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紺岳山, 674.9m)

 

산 행 일 : ‘23. 10. 21()

소 재 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시 남면, 연천군 전곡읍의 경계

산행코스 : 출렁다리주차장출렁다리범륜사묵밭쉼터악귀봉장군봉임꺽정봉감악산(비봉)까치봉묵밭쉼터(복귀)출렁다리주차장(소요시간 : 6.78km/ 4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파주와 양주, 연천의 경계에 놓인 산으로 예로부터 화악산(가평송악산(개성관악산(안양운악산(포천)과 더불어 경기 5의 하나로 신령스러운 산으로 일컬어졌다. 이름에 자가 들어간 산은 대개 험한 편이다. 등산이 어렵고, 오른다 해도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파주의 감악산만은 예외로 봐도 되겠다. 원래는 높고 깊고 가파른 산이지만 탐방로 공사를 잘 해놓아서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지자체가 서로 경쟁하듯이 시설물들을 설치한 것이 오히려 번잡스러운 흠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산행들머리는 감악산 시설지구(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세종·포천고속도로 안락 IC를 나와 신평화로를 타고 의정부시와 양주시를 통과한 다음, 회암교차로(양주시 회암동)에서 56번 지방도, 상수교차로(양주시 남면)에서 371번 지방도로 옮겨가며 달리다, 설마교차로(파주시 적성면)에서 설마천로로 빠져나오면 잠시 후 감악산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네비게이션에 감악산출렁다리 주차장을 찍고 오면 편하다. 하나 더, 시설지구에는 두부 만드는 집이 즐비했다. 이 고장 특산물인 장단콩으로 만든 손두부·순두부·두부전골·두부부침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황태구이·감자전·능이닭백숙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지도(청색 선)처럼 진행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범륜사 입구’.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묵밭쉼터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 악귀봉·장군봉·임꺽정봉을 차례로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이번에는 왼쪽 능선을 이용해 묵밭쉼터로 내려섰다. 이후는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10 : 05. 출렁다리주차장(출구)에서 데크 계단을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숫자는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버겁다 싶을 정도로 긴 계단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입구의 안내판 정도는 살펴보도록 하자. 감악산을 둘러싼 20km 정도의 순환형 둘레길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주요 등산로가 그려져 있다. 참고로 둘레길 각 코스의 이름은 지역 학생들이 지었다고 한다. 청산계곡길·손마중길·천둥바윗길·임꺽정길·하늘동네길 등 생경하지만 정겨우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민족상잔의 아픈 상처도 한번쯤 보듬어보자. 이곳 설마리 일대는 6.25전쟁 당시 서울 사수를 위한 마지막 요충지였다고 한다. 당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영국군 글로스터 부대원들은 중공군의 총공세에 맞서 최후의 한 명까지 싸웠고, 중공군의 서울 진입을 3일간이나 늦출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설마리에 기념공원이 세워졌고, 감악산 출렁다리는 글로스터 영웅의 다리(The Gloucester Heroes Bridge)’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10 : 12.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정자에 올라선다. 쉼터에 전망대를 더한 다목적 정자이다. 그러니 출렁다리의 전경을 카메라 프레임 안에 넣고 싶다면 잠시 들렀다 갈 일이다.

 정자는 뛰어난 뷰 포인트이다. 난간에 서면 감악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출렁다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출렁다리 뒤로 펼쳐지는 감악산 전경은 보너스라 하겠다.

 출렁다리 주변(힐링파크에서 운계폭포까지 약 1Km 구간) ‘신비의 숲에서는 야간경관조명이 펼쳐진다고 했다. LED 투광등과 동물조명 등으로 밤하늘의 자연과 동물을 등산로 곳곳에 조형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고보조명·영상·음향 등을 가미해 산 이름인 감악(紺嶽)에 얽힌 스토리를 보다 재미있게 연출한단다.

 요즘은 흔하디흔한 게 출렁다리. 그렇다고 짜릿한 스릴까지 흔해지겠는가. 거기다 산악지형에 설치한 현수교로는 가장 긴 편에 속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다리는 70kg기준 900명이 동시에 올라가도 끄떡없이 지어졌단다. 초속 30m 강풍과 진도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단다. 하지만 길이가 150m나 되는데 어찌 출렁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움직임에 몸을 내맡기고 맘껏 즐겨보자.

 다리는 36m나 되는 허공에 매달려 있다. 덕분에 출렁거림 속에서도 설마리, 설마천계곡 등 다리 주변의 풍경들을 눈에 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리 건너. 범륜사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상당히 가팔랐다.

 10 : 28. 범륜사(梵輪寺)에 이른다. ! 올라오는 도중 운계폭포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폭포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절간 뒤 샛길로 가면 운계전망대가 나온다. 감악산 산행의 필수코스라지만 집사람의 체력을 핑계 삼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감악산 중허리에 터를 잡은 범륜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종단의 사찰이다. 옛날 감악산에는 감악사·운계사·범륜사·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세월의 풍화와 전쟁 등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의 범륜사 1970년 금봉이라는 스님이 옛 운계사(존재했다는 문헌만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터에 다시 세운 것이란다.

 사찰 앞에 세워놓은 세계평화 빗돌이 눈길을 끈다. 이 사찰의 점심 공양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점심 공양과 저들이 원하는 세계평화가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더, 절간 뒤 백옥으로 만들었다는 높이 7m 관세음보살상도 볼만하다. 중국 하북성의 아미산 백옥으로 현지에서 만들어 1995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산이 그렇듯, 감악산 역시 방문 목적은 등산이다. 산행은 범륜사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널찍한 데다 바닥까지 야자매트로 깔려있어 산행기분은 나지 않는다.

 작은 돌멩이들이 바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행운을 빌며 붙여놓은 것 같은데, 이게 흡사 자철석이라도 되는 양, 떨어지지 않고 처음 그대로 찰싹 붙어있다.

 10 : 45. 탐방로는 개울을 건너기도 한다. 징검다리가 놓여있지만 여름철 집중 호우 때는 통행이 불가능할 듯. 그렇다고 우회로가 따로 나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개울을 건너자마자 상황이 확 바뀌어버린다. 넓고 반반하던 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칠기 짝이 없는 너덜길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복원된 숯가마 터(이정표 : 묵은밭 0.2km/ 범륜사 0.6km)에 닿았다. 숯은 참나무로 구워낸 것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이는 감악산에 아름드리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11 : 00-11 : 05. 고역이라 할 수 있는 너덜길의 끝. ‘묵밭 쉼터가 길손을 맞는다. 올라오느라 고생한 이들을 위한 배려로 쉼터용 정자를 배치했다.

 이정표(감악산 정상 1,350m/ 까치봉 1,000m/ 범륜사 800m)는 길이 둘로 나뉨을 알린다. 그렇다고 고민하지는 말자. 어느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정상에 이르기는 마찬가지, 그저 한 바퀴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11 : 08. 우리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정상 방향을 선택했다. 물기 없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모양새이다. 이어서 벤치가 놓여있는 곳(‘만남의 숲이 아닐까 싶다)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붙는다. ‘악귀봉부터 시작되는 바윗길을 제대로 타보기 위해서이다. 알다시피 바윗길이란 게 올라갈 때가 제멋 아니겠는가.

 지능선이어선지 시작부터 가파르다.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못 올라갈 정도로 깔딱인 곳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 어려움을 지자체도 알았나보다. 밧줄난간을 세워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했다.

 11 : 35.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암봉에 올라선다. 수십 길 낭떠러지 위, 풍상에 시달리다 못해 몸을 비비꼬아대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암봉의 자랑거리는 따로 있었다. 나무 사이로 파주의 산하가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시선을 조금 비틀자 이번에는 북한산이 그 걸출한 자태를 자랑한다.

 내려오는 길은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가득했다. 그렇다고 소름끼칠 듯이 위험하지는 않으니 약간의 스릴을 즐기면 되겠다.

 감악산의 또 다른 특징은 단풍나무라 할 수도 있겠다. 설악산이나 내장산만큼은 아니지만 굵고 튼실한 단풍나무들이 능선을 뒤덮고 있었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이정표 : 감악산 정상/ 청산계곡 1,420m/ 법륜사 1,570m)에서는 직진한다. 오른편은 보리암 돌탑을 거쳐 출렁다리로 연결되는 감악능선계곡길로 끄트머리에서 청산계곡길(감악산 둘레길)’로 합류된다.

 감악산에 ()’자가 그냥 들어갔겠는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곳곳에서 바위지대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곳곳에 저런 나무계단을 놓았다.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던 구간들이다.

 단풍이 한층 더 무르익었다. ‘가을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단풍이니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핏빛에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

 11 : 52. 계단을 올라서면 악귀봉(616m)’. 바위봉우리로 돼지바위라고 부른다고도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정상석은 파주시와 양주시가 공동으로 세웠다. 참고로 양주시와 파주시, 연천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감악산은 비봉·임꺽정봉·장군봉·악귀봉이 양주시와 파주시가 어깨를 맞대고 있고, 형소봉은 오롯이 양주시 차지다(대신 까치봉은 파주시 차지다).

 암봉의 특징대로 악귀봉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양주와 파주의 산하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은 험상궂기만 하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탐방로는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면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젠 장군봉을 오를 차례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걸어야 할 길이 이어지는데, 초입의 삼거리(이정표 : 장군봉 0.3km/ 감악산약수터 1.6km/ 악귀봉 0.1km)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을 눈요기 삼아 오르면 될 일이다.

 암릉답게 눈만 들면 구경거리가 달려온다. 그 첫 번째 만남은 통천문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답게 반대편은 천애의 낭떠러지다. 지리산이나 고성의 통천문처럼 통과해볼 생각을 버리라는 얘기다.

 오른편에는 방금 올랐던 악귀봉의 능선이 놓여있다. 악귀봉에서 시작되는 암릉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다리가 떨릴 정도이다. 그러나 일단 오르면 떠나기를 망설일 정도로, 소나무 등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는 암릉이 한 폭의 그림처럼 수려하기 펼쳐진다. 어쩜 임꺽정은 저런 봉우리들에서 개성과 한양을 호령할 기개를 키웠을지도 모른다.

 앗 곰이다 호들갑을 떠는 집사람의 손가락 끝에 곰 한 마리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양주 들녘을 지긋이 내려다보면서...

 이즈음 저 멀리 임꺽정봉의 거대한 암벽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아찔한 절벽에는 잔도가 걸렸다. 오래 전, 중국의 산을 오르내리면서 잔도는 험산을 끼고 사는 중국인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도 잔도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더니, 이젠 웬만한 바위산마다 잔도 하나쯤은 보통이 되어버렸다.

 잠시 흙길로 변했던 능선이 장군봉의 턱밑(이정표 : 장군봉 0.1km/ 형소봉 0.2km/ 감악산주차장 4.7km)에 이르자 다시 한 번 용트림을 한다. 거대한 암벽으로 변해 앞을 막아버린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우회하여 올라야하겠건만 다행이도 지자체에서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오른쪽 발아래서 솟아오른 저 암봉은 형소봉일 것이다.

 계단은 바윗길로 바톤을 넘긴다. 오른쪽은 천 길 낭떠러지, 능선이 칼날처럼 생긴 탓에 왼쪽으로 당겨 걸을 수도 없다. 그저 철제난간을 붙잡고 조심조심 오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구간을 감악산 산행의 백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허공을 걷고 있는 듯한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 : 10. 암릉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장군봉(652m)’이 찍고 있었다. ··남으로 시야가 뻥 뚫리면서 양주와 파주의 산하가 거침없이 달려온다. 시선을 조금 올리자 이번에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헌걸찬 바위봉우리가 우뚝 솟아오른다.

 장군봉을 내려서면서 위험구간은 대충 끝난다. 편안해진 길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안부(이정표 : 임꺽정봉 0.1km/ 감악산 정상 0.5km/ 장군봉 0.1km)에서 임꺽정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감악산(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올라야 할 임꺽정봉이다. 양주 쪽 산자락은 천애의 바위벼랑이지만, 파주 쪽은 부드러운 육산의 모양새이다. ‘도적 의적으로 나뉘는 임꺽정에 대한 평가를 닮았다고나 할까?

 배낭걸이 대라고 한다. 산이 좋아 전국의 산을 20년 이상 누비고 다녔지만, 내 기억에 저런 시설을 처음이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임꺽정봉의 턱밑(이정표 : 임꺽정봉 0.1km/ 얼굴바위 쉼터 0.3km/ 장군봉 0.1km)에서 신양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12 : 21. 제법 긴 계단을 올라서면 임꺽정봉을 코앞에 둔 삼거리(이정표 : 임꺽정봉 50m/ 감악산 0.4km/ 장군봉 0.2km)’. ‘임꺽정봉의 기상을 흉내라도 내려는 듯 커다란 바위 하나가 위세를 자랑한다.

 양주시에서 세운 안내판이 자기네 땅도 한번 들러보라고 유혹을 보낸다. 천애의 바위절벽에 길은 내놓았으니 스릴을 즐겨보라는 것. 하지만 파주 쪽에 차량을 세워놓은 탓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12 : 23. ‘임꺽정봉에 올라선다.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 중 하나인 임꺽정이 이곳 양주 출신이어선지 그 흔적으로 임꺽정봉과 임꺽정굴을 이곳에 남겨놓았다. 실존 인물인 임꺽정은 명종 14(1559) 임금의 명으로 임꺽정에 대해서 대책을 논의했고 명종 17(1562)에 되어서야 임꺽정의 무리를 소탕할 수 있었다. 그 기간(아니면 그 이전) 중 감악산에 머물렀을 수도 있겠다. 하나 더. 조선시대의 임꺽정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홍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임꺽정 덕분이다.

 옛 이야기는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감악산의 깊고 험한 산속 동굴에 기거했다고 전한다. 그 동굴이 있는 바위 정상이 지금의 임꺽정봉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임꺽정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무척 호쾌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장군봉의 암릉과, 남쪽의 절벽단애 아래로 펼쳐지는 신암저수지와 널따란 뜰이 자못 시원시원하다.

 12 : 26. 그리도 뛰어난 조망이건만 막상 오래 즐기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좁은 정상이 등산객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아무튼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감악산으로 향한다.

 12 : 32-13 : 32.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점심상을 차렸다. 그리고 못다 한 얘기로 회포를 풀다 가기로 했다. 산꾼들이라기 보다는, 만나는 것 자체가 좋고, 그저 산에 드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수다로 한껏 여유를 즐기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어서 주요 포인트 중 하나인 어름골재로 올라선다. 이정표(감악산 120m/ 범륜사 2.290m/ 장군봉 220m/ 임꺽정봉 160m)는 이곳이 사거리임을 알려준다. 곧장 고개를 넘으면 묵밭 근처의 만남의 숲’. 왼편은 장군봉과 임꺽정봉의 중간에서 만났던 삼거리로 연결된다. 감악산의 정상은 물론 오른편으로 가면 된다.

 12 : 33. 몇 걸음 더 걸으면 정자에 닿는다.

 이곳도 조망의 명소 중 하나다. 양주벌판을 가운데 두고 동두천의 칠봉산과 양주의 천보산, 도락산, 불곡산(이 산에도 임꺽정봉이 있다) 등이 불쑥 솟아올랐다. 더 멀리로는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도봉산과 북한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13 : 46- 13 : 54. 출렁다리 주차장에서 길을 나선지 2시간 45분 만에 감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웬만한 운동장이 부럽지 않을 만큼 널따란 정상에는 정상석과 감악산비, 고롱이 미롱이 마스코트, 각종 안내판 등 파주시·양주시·연천군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만들어놓은 시설물들로 가득하다. KBS중계소와 강우레이더 같은 공공시설도 들어서 있었다.

 정상의 북쪽 가장자리, 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어른 키 정도 되는 빗돌 하나를 앉혔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은 그 유래가 알려지지 않는데,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아 몰자비’(글자가 죽은 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아예 글자를 새기지 않은 무자비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설인귀비나 빗돌대왕비(‘비석대왕비라는 뜻으로 비석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된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2년 학술조사가 이루어지도 했으나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다는 정도만 파악됐을 뿐이다.

 정상석은 양주시와 파주시가 공동으로 만들었다. 연천군이 감악산의 공동 소유권자이긴 하지만 그 영역이 정상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이리라.

 정상에 어깨를 걸치지 못한 연천군은 군 마스코트인 고롱이 미롱이 감악산 숲길 안내도만 달랑 세워놓았다. 고롱이와 미롱이는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구석기유적지(전곡리)를 품은 연천군에서 만든 원시인 캐릭터이다.

 조망은 전문가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감악산 등산의 최고 기쁨은 뭐니 뭐니 해도 정상에서 만나는 스카이라인과 납작한 마을들 모습, 그리고 멀리 삐죽삐죽 올라와 있는 한국의 산 풍경이다. 남쪽으로는 동두천시 칠봉산, 양주시 도락산, 서울시 도봉산, 서울시와 고양시를 이어주는 북한산 등이, 북으로는 북한 개성시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도와줘야 가능한 시계이지만, 그야말로 하늘과 공중과 산과 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광활한 풍경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북쪽(연천)에서 뜬금없는 풍경이 잡힌다. 산꼭대기에 성모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요것조것 뒤적여 봐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평화·통일의 마음을 담은 조형물로 유추해 볼 따름. 성모님의 시선이 북녘 땅을 응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임진강, 한탄강 등 접경지역에 내리는 비를 관측할 수 있는 5층 높이의 대형 강우레이더도 들어서 있었다. 태풍·기상변동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상레이더와 달리 반경 125km 이내에서 지표에 근접하게 내리는 비의 양을 면적 단위로 집중 관측해 홍수예보에 활용한단다.

 명자나무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그것도 이 늦가을에 말이다.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조를 읊었다. 뒤이어 나오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똥말똥하여라라던 문구가 떠오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13 : 54. 하산을 시작한다. ‘까치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인데, 이정표에는 감악산둘레길 중 손마중길로 적혀있었다. 레이더기지의 서쪽 울타리에 기대어 내놓은 데크로드를 따르면 된다.

 13 : 56. 몇 걸음 걷지 않아 멋진 전망대를 만났다. 시야가 툭 트이는 곳에 데크로 대를 만들어놓았다.

 난간에 서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파평산, 천덕산, 덕물산 진봉산 등 수많은 산들이 드넓은 들녘 곳곳에서 솟아올랐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물굽이를 이루며 흘러가는 임진강과 이를 가로지르는 장단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에서 송악산과 극락봉 등,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녘의 산들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탐방객들을 위해 배려도 잊지 않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보는 재미를 더하게 했다.

 13 : 59. 또 다른 조망처에는 아예 정자까지 들어앉혔다. 하지만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조금 전 들렀던 전망대와 똑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아서이다.

 팔각정(이정표 : 까치봉 600m/ 객현리/ 정상 150m)에서는 까치봉 방향으로 간다. 정자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길고 긴 나무계단. 숲속을 헤집으며 나있지만 곳곳에서 조망이 틔기 때문에 눈이 호사를 누리며 내려갈 수 있다.

 14 : 18. 운계능선을 탄지 19분 만에 토끼봉에 올라섰다. 바위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지는 멋진 산봉우리이다.

 정상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이정표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현 위치를 까치봉으로 표시해놓은 감악산 둘레길 안내도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할 따름이다. 그게 서운했던지 누군가가 안내도에 까치봉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어놓았다.

 까치봉 역시 멋진 조망처였다. 아까 정상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낮아진 고도만큼만 좁아졌다고나 할까?

 이후로도 나무계단은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14 : 51. 삼거리 안부(이정표 : 손마중길 740m/ 묵은밭 120m/ 감악산 정상 1,380m)에 내려선다. 직진의 운계능선은 운악산둘레길의 손마중길로 연결된다. 우리는 무릎이 불편한 집사람을 핑계 삼아 묵밭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탈출로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100m이상이나 내려간 뒤에야 묵밭에 이를 수 있었다이후부턴 아까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 15 : 50. 똑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무료함을 견뎌가며 걷길 25분 드디어 출렁다리 주차장에 이르면서 산행이 종료된다오늘은 4시간 30분을 걸었다핸드폰의 앱이 6.78km를 찍고 있으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하긴 집에 돌아온 집사람이 앞으로 산행은 사양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 정도니 어련하겠는가.

 에필로그(epilogue), 주차장에서 짐을 챙기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악사(紺嶽祠)라는 사당이 없어졌다니 말이다. 내 나라 강산을 짓밟은 당나라, 그 군대를 이끈 장수 설인귀(薛仁貴)’를 모신다니 이를 말인가. 하긴 세상이 하 수상한데 무슨 꼴인들 못 보겠는가. 올 여름인가? 언론은 어느 얼간이가 광복절날 일장기를 문간에 내걸었다고 전했었다. 그러니 설인귀를 모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토착 왜구가 스스럼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