), 저런 절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옥계폭포는 수천 년 동안을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 조금씩 절벽을 깎아나갔을 것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진 박연선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고, 이곳 바위틈에서 발견한 난초에 반해 자신의 호를 난계(蘭溪)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요즘 같은 장마철의 폭포들은 가히 ‘물 만난 고기’이다. 폭포는 뭐니 뭐니 해도 물이 많아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마침 찾아온 시점이 장마 뒤끝이어선지 비단결처럼 가지런히 쏟아지는 폭포수의 위세가 대단하다. 옥에 티 하나, 영동군에서 전망대 등 인공구조물들을 세워서 폭포를 구경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멋이 많이 훼손된 것 같아서 아쉽다.

* 옥계폭포 : 충청도에 있는 폭포(瀑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가 20여m로 그리 높지 않은 폭포인데도, 폭포 양쪽으로 깎아지른 암벽(巖壁)이 우뚝 솟아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높게 보인다. 박연이 낙향한 뒤 자주 찾아와 피리를 불던 곳이라 해서 ‘박연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

 

 

옥계폭포 앞 팔각정의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폭포의 왼편 절벽(絶壁) 위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심한 가파름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길가에는 굵은 파이프가 가파른 등산로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힘들게 올라가고 있다. 이 파이프는 저 아래 보이는 옥계저수지에서 물을 끌어 올릴 때 사용하는 파이프이다. 갈수기(渴水期)에도 결코 옥계폭포의 물이 끊어지지 않고 떨어지는 이유이다. 영동군청의 이러한 지극한 보살핌이 있기에 옥계폭포가 폭포가 많기로 소문난 충청도에서도 제일로 손꼽히게 된 이유일 것이다.

 

 

 

절벽의 위로 올라서면 곧바로 협곡(峽谷)이 나타난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시멘트다리를 건너 2분쯤 가면 갈림길이다. 두 길 모두 정상으로 가게 되지만, 오른편 능선으로 올랐다가 정상과 투구봉을 밟은 후, 천화원으로 앞으로 내려와 이곳에 닿게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오름길은 초입부터 경사 심하다. 지그재그로 경사(傾斜)를 죽이면서 오르면 엉성하게 쌓은 돌탑 몇 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449봉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몇 곳의 전망대를 만나게 되나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한다. 등산로 주변은 순수한 소나무군락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르는 힘듬을 솔향을 따라 흐르는 피톤치드가 다소나마 덜어주고 있다.

 

 

 

 

449봉을 지나면서부터 길은 고와지기 시작한다.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은 길은 걷기에 편하기만 한데, 거기다 흙길에는 낙엽들이 두텁게 쌓여 있어 여간 폭신폭신한 것이 아니다. 앞뒤에 이어지던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쉬고 있는 모양이다. 조용해진 숲길에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 갈참, 굴참나무 등 참나무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산꾼 하나 보이지 않는 늦여름 숲길을 느긋하게 걸어본다. 주어진 하산시간이 여유롭기 때문이다.

 

능선의 전망대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금강 본류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월이산에는 이정표가 없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주 등산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449봉을 지나서 한참을 더 걸으면 448봉이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원동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두 곳 모두 길이 뚜렷하기 때문에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민은 잠깐으로 끝난다. 다행이 어느 산꾼이 만들어 놓은 이정표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조금 조잡하면 어떠랴? 그의 정성어린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봉우리 몇 개를 넘다보면 저만큼에 월이산 정상이 보인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서 초본식물(草本植物 : 풀)로 뒤덮인 분지를 만날 수 있다. ‘닭의장풀’ 등 습지(濕地)에서 자생(自生)하는 풀들로 뒤덮인 것을 보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천연습지(天然濕地)중의 하나가 아닐까? 짙게 우거진 일년생 초목(草木) 아래를 뚫고 나가면 월이산 정상이다.

 

 

 

‘정상을 무덤에게 빼앗긴 불쌍한 산’이라고 불러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월이산 정상은 무덤이다. 무덤의 아래에 헬리포트가 조성되어있고, 정상표지석은 동쪽 한 귀퉁이에 버려진 듯 무심히 서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덤 뒤 제일 높은 지점만은 삼각점(이원21 1983재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옥천시가지(市街地)가 발아래 내려다보이고, 서대산과 장용산, 대성산, 갈기산, 국사봉과 천태산, 백화산의 능선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산은 올라선 지점의 반대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진행한다. 커다란 바위덩어리들이 길을 막고 있다. 얼핏 바위봉우리로 오해할 수도 있을 만큼 바위들은 우람하다. 바위를 왼편으로 돌아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急傾斜)이다. 월이산 정상으로 올랐던 길은 경사가 완만(緩慢)한데 반해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러나 별로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파른 바윗길에 매어 놓은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도 쉽게 아래로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곧바로 천화원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투구봉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을 따라 곧바로 진행해야 한다. 이곳 삼거리에도 누가 만들었는지 조그만 판자로 이정표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나 이번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 이정표에 적힌 지명(地名)들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국사봉’ ‘슬목재’ ‘마니산’ 지도에도 없는 지명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느 종교집단(宗敎集團)에서 매달아 놓은 모양인데, 자기들만이 아는 지명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公共)의 장소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혼동(混同)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종교는 곧 아집(我執)이려니...

 

 

천화원으로 내려가는 길과 헤어진 후, 얼마간 더 걸으면 등산로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한다. 보드라운 진흙길로 이어지던 산길이 갑자기 바윗길로 변하기 때문이다. 바윗길 초입(初入)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의 이름이 천모산(天母山)이란다. 곧 이 봉우리가 단군할아버지의 어머니인 웅녀할머니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에 表記된 지명을 무시하는 행위야 좋은 방향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주장을 따르라는 강요는 옳지 않다. 행정청인 영동군에 바라고 싶다. 그른 것은 옳게 바로잡아 주라고...

 

 

안내판 뒤는 로프가 설치된 암벽구간이다. 하지만 그다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암벽구간을 통과하면 왼편에 너른 암반(巖盤)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투구봉이다. 천화원쪽에서 바라보면 투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투구봉의 남쪽 끄트머리는 수십 길 까마득한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벼랑에 서면 천화원쪽의 서재마을이 자리 잡은 분지(盆地)가 발아래 펼쳐지고 있다. 산중임에도 불구하고 분지는 예상 밖으로 널따랗다.

 

 

 

 

 

투구봉에서 서봉까지는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서봉 정상의 갈림길에서는 손바닥 크기의 판자에 쓰여 있는 ‘국사봉 술목재 마니산’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왼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산길을 따라 3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연못까지 갖춘 멋진 독립가옥 앞에 닿게 된다. 집 앞의 노거수(老巨樹)는 보호수로 지정해도 좋을 만큼 오래 묵었고, 뜰 앞의 연못 수면 위에는 고추잠자리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둥그렇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독립가옥을 벗어나면 시멘트포장 임도(林道)가 이어진다. 인적이 끊긴 한가한 길, 주어진 하산시간이 넉넉하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주저앉아 얼린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음일까? 문득 주위 풍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가에는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비닐하우스에는 수세미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길가 도로변에는 제철을 만난 들국화들이 이미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혹시 길을 걷다가 갈림길이라도 나올 경우에는 '일지명상센터'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명상센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임도(林道)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랗다. 실제로 명상(冥想)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해 들어올 경우에는 이 길을 이용해야만 센터로 들어갈 수가 있다. 명상센터인 ‘천화원’은 꽤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단식을 통해 몸과 마음(心身)을 수련을 하는 곳이라는데 뭔가 깨우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아니면 벗겨 내버리고 싶은 세속(世俗)의 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고...

* 천화원 : 단(丹) 월드 사범 및 단 마스터의 교육을 위한 연수원. 단식과 명상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곳으로, 기운이 강한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과 기를 다스린단다. 홍익(弘益)정신을 실천하는 단학(丹學)정신을 주장하면서 단군의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주장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일반인들에게는 혼란스러울 정도이나 연간 4만 명이나 되는 많은 명상(冥想)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단다.

 

 

 

 

 

천화원 앞을 지나서 오른편에 있는 작은 폭포를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이내 산행을 시작하면서 만났던 갈림길과 만나게 된다. 아침에 지나왔던 협곡의 다리를 건너기 전에 계곡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조금 전에 보았던 폭포(瀑布)를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싶기 때문이다. 계곡을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오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보기 드문 절경(絶景)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아름다운 경치를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바라보는 즐거움이라니...

 

 

 

 

 

 

 

월이산이 습기가 많은 탓일까? 월이산을 걷다보면 유난히도 바위손이 자주 보인다. 바위를 온통 둘러싸다시피 하고 있는 바위손들은, 티 한 점 없는 싱싱한 젊음을 자랑하고 있다.

 

 

다리로 돌아온 후, 이번에는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본다. 50m쯤 걸어 내려가 벼랑에 서면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은 한가롭다. 폭포의 상단에는 ‘예저수 못’이 자리잡고 있다. 먼 옛날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폭포의 머리 부분이다.

* 예저수 못 : 이 연못은 아무리 큰 장마가 져도 흙으로 메워지는 일이 없었으며, 어찌나 깊은 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못의 깊이를 재보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명주실에 돌을 달아 집어넣어 보았지만 실 한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못의 구멍이 북쪽 옥천군 이원면으로 뚫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폭포의 물줄기가 바람을 따라 폭포의 위에까지 흩날리고 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은 바람까지도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산행을 마치고 옥계폭포 앞의 팔각정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접어든다. 그리고는 시원한 알탕과 함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적어보는 옛얘기는 월이산에 대한 전설 한 토막이다.

* 옛날에 이 동네에 월이라는 거구에다 힘이 장사인 총각이 살았단다. 동네사람들은 행여 행패나 당하지 않을까하여 월이를 피했었나보다. 그러다가 같은 마을에 사는 일향 처녀가 개울가에서 노는 총각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의 순박하고 믿음직한 모습에 반해버렸단다. 당연히 그 둘은 남의 눈을 피해가며 사랑을 꽃피워갔을 것이고...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이 사실을 전해들은 처녀 부모가 바깥출입을 금지하자 처녀는 집안에 갇힌 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다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말았단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총각도 당연히 따라 죽었을 것이고... 그래서 인근에서는 이 산을 월이산 또는 일향산이라고 부르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